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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아기 예수 탄생을 찬미하는 글들이 눈에 뛴다.
그 뽀족한 하늘과 맞닿아 있을 교회당 십자가가 오늘따라 서럽게 다가온다.
가난한 이 헐벗는 이 이 땅의 소외받고 착취받고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내려오신 예수가 지금의 현실을 어찌 지탄하실까?
탄생이 고통임을 모르는 우리내는 그저 그 성탄이라는 탄일종에 매달려 즐거움에 겨워한다. 그 고통을 모르쇠하며....
그러나 그 탄생이 온 고통을 몸으로 이겨낸 이의 고통임을 망각하는 시대...
교회는 넓혀지고, 하늘로 쌓아가고, 바리세파 처럼 그렇게 찬미하는 자들이 되어버린자.. 석가모니(코타마 싯타르타)의 번뇌를 모르는 이들...
방관자들이 난무하는 시기.... 무수한 수식어를 갖다부치지만 그 투쟁하나 승리를 하지 못한 우리내의 초라한 자화상.... 그 고통 그 번뇌는 다 투쟁하는 이의 몫... 그러나 투쟁도 사랑인냥 시기와 질투로 점철된 시기....
지금의 그 함성에 기대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문제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손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또 타협과 대화로 해결하려는 그 꼼수가 우리를 역사적으로 후퇴시켜 왔다.
노동자를 인민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유유히 흘러가는 그 노동을 팔아 정치로 넘어가는 관료주의, 기회주의, 사민주의자들의 작태에 분노를 품는다. 노동을 팔아 입신양면.... 출세의 가도로 달려가는 쁘티부르주아지의 초라한 단상이 회상된다.
내년 선거 얼마나 많은 이들이 또 그 대열에 안철수 신당창당에 투신할지....
투쟁하는자는 그래서 외롭지만 의롭다.
그래서 투쟁은 투쟁하는 자의 몫이라 생각한다.
노동으로 생존을 생존의 굴레에 종속된자.... 그 삶이 자본과 대적할 수 밖에 없는 무산계급 노동자가 투쟁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 자본가들에게 임금노예로 노동을 팔아 살아가는 노동자가 그리고 그 노동으로 자신의 권리를 위해 투쟁할 수밖에 없는자.... 이 자본주의 시대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정리해고, 파견법의 굴레에서 억압과 착취 온몸으로 받는자... 그들이 역사의 주인이고, 주체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노동을 팔아 노동을 노래하며 노동을 굴종의 나락으로 치닫게 하는 이 많은이 개탄스럽다.
노동을 노동운동을 노동해방을 쉽게 생각한 이.... 그 투쟁을 정형화된 문구로 나열하는 이.... 투쟁은 그렇지 않다. 노동자를 투쟁시키고 학습시키고 조직시키지 못한 이들의 그 저열함이 지금 그리고 우리를 현실로 치닫게 하였다. 그 진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할 때이다.
환호할 때가 아니라 투쟁하고 연대할때.... 여전히 갈길 멀다.
민주노총 사무실 침탈.... 그러나 조합원의 분노에 비해 그 관료들은 너무 미온적이다.
아 성탄이 서럽다.
지금 헐벗고, 가난한 이들 일년에 한번 되돌아 보는 이 성탄 연말이 지긋지긋하다.
그 찬미에 과연 이 땅의 헐벗고 고통받는 이들 이웃에 대한 연민을 넘는 사랑이 있을까?
교회, 불당엔 신은 없어진지 오래....
쌓여가는 건물, 쌓여가는 높이, 쌓여가는 헌금이 교회의 교세가 된 지금....
마음속 가난한 이들 헐벗는 이들의 벗하는 이 땅의 예수 아닌 프롤레타이라트 예수가
현실을 지탄하고 있지는 않은지...
오늘 그 구천을떠돌던 한 노동자 영혼이 안식을 위해 우리 곁을 떠나는 날...
그러나 이 땅 움직여야 할 우리는 몇몇 사건에 희열에 만족하며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부족한데로 가기엔 우리 너무 부족하다.
아니 부족함을 넘어 조합원의 울분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투쟁을 촉발시키기 위한 노력들이 투쟁이 한창이지만 그 진정성 여전히 희미하다.
투쟁하는 이들 그토록 외롭게 놓아놓은 우리들 반성과 성찰을 넘어 투쟁의 머리띠 다시 동여멜때....
투쟁 다시금 나서야 할때....
역사는 두번 반복된다. 역사는 한 번의 비극과 한번의 희극이 교차하듯 우리 또한 그 희극을 위해 달려갈 때이다. 잡은 손 놓지 말고 따스한 군불이 되어 횃불로 타오르도록....
오늘 아침.. 무심타... 투쟁은 타전되지만 그 투쟁이 무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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