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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5/01/22
    축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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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은 존재를 규정한다.

  • 등록일
    2005/01/28 23:59
  • 수정일
    2005/01/28 23:59
* 이 글은 미류님의 [붉은 사랑] 에 관련된 글입니다.

의식은 존재를 규정한다의 말처럼... 무수한 사랑 그리고 만남에 대한 이야기들... 순간에 대한 집착인지 모르겠지만 함께할때의 기쁨은 떨어지면서 잊혀짐의 슬픔으로 기억되는 것이 인간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추억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마도 그 당시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랑도 마찬가지 인것 같다. 인간사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만남이라는 과정에서의 친근감이 때로는 신뢰로 때로는 사랑으로 번지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사에서 당여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의식은 시간이라는 한정속에서 열정/기쁨/슬픔/고통 등 인간사의 기쁨에서 고통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연속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내 어르신들은 이웃사촌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난 그렇다. 사랑이라는 감정 또한 교육되고 훈련된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게 한다는 말로 번지는 것은 아닌지... 나에게 있어 사랑은 정형화 되어져 있다. 순애보와 같은 사랑을 갈망하지만 난 그렇지 못하다. 나에게 있어서 예전에도 그 이전에도 사랑은 사치에 지나지 않았다. 좋아하는 감정은 늘 억제하여야할 기폭제였던 것이다. 감정이 생기면 이를 수습하게에 급급해야 했던 내 20대.... 그렇지만 이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내 생애에서 사랑은 고통을 야기시키는 연속이라는 기억의 조각이 있기 때문일까? 오늘 그냥 생각나는데로 내 정리되지 않은 것들.... 교육되어진 사랑의 이미지들에 대한 나의 환상이 깨어지는 날 나는 사랑이라는 의미에 대해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이라는 말은 나에게 있어 남들과 다르게 10대의 사춘기와 20대 열병을 알았던 이들과 다르게 작용한 것 같다. 난 이성간에 대한 사랑은 없지만 내가 동경해야될 사랑을 배웠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난 내 인식속 깊이 이성간의 사랑이라는 것은 나에게 있어 이미화 되어있는 박재된 것이라 생각해 보았다. 블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횡수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이성간의 사랑은 분명 한쪽의 희생을 강요하는 수단이라 생각하고 있다. 지금도 그럴꺼구 앞으로도 그럴꺼다. 나에게 있어 혼자란 자유이며, 세상에 대한 사랑을 배워가는 생활이다. 난 혼자가 좋다. 무엇이든 할 수 있어서.... 이성간의 사랑은 나에게 있어서 귀찮음이며, 시간낭비라 난 아직도 사고하고 있다. 그래서 혼자 살기위한 연습에 충실하기 위한 노력들... 내가 필요한 가사노동들을 배워나가고 있다. 남들은 이후 늙으면 외롭다고 이야기 하지만 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교육된 이미지들의 충돌에서 사랑은 정형화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사랑은 다양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내면 깊숙히 들어 있는 것들은 드라마 그리고 사회라는 이미지들에 의해 다들 동일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것은 사회 문화적으로 차등되지 않을까? 라는 가져본다. 사랑은 동일하다. 그러나 사랑을 하는 주체들의 행동들은 다양하지만 문화적 다양성과 사회라는 보이지 않는 교육적 이미지가 작동하는 것 같다. 사회적 분위기 또한 그렇구.... 간장 오타맨이... p.s 내가 말해도 뭔말인지 모르겠다. 그냥 손이 가는데로 써내려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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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들다.

  • 등록일
    2005/01/28 23:24
  • 수정일
    2005/01/28 23:24
오산역 광장에서 오늘 오산민주단체 연석회의에서 처음으로 촛불문화제를 하였다. 오산역에 전철이 개통되고 시민들이 오고가는 발걸음이 많아진 지금.... 촛불문화제를 개최한 것은 이제 오산역 광장을 민주광장으로 만드는 발판의 시발이라 할 수 있다. 40여명이 모여 오산시장 퇴진과 오산지역 민주화를 위한 투쟁을 시작한 지금... 이 투쟁이 비록 지역운동이 꺼져가고 어려움으로 힘들지만 희망을 싹튀우는 발판이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의 촛불 작은 시작이지만 큰 희망을 불기둥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시작은 비록 작고 볼품이 없지만 이후 창대해 지기를 빌어본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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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권을 말한 적이 있다.

