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 목록
-
- 2021/05/15
- ou_topia
- 2021
-
- 2021/03/10(1)
- ou_topia
- 2021
-
- 2021/03/09
- ou_topia
- 2021
-
- 2021/03/08
- ou_topia
- 2021
-
- 2021/02/06
- ou_topia
- 2021
염돈재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이 NK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 “독일 통일 교훈 올바로 이해한 드레스덴 연설”이란 글을 접하게 되었다.
여기에 전문을 인용하고 싶지만 무단전재 및 재배포가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부분인용을 하면서 조목조목 반박해 보려고 한다.
염돈재의 글 기조는 “우리가 독일 통일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너무 많았”는데 박근혜 정부가 비로서 “(…) 독일 통일의 교훈을 올바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여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으로 잘못된 길로 들어선 한반도 통일정책을 바로 잡았다는 것이다.
독일 통일에 대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 중 첫째는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모방한 독일 총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에 관한 것이다.
“브란트의 동방정책이 독일 통일의 원동력이 됐다[는] 생각”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브란트의 동방정책의 기조는 '접근을 통한 변화'였다. 염돈재는 이 정책의 목적이 “동독 공산 정권[의] 변[화]”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독일 통일 관련 “독일 통일은 '접근을 통한 변화' 정책으로 동독 공산 정권이 변해서 된 것이 아니라 동독 민주혁명으로 동독 공산 정권이 망해서 가능해진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접근을 통한 변화’의 목적이 “동독 공산 정권[의] 변[화]”였나? 원문에 기대어 이 주장의 실과 허를 살펴보자.
“Das Ziel einer solchen Politik kann natürlich nicht sein, die Zone zu erpressen, denn kein
kommunistisches Regime, und schon gar nicht das so gefährdete in der Zone, kann sich durch
Wirtschaftsbeziehungen in seinem Charakter ändern lassen. Aber das haben schließlich auch nicht die Amerikaner verlangt, als sie Polen Kredite gaben, und das ist auch nicht der Sinn des
amerikanischen Wunsches nach verstärktem Osthandel. Uns hat es zunächst um die Menschen zu gehen und um die Ausschöpfung jedes denkbar und verantwortbaren Versuchs, die Situation zu
erleichtern.”
“이와 같은 정치의 목적은 물론 [쏘련 지배하의] 동독지역의(Zone) 협박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어떤 공산주의 정권이라 할지라도, 더군다나 동독지역(Zone)에서와 같이 [지위가] 위태롭기 짝이없는 정권은 더더욱, 경제관계들에 의해서 자신의 [억압적인] 성격이 변화되게 내버려 둘 수 없다. [그런 변화를 반대급부로 요구해야 한다고 하지만](aber) 그것은 엄밀하게 따져보면(schliesslich) 폴란드에 신용대출을 할 때 미국도 요구하지 않은 것이었고 그게 또한 강화된 동구권교역을 원하는 미국이 뜻하는 바(Sinn)도 아니다. 우리가 직면하는 상황에선(uns) 먼저 [동독] 사람들이 문제가 되어야 하고 [따라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의] 짐을 덜어주는(erleichtern) 생각가능하고 책임질 수 있는 모든 시도를 다 철저하게 이용하는 게 문제가 되어야 한다.”(수정된 인용: http://blog.jinbo.net/ou_topia/566)
“접근을 통한 변화” 연설문 원문에서 동방정책의 기조가 ‘동독정권 변화’라는 걸 도출할 수 있는 구절은 하나도 없다. ‘접근을 통한 변화’ 정책은 동독정권이 잘하면 변할 거라는 낭만에 젖어있지 않다. 오히려 절대, 어떤 상황에서도 그러지 않을 거라고 전제한다. 매우 실용주의적인 미국 사고방식이 이 정책의 기조다.
그럼 염돈재는 왜 저렇게 말할까? 독해력이 문제인가? 아니면 미리 정해진 정치적 아젠다에서 도출된 주장인가?
진정 살펴봐야 할 문제는 교묘하게 회피한다. 문제되는 것은 ‘접근을 통한 변화’ 정책과 동독의 ‘민주혁명’ 사이의 관계다. 이게 긍정적인 관계였는지 아니면 부정적인 관계였는지, 학자라면 바로 이걸 연구영역으로 삼고 분석해야 할 것이다. 결론이야 어쨌든.
