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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般)

  • 등록일
    2004/08/16 19:45
  • 수정일
    2004/08/16 19:45
 만해 한용운 선생님의 "님의 침묵"의 싯구절 -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會者定離 去者泌反) -  가사처럼 우리는 만남과 이별이라는 윤회(輪廻)의 영겁에 돌고 돌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이승의 삶을 죄를 닦는 수행의 삶이라 여기고 있다. 천상병 시인은 이승의 삶을 "소풍"으로 비유하였지만, 난 이승의 삶이 소풍처럼  아름답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삶은 생존과 죽음을 넘나드는 투쟁이기에...


 세상사는 이들은 나와 다르게 살아간다. 이들은 추억이라는 과거 거울보다는 내일이라는 불안정한 미래에 기대어 살아가고있다. 그래서 그들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소유와 집착, 영원불멸의 힘을 빌려 이승이 아닌 이후 삶에 대한 욕망을 목말라 한다. 이는 집착과 광신적 열망으로 발산하다. 이는 인간만이 지니고 있는 특성이다. 사고한다는 것.... 인류가 출범하고 난 기나긴 역사에서 자연숭배 사상은 이를 잘 반증하고 있다.
 
 사라진다는 것도 죽는다는 것도 다 허망하다. 만남과 이별 인연이 모진 끈에 기대어 하루하루 상상의 나래에 살아가기엔 우리내 인생이 너무 삭막하다. 그리고  우리내 부모님들 세대에게는 어제와 오늘이라는 시간보다는 내일이라는 희망에 기대어 살아 왔다. 황혼의 문턱에 들어선 지금 부모님들은 이전과 다르게 어제와 오늘에 대한 회상에 잠겨 추억이라는 낡은 앨범을 인생과 함께 정리하고 계시다. 황혼기엔 접어든 부모님들은 내일보다는 어제와 오늘에 감사히 여긴다. 인생의 고됨에서 해방되는 시기도 하다.(왁스 4집, 황혼의 문턱이라는 노래를 들어보시기를...)
 
 존재는 의식을 규정한다라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문구처럼 존재하기에 때문에 사고한다이다. 이러하기에 인간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망각의 강에 빠져 정쳐없이 떠도는 나그네이다. 슬픔, 기쁨 등 과 같은 추억은 시간이 흐름에 서서히  희미해져 버리고, 어느센가 인간의 또다른 아픔과 기쁨이라는 반복적 삶에 종속되어져 간다.
 그래서 어르신들은 시간이 약이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내일보다는 어제와 오늘에 충실하고자 한다. 나의 진행형은 "아직도"이기에...
 
 주인장의 그들이 사라지는 것.....이라는 글을 읽고 그냥 만해 한용운 선생의  시(틸타라는 식물에 대한 회상 글을 보면서 주인장의 말에 대해 동감할 수 있었습니다.)
 
 천상병 시인의 시하나 올려봅니다.
 
           "새"
 
                                     천상병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은
 내 영혼의 빈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않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가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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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에 와서....

  • 등록일
    2004/08/16 19:33
  • 수정일
    2004/08/16 19:33

큰아버님이 위암으로 서울 원자력병원에 약 두달간 입원한후 시안부 인생을 선고받고 함께 시골에 내려왔다. 고향인근 목포에 있는 병원에 입원하여 그 동안 삶을 정리할려는 것 같다. 그래 서 인지 형, 누나, 나, 동생들의 만류에도 고집을 부리신것 같다. 아픈 몸이나 잘 보살펴야 하는데....
 
시골에도 인터넷이 연결되어 주인장 게시판에 글을 끌적여 본다.

 

난 꼬인 인생인 것 같다.



그 동안 큰아버님이 서울 병원생활로 사무실과 병원을 오고가며 간병하느랴 다른 일에 신경을 쓰지 못하였다. 당시 나에게 중요한 것은  큰아버님이 병이 낳을 수 있냐 없냐가 중요하였다, 그런데 암이 초기가 아니라 거의 손을 쓸 수 없는 말기 판정이 나온 후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현 의학기술로는 아무런 손을 써볼 수 없다는 현실이 야속하기만 하다. 돈이 있어도 고칠 수 없는 병이기에 우리 가족의 무기력은 가슴이 쓰리다 못해 심장이 찌저질 듯한 고통이다.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는게 이런거구나. 그냥 찹찹하다.
 
결혼도 하지 않고 홀로 사신 큰아버님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우리 형제을 돌봐주시고 늘 아버지, 어머니 처럼 든든한 존재였는데,  아무런 손 써보지도 못하고 이별을 준비하여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만남이 없는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런데 더욱더 마음이 아픈건 큰아버님이 우리 신세를  질까봐 온몸의 통증이 오는 와중에도 자신의 몸을 돌보기는 켜녕 고향 병원에 내려가신다고 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 누나와 내가 병원비로 이야기한 것을 밤에 들으셨나 보다. 대략 원자력병원에 두달 입원 하였는데 함암치료 그리고 여러 정밀검사를 한 비용이 총 3800만원  정도가 청구되었다. 간병인비는 대략 380만원 이 비용이 부담스러 우셨나 보다. 그리고 이후 임종하시기 전 까지 내려가서 드는 비용이 대략 1개월 마다 1000만원이 들어간다. 서울의 경우 1500만원정도가 월 평균 들어갔다(간병인비 제외). 비용은 걱정 말라고 그랬는데....  마지막을 고향 근처에서 보내고 싶은 것 같아 내키지는 않지만 승낙하고  내려왔다.
 
당장 내려와야 해서 집을 급매로 팔고, 대출을 받아 병원비와 몇 개월치 병원비를 형, 누나, 동생들과 모왔다. 난 그나마 전세로 사는 집에  있어 그냥 집을 팔았다. 큰아버님에게 받은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큰아버님의 병이 나을 수 없다는 것이 참담할 뿐이다. 그래서 매주 서울과 목포를 오가기로 하였다.
 
 내가 사랑하는 이와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이별을 한다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부모님을 가슴속에 묻고, 또 큰아버님을 가슴 속에 묻어야 하는게 무섭고, 서글프다.
 
 성실, 정직한 삶을 살았고, 남에게 늘 배풀기만 한 삶을 살아 남들에게 해가 되지 않고 살았는데 왜 이리도 빨리 삶을 정리해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고, 불공평하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더 이상 손 쓸수 없는 현실, 진통제와 항암제 없이는 늘 고통의 나날을 지탱할 수 없다는 것이 나에게 놓인 분명한 현실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년 몇번 내려오던 고향행이 마음만 무겁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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