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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서설 §11

 

(§11) 덧붙이자면, 우리 시대가 새로운 시대의 탄생을 맞이한 과도기임은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다. 정신은 그가 현존하고 또 현존하는 그 정신을 상상하는[1] 지금까지의 세계와 결별하고 이를 과거의 것으로 침강시키는 사업을 세우고 자신의 모습을 때려 고치는[2] 일에 몰두해 있다. 정신은 절대 쉬는 법이 없이 운동하면서 전진과 전진을 거듭하지만 이것은 잘 감지되지 않는 법이다. 이것은 마치 태아가 조용히 영양소를 섭취하면서 오랫동안 양적인 성장만을 거듭하는 유유자적함을 최초의 숨결로 단숨에 중단하고 질적 도약을 이루어 보란 듯이 신생아로 태어나듯이[3], 교양을 쌓아나가는 정신도[4] 천천히 그리고 소리 없이 새로운 형태로 무르익어 가면서 앞서간 세계가 만들어 거주한 집의 이 부분 저 부분에서 미세한 것들을 하나씩 쉬지 않고 빼낸다. 그러나 집의 흔들림은 직접 감지되지 않고, 단지 그 조짐이 우발적인[5] 징후로 감지될 뿐이다. 가벼운 것만 추구하고 그러기 때문에 모든 것을 가볍게 여기는 행동[6], 그러기에 또한 [진지함이 없는] 권태로만 가득찬 마음이[7] 기존세계에 틈틈이 끼어 들어가 뿌리를 내리고, 알 수 없는 뭔가에 대한 종잡을 수 없는 느낌이 만연하게 되는데, 이런 것들은 뭔가 다른 것이 문 앞에 와 있다는 것을 미리 알리는 전조다. 전체의 외관은 그대로 놔두지만 그 속은 점진적으로 산산조각 내는 이 프로세스는 번쩍하는 출현으로[8] 중단되고 단숨에 새로운 세계의 상을 우리 앞에 세워놓는다.



[1] 원문

[2] 원문 변혁

[3] <양의 질로의 전환>(„Umschlagen der Quantität in Qualität“) 이야기되는 대목이다.

[4] 원문

[5] 원문 <개별적인>

[6] 원문

[7] 원문

[8] 원문 .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하이든의 성담곡 <창조> 1 <혼돈의 상상>(Vorstellung des Chaos)이 떠오른다. 우르렁 거리는 혼돈상태에서 높은 C와 함께 번개가 번쩍하듯 빛이 생성되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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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서설 §10

 

(§10) 이와 같이 학문은 포기하고, 학문대신 시시콜콜한 것에 만족하고 옹졸하고 인색한 사람이 뭔가 드높은 것에 취하여 휘황찬란해진[1] 상태를 학문보다 더 차원 높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은 제발 그만두었으면 한다. 이렇게 마치 신의 계시를 받은 예언자나 되는 양 그런 말투를 일삼는 사람은 자기가 정말 중심을 지키고 심층까지 파고 들은 상태라고 착각하고[2] 명석함을[3] 경멸하고 意圖적으로 개념과 필연성을 멀리한다. 이런 것들은 단지 보잘 것 없는 무의미한 이승에서[4] 겨우 연명하는[5] 반성일 뿐이란다. 그러나 넓다고 자못 자랑하지만 텅 빈 것이 있듯이 깊다고 엄숙해 하는 것이 텅 빈 경우도 있다. 무의미하게[6] 이리저리 갈라지고 또 갈라지기만[7] 하는 힘만[8] 있지 그 갈라진 가지들을 다시 하나로 뭉치게 하는 힘은 없는 실체가 [9] 있듯이 역으로 제자리 걸음하면서 방방 뛰기만 하지[10] 밖으로 뻗어나가 내용을 갖추지 못하고 그저 안으로만 뻗어나가는, 그러기 때문에 껍데기일 뿐인 힘도[11] 있다. 정신이 발휘하는 힘은 그 크기가 자신을 밖으로 내치는[12] 힘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그 깊이 또한 마찬가지로 자신을 전개하는 가운데[13] 중심에서 벗어나 무한히 뻗어나가 자기중심과 완전히 동떨어진 상태가 되어 자신을 상실하고 헤매는 상태에 도전하는 것 이상이 될 수가 없다. 여기에다 몰개념적이고 [침강한 신적] 실체에 기대어 있는 지가, 신들려, 자기의 특성은[14] 두루 계신다는 신적 존재에[15] 침강시키고 그 안에서 참답고 성스럽게 철학하고 있다고 내세우지만 그것은 사실 지가 신 앞에 부복(仆伏)해 있다기보다는 절도와[16] 자기가 나아가야 할 길은[17] 모두 상실한 나머지 우왕좌왕하여 자기 안에 우발적인 내용이 난무하게 내버려 두는가 하면 내용 속에서도 독단만 난무하게 내버려 둔다는 이면을 은폐하기 위한 짓이다. 아무렇게나 부글거리는 실체에[18] 자신을 내맡기는 사람들은 이렇게 자기의식을 뭔가에 휩싸이게 하고 오성을 버림으로써 이젠 잠을 자는 가운데 신의 지혜를 받기에 마땅한 신의 무리에 속하게 되었다고 착각한다[19]. 그들은 정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잠자는 동안[20] 뭔가를 받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이 줄줄이 토해내는 것은 꿈 같은 이야기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1] 원문 <Trübheit>. 서론 §3 역자주 28 비교. 의 의미는 <혼탁>이지만 괴테의 색채론에 따르면 이런 <혼탁>을 매개로 하여 다사로운 색채가 나타난다. 이 색채론에 기대어 <Τrübheit> <휘황찬란>으로 옮겨보았다.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히로뽕먹고  홍콩간 상태다.

