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독일의 복지제도가 한국 복지제도의 패러다임? - 3

 경제성장률변화와 연동하는 정치적 변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독일 경제성장률(국내총생산 전년대비 변화). 1960년까지 평균 8% 성장. 가로막대기는 10년별 평균경제성장률: 1960년대 4%를 넘는 평균성장률에서 2000년대 1%정도로 떨어짐.

(출처: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 http://library.fes.de/pdf-files/wiso/08997.pdf /독일 연방통계청)

 

마이너스 성장 시기는 또한 정권변화 혹은 대대적인 정책변화가 일어난 시기이기도 함.

 

1) 1967년 마이너스 성장 시기에 기민/기사연합과 사민당간의 첫 대연정이 구성되고 차후 사민당-자민당 연정이 마련됨.

2) 1975년 마이너스 성장 시기를 전후로 사민당 브란트총리가 퇴임하고 슈미트정권이 들어섬.

3) 1982년 사민당-자민당 연정이 붕괴되고 콜 총리가 이끄는 기민/기사연합-자민당 연정이 구성됨.

4) 1993년 마이너스 성장 시기에 구동독 지원정책의 첫 수정이 이루어짐.

5) 2003년 마이너스 성장기에 이른바 아젠다 2010 개혁정책이 개시됨.

6) 2009년 마이너스 성장기에 기민/기사연합-사민당 두 번째 대연정이 붕괴되고 기민/기사연합-자민당 연정이 들어섬. 금융위기에 이은 2009년 마이너스 성장기가 초래한 특이한 결과는 4년 후 신자유주의정책 완고파라 할 수 있는 자민당이 5%이하 득표에 그치고 독일연방국 사상 처음으로 연방하원에 탈락한 것임. 이후 제3차 기민/기사연합-사민당 대연정아래 신자유주의정책의 일환인 아젠다 2010 개혁이 약간 수정됨.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독일의 복지제도가 한국 복지제도의 패러다임? - 2

좀 다른 접근 ....

 

시간이 흐르면서 시대의 맛도 변한다.

 

짝지는 70년대 독일이 살기 제일 좋은 때였다고 한다. 특히 이주노동자의 경우 그랬다. 공짜로 말 가르쳐주고, 말을 잘 못해도 일을 시키면서 월급은 독일노동자들보다 더 많이 주었으면 주었지 덜 주지 않고. 기숙사 월세 50 마르크만 있으면 살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600마르크 정도를 벌었는데. 밥은 병원에서 먹고. 나머지 돈은 모아두었다가 3개월에 한번쯤 한국에 보내고.

 

시대는 변하여 다문화사회를 운운하지만 이주노동자가 살기에는 더 좋아지지 않았다. 다문화사회란 담론은커녕 그런 말조차 없었던 때가 이주노동자가 살기에 훨씬 더 좋았다는 것. 아마 독일 서민들의 삶이 물질적으로 그리 각박하지 않아서 그랬을 거다.


자본의 요구에 따라 이주노동자들이 독일로 왔다. 근데 80년을 기점으로 하여 자본은 이주노동자를 불러오는 대신 적극 딴 데로 가기 시작했다. 노동력을 불렀는데 사람으로 온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눈총이 변하기 시작했다. “저들은 왜 돌아가지 않고 아지 여기 있어?”에 대한 반응으로 다문화사회담론이 등장했다. 자본의 요구에 따라 형성된 ‘자국’노동자+‘이주’노동자 사회에서 자본은 슬쩍 빠져나가고, 이른바 진보세력은 다문화사회라는 담론으로 자국노동자-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자본의 문제로 설정하지 못하고 문화와 인식부족의 문제로 전환했다.

 

It's the logic of capital, stupid.

 

아젠다 2010  개혁의 사회적 담론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독일의 복지제도가 한국 복지제도의 패러다임? -1

한국일보에 이런 기사가 있다: [복지, 패러다임을 바꾸자] 시장경제 강조하면서도 낙오자들 보호 '중부담-중복지' 독일 벤치마킹 대상으로

 

독일따라하기가 관건?

