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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는 현실은

  • 등록일
    2005/02/09 08:19
  • 수정일
    2005/02/09 08:19

* 이 글은 미류님의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글을 읽고 나는 어째서 그렇게 사회적 교섭을 반대하였나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내가 좌파적 지향을 갖고 있어서, 아니면 사회적 교섭이 되면 필연적으로 벌어질 상황이라는 가정 때문에 그러나 아니다.



나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운동은 노동자들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활동이라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세상이 썩어 문드러져도 노동자들이 일어나 세상을 바꿀 수 밖에 없는 필연적 사회라 생각하고 있다. 그 길에 난 맑스-레닌이라는 이론을 옛 선배들로 부터 교육받아왔고, 내가 바라던 바라지 않던 그 안에서 활동이라는 미숙한 행동들을 전개해 왔었다. 나도 어찌 보면 내가 의도하지 않은 길 다른 동아리나 과를 선택하였다면 난 과연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나의 인식의 절반이상은 내가 의도하지 않게 훈련되거나 주입되었지만 난 그걸 거부하지 않고 지금 길을 걸어가고 있다. 내가 훈련받고 주입된 그 활동이라는 과정에서 내가 보아왔던 노동자 민중의 현실을 보아서 일거라 짐작만 해본다.

 

내가 민주노총 대대를 보고 실망한 것은, 아직도 한국내 노동운동이 지도를 획득하지 못하고 주체로서 스스로가 서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감과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운동이 서서히 자주적이지 않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에 실망 또는 좌절이 닿아 있었다.

 

내 주변에 아는 동료들 중에 일부는 부문운동이라는 것을 위해 환경운동연합이나 다른 운동영역에서 시민사회 또는 진보적 단체일을 하는 이도 몇몇 있다. 그러나 그들은 오래 가지 않아 정체성, 생계라는 문제로 자신의 역사에서 운동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지워갔다.

 

내가 운동하는 이유는 정치를 지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조그마한 바램... 세상의 주인은 노동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고, 그들이 역사의 주체로서 주인으로서 정치의 주인으로서 서는 길에 함께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바램은 이전부터 서서히 조금씩 주저하기 시작하였다. 내가 바램하는 것은 큰 것도 아니다. 예전 그 노동자들의 역동성을 보고 싶고 악법철폐라는 단어에도 스스름 없이 머리띠 묶어가며 투쟁의 길로 나서는 그 모습에서 희망을 보아왔다고 본다.

 

그러나 현실은 내가 바램하는데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아니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 현실이 되었다 말해야 겠다. 우린 언젠가부터 대공장 노조의 투쟁에 대해 사회적 파장력과 이슈라는 이유로 모든 단체가 달려들면서 연대투쟁에 적극적으로 매진하였다. 그러나 소규모 중소영세사업장, 장기투쟁사업장 등 단위노조를 견인할 힘조차 버거운 노동자투쟁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였다. 사회적 파장력과 이슈로서 부재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 투쟁이 갖고 있는 사회적 함의가 크지 않아서 그런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우린 매몰차게 그들의 투쟁에 대해서는 외면하였다. 간혹 이러한 중소영세사업장 이나 장기투쟁사업장, 단위가 열악하지만 주체적으로 투쟁하는 곳이 성과가 있어 보이면 머리를 들이밀듯이 달려드는 모습... 하이애나 근성을 발견하고는 소슬아 친다.

 

정작 어려운 시기에는 외면으로 일색하던 곳에서부터의 관심, 씁쓸하다 못해 참 기막힐 때가 많다. 어려울때 도와달라고 절규할때의 모습..... 그러나 이게 내가 보고 있는 현실이다.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생겨나고 사회적으로 민주주의가 확대되었다고 난리 친다. 그래 80년대 그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목청껏 외쳐부르던 그 함성소리와 투쟁소리는 비장함을 주지만, 그 시민사회단체들이 활동하는 범위에는 정작 시민들은 없다. 

