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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러피언 드림, 제러미 리프킨 지음

 
유럽의 길거리에 노숙자가 드문 이유는? (시사IN [98호] 2009년 07월 25일 (토) 00:13:07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유러피언 드림, 제러미 리프킨 지음, 이원기 옮김, 민음사 펴냄
“세계화 시대의 ‘사람 사는 세상’은 아메리칸 드림이 아니라 유러피언 드림이 구현되는 곳이다.”
  
 
고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거 직전 제러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을 애독했다고 한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했던 고인으로서는 그 책에 상당한 애착이 갔으리라. 노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살 만한 세상에 대해 관심이 많은 리프킨은 자신의 책에서 특히 세계화 시대의 그런 세상은 아메리칸 드림이 아니라 유러피언 드림이 구현돼가는 곳이라고 설파한다.
 
‘세계화’는 곧 세계 경제의 신자유주의화라고 여기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는 유난히 많다. 그 자체가 한국인에게 미국의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레이건 정부에서 시작한 미국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략은 부시 정부에서 극에 달했고, 그 사이 미국이 주도하는 거대 금융자본과 대기업 중심의 전 지구적 ‘자유시장’ 체제 건설이 인류가 마땅히 가야 할 미래라고 믿게 된 한국인, 특히 이른바 사회지도층 인사의 수는 상당히 많아졌다. 그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은 여전히, 아니 오히려 과거보다 더 매력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왜 미국인, 그것도 미국의 지성을 대표하는 리프킨 같은 이가 세계화 시대의 아메리칸 드림 몰락을 예언하고 나선 것일까? 무엇보다 그가 보는 세계화의 의미가 신자유주의자들의 그것과 전혀 다른 까닭일 게다. 그에게 세계화란 개인의 자유 보장이라는 미명 아래 극소수 강자가 대다수 약자를 지배하도록 내버려두는 자유시장체제화가 아니라 국적·인종·종교·성별·언어·재산 등의 차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나름으로 삶을 진정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지구촌 사회의 공동체화이다. 따라서 그러한 세계화 시대에 아메리칸 드림이 강조하는 개인의 (경제적) 자유, 문화적 동화(同化), 부의 축적, 경제성장과 무제한적 발전, 무한 경쟁과 무한 노력, 재산권과 개인 복리, 애국주의 등은 그저 촌스러울 뿐만 아니라 폭압적이기도 하다. 그에 비하면 유러피언 드림은 얼마나 세련되고 평화적인가. 그것은 공동체 내의 관계, 문화적 다양성, 삶의 질, 지속가능한 개발, 심오한 놀이(deep play), 보편적 인권과 자연의 권리, 세계주의 등을 중시한다.
 
그는 책의 여러 곳에서 “유럽의 길거리에서는 노숙자나 정신장애인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사람들은 밤에 거리를 산책한다. 여성이 해가 진 뒤에도 공원에서 혼자 걷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식당이나 야외 카페에서 몇 시간이나 머문다. 아무도 서두르지 않는 것 같다”라는 식으로 유럽인의 느긋함과 넉넉함에 감탄을 거듭한다. 그리고 “누가 얼마나 가졌느냐보다는 삶을 어떻게 즐기느냐가 더 중요”한 유럽사회를 한없이 부러워한다. 미국 사회와는 너무도 다른 세상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지구촌 사회의 미래 모습을 상상한 것이다.
 
우리는 과연 어떤 세계화와 어떤 자유를 바라는가? 혼자 꾸는 꿈은 몽상에 그치지만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같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경제적 개인의 자유만을 바란다면 계속 아메리칸 드림을 꾸시라. 그러나 공동체적 세계화를 지향하고 사회적 개인의 자유를 맘껏 누리고자 한다면 이제 유러피언 드림을 같이 꾸자. 그것도 매일 밤, 매일 낮에. 그러다보면 실현 방안이 보일 게다. 필경은 ‘합의제 민주주의’와 ‘합의제 조정시장경제’에 관심을 갖게 될 터이다. 마치 지금 정도의 유러피언 드림 실현을 가능하게 했던 과거 유럽인이 그러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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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페렐먼 <기업권력의 시대>

 

"미국을 읽고 개인주의 신화를 깨자" (프레시안, 김봉규 기자, 2009-08-01 오전 9:10:11)
[화제의 책] <기업권력의 시대>
   
캘리포니아주립대 경제학과 교수인 마이클 페렐먼은 <기업권력의 시대>(오종석 옮김, 난장이 펴냄)에서 미국을 '개인의 희생에 기초해 기업권력을 강화하는 기업사회'라고 정의한다. 코카콜라를 마실 건지 펩시를 마실건지 결정하는 개인의 자유와 개성은 실제로는 개인주의의 신화라는 허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남들과 자신을 차별짓기 위해 소비하는 개인은 이윤 추구의 희생양일 뿐이다. 이는 시장경제가 발달하면서 생긴 자연스런 현상이 아니다. '손님은 왕'이라고 생각하는 개인이 사실은 기업들이 쳐놓은 거대한 기득권의 거미줄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소비하는 사회에서 노동은 지루해지고 위험에 노출되는 강도는 늘어난다. 소비의 선택권을 제외한 개인의 자유는 갈수록 위축된다. 반면에 기업은 짊어질 책임을 교묘히 회피하면서 미국이 이론적으로 보장하는 '개인의 자유'를 극한까지 확대해 간다. 정부는 법과 규제에 기초해 환경, 노동시장, 공정보도를 파괴하는 기업의 활동을 보장한다.
 
이러한 이야기가 낯설게 들리는가? 아마 그렇다고 느끼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한국은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선진화'에 가까워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페렐먼이 책에서 제시하는 기업권력의 전횡 사례를 보면 자연스레 우리 사회 안에서 최근에 벌어졌던 일련의 사건들이 떠오른다. "제화업체 나이키는 끔찍한 노동착취에 대한 비판에 오명을 벗기 위해 기업홍보 광고를 내보냈다. 허위광고 혐의로 고발당한 나이키는 상고심에서 "그 광고가 옳든 그르든 미국 수정헌법 1조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나이키는 노동환경을 감시하는 단체에 150만 달러를 기부하고 어떤 사과도 없이 문제를 해결했다."
 
나이키의 사례는 미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기업권력에 의해 어떻게 짓눌려 있는지 보여준다. 기업에는 표현의 자유가 거짓일지라도 허용되고, 개인들은 기업의 자유를 침해한 셈이 된다. 표현의 자유를 불균형하게 보장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미국을 능가한다. 인터넷 경제평론가 '미네르바'의 구속수사가 그랬고, 광고 불매 운동을 벌이는 '언소주'에 대한 검찰 수사는 불매 대상 기업이 의뢰도 하지 않았는데 수사기관이 자진해 벌였다.
 
"흑인 평등을 규정한 수정헌법 14조는 실제로 기업이 하나의 개인처럼 자유를 누리는데 적용되는 결과를 낳았다. 1972년 이후 약 20만 명의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사망했는데 이와 관련해 형사입건된 사람은 151명 뿐이고 실제로 징역형을 산 사람은 최장 6개월을 복역한 8명이다. 연방판사 리처드 포스너는 "경영진들은 가치증식 전략의 일환으로 부정행위를 저지를 수도 있다"며 기업의 옹호자를 자처했다."
 
기업의 불법 행위를 옹호하는 법관들의 모습은 연방판사 포스너나 우리나라의 대법관이나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굴지의 재벌 총수가 경영권을 세습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불법 행위 의혹에 대해 대법원은 기존의 판례를 뒤집으면서까지 무죄 판결을 내렸다. '사회에 기여한 공로가 참작'되어 감형이 이루어지고 이내 대통령 사면이 내려지는 건 지난 수년간 반복되던 행태였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있어서 한국은 미국에 뒤지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음식으로 인한 질병으로 매년 7600만 명의 환자와 5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1996년 농무부 조사에 따르면 쇠고기 다짐육 중 78.6%에서 주로 배설물들에 의해 옮겨지는 세균이 발견됐다. 그런데 정부는 배설물 오염 검사관들에게 다음과 같은 주의를 준다. '있을지도 모르는' 교차오염을 이유로 생산을 중지시키는 건 정당화 될 수 없다. 생산라인이 중지되는 시간에 대해서 당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
 
지난해 5월부터 불거진 쇠고기 파동을 지켜본 이라면 현대적 축산업이 얼마나 위험한 환경에서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그런 사실에 소비자들은 극히 제한된 정보밖에 얻을 수 없는지 깨달았을 것이다. 먹을거리의 안정성에 대해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다는 것은 지난해 여름 증명되었지만, 결과는 미국의 축산기업, 국내 유통기업과 정부의 승리였다.
 
"정보의 기본적인 유통경로는 기업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 언론사들은 대부분 광고수입에 의존해 공익적인 정보 전달 기능을 하기 힘들다. 언론사들은 광고주들에게 해가 되는 정보뿐만 아니라 자사의 다른 계열사에 해가 될 만한 정보 또한 절대 공개하려 하지 않는다. 원자력발전의 대표기업 제너럴 일렉트릭사 소유의 NBC 네트워크가 과연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소리 높여 비판할 수 있겠는가?"
 
최근 '대리 투표' 논란에 싸인 미디어법 통과는 앞서 들었던 세 가지 사례가 앞으로 더욱 광범위하게 일어날 길을 열었다. 정부와 '코드'가 맞는 신문사와 기업들이 방송 지분을 소유하면 소비자들은 더욱 제한된 정보밖에 얻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정부와 기업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목소리는 사그라지고 소비주의를 맹신하는 광고의 홍수 속에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
 
이같이 우리나라에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일어난 굵직한 일들은 미국의 암울한 현실이 우리나라도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진보적인 한국인들이 한국 사회를 보호하고 미국이 저지른 실수를 똑같이 반복하지 않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진보적이지 못해서 이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기업권력이 정부와 밀착해 그들의 자유를 강화하는 과정이 미국에 비해 절대 뒤처지지 않았던 결과가 아니었을까?
 
저자는 특별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개인주의의 신화에 함몰된 개인은 결코 거대한 권력과 재력을 가진 기업에 맞서 싸울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우리나라의 진보세력이 끊임없이 얘기하는 '연대'다. 개인주의에 종말을 고하는 과정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개인이 연대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이, 기업은 바쁘게 움직이며 또 다른 소비의 신화를 창조하고, 정부와 유착해 규제를 바꾸며, 미디어를 압박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2050년도 그리 먼 미래로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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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욱의 <정치와 진리>

 

'정치 부재 시대'…괴물이 되지 않으려면? (프레시안, 박강수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조선대 강사, 2009-07-25 오전 10:52:33)
[철학자의 서재] 김선욱의 <정치와 진리>
 
정치와 진리
<정치와 진리>(김선욱 지음, 책세상 펴냄)는 한나 아렌트의 핵심 사상이자 정치 사상적 기여로 평가받는 "정치" 그리고 "공적영역, 사적영역" 등의 개념을 활용해서 논의를 개진하고 있다. 저자는 정치에 대한 다양한 접근 방식이 있겠지만, 오늘날 우리의 현실 정치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다양한 정치철학적 전통을 현실 정치에 적용하기보다는 우리가 겪고 있는 정치 현실을 선입견 없이 바라보고 정치의 핵심을 통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현실 정치의 핵심은 '정치는 진리의 영역이 아니다'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정치 영역에 접근할 것인지, 그리고 정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우리의 삶이 피폐해진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를 다루면서 정치가 올바로 시행되도록 해야 할 책임은 정치인뿐만 아니라 시민에게도 있음을 논의한다. 물론 정치가 진리의 영역이 아니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자의 관점에서 지금의 현실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 있는 일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그리고 정치는 언어 사용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즉, 정치적 인간은 말을 사용하는 인간의 모습과 직결되어 있으며, 정치적 태도란 끊임없는 대화 과정에 자신을 놓는 것을 말한다. 이는 인간이 언어를 통해 개성을 표출하고 자신의 생각을 나타낸다는 것과 공적 영역에서 의견이 나뉘고 분쟁이 있을 때 이를 언어로 조정해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에 의하면 사회적인 것이란 정치적인 것과 대립되는 개념인데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엄격하게 구분되었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중세에 이르러서 '사회적인 것'의 등장으로 깨졌다는 것이다. 즉, 고대 폴리스에서 사적 영역에 속해 있던 경제가 중세부터 공적인 차원에 등장하였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사적 문제였던 것이 공적 영역에 들어와 공적 관심을 획득한 것을 사회적인 것으로 부른다.
 
그런데 사회적인 것의 특징에 주목해야할 점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차이, 개성, 다양성, 특수성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가치에 따라 모든 것을 평가하려는 태도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자존심이나 자부심이 손상당하면 밥상을 엎어버릴 수 있는 존재이다. 이는 경제가 중요하다 해도 경제적 가치로만 인간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편, 정치적인 것은 공적 영역에서 다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적인 것의 가장 중요한 점 중의 하나는 정치 행위가 계속 유지될 수 있는 공적 영역, 정치적 장이 사회적인 것에 의해 매몰되지 않고 계속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적인 것보다 사회적인 것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여 정치를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장으로 이해한다면 정치는 수단으로 이해된 것이다. 그렇지만 정치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어서는 안 된다. 목적이 있다면 정치를 위한 공적 영역의 유지이다.
 
현실에서는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이 명확히 구분되는 경우도 있고 혼재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올바른 척도가 있어 이를 기준으로 답을 끌어내는 부분은 사회적인 것이고, 이와는 달리 개성과 인간의 복수성이 드러나는 부분이 정치적인 것이다. 따라서 양자가 서로 밀접히 연결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양자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분리해서 구별해야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의 현 대통령도 후보자였을 때 여러 가지 공약을 제시했지만 경제를 가장 중요한 공약으로 제시했고 유권자들도 거기에 호응했었다. 그렇지만 경제는 어쨌든(외부요인과 내부요인이 있겠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경제는 여전히 중요한 요인이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척도로 여겨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 시대의 문제점이 있다. 대통령의 관심은 여전히 경제 살리기에 있지만 중요한 점은 경제적인 관심 위에 정치적인 것을 놓아야 한다. 경제가 모든 것이 아니다. 인간은 서로 다른 가치를 추구하고 드러내면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정치는 진리의 영역이 아니다
정치 영역에서 언어는 설득을 목표로 사용되며 개성을 드러낸다. 설득은 타자와의 의견 일치와 합의를 목표로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진리 탐구 과정에 사용되는 언어는 어떤 진리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논리적 논증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논증 과정에서는 주장된 참인 명제를 다른 사람이 수용하도록 '설득'할 필요가 없다. 갈릴레오의 경우에서 보여지듯이, 참되고 필연적인 진리는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상관없이 참인 것이다.
 
정치 영역에서 인간의 복수성이 드러나는 것은 언어 사용을 통해서이다. 그리고 언어 사용을 통해 갈등을 조정하려고 노력한다. 이때 작용하는 언어는 단순한 의사 전달 수단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인간들이 합의를 도출해낸 가능성을 말한다. 그래서 인간이 정치적으로 된다는 것은 물리적 힘이나 폭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말과 설득을 통해서 모든 것을 다루어 감을 의미한다. 말과 설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타인의 동의를 강압적으로 이끌어내려는 모든 시도는 정치의 붕괴로 이어진다. 이런 점에서 정치는 진리의 영역이 아닌 것이다.
 
정치의 부재
어떤 사회이든지 갈등은 있을 수밖에 없다. 국가, 종교, 지역, 이념 또는 노사간의 문제 등. 그리고 한 사회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이런 갈등을 조정, 중재해서 통합된 모습을 보여야 하며 정치는 바로 그 역할을 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그런데 2009년의 한국의 정치판에서는 정치(또는 정치인)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대통령과 그를 따르는 집권당의 정치 행위를 보면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조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용산 참사, 비정규직, 쌍용자동차, 4대강 사업, 미디어 산업 발전법 등이 그것이다. 이는 정치의 부재이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의 현실에서는 통치자 또는 정치인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문제다. 이들은 오직 특정한 이익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한편, 좋은 정치인이나 통치자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이들을 끌어안고 가는 사람을 의미할 것이다. 우리의 대통령도 목도리를 건네주고 어묵을 사 먹는 등 이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면, 즉 여기에 아픔을 근원적으로 처방할 수 있는 제도가 뒷받침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진정성을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를 위한 (사회)제도는 정의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고 국가(또는 정부)는 이것을 법률로서 입안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대통령은 이런 측면에서 접근하기 보다는, 자신이 좋은 사람임을 보여주려고 한다. 이런 점은 바로 정치의 부재로 나타난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정치의 부재가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 필요하다.
 
우리 시대의 아이히만
아이히만은 가정에서는 존경받는 가장이고 일터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인물이다. 이런 그가 재판정에서 사형 언도를 받는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람들은 유태인 학살의 책임자였던 아이히만에게서 흉축한 괴물같은 모습을 생각했지만, 재판정에 선 그의 모습은 좋은 아빠이자 자상한 남편의 모습이었다. 이런 그의 모습에서 악(또는 악마)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참관하고 '악의 평범함'을 이야기 한다. 악은 특별하게 있다는 것이 기존의 생각이었지만 아이히만에게서 나타나는 모습은 악이란 평범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아렌트에 따르면 유태인 학살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아이히만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또는 임무)에 대해서 그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에 대한 사례를 현실 정치 상황에서 찾는다면 미디어 산업 발전법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집권 거대 여당이 이 법에 대해 진지한 성찰보다는 대통령의 공약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기한을 정해놓고 성실히 수행하려 한다. 대다수 시민들과 언론계 그리고 관련 학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당이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는 청와대 여의도 출장소에 근무하는 직원의 모습이며, 아이히만의 행위와 무엇이 다른가. 그 법이 정말로 필요한 것이라면, 그리고 정치는 진리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수용한다면, 반대하는 측을 설득하고 협상을 통해서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우리는 여당이나 야당을 떠나서 아이히만처럼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또한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정치적 논의에서 대표성(representativeness)을 띄어야 한다. 그리고 그 대표성은 공평성을 통해 드러나야 한다. 이를테면 도심 재개발을 위한 법이나 미디어 산업법이 특정한 이익을 대변할 때 그 법은 특정한 관련자에게만 대표성을 지닐 뿐, 그로 인해 피해를 받는 사람에게는 저항을 받게 된다.
 