 

독일 사민당의 집권아래 추진된 아젠다 2010 복지제도의 개혁이 독일경제와 복지제도를 튼튼하게 했다는 평가가 있다. 통계적으로 실업이 줄고, 국가재정건전성이 회복되고 복지제도의 금고가 흑자운영을 할 수 있을 만큼 탄탄해졌다고 한다.

 

근데 이상하다. 평범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게 이제 시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장면이 되었다. 페트병 환불시스템 도입 후 페트병을 뒤지는 사람들의 모습니다. 경제가 잘 돌아간다면 서민의 생활이 나아져서 저런 모습은 사라져야 하는데, 노숙자도 아닌 서민들이, 특히 나이든 사람들이, 페트병을 뒤지고 다닌다. 다른 사람들이 버리고 간 페트병을 모아 환불해서 부족한 생활비에 보태써야 하는 사람들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SÜddeutsche Zeitung, 온리인판 2014.2.26, http://www.sueddeutsche.de/wirtschaft/vermoegensbericht-des-diw-deutschland-wird-ungleicher-1.1898685, )

 

독일 주요 경제연구소인 DIW(Deutsches Institut für Wirtschaftsforschung e.V. 사단법인 독일 경제연구 연구소)의 2014.2.26 Wochenbericht(주보고) 9호에 따르면 독일의 빈부격차가, 한국의 또 다른 모델이 되고 있는 오스트리아에 앞서, EU에서 가장 큰 것으로 분석되었다.

 

독일의 아젠다 2010 복지개혁이 과연 누가 추진한 개혁이고 누가 참조하고자 하는 개혁인지 밝혀보고자 한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무조건 기본소득 관련 통계자료

“무조건 기본소득을 위한 유럽 시민 발의”(European Citizen's Initiative for an Unconditional Basic Income, 이하 ECIUBI)가 유럽집행부의 인가하 2013.1.14일부터 2014.1.14일까지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약 5억의 EU 시민 중 100만 명이상이 서명하고, 회원국 28개국 중 최소 7개국에서 정족수를 넘으면 유럽집행부는 유럽의회에서 기본소득 관련 청문회를 개최해야 한하는 것이었다.

 

근데 ECIUBI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많이 부족하다. 각국의 서명상황을 보면 무조건 기본소득건이 ‘컵 안의 폭풍'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자료를 기본소득 한국네트워크에서 찾아볼 수 없어서 올린다.

  

    국가                서명자      정족수    정족수 대비   인구               인구대비
                                                         서명자                               서명자

1    불가리아       40.683         13.500    301,40%    7.261.000         0,56%
2    슬로베니아     9.255           6.000    154,30%    2.062.000         0,45%
3    Croatia        12.194            9.000    135,50%    4.258.000         0,29%
4    Belgium       19.010          16.500    115,20%    11.162.000        0,17%
5    Estonia          4.884           4.500    108,50%    1.283.000          0,38%
6    네델란드       20.337         19.500    104,30%    16.795.000       0,12%
7    Hungary       14.514         16.500    88,00%    9.894.000            0,15%
8    France         37.415         55.500    67,40%    63.820.000         0,06%
9    Slovakia          6.352          9.750    65,20%    5.413.000           0,12%
10   스웨덴            9.601         15.000    64,00%    9.595.000           0,10%
11    Spain         25.420          40.500    62,80%    46.958.000        0,05%
12   Austria          8.495          14.250    59,60%    8.477.000           0,10%
13   독일              41.291        74.250    55,60%    80.640.000          0,05%
14   포르투갈          6.871       16.500    41,60%    10.609.000            0,06%
15    덴마크           3.200          9.750    32,80%    5.612.000             0,06%
16    체코               4.572        16.500    27,70%    10.519.000          0,04%
17    영국         10.54.750        54.750      18,50%    64.231.000         0,02%
18    Greece          2.869        16.500    17,40%    10.758.000           0,03%
19    Finland           1.622         9.750    16,60%    5.436.000             0,03%
20    Romania        4.082        24.750    16,50%    19.858.000            0,02%
21   룩셈부르크         630          4.500    14,00%    542.000                  0,12%
22    Ireland           1.170          9.000    13,00%    4.662.000               0,03%
23    Poland           4.765        38.250    12,50%    38.548.000            0,01%
24    Italy                 4.531       54.750    8,30%    59.789.000              0,01%
25    Malta                 194         4.500    4,30%    419.000                     0,05%
26    Cyprus              112         4.500    2,50%    1.117.000                  0,01%
27    Lithuania            221        9.000    2,50%    2.956.000                  0,01%
28    Latvia                 154         6.750    2,30%    2.011.000                 0,01%
       EU 전체    294.555                       504.685.000            0,06%

