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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장 오타맨...
  2. 2005/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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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장 오타맨...
  4. 2005/02/13
    지리산 산행 2.(세석산장에서-동서울터미널)(8)
    간장 오타맨...
  5. 2005/02/13
    지리산 산행 1(동서울에서 세산산장까지).(2)
    간장 오타맨...

박혜경 5집이 나왔다.

  • 등록일
    2005/02/18 13:04
  • 수정일
    2005/02/18 13:04
전반적으로 음악 분위기가 바뀌어 있다. 모던락에서 펑크 음악이 가미된 발라드로 바뀐 분위기랄까? 첫번째 곡인 "단짝"이라는 노래가 그나마 좋은 노래인것 같다. 오늘 듣고 있는데 그냥 들을만 하다.... 시간나면 박기영(여) 테이프와 박혜경 5집 센스의 투명음악이나 사러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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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잡한 마음과 나의 사회적 교섭안 반대 생각들...

  • 등록일
    2005/02/18 11:37
  • 수정일
    2005/02/18 11:37
* 이 글은 손을 내밀어 우리님의 [민주노총 자유게시판에서] 에 관련된 글입니다.

입장이 다름은 운동에 있어 서로 균형을 맞춰가며 발전하는데 있어서 원동력이다. 그러나 작금의 다름은 운동적 입장의 다름이 아니라 독선과 아집에 대한 다름이 아닌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보라 MC-MT논쟁으로부터 시작된 운동진영의 지난한 논쟁(한국사회구성체논쟁. 죽산 1, 2, 3, 4)들에서 살펴본 정파 간의 논쟁에서는 다름에 대한 차이를 존중하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사상적 배경에 대한 지난한 논쟁들로 점철되었다. 그 논쟁이 차단되기 전까지는 나름 데로 치열하게 논쟁은 진행되었다고 내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내가 확인한 지금의 민주노총 대대에서 붉어지고 있는 사회적 교섭(안)에 대한 논쟁은 그 어떠한 입장으로 대별될 수 없는 것들이다.


