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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ing Credibility
The IMF’s New Cold War Loan to Ukraine
by MICHAEL HUDSON
번역: 일몽
마이단 광장의 폭동과 2.22 쿠데타 직후이며 5.2 오데사 학살을 한달 여 앞둔 2014년 4월, 국제통화기금(IMF)은 우크라이나 군사정권에 대한 170억 달러의 대출프로그램을 승인했다. 정상적인 IMF의 관행은 한해에 한 나라에 할당된 할당액의 2배까지는 빌려주는 것이다. 이번에는 8배였다.
그로부터 4개월 후, 키예프가 동부 돈바스 지역에 대해 인종청소를 실시하려던 시도에서 실패하기 시작했을 즈음인 8월 29일, IMF는 자본도피로 인해 국제수지가 무너지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내전에 정신이 없는 쪽에 최초의 대출을 승인했다. 지불능력에 아무 문제없다는 허구적인 예측에 따라, 우크라이나 통화의 가치가 더 떨어져서 훨씬 더 적은 유로, 달러와 같아지기 전에 올리가르히의 은행들이 돈을 빨리 서방의 경화 구좌로 옮길 수 있게 IMF 대출은 우크라이나 통화를 지원했다.
이 대출은 IMF가 미국 냉전정책의 신체임을 보여준다. 키예프는 대출을 동부 지역을 공격하는 군사비에 사용했으며, 대출조건은 마치 이 조건이 국가재정을 안정시킬 것이라는 듯이 늘 그랬던 것처럼 긴축예산을 부과했다. 키예프의 공격으로 발전소, 수도시설, 병원, 민간인 거주지역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아 주요기반시설이 파괴된 동부로부터 얻을 수 있는 거의 없다. 민간인 거의 백만 명이 러시아로 도피했다고 보도되었다. 그럼에도 IMF는 “IMF는 현재 진행 중인 충돌에도 불구하고 경제 개혁에 대한 정부의 헌신에 찬사를 보낸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 수출의 4분의 1이 동부지역에서 나오며 주로 러시아로 수출된다. 그러나 키예프는 돈바스 산업지대에 폭격을 해서 탄광에 전기를 끊어버렸다.
이 대출은 IMF에서 일하는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그리스에 대한 재앙적인 470억 달러짜리 대출을 둘러싸고 노골적으로 터졌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불화를 낳을 것이다. 당시 IMF의 사상 최대 대출이었던 그리스 대출로 인해 50쪽짜리 내부 문서가 나왔고 월스트리트저널로 새어나갔는데, 보도에 따르면 IMF는 “긴축처방이 그리스 경제에 입힐 피해를 심각히 과소평가했다.” IMF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의 은행을 지키려는 유로존 국가들의 압력을 비난했는데 그 은행들은 그리스 정부의 부채를 너무나 많이 갖고 있었다... 원래 IMF는 2009년부터 2012년 사이 그리스가 경제생산의 5.5%를 잃을 것이라고 예측했으나 실질 국민 총생산의 17%를 잃었다. IMF는 2012년에 15%의 실업률을 예측했으나 실제로는 25%였다.
IMF 협정문은 명백히 지불능력이 없는 나라에 돈을 빌려주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작년 10월 워싱턴에서 열린 연차총회에서 IMF 경제학자들은 “빚을 갚을 수 없는 국가들에게” 악성대출을 함으로써 규정을 위반하고 있다고 항의했다. 실질적으로 IMF는 정부가 은행과 채권소유자들을 얼마나 구제하려고 하든 상관없이 그냥 밀고 나간다. IMF는 지출을 삭감하면 빚을 갚을 능력이 더 나빠지는게 아니라 더 향상되는 것처럼 주장한다. 우크라이나는 너무나 놀랍도록 그리스의 상황을 재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작년에 IMF의 한 임원은 IMF의 채무 지속가능성 분석(Debt Sustainability Analysis)이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라고 했으며, EU 집행위원회의 한 임원은 그것을 가리켜 ‘아이들을 재우게 하는 동화책’이라고 했고, 그리스 재무부의 한 임원은 ‘과학적으로 완전 허튼 소리’라고 했다.
John Helmer가 운영하는 웹사이트 Dances with Bears의 추산에 따르면 “5월 초 IMF가 우크라이나 재무부에 지급한 32억 달러 중에서 8월 중순까지 31억 달러가 해외로 사라졌다.” 이러한 사실은 IMF 대출이 군사정권이 도입해서 정부 내부자가 가로챈 “추악한 외채”(odious debt)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한다. IMF는 중앙은행이 그들 복합기업의 일부로서 은행을 운영하고 있는 클렙토크라트(강도정치인)들에게 돈을 그냥 넘겨주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뿐 아니라 중앙은행은 주요 클렙토크라트들을 위해 동부를 군사공격하는데 자금을 대고 있는데, 그 정치인들은 주로 마이단 쿠데타의 배후에 있는 인물들이다) “은행에 대한 정부 증권과 부채 비율은 2010년 말 우크라이나 중앙은행 자산총액의 28%에서 2014년 4월 말 56%로 올랐다.” 재정상태가 악화일로인 탓에 우크라이나의 주요 은행들이 지급불능을 막기 위해서는 IMF의 170억 달러 구제금융 이후에도 50억 달러가 더 필요하다고 보도되었다.
10월로 예정된 총선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동부는 투표할 상태가 전혀 아니고 군사정권은 공산당만이 아니라 그들이 싫어하는(주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방송국과 언론사를 금지시켰다. 전쟁을 지지하는 주요 정당들은 (9월 초 현재) 여론조사 결과 심지어 서부에서도 지지율이 매우 낮기 때문에 라이트 섹터(Right Sector)와 그 동맹인 네오나치 민족주의자들 - 이들은 그 자신의 사병을 투입시키고 있는 올리가르히 이고르 콜로모이스키가 이끌고 있다 - 은 지체 없이 쿠데타를 경고하고 있다.
전쟁에서 질 경우 흔히 정권교체가 일어난다. 쿠데타의 유령이 다시 한 번 키예프의 거리와 광장을 배회하고 있다. 전투에서 살아남은 정부군들은 자신들의 무기를 포로셴코에게 겨누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현 정권을 제거하기 위해 세 번째 마이단[독립광장 저항운동]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번 마이단의 선동자들은 콜로모이스키의 돈으로 만들어진 토벌군의 전투원들이다. 콜로모이스키가 포로셴코를 상대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는 자신의 밑에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는 매우 강력한 사병을 거느리고 있다.
IMF와 미국이 지원하는 우크라이나의 민영화 계획
우크라이나의 주된 문제는 부채가 달러와 유로로 표시된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IMF 빚을 갚기 위해 외화를 늘리는 방법은 단 하나, 가스에 대한 권리와 농업지대를 비롯한 천연자원을 파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서 미국이 지원하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 콜로모이스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상원 2277 법안은 “미국 국제개발청이 (우크라이나, 몰도바, 조지아의) 석유와 가스 개발을 위한 매 단계마다 대출을 보장할 것을 지시한다.”