정치 행위의 본령은 대화와 타협이다. 정치인들이 대화하고 타협하지 않는다면 그 행위는 특정한 이익을 대변할 뿐이다. 더디더라도 대화와 타협(협상), 논의와 토론을 통해서 특정한 이익보다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공평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좋은 시민 되기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폴리스에 살고 있는 시민이라면 기본적으로 어떤 목적이(또는 행위가)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를 따져 묻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Phronesis)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좋은 시민은 그런 능력을 바탕으로 폴리스에 필요한 공동의 좋음(common good)을 만드는데 참여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시민이라면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저자의 지적대로 정치인들은 다음 선거를 의식해서 인기에 영합하는 활동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를 견제하고 비판할 수 있는, 그리고 정치가 올바르게 시행되기 위해서는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주주의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지금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서도. 개개의 시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지만 연대를 통해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연대는 시민 개개인(또는 시민단체)이 지니고 있는 주체성과 자율성을 약화시킬 수 있는 강한 결속보다는 주체성과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는 느슨한 연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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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현실- 한국의 지역주의,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문제가 아닌가(박상훈)

 

박상훈 박사 "지역주의는 이데올로기적 창조물" (세계일보, 박종현 기자, 2009.07.14 (화) 17:07)
최근 저서 ‘만들어진 현실’서 주장
 
“우리 사회에서 지역주의 문제로 이야기되는 것의 상당 부분은 실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정의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위해 ‘창조’되고 ‘동원’된 것이지요.” 우리의 지역주의 문제는 사실(facts)의 차원보다는 인식(perception)의 차원에서 작위적으로 만들어지고 동원된다는 설명이다.
 
 “권위주의 정권이 수도권과 부산 등 영남권에서 자원 투입을 늘리면서 농촌 인구가 도시로 몰리게 됐지요. 영남 사람들은 영남 지역의 도시로 이주했지만 호남 출신은 서울 등 전국 각지의 도시로 이동한 것입니다. 이해관계 때문에 기존 원주민과 충돌하는 횟수가 늘었으며, 권위주의 세력은 선거 때마다 이를 적절히 활용했지요.”.
 
호남 차별의 심리는 같은 성격의 민주화운동에 관한 용어에서도 차이를 드러낸다. 1979년 부마항쟁과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그렇다. 부마항쟁과 달리, 1980년의 광주는 한동안 ‘광주사태’로 규정돼 호남에 급진주의적인 이미지를 더하는 담론으로 동원되기도 했다.
 
외국의 지역주의는 종교적 독립과 분리주의 등으로 구체성을 갖는데 한국은 지역주의 자체가 결코 해결방안이 안 된다. 충청도 출신이라는 박 대표는 낙인과 편견의 문화를 없애야만 우리 사회가 도약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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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지역주의 이데올로기에 이용당하다 (경향, 김종목기자, 2009-07-17-17:35:48)
 
저자는 지역주의 문제에 관한 ‘지배적 해석’ 즉 한국 정치 문제를 지역주의 탓으로 과도하게 환원하는 현실을 부정한다. 지역주의는 주로 기득권 세력이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위해 ‘동원’하고 ‘조작’해 ‘만들어진 현실’이다. 저자는 지역주의를 ‘상식화된 신화’이자 ‘신화가 된 상식’으로 규정하면서 역대 선거 결과와 여론조사 분석을 통해 ‘주관적이고 지배적인 해석’에 도전한다.
 
‘반호남 지역주의’의 전통적 인식 문제부터 짚는다. ‘백제=호남’인가. 백제의 정치적 중심지는 서울·경기와 충청의 공주·부여였다. 후백제를 세운 견훤은 경북 상주 출신이다. 또 ‘배신’은 호남 사람들의 오래된 특질인가. 조선시대 호남은 ‘충의지향(忠義之鄕)’으로 칭송받는 등 긍정적 평가가 많았다. 호남에 대한 부정적 편견은 ‘정치경제적’ 필요에 따라 새롭게 불러들여졌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저자는 1971년 대선 결과를 중심으로 ‘지배적 해석’에 깔린 비이성적 허위의식을 들여다본다. “집권 세력은 ‘호남 대통령’ ‘사상이 의심스러운 자’라는 언술로 반호남주의와 반공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접합을 시도”했지만 유권자에게는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DJ 깃발만 꽂으면’ 식의 투표 행태가 지속되지도 않았다. 2000년 4월 총선 이전 한국갤럽의 의식조사를 보면, 부산·경남에 사는 호남 원적자의 지지 정당은 한나라당이 55%나 됐다. 부산의 경기 침체 등 지역 경제 상황에 따른 속지주의가 투표 기준이 된 것이다. 당시 한나라당은 부산에서 100% 의석을 차지, ‘반 DJ 지역주의’가 심화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실제 민주당의 부산득표율(15.0%)은 97년 대선 때 김대중이 얻은 것(15.3%)과 별 차이가 없었다. 저자는 “지역주의의 영향을 받아 유권자가 투표한다는 이른바 ‘사악한 정치인-어리석은 유권자’의 설명 모델은, 현실과는 별개로 여론 시장을 지배하는 담론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80~90년대 지역주의와 ‘3김’을 동일시하는 해석틀에서 나와 지배 이데올로기가 된 ‘3김 청산론’, ‘지역주의 망국론’도 마찬가지다. 이 담론은 이념적 차이, 계층적 기반 등의 이슈·아젠다를 억압하면서 권위주의 세력을 대변하는 집권당 후보를 긍정하게 하는 이데올로기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저자는 “지역주의 문제의 핵심은 권위주의 재생산, 기득권 방어 등 정치경제적 욕구를 실현하는 데 반호남주의의 효과를 필요로 하는 체제와 세력이 존재했다는 사실 그것”이라고 말한다.
 
지역주의를 한국 정치의 여러 특징 속에서 객관화해 이해하는 게 주요 과제며, 호남 차별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실업자·비정규직, 조선족, 이주노동자 등 사회 최저층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게 결론이다. 저자는 “누군가의 정치학 실력을 가늠할 때, 그가 지역주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는가를 예민하게 살펴보곤 했다”고 밝혔다. 책은 저자의 정치학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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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 세력이 지역주의를 창조했다 (한겨레, 한승동 선임기자, 2009-07-17 오후 07:39:28)
김대중, 71년 대선 부산에서 43% 득표
박정희, 63년 대선 전남에서 62% 득표
유신뒤 일부 정당·언론, 민주화 요구에 위기감
개혁세력 없애려 지역주의 망국론 유포
 
〈만들어진 현실- 한국의 지역주의,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문제가 아닌가〉
박상훈 지음/후마니타스·1만5000원

 
다음과 같은 주장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대다수 한국 유권자는 지역주의(지역감정·지역정서 등)에 이끌려 투표한다. 정치인들은 이를 이용해 지역당을 만들었고 선거만 하면 지역분할구도가 드러난다. 지역주의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옛날부터 존재했다. 지역주의의 핵심은 영호남 갈등이다. 이 두 지역 갈등이 사회 전체를 지역주의로 물들였다. 지역주의 때문에 정치 발전이 안 된다. 민주화됐는데도 정당체제가 계층이나 이념적 차이에 따라 재편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지역주의 때문이다. 지역주의는 망국적인 고질병이다. 그러니 특단의 조처가 필요하다.
 
‘한국은 왜 민주화를 기점으로 지역이 중심이 되는 정치적 갈등 구조를 갖게 됐을까?’라는 주제의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만들어진 현실>에서 위의 주장 모두에 대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허구이며, 책 제목이 암시하듯 설사 그게 ‘현실’로 일부 존재한다 하더라도 본디부터 그런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얘기한다. 지역주의가 망국적인 고질병인 것이 아니라 ‘지역주의가 망국적인 고질병이다’라고 외쳐대는 것이야말로 망국적인 고질병이라고 박 대표는 주장한다. 왜, 무엇 때문에? 그래야 자신들만의 특권적 이익을 키우고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한국의 지역주의는 풍토병이 아니라 그런 자들이 합성해서 퍼뜨린 악성 바이러스 같은 것이다.
 
여러분 자신은 정말 선거 때마다 지역주의에 사로잡혀 따져볼 것도 없이 무조건 ‘우리 지역’ 출신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묻지마 투표’를 하는가? 박정희-김대중이 맞섰던 1971년 대통령선거가 영호남간 지역주의 선거라는 생각은 잘못된 ‘기억의 정치’, ‘편견의 동원’, ‘전통의 발명’에 따른 산물이다. 강원도에서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됐던 김대중은 1971년 대선 때 부산에서 42.6%를 득표했다. 이는 그전 대선 때의 윤보선이 얻은 것보다 11%포인트나 더 많았고 대구에서도 8.8%포인트 더 많았다. 박정희도 1963년 대선 때 서울과 경기, 충청에서는 40%대 초반 지지율로 고전했으나 전남·북에선 각각 62%, 54%의 득표율을 올렸다.
 
1977년 조사(김진국)에 따르면, 호남 출신에 대해 가장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지역민은 영남이 아니라 서울과 충청 출신이었다. 반면 호남 출신자가 가장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 지역민은 영남 출신이었고 호남에 대한 기피증이 가장 덜한 쪽이 영남인들이었다. 이는 권위주의 개발독재의 불균등 개발전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산업화가 수도권과 영남 축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영남의 하층 이주자들은 부산·울산 등 같은 영남권 내 개발지역으로 이동했으나 호남과 충청 지역민들은 대부분 서울 쪽으로 몰렸다. 영남에서 서울로 이주한 사람들은 고학력자나 관료 등 엘리트 중산층이었다. 따라서 사람들이 몰리는 도시권, 그중에서도 수도권에서 하층민들간 생존경쟁이 격심했고 호남 출신 이주자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싹이 거기서 자랐다는 게 박 대표 생각이다. 개발독재의 성장정책이 본격적으로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한 1960년대 후반 1970년대 초에 이런 불균등한 성장과 차별적인 엘리트·인력 충원에 따른 지역간 편견과 불만이 조성되기 시작했으나, 그것을 지역주의로 ‘발굴’하고 증폭시켜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은 특정 정치세력이었다.
 
이미 1971년 대선 때 박정희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눈물로 애소해야 할 정도로 권력상실 위기에 처했다. 영호남을 빼고 계산하면 김대중 지지표가 더 많았고 유독 전남에서만 10만표 이상이 무효 처리되는 부정행위 등을 통해 박정희는 간신히 이겼다.(96만표 차) 김대중은 중앙정보부 기능 축소와 국회심의제, 향토예비군제 폐지, 적대적 남북관계 개선과 4대국 보장안, 대중경제, 부유세 도입 등 권위주의체제와 불균등 개발정책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고 대중들은 사실상 그의 팔을 들어준 셈이었다. 박정희의 영구집권을 제도화한 ‘유신헌법’이 공포된 것은 바로 그다음 해였고 그때부터 반공이데올로기와 결합한 지역감정, 지역주의가 대대적으로 유포되기 시작했다. 유신체제를 앞세운 권위주의 기득권세력은 이에 저항한 민주화세력의 도전을 지역주의 문제로 치환하고 그것을 극도로 부풀림으로써 진실을 호도하고 정치적 곤경을 피해가려 했다. 거기에는 반유신 민주화 정치세력 리더가 호남 출신이라는 점과 호남인들의 소외의식(선행한 차별로 말미암은 소외의식과 거기에 대한 반발 내지 저항은 합리적 선택이며, 그것을 지역주의로 몰아가는 건 본말전도다)도 작용했다.
 
지역주의가 달아오르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때부터였고 1980년, 1987년, 그리고 지금까지 기존 권위주의체제가 흔들리는 고비 때마다 더 한층 증폭됐다. 이른바 ‘3김’(3K)으로 대표됐던 지역주의가 ‘망국적’ 차원으로까지 부각되고 전면화한 것은 1987년 6월항쟁으로 제도적 민주화가 달성된 이후의 일이며, 그것은 민주화로 기득권 상실 위기에 처한 개발독재체제와 한 배를 탄 동조세력이 느낀 공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3김정치와 지역주의, 지역감정 때문에 나라가 망할 지경에 처했다며 지역감정과 3김의 청산을 그 해법으로 제시하면서 민주화와 권위주의 독재청산 문제를 지역주의 문제로 바꿔치기해 문제의 본질을 호도했다. 거기에 앞장선 것이 정당(우파 집권당은 말할 것도 없고 중도개혁과 극좌세력까지 포함해)과 언론이었으며, 언론 중에선 <조선일보>였고 또 그 전면에 나선 이가 전 주필 김대중씨였다. 그들이 망국병을 타파할 대안이라며 밀어올린 게 바로 자신들의 특권을 지켜줄 전두환·노태우 신군부세력이었다. 그들 기득권세력의 ‘3김과 지역주의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는 언설은 기실 ‘민주화를 그대로 두면 우리가 망한다’는 얘기였고,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 그들은 지역주의를 발굴하고 창조하고 부추기며 대대적으로 동원했다. 지역주의야말로 그런 위장극을 숨겨준 알리바이 담론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지역정당체제’는 지역주의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지역주의가 문제가 아니라, 지역주의가 문제라고 주장하는 세력이 문제이며, 그런 상황에서 아무리 지역주의를 타파하고 지역간 화해로 망국병을 고치자고 외쳐봐야 고쳐질 병이 아니라는 것, 병을 고치려면 지역주의에 빌미를 주는 정치·경제·사회 구조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게 박 대표 생각이다. 그것은 가치의 분배구조, 수도권에 초집중화한 사회구조, 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동심원적 엘리트 카르텔 구조, 협소한 이념적 스펙트럼과 미미한 계층적 차별화 등을 특징으로 하는 보수 독점적 정당체제, 이러한 조건에서 만들어진 하층 배제적 사회문화 등 민주화 이후에도 아직 제대로 손대지 못한 난관들을 먼저 혁파해야 한다는 얘기다.
 
■ 지은이와 함께 | 박상훈 대표
“고려·조선때 호남차별 근거 어디에도 없어”
 
충남 청양에서 떡방앗집 다섯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박상훈(45) 대표는 1987년 서울대(경영학과)에 들어간 뒤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6월항쟁이 일어나기 바로 전이었다. 학과공부는 하지 않고 친구들과 사회과학 공부 하면서 시위에 열심히 참가했는데, 너무 무서웠다. 그땐 주로 노동문제를 고민했는데 과감하게 뛰어들지 못하는 미안함 때문에 더 과격하지 않았나 싶다. 그게 진짜 내 모습일까 하는 반성을 했다.” 고려대 정외과 대학원에 들어가 박사과정 때 지역주의 문제를 화두로 붙잡았다. “처음 지역주의 문제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호남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잘못된 편견에 항의하려는 마음이 컸다.”
 
호남 차별의 연원을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백제=호남’ 등식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박 대표는 이렇게 썼다. 고구려에서 갈라져 나온 백제는 678년의 존속 기간 중 493년간은 서울·경기지역에 도읍이 있었고 나머지 185년간은 지금의 충청도 공주와 부여가 도읍이었다. 후백제를 세운 견훤은 영남 사람이었다. 조선시대에 곡창 호남은 가혹한 착취로 민란과 모반이 잦았다는 얘기도 사실이 아니다. 호남이 특별히 더 착취당했다는 증거는 없으며, 민란과 모반은 영남 쪽에서 압도적으로 더 많았다. 중앙관료 출신지별 비교에서도 고려·조선 때 호남 출신자가 눈에 띄는 차별을 받은 적도 없다.
 
호남에 대해 부정적 세평들이 전하나, 악평 없는 지역은 없다. 충청도엔 “권세가에 아부해서 이익을 좇는다”는 악평이 있고, 강원도는 “미련하다” 따위의 세평들이 있으며 영남도 악평이 수두룩하다. 인조반정 뒤 차별받은 쪽은 영남 사대부들이었고 영조는 영남을 반역향으로 낙인찍었으며 정조는 영남 출신의 과거 응시를 금지시키기도 했다. 반면에 호남에 대해 이순신은 “호남이 없으면 조선이 없다”고 했고 김정호는 “조선팔도 중 가장 축복받은 땅”, 정조는 “가장 어질고 충성스런 고장”이라 했다. 그런데 유독 호남에 대해서만 좋은 평가는 배제되고 악평만 선택적으로 부각됐다. 거기에는 지금의 권력관계가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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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의, 이념인가 현실인가? 진실은 무엇인가? (프레시안, 최재천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2009-07-25 오전 10:27:14)
[화제의 책] 박상훈의 <만들어진 현실>
 
1. 박상훈의 정리를 요약해보자면, 한국의 지역주의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해석은 다음과 같다.
 
① 지역주의에 이끌려 투표한다. ② 지역주의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③ 지역주의의 중심은 영·호남 사이의 갈등이다. ④ 지역주의와 지역 구도의 고착화 정도는 매우 심하다. ⑤ 지역주의 극복 없이 정치 발전 없다. ⑥ 지역주의는 망국적 고질병이라서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박상훈은 1998년 이래 자신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이같은 통념에 도전했다.'이데올로기가 된 현실, 현실이 된 이데올로기'로서의 지역주의에 학자적 양심으로 맞섰다. 포커스는 둘이다. 하나는 지역 차별, 지역 감정 등으로 나타나는 '지역주의의 차원'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 패권주의", "저항적 지역주의" 등으로 나타나는 '지역주의를 둘러싼 해석의 차원'이다. 둘은 끊임없이 교직하며 실체적 진실을 드러낸다.
 