2021/05/15 |
2021/03/10 |
2021/03/09 |
2021/03/08 |
2021/02/06 |
댓글 목록
ou_topia
관리 메뉴
본문
서독은 독일이 통일되어 완전한 주권을 회복하기 이전에 내독관계문제에서 미국의 눈치를 보는 국가였다. 동독은 물론 쏘련의 눈치를 봐야 했고. 한국과 별반 다름 없었다. 다른 게 있었다면 서독 정치인들은 미국이 동서 냉전에서 허용한 틈새를 정확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포착하여 내독관계 개선에 백분 활용하고 그 틈새를 넓히는데 전력했다는데 있다. 한국의 경우 그 반대가 아니었나 한다. 미국이 한반도 냉전구도에서 틈새를 허용하면, 그 틈새를 다시 막기에 급급하지 않았나 한다. 틈새가 벌어지면 보수정권이 지탱하고 있는 분단이데올로기가 무너질 게 틀림없기 때문에.에곤 바르(Egon Bahr)의 ‘접근을 통한 변화’ 구상은 미국의 눈치를 잘 살피고 미국이 허용한 틈새를 정확하게 포착하여 동.서 독일민족이 처해 있는 현실에서 실행가능한 정책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에곤 바르의 “Wandel durch Annäherung”이란 발제는 1963년 7월 15일 투찡에 있는 개신교 아카데미에서 있었다. 1963년 6월 26일 서베를린을 방문한 케네디가 2개 연설을 한 직후다. 그날 낯 케네디는 베를린 시청에서 “나(도 역시) 베를린 시민이다.”라고 말하면서 서베를린을 지킬 거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날 밤 그는 기조가 좀 다른 연설을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했다. 잘 들어보면 그때까지 틈이 없었던 냉전구도에 틈을 내는 연설이었다. (연설 원문: http://www.berlin.de/kennedy/26-juni-1963/rede/rede-an-der-freien-universitaet/artikel.18451.php)
“진리, 정의, 그리고 자유’(truth, justice, and liberty)라는 대주제를 냉전구도 타파와 관련하여 해석하는 연설이었다.
베를린 시청 광장에 모인 연설에서 베를린의 자유를 지킬 것이라고 약속하지만 (“Speaking a short time ago in the center of the city, I reaffirmed my country’s commitment to West Berlin’s freedom and restated our confidence in its people and their courage.”) 미국이 반드시 유지할 군사적 방패(“the shield of the military commitment”) 뒤에서 제자리 걸음을 일삼으면서 (“to mark time”) 언젠가 상황이 좋아질거라고 그저 기대하면서 현상유지만 하는 것(“to adhere to a status quo, while awaiting a change for the better”)은 불충분하다고 한다.
우선 진리가 요구하는 건 (“what does truth require?”) 현실을 직시하고 자기기만에서 빠져나오는 거라고 한다(“to face the facts as they are, not to involve ourselves in self deception”). 과거의 상황에 집착하거나 희망사항으로서의 미래에 예속되지 않고 현실을 현실 그대로 다루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let us deal with the realities as they actually are, not as they might have been, and not as we wish they were”). 그리고 독일 통일 관련 철조망으로 갈라진 인위적인 경계가 현실일지라도 독일이 “한국가 한민족임을 드러내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요소들”(“the realities of Germany as a nation and a people, without regard to artificial boundaries of barbed wire”)이 서구의 결속력과 함께 독일을 통일로 이끌어 가는 실질적인 힘이 될 거라고 한다.(“What will count in the long run are the realities of Western strength, the realities of Western commitment, the realities of Germany as a nation and a people, without regard to artificial boundaries of barbed wire.”)
이어서 정의의 해설에서 정의는 근본적으로 자유를 전제하지만, 현재의 상황에서는(“but in the meantime”) 장벽 저편의 사람들의 숙명의 짐을 덜어주고 희망이 사라지기 않게 과도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데 있다고 한다. (“to do what we can do in this transition period to improve the lot and maintain the hopes of those on the other side.”)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유의 맥락에서 미국과 쏘련이 협력하여 유럽의 통일을 이루는 맥락에서 독일 통일이 이뤄질 거라고 한다 (“but it is not too early to think once again in terms of all of Europe”)
에곤 바르가 고안한 걸로 알려진 ‘접근을 통한 변화’는 사실 케네디가 고안한 것이다. 미국이 허용한 틈새를 백분 활용하여 분단독일 현황에 적용한 것이다.
이런 틈새 사용 능력은 시대마다 변형되면서 콜 총리까지 이어진다. 염돈재는 이걸 보지 못하고 그때 그때 변형만 포착하는 근시안적인 학자이거나 정치인이다.