최근 조 바이든 부통령의 아들 헌터 바이든은 사이프러스에 등록된 우크라이나의 석유, 가스 회사인 부리스마(Burisma) 이사회 임원으로 임명되었다. 이 회사는 소비에트가 해체되고 나서 오래전부터 미국이 선호하는 기업이 되었다. 부리스마는 수압파쇄법(프래킹)으로 가스를 추출할 예정인 곳을 군사목표로 만들 정도로 키예프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노보로시야 통신은 웹사이트를 통해 지역 주민들의 말을 인용하여 우크라이나 포병들이 지난 3개월간 폭격과 포격을 가했던 동부 슬랴반스크 인근에서 셰일가스 생산장비를 설치하는 것을 돕고 있다고 보도했다. 민간인들은 우크라이나군의 보호 아래 시추장비를 설치할 준비를 하고 있다. 주민들은 장비가 더 오고 있는 중이며, 군이 앞으로 가스를 추출할 지역을 포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 보고서는 “친러시아”라는 말이 가스 장악에 반대한다는 뜻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Yzovka 셰일가스전 한가운데 있는 슬랴반스크 사람들은 과거 수도 없이 개발 반대운동을 벌였다. 그들은 심지어 이 문제로 국민투표를 하자고 요청하기도 했다... 체코, 네덜란드, 프랑스 같은 나라는 그 지역에서 셰일가스를 개발하려는 계획을 포기했다. 이 나라들만이 아니라 극히 중요한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2주 전 독일은 지하수 오염에 대한 우려 때문에 앞으로 7년간 셰일가스 시추를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미국과 IMF의 지원 의도는 국제수지를 압박하기 위해 유럽의 대러 의존을 줄이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생각은 가스 수익이 줄어들면 오늘날의 신냉전에서 러시아의 기동력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황당하게도 미국과 콜로모이스키가 동맹을 맺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콜로모이스키는 그가 소유한 Privat Bank를 통해 부리스마의 실소유주다. 그는 “쿠데타 정권에 의해 우크라이나 중남부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주지사로 임명되었다. 또한 콜로모이스키는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러시아족을 살해하는 야만적 민병대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일에 관여해왔다.” “러시아족”(ethnic Russian)이라는 용어는 국가의 천연자원을 민영화하려는 클렙토크라트들에 의한 프래킹에 반대하는 주민행동과 같은 말이다.
도네츠크에서 키예프 병력이 파괴한 전기, 수도시설을 복구하려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춥고 어두운 겨울을 기다리고 있다. 키예프는 동부에 대한 연금과 기타 세입 지출을 중단해왔으며, 그것이 동부의 분리주의를 거의 확실하게 만들었다. 마이단 사건이 터지기도 전부터 지역주민들은 독일과 다른 유럽국들이 반대했던 것과 똑같이 프래킹을 못하게 하려고 막았다.
또한 그들은 클렙토크라트들과 특히 몬산토 같은 해외 기업이 땅과 기타 재산을 처분하는 것에 반대했다. 몬산토는 우크라이나에서 유전자조작 곡물 프로젝트에 투자해왔으며, GMO에 대한 저항에서 우크라이나를 유럽의 아킬레스 힐이라고 보고 있다. 오클랜드 연구소의 최근 보고서 “Walking on the West Side: the World Bank and the IMF in the Ukraine Conflict”는 우크라이나의 농토 사용에 대한 규제를 풀어서 미국을 비롯한 해외 투자자들에게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IMF와 세계은행이 어떤 압력을 넣고 있는지 설명한다. 세계은행 산하 국제금융공사( IFC)는 “우크라이나 법과 정부령에서 농산물의 강제인증에 관한 규정을 삭제하고” 살충제, 첨가물, 기타 등등에 관한 규제에 의한 “불필요한 기업비용을 제거할 것을 우크라이나에 권고했다.”
러시아나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아직 유전자조작식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크라이나가 GMO 농작물을 수출할 수 있는 길은 미국 외교관들이 유럽에게 GMO 표시를 못하게 하도록 압력을 넣는 것밖에는 없어 보인다. 이것은 미국이 대러 제재를 부과하도록 압력을 넣은 것과 마찬가지로 (“너희 둘이서 싸우게 하겠다”) 미국과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 사이에 또 하나의 쐐기를 박을 것이다.
계속됨 ...
2021/05/15 |
2021/03/10 |
2021/03/09 |
2021/03/08 |
2021/02/06 |
헤겔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12권 1972b 18-30을 인용하며서 「엔치클로페디아」를 마친다. 자신이 논리학이 위에서 인용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좀(?) 장황한 ‘번역’이란 말인가?
어쩜, 헤겔을 얼른, 한큐에 이해하고 싶은 욕심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저 한 부분의 ‘번역’이 헤겔의 논리학이라고 하고픈지 모르겠다. 암튼, 번역에 덤벼본다.
근데 좀 까깝하다. 중.고의 초보실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문장구조와 어휘는 그렇다치고, 첫 문장부터 뭔 말이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과연, 그리스사람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저 말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뒤적거려보니까, 저런 말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의를 위해서 끄적거려논 거란다. 그럼 그렇지, 누가 저런 말을 이해할 수 있어?
‘헤 노에시스 카트[ㅎ]아우텐’ - 보니쯔(Bonitz)는 ‘das Denken an sich’로 번역한다. 우리말로는 아마 ‘사유 자체’ 정도로 번역될거다. 근데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란 말인가? ‘물자체’(Ding an sich)와 같은 용법인가? 수박 겉핥기의 사유가 있고 진짜 사유가 있단 말인가? 첫 문장은 동사도 없다. ‘이다’가 주로 생략되기 때문에 ‘이다’를 첨가해서 읽어본다. 사유는 자체는 ‘투 카트 아우토 아리스투’, 뭐지? 2격의 기본 의미인 소유의 의미로, 사유 자체는 좋은 것 자체에 속한다? 그리고 [그 자체] 최고의 사유는 [그 자체] 최고로 좋은 것에 속한다? 그게 왜 그래?
로스(Ross)는 “The thought which is independent of lower faculties must be thought of the best object.”(Ross, Vol 2, 373 쪽)라고 주해한다. 입의 욕구, 눈의 욕구, 머리의 욕구를 구별한 아리스토텔레스의 3층 심리학에 입각하여 ‘사유 자체’란 먹고싶은 욕심, 지각하고 싶은 욕심 등과는 거리가 먼 무슨 고귀한 거란 말인가? 이런 건 우선 자연과의 신진대사를, 어려운 말이 아니라 먹고싸는 일을, 인간이해의 중심에 바로 세운 마르크스를 따르는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무슨 상점의 디스플레이를 깔끔하게 잘하는 상점주인 정도인가?
그리고 ‘노에시스’가 명사의 형식으로 등장한다고해서 과연 명사로 취급할 수 있을까? 사랑이 사랑하는 행위외 다른 게 될 수 있을까? 사랑 자체? 너나 먹어.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Noesis’?
1.독일에 음악하러 온 유학생: (2년동안 계속 시험에서 떨어지다가 마지막 시험에 붙은 후) “엄마, 나 오늘 시험 붙었어.”
엄마: “정말! 잘 했다, 내 딸. 조타아~~!!”
2.베를린 시장 보베라이트: “Ich bin schwul und das ist gut so.”(나는 게이다. [니들이 뭐래도] 좋다.
‘헤 노에시스 카트[ㅎ]아우텐’은 앞의 사례와 같이 말주고받기(Redepraxis/말실천)에서 드러나는 두 개의 차원을 전제하는게 아닌가 한다. 즉, 대상 차원(Objektbezug) – 시험에 붙음, 게이라는 사실 – 과 그 대상차원을 놓고 행해지는 이런저런 말하기다. 후자의 ‘메타차원’이 ‘헤 노에시스 카트[ㅎ]아우텐’이 아닌가 한다. [전문]용어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메타차원’의 말주고받기에서는 ‘좋다/안좋다/나쁘다’가 기본범주다. 식욕의 현실이든 눈욕의 현실이든 머리욕의 현실이든 그렇다. 그리고 집단을 이루고 사는 인간은 그가 속하는 집단의 짜임(Verfassung, Constitution/헌법현실)과 관련해서 가장 강도 높게 ‘좋다/안좋다/나쁘다’고 하는 것이다.
