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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도시보다 붉은 도시가 더 좋다

hongsili님의 [전술과 실용에 대한 질문 [경계도시2]] 에 관련된 글.

베를린은 1998.3 행정구역개편이후 현재 12개 행정구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중 Temphof-Schöneberg행정구역으로 합병된  Schöneberg이란 지역이 있는데, 여기에 붉은 섬“(Rote Insel)이라고 불리는 지역이 있다. 관광거리가 될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옛 가스공장의 가스를 저장했던 가스미터(Gasometer)만 딸랑 서있다. 주로 노동자가 거주하고 또 그랬던 지역이라 볼만한 건물도 없다. 그런데 나는 기분이 들쑥날쑥하면 그냥 이 지역을 한번 돌아본다. 철로로 에워 싸인 삼각지라 섬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러면 붉은이라는 수식어는 어디서 유래하는가. 1878, 당시 사민당(SPD)은 사회주의자법(Sozialistengesetz, 사회주의운동을 진압하려는 목적으로 1878.10.19제정된 법)에 의해서 불법화된 상태였는데, 황제 빌헬름 1세가 두 차례 테러 후유증을 치료하려고 휴양지에 갔다가 몇 달 후에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오게 된다. 시민은 북독연맹 흑백적기를 흔들면서 황제를 맞이했다. 그런데 이붉은 섬지역에서 살던 맥주도매상 베커(Bäcker)라는 사람은 붉은 기를 창문에 꽂아 놓았다. 이것이 죄가 되어 그는 국적을 박탈당하고 추방되었다. 이것이 이 지역이 붉은 섬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가 되었다고 기젤라 벤젤(Gisela Wenzel)베를린 역사[찾기]사업“(Berliner Geschichtswerkstatt) 1987년 발간한 붉은 섬 베를린-쇠네베르크. 도시역사를 조명하는 이야기 조각들“(Die Rote Insel Berlin-Schöneberg. Bruchstücke zu einer Stadtgeschichte)이란 책에서 말한다.

이 지역은 원래 노동자, 기층민중이 거주하던 지역이었고 사민당, 공산당, 독립사민당을 대폭 지지하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당시 중요한 운송 수단이었던 철로를 지키는 연대가 또한 주둔해 있었기 때문에 극우 독일민족당을 지지하는 군 소속 장교가족과 첨예한 대립을 보이는 지역이기도 했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지역이 나치가 득세하고 독일을 지배하는 세력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끝날 때까지 SA(나치 돌격대)가 함부로 이 지역에 들어오지 못하고, 들어오더라도 중무장을 하고 떼거지로만 신속하게 들어왔다가 다시 빠져나갔다는 사실이다. 또 율리우스 레버는 이 지역에 연탄상인으로 잠복해서 반나치운동을 하기도 했다.(1944.7.20 히틀러암살계획과 연계되어 있던 레버는 1944.7.5 체포되어 동년 10 20일 사형선고를 받고 1945.1.5 베를린 플뢰첸제 교도소에서 사형된다.)

 

경계도시보다 붉은 도시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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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왈 공자왈 하지 말자

오늘 정신현상학 서론 §1에 올라온 덧글을 보면서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점 두 가지가 떠 올라서 이렇게 몇자 적어본다. 하나는 해부학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헤겔이 학자행세를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는가와 관련되어 있다. 우선 후자부터 보자면 헤겔은 학자행세를 하는 사람을 호되게 질책한다. 가끔 민망할 정도다. 보통 사람들은 상대방을 반쯤 죽였다라고 생각하면 흐뭇해 하고, 마치 사냥꾼이 짐승의 외피를 벗겨 보란듯 하듯이 자랑할 것이다. 그러나 헤겔은 그렇지 않다. 상대방의 천박하고 진부한 생각이 그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의식의 발전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자리매김한다.  이것은 정신현상학 서설 3문단에서 4문단으로 넘어가는 데에서도 볼 수가 있다. 그래서 헤겔의 비판은 상대를 죽이는 비판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뿔, 외피 등 노획물을 벽에 걸어놓는 성주도 아니고, 그런 사진을 벽에 걸어놓는 소시민도 아니다. 헤겔은 그 정도가 아니다. 헤겔이 하는 비판을 소박한 차원에서 굳이 비교하자면 차라리 구제하는 비판(rettende Kritik)에 가깝다. 헤겔은 외피에 만족해 하는 사람이 아니다. 차분히 않아서 상대를 해부해 낱낱이 살펴보는 사람이다. 이 점에서 헤겔은 데카르트의 자세를 철저하게 이어받은 사람이다. 다음 이야기는 Alfred Schmidt강의에서 주어 들은 이야기다. 하도 오래 되어서 세부적인 내용은 제시할 수 없는데, 대충 이런 이야기다. 하루는 데카르트를 방문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데카르트의 집에 가면 책이 억수로 많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책 한 권이 없었단다. 의아해서 데카르크에게 책이 없냐고 물었더니 책을 읽고 들어오는 중이라고 대답했단다. 나가서 데카르트는 해부하고 있는 짐승을 가리키면서 그것이 자기 책이라고 했단다.

 

맹자왈 공자왈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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