한국 정계의 머리에 저런 근시안적인 인사들이 있다는 게 한민족의 불행이다.
부가 정보
ou_topia
관리 메뉴
본문
기민당 아데나우어 총리에서 시작해서 사민당 브란트 총리에 이어 콜 총리까지 모두 민족주의자였다. 그리고 동시에 모두 유럽주의자였다. 민족과 유럽의 문제를 주어진 현황에서 변증접적으로 통일한 지도자들이었다.부가 정보
ou_topia
관리 메뉴
본문
러시아 사람들을 3천만명이나 죽이고 유대인 6백명을 죽인 '공장'을 운영했던, 인류의 역사에서 마땅히 사라져야 할 독일민족을 다시 살린 지도자들이었다. 아네나우어가 유럽연합의 씨를 뿌려 독일을 서구에 편입시켰다면, 브란트는 소외된 동구권을 끌여 당겼고 콜은 양자를 계승하여 독일 통일을 이루는 길을 닦았다.부가 정보
ou_topia
관리 메뉴
본문
얼마 전 콜 총리의 동독 민주혁명(?)을 폄하하는 발언이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콜과 장장 600시간인터뷰를 진행한 기자 슈반(Schwan)이 일부를 – 콜의 동의 없이 – 공개한 것이다.
“[독일 통일에서] 성령이 홀연히 라이프찌히 광장에 나타나서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고 생각하는 건 완전 잘못된 거다”라고 콜은 말했다. 오히려 모스크바의 허약이 동독 독재의 붕괴의 원인이었다고 한다. “고르바쵸브는 [동독 경제의] 결산보고서를 읽고 나서 그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황(“am Arsch des Propheten”, 직역: 선지자의 엉덩이 [사이])에 처해 있고 [동독] 정권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할 수 밖에 없었다.” (“Es ist ganz falsch, so zu tun, als wäre da plötzlich der heilige Geist über die Plätze in Leipzig gekommen und hat die Welt verändert", sagte Kohl. Vielmehr sei die Schwäche Moskaus ursächlich gewesen für den Zusammenbruch der kommunistischen Diktatur in der DDR. "Gorbatschow ging über die Bücher und musste erkennen, dass er am Arsch des Propheten war und das Regime nicht halten konnte", 출처: 슈피켈, http://www.spiegel.de/politik/deutschland/helmut-kohl-ex-cdu-chef-und-altkanzler-rechnet-mit-parteifreunden-ab-a-995299.html)
부가 정보
ou_topia
관리 메뉴
본문
"결산보고서"를 "장부"로 수정부가 정보
ou_topia
관리 메뉴
본문
동독 이탈 동독 저항 세력은 주로 서독 좌파가 지원하였다. 뵐, 페트라 켈리 등. 최근 연방하원에서 있었던 장벽붕괴 25주년 기념/추모식에서 좌파당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볼프 비어만도 동독 시민권을 박탈 당한 후 현재 좌파당 하원의원인 디터 뎀(Diether Dehm)의 지원을 받았다. 뎀이 비어만의 매니저였다.염돈재의 "서독 사민당 지도부가 외면했던 동독 민주 인사"는 아마 라이너 에펠만(Rainer Eppelmann)이 장벽 붕괴후 동독지역에서 사민당을 재건하려는 노력이 사민당 지도부의 반대에 좌절되었다는 비판에 기반할 것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알아야 할 상황은 에펠만이 그의 저서 "Fremd im eigenen Haus. Mein Leben im anderen Deutschland"(자기 집에서의 소외. 다른 독일에서의 내 생애)에서 서독의 모든 정당들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독의 기존 정당들이 동독에 스스로 진출하기 위해서 동독에서 자생적으로 생긴 정당들이, 예컨대 '노이에스 포럼', '민주 약진'(Demokraticher Aufbruch) 등, 발전하는 길을 저지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아니러니하게도 SED의 존속이 가능했다는 거다. (참조: 슈피겔, http://www.spiegel.de/spiegel/print/d-13682992.html) 예를 들어 당시 언론에 가장 많이 보도된 노이에스 포럼을 이끄는 볼라이는 역사의 뒷전으로 사라진다. (볼라이는 서독여행허가를 받고 서독, 영국, 이태리 등에서 약 6개월 거주한 후에 자발적으로 동독으로 다시 들어간다. 동독 정권의 기대에 어긋나게)
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