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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무심타

  • 등록일
    2013/12/24 10:55
  • 수정일
    2013/12/24 10:55

성탄절... 아기 예수 탄생을 찬미하는 글들이 눈에 뛴다.

그 뽀족한 하늘과 맞닿아 있을 교회당 십자가가 오늘따라 서럽게 다가온다.
가난한 이 헐벗는 이 이 땅의 소외받고 착취받고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내려오신 예수가 지금의 현실을 어찌 지탄하실까?

탄생이 고통임을 모르는 우리내는 그저 그 성탄이라는 탄일종에 매달려 즐거움에 겨워한다. 그 고통을 모르쇠하며....

그러나 그 탄생이 온 고통을 몸으로 이겨낸 이의 고통임을 망각하는 시대...
교회는 넓혀지고, 하늘로 쌓아가고, 바리세파 처럼 그렇게 찬미하는 자들이 되어버린자.. 석가모니(코타마 싯타르타)의 번뇌를 모르는 이들...
방관자들이 난무하는 시기.... 무수한 수식어를 갖다부치지만 그 투쟁하나 승리를 하지 못한 우리내의 초라한 자화상.... 그 고통 그 번뇌는 다 투쟁하는 이의 몫... 그러나 투쟁도 사랑인냥 시기와 질투로 점철된 시기....

지금의 그 함성에 기대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문제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손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또 타협과 대화로 해결하려는 그 꼼수가 우리를 역사적으로 후퇴시켜 왔다.
노동자를 인민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유유히 흘러가는 그 노동을 팔아 정치로 넘어가는 관료주의, 기회주의, 사민주의자들의 작태에 분노를 품는다. 노동을 팔아 입신양면.... 출세의 가도로 달려가는 쁘티부르주아지의 초라한 단상이 회상된다.
내년 선거 얼마나 많은 이들이 또 그 대열에 안철수 신당창당에 투신할지....
투쟁하는자는 그래서 외롭지만 의롭다.
그래서 투쟁은 투쟁하는 자의 몫이라 생각한다.
노동으로 생존을 생존의 굴레에 종속된자.... 그 삶이 자본과 대적할 수 밖에 없는 무산계급 노동자가 투쟁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 자본가들에게 임금노예로 노동을 팔아 살아가는 노동자가 그리고 그 노동으로 자신의 권리를 위해 투쟁할 수밖에 없는자.... 이 자본주의 시대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정리해고, 파견법의 굴레에서 억압과 착취 온몸으로 받는자... 그들이 역사의 주인이고, 주체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노동을 팔아 노동을 노래하며 노동을 굴종의 나락으로 치닫게 하는 이 많은이 개탄스럽다.
노동을 노동운동을 노동해방을 쉽게 생각한 이.... 그 투쟁을 정형화된 문구로 나열하는 이.... 투쟁은 그렇지 않다. 노동자를 투쟁시키고 학습시키고 조직시키지 못한 이들의 그 저열함이 지금 그리고 우리를 현실로 치닫게 하였다. 그 진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할 때이다.
환호할 때가 아니라 투쟁하고 연대할때.... 여전히 갈길 멀다.
민주노총 사무실 침탈.... 그러나 조합원의 분노에 비해 그 관료들은 너무 미온적이다.

아 성탄이 서럽다.
지금 헐벗고, 가난한 이들 일년에 한번 되돌아 보는 이 성탄 연말이 지긋지긋하다.
그 찬미에 과연 이 땅의 헐벗고 고통받는 이들 이웃에 대한 연민을 넘는 사랑이 있을까?
교회, 불당엔 신은 없어진지 오래....
쌓여가는 건물, 쌓여가는 높이, 쌓여가는 헌금이 교회의 교세가 된 지금....

마음속 가난한 이들 헐벗는 이들의 벗하는 이 땅의 예수 아닌 프롤레타이라트 예수가
현실을 지탄하고 있지는 않은지...