현재 민주노총이 국민파, 중앙파, 현장파로 나뉘어져 나름 데로 현장에서 운동의 방향을 설정하여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난 나뉘어져 있는 것에 대해 차별이나 어떠한 다름을 설명하는 하고자 하지 않는다. 분명히 노동운동에 대한 자기입장과 내용이 있기에 민주노총이라는 안에서 다양하게 수용하면서 사업들과 투쟁을 전개하였고, 일정정도 그 안에서 민주노총운동의 발전을 견인하기 위해 사업들을 수행하여왔다고 생각한다. 대대의 사태를 혹자들은 일부 극단세력들에 위해 일어난 분열조작이라도 호도하고 있기도 하다. 일부 좌파의 극단적 현상으로 호도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차분히 살펴보자. 무엇이 문제인지 왜 그러한 사태가 벌어졌는지 원인을 잘 살펴보면 사회적 교섭(안)이 갖고 있는 위험성과 지금 정세에서 노사정이라는 허울이 얼마나 허황되게 민주노총 조합원에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을까? 노사정이라는 틀이 과연 노사정이라는 틀에서 원만한 사태를 수용하기 위해 설정된 논의테이블인가? 작년 몇 번의 산별총파업을 보더라도 노사정이라는 틀이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족쇄로 작용하였음을 확인하고 있지 않았는가? 이 틀에 들어가서 과연 합의할 사항이 무엇인가? 단사에서 위원장은 사측과의 투쟁 그리고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 목을 매달아야 하는 사태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투쟁을 이끌 방향이 없는 시대, 회사에 나가도 재미가 없고, 신명이 나지 않아 노동조합이 제대로 서기 위해 분신을 하여야 하는 사태, 비정규직이라는 지칭되는 망령 때문에 길거리로 내일이 없는 불안정한 노동현실에 고뇌와 번민 밖에 할 수 없는 현실에서 사회적 교섭(안)은 조합원들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한번 지도부나 여타 사회적 교섭(안) 수용의사를 갖고 있는 동지들은 생각을 갖고 있는가? 사회적 교섭(안)의 부당성을 민주노총 홈페이지를 통해 수많은 노조와 조합원들이 입장을 전달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만큼 노조나 조합원들에게 있어서 사회적 교섭(안)은 98년 노사정위 결합을 통한 정리해고 수용(안)보다 더 큰 파장이 있을 거라는 우려 그리고 현 비정규직, 여성, 이주노동자, 장애인 노동자(즉 노동진영에서도 사회적 소수 노동자)들에 대한 족쇄가 될 것이 필연적으로 다가오기에 부당함에 목 놓아 호소하였다. 자명한 현실에 대한 그들의 입장에 대한 여타의 생각은 없고, 갈라치기하는 모습이 과연 민주노총의 전노협 정신이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민주노총의 갖고 있는 조합 내 민주주의는 우리가 정권이 추구하는 일반 민주주의 원칙과 다른 것은 토의와 이에 대한 설득을 통한 민주주의였음을 전제하여야 한다.(민주노조가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조직이라는 것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에 대해 생각할 때 일반민주주의가 갖고 있는 다수결에 대한 입장을 전제한다는 등식은 민주노조운동이 정권과 자본과 아무런 차별성이 없음을 내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지난 전노협정신을 이야기한다면 우린 다수결로 점철되었던 수많은 어용노조의 횡포를 몸소 투쟁으로 분쇄하고 현장 내 민주노조 깃발을 나부끼며 스스로 올바름을 관철시켜 내지 않았던가? 지금도 그 정신은 유효하다.)입장이 다른 조합원들에 대한 많은 의사개진과 그리고 조합 내 전반적 토론을 통한 입장이 대의원들에게 전달되어 대의원 개인이 표를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 입장이 대의제로서 발현되는 현상이었다. 그러나 지난 대대가 과연 전체 조합원들의 총의가 모아진 자리라 생각되는지... 난 그렇지 않았다고 본다. 왜 조합원의 민주노총에 대한 충정이 곡해되어야 하는지 그것이 의문이다. 비난과 비판이 다른 점에 대해 인식하였으면 한다. 지금 내가 트랙백 한 글에 옮겨진 한 조합원인지 노조 간부인지 잘 모르겠지만 비난으로 글의 특색이 나타났다. 사회적 교섭(안)에 대한 찬성의 입장은 하나도 없고 온통 비난하기를 위해 써내려가 글자들로 도색되었다. 자신의 입장에서 사회적 교섭(안)을 바라보는 입장이 분명 있다고 이러한 입장인데 왜 그러한 입장에 대해 반대를 하느냐 라고 호도한다면 이렇게 뭐라 글을 써내려갈 필요도 없다. 정확한 입장 속에 이에 대한 반론을 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사회적 교섭(안)에 대한 제대로 된 논쟁이라고 있었는가? 대대를 보고 사회적 교섭(안) 통과를 반대하는 분열세력이외엔 뭐 어떠한 입장도 없었다. 왜 그렇게 민주노총 게시판에 조합원들의 총의가 모아진 사회적 교섭(안) 상정 반대 움직임에 대한 입장들에 대해 민주노총 현 집행부는 묵묵부답하고 선거 공약사항이라고만 말하는가? 공약은 시기와 운동조건에 따라 판단하고 변경될 수 있다. 민주노총이 언제부터 공약사항을 이행하는 조직으로 변화되었다. 합당한 그리고 여타 판단할 만한 이야기를 듣지 못한 이로서는 사회적 교섭(안) 상정과 통과 의지를 보이고 있는 민주노총 현 지도부에 대한 증폭되는 의문은 가시질 않는다. 여타의 글을 보면서 사회적 교섭(안) 반대가 갖고 있는 위험성을 왜 그렇게 많은 조합원들이 반대하고 대대 안건 상정에 반대하였는지 진정으로 모르는가? 일단 일부에서는 네덜란드식 사회적 협약이라는 소리도 있다. 그리고 과거 우린 북유럽의 노동조합 운동에 대한 모색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린 유럽이 갖고 있는 경제적 파이에만 온 집중을 가졌지 그 북유럽의 제3세계 경제에 대한 초국적 전지구 경제 지배 전략에서 파생된 독점적 자본의 증여를 바라보지 못하였다. 북유럽 국가들이 누리는 복지정책과 경제적 수혜들 그리고 그 속에서 대중으로부터 소외되는 노동조합의 그늘을 보지 못하고, 임금과 생산현장에서의 조건들에만 시야가 협소화 되었다. 독일금속의 파업이 조합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 스웨덴과 노르웨이가 자본의 수익을 증여하기 위해 벌이는 제3세계 이주노동자 정책에 대한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고강도 노동과 노동소외 기타 정부의 노동정책에서 경제성장이 멈췄을 때 벌어지는 실업기금의 축소와 노동정책에 대한 일방성에서 확인하고 여타 다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갖고 있는 임금정책과 복지수혜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조건들에 대해서는 면밀한 검토가 없이 연구라는 작업들이 수행되었다. 지난 전투적 노동조합, 자주적 노동조합, 민주적 노동조합이라는 기풍은 민주노총 내에서 사라지고 실리적 노동조합이라는 현상이 판을 치고 있음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현재 전지구적 노동자연대의 슬로건이 깃발로 나부끼고 있다. 그러나 전지구적 노동자연대를 위해서는 일단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일국적 노동운동의 조건에 맞는 노동운동의 풍토의 조성이다. 그러나 우리 노동운동이 일국적 노동운동에 맞게 재편되어지고 조직되고 있는가? 지난 2003년 민주노총 대대자료를 살펴보다 마음 한 구석 무겁게 다가오는 대목이 있었다. 이 대목은 다름 아닌 민주노총 조합원수는 95년 창립당시와 비교하였을 때 현격히 증가하였다. 그러나 98년과 2002년 분기점으로 중소영세사업장 투쟁이 한창일 때 민주노총 가맹산하조직의 수가 현격히 높아졌다가 가맹산하조직 수가 현격히 준 것을 확인하였다. 참으로 마음이 무겁게 다가왔다. 민주노총 출범 10년 그러나 아직도 우리가 갈 길은 멀었다는 생각을 가져보게 하는 하나의 대목이었다. 그 길에서 투쟁의 패배로 노동조합 깃발을 내려야 했을 민주노조 조합원들의 가슴은 어떠했을까? 잠시 상상해 보았다.(이전 인천에 있을 때 마이크로 노조의 해단 식을 지켜보면서 위원장이 노조깃발을 가슴에 갖다 대고 힘겨워 하던 기억이 잊혀 지지 않는다. 그렇게 수많은 노동조합은 그렇게 힘겹게 우리 곁을 벗어나 더 이상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하였다. 그렇게 하나둘 잊혀 져 간다. 못내 아쉽다.) 사회적 교섭(안)은 현 비정규직, 여성, 장애, 이주노동자에게 쇠사슬로 작용할 것이라는 것은 누구도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이 거부에 대해 이의를 달리하는 사람이 있다면 설명 좀 해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사회적 교섭(안)은 민주노조운동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을 사측이나 정부의 강압에 의해 굴 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것이다. 자본은 사회적 여론을 호도하며, 정권은 경제상황이 나쁘다는 온갖 이유를 들이밀려 일방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양보 아니 강압으로 이를 강요할 것이다. 이는 민주노총이 기간 노동운동을 통해 정치적으로 성숙한 노동자 의식을 상쇄시킬 것이며, 정치투쟁을 통해 사회변혁을 선도한 민주노조운동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다. 민주노총은 사회변혁을 자신의 과제로 부여하고 있지만 사회적 교섭(안)은 경제투쟁이 아닌 이상 민주노총을 더 이상 사회변혁세력으로서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주요한 도구로 작용할 것이다. 나는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을 견지하기 위해서 사회적 교섭(안)을 부결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나는 노동운동이 사회변혁 운동이고 사회적 모순을 현장이라는 가장 밑바닥에서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역사 변혁의 주체라 생각하기에 노사정이라는 허울이 필연적으로 작용될 노동자 탄압의 기재인 사회적 교섭(안)은 부결되어야 한다고 본다. 나는 노동운동이 정치투쟁의 주체로 성장하였고 이후도 경제투쟁이 아닌 정치투쟁의 선봉이기에 사회적 교섭(안)을 부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비정규직, 여성, 장애, 이주노동자를 협상의 들러리로 세우고, 양산할 사회적 교섭(안)을 반대한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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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김용택] 재봉이네 집에 붕숭아꽃 피었네

