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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 공습에 부상당한 이북 의사부부를 두고
이란 자막을 단 SBS 가증스럽다.
이북도 그랬을까? 당시 독일 탄광에서 일하는 이남 광산노동자들을 보여주면서
“몸을 파는 남조선 외화벌이꾼”
이라고?
등치 큰 사람의 손에 맞게 만들어진 기구를 들고 혹사 노동하는 이남 광산노동자들을 보고 당시 주독한국대사관에 노무관으로 나왔던 유성근씨는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이북으로 망명했다고 어떤 광산노동자에게서 들었다.
왠지 구역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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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야수와 달리, 다친 사람을 보면 마음이 먼저 아프고 최소한 어떻게든 상처가 아물기를 바라지, 쉽게 덮칠 수 있는 먹이감을 찾았다는 듯 행동하거나 말하지 않는다. 아니 야수는 아프고, 병들고, 넘어진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찾아 다닌다.아픔덩어리가 되어 나를 바라보는 몸은, “ 이 몸은 이것이다, 저것이다”라는 모든 지시관계와 의미관계에서 벗어나 오직 아픔만으로 바라보는 몸은, 모든 것을 지시관계와 의미관계에 두는, 근원적으로 모든 것을 내 먹이감으로 보는 내 눈을 씻어 나 역시 오직 아픔만이 되게 한다. 아픔은 몸과 몸 사이 뛰어넘을 수 없는 거리를 뛰어넘게 해주는 움직임이다. 이런 움직임 안에 사람이 있다. 오직 여기에 인류와 인륜이 있다. 이 아픔은 “그저 움직이는 물건”이라고 생각했던 말 못하는 동물과의 간격도 뛰어넘게 해주는 움직임이다. 말없는 잡초와도 연대하게 하는 움직임이다. 신이 있다면 신과 사람간의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움직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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