이 해석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암튼 하나하나의 요소들이 ‘의미의 복합체’(Sinngefüge)를 이룬다. 멍청한 내 머리로도 뭔가 이해된다는 말이다.
(계속)
2021/05/15 |
2021/03/10 |
2021/03/09 |
2021/03/08 |
2021/02/06 |
붕어와 꿀꿀이
나는 땀을 많이 흘리는 편이다.
기후도 이젠 믿을 만한게 아닌가 보다. 가을인가 했더니, 왠걸, 느닷없는 무더위에 몸이 끈적끈적해졌다. 이런 몸을 씻지도 않고 잠자리에 누운 날, 짝지는 돼지라고 멀리한다. 등을 돌리고 곁에 오지도 못하게 한다.
빵이 없다. 난 돼지라 아무것이라도 마구 먹는데, 짝지는 커피 한잔으로 아침을 때우고 출근길에 빵을 사가지고 가겠다고 집을 나선다.
의례의 반복으로 연속되는 동거, 내 사람과 나만이 아는 암호를 인사말로 나누는 가운데 동거를 확인하는 의례, 이런 의례의 하나로 짝지는 출근 후 제일먼저 내게 전화한다.
“꿀꿀인데요.”
“여기 붕어. 뭐 잊어먹은지 알아? 빵.”
우리의 암호까지 잊어먹어서는 안되는데. 그래서 어항 한바퀴를 돌고나면 먼저 반드시 우리의 암호를 확인한다.
“여기 꿀꿀이 – 여기 붕어."
2021/05/15 |
2021/03/10 |
2021/03/09 |
2021/03/08 |
2021/02/06 |
(출처: The Wall Street Journal, http://online.wsj.com/articles/karl-theodor-zu-guttenberg-the-return-of-europes-sleepwalkers-1409786698)
독일국기 색깔의 불길을 의식하지 못하고 안위하는 유럽.
2021/05/15 |
2021/03/10 |
2021/03/09 |
2021/03/08 |
2021/02/06 |
공산당 선언은 “노동자는 조국이 없다.”(“Die Arbeiter haben kein Vaterland.”)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아무런 설명이 필요없는 자명한 사실로 애기하고 있다.
그러나 다음 문장을 보면 그리 자명하지 않다. 상당히 많은 전제와 설명을 요구하는 주장임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즉, “노동자들에게 없는 것을 그들에게서 빼앗을 수는 없다”(Man kann ihnen nicht nehmen, was sie nicht haben.”)란 문장에서 “노동자는 조국이 없다”란 서술이 “지구는 자전한다”란 명제와는 다른 의미구조를 갖고 있음이 인지된다. 이 문장의 진리조건이 역사임을 알 수 있다.
노동자의 형성은 ‘고향’(patria=아버지가 산 곳)의 상실을 전제한다. 이 상실은 역사가 애기해 준다. 그리고 노동자가 마주하는 ‘조국’은 ‘고향’의 형식이 아니라 국가의 형식이라는 것 또한 역사가 말해준다.
자본주의하에서 노동자와 조국과의 관계는 직접적인 관계가 아니다. "노동자는 조국이 없다"란 문장에는 뭔가 빠져있다. 노동자와 조국의 관계는 부르주아지로 매개된 관계다. 달리 표현하면, 노동자와 조국과의 관계에는 노동자와 부르주아지와의 관계가 깔려있다. 노동자와 조국과의 ‘참다운’ 관계는 부르주아지와의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공산당 선언은 이 투쟁의 길이 민족적이라고 한다. “첫 단계에서”(zunaechst) 프롤레타리아트는 “정치적 통치권”을 장악하여 “민족적 계급”(“nationale Klasse”) 또는 “민족의 영도적 계급”(fuehrende Klasse der Nation)이 되어서 프롤레타리아트를 민족으로 세워야 하는 길을 걷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길이 필연이라고 한다(“Indem … muss”). (밑줄 ou)
국제주의가 추상 이상의 것이 아니며 무능력하게 느껴지는 게 여기에 있는게 아닐까? “노동자는 조국이 없다”란 말을 너무 쉽게 생각한 건 아닌지.... 내용(국제주의)와 형식(민족)의 변증법은?
2021/05/15 |
2021/03/10 |
2021/03/09 |
2021/03/08 |
2021/02/06 |
하늘은 높게 낀 안개로 흐리멍텅하고, 거리에서는 낙엽이 나부낀다. 며칠 기온이 뚝 떨어지고 비가 오더니 어느덧 가을이다. 엊그저께까지만 해도 아열대를 무색하게 했던 여름이었는데 말이다.
“바람만 불어도 흔들리는 가슴”이 사라진 과거가 된게 오래전 일인데, 이건 왠일인야. 넘 쓸쓸하다. 그리움이 엄습한다.
날 찾아온 ᅠJ, 까마득한 옛날 내가 차려준 아침에서 레르담 치즈의 맛을 알게 되었다면서 레르담을 먹을 땐 “오빠가 생각나.”한다. 그런 일도 있었던가? 그날 아침 밥상을 둘러 앉았던 사람들을 기억에 떠올려보려고 하지만, 떠오르는 건 이름뿐이다. ᅠᅠJ만 변함없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내 곁에 와, 사랑했던 이들의 감각기관에 저장된 풍부한 과거의 일부를 되돌려 준다.
‘무의지적 기억’? 아니야. 그 기억은 내 안에 있다가 어쩌다 떠오른게 아니야. 날 사랑하는 J가 내게 갖다준거야. 내 기억을 좀더 완성시켜준거야. 내 기억은 애당초 불완전한 거였어.
2021/05/15 |
2021/03/10 |
2021/03/09 |
2021/03/08 |
2021/02/06 |
여기, 나도 역시 고백하고 싶은 것이 있다 ...
[아름다운 시 등등을 지으면서 내 삶을 살겠다는] 이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기에 더 좋을 수 없는 장소를 찾았다. 노르망디의 르아브르 드그라스에서 그리 멀지 않는 해변가에 자리한 빌라를 찾은 것이다 ... 나는 이 곳에서 잔잔한 노래를 지으면서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
그러나 이런 기분에 취하면, 알다시피, 방에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종종 고양된 마음과 볼이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밖으로 나가 어디로 가는지 어떤 길을 가는지 염두하지 않고 거닐게 된다. 나 역시 그런 상태였다. 결국, 나도 모르게 어느새 아브르의 시골길로 접어 들었다. 그때 가지가지의 초라한 궤짝과 함, [대대로 물려 받아] 닳고 닳은 살림살이, 아낙네들, 그리고 아이들을 높게 실은 여러 대의 큰 농업용 마차가 천천히 내 앞을 가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남자들이 걷고 있었다. 이들의 말을 듣는 순간 적지않게 놀랬다. 슈바벤 사투리 독일말을 하고 있지 않는가. 고향을 떠나 해외로 이주하는 사라들임을 쉽게 알았다. 이들을 눈여겨 보면서 나는 내 생에서 아직 느껴보지 못한 느닷없는 감정이 날 아찔하게 관통하는 걸 느꼈다. 모든 피가 역류하여 심장으로 올라가 갈비뼈를 두드렸다. 마치 가슴에서 뛰쳐나와야 하는 것처럼. 마치 지체없이 나와야만 하는 것처럼. 호흡이 목에 걸렸다. 내가 만난 것은 조국의 모습이었다. 금발머리 독일이, 진지한 파란 눈빛으로, 느긋하고 너무 신중한 얼굴로, 내가 옛적 그토록 지루하게 느끼고 격분했던, 그러나 이젠 애처로운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우매를 아직 입언저리에 지닌 채, 마차에 앉아있었다 … [이젠] 조국의 궁핍조차 돌연 보배롭고 값찐 것이었다. 고루한 속물근성과도 화해하고 받아들였다. 나는 그의 손을 욺켜 잡았다. 독일 해외 이민자들의 손을 욺켜 잡았다. 마치, 조국과 갱신된 사랑의 동맹의 악수를 하듯이. 그리고 우리는 독일말을 했다 ...
