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좌파란 무엇인가 (한겨레, 김규항)

 

[야!한국사회] 좌파란 무엇인가 (한겨레,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2009-06-24 오후 07:42:47)
 
확실히 좌파적 스타일은 대중적 소구력을 잃었다. 내가 스무 살 무렵 좌파운동에 입문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그 선배들에게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와 현실의 무게를 혼자 짊어진 듯한 비장한 표정, 한마디 한마디가 천근만근인 지사적인 말투, 500m 전방에서도 식별되는 무채색의 옷차림. 그러나 그런 모습은 오늘 대중들에게 부담스럽기만 하다. 좌파들은 ‘유연한 좌파’ ‘쿨한 좌파’ ‘상식적인 좌파’가 되어야 한다는 충고를 듣는다.
 
좌파의 일원으로서 나는 그 충고를 달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그런 충고가 잃어버린 대중적 소구력을 회복하기 위한 스타일의 변화를 넘어 좌파의 정체성을 흐트러뜨리는 일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한다. 안 그래도 지난 10년 동안 극우파들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는 자유주의 우파 세력을 좌파라고 지칭해대면서(“좌파에게 잃어버린 10년”이란다, 빌어먹을!) 좌파의 정체성은 한껏 모호해진 상태다.
 
게다가 이명박 정권의 탄생으로 극우파들이 귀환하면서 좌파는 자유주의 우파가 맡았어야 할 싸움, 즉 이명박과의 싸움에 몰두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좌파의 정체성은 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현실에서도 변할 수 없는 좌파의 출발점, 즉 계급에서 그 답을 얻을 수 있다. 자유주의 우파는 먹고살 만한 양식 있는 시민들을 대변하지만, 좌파는 시민이라 불리면서도 시민으로서 인간적 사회적 권리를 확보하지 못한 대다수 인민들을 대변한다.
 
좌파가 이명박과의 싸움은 제쳐두고 앵무새처럼 ‘신자유주의 반대’만 외쳐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이명박과 싸우되 함께 싸우는 자유주의 우파 역시 신자유주의 세력의 일부라는 걸 똑똑히 기억하자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극우 분파와 싸운답시고 신자유주의 자유주의 분파의 2중대가 되어 그들의 정치에 이용당하진 말자는 것이다. 자유주의 우파에게 이명박과 싸움은 목적이지만 좌파에게 이명박과 싸움은 기본일 뿐이라는 걸 분별하자는 것이다.
 
그런 분별을 잃을 때 좌파는 ‘좌파 당적을 가진 자유주의자’로 추락한다. 좌파를 견제하는 제도 미디어는 반가운 얼굴로 그들을 ‘대표적인 좌파 논객’이라 호명하며, 대중성에 목마른 진보정당은 그들을 상전처럼 받들어 모신다. 그들을 따라 입당한 사람들은 아예 ‘계급을 폐기하자’고 외친다.(계급이 디지털 사회에선 걸맞지 않은 개념이라는 소리가 유행이지만, 신자유주의의 본질이 ‘계급 지배의 강화’라는 것은 오늘 국제성을 가진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그래서 좌파의 정체성은 더욱 심각하게 훼손되고 좌파가 대변해야 할 인민들의 현실은 좀더 말끔하게 배제된다.
 
예나 지금이나 좌파의 존재적 모순은 대개의 좌파들이 자신이 대변하는 계급 자체가 아니라는 것, 그 계급의 인민들의 현실 속에서 실제로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좌파는 늘 그 모순에 긴장해야 한다. 먹고사는 일을 고민하지 않는 좌파 인텔리의 관념 속에서 그 현실은 잠시 미루어지거나 생략될 수 있다. 싸우다 지치면 잠시 휴가를 다녀올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 그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인민들에게 그 현실은 미루어질 수도 생략될 수도 없다. 그들의 현실엔 휴가가 없다. 
 
