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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09/26
    [시/안윤길] 어머니와 밥그릇
    간장 오타맨...
  2. 2004/09/26
    잠에서 깨어....
    간장 오타맨...
  3. 2004/09/25
    [시/김영랑]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간장 오타맨...
  4. 2004/09/25
    송별회를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간장 오타맨...
  5. 2004/09/25
    어제....
    간장 오타맨...

일요일 풍경...

  • 등록일
    2004/09/12 10:41
  • 수정일
    2004/09/12 10:41

오늘은 주일입니다.

오산 다솜 공부방(놀이방, 이주노동자센터, 교회-대한예수교 장로회, 노동문화센터)이 함께 있습니다. 3층 공부방에서 오산시내 전경을 바라보면, 많은 십자가들이 보입니다. 오산에도 어김없이 예수를 찬양하는 기독교인들이 그 만큼 많다는 이야기이겠지요.

 

그러나 오산 교회와 다른 풍경이겠지요.

그들의 기도는 이 곳 아이들의 소원과는 다를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들 자신의 가족, 자신의 행복,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만 기도를 하겠지요. 그러나 이 곳에 있는 아이들의 기도는 다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서로 다른 아이들의 기도와 소망이 오늘 하늘에 닿아 이루어지기를 저도 교인은 아니지만 바램해 봅니다.



 

교회가 성전이 된 요즘... 과연 예수님이 이땅에 와서 무엇을 하셨을까... 미륵부처는 언제 구원을 위해 중생에게 내려올까, 알라신은 언제 이 땅에 평화의 축복을 내려 줄까... 하느님은 이 지구를 왜 창조하셨을까 라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오늘 그들의 소원이 하늘에 닿는 날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일주일 자신의 행동에 대해 돌아보고 반성할 일이 있으면 반성을 하며, 보다 낳은 주일을 맞이하는 오늘.... 한주의 시작에서 좋은 일만이 충만하기를 교인이 아닌 저는 바램합니다.

 

저는 천당과 지옥이 있는지 확신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세상이 천당이고 지옥이라 생각합니다. 천당과 지옥의 구분은 자본주의 우상인 재력의 많고 적음이 기준이되며, 이 재력은 권력과 유착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는 주요한 수단입니다.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이에겐 이도 꿈만 같은 일입니다.

 

과거에는 "개천에서 용난다"라는 말은 노력과 땀을 통해 성공을 꿈꾸는 이에게 가능한 일이였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고착된 지금... 개천에서 용난다가 아니라 개천에서 가난한 이들이 양산된다라는 말이 맞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진 것 없으면, 가난이 되물림되는 시대를 우린 맞이 하였습니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못한다는 말 또한 옛날 일이 되었습니다. 재력이 많아도 나눠가지고자 하는 이가 없어진 지금.... 가난은 이제 나랏님이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으로 치환되어졌다 생각듭니다.

 

이 곳 오산.... 가난하지만 행복한 아이들이라고 저는 말하지 않습니다. 가난은 정말 치욕적인 것이 되어버렸기에... 가난하기에... 가정이 불완전하기에... 친구들로 부터 소외받는 아이들... 그들에게 이 사회는 정말 견디히 힘든 고통의 굴레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의 굴레에서 아이들이 자신의 인생을 빛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신이 있다면 이 아이들에게 행복은 주지 못하나 인생을 통해 한 사회인으로서 자신의 개척해 나아갈 지혜를 가져다 주기를 예수님,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께 간청드립니다. 신이시여 이들에게 인생의 긴 여로를 해처나갈 지혜와 용기를 주옵소서... 그들이 이 험난한 세상에 한 인간으로 살아나 갈 수 있는 광명의 빛을 주옵소서... 신이시여 이들이 지치고 쓰러질때 함께 있어줄 벗들이 있게 하오주옵소서... 오늘 신이 있다면 진심어린 마음으로 이 곳 아이들을 위해 내 소원을 빌어 보았습니다.

