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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현상학 A. 의식 II. 지각; 혹은 사물과 착각 (번역 재개) -(§ 14)

[아도르노]

 

아, 이제 똥 싸고 x 까는 짓이 펼쳐지겠네. [이런 쌍욕은 항상 품위를 유지하는 아도르노가 절대 하지 않았겠지만...]. 의식아, 넌 사물을 순수한 하나로 고수하기 위해서 사물로 하여금  ‘Das Anderssein’(=‘Nichtidentische’)을 배설하게(absondern) 하지만, 사물이 똥 싸고 아무리 뒤를 닦아도 똥이 떨어지지 않는다. 의식이(헤겔이?) 사물로 하여금 똥 닦기를 어떻게 하게 하는지 보자. 역겨운 ‘본질-비본질’을 운운하겠지, 꼬리에 계급장 딱지를 달아주듯이 ...

 

[의식과 이중창을 하기 시작하는 보이스 오버]

 

이제 [의식 내재적으로] 실재하는 대상의(gegenständliches Wesen) 모순은, 갈라져, [두 개의] 분리/차별된 사물들에게로 할당된 상태다. [이렇게 모순이 하나의 사물에서 말소된 걸 두고 구별까지 말소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구별은 분명(doch) [사물이 자기를 순수한 하나로 고수하기 위해서 구별을 자기를 ‘더럽히는’ 모순(물)로 간주하고  배설해(absondern) 버렸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darum)  [그 배설물은 말소되지 않고] 유리되어(absondern) 고립된(einzeln) 사물(=Anderssein)에게 뚝(selbst)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 과정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보자(also). 분리/차별된(verschieden) 사물들은 대자적으로 정립된 것들로서(=따로따로 노는 것들로서) [이들 간에] 충돌이 일어나기 마련인데, 이때 충돌은 각 사물로 하여금 자기 자신과 분리/차별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물과 분리/차별된 것이 되게 하여 서로(자기 자신과의 대립이 아니라 타자와) 대립하게 하는 충돌이다. 이런 관계상 각 사물 자체는 일개의 구별된 것으로 규정된 상태이며 [이런 상태에서 구별이 실재한다면] 이 실재하는 [꼰대-들러리라는] 구별은(wesentlicher Unterschied) [사물 자체에서 기인할 수 없고 단지] [마치 갓난아이가 똥 싸고 자신을 똥으로 범벅되게 하듯이] 사물이 [배설하고/absondern] 직접 거느리는 다른 사물들로부터(von den andern an ihm) 취한 것이다. 그래서 이 취함은 사물 자체에(an ihm selbst) 대립이 있는 것처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대자적인 사물이 [독자적인 하나라는] 단순한  규정으로 고수(유지)되게 취하는 것이며, 이런 단순한 규정은 [주시하다시피] [배설하는] 사물을 [배설된] 사물들로부터 구별하는 [배설하는] 사물의 꼰대적인(wesentlich) 성격을 이루는 것이다. 사실 그렇다. [배설하는] 사물에 차이(Verschiedenheit)가 [직접] 안겨져(an ihm) 있기 때문에, 바로 그 차이가 필연적으로 형형색색한 짜임새(Beschaffenheit)를 갖춘 현실적인(wirklich) 구별로 [배설하는] 사물에서 드러나야 한다. 단(allein), [하나라는] 규정성이 [배설하는] 사물의 꼰대(Wesen)를 이루고, 또 바로 이 규정성에 기대어 [배설하는] 사물이 자신을 다른 사물들과 구별하고 독존하므로 위와 같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sonstig:<=>umsonst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염두(念頭)한’(für nichts)이란 의미임), 형형색색한 짜임새(Beschaffenheit)는 [아도르노가 주목하고 눈을 떼지 않았던 ‘하루살이 존재’(ephemeroi)와 같은] 있으나마나한 것(das Unwesentliche)이다. 이런 관계로 [배설하는] 사물이 그의 통일성 안에서 이중의 <하는 한에서>(das gedoppelte Insofern)를 직접 거느리는(an ihm) 게 틀림없지만 단지 그 둘은 서로 다른 가치를 갖는다[!!!]. 이렇게 가치를 [마치 worth ⊥ value로 대립시키듯이] [이리저리] 달리 함으로써 이중의 <하는 한에서> 간의 대립관계(Entgegengesetztsein)가 결국 [배설하는] 사물 자체 [안에서 일어나는] 진정한(wirklich) 대립(Entgegensetzung)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배설하는] 사물이 대립관계를 빗는 것은 절 대 적인 구별(a b s o l u t e r Unterschied=극으로 치닫는 Für sich/‘독자성’)에 의해서 대립[관계]에  들어가는 한에서만 그렇고, 이때 [배설하는] 사물은 이런 대립을 그 밖의 다른 사물과의 관계에서 갖는 것이 된다. 아무런 가치가 없는(sonstig:<=>value상) 형형색색함(Mannigfaltigkeit:<=> 사용가치상)은 사물의 필연적인 [구성요소]로서, [마치 교환관계에서 교환이 이루어지게 하는 사용가치가 필연적이듯이] 사물에 없어서는 안 되지만, [value상] 있으나마나한(unwesentlich)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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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현상학 A. 의식 II. 지각; 혹은 사물과 착각 (번역 재개) -(§ 13)