‘유연한 좌파’ ‘쿨한 좌파’ ‘상식적인 좌파’ 다 좌파에겐 약이 되는 말들이다. 그러나 그런 말들이 좌파를 더이상 좌파가 아니게 하는 것이라면 그 말들은 좌파에게 독일 뿐이다. 오늘 이 ‘개념 없는’ 세상에서 여전히 자신을 좌파라 말하는 사람들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좌파란 무엇인가? 대체 나는 누구인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불가사리와 거미>|오리 브라프먼ㆍ로드 벡스트롬 지음

 

당신의 조직은 거미입니까…불가사리입니까… (한경, 이동현 가톨릭대 교수, 2009-04-16 18:05)
불가사리와 거미|오리 브라프먼ㆍ로드 벡스트롬 지음|김현숙·김정수 옮김|리더스북|280쪽|1만3000원 
 
정도 차이는 있지만 GM,듀폰,AT&T,필립스 등 20세기 거대 기업들은 결국 베버가 제안한 관료제의 틀에서 움직였고,이러한 관료제 조직의 가장 큰 특징은 중앙집권화와 정교한 통제 모델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산업 사회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정보화 혹은 지식경제 사회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지금까지 정립된 경영 관행에 대한 대대적인 반성이 시작되었다. 
 
《불가사리와 거미》는 이러한 21세기 조직 혁신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들의 주장은 단순하면서도 매우 강렬하다. 20세기형 조직을 거미에 비유한다면,21세기형 조직은 불가사리에 비유할 수 있다. 머리가 잘리면 목숨을 잃는 거미와 달리 불가사리는 다리가 잘리면 그것이 다시 분화하여 새로운 개체로 성장하는 특징을 가졌다.
 
저자들은 불가사리처럼 분권화된 개체가 자생력을 얻어 성장하는 조직 모델을 불가사리 조직이라고 명명했다. 따라서 불가사리 조직의 키워드는 분권화와 자율성이다. 이러한 불가사리 조직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책에 소개한 예들도 흥미롭다. 16세기 무적의 스페인 군대는 남미의 아즈텍 제국과 잉카 제국을 멸망시켰다.
 
그러나 이들은 원시인처럼 보였던 아파치족에게 허망하게 패배했다. 아파치족이 아즈텍족이나 잉카족에게 없는 비밀 무기를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들이 최강 스페인 군대에 대항해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아파치 부족의 조직 방식 덕분이었다. 이들은 철저하게 분권화된 조직이었다. 아파치족은 소수의 최고 권력자도,중앙 지휘본부도,수도도 없었다. 이는 역설적으로 언제,어느 곳에서나 결정이 내려질 수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예컨대 스페인군들은 마을을 습격하고 지도자를 없애는 전략을 시도했지만,마을이나 지도자 몇 명이 없어진다고 해서 아파치족 전체가 무너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지도자가 금세 등장하고 부족이 재건되면서 유연하게 대처했던 것이다.
 
물론 분권화된 조직이라고 해서 규율이 전혀 없거나 혼란스러운 무정부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4장에 소개되는 것처럼 불가사리 조직을 움직이는 구조와 원칙들이 존재한다. 불가사리 조직에는 지배자와 같은 리더는 없어도 촉매자 역할을 하는 리더가 존재한다. 또한 불가사리 조직에는 세부적인 규칙과 통제가 없어도 구성원들에게 동기 부여를 하는 핵심 이념은 공유된다.
 
사실 오래 전부터 이 책의 주장과 흡사한 권한 위양,자율성,벽 없는 조직 등이 혁신의 화두가 되어 왔다. 다만 문제는 기존의 경영자들이 이러한 조직 혁신을 두려워한다는 점이다. 분권화된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조직의 상층부에 집중되어 있는 권한을 재분배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최고경영진들이 가진 기득권과 권력을 일부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혁신을 주저하는 것이다.
 
불가사리 조직이 웹 2.0으로 상징되는 인터넷 기업에만 해당하는 원리라고 폄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들은 도요타,GE,애플의 예를 들어 분권화의 원리는 모든 조직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고 오해는 말자. 저자들이 극단적인 분권화만을 주장하는 급진주의자들은 아닌 것 같다. 이베이나 IBM처럼 불가사리와 거미의 장점을 결합한 혼합형 조직도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BOOK] `불가사리 조직`이 기업을 바꾼다 (디지털타임스, 이지성 기자, 2009-04-30 21:17)
 
머리가 잘리면 목숨을 잃는 거미와 달리 불가사리는 다리가 잘리면 잘린 부분에 새로운 다리가 생긴다. 링크키아와 같은 변종 불가사리는 잘린 조각이 새로운 불가사리로 복제되기도 한다. 이는 불가사리에는 몸을 통제하는 머리가 없는 대신 각 다리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각 부분의 기능이 분권화 되어있는 만큼 떨어져 나간 쪽과 남은 쪽 모두가 조직을 쉽게 재생산할 수 있다.
 