2. 진실은 이렇다. 첫째, 영·호남 갈등이 아닌 반호남 지역주의가 있다. "반호남주의는 호남 출신에 대해 거리감과 배제적 행위를 동반하면서 엘리트 충원과 경제 발전의 성과를 차별적으로 배분하고 소외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남 출신에 대한 차별이 그 핵심이다. 호남 지역주의 이전에 호남 차별의 지역주의가 있었다.
 
둘째, 지역주의의 역사는 지극히 짧다. 기껏해야 박정희 정권 시대의 권위주의 산업화 과정에서 출발했고, 영·호남 간의 거리감이 다른 지역보다 더 크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민주화 이후였다.
 
셋째, 반호남주의를 단순히 주관적인 감정과 편견의 문제로 이해한다면 잘못이다. "문제의 진정한 핵심은 자신들의 정치, 경제적 욕구를 실현하는데 그런 편견의 이데올로기 효과를 필요로 하는 체제와 세력이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넷째, 시민이나 유권자들 속에 있는 지역주의가 아니라, 모든 문제를 지역주의로 설명하면서 상황의 어려움을 지역주의 때문으로 합리화하려는 집권 세력의 욕구로 인해 한국 정치에 있어서 지역주의는 늘 동원되고 이데올로기가 됐다.
 
다섯째, 선거 경쟁만 개방되었을뿐, 권위주의 하에서 주형된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권위구조가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영·호남 지역 간 표의 편차가 생겨나고 있다. 한국의 지역 정당 체계는 지역주의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여섯째, 그렇다면 지역 문제의 해법은 "지역성을 작위적으로 동원하고 불러들이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조건"의 해소에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박상훈은 지역주의 문제를 환원론적 논리 구조에서 벗어나 "인과적으로 설명이 가능하고, 합리적으로 이해가능하며, 규범적으로 타당하게 다루는 일"로 만들었다. 특별히 이견을 제시할 부분은 없다.
 
4. 지난 2월 2일자 <매일경제>는 세계적 기업, 삼성전자 전무급 이상 고위 임원에 대한 출신 지역 분석 기사를 실었다. 역시 이제는 서울 출신이 과반을 넘어 51.2%를 차지했다. 대구·경북은 18.1%, 부산·경남은 10.2%, 충청은 6.3%, 경기·인천은 4.7%, 호남은 2.4%였다. 부산과 대구를 합해 영남으로 분류하면 28.3%다. 여기에 다시 호남의 2.4%를 대비하면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 특정 집단의 지역주의에 대한 현실이 된다.
 
구별의 문제가 아니다. 차별의 문제이다. 차별은 인권의 문제이다. 인권은 인간의 존엄이요, 존재 그 자체다. 내 의지와 능력에 상관없이 선천적 요소로 평가받는 사회는 결코 공정한 사회가 못된다. 향·소·부곡 등 출신지와 거주지와 부모의 신분으로 구분하던 사회와 별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차별에 바탕을 둔 지역주의는 단순한 지역 감정을 넘어 폭력이 될 수 있는 중대한 근거를 획득하게 된다.
 
이제 더 이상 노골적인 인종주의자가 없는 것처럼, 노골적인 지역주의자는 없다. 그런데 신인종주의가 있는 것처럼 신지역주의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인권 침해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염려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피부색보다는, 지역색보다는 문화적 차이, 경제적 차이가 이들의 논거다. 사회적, 경제적 지위의 열악함이 학력과 문화적 차이로 이어진다. 공정한 기회는 차등적으로 분배된다. 어느새 신분은 세습화된다. 이런 식의 악순환에 결합된 전근대적 정치 시스템은 신지역주의를 고착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폐쇄적 지배체계에 동원되는 정치적, 경제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지역주의는 현실이다. 대한민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공정한 평가 제도의 결여에 있다. 공정성이 사라진 곳에 전근대적 연고주의는 우상으로 재림한다. 학연, 지연, 혈연의 범주가 아니다. 학벌, 지벌, 혈벌이라고 이름 지어야 마땅하다. 서울이라는 일극중심주의, 권위주의적이고 사적인 대통령제, 공정한 공론의 기회가 배격되는 단순한 숫자 개념의 다수결 원칙이 득세하는 우리의 정치사회적 현실에서, 특정 지역에 바탕을 둔 가족주의와 학벌주의의 기괴한 결합은 하나의 우상이요, 괴물이다. 대한민국 특유의 전근대적이고 불공정하며 폐쇄적인 정치 시스템, 비즈니스 시스템, 족내혼 성격마저 띠어가는 퇴행적 신분 사회의 흐름 속에서, 시민이라는 보편적 지위는 외롭고 힘들어진다.
 
왜곡된 정치적 기제로서의 지역주의에 대한 박상훈의 분석은 탁월하다. 대부분의 유권자와 정당은 지역주의에 젖어 있지도 않고, 정치와 사회의 모든 문제를 지역주의 탓으로 돌리는 방식 또한 맞지 않다. 인식의 틀을 바꿔야 한다는 박상훈의 문제의식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지역주의는 문제다. 이데올로기화된 지역주의, 폐쇄적 지배체계로서의 지역주의는 이미 하나의 우상이요, 돌연변이다. 앞선 삼성전자의 인사 자료에서 훔쳐볼 수 있었듯, 우리 사회 특유의 사회, 경제, 정치적 지배체제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하고 공론을 통해 대안을 만들어 가야만 하는 시대적 이유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우리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 비로소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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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의는 없다…'만들어진 현실'일뿐 (레디앙, 2009년 08월 01일 (토) 08:26:49 정리=정상근 기자)
71년 이후 동원, 87년 이후 본격 이슈화 
[인터뷰-박상훈] "정치적 발명품…유권자 합리적 행동준비 돼"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실재하는 현실로, 또는 너무도 명백한 당대의 현실로 대한민국 ‘공적’ 1호로, 망국적 현상으로 규탄되는 지역주의-지역감정, 지역정서, 지역정치 등으로 표현되기도 하는-가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는 게 이 책의 내용이다. 박상훈은 ‘한국의 지역주의 문제에 관한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해석들’을 하나하나 도마 위에 올려놓은 뒤, 그것들을 모두 뒤집어 놓는다.
 
지역주의가 삼국시대부터 존재한 뿌리 깊은 것이라는 설, 대부분의 유권자는 지역주의에 이끌리며, 때문에 정치인은 이를 이용하는 지역당으로 나누어 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생명을 건 대연정처럼, 위로부터의 결단이 내려지지 않으면 고칠 수 없는 망국적 고질병이란 시각 등 지역주의에 관한 지배적 담론에 대하여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박 대표는 이 책을 통해 “지역주의는 지배세력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조성한 담론”이라고 정의한다. ‘지역주의’가 문제가 아니라 “‘지역주의 때문에 큰 일’ 이라는 해석이 어떻게 한국정치를 지배하게 되었느냐가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기회와 조건만 주어진다면 한국 시민들은 항상 합리적 행동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대안의 구조가 늘 협소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 *
- 지역주의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과 책으로까지 펴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했을 때는 ‘민주화운동 시대’였고 87년 선거가 치러졌을 때였다. 당시 개인적으로 현실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는지, 생각대로 정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논문 주제로 지역주의 문제를 생각하게 됐다. 지역주의를 다루다 보니 이것이 생각보다 중요한 주제란 생각이 들었고, 내가 고민한 문제들의 상당 부분을 이 주제로 설명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95년에 본격적으로 공부해 보기로 결정했다. 이후 나 스스로의 혼란을 정리한 것을 2000년 학위논문으로 제출했고, 그러고도 잘 몰라서 10년 동안 관련 주제 살펴왔다.
 
- 책의 앞부분에 지역주의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지배적 담론을 모두 부정한다. 이 책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무엇인가?
= 지역주의 문제는 ‘지역주의’라는 현상과, 지역주의를 해석하는 담론이 있는데 이를 구분해서 봐야 한다. 산업, 고용 등에 대한 지역 차별이나, 편견에 따른 지역 감정 등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오랜 기간 노력을 통해서 개선해야 된다. 하지만 이것과 지역주의 떄문에 큰일났다는 식의 담론을 생산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비판을 해야 한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특정 지역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문제가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사태를 개선하기보다 심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 데에는, 지역주의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기여한 바 크고, 그렇게 보도록 만드는 작위적인 힘의 작용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저자는 “렌즈는 바꾸고, 이데올로기화 된 해석으로 영향력을 조직하려는 진짜 ‘지역주의자’가 누구인지 분명히 밝히자”고 말한다.)
 
- 지역주의가 시기적으로는 삼국시대부터 있어왔으며, 공간적으로는 외국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라는 주장들이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한국의 지역주의가 스페인, 미국 등 국가의 지역주의와는 다른 내용과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 비교정치학에서 말하는 지역주의의 일반적인 현상은 오랜 역사를 갖는 인종적, 언어적, 종교적 차이로 생긴, 특정 지역을 경계로 하는 문화적 공동체의 존재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스페인을 예로 들면 까딸루냐, 안달루시아. 바스크가 있는데 이 세 지역의 경우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여기서 약한 지역성을 갖는 지역은 분리독립이나 자치를 요구하고 역사의 면면에 흐르는 원초성을 회복하려 하는 것이다. 즉 중앙을 향하는 것이 아닌 중앙을 벗어나려 한다. 또 미국처럼 지역이 동질적인 이해관계를 갖는 경우가 있다. 미국의 동부는 서부개척시대에 채권단 지역이었다. 그만큼 이해관계가 뚜렷했다. 채무자로서의 서부도 마찬가지였으며, 남부도 인종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이런 경제적인 지역으로 분리되는 게 미국의 경우이며 이를 바탕으로 경제정책과 정치운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이와 다르다. 우리는 오랫동안 중앙집권적 관료체제를 발전시켰고, 식민지를 경험하면서 근대화 과정에서 피해 집단이 나눠지지 않았다. 때문에 한국은 약한 지역성을 가지고 있다. 다른 국가들은 민족주의가 등장하며 수많은 내전을 겪었는데, 우린 오랜 중앙집권 경험과 식민지 경험 때문에 지역성을 드러낼 일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정치적으로 지역주의가 불러들여지면서 짧은 순간에 한국사회가 지역주의가 심한 사회로 만들어 진 것이다. 길게 봐도 한 30~40년 수준이다. 외국의 경우 지역주의 문제가 역사적-문화적인 성격을 띠고 있지만, 한국의 지역주의는 상당 부분은 이데올로기적이다. 
 
- 이 책은 흥미진진하다는 것을 장점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거 같다. 각종 사례들도 보통 사람들에게는 새롭다. 정치적으로 동원된 일종의 '유령'으로서의 지역주의를 깨뜨릴 만한 사례를 몇 가지만 소개해달라. 
= 63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는 자신의 고향인 경북에서 61%를 득표했으며, 전남과 전북에서도 각각 62%, 54%를 득표했다. 비율로 보면 전남이 경북보다 표를 더 준 것이다. 71년 선거 분석하면서도 놀랐다. 정치학자들은 영호남 대결이라고 했는데 지역별로 지지를 확인하니 부산에서 DJ 득표율은 42.6%였다. 이는 이전 대선에서 야당 윤보선 후보가 받았던 지지율보다 10%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대구도 8%, 경남도 2% 정도 늘었다. 대구에서 김대중 후보의 지지율 증가는 서울의 증가율보다 높았다. 경북의 경우 박정희 후보의 득표 비중은 4.7% 증가했지만, 대구에서는 반대로 7.4% 감소했다. 당시 박정희는 지역주의를 조장해 DJ를 공격했었다. 이 같은 현상을 보면서 권위주의 세력들은 영향력 있는 도전자들을 배제시키기 위해, 도전자들을 이데올로기적으로 공격하고 비껴 때리기 위해 지역주의를 이용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사례로는 <조선일보>다. 87년, 김대중 주필의 몇 편 안되는 칼럼이 너무 놀랍다. 역시 지배세력의 본능은 대단했다. 권위주의 지배블록이 민주화시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을 사람들에게 가장 잘 설득할 수 있는 것을 <조선일보>가 개발하는 식이다. 그해 11월엔 프로야구장에서 폭력이 발생하고 이것이 유세장 폭력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섬뜩한 것은 <조선일보>는 이미 10월 사설에 ‘프로야구 경기에서 영호남간의 화합 장면을 보고 싶다’고 쓰고 있다. 그들은 화합하는 장면이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화합되지 않는 지역감정을 보라고 말한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치밀하게 계산하고 있었다.
 
(이 밖에도 이 책에서는 다양한 사례들이 소개돼있다. ‘지역주의’가 ‘삼국시대’로부터 이어온 뿌리깊은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상식에도 부정한다. “‘백제=호남’의 등식은 성립하지 않으며 백제가 존립했던 기간에는 ‘서울-경기-충청’권이 중심이었으며, 호남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고려시대에는 “후백제 지역 출신과 신라 지역 출신이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으며, 왕비의 배출지역 역시 지역적으로 고르게 편재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조선시대에도 “민란의 발생 빈도는 호남보다 영남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중앙관료의 출신지도 호남이 차별받았다는 증거는 없다”고 강조한다)
 
- 호남지역의 몰표현상은 어떻게 설명 할 수 있겠는가?
= 투표의 지역적 편차는 어느 나라나 있다. 영국은 전형적인 계급정당 체제 모델이지만 그런데 영국조차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다. 지역편차가 크다는 것 자체로 우리사회를 지역적 대립체제를 만들 수 없다. 보편적 관점과 지역적 관점이 병행해 통일적으로 얘기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유권자 투표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지역주의가 강고하면 정당이 안 바뀌어야 하는데 한국사회는 너무 잘 바뀐다. 정치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바뀌지 않나? 사람들이 이를 지역주의로 회귀해 설명하는 것은 누군가 ‘그렇게 설명했으면’ 하는 바람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 아닌가?
 
(그는 책에서 후보자 사이나 정당 간의 "쟁점 위치의 차이가 클수록 표의 지역적 분절성은 약화된다"고 분석하고 있다. 예컨데 "5공화국 핵심세력 출신인 이세기 후보와, 대표적인 학생운동 출신 임종석 후보가 경합한 서울의 성동 지역구의 경우, 지역이라는 요인은 유권자의 투표 결정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산-경남 출신 유권자의 최다 지지를 받은 후보는 이세기 후보가 아니라 임종석 후보로 나타났다."고 설명한다. 또 "이념 이슈의 효과는 지역성이라는 변인과 무관하게 유권자의 투표 결정을 이념적 정향에 따라 분화시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이슈의 효과에 비례하여 출신 지역이 투표 결정에 미치는 효과는 축소된다."고 분석한다.)
 
- 1995년 지방선거에서 충청권의 투표현황을 설명한 부분이 있다. JP의 ‘토사구팽’에도 불구하고 충청권에서 표는 고르게 나왔었다.
= 95년이 중요한 시기다. 권위주의 세력은 민주화 이후 첫 번째 대선에서 승리하고 일본처럼 보수 안정체제로 가기 위해 (3당 합당이라는)보수대연합을 했지만, 92년 뚜껑을 열어보니 과반수가 안 됐다. 그 이후에 YS체제가 등장한 것이다. 만약 YS가 ‘3당 합당 정신’으로 정치를 했으면 무서웠을 텐데 욕심을 부렸다. DJ를 망명시키지 않았나? 만약 DJ가 국내에 있었다면, ‘정치적’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사망’에 이르렀을 가능성도 있었다고 본다. 그리고 94년에는 JP까지 쫓아냈다.
그런데 95년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충청권의 투표 결과는 지역주의적 해석을 깼다. 민자당에서 쫓겨났던 JP가 핫바지론으로 지역주의를 선동했지만, 결과는 ‘지역주의’를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 기준에 맞게 행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회와 조건만 주어진다면 한국 시민들은 항상 합리적 행동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대안의 구조가 늘 협소하다. 마치 다양한 선호의 사람들에게 ‘만두 먹을래? 라면 먹을래?’하며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는 수준이다.
 
- 지역주의 담론이 등장한 것이 71년 선거 직후이며, 87년 민주화 이후 본격적 이슈로 등장하게 됐다고 주장했는데, 그 이전엔 없었다는 거냐?
= 지역감정 같은 것은 그 전부터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작위적으로 조직한 것이 71년 이후이다.
 
- 87년 대선에서 양김 분열의 원인을 분석해놓았다. 이들이 독자출마 배경과 지역주의는 무관하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 내가 분석한 목적은 (양김의 분열을)지역주의로 환원되는 설명이 아니더라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또한 향후 이와 유사한 생겼을 때 당사자들이 여론에 따를 수밖에 없도록 하는 제도나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고자 했다.
 
- 지역주의를 들고 나오는 것은 현실의 당면한 문제를 피하기 위한 알리바이 성격을 띠고 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지역주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대연정을 들고 나온 것도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보나?
= 물론이다. 지역주의 문제는 늘 정치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책의 서론과 본론에서도 대연정을 비판했던 문제의식을 이어왔다. 노 전 대통령이야말로 전형적인 ‘3김 청산론자’였기 때문에 언젠가 이런 문제가 터질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사실 지역주의는 잘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 지배집단의 약점이 될 수도 있다.
 
- 이명박 정부 들어 지역주의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이 있나?
=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엘리트 집단 안에서는 아마도 그런 얘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이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동원하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데 반이명박 움직임은 모든 문제를 ‘이명박’으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지역주의 환원론과 문법은 똑같다. 이는 매우 위험하다. 그런 방식으로 현 정권을 몰아붙이면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통치를 더 쉽게 만들어주는 측면이 있다.
만약 이명박 정권이 작은 업적하나만 내면, ‘만사 오케이’ 아닌가? 오히려 우스꽝스러운 정권을 강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게다가 모든 반대 세력을 (반이명박 전선이라는)한 곳으로 몰아넣으니 화물노동자의 죽음도 의미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광범위한 연대는 요구 수준을 하향 평준화시킬 수밖에 없다.
 