  • 등록일
    2005/01/28 23:11
  • 수정일
    2005/01/28 23:11
* 이 글은 미류님의 [한숨을 내쉬며 환호를 예감하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내가 정보통신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00년도 8월이다. 그 7월 난 노동넷에서 운 좋게 상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이 덕에 진보넷에 있는 정책팀에서 내가 존경할 만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처음 시작한 정보통신운동은 제2의 국가보안법이라고 명명하면 법 도입을 저지하려 했던 통신질서확립법(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이라는 법에 대한 관련 활동이었다.(진보넷에서 난 다양한 시각들을 많이 제공받고 도움을 받아 노동넷이라는 활동을 그나마 수행할 수 있었다. 진보넷이 없었다면 내가 노동넷이라는 공간에서 무엇을 하였을까? 생가하면 지금도 아찔한 생각이 든다. 몰랐지만 자세히 가르쳐주면 손을 내밀 진보넷 정책팀의 동지는 그래서 늘 고맙게 생각하고 나의 스승이라 생각한다. 늘 운동주제가 있으면 같이 하자고 제안해 주었고 함께 넣어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했던 기억들...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활동이라는 것을 할 수 있게 토양과 비료를 제공해준 진보넷 정책팀 활동가는 내 30대에 있어 나의 운동을 풍요롭게 이끌어 주었던 동지이자 스승이었다. 늘 가슴속 한켠 고마움을 느끼고 살아간다. 아무것도 모르더라도 활동을 위해 배려하고 상세히 알려준 그 동지에게 고마운 마음을 이루말할 수 없다. 내 인생에 있어 진보넷에서 손을 내밀어 주고 함께 하게 해준것은 30대 행운이요. 횡재였다.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진보넷이 늘 발전하기를 내 마음속 한켠 늘 염원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표현의 자유 운동을 하였다. 이를 통해 지인들 그리고 많은 활동가들과 참 즐거운 활동을 하였고 진지한 이야기(나만 그랬나....^^)도 많이 하였다. 공동행동을 타이틀을 걸고 어렵지만 우리 활동을 1년이 조금넘게 하였고 현재는 인터넷검열반대 공대위라는 명칭으로 그 활동의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여기서 난 낮은 이해와 인식의 부재로 표현의 자유 운동을 미국 시민사회중심의 자유원 운동이라 규정하면서 그 운동의 유의미성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차원에서 뻘소리를 지껄였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유럽중심의 사회권 투쟁을 강화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갖자고 한 적이 있다. 내 중심성도 노동운동의 골간을 하다보니 인권의 여러 권역에 대한 이해 없이 쉽게 내뱉는 그 말들을 지금 생각할 때면 참 내자신이 오만하였음을 뒤늦은 후에야 인식을 하고 있다. 알지도 못하면서 떠는다는 것은 참 무식을 자랑하는 일임을 조금 지나서야 알았으니... 얼마나 한심했던가? 지금도 간혹 그 이야기를 하였던 당시를 회상하면 창피해서 얼굴을 들기가 어렵다. 저작권법이 문제가 되고 있는 지금 자유권이라는 영역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개인주의라는 코드가 사회에서 보편 타당성을 부여받고 있지 못하고 개인주의=개인사로 인식되는 그 어려움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집단주의=전체주의=대중주의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이 사회에선 독립된 개인은 개인일 뿐이라로 치부한다. 그러나 아이러니칼 하게도 우리내 쉽게 동지가 정치의 주체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지만 정작 노동사회진영에서 이를 용인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사회권의 확장... 부문운동의 확장은 사회권의 확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자유권과 사회권은 분명 중요한 것이지만... 내가 인식하고 판단함에 있어서 자유권=개인주의와 사회권=포플리즘(인민주의)로 사회 저변에서 인식하고 있지 않은지에 대한 생각을 가져본다. 이 말이 맞지 않을 수 있지만 단편적으로 내가 느낀 노동사회운동진영의 분위기가 그렇지 않았는지 생각이 된다. 모든 운동은 대중투쟁으로 귀결되었을때만이 큰 판이라 치부하는 집회문화 또한 이러한 측면에서 기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너무 단편적인가? 