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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세트 음악을 들으며...

  • 등록일
    2004/12/21 22:00
  • 수정일
    2004/12/21 22:00
2002년 09월 04일 21시 22분 48초 중학교때 늘 메탈리카, 딥퍼플, 레드 제플린,주다스 프리스트, 메가데스, 헬로윈 등 불법 복제 테이프를 구하기 위해 용산을 누비던 생각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겨진 지금.... 요즘들어서는 그나마 좋은 음량의 카세트로 노래를 자유롭게 들을 수 있다는 즐거움이 좋군요. 컴퓨터 음악이 아무리 정교해진다고 해도 오디오 스피커로 나오는 음악의 감동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인디밴드중에 괜찮은 밴드가 있어 음악을 반복 또 반복해 듣고 있습니다. 카세트도 장만하고 나서 거의 사용을 하고 있지 않아 한번 들어 볼겸해서 컴퓨터로 듣던 음악을 끊고 거금을 들여 음악테이프를 샀습니다.


뭐 좋은 음악이 많이 들어있으면 그 또한 값이 뭐 중요하겠습니까... 장소에 구애받지않고 좋은 음질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게 행복이겠죠. 카세트를 장만하고 거의 사용을 하고 있지 못하다가 요즘 좋아하는 음악테잎이 하나 나와서 반복 또 반복해서 듣고 있습니다. 카세트 테잎의 주인공은 cherry filter(체리필터 인디밴드)라는 밴드의 2집 음악 made in korea입니다. 인디밴드 여성 보컬의 파워풀한 음량으로 노래가 힘이있어 늘 경쾌함에 노래를 듣게 되더군요. 예전에 들었던 하드코아 메탈과 데드 메탈의 음량에 비하면 좀 떨어지기는 하지만 프로그레시브 계열인 체리필터의 음악을 들으면 또다른 파워풀한 음악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베이스 소리가 끝내줍니다. 또 1집의 난 여자였어와 헤비메탈 콩쥐는 보컬의 파워풀함의 절정을 느끼게 해줍니다. 가사 또한 인간내면과 일상의 고충을 노래하고 있어 음악과 가사를 감상하는 것 또한 음악을 듣는 즐거움을 더해 줍니다. 많은 인디밴드들이 나와 있지만 저는 체리필터와 문학선생님이라는 노래를 부른 줄리아 하트 음악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더군요. 카세트 음악을 듣는 행위가 요즘 구세대적 행위라지만 시디보다 경제적이고 음악테잎의 복사가 용이하니 많은 이들에게 좋은 음악을 전해줄 수 있는 장점이 있죠. 온라인 생활로 인해 MP3음악을 메일로 보내거나 소리바다에서 공유해 사용할 수 있지만, 직접 좋은 음악을 정성것 복사해 포장을 해서 건네줄 수 있는 그런 좀 시간이 걸리지만 정성을 느낄 수 있는 감흥이 있지 않은지... 요즘 이메일이 보편화되어 전지구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통을 할 수 있다지만 연필을 쓴느 느낌 속에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편지만은 못한 것 같습니다. 정보화에 따라 빠른 효율성이 강조되어 신속하게 정보가 오가지만 인간의 감정과 감흥이 없는 것 같아 못내 아쉽군요. 컴퓨터에서 음악소리를 듣고 있다면 한번쯤 예전에 사용하던 구닥다리 카세트를 이용해 최신곡을 들어보세요. 또다른 마력에 빨려 들어갑니다. 음주가무가 그래서 인간사 희노애락에 최고치가 이런 연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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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잘살믄‥’ 저자 전우익선생 별세

  • 등록일
    2004/12/21 09:15
  • 수정일
    2004/12/21 09:15

아~ 또 한 사람의 마음 따스한 이가 인생의 소풍을 끝냈구나... 안타깝다.

 

자연 감싸안은 삶 깊은 울림

“생나무보다는 고사목, 좀 썩은 나무, 집 뜯은 나무가 좋다는 걸 알았어요. 사람도 어느만큼 썩어야, 풍상도 겪어야 사람맛 나는 사람이 되듯이요.”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등의 수필집을 통해 자연의 결을 거스르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 전우익 선생이 지난 19일 아침 6시쯤 경북 봉화군 봉화읍 해성병원에서 지병으로 숨을 거뒀다. 향년 79.

 

고인은 1925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에 서울에서 중동중학교를 졸업한 뒤 경성제대에 입학했으나 혼란스런 정국 탓에 중도에 학업을 그만두었다. 1947년부터 ‘민청’에서 청년운동을 하다 사회안전법에 연루돼 6년 남짓 옥살이를 했고, 출옥 뒤에도 보호관찰 대상이 돼 65살 때까지 주거 제한을 받아 고향 밖을 나가지 못하고 부자유하게 살았다.

봉화군 상운면 구천리에서 밭농사 짓고 나무 키우며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외에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 <사람이 뭔데> 등 3권의 책을 펴내 사람과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거짓 없는 삶의 참모습을 알렸다. 고인의 글은 투박한 농사꾼의 이야기뿐이지만, 소박한 삶 속에 진실한 삶이 있음을 아무런 꾸밈도, 왜곡도 없이 보여주었다. 신경림 시인은 고인을 가리켜 “깊은 산속의 약초” 같다고 했다.

 

“세상에 나는 물건을 사람만이 독식해서는 안 되지요. 새와 곤충이 없이 사람만이 산다면 얼마나 삭막할까요? 그런데도 혼자 먹겠다고 야단이지요.”(<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2002년 9월 <문화방송> ‘!느낌표’에서 고인을 만나 그의 진솔한 삶이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지난해 타계한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과 평생의 벗으로 우정을 나누었으며,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과도 각별한 친분을 가꾸었다. 무명씨를 뜻하는 ‘언눔’,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일꾼을 뜻하는 ‘피정’(皮丁)을 아호로 썼다. 이름을 섣불리 팔지 않고, 헛된 알맹이보다는 실한 껍데기로 살려는 뜻이 담겨 있다.

 

고인은 지난해 5월 중풍으로 쓰러진 뒤 대구 영남대병원 등지에서 치료를 받아 오다 최근 봉화군 상운면 구천리 집으로 돌아가 투병생활을 해왔다. 유족으로 아들 전용구씨 등 3남3녀가 있다. 장례식 21일 아침 8시. (054)673-6762.

 

봉화/구대선, 고명섭 기자 sunny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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