- ‘지역주의 망국론’이라는 담론이 처음 만든 주체가 권위주의 세력인데, 개혁세력-민주화세력-진보까지 담론을 생산하는 주체로 합류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 책에서는 정계 은퇴를 번복한 DJ에게 주도권을 다시 넘겨주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DJ를 효과적으로 비판하는 방법으로 지역주의를 가져온 것을 설명한다. 그들이 선의에 의한 비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과정은 <조선일보>가 만든 지역주의 담론을 철저히 따랐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본인들이 자신도 지키지 못하고, 신한국당이나 한나라당으로 가버렸다. 이는 대한민국의 ‘진보의 단점’이라고도 생각된다. 본인들이 정치를 어떻게, 왜 해야 하겠다는 비전과 내용을 갖고 행동을 했었다면, 다른 부분에 편승해 본인들의 이익을 추구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아니 편승해도 자신들의 입지를 없애는 이상한 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정치는 스스로 독립변수가 되려는 노력을 늘 게을리 했다.
 
- 책에서 보면 유권자들의 정치적 선택이 지역을 가로지른 요구와 선호에 부응하는 정당이 부재하기 때문에 지역정당체제가 형성됐다고 말하고 있다. 대안으로서 지역을 넘어서는 정당이 나와야 할 것이다. 지역정당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과, 진보나 좌파를 표방하는 정당의 역할은 무엇이라 보나?
= 원론과 현실을 같이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후자는 정치 활동가, 리더의 몫일 것이다. 나와 최장집 선생은 DJ집권 이후 (지역주의를 넘어서 정책과 이념차로 형성된)2.5당 체제를 생각했었다. 진보정당이 당장 1이라는 숫자는 안 되겠지만 한국정치의 한 추가 되었으면 했다. 때문에 민주노동당의 실험을 주의 깊게 지켜봤고, 지켜보면서 실망하고, 자신도 떨어졌다.
그렇다면 미국식으로 민주당을 내부에 진보블록도 기능하게 만드는 대안밖에 없는지, 아니면 독자적 정당의 길은 추천해야 하는 것인지, 나도 고민되고 그 기로에 있다. 진보적 독자정치 세력화의 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세력이나 리더들에게 바라건데, 그 길을 개척해 주어서 지식인들이 발언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 민주주의 역진 불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의 믿음이었는데, 최근 정권의 미디어법 통과 등을 보면서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현재 이명박 정권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퇴진투쟁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는데, 퇴진 대상으로 성립이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 이 문제를 세 가지 차원으로 나눠서 봐야 한다. 우선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모든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정치체제 운영원리이며 역사상 그나마 나은 대안일 뿐, 그 자체로 다 해결해주는 만능은 아니다. 때문에 사회주의 같은 다른 운영의 원리 접합하고, 그것만으로 부족해 공동체, 시민성 등 문화적 조건도 말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하나의 ‘최종적 구원자’로서 말하는 태도는 위험하다. 그런데 너무 민주주의가 의인화 되고 물신화되었다. 진보가 매력적인 것은 인간이 만든 제도를 노력을 통해 끊임없이 개선할 수 있다고 보는 점 때문이다. 
두 번째, 이명박 정부는 현재 민주주의 정치체제 구성하는 한 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정치체제라면 야당, 시민운동, 유권자, 저항세력이 있는 것이고 이 전체가 모두 민주주의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민주주의를 벗어났다’고 쉽게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국가론을 행태주의적으로 퇴행시키는 이해 방법이다. 특히 진보진영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60년대 수준의 행태적으로 퇴행하고 있다. 상당히 우려스럽다. 이 차원에서는 오히려 우리가 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고 있고 한 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집권정부-지배블록이 보이는 민주적 가치의 훼손에 대한 것은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한 구성원으로서 이 정치체제에서 승자가 될 것을 준비해야 하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혼동시켜 놓으니까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체제가 ‘MB’라는 말 자체로 환원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루 이틀만에 민주주의적 성과가 역전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엘리트들의 조바심이다. 그동안 누린 것이 크기 때문에 느끼는 상실감 이상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왜냐면 지금 선거가 2년 동안 없었던 93~95년 국면과 똑같은데, 만약 내년선거에서 정치적으로 성과를 못 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 성과를 무조건 내야 한다. 다만 MB에게 최대 타격을 주기 위해 모든 세력을 다 묶는다면 주장의 수준이 낮아지고, 최소주의적 욕구들로 평준화된다. 이렇게 되면 당장은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게 가난한 보통사람들에게 무었을 가져다 줄 것인가?
비판진영도 각자 칼라가 다르다. 그런데 이를 유지하지 않으니 <한겨레>와 <경향>이 똑같아지고,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이 똑같아진다. ‘제목만 보고, 기사를 안보는’, 전체 미디어에 대해 재미가 안 느껴진다. 작은 세력 하나라도 자기 목소리 유지하는 것이 민주주의 유지에 더욱 도움이 된다.
지금 비판진영은 권위주의랑 싸우는 모습인데, 이 정도 정부가지고 그 정도로 대응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밀란 쿤데라는 ‘사람이 권력에 대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저항은 농담’이라고 했다. YS정부 때는 농담 많이 했지 않나? 그런데 비판진영에서 지금 정부를 너무 괴물로 만들어 버렸다. 이런 허약한 정부를 센 정부로 만들어놓고 본인들은 싸우지도 않으면서 시민들에게 일러바치는 형태다. 그야말로 벌려만 놓고, 정부는 상대하지 않은 채 뒤로 돌아 사람들에게 소리 지르는 식이다.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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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의 귀환-신자유주의 우주에서 살아남는 법(김태권)

우석훈의 쓴 해제가 달린 책을 보게 된 것은 이번이 두번째이다. 이 해제가 그리 맘에 드는 건 아니지만, 분명히 만화로는 다 설명이 되지 않거나 부족한 지점에 대해 지적을 해두는 게 필요하다면, 해제의 형식을 취할 필요가 있긴 하다. 게다가 자신의 저서에서는 중언부언하여 난삽하지만 해제 같은 것에서는 나름 자신의 쉽게 쓰기의 장점을 살리고 있는 우석훈을 능가하긴 어렵다.
 
김태권의 만화는 과거 그가 학부에 재학중이던 시절부터 좋아했다. 섬세하진 않지만, 농담을 섞어가며 만화가 가진 장점을 살려내는 재주가 대단하달 수밖에... 이번 만화도 기대된다. 그러고 보니 십자군은 1편만 헌책방에서 구입해놓고 제대로 보지도 않았네. 이게 먼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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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젊음이 안타깝다면, 이 책을 읽자" (프레시안, 성현석 기자, 2009-07-11 오전 10:08:32)
[화제의 책] <어린왕자의 귀환-신자유주의 우주에서 살아남는 법>
 
<십자군 이야기>에서 이라크 전쟁을 벌인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풍자했던 만화가 김태권이 새 책을 냈다. <어린왕자의 귀환-신자유주의 우주에서 살아남는 법>.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겨냥한 내용이다. 1994년에 대학에 입학한 작가에게,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까마귀 떼처럼 엄습한 신자유주의가 낳은 변화는 너무 아팠다. 이 책에 담긴 만화 가운데 상당수는 외환위기 직후에 그려졌다. 당시 20대였던 작가가 겪은 번민이 섬세하게 드러나 있다.
 
"좋은 시절은 지나갔다. 우리 세대의 젊은 시절은 IMF와 함께 끝이 났다. '평생 고용'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무너지면서 직장인도 예비 직장인도 가혹한 경쟁에 내몰렸다. '88만 원 세대'의 대학 생활에서는 취직 준비 이외에는 모든 것이 사치가 돼 버렸다. 플라톤과 <자본론>을 한 팔에 안고 다니던 낭만적인 청년 시절은 사라졌다. 생활과 학습의 공동체로서의 대학 사회는 붕괴했다.
 
친구들을 뿔뿔이 흩어졌다. 어떤 친구는 비싼 연봉을 받고 어떤 친구는 헐값의 품삯을 받고 사회로 나갔는데, 한두 해만 지나면 모두 삶에 지친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론의 영역에서는 하루에도 열 번씩 해소되던 저 자본주의가, 실제로는 상상도 못 할 만큼 막강했던 것이다. 몰랐냐고?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학창시절에는." (작가의 머리말)
 
신자유주의에 대한 작가의 첫 경험은 상처였다. 그래서 작가는 잊어버리기로 했다. 시간이 흘러, 작가는 30대가 됐고 결혼도 했다. 그런데 기억의 저편에 봉인돼 있던 장면들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순간이 닥쳤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나의 20대는 기억의 저편에 봉인돼 있었다. 편집자님의 제안을 받고서야 나는 그때 그 만화들을 꺼내들 엄두가 들었다. 그런데 막상 만화를 펼쳐들고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렇게 지금 상황과 꼭 들어맞을까?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더욱 잦아들었음에도 불구하고(아니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문제 그 자체는 더욱 심각해졌던 것이다.
오늘날 빈부 차는 더 커지고 일자리는 더 위태위태하며 FTA는 몰려오고 민영화는 몰아친다. 그러나 그 의미는 숫자에 가려져 있다. GDP 몇%, 교역량 및 몇 위라는 알쏭달쏭한 암호의 그늘에 감춰진 이야기, 즉 철수는 재개발로 부자가 되지만 영희는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쫓겨나리라는 이야기를 굳이 들추어내는 건 의미 있는 일이 되리라. 지금 시점에 이 만화를 모아 책을 묶자던 편집자님의 말씀은 옳았다." (머리말)
 
'좋았던 젊은 시절'을 끝장냈던, 그토록 아팠던 신자유주의가 이제 공기처럼 익숙해졌다. 일상이 됐으니, 아픔도 사라졌을까. 그렇지 않다. 늘 겪는 일이라서 문제제기하는 목소리가 잦아들었을 뿐이다. 사회 곳곳에서 상처가 입을 벌리고 있는데, 비명은 막혀 있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는 줄 아는 이들이 있다. 그들 중 한명이 대통령이 됐다. 입에 발린 말로라도, 사회적 약자들의 아픔을 챙길 줄 모르는 이들이 권력을 잡으면서 신자유주의는 군사정권 시절 반공주의와 같은 위세를 누리게 됐다.
 
"공공 부문 민영화는 절대선이며, 자유무역은 모든 이들에게 이롭다"는 주장에 의심을 품으면 어느새 '반(反)기업', '반(反)시장'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이런 꼬리표가 달리면, 변호사는 '돈 되는 사건'을 수임할 수 없고, 언론은 '광고'를 유치할 수 없으며, 학자는 대학에 남을 수 없다. 한마디로 밥줄이 끊긴다는 뜻. 신자유주의를 종교처럼 떠받드는 곳에서 가난한 자를 위한 자리는 없다. 그러니 다들 두려워할 밖에.변호사 개업 이후를 걱정하는 판·검사, 늘 경영불안에 시달리는 언론사 기자, 교수가 못 되면 평생 극빈층으로 지내야하는 연구자…. 내면 깊숙한 곳에 공포가 자리 잡은 이들은, 재벌과 신자유주의를 찬양하는 장막을 치장하는 것으로 불안을 달랜다.
 
멀리서 보면 화려하기 그지없는 장막이, 사실은 쉽게 찢어지는 천 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게 '지식의 힘'이다. 그리고 <어린왕자의 귀환>은 이런 지식을 담고 있다. 바로 정치경제학이다. 이 책 46페이지를 펼치면, 두 쌍의 따옴표에 묶인 글귀가 있다. "자유무역은 누구에게나 이득이 되는 거야", "어디까지나 이론적으로는". '자유무역의 허와 실'을 다룬 내용의 도입부다. 불과 13페이지 분량의 만화에, "자유무역은 모든 이들에게 이롭다"는 주장의 맹점이 잘 묘사돼 있다. 조금 부족하다 싶은 독자를 위해서는, 경제학자 우석훈의 글이 바로 뒤에서 기다리고 있다.
 
자유무역,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비교우위론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이들은 한국이 왜 경쟁력 없는 농업을 계속 유지해야하느냐고 묻는다. 한국은 휴대폰을 잘 만드니까, 휴대폰을 팔아서 번 돈으로 더 싼 식량을 사서 먹는 게 이익이라는 주장이다. FTA 홍보물에서 흔히 접하는 내용이다. 얼핏 들으면 솔깃한 이런 주장이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 경제 자체가 비교우위론에 역행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전형적인 자유무역 논리에 따르면, 한국은 농업과 경공업에 주력했어야 했다. 그게 더 경쟁력이 있었으니까. 실제로 1950~60년대에는 한국을 비롯한 수많은 신생국가 정부 각료들 사이에서 "선진국이 공산품을 만들고, 개발도상국이 농업에 주력하면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주장이 상식으로 통했다. 그러나 이런 상식에 맞춰 정책을 추진한 개발도상국 가운데 경제 성장에 성공한 곳은 하나도 없다. 산업화에 성공한 쪽은 한국처럼 상식에 어긋나는 노선을 택한 나라들이었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서는, 비교우위가 없는 산업을 빨리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룬다. 자신이 발 딛고 선 현실을 읽어내는 힘을 스스로 키워갈 기회가 드물었던 까닭에 교과서 속 이론에 지나친 권위를 부여하곤 했던 문화 탓이기도 하다. 그러나 경제학 교과서에 실린 비교우위론이 거스르기 힘든 '상식'이라면, 이런 이론의 맹점을 지적하는 논리 역시 널리 통하는 '상식'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후자의 상식은 오랫동안 상식 취급을 받지 못했다. 체제를 위협하는 불온한 주장, 혹은 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는 소리쯤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상식은 그저 상식일 뿐이다. 상식이지만, 상식 대접을 못 받고 있는 상식을 누구나 쉽게 이해하도록 요령 있게 정리했다는 점이 <어린왕자의 귀환>가 가진 미덕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리카도는 비교우위론을 설명하면서 프랑스의 포도주인 보르도를 예로 들었다. 영국에서 만들기 힘든 보르도산 포도주를 영국이 직접 만드는 것보다는 차라리 면화를 더 만들어서 프랑스와 무역을 하는 것이 양쪽에 모두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말만 믿고 포도주 생산을 포기하는 나라는 없다. 프랑스보다 훨씬 북쪽에 위치해 포도 경작에 불리한 자연적 조건을 가지고 있는 독일은 아이스바인(Eiswein, 아이스와인)이라는 고가의 포도주를 생산하고 있으며 미국, 호주, 칠레, 심지어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포도주를 생산하면서 프랑스의 포도주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절대적 의미의 비교우위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줄어들고 세계화와 함께 국가라는 지역적·사회적 경계는 점점 완화되고 있다. 게다가 식량안보와 같이 비교우위 이론에 의해서 간단하게 포기하기 어려운 경제적 영역이 존재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저가의 곡물을 외국에서 수입해서 사 먹으면 간단할 것 같지만 미국은 물론이고 프랑스, 일본, 심지어는 스위스까지 주식 생산을 포기한 선진국은 없다. 국가가 장기적으로 안정되기 위해서는 식량과 같은 필수 품목의 생산능력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의 근간이 되는 비교우위 이론은 현대의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서 성공적으로 입증된 적이 없는 가설인 셈이다." (2장 '여행을 떠나다'에 따린 우석훈의 글 가운데 일부)
 
신자유주의 앞에서 영혼이 녹슬어 가는 어린왕자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소설 속 어린왕자가 이명박 시대 한국에서 살아간다면'이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는 게 이 책의 내용이다. 어린왕자가 살던 작은 별은, FTA를 계기로 골프장으로 바뀐다. 살던 별에서 쫓겨난 어린왕자는 '근로자의 별'과 'CEO의 별'을 찾아가지만 편안히 머물 곳을 얻지 못한다.
 
결국 어린왕자가 찾아간 곳은 '부유층의 별'. "이 신자유주의 우주에서 가장 큰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러니까 투자자란 말이지?"라고 중얼거리는 어린왕자 앞에서 부유한 투자자는 이렇게 말한다. "FTA? 해고? 허허, 그런 건 처음 들어봐! 다만 난 수익성 높다는 곳에 묻지 않고 투자를 할 뿐이라고. 그런데 내가 당신까지 책임질 필요가 있을까?"
작은 별에서 장미를 키우고 싶었던 어린왕자를 받아줄 곳은 어느 곳에도 없었다. 신자유주의 물결과 함께 젊은 시절이 끝장나버린, 한국의 어린왕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취업 경쟁으로 망가진 젊음이 안타까운 이들이라면, 이 책을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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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어린왕자의 음모 추적기 (레디앙, 2009년 07월 18일 (토) 23:26:53 김경탁 기자)
[새책]『어린왕자의 귀환…』…경제학 이슈를 만화로 
 
이번에 나온 『어린왕자의 귀환』- '신자유주의의 우주에서 살아남는 법'(이하 『어린왕자의 귀환』) 은 지금까지 쏟아져 나왔던 수많은  패러디물은 물론 『어린 왕자』 원전과 비교해서도 돋보이는 장점을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어린왕자의 귀환』이 담고 있는 풍자가 이 시대 우리 사회에 대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2009년 현재 대한민국 사회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동시에 『어린 왕자』 원전이 내포하고 있던 수많은 상징들을 이해하는 보너스(?)를 얻게 된다.
 
데뷔작 『십자군 이야기』를 비롯해 그동안의 작품들을 통해 역사와 현실 사이에 나타난 유사성을 꿰뚫는 통찰력과 통렬한 시사성, 배꼽 잡는 해학성을 함께 보여줬던 만화가 김태권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으며,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이 해제를 썼다.
 