 

저는 무신론자이지만 이들에게 신이 있다면 이런 용기와 지혜... 그리고 가난하지만 더불어 살아갈 착한 마음과 더불어 살아나갈 넉넉한 가슴을 가진 이들로 살아나가길 바랍니다. 가난이 결코 불행한 것이 아님을 알아나갔으면 합니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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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90여곳 “쌀개방 말라” 함성

  • 등록일
    2004/09/11 08:06
  • 수정일
    2004/09/11 08:06

이경해씨 사망 1주기를 맞아 전국에서 농민집회가 열린 10일 오후 경기도 여주군 공설운동장의 "쌀 개방반대 농민대회"에 동참하려다 경찰에 저지당한 한 농민이 경찰저지선 위에 주저앉아 있다. 여주/강창광 기자(한겨레신문)



멕시코 칸쿤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 반대 집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이경해씨 1주기인 10일, 전국 90여개 시·군에서 쌀 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농민집회가 열렸다.

이 집회는 국제 농민운동 조직인 ‘비아깜페시나’가 9월10일을 ‘이경해 열사 추모 및 세계무역기구 반대 국제 공동행동의 날’로 선포한데 따른 것으로, 일본과 프랑스 브라질 멕시코 등 80여개 나라에서 동시에 같은 행사가 열렸다.

 

‘우리쌀 지키기 식량주권 수호 국민운동본부’는 이날 서울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일방적인 쌀 개방 협상과 개방화를 전제로 한 농업·농촌 관련 법률 개정에 단호히 반대한다”며 “노무현 대통령은 당장 농민단체 대표들과 만나 농업·농촌의 회생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농산물의 전면 개방은 농촌을 황폐화시킬 뿐 아니라, 식량주권을 몇몇 초국적기업에 종속시킬 것”이라며 정부에 △쌀 협상 내용 즉각 공개 △쌀 개방 여부에 대한 국민투표 실시 △식량자급률 목표치 법제화 등을 요구했다.

 

방한중인 프랑스 농민연맹 창설자인 조제 보베 등 비아깜페시나 농민운동가들은 이날 전북 정읍과 경남 진주에서 열린 농민대회에 참가했다. 이날 집회에는 전국에서 모두 40여만명이 참가한 것으로 주최 쪽은 추산하고 있다.

 

국민운동본부는 11일 서울 마로니에공원에서 농민 1만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고, 12일에는 시민열린마당에서 이경해씨 추모 문화제를 가질 예정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22일부터 논 갈아엎기, 농산물 출하 거부, 농가부채 상환 거부 등 쌀 개방 반대 투쟁을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지은 기자, 전국종합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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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경림] 새벽달

  • 등록일
    2004/09/11 07:27
  • 수정일
    2004/09/11 07:27

돌 깨는 소리 맞은 지 오래인

채석장 뒤 산동네 예배당엔

너무 높아서 하느님도 오지않는 걸까

아이들과 함께 끌려간 전도사는

성탄절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고

블록 담벼락에 그려진

십자가만 찬바람에 선명하다

눈도 오지 않는 성탄절날 새벽

복받은 자들만의 찬송가 소리는

큰 동네에서 큰 교회에서

골목을 타고 뱀처럼 기어올라와

가난을 어리석음을 비웃고 놀리는데

새벽달은 예배당 안을 돌아다보는구나

갈 곳 없어 시멘트 바닥엔

서로 안고 누운 가난한 연인들을 깨우면서

저 찬송가 소리 산동네 덮기 전에

일어나라고 일어나라고

가만가만히 흔들어 깨우면서

 

                                          신경림 전집 가난한 사랑노래 중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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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어 좋은 이밤에... 나에게 물어본다.

  • 등록일
    2004/09/10 23:32
  • 수정일
    2004/09/10 23:32

오산 기차길 옆 다솜공부방에서 바람소리와 기차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차분해집니다.

낮 아이들의 한바탕 소동은 밤이 오면 고요의 바다로 변합니다. 낮의 시끌벅적함이 사라진 지금 나만의 시간을 가져봅니다.

 

이 곳은 정말 정막함이 감도는 조용한 동네입니다.

