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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 등록일
    2004/12/21 22:38
  • 수정일
    2004/12/21 22:38
2001년 01월 11일 21시 08분 56초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지음. 나는 한때 나 자신에 대한 지독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사랑을 할땐 더더욱이 그랬다. 사랑을 하면서도 나 자신이 빠져나갈 틈을 여지없이 만들었던 것이다. 가령, 죽도록 사랑한다거나, 영원히 사랑한다거나, 미치도록 그립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게 사랑은 쉽게 변질되는 방부제를 넣지 않은 빵과 같고, 계절처럼 반드시 퇴색하며, 늙은 노인의 하루처럼 지루했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말자.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 때문에 올가미를 쓸 수도 있다. 가볍게 하자, 가볍게. 보고는 싶지라고 말하고, 지금은 사랑해라고 말하고, 변할 수도 있다고 끊임없이 상대와 내게 주입시키자. 그래서 헤어질 땐 울고불고 말고 깔끔하게, 안녕. 나는 그게 옳은 줄 알았다. 그것이 상처받지 않고 상처주지 않는 일이라고 진정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드는 생각. 너, 그리 살어 정말 행복하느냐?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만큼만 사랑했고, 영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싶어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물잔과 같았다. 내가 아는 한 여자, 그 여잔 매번 사랑할 때마다 목숨을 걸었다. 처음엔 자신의 시간을 온통 그에게 내어주고, 그 다음엔 웃음을 미래를 몸을 정신을 주었다. 나는 무모하다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모든 걸 내어주고 어찌 버틸까,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그렇게 저를 다 주고도 그녀는 쓰러지지 않고, 오늘도 해맑게 웃으며 연애를 한다. 나보다 충만하게. 그리고 내게 하는 말,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자신에게 사랑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속죄하는 기분으로 이번 겨울도 난 감옥같은 방에 갇혀, 반성문 같은 글이나 쓰련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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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사태...

  • 등록일
    2004/12/21 22:35
  • 수정일
    2004/12/21 22:35
2001년 02월 24일 15시 39분 27초 대우사태로 인하여 요즘 정신이 없다. 정확히 말해서 대우공투본 홈페이지를 노동넷에서 관리하고 있어 매일 뉴스와 그리고 각종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을 클리핑 하는 일을 하고 있어 정신이 도통없다. 대우사태에 대하여 언론에서는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공권력투입과 때를 맞춰 기사가 폭주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대부분의 보수언론이 대우사태에 대하여 올바른 입장을 내고 있다는 소리는 아니다.


대우자동차 노조원들과 가족들의 입장에 대한 기사보다는 대우자동차 노조가... 민주노총이... 뭐 이런 식의 이슈화 거리와 기사 거리들만 나르고 있다. 그들의 본성이 어디 가겠느는가 그런데 아쉬운것 그나마 진보언론이라는 한겨레 신문이 데우사태에 대한 논평을 통해 양비론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게 울분을 참을 수 없다. 노-사간의 합의 그리고 대화로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한겨레신문의 논평을 보면서 정말 한겨레 신문이 DJ 정권의 언론 분견대 노릇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정도이다. 과연 노-사간의 대화를 노동조합이 거부한 것인가? 과연 정리해고와 해외매각을 통해서만 대우자동차가 정상화 될 수 있는가? 그리고 몇 조원 의 회사공급을 횡령하고도 외국에서 호화호식하고 있는 김우중은 눈 시퍼렇게 뜨고 외국의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대우사태 주범인 김우중은 구속하지 않고 왜 노동자들에게만 일방적 정리해고 통보를 하는건지..... 언론의 정부주도성을 세삼 느낀다. 기자들은 정말 정리해고 구조조정이라는 기사를 쓰면서 그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으로 인해 파탄날 노동자 민중들을 생활을 생각이나 해보고 있는지... 글몇자가 주는 삶의 무게와 생존권의 처절함을 알고 있다면 아마 구조조정 정리해고라는 단어를 신문지상의 글로써 그리 쉽게 쓰지는 못했을 거다. 늘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정리해고 구조조정이라는 단어를 보면서 오늘도 처절히 생존권 사수 투쟁에서 추위를 이겨내며 투쟁하고 있을 노동자분 들 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그러나 나도 생각뿐 그들의 투쟁의 현장 한켠에 있지 못함이 죄스러울 따름이다. 자본주의 사회라서 그렇다. 허허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나라에서 그런 일이 있다는 소리는 난 들어보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자국민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안정망이 구축 되어져 있다. 실업자에 대한 정부의 지원 그리고 고용창출을 위한 정부 주도의 나름대로 그들의 자구책이 있다. 그러나 우린 일자리에서 쫓겨나면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하는 이사회..... 그러나 그들을 거리로 내몰아간 주범들은 되려 떵떵 거리며 살아가고 있다.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사회... 바로 천민자본주의 한게성이 들어 난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니 노동의 유연화 공세니 그런 말뜻을 알지 못하지만 거리의 투쟁으로 검게 그을린 그들에게 그런 말 뜻보다는 단결투쟁, 생존권 사수, 정리해고 박살이라는 다소 짧지만 삶과 투쟁이 배인 구호와 실천속에서 다시금 강철 노동자들의 힘을 느낀다. 그들에겐 온갖 현란한 수식어가 붙는 언어보다는 짧지만 강위력한 투쟁이라는 단한마디가 그들을 단련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잠시해 생각해 본다. 투쟁~~~~~~~~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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