다양화 되어지고 파편화 되어지고 있는 지금 소소한 일상이 곧 운동이라 말하는 시민사회들을 보면 이러한 조화를 전술과 전략으로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아직 노동운동진영은 과거의 방식의 틀을 벗어던지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사회권에 대한 문제에 대해 시민사회에서 잘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 또한 문제이다. 이슈 화이팅이라 시기집중성 투쟁에서 사회권 영역에 대해 공대위를 구성하거나 노동운동차원에서 투쟁을 전개하지만 이러한 유의미성들은 일회성으로 그치거나 사안별 투쟁이라는 틀에서 생성 소멸을 반복한다.(이런 문제는 실력과 연구과제에 대한 장기적 계획 그리고 투쟁이 장기적 계획속에 수립되기 보다 사안의 급박성으로 형성되기에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결코 쉽게 대응할 수 없는 여러 투쟁들은 우린 단위노조의 조직력과 투쟁으로 가늠하고 집행하거나 아니면 총파업 투쟁을 전술로 배치하여 전략으로 교섭으로 마무리한다. 결코 이래서는 안되는 사회권...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를 우리는 전술은 투쟁이고 전략은 교섭이라는 형태로 쉽게 쉽게 가져갔다. 공공3사의 파업과 그 뒤 우리내 문제... 공공영역 확대와 공기업 민영화 반대 등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에 대한 대응들이 수많이 제기되었고 상정되고 토의되었다. 그러나 한결 이 논의와 투쟁들은 단사 개인의 판단과 총연맹의 교섭전략으로서 유의미한 투쟁기록만 남기고 서서히 시간의 흐름 속에 뭍혀지나가고 있다. 그렇다고 그 투쟁들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 이후의 대응이 빈약하다는 것이다. 총파업 투쟁 노동시장 유연화 저지... 사유화.. 공공영역 사회화의 문구가 난무하지만 이 문구들은 문구로서 그 친다. 조직별로 이에 대한 해석들은 나오지만 현장에서는 구호로 뭍힌다. 그런데 이러한 판에서 아일랜드식 노사 사회적 합의. 스웨덴식 북유럽 노동운동의 사회적 합의주의 등이 우리의 운동의 테재로 채택될 움직임이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민주노총 대의원들 중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에 동조하여 노동운동을 사회적 합의로 이끌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 결과는 이번 2월 1일 개최되는 민주노총 대대가 판단할 문제로 상정한 안건에서도 여실히 들어나고 있다. 노동운동에서 사회권 영역이 보장되지 않고 있고, 이러한 사회적 합의는 일방적 노동자들에 대한 양보와 노동시장 불안정성을 확대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활동가들에서도 이 안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고 민주노총 대의원 표결로 밀어붙쳤을때는 사회적 합의를 위한 활동을 한다는 것에 대해 불안감이 밀려온다. 우리가 언제 사회적 합의로 노동운동을 진행하였단 말인가? 전노협 정신이란 무엇이었던가? 난 전노협 정신은 악법은 어겨서 깨트린다는 말이 우리내 기풍과 활동이지 않았던가? 이렇게 노조 때리기에 수세적으로 당하고 있어야 하는 것도 속이 아프게 절여오는데 이러한 내부에서 정부와 사회적 합의를 위한 움직임을 한다는 것은 나로선 도저히 납득이 안간다. 이에 대한 조합원의 총의를 한번이라도 지도부는 받아내고자 했는지.... 사회권이라는 영역에 대한 제대로 된 투쟁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지... 노동운동이 이벤트 기획사가 아닌 이상 이러한 발상이 나온다는 것은 나로선 납득이 안간다. 상식이하이다. 어떠한 여파가 올지에 대한 분석이나 판단 없이 시대적 대세이고 결코 회피할 수 없는 조직적 상황으로 우리 이후 노동운동과 노조운동의 향방을 집행을 책임지는 사람이 쉽게 표결로서 끝낸다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다수의 폭력이라는 함정에 우리 스스로가 빠져드는 것은 아닌가? 더욱이 사회권이 쪼그라 들고 민영화하는 것이 대세인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잠시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난 사회권이라는 말에 대해 사전적 의미를 찾아 보았으나 우리 사회에서 사회권은 도입도 구축도 된적이 없다고 본다. 김대중정부가 들어서면서 민주정부라는 슬로권에서 군사독재정권과 다르게 조금의 자유권만을 부여했지 노동자 민중들에게 철저히 사회권은 정부가 통제하는 수단의 기폭제로 사용하고 있다 생각해 보았다. 글을 쓰다보니 이리저리 글이 샛길로 빠졌지만 나의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그냥 끌적여 보았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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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자동차노조 때리기....