저 만남은 나로 하여금 깊은 비애에 빠지게 했다. 암흑같은 슬픔에 빠지고, 납처럼 무거운 마음이 무너졌다. 해도해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바로 전까지만 해도 승자처럼 취해서 오만하게 날뛰던 내가 이젠 허리가 꺽인 사람처럼, 맥이 풀린 환자처럼 엉금거렸다. 이건, 단언하건데, 갑자기 요동하는 애국심의 결과가 아니었다. 뭔가 더 고귀한, 뭔가 더 좋은 것이었다 …
애국심, 진정한 애국심은 묘하다. 조국을 사랑하면서 팔순이 되어도 조국사랑을 한번도 느끼지 못한 사람이 있다. 물론, 줄곧 고향에 머문 사람이 이렇다. 봄의 본질은 겨울이 되어야 비로소 알 수 있고, 난로 옆에서 가장 좋은 5월노래를 짖는다. 자유사랑은 감옥[에서 피는]꽃이다. 감옥에서야 비로소 자유의 가치를 느끼게 된다. 마찬가지로 독일조국 사랑은 독일국경에서야 비로소, 특히 이국땅에서, 독일불행을 몸소 보았을 때 비로소 시작한다 ...
확언하는 바, 나는 애국자가 아니다. 내가 그 날 눈물을 흘린 것은 순전히 그 작은 소녀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미 날이 기울고 있었다. 한 작은 독일 소녀가, 이민자들 중에서 이미 본 적이 있는 작은 소녀가 해변가에 생각에 잠겨 서서 먼 바다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작은 소녀는 8살쯤으로 보였다 … 저게 대양이냐고 날 물었다 …
나는 밤이 깊을 때까지 해변에 서서 울었다. 나는 이 눈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아킬레우스도 해변에서 울지 않았던가. 그의 은빛 발의 어머니가 [테티스] 바다에서 나와 그를 위로해야 하지 않았던가. 나도 역시 바다로부터 한 음성을 들었다. 그러나 이 음성은 위로를 주기 보다는 대려 깨워 일으켜 엄명하는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는 게 아니라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지혜로운(grundweise) 음성이었다 ...
그 이후, 내 조색판에서 황금천사[빛] 색들은 [다] 바짝 말라버렸다. 함성을 지르는 붉은색만이 유동하고 있다. 피빛의 이 붉은색으로는 오로지 붉은 사자만을 그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 나의 다음 책은 틀림없이 온통 붉은 사자가 될 것이다. 존경하는 독자들은, 앞의 고백을 감안하여, 이를 기꺼이 받아주기 바란다.
1833년 10월 17일 파리에서
2021/05/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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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8 |
2021/02/06 |
“어이 동무, 자네의 방패에 [아름답게 노래하는] 황금천사를 그려 달라 하지 말고, 붉은 사자를 그리게 날 내버려 두소. 난 어쩔 수 없네, 내겐 그게 익숙해. 자 보게나. 내가 황금천사를 그린다해도 그 천사는 붉은 사자의 모습일거네.”
어는 한 존경할 만한 예술가 동지의 이 말을 이 책이 머리에 둘렀으면 한다.
(…)
이제 내가 아주 겸손해진 건가?
세간의 겸손은 항상 합당한 근거가 있다는 걸 잊지 말게. 신은 자비로워서 보통 그의 사람들이 겸손이나 이와 유사한 미덕을 수행할 때 그걸 아주 쉽게 해 준다네. 예컨대, 원수에게 일침을 가할 만한 머리(Geist)가 없는 사람이 원수를 용서하는 건 – 그런 머리가 없는게 그의 잘못은 아니지만 – 은총을 입어 너무 볼품없는 코를 갖게 된 사람이 여성을 유혹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처럼 쉽다네.
(…)
신에게 감사! 6월 혁명이 그토록 얼어있던 혀를 풀어 주었다. 물론, 하루 아침에 깨어 일어난 사람들이 여태 하지 못했던 말을 단숨에 털어놓으려고 한 결과 내 귀를 종종 불쾌하기까지 몽롱하게 한 아우성이 수없이 일어났다. 이럴 때마다 말해야 하는 의무(Sprechamt)를 내팽개치고 싶은 충동이 날 사로잡은게 정말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건 예를 들어 장관직을 포기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이런 요직이 공화국의 가장 높은 호민관의 수익보다 훨씬 더 짭짤하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행하고 추구하는 일이 공허한 선택이고, 새로운 이상의 창고에서 우리가 대변하고 실행하고 싸우고 괴로워하기로 결단한 이상 하나를 끄집어내는 것이라고 보통 생각한다. 마치 어떤 문헌학자가 그가 주해를 달면서 평생을 보낼 고전 한 권을 선택하는 것처럼 말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가 이상을 취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이상이 우리를 취하여 노예 삼고, 우릴 채찍질하여 투기장 안으로 밀어넣어 우리가 강요된 검투사처럼 그 이상을 위해서 싸우게 하는 것이다. 참다운 호민관 또는 사도직은 다 이렇다. 아모스가 아마지아 왕에게 “나는 선지가가 아닐뿐만 아니라 어떤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다. 뽕나무 밭에서 따다 남은 열매를 줍는 양치기일 뿐이다. 그러나 주님이 날 양떼에서 불러 이렇게 말씀하였다. ‘가서 예언하라.’”라고 말한 것은 의기양양한1 자백이었다. 그 볼품없는 수도승이 그의 교리때문에 보름스의 제국회의에 기소되어 황제 앞에 서서, 마음의 겸손을 다해 아무리 노력해도, 그 어떤 철회도 불가능하다고 선언하고, ‘이게 [이 교리가] 나의 바탕이다. 나는 달리 할 수 없다. 하나님이여 도우소서, 아멘!’하고 끝을 맺었던 것은 의기양양한 자백이었다. 너희들이 이런 성스러운 강제가 뭔지 알았다면, 우리를 더 이상 나무라지, 더 이상 비방하지, 더 이상 중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정, 우리는 주인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말의 종일 뿐이다. 막시밀리안 로베스피에르가 “나는 자유의 노예다.”라고 한 것은 의기양양한 고백이었다."