사실 이 책의 기본 골격은 김태권이 1999년부터 노동단체 소식지나 대학 교지 등에 기고했던 작품들로, 김태권은 '작가의 말'에서 편집자의 제안으로 이 책을 구상하면서 작업에 앞서 20대 때 그렸던 만화들을 펼쳐들고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10년 전에 그린 만화가 지금 상황과도 꼭 들어맞았기 때문이었다.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고전적인 자본주의의 폐해와 신자유주의의 해악이다. 고전적인 노동 통제의 방식들에서부터 비정규직 문제, 청년실업 문제, 건강보험 등 공공부문의 민영화 문제, 각종 규제 철폐와 개발주의로 인한 환경 문제, 주거 문제, 또 시민들의 입을 틀어막는 각종 통제의 부활…. 21세기 한국 사회를 둘러싼 온갖 문제들이 독자들 앞으로 호출된다. 이는 작가가 고백했듯 하루 이틀 사이에 이루어진 변화는 아니다. 또 이 책에 실린 만화들이 보여주듯이, 우리가 이러한 문제들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다.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미망에 사로잡혀 ‘이 정도쯤은 괜찮아, 별 문제 없겠지’라며 스스로를 안심시키던 사이 우리의 삶이 어떻게 조금씩 더 각박해지고 척박해졌는지 이 만화는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 책은 분명 시사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단순히 만평식의 일시적인 풍자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노동과 상품, 초과이윤이나 분할통제, 시장주의, 비교우위론 등 정치경제학의 기본 개념들이 풍부하게 소개되고 있으며, 당면한 현안들에 대해서도 좀더 충실하게 다루고 있다. 가령 공공부문 민영화를 다룬 6장만 하더라도 시사적인 이슈와 역사적인 정보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아주 특별한 경지를 보여준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은 딱딱한 정치경제학 책을 바로 집어 들기에 어색함을 느끼는 학생, 청소년, 일반인들이 세미나 교재로 사용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사실 이는 작가의 의도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문제에 불편함과 불만과 분노를 느끼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좀더 고민하고 알아보기를 권유한다. ‘지식만화’라는 조금 낯선 개념은 이런 작가의 의도를 고려할 때 더 정확하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시사적 이슈들을 다루는 작가의 관점은 통렬하며 그러한 관점을 구체화하는 사례들 역시 날카롭고, 매 페이지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고도의 말장난이나 썰렁한 블랙 유머는 딱히 특정한 시사적 이슈에 관심이 없던 독자들까지도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이 책에 실린 꼭지들 중 일부는 예전에 작가가 다른 매체에 발표했던 작품들이므로 개개의 꼭지가 저마다 완결성을 갖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상 속에서 수정과 보완을 거치는 사이, 이 다양한 꼭지들은 이제 거대한 우주 속에 감추어진 신자유주의의 음모를 파헤치며 나아가는 두 주인공의 우주 모험담이라는 구조 안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
 
책에 정보와 고민거리를 더 풍부하게 포함하게 된 데는 매 꼭지마다 부록으로 달려 있는 해제의 공이 크다. 이 해제들에서 경제학자 우석훈은 만화가 미처 다루지 못한 개념적이거나 이론적인 설명을 보완하고, 오늘날 (정치)경제학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논쟁적인 이슈들을 한결 명확하게 설정한다. 가령 상품화의 문제는 자본주의에서 레저의 문제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지고, 경영 합리화의 문제는 주주 자본주의의 폐해나 CEO 신화의 허구성에 관한 설명으로 이어지며, 노동시간의 문제는 ‘사회적 임금’의 확충이라는 새로운 의제를 설정하고, 노동자 분할통제라는 문제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연대와 공동체의 복원’이라는 더 근본적인 문제제기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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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노믹스

2007년 초판이 나왔을 때 경영계에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경제신문에서 주목했던 책이다. 유력 경영자들이 추천을 하기도 했고... 그런데 그 경영자들은 이 책에서 도대체 무엇을 얻었을까. 저자들은 개방, 참여, 공유, 대규모 협업이 중요하다고 얘기하는데, 한국에서 자본의 행태는 이와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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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경영書] 개방과 참여의 웹2.0시대, 기업도 2.0으로 무장해라 (한경, 이동현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2009-07-01 09:01)
21세기 경제원리 위키노믹스
 
인터넷은 인류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생활의 필수품이 돼 버렸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결과물의 총정리이자 웹 2.0으로 상징되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인터넷 경제 시대,즉 '위키노믹스'에 대한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인 돈 탭스코트는 일찍이 웹 경제의 출현을 예견한, 이 방면의 대가다. 그가 주장하는 위키노믹스의 핵심 원리는 '개방과 참여'로 요약할 수 있다. 이제 인터넷은 단순히 정보를 제시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사회적 네트워킹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인터넷은 전 세계로부터 인재와 아이디어를 구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개방성을 상징하는 오픈 소스와 오픈 시스템은 이미 정보기술 업계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굳이 리눅스 파이어폭스 아파치 등 오픈 소스로 유명한 사례들을 들지 않아도,개방형 소프트웨어 플랫폼은 시장의 주류로 부각되고 있다. 위키노믹스의 또 다른 특징인 참여와 협업은 가히 폭발적이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대규모 협업의 힘을 활용해서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새로운 생산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때 동등계층(peer)이란 흔히 P2P라고 하는 대규모 참여 네트워크 시스템에서, 대등한 입장으로 자료를 공유하는 주체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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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새로운 패러다임, 위키노믹스로 무장하라 (아이비타임즈, 2009-07-01 15:33 이원경 기자)
위키노믹스(경제 패러다임을 바꾼 집단의 지성과 지혜, 개정증보판)/돈탭스코트.앤서니윌리엄스 지음/윤미나 역/21세기북스(북이십일)/2009.02.28/556p/2만5000원
 
이 책은 개방과 공유, 참여를 특징으로 하는 웹 2.0의 개념이 기업활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날카롭게 분석했다. 기업의 연구개발, 생산, 판매, 광고의 모든 분야에서 이 새로운 모델이 활용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런 현상의 근간을 협업방식으로 규정하고 '위키노믹스'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는 방법을 오픈소스, IBM, P&G, 아마존 닷컴, 보잉과 BMW 등 설명하고 있다. '위키노믹스'에 대한 지침서인 동시에 비평과 반박을 통해 다가올 미래를 볼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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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노믹스` 디지털시대 기업 성공 방정식은… (한경, 김남국 기자, 2007-03-07 18:11)
 
P&G 사례처럼 기업의 문호를 활짝 개방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이는 이른바 위키노믹스(wikinomics)가 디지털시대 새로운 성공 방정식으로 부상했다. 인터넷 이용자들이 질문하고 스스로 답변·첨삭해서 만들어진 위키피디아는 대기업이 만든 백과사전보다 훨씬 방대한 100만건 이상의 정보를 담고 있으며 하루에만 900만건이 조회되는 대표적인 온라인 사전으로 부상했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대규모 협업(mass collaboration)을 촉진하는 기업들은 자신의 영역을 고수하며 문호를 닫아놓은 기업보다 훨씬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게 위키노믹스의 핵심 메시지다.
 
위키노믹스는 캐나다 컨설팅사인 뉴패러다임의 최고경영자 돈 탭스콧과 컨설턴트인 앤서니 윌리엄스가 만든 용어다. 두 사람은 작년 말 위키노믹스란 제목으로 책을 출간했고 얼마 후 이 책은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들이 위키노믹스를 통해 대규모 협업의 필요성을 주장한 가장 큰 이유는 치열한 경쟁에서 생존해야 하는 기업들이 회사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의 지식이나 자원을 활용할 경우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이나 상품 개발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래플리 회장은 "아무리 큰 다국적 기업이라도 혼자만의 힘으로 충분히, 그리고 빨리 혁신할 수 없다"며 "대규모 협업을 하는 기업이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위키노믹스를 실현하기 위해 기업들은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무엇보다 전통적인 계급이나 위계질서에서 자유로운 동료집단(peer)을 참여시켜야 한다. 이들은 누구의 명령이나 통제를 받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대로 어떤 일에 참여한다. 일례로 2005년 7월 런던 지하철 테러를 특종 보도한 것은 기존 미디어가 아니라 위키피디아였다. 이른바 동료집단 제작(peer production)을 통한 가치 창출의 전형적 사례다.
 
사람들은 왜 자발적으로 이런 일에 참여할까. 금전적 보상도 요인이 될 수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리눅스를 개발한 리누스 토발드는 "엔지니어들은 어려운 기술적 문제를 해결했을 때 머리털이 솟아오르는 것 같은 쾌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스스로 느끼는 만족감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지식과 기술,아이디어를 살 수 있는 장터를 활용하는 것도 위키노믹스를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고려해봐야 한다. 위키노믹스 저자들은 아이디어고라스(ideagoras)란 용어를 사용한다. 이는 아이디어에 아고라(고대 그리스의 광장으로 상거래와 토론이 이뤄지던 곳)를 합성해 만든 말이다. 인터넷에 어려운 기술 문제를 올려놓으면 이용자들이 해답을 제시하는 이노센티브(www.innocentive.com) 같은 사이트가 아이디어고라스다. 기업들은 이 사이트를 통해 현상금을 내걸고 문제 해결을 요청하면 과학기술자들이 자신의 지식을 활용해 답을 제시한다. 전 세계 9만명의 전문가가 이노센티브 같은 사이트에서 활약하고 있다.
 
고객도 위키노믹스를 실현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원이다. 고객을 혁신의 동반자로 삼기 위해서는 단순히 고객의 선택권을 확대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다른 부작용이 없다면 제품의 핵심 디자인이나 소프트웨어 등도 수정할 수 있게 과감하게 개방하는 방안도 검토해봐야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고객들이 스스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줄 필요도 있다. 일례로 한 네티즌은 구글의 인터넷 지도(google earth)를 토대로 상점을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를 스스로 시작한 사례도 있다. 고객들과 함께 성장하며 과실을 나누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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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참여 활발한 `위키일터` 의사결정ㆍ근무시간도 유연 (한경, 김남국 기자, 2007-03-07 18:03)
 
위키노믹스의 핵심 메시지는 외부의 아이디어와 자원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 내부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활용하고 조직 문화를 개선하는 데에도 위키노믹스는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긱 스쿼드처럼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위키 일터'(wiki workplace)를 만들면 내부 아이디어와 자원, 지식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키노믹스를 회사 내부에 적용하면 하부 직원으로 새로운 사업 모델이나 아이디어가 생산되는 보텀업(bottom-up) 혁신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위키 일터를 만들려면 무엇보다 팀 혹은 조직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엄격한 위계질서에 기반한 조직이나 팀을 구성한다. 하지만 인터넷의 경우 통제와 규율이 전혀 작동하지 않지만 위키피디아나 유튜브에서는 수천명,혹은 수백만명이 참여하는 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기업들도 유연성이 높고 투명하게 운영하며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보장하는 다양한 형태의 팀을 만들 필요가 있다.
 
위키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근무시간도 재검토해야 한다. 일례로 구글 직원들은 근무시간의 20%를 스스로 선택한 프로젝트 수행에 사용할 수 있다. 의사결정 과정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최종 의사결정은 최고경영진이 내리지만 직원들의 광범위한 참여를 보장할 경우 좋은 판단을 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자원 분배 정책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예산에서부터 실험실이나 회의실 사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업의 자원은 경영자의 전략적 판단이나 정치적 요인 등에 의해 분배가 이뤄졌지만 앞으로는 직원들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직원과의 의사소통 방법도 혁신해야 한다. 일반 직장에서 직원들이 메신저나 블로그에 열중하면 해고당할 수도 있지만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조너선 슈워츠 CEO는 블로그를 통해 직원들과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슈워츠 CEO는 "블로그를 통해 대화가 활성화되면서 투명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해졌고 회사의 변화를 촉진하는 성과를 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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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노믹스` 활용 기업 늘어난다…부서간 협력ㆍ매출 확대 효과 (한경, 김남국 기자, 2007-03-13 17:43)
 
인터넷을 통해 대중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위키노믹스'(wikinomics)를 실제 비즈니스에 적용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고 비즈니스위크 인터넷판이 13일 보도했다. 인텔은 내부 개발자와 협력업체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의견을 밝힐 수 있는 사이트인 '인텔피디아'를 운영하는데 1년여 만에 5000페이지 이상의 콘텐츠가 축적됐고 총 웹사이트 접속 건수가 1350만건을 넘어설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또 모토로라와 야후 아마존 구글 노키아 등은 사용자들이 언제라도 내용을 추가 수정할 수 있는 인터넷 프로그램을 사용해 직원 및 협력업체와 고객들 간 협업을 촉진하고 있다. 모토로라의 경우 스마트폰을 출시한 후 Q위키(www.motoqwiki.com)란 사이트를 만들었는데 이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카메라 등 각종 기능 사용법과 단말기 최적화 방법 등을 올려 판매 및 사후 서비스에 큰 도움을 받았다.
 
IBM은 '위키센트럴'이란 웹사이트를 개설해 아이디어와 정보를 교환하도록 했는데 1년여 만에 12만5000명이 사용할 만큼 외형이 커졌다. 또 마이크로소프트도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접속해서 각종 정보를 얻고 협력을 할 수 있는 '비주얼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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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노믹스` 한국 상륙 … 대중의 지혜ㆍ힘으로 경쟁력 높이자 (한경, 김동욱/이호기 기자, 2007-03-15 09:27)
 
'위키노믹스'가 국내에서도 등장하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2005년 말부터 온라인에서 '조선왕조실록' 원문 및 번역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네티즌들의 오류 지적으로 인한 개정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한 달 평균 200여건에 달하는 네티즌의 오류 지적이 있었다. 번역 오류가 수정된 건 지난 2월 말까지 1964건에 이르렀다. 당시까지 제기된 오류 2377건 중 83%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조선왕조실록이 워낙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만큼 단순 오자 지적에서부터 사람 이름을 엉뚱하게 풀이한 것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전문적인 수준까지 다양했다. 국사편찬위원회 임천환 위원은 "전공 학자에서부터 극작가, 조상에 대해 알고 싶은 일반인까지 다양한 계층에서 실록에 대해 관심을 갖고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며 "시간에 쫓겨 급히 번역된 조선왕조실록의 많은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해 일부러 원문과 번역문을 공개했고 일반인들의 조언이 보다 좋은 번역본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추진 중인 '천만상상 오아시스(www.seouloasis.net)'를 통한 시민 제안도 초기 형태의 위키노믹스라고 부를 만하다. 지난 12일까지 6개월간 모두 4701건이 접수됐다. 일회용 이벤트성 제안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시민 불편을 해소해 주고, 경제적 가치가 큰 아이디어들도 적지 않다. 버스 손잡이를 더블유(W)자 모양으로 만들어 출·퇴근 시간대 버스 안에서 동그란 손잡이를 두 명이 동시에 잡아야 하는 불편했던 상황이 개선된 게 대표적인 예다.
   
이 밖에 수년 전부터 도입된 온라인 지식검색 서비스는 이미 자리잡은 지 오래고 각종 파일 공유 서비스도 저작권 위반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지식 확산과 정보 공유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휴대폰이나 노트북 등 주요 정보기술(IT) 제품의 개발과 마케팅에 일반 소비자들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프로슈머 활동도 위키노믹스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서울시 홍보담당관 황보연 과장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제시한 아이디어 중 실현 가능성이 높고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는 사안이 많다"며 "공공기관뿐 아니라 기업들도 이 같은 시스템을 도입하면 기대 이상으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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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기밀이라도 공개해야 성공한다 (서울=연합뉴스, 이봉석 기자, 2007-04-26 10:56)
새 경제 패러다임 다룬 '위키노믹스' 번역ㆍ출간
 
보통 공연장에서는 사진이나 영상의 촬영을 금지한다. 하지만 미국의 랩 그룹 비스티 보이즈는 2004년 콘서트의 다큐멘터리 필름 제작을 팬들에게 맡기기로 결정한다. 인터넷으로 50명의 팬을 모집한 다음 그들에게 비디오카메라를 지급하고 촬영을 맡긴 것이다. 그러자 50가지가 넘는 각도에서 찍은 100시간 분량의 필름이 모였고, 이들 필름을 편집해 '굉장해! 미치겠네, 내가 이걸 찍다니'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완성시켰다. 이 영화의 제작자는 이를 '영화 촬영의 민주화'라고 표현했다.
 
전략 컨설팅 회사 '뉴 패러다임'을 설립해 경영하고 있는 돈 탭스코트와 런던 경제대학원 강사인 앤서니 윌리엄스는 '위키노믹스'(21세기북스ㆍ윤미나 옮김)에서 이런 사례를 들어가며 소수가 주도하는 이코노믹스의 시대가 가고 대규모 협업이 중시되는 '위키노믹스'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주장한다. 대규모 협업의 중요성은 책 제목의 모태가 된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www.wikipedia.org)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저자들은 '협업하지 않으면 망한다'라는 명제를 '거센 폭풍우(Perfect Storm)'라고 표현한다. 조직의 새로운 협업 형태를 추진하는 동력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랫동안 존재해 왔기 때문에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나아가 저작권을 앞세워 MP3 공유 사이트나 개인 사용자를 고소하는 음반사나 수익원이 사라질까 두려워 무료 인터넷 전화회사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앞장서는 이동통신 업체들을 비판한다. '개방과 공유'라는 시대에 흐름에 역행하는 행동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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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우리’는 ‘나’보다 똑똑하다 (경향, 김주현기자, 2007-04-27-15:39:55)
 
국내 인터넷 산업 초창기는 데이터베이스(DB)와의 전쟁이었다. 외국과 달리 제대로 된 DB가 구축되지 않았던 터라 인터넷 서비스업체들은 태생적으로 사용자 중심의 서비스를 선보였다. 이미 만들어진 DB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온라인 장터를 만들어 사용자들이 DB를 만들어가게 한 것이다. 초창기에는 얼리어답터를 중심으로 한 공유와 개방이 이뤄지다 인터넷이 일반화하면서 일반인으로 확대됐다. 다음 카페나 네이버 지식인이 대표적인 서비스다. 쉽게 말해 서구에서 말하는 웹2.0이나 사용자제작콘텐츠(UCC)라는 개념의 정의가 나오기 전에 이미 몸으로 체험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현상이 정의하는 용어내지는 철학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세계 최고의 인터넷 인프라를 갖췄다고 하면서 그에 걸맞은 정신을 키우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것을 서구의 용어를 빌려와 설명하고 있다. 당신들(서구)이 말하는 개념이 바로 우리(한국 인터넷산업)가 이미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도 공감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웹2.0, UCC 등을 가져다 이것과 저것이 비슷하다며 ‘매칭’시키는 데 열중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쏟아진 신개념 인터넷에 대한 책들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이 책 ‘위키노믹스’도 아마 이런 과정을 겪을 것 같다. ‘블루오션’에 열광했던 것처럼 한국의 위키노믹스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위키노믹스는 집단 지성이 변화시키는 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이코노믹스의 시대에는 몇몇 사람, 기업, 국가가 상품을 만들고 정책을 결정하며 고급 지식을 가지고 경제 패러다임을 형성했지만 위키노믹스 시대에는 보통사람들의 집단적인 능력과 천재성, 이른바 집단 지성이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를 이용한 전지구적 협업이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정착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변화에서 한발 떨어졌다는 느낌이다. 네이버 지식인으로 대변되는 우리의 집단 지성은 오락과 놀이에 치중돼 있다. 반면 나라 밖에서는 성장과 혁신의 도구로 활용된다. 인프라만 앞서고 그에 걸맞은 내용의 부재가 불러온 결과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씁쓸함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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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기술 공유하고 대중의 지혜 활용하라 (서울경제, 홍병문 기자, 2007/04/27 16:42)
"대규모 협업 활용하는 기업이 미래 주도"
 
‘문호를 활짝 개방하고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통해 기업 가치를 높여라.’ 지난해 말 미국에서 출간돼 화제를 뿌렸던 돈 탭스콧과 앤서니 윌리엄스의 ‘위키노믹스’는 개방과 공유, 협업을 새 경제 가치로 부각시켰다. 위키노믹스가 내세우는 원칙은 ▦개방성(Being open) ▦동등계층 생산(Peering) ▦공유(Sharing) ▦행동의 세계화(Acting globally) 등 4가지.
 