(출처:http://www.ebi-grundeinkommen.de/zahler/)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Gilles Deleuze, l'Abécédaire lettre N (extrait)

Gilles Deleuze, l'Abécédaire lettre N (extrait)

 

In memoriam Gilles Deleuze, Fetischpark

 

Wilfred Owen, Benjamin Britten - War Requiem

 

 What passing bells for these who die as cattle?
 Only the monstrous anger of the guns.
 Only the stuttering rifles' rapid rattle
 Can patter out their hasty orisons
 No mockeries for them from prayers or bells,
 Nor any voice of mourning save the choirs, --
 The shrill, demented choirs of wailing shells;
 And bugles calling for them from sad shires.
 What candles may be held to speed them at all?
 Not in the hands of boys, but in their eyes
 Shall shine the holy glimmers of good-byes.
 The pallor of girls' brows shall be their pall;
 Their flowers the tenderness of silent minds,
 And each slow dusk a drawing-down of blinds.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역사의 천사 대 기억의 천사 - 2

"총체예술(Gesamtkunst)은, 총체문학(Gesamtliteratur)은 우리 안에, 우리가 인정할 수 없어서 다 버리고 남아있는 유일한 여신 므네모쥐네(Mnemosyne)의 보호아래, [이미] 현존하고 있다고 그는(코피) 말을 이어갔다. 예술의 어머니인 이 여신의 이름은 기억이다. 이 여신은 총생산물(Gesamtleistung)에서 우리 고유의 인식을 함유하고 있는 것을 보호한다. 이 여신은 우리의 몸짓(Regungen)이 열망하는 것을 우리에게 속삭여준다."

 


"Die Gesamtkunst, fuhr er fort, die Gesamtliteratur ist in uns vorhanden, unter der Obhut der einen Göttin, die wir noch gelten lassen können, Mnemosyne. Sie, die Mutter der Künste, heißt Erinnerung. Sie schützt das, was in den Gesamtleistungen unser eigenes Erkennen enthält. Sie flüstert uns zu, wonach unsere Regungen verlangen."

 

(저항의 미학, 1권, § 5)

 

이 대목의 연장선에서 노동자계급의 성격을 정의해 볼 수 있지 않을까한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я́ма(구덩이) 와 моги́ла(무덤) 간의 차이 - 지식인의 말하기

베를린에 오면 또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 ‘유럽에서 살다가 학살당한 유대인들을 잊지 말라고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Denkmal für die ermordeten Juden Europas/‘유럽 유대인 학살 추모공원’이라고 번역한 적이 있는데 뭔가 아니다)이다.

 

그리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반드시 지하 전시장을 들려야 한다. 이 ‘걸림돌’이 이야기하는 게 뭔지 알려면.

 

지하 전시장의 핵심어는 유대인 전통에 중요한 "기억하라"(זכור/자코르)다. 만행의 흔적을 다 불태워버린(홀로코스트) 나치에 대항하는 "기억하라"다.

 

거기에 기억을 위한 걸림돌이 되는 사료(史料) 중 마음을 짓누르는 사료가 하나 있다. 12살의 소녀가 죽음을 몇 분 앞두고 급히 아빠에게 쓴 몇 줄이다. 폴란드에서 살았던 유디트 비쉬니야쯔카야(Judith Wischnjatskaja)의 마지막 흔적이다.