개소리도 들리지 않고 사람들 지나가는 소리 또한 들리지 않습니다. 오로지 소리가 들린다면 기차길 옆에 공부방이 위치하여 오산역을 바삐 지나가는 기차 소리와 내가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소리(지금 꽃다지 "손을 잡아야 해"라는 노래 소리)와 자판기 두드리는 소리뿐입니다.



만약에 사람의 인생이 컴퓨터 처럼 포맷이 될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좋지 않은 기억... 가슴 속 깊이 간직하거나 묻어둔 멍 덩어리.... 삶에 지친 자... 들에게 새로운 시작을 위한 포멧(희망과 좌절이 없는 삶의 냄세가 듬뿍 담긴 내용들로만 충만한 디스켓으로 업그레이드)을 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까요... 매일매일 인간사에서 벌어진 고통과 번뇌를 포맷하면서 삶의 고통과 번뇌로부터 자유로움을 갈 구 할 수 있으려만... 그러나 인간사는 기계와 같이 포맷이 되지 않고 고통과 번뇌를 지니고 살아가야 합니다. 혹자들은 이러한 고통과 번뇌가 있기에 인간사 아름답지 않은까라는 생각을 가져보지만... 낭만적 발상은 삶의 찌든이 희망을 갈구해 보았지만 구원을 얻지 못한 이에겐 정말 치욕과도 같은 절망의 나락입니다. 타임머신은 없더라고 삶의 희망과 좌절이 없는 업그레이드 기계가 있다면 전쟁, 기아, 자연파괴, 불신이 없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왜 인간은 강하면서도 나약한 존재일까요.

나에게 물어봅니다. 그러나 답은 찾을 수 없습니다.

그냥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보다는 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정처없이 떠돌고 싶습니다. 바람이 불어 좋은 날.... 어디론가 바람에 의지한 채 떠나고 싶습니다. 어떤 동화에서 나온 무지개를 찾아나선 아이들 처럼... 나 또한 바람의 끝이 어딘지 찾아가고 싶습니다.

 

조용한 공간에서 나를 되돌아 봅니다.

과연 내 인생사를 정리할 수 있을까? 어린시절 추억이 듬성듬성 떠오르고, 중학교 친구들 몇명과 수학여행, 고등학교 죽마고우라 지칭하던 이들과 종로6가 중앙시장 안 선술집에서 막걸리잔을 치켜들며 외쳤던 우리는 영원한 친구... 대학때 집회, 선배와 폐인이 되도록 술마셨던 기억... 졸업후 지금까지 듬성듬성 기억은 나는데... 이 듬성듬성 기억나는 기억을 이어주는 끈이 없는 것 같고, 이어나가기엔 무엇인가 좀 부족합니다.

 

치열하게 살고자 하였으나 늘 치열함은 저열함으로 변질되고... 열정은 실리로 변경되고... 약속은 핑계로 바뀌고.... 자신감은 나약함으로 바뀌어가는 현실에서 나의 좌표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어렵지만 가난하지만 불행하지만 희망을 갈구 하건만 난 무엇을 위해 마음을 졸이는가?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바람에게 물어볼까... 바람은 말없이 찬바람만 나에게 가득주면서 그냥 지나쳐 지나갑니다. 바람은 나의 물음에 아무런 댓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아무도 나에게 답은 줄 수 없을 꺼야... 답은 내 옆에 있는데 내가 보고자 하지 않을 수도 아니면 알면서도 회피할 수도 있는 것이야... 그럴꺼야 회피 아니면 보고자 하지 않는 것이겠지... 아마도

 

바람이라면 높은 곳에서 사물을 볼 수 있으련만... 난 바람처럼 대범하지도 못하구나 시야도 협소하고... 하지만 한가지는 자신있구나.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정직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난 사람과의 관계에서 늘 소원하지 못하였구나

 

내 중심성이 강한 것일까.. 아마도

그래 그럴꺼야 그래서 여지까지 버터왔으니까... 중심성을 원칙으로 삼았구나. 그래도 서른중반나이 원칙인지 존심인지 고집인지 모르는 개똥철학은 갖고 있었구나...

 

나를 돌아봅니다.