2001년 미국 9ㆍ11테러의 배후로 오사마 빈 라덴이 지목되자 세계는 적잖은 충격에 빠졌다. 줄곧 테러 용의자로 지목을 받아온 그였지만 누구도 그런 일을 계획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동굴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게 정보당국의 평가였다. 그러나 그가 지휘하는 알카에다는 각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력한 조직으로 거듭났다.
 
우리 사회는 오래 전부터 중앙집권적인 위계질서를 구축해왔다. 산업 시대까지는 이것이 가장 효율적인 의사결정 구조였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은 예상하지 못했던 위협에 직면했을 때 조직 자체의 경직성으로 내리막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큰 만큼 21세기형 산업조직에서는 지양해야 할 모델이 됐다.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전한 도요타는 하나의 생산라인에서 다양한 차종을 생산하면서 환경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반면 단일라인 단일생산을 고수한 업체들은 경기의 흐름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도요타가 GM, 포드 등 기존 자동차 업계의 거인을 물리치고 최고의 자리에 등극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불가사리 조직'은 각 부분이 고유의 권한을 갖고 자생적으로 성장하는 조직 모델이다. 인터넷 서비스업체인 유튜브와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가 새로운 환경에서 앞서나갈 수 있었던 것도 분권화된 조직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동굴에 있던 오사마 빈 라덴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도 중앙집권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조직을 운영했기에 가능했다. 21세기가 원하는 조직은 자율성과 창조적인 힘을 지닌 불가사리 조직이라는 게 이 책의 핵심이다.
 
불가사리 조직의 경쟁력은 정부, 기업뿐만 아니라 비영리단체, 심지어 테러집단의 조직에서도 유효하다. 책은 알콜중독방지회 같은 작은 모임에서부터 이베이, 위키피디아, 아마존 등의 인터넷 기업과 여성인권운동, 노예해방운동 등을 이끈 다양한 시민단체, 9ㆍ11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 등 전 분야를 살피고 불가사리 조직이 승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꼼꼼히 분석한다.
 
------------------------------------
[책과 삶]냅스터·알카에다…분권형이 성공비결 (경향,한윤정기자ㅣ경향신문, 2009-04-17-17:41:10)
 
거미는 머리가 잘리면 목숨을 잃는다. 그러나 불가사리는 다리가 잘려도 그것이 다시 분화해 새로운 개체로 성장한다. 두 동물의 특성에 빗대 인터넷이 기반이 된 21세기 조직 운영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경영서적이다. 2006년 원서가 출간됐을 때 ‘월스트리트 저널’ ‘워싱턴 포스트’ 등 유수한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다뤄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
 
이 책은 냅스터, 알카에다, 스카이프, 크레이그리스트 등의 성공비결을 분석한다. 대학 신입생 숀 패닝은 기숙사 방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면서 사람들이 음악 파일을 서로 교환할 수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이것이 음반업계에 결정적 타격을 가한 냅스터이다. 알카에다 역시 중앙집권적인 미국 정부를 무력화시킨 대표적인 불가사리 조직이다. 오사마 빈 라덴은 전통적 리더의 역할을 포기한 덕분에 자발적 조직을 많이 거느릴 수 있었다. 전화 회사의 중앙서버 관리체제를 전복한 인터넷 전화업체 스카이프,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직거래하는 크레이그리스트 역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이들의 성공에는 공통점이 있다. 특정인이 조직을 담당하지 않으며 본부가 따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수뇌부가 타격을 입어도 조직은 살아남는다. 역할과 책임이 유연하고 조직 구성 역시 유동적이다. 각 운영단위는 스스로 자금을 조달하고 운영한다. 특정 기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조직에서 일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원한다면 각 부서가 의사소통을 한다. 이 같은 불가사리 조직은 다섯 개의 다리를 가질 때 가장 효과적인데 그것은 사람들이 상호작용하는 작은 그룹인 서클, 서클을 만들고 뒤로 사라지는 촉매자, 분권화된 조직을 결합시키는 접착제인 이념, 인터넷을 통한 소통 이전의 기존 네트워크, 그리고 이념을 실행하는 사람인 투사이다.
 