나치가 얼마나 많은 유대인을 죽였는지 알 수 없다. 600만 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들 대부분이 집단수용소에서 가스와 학살노동으로 살인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200만 명 이상은 허허벌판에서 총살되었다. [독일제국군은 반인도적인 범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200만 명을 총살하는 것이 어떻게 제국군대의 도움 없이 가능하다는 말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함부르크사회연구소가 마련한 제국군대전시회(Wehrmachtausstellung)가 보여주었다.]  총살벌판으로 끌려간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매장될 구덩이를 파야만 했었고 발가벗은 채 총살을 기다려야 했다. 구덩이로 떨어져 진 사람들은 확인 사살되었다.

 


줄을 지어 총살을 기다려야 했다. 유디트는 이렇게 자신의 총살을 앞두고 아빠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 종이를 땅에 흘렸다. 소련 적군(赤軍)의 뒤를 따르면서 다시 해방된 지역에서 나치 만행의 흔적을 찾아내고 기록하여 ‘검은 책’을 발간하려는 지식인들이 있었다. 유태인반파쇼위원회 소속 사람들이었다.

 

이 중 한 장교가 유디트가 흘린 편지를 발견한다. 그리고 폴란드어로 쓰인 편지를 러시아로 번역하여 타이핑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타이핑한 장교는 유디트가 사용한 ‘구덩이’를 그어버리고 ‘무덤’으로 고친다. 왜 그랬을까? ‘구덩이’가 유디트의 존엄성에 맞지 않아서? ‘무덤’으로 고침으로서 유디트의 존엄성이 회복되기를 바라면서? 아마 그랬을 것이다.

 

지식인이 취해야 하는 자세는? 입만 빌려주면 될까?

 

"구덩이"를 "무덤"으로 고치는 행위 마음가짐에서 "유디트 되기“를 거부하는 마음의 움직임이 탐지된다. "유디트가 되어야"하는 게 아닐까?   

 

질 들뢰즈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음이 찢어진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독일 녹색당의 후퇴-버전 2.0

독일 녹색당은 잘 나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70년대 후반 학생운동의 말기에 할 일이 없어서 택시운전을 했던 피셔)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85년 헷센주 환경부장관 선서시)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98년 적녹 연정을 구성하고 나서)

 

우선 사상이 있었다. 서구의 물질문명에 대한 뿌리 깊은 비판(‘계몽의 변증법’/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이 있었고, 정의와 평화에 이어 창조의 보존을 기독교인이 해야 할 일로 만든 신학("창조 안에서의 하나님 - 생태학적 신학 창조론‘/몰트만)이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역사를 골동품 다루듯이 하는 역사학 대 비판적인 역사학, 알프레드 슈미트가 강의하는 모습)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jeffmannes.blogspot.de, 난 너를 발가 벗긴다.) 자연을 지배하려는 도구적 이성에 대한 비판

 

그리고 평화와 창조보존을 위한 헌신적인 투쟁이 있었다. 젊은이들은 창조보존을 위하여 달을 넘고 해를 넘는 점거투쟁을 하였다. 그리고 투쟁분야의 전문가들이 되었다. 원전에 사용되는 나사하나까지도 정확하게 파악하는 철저함으로 기능엘리트들의 ‘니들은 몰라’하는 교만에 맞서고 대중의 신뢰를 얻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유공화국 벤트란트/ Republik Freies Wendland, 핵쓰레기 폐기장으로 지정된 지역을 점거하여 투쟁하는 모습들, 이 투쟁은 30년이상 지속되고 있음)

 

창당하고 주(州)의회에 이어 연방하원에 들어갔다. 사민당과 연정을 하여 부총리자리까지 올라갔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서는 마침내 기존 대중정당인 사민당과 기민당을 누르고 정권을 창출하였다. 주총리자리까지 올라갔다. 명실공이 대중정당이 되는 순간이었다. 녹색당이 차기 연방총리자리를 차지할 거라는 전망도 있었다. 2013년 총선에서 녹색당이 25%이상을, 사민당 25% 미만을 득표하여 적녹연정이 아니라, 녹적연정을 구성할 수 있을 거라는 것.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독일의 새로운 인민정당/Volkspartei, 슈피겔 2010년 46호)
                       

근데 2013년 선거에서 녹색당은 8.4%를 얻는데 그치고 말았다.