난 무엇하나 해놓은 것도 없고, 어디로 갈지 마음이 서질 않는다.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나의 나약한 심정은 이를 허용치 않는구나... 개탄스럽다. 뭐가 그리 조급한지 뭐가 그리 원망스러웠는지.... 나참 나란 놈은 개똥철학에 푹 바쪘구나....

 

나는 운동을 시작할때부터 늘 사고하고 선택을 하였다. 그러나 돌아보건데 그렇질 못하였구나... 시작할때는.... 평생하지 않을 것이면 시작하지도 말자.... 마음속 깊이 열심히 하지 않을 것이면 시작하지도 말자. 그래서 내가 선택하여 결정한 조직은 아니지만 조직에 가입하고 운동을 시작하였다. 선배와의 술자리에서 난 내가 처한 과의 기조에 따라 운동의 이념적 경향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내가 선택하지 못하였지만, 최선을 다하고자는 노력하였다. 늘 선거때만 되면 이 기조가 흔들리지만... 소수의 한계와 대중들에 대한 적개심... 불온 선전유인물로 인해 고개숙여야 했을 후배들을 위로하면서.... 한 학우였던 내가 한 학우라는 유인물에서 받아야 했을 좌절... 그건 기존 정치판 비판이 학내에서도 고스란히 이전된 암적 존재에 대한 적개심이였다. 이러한 과정을 숫하게 반복하였다. 그러나 우린 힘이 없이 없어서... 대중을 장악하지 못한 소수이기에 그렇다고 위로하며 추수렸었지... 이도 못내 우리를 위한 변명이었구나... 그래도 우린 이 변명의 위로에 힘을 빌어 살아가지 않았는가... 이 변명이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는 구나... 갈구에 대한 욕망의 끈 모질게도 길다.

 

새로운 시작과 다시 후배들을 추스려 보면서 함께가자 우리 이 길을....

그래 난 그랬었지... 그리고 학교를 옮겼지.... 후배의 배신에 참을 수 없는 치욕을 벗어나기위해... 새롭게 시작한 공간도 그리 소원하지 못하였구나... 나의 회피는 또다른 부피의 고통을  나에게 안겨주었지... 그래 회피는 시작을 원점으로 돌리는 놈이였다.

 

치열함과 몰락의 길로 접어드는 학생운동권의 무수한 담론에서 우린 원칙이라는 것을 우리스스로 정하여 지키고자 열망하였지.... 그러나 이러한 친구들은 이제 다 떠나고 친목회로 전락한 모습 속에서 분노가 소스라쳤었지.... 우리가 친목회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절망감이 나를 감싸않았다. 이들에게 원망도 해보았지만 이도 성치 않는구나... 우리는 89년 노동해방문학에서 추창한 합-비합동시건설론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운동의 고난의 서막을 우리 스스로가 파고 들어갔지.... 공개학정조 운동은 우리에게 대중성을 가져다 주기보다는 변유에서 말하는 정반합에 따른 양질의 전화법칙(아마도 좌파라고 자임하던 이들은 변유에서 말한 양질이 전화법칙에 근거하여 질적 확대를 통한 양적확대를 추구하였다. 이는 한사람의 열걸음보다 한사람의 열걸음이 낳다는 말에서 나타난다 생각한다. 이에 난 긴호흡 강한걸음이라는 말을 좋아했나 보다. 지금 양적확대는 이루어졌으나 질적확대는 매우 취약한 상태라 판단하고 있다.)을 우리 스스로 파기시켜 버린 무오류를 범하였지... 선배들은 비합이 힘들다며 스스로 자수하거나 이념을 폐기하며 자신의 역사도 부정하는 무오류를 범하였지...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이념이 난무하고... 과거가 부정되는 지금 우린 무엇을 갖고 투쟁하였던가.... 백무산 시인의 강령... 은 어찌보면 과거 우리 스스로가 선택하고 치열하게 살았던 모든 것의 부정은 운동의 부정이라는 질타를 이 시에서 하고 있다. 지식인들이 선엄적으로 선언한 이론적 한계가 과연 올바른지 행위인가... 난 아니라 생각한다. 우리의 투쟁과 사고, 이념은 아직도 틀림없다고 본다.