(하인리히 하이네, 살롱 1권 서설)
2021/05/15 |
2021/03/10 |
2021/03/09 |
2021/03/08 |
2021/02/06 |
고향은 관습이 비교(秘敎)적인 코드로 암호화되어 [실재하는] 거주공간(Wohnung)이다. 이 공간에서는 관습이 신성화되어 있다. 고향에 뭍혀 사는 사람은(der Beheimatete) 그를 그곳의 사람과 사물에 은밀하게 묶어 놓는 그물망에 엮어져 있다. 이 그물망의 실은 깨어있는 의식을 넘어서 말못하는 갓난아이의, 태아의, 어쩌면 더 깊은 심령(Psyche)의 영역까지 이어져있다. 이 실은 대부분 의식할 수 없기 때문에 감정으로 장전되어 있다. [그래서] 고향의 사람과 사물은 사랑의 대상, 아니면 혐오의 대상이 된다. 이 실이 산천초목, 주택, 혹은 기후와 같은 사물과 관계되어 있는 경우, 그 실을 끊어 버려야 하는 실로 인식하는 일은 비교적 간단하다. 이런 것들은 사물의 의인화, 즉 어떤 것과 어떤 이를 착오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사물을 향한 사랑을 그리스 철학자들은 뮈투스로, 유대 선지자들은 이교로 하여 대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저 실이 가족, 이웃, 그리고 이른바 이들의 ‘개성’과 관계되어 있는 경우, 그 실을 자유의 [발목]을 결박하는 관습으로 밝히는 일은 훨씬 더 어렵다. 왜냐하면, 이런 종류의 실은 [의인화의 경우처럼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주고 받는 말이 그 근간을 이루고(dialogisch), 고향에 뭍혀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동포에(Mitmenschen) 대하여 책임을 지게하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책임감은 자유를 동반하는 현상이다. 이런 실은 – 예컨대 구아타마가 그랬던 것처럼 – 거침없이 끊어 버릴 수 없는 실이다. 그래서 고향에서 강제로 뽑혀지는 게 (혹은 스스로 자신을 뽑아내는 게) 아픈 것이다.
(빌렘 플루서, Heimat und Heimatlosigkeit: Das brasilianische Beispiel, in: Dericum, Christa/Wambolt, Philipp (Hrsg.), Heimat und Heimatlosigkeit, Berlin-Neukölln 1987, S. 43)
2021/05/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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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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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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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화제를 바꿔서 정치선전의 세계로.. (시간이 되시면 오역도 지적해주세요)http://www.unz.com/article/the-insidious-power-of-propaganda/
예전에 ‘자유세계’라고 하던 곳에서 정치선전의 효과를 연구하기 위해 지금보다 더 좋은 시기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뚜렷한 윤곽을 가지고 있는 음흉한 선전의 사례를 체험하고 있다. 그것은 공동의 필요에 부응한다. 대량살육과 인재人災의 시기에 도덕적 의식이 있는 사람은 좋은 것과 나쁜 것, 바람직한 것과 비열한 것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정치적으로 분명한 것을 원한다. 심지어 우리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처럼, 전쟁을 팔기 위한 장사수단으로 ‘도덕적 투명성’을 사용할 수도 있다.
지하디스트들이 수감된 기자들을 참수할 때 선악의 분류는 너무나 쉽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좋은 놈’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자욱한 안개가 끼어 있다. 시리아의 아사드는 오랫동안 나쁜 놈 명단의 맨 꼭대기에 있었지만, 그는 이제 사태를 수습하느라 전념하고 있는 자들에게 어느 정도 동맹이 된 것 같다. 게다가 미국과 미국의 아랍 동맹국들이 ISIS의 모체인 급진적 이슬람주의자들에게 자금을 대고 지원한 사실은 철저한 비밀이 아니며, 2003년 이라크 국가의 참수가 가져다 준 마법사의 제자 효과가 없었더라면 오늘날 이런 아수라장은 없었을 것이라는 것에는 거의 모두 동의한다.
우크라이나는 그보다는 더 명확하다. 민주주의와 서구의 가치를 위해 싸우는 키예프 전사들과 그 일을 방해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주변국의 주권을 존중하지 않으며, 어떤 제재를 가하더라도 그의 비타협성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298명이 사망한 항공기 추락 사건은 이제 더 이상 뉴스에 나오지 않으며, 누가 항공기를 격추시켰는지에 관한 조사는 어떻게 된 건지? 기다려도 소용없다. 지난 주 네덜라드인들은 TV에서 뉴스를 보다가 인터넷 자가출판(samizdat)에서 떠돌고 있는 소식을 들었는데, MH17 조사단에 참여한 나라들이 비공개 협정에 서명했다는 것이다. (키예프를 포함한) 참여국들은 모두 아무 이유 없이 결과의 공개를 거부할 권리를 갖고 있다. 298명의 운명을 결정한 그 원인에 관한 진실은 이미 정치선전에 의해 정해져버린 것 같다. 증거라고는 단 하나도 없었으면서 ‘반군’이 항공기를 격추시켰고 러시아가 개입되었다는 공식보도가 나왔고 그것은 여전히 대러 제재를 정당화하고 있다.
몇 주째 유혈사태와 폭격으로 인한 대대적인 파괴 속에서 위기는 힘겨운 발걸음을 계속 내딛어갔고 푸틴의 인도적 구호트럭이 제5열일지도 모른다는 나토의 불평이 나오자, 주류 언론은 러시아가 ‘반군’을 지원하기 위해 침략했다는 혐의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또 다시 우크라이나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불러 모았다. 9월 1일 뉴욕타임스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지금 전쟁중”이라는 논평을 발표했다. 이것도 정치선전물일까? 확실히 그렇게 보인다. 프랑스를 포함하여 외국 지원자들이 ‘반군’에 합류했으며 그들 대부분이 러시아인일 가능성이 있다. 도네츠크와 루간스크의 전투원들이 국경 바로 너머에 이웃과 친척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도네츠크인민공화국 각료회의 신임의장 알렉산드르 자하르첸코는 기자회견에서 외신기자의 질문에 만약 자신의 병력을 지원하는 러시아 군대가 있다면 아마 그들은 키예프로 벌써 이동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하르첸코의 병력이 러시아인들 없이도 그들 스스로 꽤 잘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정보들이 간간이 있다. 그들은 또한 동부의 형제들을 살해하려는 열정이 식어버려서 탈영한 키예프 병력의 도움을 받고 있다.
냉정한 편집자들에게는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낼 직접적 수단이 거의 없는데, 그들은 경험 있는 기자들을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에 보낼 수가 없다. 그들의 예산으로는 천문학적인 보험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좋은 실적을 갖고 있는 인터넷 사이트 여기저기에서 정보를 조금씩 모으는 수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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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정보부 분석가들이 협조를 거부한 뒤 - 그들의 의견은 언론을 통해 누설되었다 - MH17 참사에 관한 국무부와 백악관의 선전노선은 덜 단호해졌지만, 러시아 침략이라는 주제를 다시 살려냈고, 미국의 잡다한 출판물은 여전히 선악의 대결구도를 유지하면서 육성하고 있다. 이 중에는 포린폴리시처럼 명성을 중요하게 여기거나, 뉴리퍼블릭처럼 한 때는 상대적으로 리버럴 성향의 본부로 여겨졌던 매체들이 있다. 정치에 관해 상대적으로 신뢰할만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출처였던 이 매체들의 종말은 애도해야 마땅하다.이례적인 지정학 이론가 존 미어샤이머가 이례적으로 포린어페어스에 의견을 표명한 것은 불과 며칠 전이었다. 그는 우크라이나 사태 그 대부분의 책임자들인 워싱턴과 유럽 동맹국들에게 그 책임을 돌렸다. “미국과 유럽 지도자들이 러시아와 국경을 마주한 우크라이나를 서방의 근거지로 바꾸려는 시도는 실수였다. 그 실수가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는지 밝혀졌기 때문에, 잘못된 정책을 계속 고집하는 것은 더욱 더 큰 실수가 될 것이다.” 이러한 분석이 유럽의 일부 진지한 편집자들에게 확신을 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정신이 멀쩡한 필자를 한 명 더 꼽자면, 스티븐 코헨이 있다. 푸틴의 러시아를 이해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맨 처음 그의 글을 읽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언론은 ‘patriotic heretics’(조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배신하는 자들)을 - 코헨은 자신이 애국적 배신자라고 주장한다 - 매우 거칠게 다루고 있는데, 코헨도 뉴리퍼블릭에게 몰매를 맞고 있는 중이다.