 

엘리트주의와 포퓰리즘사이에서 정신의 줄을 놓치고 제정신 아닌  상태에 빠지고 결국 넋이 없는 짓거리들을 한 것이다.

 

한 사례다.

 

친환경, 무공해, 유기농 식품이 건강에 좋다는 말은 어느 잡지에서도 볼 수 있는 지루한 유행이 된지 오래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젠 채식을 하자고 한다. 베를린에서 개발된 소시지 요리인 카레소시지(Currywurst)로 유명한 ‘Curry 36’이라는 소시지집이 있다. 관광객들까지 몰려오는 소시지집이다. 그 집에 가면 줄을 서지 않을 때가 없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거리부스에서 케밥을 파는 집이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파리만 날리는 집이었다. 한쪽에서는 사람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는데, 그 집은 손님이 없어서 빙글빙글 돌아가도록 만든 꼬챙이에 끼워진 케밥고기 덩어리가 시커멓게 되어가는 것이었다. 근데 이전 역전이다. 그 케밥집 앞의 줄이 ‘카레36’ 집 앞의 그것 보다 훨씬 더 길다. 야채케밥(베지케밥)을 팔기 시작한 이후부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카레36)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카레 36옆 베지 케밥집)


이런 것에 현혹되었던지 2013년 총선유세시 녹색당은 일주일에 한번은 야채를 먹는 날로 정("Veggie Day")하여 의무화하자고 내놓았다. 암튼 이렇게 보도되었다. 대중의 반응은 차가웠고 등을 돌렸다. ‘즈그들이 뭔데’.

 

 

사용자 삽입 이미지

              (베지데이하자는 퀴나스트)

사용자 삽입 이미지

              (녹색당이 고기를 금하려고 한다는 Bild지의 왜곡된 보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독일 녹색당의 후퇴

독일 녹색당은 잘 나갔다.

 

우선 사상이 있었다. 서구의 물질문명에 대한 뿌리 깊은 비판(‘계몽의 변증법’/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이 있었고, 정의와 평화에 이어 창조의 보존을 기독교인이 해야 할 일로 만든 신학("창조 안에서의 하나님 - 생태론적 신학 창조론'/몰트만)이 있었다.

 

그리고 평화와 창조보존을 위한 헌신적인 투쟁이 있었다. 젊은이들은 창조보존을 위하여 달을 넘고 해를 넘는 점거투쟁을 하였다. 그리고 투쟁분야의 전문가들이 되었다. 원전에 사용되는 나사하나까지도 정확하게 파악하는 철저함으로 기능엘리트들의 ‘니들은 몰라’하는 교만에 맞서고 대중의 신뢰를 얻었다.

 

창당하고 주(州)의회에 이어 연방하원에 들어갔다. 사민당과 연정을 하여 부총리자리까지 올라갔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서는 마침내 기존 대중정당인 사민당과 기민당을 누르고 정권을 창출하였다. 주총리자리까지 올라갔다. 명실공이 대중정당이 되는 순간이었다. 녹색당이 차기 연방총리자리를 차지할 거라는 전망도 있었다. 2013년 총선에서 녹색당이 25%이상을, 사민당 25% 미만을 득표하여 적녹연정이 아니라, 녹적연정을 구성할 수 있을 거라는 것.

 

근데 2013년 연방총선에서 녹색당은 8.4%를 얻는데 그치고 말았다.

 

엘리트주의와 포퓰리즘사이에서 정신의 줄을 놓치고 제정신 아닌  상태에 빠져 결국 넋이 없는 짓거리들을 한 것이다.

 

한 사례다.

