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EU가 마셔야 하는 쓴 잔

ou_topia님의 [유럽이 북아프리카의 일을 망쳐놓았다] 에 관련된 글.

 

황소의 등을 타고 새 땅을 밟은 "유럽(Europa)이 "EU"가 되어 마셔야 하는 잔은 이런 것이 아닐까?

 

 

동영상

 

 

“내가 우리에서 우유 짜 왔어. 아주 쉬웠어”

 

“어, 소들은 다 들판에 나가 있는데?”

 

“아니야, 아직 한 마리 남아있어.”

 

“어, 그건 황손데.”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유럽이 북아프리카의 일을 망쳐놓았다

독일 제2국영방송 ZDF의 뉴스편집실 „호이테“(heute.de) 자료.

„호이테“가 독일정부자문연구소 SWP의 연구원 아네그레트 벤디이크(Annegret Bendiek)와 2011.3.11 진행한 인터뷰.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소개한다.

 

유럽이 북아프리카의 일을 망쳐놓았다.“

 

호이테: 다니엘 콘 벤디트는 유럽이 리비아 및 다른 북아프리카의 일을 망쳐놓았기 때문에 책임지어야 한다고 했다. 옳은 말인가?

 

아내그레트 베내디이크: 대북아프리카정부에 대한EU 정책은 망친 것이다. 사실 유럽의 대 리비아 및 여타 북아프리카 국가에 대한 조치는 자주 완전히 무대포식이었다(undifferenziert). 개혁부재와 인권침해에도 불구하고EU는 리비아와 알제리와의 관계를 심화하였다. EU 가입국 정부들이 리비아를 유엔 인권위원회 가입국으로 선출한 것은 잘못이었다. 이집트도 반국제테러전에서 많은 EU 가입국들의 긴밀한 협조자였다. 이와 같은 정책이 이집트, 리비아 등의 국가에서 민주적인 구조가 부재하게 된데 공동책임이 있다. 북아프리카의 젊은 세대는 이젠 민주적인 사회질서와 경제적으로 미래가 있는 전망을 원한다. 유럽은 어떻게든 이것을 지원해야 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아랍지역의 근본적인 변혁은 아무런 대책이 없는 유럽을 느닷없이 덮쳤다는 느낌이 든다. 유럽은 오랫동안 북아프리카 독재자들의 궁전에 머리쪼아리고 드나들지 않았는가? EU가 자유를 갈망하는 운동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가?

 

EU 집행부가 유럽 이웃국가의 시민사회를 어느 정도 지원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집행부가 과거에 인권에 저촉되는 타협을 너무 많이 했다고 스스로 자백하고 있다. EU는 현지민주세력을 지원하는데 있어서 충분하지 못했다.

 

튀니지와이집트에서EU는 마지막 무렵에 들어서 겨우 항쟁운동의 편에 서게 되었다. 리비아와 관련해서도 오랫동안 주춤거렸다. EU가 아랍권에서신뢰를 받을 수 있겠는가?

북아프리카에서의변혁은유럽을[동유럽]공산주의의붕괴와유사한 난제와(Herausforderung) 맞서게 하였다. EU의 대답은 마땅히 개방이어야 한다. 그런데EU 가입국들은 기존 난민억제정책, 테러억제정책, 에너지정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유럽의 가치에 역행하는 것이다. 유럽은 마땅히 다음과 같은 신호를 보내야 한다. 우리는 너희 아프리카를 더 이상 오일파이프라인이 있는 우리 뒷마당이 아니라, [우리와 유대하는] 미래의 문화, 경제구역으로 본다.

 

수년 전부터 북아프리카에EU의 지원으로 만든 난민수용소를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유럽이 이런 수용소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관심을 보인 적이 있었나?

 

„Pro Asyl“, „Human Rights Watch“ 등NGO는 난민캠프의 폐간을 지적하고 여론화하였다. 제네바 난민협약과 유럽인권협약의 규정은 준수되어야 한다. 그러나 난민과 이주자들의 생활조건에 결정적인 것은EU 가입국이[이 문제 관련] 더 연대하는 것이다. 난민문제는 남유럽EU가입국들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EU 가입국 모두가 난민을 받아들이고 인간다운 삶을 향유할 수 있는 처소를 마련해야 한다.