  • 등록일
    2005/02/17 18:49
  • 수정일
    2005/02/17 18:49
** 입담진 사투리가 구수해 옛 기억도 나고 하는 시입니다. 입담이 구수하다는 말을 이 글 속에서 발견하고 참 정겹게 다가옵니다. 야 피어부렀네...... 표준말이 결코 흉내낼 수 없는 구수한 입담 된장 맛 같은 말입니다. 재붕이네 집 마당에 봉숭아꽃 피어부렀네 두엄더미 옆 닭장에 꼬끼오 낮닭이 울고 시커멓게 끄을린 처마 밑도 환하게 재붕이네 집 마당에 저절로 자란 봉숭아꽃 피어부렀어 재붕이네 아부지 조합에 갔다 오며 술 마시고 신갱제가 뭐꼬 신갱제가 뭐꼬 고래고래 고함지르다 네 활개로 잠든 사이 어매, 붕숭아꽃만 아, 겁나게 피어부렀당게. *** 김용택 시집 " 강 같은 세월" (이 시집은 김용택 시인이 누군가에게 바치는 시집이다. 책 첫머리 글을 인용해 봄. "이 세상에 아름다운 사람, 좋은 시인이었던 고 이광웅, 고 김남주 두 분께 이 시집을 눈물로 바칩니다.)중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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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김용택] 하동에서...(이광웅 형님)