  • 등록일
    2005/01/28 22:19
  • 수정일
    2005/01/28 22:19
언론이 노조 사냥을 시작하였다. 일주일간 방송에서 기아자동차 사태와 관련하여 연일 보도를 하고 있다. 기자들은 노조에 대한 이해 기아자동차의 사태를 전체 노동운동으로 확산시키려는 보도로 노동운동 전반을 흔들고 있다. 기아자동차 노동조합 광주지부 간부의 입사 뇌물 사건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입이 열개라도 할말은 없는 사건이다. 그러나 언론이 기아자동차 노동조합 광주지부 집행부 뇌물사건을 빌미로 전체 노동운동을 도매급으로 모는 것은 분명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이자 노동운동을 죽이기 위한 행위이다. 과연 노동운동이 전체적으로 썩었는가?


나는 결코 노동운동이 썩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기아자동차 광주지부의 문제가 그렇다고 결코 개인적 문제라 보지 않는다. 이 문제를 통해 우리 스스로가 얼마나 이런 유혹에 쉽게 노출되어 있는지를 인식하고 이에 대한 노동운동 차원에서 전체적 해결에 대한 고민들이 이루어져야 한다. 기아자동차 광주지부 간부에 대한 진상조사를 민주노총 차원에서 이루어졌으면 한다. 이에 대한 재발 방지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자구노력의 일환으로.... 오늘 9시 메인뉴스에서 87년 현대중공업 노동자대투쟁, 90년 전노협 건설 화면을 뉴스 메인화면에 뛰우면서 노동운동이 과거에 비해 사회적 역활을 못하고 있고, 기아자동차 광주지부 간부의 사건을 노동운동 전반에 만연 되어 있다는 식의 호도는 언론 자신이 스스로 언약한 사회적 매체로서의 언론의 기능을 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태도이다. 노동운동이 87년과 90년 중후반까지 활동에 대해 언론은 어떠한 입장을 취하였던가? 이에 대한 반성을 하기는 커녕 또 과거의 구태의연한 노동조합 죽이기에 선봉에 서고 있음이 치를 떨게한다. 그 기자들은 무엇을 보고 전체 노동운동을 도매급으로 모는가? 왜 한 단사의 문제를 갖고 전체 노동운동을 이야기하는가? 자신의 밥그릇이 위태할때나 언론민주화를 위한 투쟁을 하였던 언론노동자의 정신은 어디로 갔는가? 자신과 다를바 없는 노동자들의 정서이다. 대공장 노조에서 이러한 비리 문제가 만연 되어 있다는 카더라 통신이 난무하고 있다. 사실을 확인하기 이전 이러한 카더라 통신은 죽이기 위한 루머를 넘어 거짓은 언론이라는 보도를 통해 사실로 만들어진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언론이 만든 거짓이 사실이 되는 것은 참 우끼는 일이다. 이러한 일에 노동운동에서 자신의 반성과 더불어 사실을 알리는 작업이 더욱더 중요하다 생각한다. 그러나 안으로 수축하고 내부에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는 것 또한 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언론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하고 사과할 것은 분명 사과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는가? 기아자동차 광주지부 뇌물 수수사건으로 왜 노동운동 전체가 욕을 먹고 도매급으로 부패한 자로 낙인찍히는 언론의 호도를 받아야 하는가? 나는 아직도 우리 노동운동 언론에 보도될 만큼은 아니다라 난 생각한다. 언론의 보도가 불만스러워 횡수를 끌적여 보았다. 자신에게 철저한 비판을 가하고 조직발전에 대한 고민을 하고 전체 노동운동의 소식들을 다양하게 펼칠 수 있는 노동운동의 언론이 그래서 필요하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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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열리는 사랑방

  • 등록일
    2005/01/26 14:39
  • 수정일
    2005/01/26 14:39
오산에 내려와 부쩍 말 수가 늘었다. 이전 글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는게 주였다면 오산에 내려와서는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이 늘어났다. 참 정겨운 일이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지 않고 혼자 고민만하고 혼자 살아왔던 나에게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정겨운 일이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후 저녁 사무실에 도란도란 모여 앉아서 하는 이야기들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이야기들이다.


누군가의 삶을 훔쳐본다는 것은 어렵지만 서로간의 연대와 인간적 유대를 강화하는 좋은 수단이다. 자신의 역사에 대해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며 판단이 오고가는 이야기 자리... 올바름이 자리하기 이전 서로간을 알아나갈 수 있고 서로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거울 같은 이야기들... 나 자신과 대화에 익숙한 나로서는 이 이야기들 속에 내가 얼마나 나를 중심으로 나의 세계에 갖혀 살았음을 발견한다. 저녁이 기다려진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로 하루를 정리할까 매일 기대가 되는 시간.... 일 속에서 노동의 중요성을 발견하고 그 발견을 삶으로 이어나가고 운동으로 치환하기 위한 이야기... 그런 사랑방이 나를 풍요롭게 한다. 혼자 고민해야 했고, 혼자만을 위해 살아온 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서툴거나 관계 맺기를 잘 못하던 나에게 있어 사랑방... 아니 다솜공동체는 비를 피하고 안식을 취하는 공간에서 이제 삶의 공간으로 다가오고 있다. 늦은 저녁 소주 한병 가지고 새벽 4시까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행위인가? 내가 이 공간에 귀거해서 이야기 자리가 열리는 것인지.. 아니면 이전부터 계속되어왔던 이야기인지... 잘 모르지만 그래도 이 자리에서 오간 이야기... 이야기라 하기엔 좀 진지하고 따스한 말들이 삶에 자신감을 준다. 난 이런 곳에서 부자로 살아가고 있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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