 

리비아 중앙은행이 원유수출로 인한 수익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은 확연하다. 그런데EU의 대리비아 재제조치에는 중앙은행이 빠져있다. 중앙은행을 제제대상에 추가하는 것이 더 의미 있지 않겠는가?

 

EU는이미리비아 정부인사에 대한 재제조치를 다방면으로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EU는재제조치를여타 지배엘리트와그들의 재산으로 확장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리비아 국가펀드와 중앙은행도 재제대상이 된다. EU는카다피가 국가수반으로서 향유하는 주권자의 면제를 지원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원유수입 지불을 동결하여 자국민을 상대로 하여 전쟁하고 있는 카다피의 돈줄을 끊을 수도 있겠다.

 

왜 아직 그렇게 하지 않는가?

 

이탈리아와 말타가 더 강력한 조치에 주춤하기 때문이다. 리비아 국가펀드와 중앙은행이 이탈리아 최대은행Unicredit와 축구클럽 유벤투스의 지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EU가 군비정책도 제고해야 하지 않겠는가? EU가 뭐라고 하든 결국EU의 무기로 카다피가 자국민을 겨누고 있지 않는가?

 

2003년 [대리바아] 무기엠바고를 해체한 것은 문제가 있었다. 지난 해만 보더라도EU가 리비아 독재자에게5억 유로에 달하는 무기를 팔았다. [2010년 가을] 흑.황 연정합의서에서 무기수출지침관련 더 이상 „제한적인“이란 표현을 쓰지 않고 „책임감 있게“란 표현만 쓰고 있다. 무기수출인가가 EU내에서 조율되어야 한다는 빌미아래 독일의 제한적인 무기수출지침이 느슨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보다시피 여기서도EU를 도구화하여 EU내 조율이란 뒷문으로 무기수출정책관련 원칙을 희석시키고 있다. 무기수출에 있어서 자제와 투명성이 더 요구된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카이스트 원숭이 교육 시키고 있나?

사람과 원숭이를 유전자적으로 비교해 보면 차이가 거의 없다. 수백만 년 전에 길을 달리했지만 그 유전자는 아직도 99% 똑같다. 근데 왜 사람만 언어를 사용하는 커뮤니케이션, 사회적인 조직, 기술을 투입한 생산방식 등과 같은 복합적인 구성체를 가능하게 한 인식능력을 개발하게 되었는가?

 

이에 대한 새로운 답을 라이프찌히 소재 진화인류학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제시하고 있다.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인간문화 발전을 이해하는 열쇠는 어떻게 배우는가에 있다는 전제하고 원숭이와 사람간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조사. 결과 사람과 원숭이간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원숭이는 다른 원숭이를 흉내내면서 배우는데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것. 원숭이의 경우 실생활을 마스터하는데 흉내내면서 배우면 충분하다는 것. 하지만 „문화“란 것과 비교될 수 있는 것은 이런 흉내로 발전될 수 없다는 것. 반면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 배울 때 그 사람이 처해 있는 상황에 자신을 이입시켜 배운다는 것. 그래서 사람이 배우는 방법은 흉내내기가 아니라 „같이 생각하기(Mitdenken)“, „같이 경험하기(Miterleben)“라는 것. 이런 식으로 사회적 기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생성되고, 세대적으로 전수되고 확대되는 문화적 전통이 생성된다는 것. 사람은 배움에 있어서 사회적 요소를 더 중요시 한다는 것. 즉, 사람은 뭔가를 하는 다른 사람을 관찰할 때 그가 그걸 어떻게 하고, 왜 하는가에 집중하면서 그 사람 안으로 자신을 완전히 이입시킨다는 것.

 

자료: 2011.4.7  Deutsche Welle

 

          Suhrkamp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독일 빈집점거운동

ou_topia님의 [적법, 불법, 똥은 마찬가지] 에 관련된 글.