개방성이란 “경계를 허물고 외부에서 아이디어와 인재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들은 개방적인 기업은 “내부 자원과 능력에만 의존하는 기업보다 훨씬 탁월한 성과를 보인다”고 충고한다. 동등계층 생산은 “공동의 결과물을 생산하기 위해 평등한 커뮤니티에 의존해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방식”을 뜻한다. 공유란 말 그대로 자원과 기술을 함께 나누라는 얘기. 행동의 세계화는 그저 ‘글로벌하게 생각’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말고 ‘글로벌하게 행동’하라는 뜻. “세계 어디에서나 제품을 설계하고 부품을 조달하며 조립과 유통을 담당할 수 있는 전 지구적 생태계를 구축”한 회사가 바로 저자들이 원하는 세계화된 기업이다. 저자들은 또한 그리스 시대 정치와 상업 중심지였던 아고라(agora)를 들먹이며 ‘아이디어고라스(ideagoras)’라는 세계 장터를 적극 활용하라고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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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공유로 경제를 바꾼다 (내일, 오승완 기자, 2007-04-30 오후 2:57:28)
수백만의 정보협업 통해 더 나은 가치 창출
 
백과사전의 문제점을 인터넷이 보완하고 있다. 이른바 ‘지식검색’을 통해 대중들은 자신의 지식을 공유하고 다른 네티즌이 진실과 실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준다. 지식검색은 단편적 지식의 공유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한계다. 하지만 이를 뛰어넘은 것이 바로 위키피디아(wikipedia)이다.
 
기존 웹 2.0 등을 다룬 서적들이 무리하게 기술과 경영을 접목했다면 위키노믹스는 기술의 개념과 서비스의 방식을 다루고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것들에 대한 활용을 이야기 했다는 점이다. 위키피디아가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지식 커뮤니티로 자리 잡았다면 위키노믹스는 위키피디아를 뛰어 넘는 새로운 개념이다.
 
지식커뮤니티처럼 위키노믹스는 수많은 대중이 참여해 기업의 제품 설계와 마케팅에 참여하고 국가의 정책과 외교에 간여한다. 이러한 경제적 활동은 기존의 공급자 중심의 경제 구조를 시장 중심으로 자리 잡게 해줄 수 있다. P&G 레고 BMW GE 보잉 IBM 인텔 아마존 제록스 BBC 베스트바이 등 다국적 기업들은 대규모 협업을 이용한 경영활동을 벌이고 있다. 위키노믹스도 기본적으로 리눅스와 같은 방식이다. 리눅스는 컴퓨터 사용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했다면 위키노믹스는 전 세계의 경제 무대에 있는 공급자와 수요자,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
 
위키노믹스가 신자유주의 체제보다 더 인간적이라는 점은 특정 인재들에 집중된 결정 과정 대신 대규모 협업에 의해 이뤄진다는 점이다. 우리가 A급 인재를 강조하고 있는 사이에 다국적 기업들은 이미 개인의 부족함을 보완할 수 있는 대규모 협업·팀플레이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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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기업이여, 집단지성을 이용하라 (한겨레21 2007년05월03일 제658호, 구둘래 기자)
 
<위키노믹스>(21세기북스 펴냄)가 단어보다도 늦게 한국에 도착했다. 2006년 12월 출간 뒤 5개월 만이니 유례없이 빠른 출판이지만 역시 인터넷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나 보다. 이 속도가 바로 ‘위키노믹스’의 중요한 개념이다. 위키는 하와이어로 ‘빨리’라는 단어다. 그리고 ‘위키백과’의 각 페이지에서 이 단어의 개념을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볼 수 있다. “이 문서는 책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서로의 지식을 모아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갑시다.”
 
이런 대중의 지혜를 모아 이익을 창출한다는 개념은 이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대기업의 이념과 맞지 않다. 대기업들은 이런 동등체제(피어 파이오니어) 협업과 오픈 소스 전략이 신종 사회주의이며 자유 기업과 이윤 추구권에 대한 공격이라고 주장한다. 책의 진가는 여기서 드러난다. 조근조근하게 대기업 역시 ‘위키노믹스’를 활용할 때 성장을 이뤄낼 수 있다고 설득한다.  
 
원래 인터넷이 위키노믹스다. 아무도 소유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사용하며, 누구나 서비스를 추가할 수 있다는 것이 인터넷의 황금률이다. 그런데 불법 다운로드도 여기서 ‘이론’을 건질 수 있지 않을까. 죄책감을 덜어보려고 사용하는 ‘공유’라는 말이 위키노믹스의 기본 개념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기대하지 말라. 책 전체에 뿌려진 단어 ‘혁신’ ‘가치 창조’ ‘부가가치’와 상관없는 것, ‘가치’ 없는 것들은 이 책의 분석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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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아침] 아마추어의 힘 '위키노믹스' (매경, 성철환 논설위원, 2007.05.13 17:17:02)
 
위키노믹스의 핵심 메시지는 내부 인재에만 의존해서는 위험하고 아마추어를 포함한 불특정 다수 외부인을 널리 활용하라는 것이다. 경영 정보를 외부에 적극 개방하고 외부인의 창의와 역량을 조직 내부로 끌어들이는 기업이 웹 2.0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말이다. 위키노믹스라는 말의 유래에서 알 수 있듯 위키피디아는 위키노믹스가 제시하는 성공 요소를 고루 갖춘 대표적인 사례다.  
 
잠자고 있는 '휴면 특허'는 외부 인재 활용의 가치를 느끼게 하는 중요한 지식자산의 하나다. 내부 인재가 찾지 못한 특허 가치를 외부 인력을 활용해 발견할 가능성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물론 외부 인재 활용을 위해 기업이 개방적인 자세를 갖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러나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개방과 참여라는 도도한 시대 흐름은 기업들에게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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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성 광장에 내몰린 과학자들 (한겨레, 정재승 /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2007-06-01 오후 07:14:11) 
정재승의 책으로 만난 과학 /<위키노믹스>
   
과학기술 연구개발 분야에도 ‘웹2.0 시대의 화두’인 집단 지성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제약업계 거물인 미국의 엘리 릴리사는 2001년 아주 독특한 전자상거래 벤처기업 하나를 만들었다. 이노센티브(www.innocentive.com)라는 이름의 이 회사 사이트에 들어가면 기업은 익명으로 답을 필요로 하는 과학기술 문제를 올릴 수 있다. 그리고 이 문제의 해결 방안을 올리는 과학자는 500만원에서 1억원까지 기업으로부터 현금보상을 받게 된다.  
 
이 꿈같은 ‘짝짓기 시스템’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학기술 문제와 이 문제에 대한 전문적인 해결사를 연결해 줌으로써 회사들이 전세계 과학 공동체의 인재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노센티브에는 현재 보잉, 듀폰 등 〈포천〉지 선정 500대 기업 중 35개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노센티브에 등록된 과학자만도 175개국에서 9만여 명에 이른다.  
 
컨설팅 전문가인 〈위키노믹스〉 지은이 돈 탭스코트와 앤서니 윌리엄스는 기업들이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능한 인재를 찾아내 난해한 문제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하는 혁명적인 시장에 주목했다. 그들은 이러한 시장을 ‘이데아고라’(Ideagoras)라고 부른다. 고대 아테네 시민들의 정치 및 상업의 중심지였던 아테네 시민광장 아고라처럼, 지은이는 ‘이데아고라’가 과학기술의 중심이 되리라 믿는다. 이 현대판 아고라는 혁신에 굶주린 회사들을 위해 전세계로부터 아이디어와 발명품, 그리고 과학적인 전문지식을 끌어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가 만든 퇴직 과학기술자의 벤처기업 자문 시스템이 20세기 정부 주도형 방식이라면, 이데아고라는 21세기형 자발적 네트워크 방식의 짝짓기 시스템인 셈이다.  
 
기업에서 제시한 연구과제와 과학자를 연결시켜주는 이 혁명적인 시장을 통해 기업들은 앞으로 내부적으로는 핵심 인재를 키우면서 동시에 외부적으로 보완적인 아이디어를 구할 수 있다. 이제 기업들은 세계가 곧 자신들의 연구개발부서가 될 것이다. 이제 폐쇄적이고 단선적인 회사 안 연구개발 풍토는 이데아고라로 인해 큰 변화를 겪을 것이다. 
 
그러나 야심찬 비전으로 시작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과학자인 나는 조금씩 걱정이 밀려온다. 앞으로 점점 과학자들은 안정적인 연구 터전을 잃고 이데아고라라는 ‘외로운 경쟁의 광장’에 내몰리게 되는 건 아닌지 염려된다. 게다가 과학기술은 이제 너무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어 대기업조차도 더 이상 제품에 관련된 기초분야들을 모두 연구할 수가 없다. 이제 대기업들은 기초과학 연구지원을 줄이고 이데아고라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 하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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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노믹스? 그게 뭐지? (오마이뉴스, 07.05.30 11:00  정민호 (hynews20))
 
위키피디아와 골드코프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돈 탭스코트와 앤서니 윌리엄스의 <위키노믹스>에 따르면 그것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상징이다. 이들은 보통의 사람들이 그 자리를 메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집단적인 능력과 천재성으로 세계를 바꾸는 '위키노믹스'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이다. 위키노믹스의 핵심은 '대규모 협업'이다.
 
<위키노믹스>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 '위키노믹스'의 장점을 알려주고 있다. '개방'하고 '공유'함으로써 상상도 못했던 결과를 얻은 기업이나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 단순히 물건만 사는 고객이 아니라 고객도 공동 혁신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말이 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낙관적인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위키노믹스>도 그것을 지적하고 있다. 대규모 협업으로 생긴 '부'가 누군가에게 편중될 수 있고 그에 따라 다수는 그 순간 소외당할 수 있다는 것 등을 말함으로써 암초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암초가 무서워서 돌아가자는 말은 결코 하지 않는다. 암초의 존재를 알았다면, 그것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을 밝힐 뿐만 아니라 그것을 위한 대응책 또한 알려주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그 말들이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문화도 그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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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노믹스 (대전일보, 변상섭<교육문화체육부 문화팀장>, 2007-07-22 23:33)
  
위키노믹스(Wikinomics)는 대중의 지혜와 지성이 지배하는 경제구조를 말한다. 뛰어난 소수에 의해 좌지우지 됐던 이코노믹스(Economics) 시대와는 상반된 개념이다. 위키노믹스는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wikipedia)와 경제를 뜻하는 이코노믹스를 결합해 만든 신조어다. 전략 컨설팅 회사 ‘뉴 패러다임’의 설립자 돈 탭스코트와 이사 앤서니 윌리엄스가 공동 집필한 책 제목으로 채택되면서 인터넷 인기 검색어가 됐다. 이책은 대중에 의한 협업이 가져오는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책은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의 성공사례를 예로 들어 ‘위키노믹스’의 위력을 설명하고 있다. 위키피디아의 성공은 대중의 집단적인 능력과 전문성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위키노믹스 시대’의 선언인 셈이 됐다. 기업이 성공하고 강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위키노믹스에 맞는 아이디어를 창조해야 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제품 하자를 인터넷에 공론화 시켜 불량률을 줄이고, 마케팅 기법과 시장조사를 네티즌을 활용하는 것이 바로 ‘위키’적인 경영기법이다. 지구촌 불특정 다수를 ‘연구원’으로, 또는 마케팅 조사원으로 활용하는 방법은 위키적 사고이다.
 
정보와 기술을 손안에만 꼭 쥐고 누가 알까 노심초사 하던 과거의 경영 스타일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대중의 ‘대규모 협업’이 미래경제를 주도할 조짐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경제 패러다임은 대중의 관심사항과 흥밋거리를 공유하고 나누는 문화의 개념으로 급격하게 전환되어 가고 있음을 ‘위키노믹스’가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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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이용해 민주주의를 재창조하자.’ (전자신문, 2007-09-13)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위키노믹스의 저자 돈 탭스콧이 베를린에서 열린 웹2.0 콘퍼런스에서 “지금처럼 젊은 세대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역사상 없었다”며 “정부로 하여금 인터넷의 힘을 이용해 민주주의를 재창조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성취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답하며 웹2.0의 참여와 개방, 공유의 문화가 정치와 국제 문제에도 발휘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인터넷을 경험하며 자란 세대는 기존 TV를 보며 자란 우리 세대들과 확연한 차이가 있다”면서 “이들의 참여 열정을 정치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몇 개의 정부들과 거버먼트2.0이란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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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창간 77주년 연속 별책부록] 인터넷에 경영의 미래가 있다 (신동아, 이준기 연세대학교 정보대학원 교수·e비즈니스 전략, 2009-01-05 12:12)
 
어느 날 갑자기 웹2.0, 집단지성, 위키, 소셜 네트워킹, UCC(사용자 제작 콘텐츠), 댓글, 인터넷 카페 같은 용어가 등장했다. ‘변화하는 무언가’를 이르는 용어다. 이 변화는 모두 인터넷과 관련이 있다. 돈 탭스코트와 앤서니 윌리엄스는 ‘위키노믹스’에서 이 용어들을 경제학적 관점으로 분석했다.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대규모 협업시스템이 등장했다고 말한다. 인터넷의 특징은 참여, 공유, 개방이다. 이런 특성은 경영활동에도 영향을 미쳐 마케팅, 생산, 혁신시스템 등 모든 분야에서 이 새로운 사회·경제적 모델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 모델이 갖고 온 변화는 상당하다. 지식은 더 이상 소수에 의해 독점될 수 없게 됐다. 사회 시스템은 과거의 위계질서에서 벗어나 수평적이며 평등한 구조로 재편됐다. 미디어 분야에서는 전문가 집단의 힘이 약해지고 개인 블로거의 영향력이 커졌다. 이 책은 인터넷으로 가능해진 개인 간 ‘소통’이 단순한 교류를 벗어나 사회시스템 자체를 바꾼 점을 생생히 보여줬다는 데 의의가 있다.
 
▼ Abstract  
인터넷을 토대로 한 새로운 협업방식은 위키노믹스(wikinomics)라 불린다. 위키노믹스는 기업을 상당 부분 변화시켰다. 위키노믹스의 특성은 개방성, 동등계층 생산, 공유, 세계적 행동양식 네 가지로 요약된다. 이 원리를 차례로 살펴보겠다.
 
1. 개방성
일반적으로 기업은 폐쇄적이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다른 기업이 모방할 수 없는 자원과 역량을 추구한다. 그리고 그것을 독점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나만의 자원과 역량으로 경쟁우위를 점하려는 것이다. 개방성은 이와 반대 개념이다. 이 책은 경쟁자와 자원 및 역량을 공유하면 더 나은 경쟁우위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개방성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위한 필요조건이라고도 말한다. 이를 위해 기업 정보는 공개돼야 하며 신속히 표준화를 이뤄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업의 투명성은 기업 간 거래비용을 낮추고 기업 내부 결속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2. 동등계층 생산
동등계층은 기존의 계급적·수직적 생산방식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우리는 그동안 무언가를 생산하려면 통제 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리눅스(서로 모르는 전문가들이 인터넷에 모여 도우면서 완성한 새로운 컴퓨터 운영시스템)의 예는 참가자들이 각자의 믿음과 이익에 따라 행동함을 보여준다. 유연한 조직이 더 효과적인 생산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누구나 글을 써서 완성하는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도 이를 뒷받침한다.  
 