[2] 원문

[3] 원문 . Horos , <한계를 짓다><정의하다>라는 말에서 파생된 것으로서 <경계선><정의/definition>이라는 의미가 있다. <규정성>으로 번역하지 않고 정의가 갖춰야 할 <명석함>으로 옮겨보았다.

[4] 원문

[5] 원문 <집같이 않는 집에서 살다><비참한 삶을 살다>라는 의미가 있다.

[6] 원문 . 무슨 말인지 영 알아먹기 힘들다. “유한한 다양성”?? 다양성을 이야기 하면 보통 거꾸로 끝없는 다양성이라고 하는데. 생각을 고쳐 를 다시 살펴보자. <목적>이라는 의미로서의 가 눈에 뜨인다. 예를 들어 쉴러의 질문Ende studiert man Universalgeschichte?>(무슨 목적/의미로 세계사를 공부하는가?)에서 <목적><의미>라는 의미를 갖는다.

[7] 원문 ssen>. 접두어 에 있는 의미를 <갈라지고 또 갈라지는>과 같이 반복을 통해서 살려보았다.

[8] 원문 . 여기서 은 분석철학에서 말하는 <외연>은 적적하지 않는 것 같다. 밖으로 뻗어나가는 힘이라고 해야겠다.

[9] 원문

[10] 원문 . 독어에 이런 표현이 있다. lauter Kraft nicht laufen.><그는 힘이 넘쳐서 걷지 못한다.> 보디빌딩으로 몸이 근육으로 부풀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힘뿐이지 그것을 조정하여 밖으로 나가는 운동이 되게 모른다는 것이다.

[11] 원문 . <안으로 뻗어가는 >

[12] 원문 <Äußerung>. <외화>의 의미가 있다. <감각적인 확신>에서는 <Äußerung><말로 표현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13] 원문

[14] 원문

[15] 원문

[16] 원문 . 어려운 개념이다. 고대그리스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덕(Tugend, Virtus, Arete)에 속함. 델피 아폴로 신전 입구에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hon)<절대 절도를 넘지 말 것>(mäden agan)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헤겔은 <논리학>에서 를 고대그리스에 기대어 이것을 유한성과 무한성의 매개로 보고 반성철학의 악무한”(惡無限, schlechte Unendlichkeit) 대립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반성철학에서는 무한이 유한자가 다다를 수 없는, 수학에서 n+1를 반복하듯이 똑 같은 것만을 반복하기 때문에 진정한 무한에 다다를 수 없는 그런 무한으로 사유되는데 헤겔은 이것을 악무한이라고 규정한다.

[17] 원문

[18] 원문

[19] 원문

[20] 원문 . <꿈속에서>. 독어에 이런 표현도 있다. <아무런 노고 없이/꿈속에서와 같이 손쉽게 [주기도문과 같이] 달달/줄줄 외어둔 것을 말하듯이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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