 

스폰티스(즉흥행동주의자), 슐라피스(기성세대가 정신이 해이해졌다고 비판하는 기성세대거부자), 카오텐 (질서를 모른다고 비판하는 기성세대가 쓰는 말). 새로운 청소년.청운동의 심리적, 정치적 전망(Spontis, Schlaffis und Chaoten. Psychologische und politische Perspektiven der neuen Jugendbewegung)

 

칼-미샤엘 쿤쯔(Karl-Michael Kuntz)

 

빈집점거는 정치계주류와 서독의 다수를 이루는 다소 보수적인 기성세대에겐 불안한 것이고 자극적인 것이다. 그러나 아래와 같은 사실은 명백하다. 즉, 빈집점거는 거주공간을 찾아 헤매는 떠돌이들의 고립된 행위가 아니라 종이쪽지에 불과한 정책과 요구에서 벗어나 행동으로 옮기는 대안운동을 구체적으로 가시화하는 시도임과 동시에 그 결정체다. 또한 젊은 유권자의 지지로 가능했던 녹색당 혹은 ‚다색리스트‘의 [선거에서의] 약진은 기존3대정당의 자신만만한 태도를 뒤흔들어 놓았다. 이렇게 빈집점거는 삶, 사회, 민주주의, 그리고 미래에 대한 토론과 입장을 강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 질문이 야기된다. 왜 지금까지 박력 없다는 냉소를 받아왔던 청소년.청년들이(Schlaffis) 빈집을 점거하고, 아주 다양한 대안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로 낙인 됨에도 불구하고 병역을 거부하게 되었는가? 왜 하필이면 빈집점거가 대안적인 삶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출발점으로 대두되었는가? 빈집점거와 시간적으로 평행을 이루면서 아니며 내용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진행되는 정치운동이 단지 타다 금방 꺼지는 짚불에 불과한 것인가? 주류 정당은 불이 꺼질 때가지 기다리거나 아니면 „운동“이 식어 결국 흔적 없이 사라질 때까지 문제를 질질 끌고 가기만 하면 되는가? [기존체제에] 순응하는 보수다수와 새로운 것을 즐거이 받아들이는 대안주의자들간 이념적 차이가 얼마나 깊고, 근본적이며, 견고한가? 이들간 소통과 공존에 있어서 문제는 무엇이고 어떤 가능성이 있는가? 한마디로, 대안운동에는 어떤 원인, 의미, 그리고 미래전망이 있는가?

 

이 글에서 대안운동의 특수한 성격을 스케치하고, 대안운동의 동기를 아브라함 매스로우의 욕망모델에 기대에 앞으로 전개될 다양한 발전가능성을 스케치해 볼까 한다.

 

대안운동은 다양한 흐름과 프로젝트그룹이 합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평화운동, 반핵운동, 여성운동, 폐가점거수리운동, 도시의 거주지역주민운동, 자율관리 청소년센터, [심리]치료그룹, 시민권운동, [자율적인] 유치원 등 말이다. 동시에 아주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이념적인 흐름들이 합류하여 대안운동이 들끓는 역동성을 지니게 한다. 공동행동, 집결장소, 공동매체 등으로 이어져 있는가 하면 아주 섬세한 뉘앙스 차이로 서로 간격을 두거나 내용을 놓고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그리고 시민인니시어티브와 같은 그룹에서는 주류사회의 기구들과의 관계가 매우 유연하고 유동적이다. 수많은 그룹이 중점을 달리하여 다양한 타개대상을 설정하고, 다양한 뉘앙스와 색채를보여주고 있지만 그래도 핵심적인 가치관에서는 몇몇 통일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성장주의신봉(Wachstums-Fetischismus), 자연을 착취하고 인간소외를 야기하는 과대한 소비, 최첨단으로만 치닫는 기술[문화], 후견으로 행세하는 관료주의 등의 거부에는 통일되어 있다. [긍정적이 면에서] 그들은 다 사회적이고 개별적인 자기실현, 내적 정신적 그리고 창조적인 능력 개발 및 발휘에 찬성한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대안주의자들에게는 „존재“가 „소유“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정서Grundstimmung)는 특히 빈집점거에 명백하게 가시화된다. 건축물을 보존하여 자원과 노동을 무의미하게 소모하는 것을 방지한다. 거주공간을 수리.복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개발하고 자기실현적인 노동을 한다. 돈 지랄하고 돈 드는 사치대신 요령을 살린 창조성이 들어선다. 자율적인 자기노동으로 타율적인 노동을 줄인다. 동시에 빈집점거는 인간의 기본욕구, 즉 지붕아래 살려는, 물질적으로 보호된 공간에서 살려고 하는 욕구에 역행하는 소유권제도를 멀리하고 경멸한다. 마지막으로 빈집점거는[파괴적이지 않고] 형성적인 항쟁을 가시화하는데 몇몇 되지 않는 가능성의 하나다. 군비확산, 원전, 고문, 검열 등 구체적인 경험세계에서는 가시화되지 않는 다양한 폐해와 위협에는 시위 외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반면 거주공간을 파괴하는 것은 점거 후 복구.수리를 통해서 부조리한 짓이라는 것을 백일하에 들어나게 할 수 있다. 점거 후 복구.수리해서 사는 사람들을 내쫓는 행위는(원전설립을 위한) 토지를 보호할 목적으론 경찰을 투입하고 거주공간을 스스럼없이 파괴하는 것은 내버려두는 이치에 어긋나고 반인간적인 시스템의 자세를 빼도 박지도 못하게 고발하는 것이다. 이럴 때 어쩔 수 없다고 매번 등장하는 „사태적 강제“가 허위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이치에 맞지 않는 상황은 정치인들이 만든 법과 세제로 가능하게 된바, 역시 그들이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정치적인 의지가 전제되어야 하지만 말이다. 안 그래도 법률가들은 [„그런걸 어째“하는] [하버마스의 감초인] ‚사실적인 것의 규범력‘(normative Kraft des Fakischen)을 관철하는 데는 도가 터 항상 그 근거를 마련하는 길을 찾아낸다. 이런 상황에서 실천적인 관철력, 즉 이론의 실천가능성을 백일하에 드러나게(anschaulich) 하는 빈집점거운동이, 관성적인 형태를 넘어선 실천형태가 대대적인 공.동조를 받으면서 정치적 영역에서까지 성과를 이룩하게 되었다.