저자들은 5년간의 연구를 거쳐 정부, 기업, 비영리단체의 생생하고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면서 “예부터 조직경영의 상식은 중앙집권형이었으나 이제 중앙집권형과 분권형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면 살아남기 어렵다”고 충고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나눔의 얼굴 (한겨레, 김규항)

 

[야!한국사회] 나눔의 얼굴 (한겨레, 김규항〈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2009-04-22 오후 09:50:39)
 
우리는 대개 나눔을 나와 내 식구가 먹고 남는 걸로 불쌍한 사람을 돕는 적선이나 자선이라 생각한다. 그 생각은 다시 ‘불쌍한 사람을 돕기 위해선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로 환원된다. 많은 부모들은 제 아이가 부자가 되길 바라는 욕망을 ‘부자가 되어야 불쌍한 사람을 많이 도울 수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물론 적선이나 자선이 금세 굶어 죽을 사람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그가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나눔은 고통에 처한 사람에 대한 연민에서 시작하지만, 연민에만 그칠 때 나눔은 사람을 ‘불쌍한 사람’과 그 불쌍한 사람을 돕는 ‘훌륭한 사람’으로 역할을 나누어서 벌이는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쇼에 머물게 된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 쇼에 참여함으로써 그런 고통스러운 현실에 자신의 안온한 삶이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심리적 불편을 씻어낸다. 그리고 부자들은 제 재산의 극히 일부를 내놓고 온 세상의 칭송을 받으며 세금을 감면받는다.
 
나눔은 고통에 처한 사람에 대한 연민에, 그 고통스러운 현실을 만들어내는 불의한 사회에 대한 정당한 분노가 더해질 때 비로소 그 최소한의 꼴을 갖춘다. 나눔은 어떤 사람은 쉬엄쉬엄 일하면서도 천상의 안락을 누리고 어떤 사람은 종일 뼈 빠지게 일하고도 먹고살기조차 어려운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나눔은 누구든 제 능력과 개성에 맞추어 정직하게 일하는 것만으로 사람으로서 품위와 자존심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현실에 닿아 있다. 나눔은 적선이나 자선이 아니라, 적선과 자선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나눔은 세상을 ‘나눔의 체제’로 변화시키는 일이다.
 
나눔은 단지 공정한 사회에 머물지 않는다. 나눔은 궁극적으로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노력이자 행동이다. 나눔은 자연도 자원도 돈도 식량도 집도 땅도 하느님의 것임을 깨닫는 것이며, 그래서 누구에게도 사적으로 소유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또 그렇게 할 때 모두 함께 풍요롭고 만족할 수 있음을 우리 삶의 이치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결국 나눔은 세상의 그 어떤 변혁운동보다 더 근본주의적이며 급진적인 운동이다. 오병이어 에피소드는 우리에게 바로 그 사실을 장엄한 풍경으로 보여준다.
 
당신에게 나눔의 얼굴은 어떻게 그려지는가? 나눔을 설파하는 사람들, 보기만 해도 가슴이 저리는 굶고 병든 아이의 얼굴을 실은 홍보물을 당신에게 내밀며 그 아이들이 당신에게 꼬박꼬박 감사의 엽서를 보낼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불쌍한 사람’과 ‘훌륭한 사람’의 역할 분담은 바뀌지 않을 것임을 보장하는 하고많은 나눔 단체들의 얼굴처럼 부드럽고 온화하기만 한가?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그 얼굴에 나눔의 또 다른 얼굴, 혁명보다 더 사납고 성난 얼굴을 보태는 게 좋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사빠띠스따의 진화> 미할리스 멘티니스

 

‘사파티스타 운동’ 기존시각을 뒤집다 (한겨레, 김순배 기자, 2009-04-03 오후 08:41:48)
<사빠띠스따의 진화> 미할리스 멘티니스 지음·서창현 옮김/갈무리·1만9800원
 
1994년 1월1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된 이날,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에서 원주민들은 떨쳐 일어났다.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은 이날 멕시코 정부와 신자유주의에 경도된 자본주의에 전쟁을 선포했다. 그리고 외친다. “이제는 충분하다.”
 