 

남한운동의 현실적 상황을 왜 외적존재에서 규정하고 이론적 위기로 치닫아야 한는가? 그리고 소련의 붕괴가 가지고온 방향에서 왜 맑스-레닌주의가 부정되어야 하는가? 일국적 사회주의 운동이 부정되는 지금... 우린 운동에 있어서 스스로 이념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난 신좌파의 상상력은 유럽 사회주의자들의 교조와 개량성이라 판단한다. 68혁명이 승리한 투쟁인가? 아니다 68혁명은 자본에 대한 유럽사회주의자의 투항을 통한 개량의 길이라 본다. 소련 처럼 혁명(러시아 혁명 1905년, 1917년 혁명은 아직도 생생하다.)을 이루어내지 못하였다. 유럽은 사회,정치,경제,문화에서 우위를 점하였다. 자본주의가 소련 붕괴로 스스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난 그렇지 않다고 본다. 소련의 붕괴를 통해 자본주의 필연적 소멸의 시간을 연장하였을 뿐이라 생각한다.

 

우린 또다른 운동과 투쟁하여야 한다.

시민사회운동의 대두 그리고 부문운동의 대두.... 운동의 외적 영향력을 확대강화시켜나갔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과 사회를 바라보는 사고의 틀이 동일하다 볼 수 있는가? 파편화되고 분업화된 지금... 우리에겐 혁명의 주역이 누구냐는 반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맑스에 의해 생명력인 존재로 태동한 프롤레타리아(노동자계급)는 이제 낡은 것으로 치부되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맑스 당에서 주창되는 "당은 노동자계급의 무기이다."라는 말이 아직도 남한에서 유효한 단어인가... 남한의 진보정당은 아직 이길로 나서기에는 역부족이다. 이후 어찌될지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이를 주창하던 공산당은 패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스스로의 한계점이라 할 수 있다. 소련은 브레지네프에서 후르시초프에 이르는 코민포름에 대한 유럽사회주의자들의 태도는 이를 단적으로 들어내 준다. 특히 알튀세르는 코민포름에 대한 적개심은 그 단적인 예라 하겠다. 철학자로서의 삶은 존경받아야 하나 그가 맑시스트였다는 점에서는 비판을 받아야 한다. 그가 맑스주의자이기 이전 그는 혁명에 있어 역동성을 부정한 인물이라 나는 판단한다. 프랑스가 보여준 개량성을 우린 지켜봐야 한다. 프랑스 공산당의 몰락 그건 아마도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비판을 위한 비판을 행했던 유럽의 사회주의자들 또한 소련 붕괴의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90년대 초반부터 읽기 시작한 알튀세르, 그람시, 루카치, 푸코, 네그리, 가타리 등의 저서는 이념적으로 빈약한 우리에게 있어 모색이라는 주요한 화두는 던져 주었지만.... 더욱더 포스트주의적 경향성을 우리에게 던져주었다. 89년 소련과 동구사회주의권 붕괴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저해하는 오류성 또한 범하였다. 그렇다 나는 본다. 아직도 난 구좌파이기에.... 틀림없다. 노동자 중심성... 그 때 이야기되었던 PT독재, 무장혁명, 프롤레라리아트 당은 변함없다. 그러나 지금 운동지형에선 이를 비판하는 이가 많다. 그러나 레닌에 대한 부정은 이해한다. 그러나 레닌이 국가의 혁명, 무엇을 할 것인가, 제국주의론, 유물론과 경험비판이론 등에서 밝힌 실천활동 속에서 이끌어낸 투쟁을 부정하는 것은 자신의 운동적 정체성에 대한 회손은 아닌가 반문하고 싶다.

 

나는 아직도 과거는 틀림없었다고 생각한다.