  • 등록일
    2005/02/17 18:36
  • 수정일
    2005/02/17 18:36
겨울 섬진강 하얀 모래밭에 마른 솔잎같이 희미한 물새 발자욱을 따라가다 발자욱 문득 사라진 모래밭과 물새 날아간 하늘을 바라보며 텅 빈 하늘가에 살아온 세월을 그리시는, 이제는 귀밑머리 스산한 형님 이 세상에 애처롭게 사라지는 것들이 어찌 저 작은 모래알 위에 찍힌 희미한 발자욱뿐이겠습니까 숨가쁘게


숨이 가쁘게 흘러온 것들이 어찌 저 강물뿐이겠습니까 이만큼 떨어져서 걷다 뒤돌아다보면 내 발자욱도 형님 발자욱도 잔물결에 씻기어 사라지고 물만 흐릅니다. 형님 우리의 아름다운 일생도 정겨운 형님과 나의 인연도 언젠가는 저 물새 발자욱처럼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산그늘 잠긴 물만 흐르겠지요. *** 김용택 시집 " 강 같은 세월" (이 시집은 김용택 시인이 누군가에게 바치는 시집이다. 책 첫머리 글을 인용해 봄. "이 세상에 아름다운 사람, 좋은 시인이었던 고 이광웅, 고 김남주 두 분께 이 시집을 눈물로 바칩니다.)중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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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 당시 회고

  • 등록일
    2005/02/17 17:40
  • 수정일
    2005/02/17 17:40
오늘 사무실에 있는데 운영위원장님이 91년 안양에서 박창수 열사 투쟁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 하였다. 그 당시 투쟁 그리고 전경과 대치.... 긴박한 상황... 체루탄 연기가 뿌연 거리에서 거리를 지켜야 했던 당시의 상황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도 거기에 한 대오를 차지 하였고, 구호를 외치며 투쟁하던 시기....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가 의미심장하게 들려온다.