사파티스타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래, 원주민들에게 가해진 수백년에 걸친 억압과 착취를 거부했다. 그리고 토지와 정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선언했다. 혁명이 박제가 된 시대, 이들의 ‘창조적 반란’은 혁명을 꿈꾸는 이들에게 새 영감을 불어넣었다. 이들은 반자본주의 투쟁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이들이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며 ‘봉기’한 지 15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휩쓰는 지금, 사파티스타들은 누구였고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파티스타는 라틴아메리카 민족해방 운동을 계승한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유형의 정치를 예고하는 것인가? 구조적 불평등과 극심한 빈곤이 낳은 결과물인가, 동일성 정치의 표현인가? 혁명가들인가, 개량주의자들인가? 포스트모던 게릴라들인가, 아니면 무장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인가? 이들은 급진적 정치의 불꽃을 점화시켰지만, 급진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사빠띠스따의 진화>는 ‘최초의 탈근대 혁명’이라 불리는 사파티스타 운동에 대한 기존의 평가에 비판적으로 접근하며, 새로운 이론화를 시도한다. 원제는 ‘사파티스타 반란과 급진정치에 대한 시사점’이다. 검은 스키마스크를 쓰고 파이프 담배를 문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부사령관 마르코스에 대한 낭만적 접근과는 차원이 다른 정치철학적 논의를 전개한다.
 
“사파티스타의 ‘망각에 맞서는 전쟁’의 전개를 역사적으로 설명”하고, “급진적 정치운동과 활동들의 출현을 이해하기 위한 사회·역사적 작업 틀을 개발”하려 시도한다. 지은이에게 “우리의 투쟁은 민족 없는, 인종 없는 사회주의를 위한 것이며, 우리는 혁명을 위한 욕망으로 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사건’, 상황주의자들의 ‘상황 창조’, 카스토리아디스의 ‘자율 기획’, 안토니오 네그리의 ‘제헌권력’ 등의 개념이 분석과 이론화에 동원된다.
 
지은이는 사파티스타들이 “자율 기획과 그들이 만들어낸 사건적 상황 모두에 적합한 충실한 주체들이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 새로운 돌파구가 이 운동의 과거 실패를 뛰어넘어 멕시코 안에 강력한 반자본주의 전선을 건설할지, 자율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가 말한 것처럼 멕시코 노동계급의 다양한 부문들을 통합할지 여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문제로 남아 있다.”
 
혁명적 민주주의 담론이 원주민 공동체에 스며들도록 해준 원주민 문화와 언어적 요소들에 대해 고찰할 필요성도 제기한다. 지은이가 2001년 사파티스타 자율지대를 아홉 달 동안 방문하면서 작성했던 현장노트가 녹아들어 있다. 사파티스타 운동에 대한 새로운 이론화를 통해 지은이는 희망한다. “더 많은 저항, 더 많은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단절들, 더 많은 혁명적 경로들이 열리기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슬라보예 지젝 - <시차적 관점>,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
지젝의 주장 “러시아 혁명을 복권하라” (한겨레, 고명섭 기자, 2009-04-03 오후 05:57:44)
‘변증법적 유물론’ 퇴출과 연관지어
실패한 혁명의 새로운 길 찾아보기
〈시차적 관점〉슬라보예 지젝 지음·김서영 옮김/마티·3만7000원
 
 
<시차적 관점>은 지은이 슬라보예 지젝이 스스로 ‘대작’이라고 부른 책이다. 한국어판으로 840쪽에 이르는 이 최신작(2006)은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까다로운 주체> <부정적인 것인 것과 함께 머물기>에 이은 네 번째 주저의 자리에 놓일 만하다. 그는 이 책에서 앞에 쓴 모든 저작의 문제의식을 종합해 변혁의 새로운 출구를 열어 보려고 한다. 출판사에서 붙인 한국어판 부제는 ‘현대 철학이 처한 교착 상태를 돌파하려는 지젝의 도전’인데, 현대 철학의 최전선에서 그가 찾는 것은 철학적 돌파구라는 형식을 빌린 정치적 돌파구다.
 