과거는 올바랐지만 소련붕괴라는 충격은 어찌보면 우리 스스로 미성숙한 사회주의자였기에 90년대 초중반부터 현재까지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았는지 판단이 든다. 자본의 악락함을 보라... 그리고 미국 제국주의자에 이어 유럽 제국주의를 보라... 그 속에서 사회주의자들은 어떠한 투쟁을 하였는가... 유고 티토니즘과 이를 뒤받침하는 노동자 자주관리론(이도 공장단위로 생산력 경쟁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한다. 필연적으로 생산력이 높은 공장과 생산력이 낮은 공장에서 노동의 소외는 심각한 양태로 나타날 것이다.) 스페인 몬드라곤(공동체 운동은 일정 소수의 공동체는 유지하나 전지구적 공동체로 전환하기엔 역부족이다.) 등 자본주의를 혁명으로 투쟁하기보다는 순응하면서 개선하는 책을 썻다. 그들의 진보정당론은 외형적으로 확대되었지만 지금 유럽 공산당과 좌파정당의 몰락은 그들의 현주소가 아닐까....

 

그러나 시대를 이끌어 나아갈 거대흐름에 우린 제동걸 힘과 헤게모니를 놓쳤다.

진보정당운동, 시민사회의 대두, 민주노총 합법화 등 과거 우리가 주장하였던 이슈들이 현실화된 지금.... 우리는 무엇을 이제 기치로 내걸어야 하나.... 이보다 우린 무엇을 갖고 투쟁을 하여야 하는가? 모든 사안을 반자본주의라 규정하고 반자본적인 요소들만 갖고 투쟁을 이끌어내야 하는가? 그러나 우린 과거에 비해 많은 힘을 잃었다. 우리에겐 단일한 슬로건과 공동의 사고가 희미해졌다. 아니 정확히 사라졌다. 다양한 이슈는 대두되어지나 이 이슈의 근원적 문제에 대한 핵심적 논의는 묵살되어진다. 환경, 여성, 노동, 문화, 정보통신, 소수자운동에 있어서 근원적 문제는 국가를 유지하는 정권과 자본가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부문에서 더이상 확장시키지 못하고 문제를 이슈에 한정짖고 있다. 역량이 부재하여서 그런지 투쟁이 정권과 자본가 투쟁으로 이끌어 내지 못한다. 이보다 더욱더 큰 문제는 우리 스스로 점점 자본이 쳐놓은 덫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그래서 난 칙칙하거나 암울하다. 그래도 희망은 아직 저버리진 않았다. 이러하기에 불안함과 초조함이 더해지나 보다.

 

이제는 희망을 말하고자 한다. 가장늦은 때가 가장빠른때라는 맨투맨 문장에서 나오는 글귀에 힘을 입어서....

 

나의 서둘지만 간략한 생각을 나열해 보았다. 정리를 해볼라고 노력하는데 잘 안된다. 인식이 부재하여서 그런가 보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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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김수영] 방안에서 익어가는 설움

  • 등록일
    2004/09/10 20:15
  • 수정일
    2004/09/10 20:15

비가 그친 후 어느날....

나의 방안에 설움이 충만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오고 가는 것이 직선으로 혹은 대각선으로 맞닥뜨리는 것 같은 속에서

나의 설움은 유유히 자기의 시간을 찾아갔다.

 

설움을 억류하는 야릇한 것만을 구태여 찾아서 헤매는 것은 우둔한 일인 줄 알면서

그것이 나의 생활이며 생명이며 정신이며 시대이며 밑바닥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아아 그러나 지금 이 방안에는

오직 시간만이 있지 않으냐



 

흐르는 시간 속에 이를테면 푸른 옷이 걸리고 그 위에

반짝이는 별같은 흰 단추가 달려 있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자꾸 뻐근하여만 가는 목을 돌려

시간과 함꼐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것

그것은 혹시 한 자루의 부채

--- 그러나 그것은 보일락 말락 나의 시야에서 멀어져가는 것---

하나의 가냘픈 물체에 도저히 고정될 수 없는

나의 눈이며 나의 정신이며

 

아 밤이 기다리는 고요한 사상(思想)마저

나는 초연히 이것을 시간 위에 얹고

어려운 몇 고비를 넘어가는 기술을 알고 있나니

누구의 생활도 아닌 이것은 확실한 나의 생활

 

마지막 설움마저 보낸 뒤

빈 방안에 나는 홀로이 머물러 앉아

어떠한 내용의 책을 열어보려 하는가

 

                                                       김수영 전집 중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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