성공적인 선전의 특징은 의심하지 않는 독자들이나 시청자들에게 서서히 스며드는 방식이다. 거의 모든 것에 관한 책이나 영화의 리뷰, 또는 기사에서 상대적으로 순식간에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말 속에서 넌지시 표현된다. 그것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지만, 하나만 예를 들어서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편집장 저스틴 폭스가 이렇게 묻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경제가 어려워질 것이 거의 분명한 자신의 나라를 왜 서방과의 대립으로 몰고가려하는가?” 가끔 자신의 이름으로 꽤 적절한 경제 분석을 했던 그에게 내가 묻고 싶은 건 “푸틴이 몰고 간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가”다. 대니얼 드레즈너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는 푸틴이 “서방이 우려하는 것에 대해서 우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일지도 모르며, “명성과 민족주의적 영광을 위해 경제성장을 기꺼이 희생하려 한다”고 말한다. 이런 말장난은 어디에나 있다. 그들은 푸틴과의 싸움이 보복주의와의 싸움이라고 한다. 마초적인 환상을 가진, 공산주의 없는 소련을 재창조하려는 야심에 찬, 전체주의적 야망에 사로잡힌 정치인과의 싸움이라고.
선전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은 숨겨진 의미를 통해서 머리에 무언의 지식을 주입시키는 방식이다. 우리가 말을 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 것들은 그 자체로는 무엇인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한 암묵적 이해가 수반하는 가정은 이미 정해져 있으며, 그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토론하지 않는다. 암묵적 지식을 갖고 있을 때 새로운 증거나 논리적으로 더 훌륭한 분석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다시 그 가정들에 의식을 집중하게 하려면 대체로 한숨을 내쉬며 “그냥 넘어가자”고 하기 때문에 굉장히 성가신 일이다. 암묵적 지식은 매우 개인적인 지식이다. 물론 그것은 그 사회가 채택한 확실성으로부터 도출된 것이기 때문에 명백히 공유된 지식이지만, 그것은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지식으로 바뀌어버리기 때문에, 그 지식은 우리가 지키려고 하는 어떤 것이 되어버리고, 필요하다면 필사적으로 지켜야 한다. 호기심이 별로 없으면 그것이 진실일 ‘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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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에는 포린폴리시처럼 명성을 중요하게 여기거나" ("some that have a reputation to uphold, like Foreign Policy")'과거 좋은 평판을 받았고 그런 전통을 유지해야 하[지만 애석하게 그러지 못하는] 포린폴리시'라는 의미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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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머리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옮긴 거거든요. 그런데 이씨네 집처럼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문 이랬을 때 그 이씨네가 포린폴리시처럼 대체로 알만한 사람들이면 대체로 그런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번역에는 이처럼 문화적 장벽같은 장애물들이 도처에 있기 때문에. 영어도 잘 못하지만 외국에서 산 적이 없어서 이해가 잘 안되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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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이지만,고유명사 Foreign Policy의 ‘번역’에 이곳 블로거 예술인생님의 성찰이 생각나네요. (http://blog.jinbo.net/alternativeasia/324 + 트랙백)
reputation, 즉 Foreign Policy의 특유한 행동으로 Foreign Policys는 고유한 것이 있다는 평판, 즉 선악의 대결구도(“good-evil scheme”)에서 벗어났다는 평판의 주체가 뭔지 궁금합니다.
Reputation이 루터 신학에서 중요한 ‘imputare’(누구의 공으로 치다) 개념과 유사합니다. ‘imputatio’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 신자가 한 일을 마치 내가 한 일로 쳐 준다는 말. 예수의 ‘내가 한 일’은 십자가는 지고 골로다로 가서 죽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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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關心+觀心?)은언론매체를 통한 ‘실제 상황(Reality)의 구성’(construction of reality)이란 맥락에서 이런 ‘구성의 현실’ (Wirklichkeit der Konstruktion/영어의 reality가 독어의 (헤겔적 의미의) Wirklichkeit 맞아 떨어지지 않아서 독어로 표현함)이 프랑크푸르트 좌파가 애기한 ‘현혹복합체’(Verblendungszusammenhang)인지, 루만이 cool하게 말한 ‘뉴스 – 非뉴스’ 코드로 생성된 시스템인지, 부르디외의 사회적 관계로 장전된 필드(field)인지... 개인적으로 행위자(기자)의 역할을 중시하는 부르디외의 분석에 치우치지만... 안 그러면 탈출구가 보이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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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린폴리시가 유료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 잡지를 제대로 본 적이 없어요. 근데 포린폴리시의 독자들을 보면 전문경영자들이 많은 것 같아요. 포린폴리시가 한때 신뢰할만한 매체였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독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고 있다는 얘긴데 미국은 조만간에 망할거라고 봐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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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 시작하고 BBC를 비롯하여 유럽 주류언론의 대부분이 충실히 따르면서 계속하고 있는 선전은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주민들이 자신들의 투표결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어 사용금지 정책을 도입한 루소포비아(러시아 혐오) 정권과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건 아닌지, 그들에게 공공건물, 병원, 주거지에 대한 폭격을 각오해야 할 정도로 절실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해서 아무런 질문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는다.선전노선은 푸틴이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어 사용지역에서 불안을 조장해왔다는, 단순한 러시아 침략과 관계된 것들 중 하나다. 나는 주류언론 어디에서도 키예프 병력이 저지른 파괴에 대한 보도와 사진을 볼 수 없었다. 그 광경을 본 목격자들은 전 세계가 보았던 가자공격에 비유했다. CNN과 BBC 보도에 함축된 견해들, 미 국무부 대변인의 말을 인용한 ‘소셜미디어’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토록 성공적인 선전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정보는 이를테면 러시아 투데이를 모스크바의 선전기관으로 낙인찍는 것처럼 무력화시켜야 한다.
이러한 지배적인 선전이 번성하는 것은 범대서양주의 때문이다. 그것은 미국이 세계의 주요 정치행위자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세계는 잘 돌아가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유럽은 미국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둬야 한다는 유럽인들의 믿음이다. 저속한 범대서양주의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곳은 러시아 적군을 눈앞에 두고 있다며 라디오에서 울부짖는 네덜란드이며, 세련된 범대서양주의는 나토를 방어하기 위해 그것이 왜 여전히 존재해야하는지 다양한 역사적 이유를 찾아내는 나라들에서 나타나고 있다. 전자는 한심하기 짝이 없고 후자에 대해서는 쉽게 반박할 수 있다. 그러나 합리적인 호소력을 갖춘 지적으로 가장 유혹적인 방식의 범대서양주의에는 쉽게 대처하지 못한다.