이 책은 지젝의 다른 어떤 책보다 까다로운 책이다. 이 책에 대한 추천글에서 테리 이글턴은 그 까다로움과 관련해 “지젝의 글이 가끔 이해가 안 된다면, 이는 그의 생각이 복잡하기 때문이지 결코 잘난 척해서가 아니다”고 말한다. 그런 까다로움은 일차로 이 책의 비체계적 서술에 있다. 지젝은 형식상 3부로 나누어 철학적·과학적·정치적 분석을 하고 있지만, 내용은 서로 겹치고 섞인다. 지젝은 철학·종교·문학·영화·예술, 그리고 온갖 일화와 사례를 동원해 자신의 생각을 풀어 나간다. 그리하여 이 책은 수많은 이야기의 접합으로 이루어진 철학적 콜라주가 된다. 그는 모든 통념·관습·도그마를 분쇄하고자 하고, 더 나아가 도그마에 도전하는 생각들 자체의 맹점을 지적하고 깨뜨리고자 한다. 지젝의 발본적이고 급진적인 사유는 책의 전편에 지뢰처럼 매복해 있다.
 
이 책의 출발점은 가라타니 고진의 2001년 저작 <트랜스크리틱-칸트와 마르크스 넘어서기>다. 지젝은 가라타니의 책에서 ‘시차적 관점’이라는 근본 주제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시차적 관점>의 서문에서 지젝은 이렇게 쓴다. “가라타니 고진은 <트랜스크리틱>에서 ‘시차적 관점’의 중요한 잠재력에 대해 주장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가라타니의 기여는 여기서 그친다. 지젝은 가라타니가 제시한 ‘시차적 관점’이라는 근본 발상만 수용할 뿐 그의 나머지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가라타니는 그의 책에서 헤겔을 거부하고 칸트를 사유의 거점으로 삼는데, 지젝은 가라타니와는 반대로 칸트를 기각하고 헤겔을 승인한다. 헤겔주의자답게 그는 헤겔의 사유를 갱신하고 진척시킴으로써 오늘날의 정치적 난국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그런 노력의 한 양상이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한 재사유다. 지젝은 변증법적 유물론이 패퇴해 철학사의 한 장으로 축소돼 버린 것이야말로 전망 부재의 오늘 현실을 보여 주는 철학적 사례로 이해한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패배는 마르크스주의 혁명, 더 구체적으로는 1917년 러시아혁명의 궁극적 실패와 같은 선상에 있는 사건이다. 러시아혁명이 실패로 끝남으로써 변증법적 유물론도 함께 매장된 것이다. 지젝은 변증법적 유물론이 퇴출당하고 난 뒤 좌파적 사유에 남은 것이 ‘부정 변증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이 ‘부정 변증법’은 진정한 혁명을 사고할 수 없다는 치명적 한계를 안고 있다. “부정 변증법은 폭발적인 부정성 및 ‘저항’과 ‘전복’에 관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형태들과 사랑에 빠졌으나, 정작 그 자신이 기존의 (현실) 질서에 기생하게 되는 일만은 극복할 수 없다.” 부정 변증법만으로는 현실의 극복과 재건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바로 이런 이유로 지젝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복권을 주장하는데, 그것은 다시 러시아 혁명의 긍정적 핵심을 복권시키는 일과 연결된다.
 
그렇다고 해서 지젝이 과거로 되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의 발상은 러시아 혁명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한 상태에서 그 근본적 이유를 따져 보고 거기서부터 다시 새로운 길을 찾는 데 있다. 그런 사유를 요약한 말이 ‘시차적 관점’이다. 여기서 ‘시차’(視差, parallax)란 천문학에서 쓰이는 용어를 빌려온 것인바, 관찰자의 위치가 바뀜에 따라 별자리가 달라지는 것을 가리킨다. 동일한 대상이라고 하더라도 주체가 어떤 위치에서 보는냐에 따라 그 대상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는 것이 바로 시차이며, 이런 근본적인 차이를 낳는 관점이 ‘시차적 관점’이다.
 