3. 공유
공유의 시작은 지적재산권에 대한 도전이다. 모든 지적재산권을 공유하면 아무도 돈과 시간을 들여 새로운 것을 만들려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업은 지적재산권의 독점이 가치 창출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독점보다 공유가 더 나은 가치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4. 세계적 행동양식
세계는 점점 좁아지고 있으나 우리의 기업은 이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세계화는 사고뿐 아니라 행동 변화를 요구한다. 그래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네 가지 원리를 바탕으로 ‘위키노믹스’는 몇 가지 비즈니스 사례를 제시했는데 우선 ‘오픈 소스 코드 프로젝트’와 ‘위키피디아’의 사례를 들었다. 이 둘은 분산된 전문가 집단이 자발적으로 혁신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특성이 있다. 두 번째로 소개하는 모델은 ‘이데아고라’(ideagora)다. 이는 아이디어를 뜻하는 이데아(idea)와 고대 그리스의 시민 집회장인 아고라(agora)가 합쳐진 말이다. 인터넷을 통해 기술, 자원, 인력 등을 사고팔 수 있는 시장을 뜻한다. 세 번째 사례는 프로슈머(prosumer) 모델과 관련이 있다. 이 책은 인터넷을 통해 고객이 신제품을 고안하고 고객끼리 광고를 주고받는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네 번째는 알렉산드리안 모델이다.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모든 지식을 집대성한 곳이었다. ‘위키노믹스’에서 말하는 새로운 알렉산드리안 모델은 웹을 통해 탄생했다. 이 책에서 위키노믹스로 가능해진 지식의 공유가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하고 참여 플랫폼, 전세계 생산시설, 위키일터 등의 모델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 About the author
주 저자인 탭스코트는 IT를 통한 경영혁신 변화에 관심이 많다. 현재 캐나다 토론토대학 겸임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디지털 시대가 가져올 사회·경제적 변화에 깊은 통찰을 보인다. 특히 ‘N 세대’라 불리는 디지털 세대에 관한 연구를 많이 했다. 또 그가 제시한 ‘b-webs’ 모델(생산자, 공급자, 서비스 제공자, 고객 등이 인터넷을 매개로 비즈니스를 하는 다중 기업)은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비즈니스 형태를 절묘하게 모델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 Impact of the book  
언젠가 CEO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조사한 결과, ‘위키노믹스’가 5위에 올랐다는 기사를 봤다. 그보다 상위에 오른 책은 모두 일반 경영 서적이었다. 이를 감안하면 IT를 다룬 이 책이 5위에 뽑힌 사실은 고무적이다. 이 책을 읽은 기업인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았다. 하나같이 “온라인, IT, 사이버스페이스 등이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이라는 데에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초기 웹2.0이라는 개념이 소개됐을 때 교양 차원에서 관심을 기울였는데, ‘위키노믹스’를 읽은 뒤에는 그 개념을 비즈니스에 적용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됐다”는 경영인도 많았다.
 
▼ Impression of the book  
이름이 무엇이건 분명한 것은 인터넷을 통한 협업시스템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기업, 파트너, 고객 간 관계 재정립이 필요해졌다. 이 책은 그 현상을 ‘위키노믹스’라 칭했다. 하지만 아직 이 현상에 적합한 이름을 찾지 못한 모양이다. 책 속 ‘멋진 소제목 후보들’이란 부제에서 15개의 용어를 소개하고 있고, 마지막에서는 “여기에 여러분의 생각을 메모하세요”라는 코너를 따로 둔 걸 보면 말이다. 어쨌든 앞으로 이 현상이 기업 활동, 정부 형태, 국민의 의견수렴 방법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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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에코노미쿠스’ 예견…학계 ‘푸코 르네상스’ (한겨레, 09-07-09)

 

‘호모 에코노미쿠스’ 예견…학계 ‘푸코 르네상스’ (한겨레, 이세영 기자, 2009-07-08 오후 08:28:01)
* 에코노미쿠스 : 기업처럼 경제적 원리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 
 
미셸 푸코(1926~1984)가 돌아왔다. 최신 사조에 목마른 계간지들이 연이어 그의 사상을 재조명하고 있는 가운데, 대중들을 상대로 한 ‘푸코 강좌’도 성업 중이다. 대체 무엇 때문에, 유행에 민감한 한국의 지식시장은 25년전 에이즈로 사망한 이방의 철학자를 다시금 주목하는가. 
 
개인의 인간형 자체를 바꾸는 신자유주의 시스템 통찰력에 ‘생명권력’ 등 후기담론 새 빛 
 
푸코에 관한 최근의 논의들은 계간 <문화과학>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임동근 문화과학 편집위원과 서동진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가 2008년 여름호와 2009년 봄호에 푸코의 ‘통치성’ 개념에 관한 분석글을 잇따라 실었다. 철학아카데미와 다중지성의 정원, 문화사회연구소 같은 강의·연구모임도 지난 겨울부터 푸코 세미나와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출판계는 또 어떤가. 김영사가 최근 지식인마을 총서로 푸코를 다룬 데 이어, 하반기에는 <푸코, 인간의 초상>(폴 벤느, 산책자),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서동진, 돌베개) 등의 연구서와 <미셸 푸코의 파르헤지아>(사계절), <안전, 영토, 인구> <생명정치의 탄생>(난장) 같은 푸코 강의록들이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말 그대로 ‘푸코의 재림’이다.
 
기실 한국에서 푸코의 전성기는 1990년대였다. 마르크스주의가 승하던 80년대 한국에서 푸코는 비주류요 이단자였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를 계기로 <감시와 처벌>(1989년), <성의 역사 1·2·3>(1990년) 같은 대표작들이 잇따라 번역되기는 했지만 90년대 후반 질 들뢰즈, 슬라보예 지젝 같은 재기발랄한 후학들이 무섭게 치고 들어오자, 그 역시 한때의 유행을 선도한 서구 사상가의 한 명으로 지식의 최전선에서 쓸쓸히 퇴역해야 했다.
 
반전은 2000년대 중반 ‘생명권력’ ‘생명정치’와 관련된 푸코의 후기 담론들이 뒤늦게 주목받으면서 찾아왔다. 여기엔 권력의 새로운 지배구조와 그에 대한 저항 가능성을 생명권력·생명정치 개념을 통해 해명한 네그리·하트의 <제국>과, 생명정치라는 틀에서 서양 정치구조를 해부한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연작의 영향이 컸다. 
2009-07-08 오후 08:28:01 
» 푸코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들. 사진 왼쪽부터 ‘사회를 보호해야한다’ ‘안전 영토 인구’ ‘생명정치의 탄생’
 
최근의 ‘푸코 르네상스’는 생명정치와 함께 후기 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통치성’이란 주제와 관련된다. 푸코가 통치성이란 개념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은 1970년대말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했던 강의들이다. 여기서 푸코는 18세기를 전후해 유럽에서 등장한 새로운 권력관계(통치)의 특성을 지칭하기 위해 이 개념을 사용하는데, 그것의 핵심은 “행동방식 혹은 행실에 대한 통솔”이다.
 
통치는 법이나 규범을 통해 특정 행위를 ‘금지’하거나, 감시·처벌·훈육을 통해 개인의 신체를 ‘규율’하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가장이 가족 구성원의 건강과 가계의 부를 관리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유사하게, 근대 국가의 통치는 생명을 가진 주민 전체(인구)에게 일정한 자유를 허용하면서 그들의 건강과 안전, 복지를 증진하기 위해 개인적·집단적 수준의 행동과 실천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런 통치를 위한 기술적 수단이 ‘폴리스’로 불리는 행정관리 기구들이며, 여기에 수반되는 지식이 ‘경제적 인간’을 대상으로 삼는 정치경제학(고전경제학)이라는 게 푸코의 분석이다.
 
푸코가 말하는 이 새로운 통치성의 다른 이름이 ‘자유주의’다. 주목할 만한 점은 푸코가 1978~79년 강의록인 <생명정치의 탄생>에서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신자유주의’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푸코에게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 통치성의 또다른 형태다. 자유주의가 ‘인구에 대한 통치방식’을 고안하고 실천했다면, 신자유주의는 개인의 ‘인간형 자체’를 변형하는 데 관심을 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푸코가 볼 때 신자유주의 통치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노동자는 신체 뿐 아니라 자신의 모든 행위를 ‘자본’으로 다루는 기업가의 위치를 부여받는다. 이른바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탄생이다. 이런 푸코의 분석에서 도출되는 교훈은 무엇인가.
 
“푸코는 신자유주의를 좁은 의미의 이데올로기나, 특정한 역사적 시점부터 조성된 불가역적 현실로 간주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신자유주의는 신고전파 경제학이나 합리적 선택론 같은 학술 담론뿐 아니라, 일상의 자기계발 담론이나 노동자의 책임과 권한을 강화함으로써 생산적 주체를 형성하려는 경영담론까지 포괄하는, 사회를 통치하고 삶을 조직하는 방식이란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얘기다.”(서동진 교수) 
 
‘계급성’ 넘어 ‘통치성’
‘생명권력’ ‘생명정치’ 담은 푸코 강의록 8권 출간
프랑스 라발 등 사회과학 전 분야로 확대·적용
 
 
“최근 사회과학 논문 제목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통치성’이란 단어”라는 말이 있을 만큼 푸코의 ‘통치성’ 개념은 서구 인문사회과학계의 열쇳말로 자리잡았다. 푸코는 1970년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에 취임한 뒤 1984년 사망할 때까지 이곳에서 강의했다. ‘푸코 르네상스’의 진원지는 그의 제자들이 푸코가 남긴 메모와 녹취 테이프를 편집해 1997년부터 출간하고 있는 강의록들이다.
 
14권으로 예정된 푸코의 강의록은 지금까지 8권이 출간됐는데,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이 ‘자유주의 3부작’으로 불리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1975~76년 강의록), <안전, 영토, 인구>(1977~78년), <생명정치의 탄생>(1978~79년)이다. 여기서 푸코는 ‘생명권력’과 ‘통치성’이란 주제에 매진하면서,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신자유주의 시스템에 대한 예견적 통찰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말년의 푸코가 천착했던 통치성이란 주제에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니콜라스 로즈, 피터 밀러, 콜린 고든 등 영국의 사회과학자들이었다. 이들은 <푸코 효과>(1991년)라는 책에서 푸코의 통치성 이론을 처음 소개한 데 이어, 영국 사회과학 저널인 <경제와 사회>를 통해 통치성 이론을 경제·사회·정치·사회심리학·행정학·생명공학 등의 분야로 확대했다.
 
최근엔 프랑스 사회학자 크리스티안 라발의 작업이 돋보인다. 그는 푸코의 통치성 이론과 신자유주의 분석에서 영감을 얻어 신자유주의의 기원을 지성사적으로 분석한 <경제적 인간-신자유주의의 뿌리에 관하여>를 2007년 출간했고, 올해는 철학자 피에르 다르도와 함께 신자유주의 사회의 형성과 구조를 분석한 <새로운 세계이성-신자유주의 사회에 관한 시론>을 냈다.
 
라발은 신자유주의를 좁은 의미의 경제학 담론이나 이데올로기로 간주하는 통념을 비판한다. 신자유주의는 경제만이 아니라 사회·정치·행정·교육·문화 등 자본주의 사회의 전 분야를 총체적으로 조직하는 ‘새로운 합리성’이며, 인간을 경쟁을 통해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경제적 동물로 호명하는 ‘새로운 주체 형성의 원리’라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확산되던 ‘신자유주의 종언론’이 최근 세계경제의 완만한 회복세와 더불어 빠르게 위축되고 있는 현실은 ‘푸코 학파’의 신자유주의 분석에 담긴 의미가 녹록지 않음을 실감케 한다.
 
도움말 서동진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진태원 고려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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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인민주권>(샤츠슈나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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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을 위한 민주주의론…‘절반의 인민주권’ 번역 출간 (경향, 김재중기자, 2008-11-09 17:17:55)
 
현대 민주주의론에 관한 고전으로 평가받는 <절반의 인민주권(The Semisovereign People)>이 번역 출간됐다. 첫 출간 후 48년이나 지났지만 지금도 대학의 정당론 강의 시간에 흔히 인용되는 책이다. 저자인 E E 샤츠슈나이더(1892~1971)는 미국정치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그의 이름을 딴 학술상도 있다.
 
1942년 출간된 <정당정부>의 첫 장에서 “민주주의를 만든 것은 정당이며, 정당 없는 민주주의는 생각할 수도 없다”고 단언했던 샤츠슈나이더는 이 책에서도 민주주의에서 대중이 권력을 강화하는 최선의 방법이 갈등을 공적 영역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정당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상층계급, 다시 말해 기업이든 시장이든 갈등의 현장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개인이나 집단은 갈등을 사적 영역으로 국한시키려 한다. 자신들이 강자인 영역에서 원하는 대로 ‘조용히’ 처리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약자들은 당연히 갈등의 범위가 사회 전체적으로 확대되기를 원한다. 세력을 역전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갈등을 공적 영역으로 전달·확대하는 핵심 기구가 바로 정당이다. 정당이 갈등의 대안을 조직하지 못하고 공직자 선출을 위한 도구에 머무를 때 시민은 절반의 주권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저자는 "갈등의 사회화"를 위해서는 정당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당은 다수의 동원에 적합한 특수한 형태의 정치조직으로 갈등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며 가장 큰 규모의 대중을 동원함으로써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좋은 정치, 좋은 정당이 기능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면, 인민주권은 억압돼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민주주의 정치체제라도 정당 정치가 사회 갈등을 폭넓게 조직하고, 또 이를 통합하지 못한다면 그때의 인민주권은 사실상 절반밖에 실현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이는 ‘밥 먹으면 배부르다’는 식의 당연한 주장처럼 보인다. 하지만 “안전한 먹거리를 원한다”며 수십만의 군중이 거리로 뛰쳐나왔을 때나 지금도 계속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보듯 갈등의 현장에서 괴리된 채 퇴행을 거듭하고 있는 한국의 정당 체제를 감안하면 귓등으로 흘려보낼 수 없는 울림이 담겨 있다. 43년 8월 뉴욕 할렘가에서 발생한 흑인 병사와 백인 경찰관 사이의 싸움이 폭동으로 확대되는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이 책은 복잡한 이론과 추상적인 논리와는 거리가 멀다. 보통사람을 위한 민주주의론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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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동력은 갈등? (대학신문, 2008년 11월 15일 (토) 21:05:07 강진규 기자)
절반의 인민주권
E.E.샤츠슈나이더 지음┃현재호, 박수영 옮김┃후마니타스┃244쪽┃1만5천원

  
싸움은 군중을 쉽게 끌어들인다. 할렘가의 싸움, 파업, 노동자들의 투쟁은 물론 의회의 논쟁, 선거운동, 청문회 등은 모두 싸움이 갖는 자극적인 속성을 일정 부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정치에서의 ‘갈등’은 보편적인 언어로 여겨질 정도다. 정당론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평가받는 피터 마이어가 ‘현대 정당론의 중심 이론을 대표하는 책’으로 꼽은 엘머 에릭 샤츠슈나이더의 『절반의 인민주권』이 지난 3일(월) 출간됐다.
 
저자는 사회의 갈등을 ‘민주주의의 동력’으로 평가한다. 현대사회가 비록 수많은 인구로 구성된 거대한 국민국가라고 할지라도 갈등을 통해 폭넓은 사회 구성원들이 통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샤츠슈나이더는 이런 측면을 고려해 “‘갈등의 사회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상층계급이 갈등을 국지화해 강자 집단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상황에서 인민이 주권을 갖고 갈등을 공적영역으로 이끌어낼 때 절반이 아닌 완전한 인민주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샤츠슈나이더가 갈등을 공적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주체로 제안하는 것이 바로 정당이다. 샤츠슈나이더는 “정당 없는 민주주의는 생각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정당은 갈등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위계화해 가장 큰 규모의 대중을 동원함으로써 선거에서 승리하려는 조직이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갈등이 공적영역에서 논의될 때 갈등의 사회화가 이뤄진다.
 
책을 공역한 현재호 교수(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는 “샤츠슈나이더의 관심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실현가능한 ‘현실적 민주주의’의 정의를 찾는 데 있었다”며 “인민의 동의에 기반한 정당정치가 바로 현실적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한나라당 부설 정책연구기관인 여의도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최대 정당 한나라당의 10월 지지율은 30%에 불과하다. 새 정부 출범 직후 45.9%가 넘는 ‘인민’의 지지를 받을 정도로 기대를 모았던 집권여당의 지지율이 15% 가량 하락한 것은 ‘인민’이 동의할 만한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샤츠슈나이더가 제안한 ‘인민의 동의에 기반한 정당정치’를 위해 한국의 정당들이 해결해야할 문제는 산적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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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동기와 거시행동』(토마스 셸링, 2006)

 1978년 초판을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번역한 책을 헌책방에서 사놓고 보지 못하고 있었는데, 2006년 개정판을 번역한 책이 나왔다. 말을 들어보니 초판 번역본은 그리 번역이 잘 되어 있지 못해서 읽기 어렵다고 하는데, 이번 개정판 번역본은 괜찮으려나 모르겠다. 게임이론을 이해하는데 이 책이 하나의 길잡이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서평을 낸 곳이 다 맘에 안드는 신문사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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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택한 길은 왜 항상 막힐까? (문화, 최영창기자, 2009-07-03)
미시동기와 거시행동 / 토머스 셸링 지음, 이한중 옮김 / 21세기북스 
 
“강연장의 청중은 왜 앞자리에 앉지 않을까.” “왜 반대편 차선에서 일어난 사고가 교통체증을 유발할까.” 각종 강연회장에 가 보면 대다수 사람들이 앞자리에 앉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심지어 대학교 강의실이나 직장에서 사내 교육을 받을 때도 되도록이면 앞자리를 피하려 한다. 운전자들이 반대편 차선에서 일어난 사고 광경을 조금이라도 쳐다보기 위해 속도를 줄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저마다 단 10초간 사고 광경을 보기 위해 속도를 늦춘 결과 교통지체로 10분을 허비하게 됐다면, 결국 9분50초는 호기심에 지불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것은 잘한 일일까.
 