이라크를 침략하기 전이었던 11년 전 정치선전이 유럽을 덮쳤을 때, 그 당시 미국 정부의 정치적 지혜에 대한 유럽의 신뢰 위기를 복구하기 위해 냉철한 학자들과 논객들이 책상에서 벌떡 일어나 합리성에 호소했다. “미국이 없으면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원칙이 가슴에 새겨진 것은 그때부터였다. 이러한 범대서양주의 교리는 정치 엘리트들 사이에서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에, 동맹 내부에서 반세기가 넘도록 상대적 안락함을 누리고 나서 갑자기 과거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자국의 안보에 관한 고려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그 이상의 것이 있었다. 대서양 동맹(Atlantic Alliance, 나토를 말함)에 대한 더 높은 수준의 이해를 촉구하는 탄원, 동맹의 재활성화를 위해 새롭게 이해하자는 호소는 자신들이 손해를 보고도 그 현실에 맞설 수 없는 마음씨 좋은 친구들의 가슴 아픈 눈물과 같은 것이었다.
상처를 아물게 하기 위해서는 연고가 필요했고, 큰 덩어리로 배달되었다. 권위 있는 유럽의 지식인들과 고위 공무원들은 조지 W. 부시에게 공동으로 공개서한을 보내, 관계회복과 그것의 달성을 위한 공식문구를 긴급 요청했다. 더 낮은 수준에서는 논설위원들이 합리성을 지지하는 행동에 돌입했다. 미국의 새 외교정책에 대한 환멸을 표시하면서 균열의 치유, 화해를 위한 소통, 상호이해 개선, 기타 등등에 대한 필요성을 주장했다. 2003년 여름, 이라크에 대한 성급한 침략을 분명히 반대했던 사람들은 처음의 서슬 퍼렇던 입장이 무뎌지는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례를 들자면 옥스퍼드대 역사학자이며 다작논객이며 일반적으로 합리적 인물로 여겨지는 티모시 가튼 애쉬는 transatlantic balm(유럽-미국 사이에 까칠해진 관계를 위한 립밤)이 넘쳐나는 기사와 책을 마구 찍어댔다. 새로운 가능성들이 발견되었고, 동맹은 개과천선했고,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가 열렸다. “양측 모두 노력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탄원과 사설의 전반적 취지 역시 그러했다. 그러나 미국의 군사주의의 맥락에서 보면 토론은 나토의 기능을 중심으로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상호양보가 아니라 유럽이 책임을 져야 했다. 지난 몇 달간 보았듯이 미국의 양보는 없기 때문에, 이라크전을 위한 선전에 반대하며 유럽이 쏟아부은 에너지는 이제 거의 완전히 바닥이 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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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튼 애쉬는 2014년 8월 1일자 가디언 기고문을 통해 “대부분의 서유럽인들은 푸틴의 크림 병합(anschluss)을 모른 척 했다”고 주장하면서 업무에 복귀했다. 병합? 우리가 지금 푸틴을 히틀러에 비유할 정도로 천박해지고 있다니. 이번에는 애쉬가 제재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신문 사설의 틀에 박힌 말을 초월하면서까지 무리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는 이번에는 이번 사태에 대한 미국의 어떠한 역할에 대해서도 해명하지 않는다.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거대한 착각 덕분에 범대서양주의자들의 믿음은 더 견고하게 복구되었기 때문에, 올해의 선전은 무제한의 자유를 획득했다. 이것은 합리적인 모든 사람들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방어할 필요가 없는 암묵적 지식이다.범대서양주의는 유럽을 눈멀게 하는 고난이다. 그것은 너무나 효과적으로 사람들의 눈을 가리기 때문에, 오늘날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를 놓고 토론하는 곳은 어디에서나 현존하는 위협은 끊임없이 도외시된다. 내가 읽고 있는 주류언론의 뉴스와 논평은 우크라이나를 키예프와 ‘분리주의자들’과 특히 푸틴의 동기에 관해 다루고 있다. 이렇게 사태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내가 보기에 이유가 명확하다. 범대서양주의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서 미국의 개입이 긍정적인 것으로 해석될 수 없다면, 그것을 모른척해야 한다.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없다면, 회피하는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이유는 단순히 모르기 때문이다. 사려 깊고 교육받은 네덜란드인들 사이에서 미국 네오콘의 부상과 영향력을 추적해왔다거나, 또는 사만사 파워가 푸틴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아챈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미국 정부의 다양한 기관들이 어떻게 서로 관련되어 있는지, 미국에 대한 적절하면서 실현가능한 외교정책을 개발할 수 있는 정부의 효율적인 감독 없이, 그 기관들이 어느 만큼이나 바로 자신들의 삶을 주도하고 있는지 그들은 모른다.
선전은 모든 것을 만화책의 단순함 수준으로 떨어뜨린다. 이를테면 키예프 정부 하에서 IMF가 도입되면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는지와 같은 정교함이 선전에는 존재할 틈이 없다. 그리스 꼴이 난다. 우크라이나 동부와 서부가 여전히 한 나라에 존재하지만 상당한 수준의 자치정부를 가질 수 있도록 일종의 연방정부를 구성하기 위해서(키예프가 폭격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 동부인들에게는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외교가 필요하다는, 푸틴이 자주 표현했던 열망은 그리 모호한 것도 아니었는데 선전에는 존재할 수 없다. 만화책 수준의 상상력은 나쁜 놈이 합리적이고 좋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해서는 안된다는, 푸틴의 주된 소원이며 애시당초 그가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했던 근본적 이유는 우리의 시야에 들어올 수 없다. 푸틴이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우크라이나가 비동맹 중립국으로 있는 것이며, 정권을 유지하기 원하는 러시아 대통령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주장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선동자들은 워싱턴의 집무실에 있다. 그들은 러시아를 (그들 용어로) “왕따국가”(pariah state)로 만들기 위해 러시아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로 결정했다. 2월 쿠데타가 다가왔을 때 그들은 반러시아 우익 세력이 더 많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저항운동을 장악할 수 있게 도왔다. 키예프가 통치하는 주민들에게 더 많은 민주주의가 주어졌다는 생각은 물론 터무니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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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schluss와 같이 복잡하게 장전된 낱말을 번역하기란 거의 불가능한데... 그래서 그냥 그대로 사용하는데 ... 우리말로 '안슐루쓰'하든 '병합'하든, 혹은 'Anschluss'를 그냥 인용하든 '안 넘어오는' 게 넘 많네요. 암튼, 파블로프반응을 야기하는 야구방망이 논증.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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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론적인 것(이름, 고유명사)을 관념화된(실증주의로 전락한) 유명론적인 것으로, 즉 개별적인 것으로 취급하여 '번역'할 수 없다고 할 수도 없고 (Anschluss를 그대로 사용) 그렇다고 해서 실재론적인 보편성의 껍데기로 하여 번역할 수도 없고 ('병합'으로 '번역'하여 사용)... 암튼 '번역'이 변증법의 장이 되는데... 머리가 아프네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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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역사적인 것(히틀러의 Anschluss)를 등에 업고 탈역사를 자행하는 애쉬의 수법이 "음흉한 선전"("the insidious power of propaganda")의 정수라는 생각이 듭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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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ah state도 찾아보니까 역시 고민이 되요. 이 말을 현재 언론에서는 왕따국가라고 번역하는데 단순히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파리아가 불가촉천민이라는 말이기 때문에 저 나라와 내통하는 국가도 벌을 줄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천민자본주의Pariakapitalismus도 이 단어를 써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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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식민주의를 사상하고 사용할 수 없는 낱말이죠.부가 정보
일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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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나 러시아는 프로파간다전에서 미국을 이길 수가 없어요. 프로파간다는 말이 도구고 프로파간다전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세계공용어인데 어떻게 이겨요. 영어로 나오는 출판물이 인터넷을 잠식하고 있는데. 그래서 또 고종석 같은 사람은 우리도 피켓에 영어로 쓰자고 주장하죠. 세계인들이 다 이해할 수 있게.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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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과학주의적, 반지식주의적 발상!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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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저런 입장이 지긋한 카운터파워(영 counter-power 독 Gegen-Macht) 형성을 불가능하게 하는 게 아닌지...부가 정보