 

대의제가 만연한 현실 주인의식이 실종된 현실 그게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활동이라는 틀에서 노동자 민중은 실종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지금에는 활동이라는 공간에서 대중은 조직화의 대상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다. 자신들의 조직적 힘을 얼마나 확신하는지 모르지만, 우리내 96년 학생운동을 붕괴의 일로에 접어들게한 김영삼의 한총련 탄압으로 인한 학생운동의 고립이다. 일명 연세대 사태후 한총련은 대학생들의 대중적 운동으로서 그 조직력과 학생회 장악력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기본 5만동력을 자랑하던 한총련 출범식은 이 이후 1만이 모이기 힘들게 되었다. 그렇다고 한총련만의 문제일까? 아니다 좌파운동을 자임하던 학생정치조직 세력 또한 이로 인해 크나큰 피해를 받았다.  그 당시 한총련 강화를 말하면 우파계 학생운동 세력과 한총련 개혁을 외치던 좌파계 학생운동들의 몰락은 공동의 적의 한총련 탄압으로 일단락 되었다. 공동의 적으로부터 당해야 했던 사항에 공동으로 대처하지 못한데서 오는 무기력함이라 할 것이다.

 

나에게 있어 사회적 합의는 비유하자면 한총련 탄압하던 연세대 사태와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게 한다. 철저히 노-노 갈등으로 부추기며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 언론은 다양한 입장을 내세우며 서서히 목을 조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사회적 교섭이 되었을 때의 큰 문제는 노동운동이 이를 거부할 수 있는 힘 조차 없으면 대의제로 진행해온 대의원들의 결정으로 입게된 타격은 고스란히 조합원들에게 간다는 것이다.

 

그 고통은 민주노총 대대장에서 싸우는 것보다 더 큰 파장력을 갖고 한국 태극기가 나부끼는 곳곳에서 소리소문 없이 서서히 노조를 압박하거나 무기력화 시킬 것이다. 투쟁하는 비정규직노조는 더이상 희망도 없이 자신이 비정규직이라는 현실만을 한탄해야 할 것이다.

모든 내용은 사회적 교섭에서 이루어지고 이에 맞게 비정규직 양산과 정규직 보전이 보장되는 테이블이기에....

 

내가 바라는 세상은 노동자 민중이 웃음을 머금을 수 있는 세상이다, 이 세상도 훈육의 결과이지만, 난 그 훈육의 과정에서 이 길을 위해서는 맑스-레닌주의뿐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훈육은 받고 있지 않지만 맑스-레닌주의는 아직도 유효하다 생각되어진다.

 

한국의 사상계가 춘추전국시대이지만 난 아직도 구좌파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민주노총 대대와 현실 벌어지는 투쟁들은 나로하여금 서글프게 때론 분노를 때로는 고민을 때로는 슬픔을 안겨 준다. 그 길에 노동자 민중들이 없기에.... 노동자 민중에 대한 정치를 보고 싶다는 선언이 아닌 실천이 대동단결이 아닌 일치단결 기치에서 민주의 한길 투쟁의 한길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그러나 이 길은 지금 멀게만 느껴진다. 자본주의하에서 철저히 투쟁의 장이 되어야 할 운동이 투쟁을 외면한 정치일색이라는 현실이 눈물나도록 서럽게 다가온다. 내가 과거라는 망령에 너무 사로잡혀 있지 않나 때론 불안하지만 그 과거엔 최소 진정성과 동지애가 있었다.

끈끈한......

 

간장 오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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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집에 왔다.