정확히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부터 집회는 다른 양상을 띄었다. 주로 물리력을 대동한 투쟁은 화염병 엄단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지고, 방패를 동원해 전경들이 집회대오를 압박하는 형태... 간헐적으로 화염병과 쇠파이프가 대동되었지만 경찰의 압박에 무기력하게 ㅤㅉㅗㅈ겨야 했던 당시 상황들.... 그렇게 투쟁은 사글어 들었다. 아니 투쟁을 전개할 수 없는 조건으로 조건들은 만들어졌다고 해야 겠다. 14년전의 이야기들 그 때를 회상하는 것들이 이상하게 다가온다. 무용담을 갖고 살아가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지금과 과거를 비교하는 버릇... 현실에 안주하지 못한 자의 자책이겠거니 하지만 너무 쉽게 정세는 변하였고 상황도 변모하였다. 지금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나.... 물어보지만 그 대답은 찾기 힘들다. 아니 찾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감돈다.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무기력하게 만들었는가? 어느 유인물에서 보았지만 노동운동의 위기는 없다고 한다. 그러기를 소망해 본다. 그러나 보자! 왜 노동운동의 위기론이 대두되었는가? 과거 같이 가열차게 가투를 하지 못해서 아니다. 과거 같이 대중이 운집해서 아니다. 과거 같이 시대에 주요한 이슈가 없어서 아니다. 문제는 현장에 조합원이 노동운동을 뒷받침하고 전체 민중이 투쟁의 동력으로서 스스로 형성되고 있지 못한 상황이지 않을까? 정확히 말해 지역은 사라지고 주체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조합원은 없고 활동가만이 난무하는 시대가 아닌지... 쉽게 분노하고 쉽게 타오지 않았던 그 당시 상황들.... 술 안주 감도 아니요 술자리 입담거리도 아니지만 언제부터 인지 회상을 하면 그 당시를 회고한다. 그래서 괴로울때도 종종 있다. 그 당시 과연 내가 무어라 말 할 수 있을 만큼 치열하였던가? 치열하였다면 지금 시기 난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하는가? 그런 나에 대한 대답들... 결코 무용담으로 이야기하거나 흘려보내지 않으리라는 다짐은 이야기 속에서 변질되고 만다. 아 그ㅤㄸㅒㅤ 나도 그랬지... 쇠파이프를 들고 화염병 들고 희뿌연 체루가스 날리는 거리를 투쟁구호를 외치며 투쟁하였다는 말이 오늘따라 이상하게 다가온다. 그 당시를 나의 진정성은 사라지고 그 행위가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어떤 연휴일까? 난 과연 그 당시와 별반 다르지 않게 사고를 갖고 활동이라는 것을 지향하고 있을까? 생각해 보지만 잘 모르겠다. 과거의 내 이미지가 참 이상하게 다가오고 오늘 무용담 비스무리 한 이야기를 하면서 부끄러웠다. 그런 이야기 하지 않으마 다짐하였지만 그 시대에 기억들을 꺼내면서 난 스스로 그 당시 무엇을 하였다라고 스스름 없이 이야기를 지껄인 것.... 매우 부끄럽다. 현재와 미래를 과거속에서 투영하여 보겠다던 그 포부와 생각들은 어디로 사라지고 그 당시 희뿌연 거리에 서 있는 내자신을 발견하였다. 그 때와 난 다르지 않은데... 왜 난 자꾸 과거라는 이미지에 계속해 빨려들어가고 있는가? 그것이 부끄럽다. 그리고 이 현실을 이끌지 못하고 위기론으로 조장된 현실에 서 있어야 할 내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이 부끄러움이 이제 활동이라는 연으로 이어지기를 다만 바램해 본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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