일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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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문제는 지금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얼마전에 미씨 유에스에이라는 단체가 뉴욕타임스에 세월호 광고를 냈습니다. 이걸 가지고 조선일보가 또 다른 사대주의라고 비난했는데 조선일보야 너절한 신문이니까 들을 가치도 없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현재 우리나라가 전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친미국가가 됐습니다. 그런데 전에는 우리가 반미였습니다. 87항쟁 당시에 나온 외신을 보면 한국인들이 엄청나게 반미였습니다. 윤금이씨 사건 때도 엄청났습니다. 미군 장갑차 사건 때도 엄청났습니다. 싸이가 옛날에 엄청나게 공격적인 반미 노래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다 허깨비였던 겁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반미라는 것은 민주화운동세력이 만들어낸 현상이고 우리는 본질적으로 친미적인 나라인 것 같습니다.부가 정보
일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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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을 좀 정리해서 왔습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나라에서 카운터파워 형성이 불가능한건 고종석 같은 집단의 자유주의가 문제가 아닙니다. 비열하고 그동안은 민주화세력이라는 탈을 쓰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완전히 본색이 다 드러난 것 같아요. 그동안 실컷 엔엘 이용해먹더니 필요없으니까 종북이라고 토사구팽하고. 그럼 엔엘은 남을 이용해먹지 않았냐고 물으면 또 할 말이 없죠. 자기보다 약하면 짓밟고 다녔으니까. 사람들이 안 그래도 삶이 고달픈데 누가 배신과 협잡의 세계에 빠져들고 싶겠어요. 정치에 무관심한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번에 세월오월 그림을 보면서 알 수 없는 감정을 가졌는데 그 그림을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일베보다 우리나라 진보적 남성의 은폐된 공격성이 더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정당한 분노로 포장한다는거죠. 그래도 아닌건 아니어야 되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실제로 일베만큼은 아니더라도 운동권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굉장히 공격적입니다. 게다가 지금 일베에 대해서 나오는 말들을 들어보면 도대체 누가 더 파쇼적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트위터에는 저런 말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당분간 우리 정치는 가망이 없습니다. 남은건 상호적대와 분열입니다.부가 정보
일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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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주제에 관해 진지한 필자들이 있다. 그들은 푸틴 치하에서 최근 몇 년간 러시아인들의 삶에 변화에 도덕적으로 분노한 사람들이다. 이것은 우크라이나 사태와는 다른 주제이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선전에 많은 도움이 된다. 위에서 언급한 뉴욕타임스 논평을 쓴 벤 유다가 좋은 예다. 나는 그들의 분노를 이해하고, 어느 정도 그들에게 공감한다. 중국이나 일본에 대해서 글을 쓰는 기자들을 통해 너무나 많이 봤기 때문에 이런 현상에는 친숙하다. 중국과 러시아의 경우 그들의 분노를 촉발한 것은 그들의 눈에 완전히 잘못 되고 있는 사태들의 축적이며, 그 이유는 자유주의적 사상에 부합하게 행동해야 하는 것들로부터 이탈하여 퇴보적으로 보이는 당국의 조치들 때문이다. 그들의 분노는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할 수 있다. 분노 때문에 시야가 가린 그들은 실권자들이 끔찍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지 못한다.러시아의 경우 푸틴이 전 정권으로부터 러시아를 물려받았을 때, 국가가 더 이상 하나로 기능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중앙에 권력을 재집중하는 것을 요구했다는 사실에 대해 최근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옐친 밑에서 러시아는 서방의 무수한 약탈적 이익단체들과 하버드의 시장 근본주의에 현혹되어 경제적으로 파탄이 났다. 공산주의가 폐지된 후, 그들은 즉시 미국 스타일의 자본주의로 전환하라는 꼬임에 빠졌고, 그러한 전환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기관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민간부문이 없는 거대한 국유산업들을 민영화했다. 일본 역사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듯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빨리 뭔가를 창조할 수는 없다. 따라서 그들이 얻은 것은 클렙토크라트 자본주의며, 국가재산은 강탈당했고, 그 결과 악명 높은 올리가르히들이 태어났다. 상대적으로 안정을 누렸던 러시아 중산층은 파괴된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러시아인들의 기대수명은 곤두박질쳤다.
물론 푸틴은 외국 NGO들을 제한하고 싶어 한다. 그들은 푸틴의 정부를 불안정하게 해서 많은 해를 끼칠 수 있다. 외국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는 정책연구소들은 연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일치하는 정책을 팔러 다니기 위해 존재하며, 최근의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생각이 없는 그들은 그 생각이 언제든 누구에게나 좋은 것이라는 교조적인 가정에 빠져있다. 이 주제는 최근의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이야기들 중에서 기껏해야 슬쩍 스쳐지나갈 뿐이지만, 현재 널리 퍼져있는 선전을 위해서 지적 토양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푸틴의 팬이냐고? 나는 그를 모르며, 그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다. 최근의 문건들을 읽으면서 그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했는데, 산더미 같은 비방을 일일이 다 훑어봐야겠다는 느낌을 피할 수가 없고, 주류언론에서는 러시아 제국을 재건하려한다는 실없는 소리 외에는 도대체 푸틴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알아내려는 진지한 시도를 전혀 찾을 수 없다. 제국주의적 야망이나 쿠데타 전부터, 그리고 정상에 오른 루소포비아들이 나토에 가입하려는 야심 때문에 러시아 해군기지가 위태롭게 되기 전부터 그가 크림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는 증거는 전혀 없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반미냐고? 그런 꼬리표가 붙는 것은 거의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미국은 끝없는 비극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시름에 잠긴 미국인들에 대해 마음 속 깊이 동조한다. 특히 그들 중에서 이 비극과 온몸으로 싸워야 할 나의 친구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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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드립니다^^마지막으로 이 글의 제목 “The Insidious Power of Propaganda”의 번역을 고민해 봅니다.
“선전의 음흉한 권력”이 되겠지만 ‘음흉한 권력의 선전’ 혹은 ‘권력의 음흉한 선전’으로 번역해도 그 의미가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즉, 권력과 선전간 차이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권력이 선전의 효과인지, 선전이 권력의 효과인지 알 수 없게 권력과 선전이 삼투(滲透) 되어 있습니다. 이게 “현혹복합체”(Verblendungszusammenhang)의 또 다른 효과인지...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개입하지’라는 고민에 필자의 마지막 진술이 시사하는 게 있지 않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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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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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결코 간단치 않아요. insidious를 찾아보면 이렇게 나옵니다.1. Insidious is derived from the Latin word insidere, "to sit on" or "lie in wait." Something that is insidious may not seem dangerous or harmful at first, but slowly spreads to become so. An insidious disease, for example, is one that may not be detected until it has spread to the point of being fatal.
2. Insidious (adverb insidiously)
developing in a very gradual, in a stealthy manner, with the intend of causing damage.
insidious disease를 잠행성 질병이라고 합니다. 잠행은 잠수함처럼 이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은밀하게 확산된다는 뜻이고, 그걸 알아챘을 때는 이미 늦었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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