  • 등록일
    2005/02/08 14:07
  • 수정일
    2005/02/08 14:07
간만에 집에 왔다. 그런데 방을 빌려준 사람이 전기를 많이 사용했는지 주인이 와서 하는 말 전기세가 장난아니다. 10만원이 넘었다고 한다. 허걱... 그리고 17만원 주고 넣어놓았던 기름(내가 사용을 하면 한 2달간 조금은 춥지만 사용하던 량인데 오늘 보니 한 1/6이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또한 거의 바닥이 나있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먹어야 할 쌀이 있나 보니 쌀은 바닥이 나 있다. 뭐 먹을꺼야 사면 되고 집에 있는 거 또 채워 놓으면 그만이지만... 화장실을 보니 청소가 되어 있지 않고, 좌변기에 있는 물내리는 고리 또한 부러져 있었다. 다른 것은 뭐 내가 돈으로 때우면 되는 것이지만 좌변기가 물내리는 손잡이 파손과 지저분해져 좌변기 주변을 보고 있자니 조금 기분이 않좋다. 파손 이유에 대해 내가 잘 모르고 혹시 어떠한 경유와 이유가 있었겠지만 조금만 신경을 쓰거나 주의를 하였으면 파손이 되지 않는 물건인데... 사정이 있겠지만 내 물건이 아닌 물건(이사갈때 고스란히 보전되어야 할 집안 물건)이 파손되어 있는 것은 조금 불편하게 다가왔다.


또한 난 사정전후를 따지지 않고 가급적이면 도움이 되고자 집에다 갖은 농을 다쳐 놓고 이야기하고 나서야 집을 할 수 있게 허락을 받았는데... 사정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갖은 거짓말이 들켰다. 서운하다. 그냥 아는 선배라하면 될 것을... 그러면 뒷 탈이 없었을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누군가의 소개를 받고 이 집을 이용하게 되었다고 말하였나 보다. 당장 내쫓으라는 호통과 불호령이 떨어졌다. 겨울인데... 겨울을 떠나 알지 못하는 사람을 집에 들여 놓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않던 집은 나에게 구정이 지나면 나가라고 이야기 하란다.(겨울이라 미안하지만 내깐에는 최선을 다했다. 아무런 탈이 없도록 내가 조치한 것에 대해 이야기 못한 잘못은 있지만, 그래도 암면 몰수하고 이야기를 해야겠다. 알지못하는 사람이라는 이유가 큰 것 같았다. 난 대부/모를 설득하여서 집을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하였고, 정확히 학교 선배라는 거짓말을 하고 방 쓰는 것을 집으로부터 동의를 얻었다. 그러나 내가 거짓말을 하였으니 그 말은 신용이 떨어졌다. 내가 없는 대모(키워주신 어머니)가 은평구 대조동 집과 은평구 신사동 집이 빠졌는지 확인차 집에 왔고 물어보니 아니였기에 난 더이상 할 말이 없다. 집 사용에 대해서 꺼림직하게 생각하는 집안에서 허락을 받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보통 쉽지 않다. 집에서는 내가 나쁜 놈으로 몰렸다. 내깐에는 내집에 아무도 없으니 아는 분의 부탁도 있고 그분이 이 겨울 직장 구해서 취직할때까지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 못할 것 같다. 일단 내가 거짓말 할 것에 대해 크게 분노하고 있고, 내가 설득할 만한 명분이 없다. 어렵지만 집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서는 내가 알지도 못하고 이전 사무실에서 같이 일하였던 분의 부탁 집에 비워져 있으니 조금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을 해주기에 나는 그와 같이 할 수 박에 없었다. 나의 합리화 일 수 있지만 내가 할 말을 웃어넘기고 그렇다고 해주었으면 될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와 같은 일을 하기 위해서 세상에는 거짓말을 하는 이들이 별로 없나보다. 내가 나쁜 놈인가? 쉬운 문제였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 으름장을 놓았으니 나도 수가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서울로 학교다닐 친적 조카에게 이집을 임대해 준단다....) 미안하지만 정황을 이야기 해주고 말씀드려야 겠다. 신년부터 일이 꼬인다. 에라 모르겠다 제사 준비나 해야겠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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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솜교회 역사와 창립일....

  • 등록일
    2005/02/06 21:58
  • 수정일
    2005/02/06 21:58
오늘 다솜교회의 창립일... 정확히 말해서는 1991년 2월 9일이니까? 3일을 더 지나야 다솜교회 14주년이다. 처음 다솜교회를 개척하고 지금까지 다솜교회를 유지할 수 있는 바탕을 쌓아놓고 가신 이전 담임목사님이 다솜교회 역사를 이야기 하기 위해서 낮에 짧은 설교와 오후 간담회 이야기 자리를 가졌다. 개척하신 목사님의 말 속에 뼈대가 속속 깊이 배겨 있었다. 신도를 다른 교회에 알려주는 목사... 개척을 하지만 제대로 된 민중교회를 실현하기 위해 활동가들과 함께 만나면서 이야기를 하고 그 바탕과 뼈대를 함께 개척한 목사님의 말속에서... 민중교회의 뜻이 속 깊이 배여 있었다.