지젝이 사례로 제시하는 것이 러시아 10월혁명 때 함께했던 혁명가 레닌과 모더니즘 예술가들의 경우다. 화가 말레비치나 시인 마야콥스키 같은 전위예술가들은 혁명 초기에 열광적으로 레닌의 혁명을 찬양했다. 그러나 이 예술가들은 1920년대 이후, 특히 스탈린 시대에 모두 제거되거나 좌절하고 말았다. 이것은 스탈린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스탈린에 앞서 레닌과 전위예술가들 사이에 있었던 근본적인 ‘시차적 관점’의 결과라는 게 지젝의 주장이다. 레닌이 좋아한 것은 고전 예술이었다. 그는 결코 전위예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전위예술가들은 낭만적인 혁명 열정은 좋아했지만, 그 뒤의 고통스러운 시간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동일한 사태에 대한 이 다른 시차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가 혁명을 다시 사유하는 데 관건적인 문제라고 지젝은 말한다. 이 책은 그런 생각에 대한 아주 긴 설명이다. 
     
-------------------------
정치·경제, 두 겹의 싸움이 필요하다 (한겨레21 2009.04.17 제756호, 로쟈 인터넷 서평꾼)
[출판] 일면적 슬로건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슬라보예 지젝의 <시차적 관점>
 
아스트라 테일러의 다큐멘터리 영화 <지젝!>(2005)에서 “철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자 슬라보예 지젝은 “철학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다시 정의하는 것입니다. 철학은 아주 겸손한 학문이에요. 철학은 단지 ‘네가 이것이 참이라고 할 때 의미하는 게 뭐냐?’라는 식으로 질문할 따름이지요. 그런 겸손함이 역설적이지만 철학의 위대성입니다”라고 답한다. 지젝 스스로 자신의 대표작의 하나로 꼽은 <시차적 관점>(마티 펴냄)은 철학에 대한 그의 정의에 충실한 책이다. 그는 지금까지 제기해온 문제를 해결하지도, 새로 더하지도 않으며 다만 ‘시차’(視差·parallax)라는 개념을 빌려서 재정의하며 재구성한다.
 
변증법의 전복적 핵심을 간파하는 열쇠
‘시차’란 과학 용어로 동일한 대상을 서로 다른 곳에서 보았을 때 서로 다른 위치나 형상으로 보이는 것을 말한다. 가장 단순하게는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을 각각 한쪽씩 가리고 보았을 때 나타나는 약간의 차이가 시차다. 서로 다른 시각(관점)이 만들어내는 차이를 시차라고 하면, 이것은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난다. 양자물리학에서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 신경생물학에서 의식현상과 회백질 더미, 철학에서 존재와 존재자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 정신분석학에서 욕망과 충동 사이의 간극, 그리고 성적 삽입의 대상이면서 출산의 기관이기도 한 질(바기나)의 시차 등등.
 
지젝은 이 책에서 두 층위 사이에 어떠한 공통 언어나 기반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변증법적으로 매개·지양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율배반’을 시차로 재정의한다. 그리고 철학과 과학, 정치라는 세 가지 주요 양식에 나타는 시차적 간극들에 개념적 질서를 부여하고자 한다. 이 작업은 궁극적으로 변증법 유물론의 철학을 재건하기 위한 시도로 간주된다. 그가 보기에 시차적 간극이라는 개념은 변증법적 사유의 장애물이 아니라 그 전복적인 핵심을 간파하도록 해주는 열쇠다.
 