‘게임이론의 대가’로 지난 2005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저자는 책에서 누구나 살다가 한두 번 이상 겪어봤을 사례들에 대해 설명을 시도한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 행정부에서 마셜플랜(유럽부흥계획)의 입안과 실행에 참여했던 저자는 예일대와 하버드대 교수를 거쳐 현재 메릴랜드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자는 ‘1945년 이후 발간된 책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저서’ 중 하나로 선정된 ‘갈등의 전략’(1960)을 통해 제시한 게임이론으로 경제학자와 정치학자는 물론, 미 정부의 대외안보 전략 수립과 실행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저자에 따르면 게임이론은 ‘두 가지 또는 그 이상의 가능성 중에서 더 나은 선택이 있을 때 개인들의 합리적인 선택은 다른 사람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점을 연구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1978년 초판이 나온 뒤 지난 2006년 개정된 책은 ‘갈등의 전략’과 함께 저자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저서다. 선구적인 연구성과를 담아 1970년대 판 ‘괴짜경제학’으로도 불린다. 본격적인 게임이론서는 아니지만 이 책의 주제가 모든 행동 시스템의 특징으로 상호의존적 결정, 즉 사람들은 서로 영향을 끼치며 서로에게 적응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게임이론서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청중이 강연장 앞자리를 비워놓은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모두가 되도록이면 뒷자리에 앉고 싶어 한다거나 모두가 다른 누군가의 뒤에, 즉 강당 맨 뒤가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 뒤에 앉고 싶어 하는 경우가 있다. 또 혼자 떨어져 앉아 있다가 눈에 띄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결혼식에서처럼 모두가 다른 청중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저자가 예를 든 가설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우리의 일상은 하나의 메커니즘으로 관통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오히려 사람들은 서로 영향을 끼치며 서로에게 적응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책은 이처럼 사람들 각각의 사소한 의도와 행동이 다른 사람들의 행동 및 환경과 결합해 예상치 않은 결과를 낳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저자가 자녀들과 함께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팀의 경기를 보러 갔을 때 발견한 ‘악의 없는(의도하지 않은) 선호’의 결과물인 인종이나 계층 분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일부러 드러나게 차별을 한 것도 아닌데 저자 자신도 모르게 피부색과 억양, 행동, 옷차림 등이 비슷한 사람들이 꽉 찬 곳에 앉아 있었다는 것. 책은 교통 혼잡, 인구 밀도, 커피의 희소성, 다수표의 규모 등 현실에서는 흔히 벌어지지만 우리가 미처 그 이유를 생각하지 못한 현상들에 대한 기본적인 분석체계와 모델들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의 게임이론에서 개개인의 작은 동기와 선택은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커다란 현상으로 발전한다. 이 점에서 카오스이론의 토대가 된 ‘나비효과’와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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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사례로 풀어낸 경제학 (서울경제, 장선화 기자, 2009/07/03 15:59:03)
■ 미시동기와 거시행동/토머스 셸링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교통체증이 심각한 구간의 길을 확장하면 신속하게 통과할 수 있지만 다시 병목구간을 만나면 기존의 병목구간 행렬과 겹쳐져 더 복잡해진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보존법칙(Principal of Conservation)’이라고 한다. 병목현상을 한 곳만 해결하면 교통문제를 해결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음을 말한다.
 
2005년 노벨경제학을 수상한 토머스 셸링은 우리 주변의 낯익은 일상을 사례로 들어 경제학의 복잡한 이론과 법칙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게임이론의 대가’로 불리는 그는 정통 경제학을 넘어 사회학ㆍ심리학ㆍ정치학 등을 분석대상으로 삼아 경제학의 외연을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게임이론은 두 가지 또는 그 이상의 가능성 중에서 더 나은 선택이 있을 때 개인들의 합리적인 선택은 다른 사람들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것을 연구하는 것인데 책은 상호의존적 결정이라는 차원에서 게임 이론서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교통사고가 나면 반대편 도로에 교통체증이 생기는 이유, 전년에 가격이 폭락한 농산물이 해가 바뀌면 품귀현상으로 가격이 폭등하는 이유 등 현실에서 흔히 벌어지는 현상을 속 시원하게 설명한다. 책은 사람들 각각의 사소한 의도와 행동이 다른 사람의 행동과 환경과 결합해 예상치 않은 결과를 낳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1978년 처음 나온 후 2006년 개정판이 출간된 책에는 낡은 사례가 간혹 발견되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 무관해 보이는 듯한 개인적 선택들이 눈덩이 처럼 모여 의도하지 않은 사회적 결과를 낳게 되는 현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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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중고차 시장에 `레몬`만 몰리는 이유는… (한경, 최성환 대한생명경제연구원 상무, 2009-07-02 17:24)
미시동기와 거시행동 토머스 셸링 지음/ 이한중 옮김/ 21세기북스/ 320쪽/ 1만6000원
 
최근 들어 미국 경제의 고민거리가 하나 더 늘어났다. 빌려서라도 소비를 하던 미국인들이 갑자기 저축 모드로 돌아서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미국 가계의 저축률은 6.9%로 15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실업률이 10%에 육박하고 경기회복 시기를 점치기 어려운 와중에 개인들 입장으로는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고민거리인가? 바로 '저축의 역설' 현상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너도나도 저축을 늘릴 경우 경제 전체의 소비가 줄어들면서 기업 매출이 감소하고 그에 따라 생산과 고용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는 개인들의 소득 감소로 이어지고 결국 소비와 저축까지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특히 최근처럼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몇 달 사이에 저축률이 치솟을 경우 이른바 소비불황이 발생하면서 경기회복이 늦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말 그대로 미시적 동기와 거시적 행동 결과가 전혀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다.
 
이처럼 미시적 동기와 거시적 행동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는 사례를 우리 주변에서 찾아내 정리한 책 《미시동기와 거시행동(Micromotives and Macrobehavior)》이 나왔다. 30년 전에 출간돼 많은 찬사를 받아오다 이번에 새롭게 개정된 것이다. 저자는 게임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2005년)을 받은 토머스 셸링.게임이론의 대가이면서도 굳이 복잡한 게임이나 산식을 들먹이지 않고 독자의 흥미와 이해를 이끌어낸다.
 
당신이 강연장으로 들어서고 있다고 하자.당신은 십중팔구 중간쯤 어디에 앉고자 할 것이다. 그런데 좀 늦게 도착했더니 중간자리는 물론 뒷자리까지 가득 차 있다. 반면 앞자리는 몇 줄이나 덩그러니 비어 있다. 그럼에도 앞으로 가서 앉기 보다는 머뭇거리면서 빈자리를 찾고 있지 않을까? 최악의 경우 앞자리는 비어 있고 뒤에는 서서 듣는 경우가 발생할 것이다. 개개인의 미시적 선택이 강연장 전체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거시적 결과를 낳고 만 것이다. 이때 만약 주최 측이 먼저 오는 사람들을 앞에서부터 앉게 한다면 이 같은 사태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백인 손님들이 앉아 있는 식당에서 흑인 손님들이 한두 테이블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흑인들이 많아진다 싶은 순간 백인들이 서둘러 자리를 뜨기 시작하고 들어서던 백인들도 발길을 돌린다. 거주구역의 이주에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티핑(tipping)'을 적용한 사례다. 어떤 동네에 소수인종 몇 사람이 들어가면 이전에 동질적인 인구 집단을 구성하던 사람들 중 일부가 떠나거나 떠날 조짐을 보인다는 것이다.
 
동호인 클럽이나 공공해변,공원 등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볼 수 있다. 수년 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말콤 글래드웰의 《티핑 포인트》도 셸링의 이 같은 아이디어를 첨단 유행과 전위예술,상품의 대박 등에 적용한 것이다.
 
이외에도 셸링은 반대편 차선에서 일어난 사고가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까닭,중고차 시장에 레몬(겉만 멀쩡하고 속은 썩은 차)만 몰리는 이유,핵무기 개발 경쟁이 치열했으면서도 히로시마 이후 60년 동안 핵무기가 사용되지 않은 배경 등을 사례로 들고 있다.
 
셸링의 폭넓은 시각과 번뜩이는 분석력이 경제 현상은 물론 군비 · 핵 경쟁,범죄,테러,인종 또는 성 · 나이 · 소득에 의한 분리,아이의 성별 선택과 같은 군사 · 외교 · 사회 · 심리 분야를 넘나들고 있다. 정책입안자와 기업의 임직원,자영업자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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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최장집) / 『실질적 민주주의』(최형익) / 『한국민주주의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최장집)


촛불집회의 의의와 한계를 묻는다 (대학신문, 2008년 09월 20일 (토) 20:43:29 서종갑 기자)
한국 민주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최장집 지음┃생각의 나무┃160쪽┃6천8백원
  
‘촛불집회는 한국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것인가?’ 촛불집회가 한국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 많은 논의가 오가고 있다. 민주화 운동시절과 구별되는 ‘자발적 결사체’인 촛불의 정치참여가 한국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쉽게 예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 민주주의 이론의 권위자가 입을 열었다.
 
지난 16일(화) 최장집 명예교수(고려대ㆍ정경학부)가 쓴 『한국 민주주의 무엇이 문제인가』가 발간됐다. 최 교수는 그의 저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성격을 ‘보수적 민주화’로 규정한 바 있다. 보수적 민주화는 그간의 저서에서 최 교수가 한국 민주화를 ‘위로부터의 혁명’ 또는 ‘운동에 의한 민주화’로 언급한 것의 연장선상에 있는 개념이다. 이번 책은 ‘보수적 민주화’된 한국사회의 시민의식과 민주주의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촛불집회 등 현재 한국사회에서 큰 이슈가 됐던 현상들은 시민의식이 ‘민중적 민주주의관’에서 ‘시민적 민주주의관’으로 이행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형성된 민중적 민주주의관이란 국민이 국가를 자신과 대립되는 존재로 인식하고 직접적 투쟁을 통해서만 자신들의 권리를 얻을 수 있다고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미국 독립선언서나 프랑스 인권선언문에 나타난 시민적 민주주의관은 국민이 사회구성원 전체의 협력을 바탕으로 각자의 권익을 보장받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가치관이다. 최 교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각자의 권리를 요구하는 수많은 시위들이 민중적 민주주의관에서 비롯된 것임을 설파하며, “한국에는 시민 대신 민중의 연장선상에 있는 ‘시민의 허울을 쓴 민중’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어 그는 촛불집회가 한국 민주주의에서 갖는 의미와 함께 한계를 지적하고 한국 민주주의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최 교수는 촛불집회를 “민주주의가 실패해 생긴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는 “강한 정당과 강한 대통령이 만나 압도적인 힘으로 국회와 사법부를 허약하게 만들어 정상적인 삼권분립의 관계를 무너뜨렸다”며 민주주의 제도에서 힘의 불균형은 필연적으로 국민이 반발할 결정들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이어 최 교수는 촛불집회를 정당 등 민주주의 제도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서 그 자리를 대신한 ‘구원투수’였다고 표현하면서도 촛불집회와 같은 직접민주주의의 형식으로는 현실 민주주의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앞서 언급한 시민적 민주주의관을 언급하며 “시민과 정당의 상호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한 대의제 이외의 방법으로는 시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조율할 수도, 실제 정책에 반영할 수도 없다”며 대의제를 통한 간접민주주의가 한국사회가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주장했다. 저자는 미국 정치학자 샤츠쉬나이더의 “정당 없는 민주주의는 상상할 수 없다”는 말을 빌려 “이 말은 그 어느 나라 민주주의에서보다 현재 한국정치에 더 큰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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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교수 "촛불시위, 긍정적이지만 한계" (울산=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2008-11-05 20:32)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5일 촛불시위에서 나타난 시민들의 자발성과 힘에 대해서는 긍정하면서도 '운동에 의한 민주주의'로서 촛불은 분명한 한계를 갖는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이날 울산대학교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와 시민포럼 '대안과 실천'이 주최한 초청강연에서 "정책 내용과 결정 과정에서 나타난 권위주의적 요소에 대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저항했다는 점에서 촛불시위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최 교수는 "촛불시위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결정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대에 한정돼 그 본질인 한미FTA나 신자유주의적 성장정책으로 이슈가 확대되는 것을 막았다"며 "촛불이 남긴 결과가 과연 무엇인지 진지하게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운동에 의한 반대는 단일한 목표를 성취하는 데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그 이후 성취할 목표들을 세밀하게 따지고 조율하기는 어렵다"며 "한국 민주주의에서 '운동의 경험'은 곧 '승리의 경험'이었지만 이는 모든 문제 해결 과정에서 늘 운동에 의존하게 하는 패턴이 되기도 한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중요한 것은 좋은 정당을 만들고 약한 정당을 강화해 '반대'가 아닌 '통치'를 추구하는 것"이라며 예의 '정당 민주주의론'을 재차 강조한 최 교수는 "운동의 모든 힘들은 선거와 정당, 리더십 등 민주주의가 부여하는 제도로 전환돼야 하며 일상적인 시민 정치활동의 형태도 운동이 아닌 정당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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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 IMF에서 촛불까지 (한겨레, 류이근 기자, 2009-03-20 오후 05:49:25)
〈실질적 민주주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어떤 민주주의인가?” ‘한국 민주주의 이론과 정치변동’이란 부제가 붙은 <실질적 민주주의>는 이 두 가지 물음을 품어왔던 이들에게 훌륭한 참고서가 될 법하다. 글쓴이 최형익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부)는 이 물음들을 둘러싼 논쟁의 시발점으로 이 책이 자리매김되기를 희망한다. 그는 “시민사회론과 민주적 시장경제론 등 민주 개혁을 표방하는 두 민주주의 이론이 이룩한 일정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이후 한국 사회에서 비민주적 혹은 반민주적 결과가 초래된 민주화의 역설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글쓴이는 “한국 정당정치론의 재구성 및 절차적 민주주의의 중요성”에 천착한 한국 정치학계의 거두 최장집 고려대 정치학 교수에 대해 비판적일 뿐 아니라, 시민사회론과 민주적 시장경제론 등 기존 한국 민주주의 이론들에도 비판적으로 접근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민주주의와 정치경제학과 한-미 에프티에이, 공화국민주주의의 위기,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와 촛불의 정치적 의미를 다룬 장들은 국가와 시장, 민주주의와 경제의 접합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을 제공한다. 이 책은 위기의 시대에 ‘기로에 선 한국 민주주의’가 어디로 향할 것인지를 놓고 함의하는 바가 크다. 책은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에 진보적·민중적 해석을 가하면서도 동시에 현실주의라는 일견 상반된 목표를 결합시켜 보겠다”는 글쓴이의 욕심이 담겨 있다. 최형익 지음/ 한신대학교출판부·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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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학인문강좌 4-최장집] “갈등은 민주주의의 뿌리 어디에나, 늘 있는 것” (내일, 김성배 기자, 2009-07-24 오후 12:06:45)
한국민주주의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
최장집/ 돌베개/ 1만3000원

 
미디어 관련법이 국회에서 통과하는 장면. 이를 본 국민들은 국회 내에서의 갈등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민주주의의 한 과정을 볼 것인가, 아니면 자질없는 국회로 볼 것인가. 이 문제는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데 좋은 본보기다. 그렇다면 한국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일까. 돌베개에서 펴낸 석학 인문강좌 네 번째 최장집편에서 저자는 여섯 가지 주제를 제시했다.
 
그 중 가장 먼저 제시한 것은 갈등 문제다. 민주주의를 이해하는데 갈등과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왜 갈등인가’에서 갈등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갈등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문제는 이에 답하는 사람들이 가진 정치적 관점이나 이념적 지향의 차이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척도일 수 있다. 권력은 상반되는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과 세력들이 갈등을 표출하고, 이에 대한 경쟁과 타협, 중재와 통제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갈등의 문제가 없으면 권력의 문제도 없고, 권력의 문제가 없으면 정치의 문제가 존재할 이유는 없다. 그만큼 갈등을 이해하는 문제는 정치학의 핵심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갈등에 관한 또 하나의 역사적 사례가 있다. 로마 공화정 수립과 이를 통해 확립된 제도를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롭다. 로마 공화정 사례에서 보듯, 혼합 정체는 행정 수반인 콘술(Consul) 2인과 함께 귀족원, 호민관으로 불리는 세 중심 기구가 각각 왕, 귀족, 평민이라는 사회를 위계적으로 구성하는 세력들을 대표하면서 이들 제도의 의존해 정치를 관장하는 체제다.
 
한국 사회에서 공화정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까닭은 한국 헌법의 구조 또한 이러한 공화정의 균형 정체 모델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한국 헌법의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규정하면서 공화주의와의 연계를 천명한다.
 
그렇다면 공화정의 원리와 사회세력간 갈등은 어떤 관계를 가질까. 아테네 민주주의와 같이 순수한 인민 스스로의 통치체제는 아니라 하더라도, 로마의 정치체제가 민중적 요소를 아우르는 귀족정으로 변화되고, 나아가 공화정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했던 가장 중요한 요소는 평민의 대의기구라 할 호민관제도의 창설이었다. 기원전 510년경 민중의 대표기구인 호민관제도가 어떻게 창설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이후 이 제도가 공화정으로 발전한 이유는 다름아닌 갈등이었다. 귀족과 평민과의 갈등이 로마 정치를 움직이는 핵심적 동학이었고, 귀족들의 자의적 행동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기능이 제도화된 것이다.
 
정리해보면 한국 민주주의는 갈등을 토대로 쌓여간다. 하지만 갈등도 사회를 온전하게 발전시키지는 못한다. 저자는 이를 ‘나눌 수 있는 갈등’과 ‘나눌 수 없는 갈등’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갈등은 도처에 존재하며 항구적이다. 정치의 본질은 갈등의 표출과 제도화를 통한 갈등 해소에 있다. 민주주의는 사회균열로부터 발생하는 갈등을 억압하기보다는 이를 민주적인 방법으로 표출하고 해소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하는 정치체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 민주주의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갈등’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의 국가-시민사회 관계의 변화, 신자유주의와 경제문제, 운동론적 관점에서만 보는 민주주의, 오늘에서 바라보는 광주항쟁의 의미, 17대 대선 결과를 해석하는 방법 등 나머지 요건들이 있다. 최장집 교수는 현 한국 민주주의를 정확하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이 같은 요건을 모두 분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최 교수가 2008년 1월과 2월 사이 네 차례에 걸쳐 했던 강의 내용에 이 모든 것이 담겨있다. 이 책은 그 강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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