아무리 신도가 많아도 민중교회에 걸맞는 신도이여야 하며, 그 민중교회의 뼈대에는 교회에서 신앙공동체로 모인 신도와 그렇지 않고 어려움 사람과 나눔을 실행하거나 사회의 불의에 저항하며 투쟁하는 동지들이 함께 어울리는 활동가들이 다 교인이라는 말... 교회는 신앙의 틀에서 믿음으로 모인 사람과 신앙이 아닌 사회적 정의와 사회변혁을 꿈꾸는 이들 또한 신앙은 아니지만 그 사람들이 교회가 갖는 사회에서의 정의와 나눔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데 일조한다는 말.... 그래 교회는 누구나 올 수 있으며, 장로는 교회의 신앙으로 판단하여서는 안된다는 말.... 교인은 아니지만 교회를 일상적으로 들리며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활동가들 또한 외부장로라는 말, 외부 집사요 권사라는 말에서 그래 민중교회가 추구하는 것은 십자가를 하늘 높이 치솟아 하늘과 맞닿으려는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누구나 교회에서 와서 안식과 휴식을 취하고 지역에 뜻있는 일에 나서며 불의와 맞서 싸우는 것... 모두가 예수라는 말..... 이 말이 머리 속에 각인되었다. 다솜교회의 역사... 개척할 당시... 200만원으로 남촌동에 있는 지금은 세탁소 자리가 된 7평 남짖한 공간에서 처음 지역아이들과 노는 공부방으로 출발하여, 지역 도서관, 지역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사랑방으로 2년간 활동하고 한 7개월 동안은 지역사업을 하기 위한 방도를 마련하고 기틀을 어느정도 닦아놓고 91년 2월 8일 처음으로 예배를 드렸다는 말을 들으면서 신앙과 목사의 설교는 지역사람들과의 대화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그리고 2년간의 생활후 2000만원에 월세 35만원의 공간으로 이사를 하여 지역사람들의 사랑방 그리고 이야기를 하는 장소로 논의를 하던 장소... 민주노조운동이 한창인 시기였던 당시 노조와 지역사람들과 지역운동을 하기 위해 뜻과 결의를 모아 함께 어울렸던 이야기들... 그래서 지금까지 그 인연으로 오늘 전 담임목사님이 주례를 섰던 당사자가 와서 과거를 회상하게 하는 이야기들이 흐뭇하게 다가왔다. 떠났지만 인연으로 만남이 이어지고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 하면서 그 당시 추억이라 말하며 서로가 삶에서 결코 잊지 못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는 느낌들... 나는 과연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던 이야기들.... 어려움들... 지나니 추억으로 좋았다는 그 너그러움 또한 그 고단한 생할이 지금 삶의 지탱몫이요 삶의 뼈대이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지 안을까? 생각해 보았다. 이후에도 다솜교회는 신도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신도가 아닌 사람들이 사랑방이라는 이름으로 지역과 함께 지역민과 함께 세상을 향한 활시위를 하는 곳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보았다. 그 길에 나도 일조하였으면 좋겠다. 이제 몇년 후인 다솜교회 20년 기념때 나도 그 역사에서 무어라 말할 수 있고, 무어라 함께 하였다고 그 자리에서 그 일을 계속하기를 소망해 본다. 난 이 곳에서 일을 하고 50대 중반 산사가 있는 고즈넉한 마을에 내려가 산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문듯 가져보았다. 산에서 혼자 산을 벗삼아 살아가는 것도 참 좋을 것 같다. 동물들을 벗삼거나 자식으로 삶아서 살아가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라 생각되어진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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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 간다.