 

친환경, 무공해, 유기농 식품이 건강에 좋다는 말은 어느 잡지에서도 볼 수 있는 지루한 유행이 된지 오래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젠 채식을 하자고 한다. 베를린에서 개발된 소시지 요리인 카레소시지(Currywurst)로 유명한 ‘Curry 36’이라는 소시지집이 있다. 관광객들까지 몰려오는 소시지집이다. 그 집에 가면 줄을 서지 않을 때가 없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거리부스에서 케밥을 파는 집이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파리만 날리는 집이었다. 한쪽에서는 사람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는데, 그 집은 손님이 없어서 빙글빙글 돌아가도록 만든 꼬챙이에 끼워진 케밥고기 덩어리가 시커멓게 되어가는 것이었다. 근데 이전 역전이다. 그 케밥집 앞의 줄이 ‘카레36’ 집 앞의 그것 보다 훨씬 더 길다. 야채케밥(베지케밥)을 팔기 시작한 이후부터다.        

 


이런 것에 현혹되었던지 2013년 총선유세시 녹색당은 일주일에 한번은 야채를 먹는 날("Veggie Day")로 정하여 의무화하자고 내놓았다. 암튼 이렇게 보도되었다. 대중의 반응은 차가웠고 등을 돌렸다. ‘즈그들이 뭔데’.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오늘의 연상(聯想)-생각 꿰매기

매일 연상이 있다. 외부의 자극과 내적 필연성이 중첩되어서 일어나는 생각들의 행렬.

 

짝지는 늘 그러듯이 몸을 놀리지 못한다. 한국에 전화를 하면서 거실 식탁아래 깔아놓은 마른 풀잎(무슨 풀이지?)으로 거칠게 짠 융단 아닌  융단에 박힌 머리카락을 하나하나 뽑고 다닌다. 옛날 할머니가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엉금엉금 걸레로 바닥을 훔치시던 일이 생각난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꼭 브뢰첸(Brötchen, 주먹만한 조그만한 빵)을 먹는다. 브뢰첸은 바로 구운 거야만 맛있기 때문에 아침 일찍 빵집에 간다. 내 몫이다. 짝지가 잔돈을 챙겨준다. 6개에 1유로 92센트. 잔돈 2센트가 없다면서 데려다 키운 놈의 방에 가서 5센트를 훔쳐서(?) 준다. (이 놈은 우리 둘이 버는 돈보다 훨씬 더 많이 벌면서 장가갈, 집나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 여친하고 살다가 싸우면 짐을 들고 다시 들어온다.) 근데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차바타(ciabatta/이태리 빵)가 남아 있어서 4개만 사올 거라고 했더니 무슨 복잡한 계산을 한다. 20센트 동전을 쓰라고 한다. 뭔 말인지 빵가게에서 지불하면서야 알아먹었다. 4개는 1유로 38센트. 잔돈으로 5센트 훔쳐온 게 허사였다는 것. 결국 큰 돈(?) 20센트 동전을 헐어야 한다는 것.

 

짝지는 빵을 사다주면 고마워하는데 난 사실 즐겨간다. 최근 들어서 더욱 그렇다.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 여성이다. 사람이 자주 바뀐다. 이른바 아젠다 2010년 개혁으로 비정상적인(atypisch) 취업형태의 하나인 미니잡(Minijob)이 활성화되어서 그렇다. 근데 이중 참 맘에 드는 여성이 한 분 있다. 혹시 이 여성을 볼 수 있을까 해서 즐겨간다. 요새 쉽게 볼 수 없는 얼굴이다. 뭐랄까, 순진하다 할까? 빈켈만(Winkelmann) 남긴 'Edle Einfalt, stille Größe'(뭐라 번역하지? 고귀한 단순과 고요한 위대?)의 Einfalt(단순)의 얼굴이랄까? 언듯하면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멍청’(blöd: 원래는 귀가 막혀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세상 말귀에 어두운 얼굴이다.  암튼 ‘소녀시대’에 서너 살 먹은 어린아이까지 포즈를 취하고 얼굴표정관리를 하는 요새 흔히 볼 수 있는, 추하기 짝이 없는 얼굴과 반대되는 얼굴이다.

 

자신의 죽음을 넘어서 자식의 심성을 알고 자식의 앞날을 내다보고, 자식의 심성이 그가 세상에서 생존할 수 없도록 하는 걸 알고서 구체적인 장치를 마련하고 죽은 횔더린의 엄마 요한나가 생각난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