오늘 그 구천을떠돌던 한 노동자 영혼이 안식을 위해 우리 곁을 떠나는 날...
그러나 이 땅 움직여야 할 우리는 몇몇 사건에 희열에 만족하며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부족한데로 가기엔 우리 너무 부족하다.
아니 부족함을 넘어 조합원의 울분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투쟁을 촉발시키기 위한 노력들이 투쟁이 한창이지만 그 진정성 여전히 희미하다.
투쟁하는 이들 그토록 외롭게 놓아놓은 우리들 반성과 성찰을 넘어 투쟁의 머리띠 다시 동여멜때....

투쟁 다시금 나서야 할때....

역사는 두번 반복된다. 역사는 한 번의 비극과 한번의 희극이 교차하듯 우리 또한 그 희극을 위해 달려갈 때이다. 잡은 손 놓지 말고 따스한 군불이 되어 횃불로 타오르도록....

오늘 아침.. 무심타... 투쟁은 타전되지만 그 투쟁이 무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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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영화 거북하다.

  • 등록일
    2013/12/23 15:40
  • 수정일
    2013/12/23 15:40

변호인이라는 영화가 박스오피스에서 상승기류를 타고 있나보다.
그러나 잊지말자 그 노동열사의 죽음 비정규직법개악의 당사자, 김선일씨의 이라크에서 죽음을 국익의 위해 살해를 방치한 그가.... 과거의 그가 노동변호사였을지 몰라도 노동자 인민을 정치권력으로 묵살한 당사자라는 것을....

그를 기념하는 이들이 환호하겠지만....

이 땅의 노동자과 민중생존권을 박탈하고 폭력으로 매도한 당사자 그리고 미국의 더러운 전쟁에 가담한 전쟁 동참자였다는 사실을.... 한미FTA를 추동하고 비정규직개악법을 입법한자.... 그 그늘을 온몸으로 견딘 사람들이 있고, 지금도 온몸으로 견디고 투쟁을 하고 있다. 자본가의 편에 기승한 정치인이 과거 노동변호를 등에 없고 망령이 되어 부활하고 있다.
씁쓸하다.

정치권력이 이리 도 노동자 인민을 때려잡을 수 있음을 확연히 보여준 그 권력에 정치적 추종자들은 환호하겠지만 그 고통과 억압 온 몸으로 견뎌야 했던 노동자 지금도 자행되고 있는 손배가압류라는 그 망령도... 국가보안법이라는 시대적 악법도 법치라는 이름으로 권력자로서 지존을 지키지 못한자.....

현실 노무현과 같은 목소리를 내지 않고 정치권력에 탐하지 않는 노동변호사가 얼마나 많이 있는가를 보면 알 것이다. 자신의 한 일을 내세우지 않고 정치권력에 편승하지 않는 투사들이.... 오히려 투쟁하라 말하는 그/녀들이 법이라는 울타리에 갖힌 투쟁을 넘어서라 말한다.
자신의 입신양면을 바라지 않고 묵묵히 뒤에서 조력하고 이 땅의 노동을 인민을 고뇌하는 자 많다.

변호인에 환호하는 이 시대.... 참으로 안타깝다.
소영웅주의 발호인가?
아니다 가진사람들의 사유이겠다 싶다. 정작 그 고통을 노동자를 인민의 삶을 간접경험하고 그 경험에 양심을 구가하는자들의 허위양심이 죽은 노무현을 떠받치고, 회상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특공대 공권력 투입, 한미FTA, 이라크 파병, 비정규직법 개악, 10년전 열사정국 등 어느때보다 더 억압하고 착취하여 폭력을 행사하였다는 것을 잊지말자.... 과거의 영광을 자신의 출세로 돌린 권력자를 찬미할 필요가 있을까? 지지자들의 환호이겠다 싶다.

정작 그 고통에 포함되지 않는 386이라는 기성세대.... 주류세대들의 양심이 부끄러워 해야할 오늘이다. 그 민주노총 폭압은 김대중, 노무현때도 별반 다르지 않고, 더 악랄했다. 지금의 법이..... 방패와 곤봉으로 얼마나 많은 폭거가 자행되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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