  • 등록일
    2005/02/05 23:17
  • 수정일
    2005/02/05 23:17
일년에 한번씩은 꼭 갔던 지리산에 작년에 가지 못하였다. 올해 들어 종주 코스는 아니지만 삼정리에서 군사도로를 거닐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흐뭇하고 기대가 된다. 언제나 기대가 되고 실망을 안겨주지 않던 지리산.... 어머니의 따스한 품속같은 넉넉함이 그리워 진다. 드디어 다음주 금요일.... 지리산아 기달려라 내가 간다. 늘 화엄사에서 종주시작하면 첫박을 하였던 벽소령도 산장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뭐 변해있을게 뭐 있겠나... 흰눈에 쌓여있거나 아니면 운해에 뒤덮여 있지만 않으면 하늘에서 떨어질 듯 매달린 별들이 기대가 된다. 늘 지리산은 나에게 일출을 선사였다. 이번에도 일출 광경과 반대편 운해 쇼와 그리고 온통 백색으로 수놓은 산세를 생각하니 설레임이 앞선다. 지리산 천왕봉은 정상에 오르면 조금 실망스럽다 동네 뒷동산 돌무덤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이.... 그래도 그 곳에서 내려다볼 중봉쪽인 치발목산장 쪽을 보면 뽀죡뽀죡 험한 산세를 보이는데 사람들이 올라오는 풍경 참 희안하게 다가온다.


천천히 걸으면서 볼 산세의 웅장함 보일듯 보일듯 정상을 보여주지 않는 산.... 그리고 휴식하면서 먹을 것들... 걸으면서 느낄 여유.... 그래서 산은 걸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늘 주변에 나 있던 감탄할 것들을 구경하면서 올라간다. 이번엔 화엄사에 나 있는 길을 걷지 않아 아쉽지만... 그래도 군사도로를 걸으면서 쉬엄쉬엄 올라가고.... 벽소령에서 선비샘으로 그리고 촛대봉이 있는 세석산장.... 촛대봉에 걸쳐 있을 달을 생각만 해도 기대가 된다. 매섭게 불어올 바람이 조금 걱정스럽지만... 그래도 흰눈 위를 사뿐히 걸어서 다닐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다. 올해 들어 눈다운 눈을 산 아래동네에서 구경하지 못하였는데 지리산에서 설경을 흠뻑 느끼고 올 수 있을 것 같다. 남쪽지방 눈이 많이 왔다고 하니 야간 산행하는 것도 부담이 덜하다. 눈이 쌓여 있지 않으면 야간산행할때 걷는게 문제인데... 그나마 눈이 소복히 쌓여 있어 발목의 압박은 덜 할 것이고, 누군가 내놓은 발자국을 따라 솜사탕 위를 걷는 기분으로 사뿐히 사뿐히 눈길을 즈려밟고 가야 한다니 마냥 기분이 좋다. 이전에 있던 마천행 동서울 직통 고속은 없어졌나 보다. 마천에서 먹었던 토종돼지 집은 그대로 있으려나 2003년 1월하고도 하루 지난 날 하산하고 난 후 먹었던 맛깔스러운 그 집에서 국밥 아니면 고기에 소주한잔 먹었던 기억을 되뇌이니 군침이 돈다. 삼정리.... 지리산 반달곰이 자주 출몰하여 벌꿀 통을 훔쳐먹어 양봉을 하는분이 고생하였다는 곳에는 아직도 양봉하는 벌꿀통은 그래도 있으려나... 산에서 만날 산사람들도 그리워 진다. 걸으면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수고하세요.,..말하면서 지나치면서 거닐 것을 생각하니 흐뭇하기만 하다. 사람내음에 흠뻑 빠져 들었다 와야 겠다... 지리산에선 밥은 굶지 않는다. 각양각색의 사람 2002년도 부산에서 왔다는 사람은 지리산에서 직접 해물탕이 먹고 싶다고 해물탕을 가져와 끓여서 나누어 주었던 기역.... 훈제치킨을 가져와 먹던 어느 젊은 부부.... 그리고 무엇보다 하산길인데 김치를 준 이들... 넉넉함과 나눔이 있어 좋다. 그러나 늘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술이였다. 산장에서 사야할 술의 비용은 보통 소주팩이 7천원, 병소주 8천원, 그리고 초쿄파이 12개 만원.,.. 쵸코파이와 귤은 많이 가져올 수록 좋다. 걷다 쉴때 쉽게 먹을 수 있는 먹거리이기 때문이다. 먹을 것은 가면서 없어지는 것이니 별 문제 없다. 그리고 산에서 먹을 라면을 생각해도 군침이 돌고 커피를 생각하니 따뜻함이 다가오고, 귤을 먹을 생각을 하니 시원함과 갈증 해소가 생각나고, 산장을 생각하니 오손도손 종기종기 산장 식사를 하는 취사실에서 볼 사람들의 정겨운 웃음 술잔을 나누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무엇보다 하늘에 별들이 매달린 모습이 기대된다. 아래세상에서 도통 볼 수 없던 별들이 자신의 자태를 서로서로 뽑내며.... 쌀가마니의 깨알 처럼 흩어져 있는 알갱이를 벗삼아 먹을 사탕들... 하하.... 그냥 정겹고 기대가 된다. 좀 걱정도 되지만 조금 일찍 출발해서 벽소령에서 몸에 영양분을 흠뻑넣고 조금 반주로 술먹고 거닐생각을 하니 흐뭇하다. 벽소령에서 한 2시간 30분 걸으면 나올 세석산장이 위치한 세석평전도 기대가된다. 세석평전은 5월 중순에 오면 정말 광경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진풍경이다. 어느 산보다 아름답게 수놓은 철쭉들.... 소백산... 태백산 등의 철쭉이 이ㅤㅃㅡㄷ다고 하지만 지리산 세석평전만은 못하다.... 5월에도 철쭉 보러 와야 겠다. 4월에는 또 소백산 종주를 하고... 소백산도 참 걷기도 편하고 쉬엄쉬엄 가기도 좋다. 무엇보다 종주후에 죽령주막에서 맛볼 수 있는 동동주와 감자전에 도토리묵이 일품이다. 그리고 소백산 정상 대피소에서 끓여먹는 라면에 소주한잔.... 넘 잊을 수 없다. 산세 또한 수려하여 감탄사 연발.... 풍기역에서 비로사 입구까지 걷는 길 또한 도로이지만 트레킹하기 좋다. 한 시간 반경을 걸으면 좋다. 2월 11일 설레이는 마음으로 지리산을 기다려본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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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산오리] 악법철폐! 민주노조 총단결!