 

과반수 이상의 독일시민이, 정확하게 51 %가 여론조사에서 빈집점거에 동조한다고 대답했다. 이 여론조사는 보수적인 엘리자베트 뇔레-노이만 교수가 소장인 알렌스바흐 여론연구소가1981년 초에 실시한 것이다. 31%는 이해가 안 간다고 대답하고, 18%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좋을지 모른다고 대답했다. [중략] 마침내 전통적으로 국가권위에 허리를 굽히는데 익숙한 시민이 최소한 „출입금지“란 푯말이 서있는 잔디밭에 새로운 사람이 등장하는 것을 관대하게 보게 된 것이다.

 

(이어짐)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적법, 불법, 똥은 마찬가지

„적법, 불법, 이러나 저러나 똥은 마찬가지“(„Legal, illegal, scheißegal").

 

이 구호는1970년대 이후 생활 자결.자치권을 주장하면서 빈집을 점거하고 농성하는 학생 및 청년들이 용역깡패를 동원한 부동산소유자와 그 집행인 경찰에 대항하여 외쳤던 구호. 전통적인 거주공간을 다 철거시키고 현대화한다는 명목아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나가게 강요하고 폐허가 되게 방치해서 싹 쓸어버릴 수 있는 빌미를 만들려고 한 국가권력에 대항하여, 그리고 이런 틈에 독일 세제의 구멍을 악용하여 납세의무로부터 빠져나가려고부동산놀이로 집을 사들인 저속한 자들의 소유권행사 주장에 대항하여, „폐가가 되게 소유하는 것보다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더 낫다“라는 구호로 맞섰던 무정부주의자들.

 

빈집점거운동(Hausbesetzer-Szene)은 70년대 프랑크부르트에서 시작하여 서베를린, 뉘른베르크, 프라이부르크, 괴팅엔, 함부르크, 슈트트가르트, 칼스루헤 등 독일 대학도시에서 일어나고 진행 중인 운동.

 

정부는 빈집점거청년.대학생들을 불법악성무리라고 규정하고 법을 가지고 해결하려고 했지만 그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줄기차게 강력한 투쟁 전개. 그들은 거주공간확보를 넘어서 고립대신 협력, 상상력빈곤대신 활기찬 대안, 타자에 의한 결정대신 자발적 궐기를 요구하며 투쟁. 이런 완강한 버팀에 국가권력이 처음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무력을 투입하고 급기야 대량검거로 반응.

 

돌이 날라가기 시작하고 여기저기서 유리창문들이 산산조각이 나자, 그리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주민들이 공.동조하자 거주공간결핍문제는 법과 경찰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정치적 이슈로 부상. 결국, 거주공간확보와 빈집점거문제는 더 이상 은밀하게, 그리고 당사자가 피해보는 방향으로 처리될 수가 없게 공론공간 형성.

 

원문: Stefan Aust, SabineRosenbladt, Hausbesetzer

 

시간이 나는데로 이 책을 틈틈이 소개해 볼 생각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