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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말하기란?

 

말은 의식의 표출과 동시에 은폐다. 그리고 그 은폐기제의 원리와 작동을 추적하는 게 심리학 혹은 정신분석이고.

 

“위안부 피해 이용녀 할머니”

 

심히 불쾌하고, 읽으면 읽을수록 화가 치밀어 오르게 하는 표현이다. 그리고 이곳 진보넷 채널광장에서도 아무런 비판 없이 위의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더 화난 이유다.

 

왜?

 

1. 

순전히 내 개인의 문제일 거다. 내 안에 있는 할머니의 이미지는 절대 “이용녀”가 되지 않는다. “이용녀”라는 수식이 있을 수 없다. 어렸을 때 옆에 계셨던 할머니는 항상 정숙한 모습이었고,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이용, 거래 등등 이 세상의 말이 통용되지 않는 곳에 계셨다. 누가 알겠소만, 살아버린 날들이 살날들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되어 시골에 갔을 때 가장 반가운 모습은 하얀 고무신, 하얀 저고리에, 하얗고 검은 머리를 비녀로 정돈한 정숙한 모습의 할머니였다. 지붕만 달랐지 옛 초가집 모습의 집에서 내외분이 깔끔하게 생활하고 계셨다. 

 

2. 

“이용”은 도구의 대명사다. “이용녀”는 주체가 없는 도구일 뿐이다. 주체성을 박탈하는 이 말은 강제와 폭력을 은폐하고 있다. 폭력에 의해 끌려간 할머니의 주체성을 다시 한 번 박탈하고 있다.

 

3. 

“이용녀”는 일본이 씀직 할 만한 말이다. 조선의 여성들이 “이용당하긴”했지만 강제와 폭력은 없었다고. 마치 돈 벌게 해주겠다는 거짓말로 다른 나라 여성들을 서구에 데리고 와서 성매매를 강제하는 것과 동일시하는.

 

그럼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일제에 의해 끌려간 할머니의 주체성이 부각되어야 한다. 일제를 견디고 살아남으신 분들이시다. 이용당하신 분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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