  • 등록일
    2005/02/05 12:42
  • 수정일
    2005/02/05 12:42
저들은 우리 갈 길을 다 막아도 저들의 폭력이 천지를 덮어도 천리 길을 마다 않고 우리는 달려왔고 메새운 강바람도 물리치고 우리들 모였고 쉰 목리 터져라 우리는 외쳤다. 악법철폐! 총단결 총투쟁!!


21년전 앞서간 전태일 형을 만났고 밝혀도 다시 일어서는 동지들을 만났고 사람 사는 세상이 사람을 만났고 노동해방 세상의 노동자를 만났다 악법철폐! 민주노조 총단결! 우리는 비로소 멈추고 않고 달려가야 할 길을 찾았고 이 길을 향한 뜨거운 눈빛을 보았다 억센 팔뚝을 함께 걷었다 그리고 우리는 간다 악법철폐! 노동해방! * 91년 전국노동자 대회의 주요 이슈는 '악법철폐'였다 산오리님이 주신 "수돗물로 오는 봄" 중에서.... 간장 오타맨이.... p.s 민주노총 대대를 보면서 위에 글을 되뇌여 본다. 과연 91년도 산오리님 시집에 나온 91년 전국노동자대회 주요 이슈에 대한 회상을 할까? 사회적 교섭은 우리에게 악법이며, 민주노조 총단결이 주요한 화두이다. 100% 아니지만 전체조합원의 총의가 모아진 결의로 사회적 교섭안은 부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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