[보이스 오버]

(aside)

불쌍한 의식. 네가 가는 길은 필히 정신분열증으로 가는 길이다. 봐라. 네가 자기동일성이라고 했던 사물이 자기 안에서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 Il n'est pas comme il est. Il est l'autre. 이건 사실 네 분열이다. 넌 아직 네 안의 분열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기다려. 너도 ‘Je suis l'autre.’할 날이 머지않다. 그때 네가 어떻게 처신할지 궁금하다. 당당하게 나 정신분열환자 할지, 네 정신분열증을 ‘건강한 생각’(gesunder Menschenverstand/상식)으로 가장할지, 아니면 ‘내가 아닌 것으로 존재해야 하고 나인 것으로 존재하지 못하는’(zu sein, was man nicht ist, und nicht zu sein, was man ist) 실존의 구렁텅이 앞에서 공포에 질린 나머지 키에르케고르와 같이 믿음으로 도주할지, 아니면 공포에 질린 뒷걸음질(Rückkehr)이 아니라 네 자신을 뒤집어(Umkehr:<=>복음서에서는 ‘회개’, 유물론적으로는 머리로 걷지 않고 발로 걷게 하는 뒤집기) 역사적인 유적존재로 널 바로 세울지 궁금하다.

 

 

결국 의식은 두 번째 (첫 번째 되풀이) 지각함에서의 처신(태도)양식, 즉 참다운 것으로서의 사물은 자기 동일한 것으로, 반면 자기 자신은 자기 비동일적인 것으로, 즉 [지각함에 ‘feeling’으로 찰싹 붙어 지각함과 무분별한 상태인] 자기동일성에서 벗어나 자기 안으로 뒷걸음질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서도 역시 스스로 벗어난 상태로서 이제 사물이란 그에게(의식에게) 이전에는 사물의 몫과 의식의 몫으로 분리되어 나뉘어졌던 운동의 전체가 된다. 사물은 자기 안으로 반성된 하나다. [그래서] 사물은 대자적이다. 나아가(aber) 사물은 동시에(auch/또한:<=>동시에) 대타적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und zwar) [내가 내 자신을 바라볼 때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이 내가 내 자신에게 낯선(=다른) 사람이 되듯이] 사물은 자기가 마치 타자에 대하여 있듯이(als es für Anderes ist/대타적) 자기 자신에게(대자적으로) 타자가(ein Anderes für sich) 된다. 따라서 사물은 대자적이면서 동시에(auch) 대타적인 이중의 분리된(=‘이중’간 아무런 매개가 없는) 존재다. 근데 사물은 하나이지 않았던가? 하나(로)있음(Einssein)은 분명(aber) 이와 같은 사물의 분리(Verschiedenheit)와 모순을 빗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의식이 [사물의 이런 모순을 파기하기 위해서] 다시 한 번 이와 같은 하나-안으로-정립함(In-eins-setzen)을 자기 탓으로 돌려 사물에서 멀리 해야 하지 않는가? 그래서 의식은 이렇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 즉 사물이 대자적으로 있는 한(insofern) 대타적으로 있지 않다고? 그러나 [의식이 사물을 이런 모순에서 구제하기 위해서 아무리 요리저리 빠져나갈 궁리를 해도] 이것 하나에 걸리는데(allein), 그건 아무튼 사물 자체에 역시, 의식이 [스스로] 경험한 것처럼, 하나(로)있음(Einssein)이 귀속된다는 점이다. [즉] 사물은 자기 안으로 반성된 것을 [의식의 것이 아니라] 자기 것으로(wesentlich) 소유한다(Das Ding ist wesentlich in sich reflektiert). [그래서] 결국 서로 아랑곳하지 않는(무관한) 구별, 즉 <또한>은 틀림없이 하나(로)있음(Einssein)으로서의 사물과 맞닿는 것이다. 그러나 양자(=Einssein ⊥ das Auch)가 [전체 안에서 통일체를 이루는 Momente로서 서로 구별된 것이 아니라] 차별된/분리된(verschieden) 것이므로 똑같은(=일개의) 사물과 맞닿아 떨어질 수 없고, 어디까지나 차별된/분리된 사물들과 맞닿아 떨어진다. [의식 내재적으로] 실재하는 대상(an dem gegenständlichen Wesen)에서 추상적으로(überhaupt) 드러나는 모순은 [두 갈래로] 찢어져서 두 개의 대상에 할당된 모순이다. 다시 말해서(also) 사물은 즉자대자적, 즉 자기 자신과 동일한 것임이 틀림없지만 이런 자기 자신과의 통일(Einheit mit sich selbst)이 다른 사물들에 의해서 [요동되어] 파괴되는(stören/‘어지럽게 하다’, '흩어지게 하다', '파괴하다'등의 어원적 의미가 있음) 것이다. 이렇게 사물의 통일성(Einheit)이 고수(유지)되고, 동시에 [추상적인] 통일성을 파괴하는 [자기 자신과의 통일이 아닌 모습으로 현존(할 수밖에 없는)하는] 다른 존재(das Anderssein)도 허락(유지)되는데, [단지] [추상적인 대상인] 사물 밖으로뿐만 아니라 의식 밖으로까지 [추방된] 상태로(만) 허락(유지)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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