지젝은 ‘시차적 관점’이라는 아이디어를 가라타니 고진의 <트랜스크리틱>(2001)에서 얻어오지만, 칸트주의를 이론적 전거로 삼는 가라타니와 달리 헤겔적 사유에 접목시킨다. 그가 보기에 헤겔의 근본적인 교훈은 존재론의 핵심 문제가 ‘현실’이 아니라 ‘현상’이라고 본 데 있다. 흥미롭게도 지젝이 들고 있는 다양한 사례 가운데는 분단 한국의 상징적 장소도 포함돼 있다. 바로 비무장지대 남쪽에 위치한 통일전망대다. 이 ‘극장’ 같은 건물에는 ‘스크린’ 같은 창이 설치돼 있고, 북한의 ‘현실’을 전시 가옥들을 통해서 바라볼 수 있다. 아무도 살지 않지만 저녁에는 동시에 불이 켜지는 집들이다. 여기서 현실은 틀에 맞춰진 외양(현상) 그 자체다. 아르헨티나의 사례도 흥미롭다. 2001년 12월 반정부 시위 때, 특히 시위 군중의 표적이 됐던 경제부 장관 카발로는 그를 조롱하기 위해 사람들이 쓰던 자신의 가면을 쓰고 집무실에서 탈출했다. 우리 자신이 스스로에게 최상의 가면이라는 정신분석적 교훈을 직접 실천한 것이다.
 
이러한 사례가 보여주는 순수한 차이는 한 요소와 다른 요소 간의 차이가 아니라 한 요소와 그 자체와의 차이다. 여기서 시차는 서로 대칭적인 두 관점이 아니다. 하나의 관점이 있을 때 그것을 빠져나가는 무언가가 있으며 두 번째 관점은 그 첫 번째 관점에서 볼 수 없던 무언가를 채우게 된다. 예컨대 지젝은 마르크스의 시차를 경제와 정치 사이의 시차라고 본다. 정치와 경제의 관계는 궁극적으로 ‘두 옆얼굴이냐 꽃병이냐’라는 시각적 패러독스와 유사하다. 즉, 정치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면 경제는 고작 ‘재화의 공급’으로 격하되고, 경제에 초점을 맞추면 정치는 한갓 기술 관료주의의 영역으로 축소된다.
 
레닌을 반복해야 하는 이유
<지젝이 만난 레닌>(교양인 펴냄)에서 지적한 대로, 레닌의 위대한 점은 이 두 수준을 함께 사고할 수 있는 개념적 장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했다는 데 있다. ‘레닌을 반복하라!’는 그의 요구는 거기서 비롯된다. 경제가 핵심이지만 그 개입은 경제적이 아니라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거나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라는 일면적 슬로건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시차적 관점은 두 겹의 싸움을 요구한다.
 
----------------------------------
[책과 삶]자본주의 시대, 다시 혁명을 말하다 (서영찬기자ㅣ경향신문, 2009-09-04 17:22:50)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슬라보예 지젝 | 그린비 | 박정수 옮김. 3만5000원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승리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징후는 무엇일까. 그것은 최근 20~30년 동안 자본주의라는 용어 자체가 ‘실질적’으로 흔적을 감췄다는 사실이다. 몇몇 고루한 마르크스주의자를 빼곤 자본주의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이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반(反)세계화 혹은 반신자유주의라는 용어에 바통을 넘겨준 형국이다. 반세계화는 제국주의를 겨눈다. 노동착취 같은 자본주의 매커니즘을 타도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제국 미국’을 적으로 삼는 경향이 농후하다.
 
저자는 이러한 반세계화를 자본주의의 교묘한 기획으로 파악한다. 자본주의가 자신에게 돌아올 칼끝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전략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좌파로 분류되는 철학자 상당수도 자본주의 전략의 유혹에 굴복하고 있다는 사실이 저자의 해부로 드러난다. 자크 랑시에르와 안토니오 네그리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 개념을 비웃는 것은 쉽다. 하지만 오늘날의 지배적인 경향은 ‘후쿠야마적’이다”라는 지젝의 주장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자유민주주의적 자본주의는 유토피아 논의를 압도하는 듯 보인다. 민주주의와 평등에 대한 논의가 자본주의라는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는 현실에서 지젝은 ‘혁명’이라는 카드를 꺼낸다. 혁명은 우리가 잃어버린 ‘대의(Cause)’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책은 자본주의의 실질적 비판이 여전히 필요하며 혁명의 중요성 또한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저자는 ‘디카페인화된 혁명’ 즉 ‘혁명 없는 혁명’을 제시하는 어설픈 좌파나 자유주의자의 논리적 무기력함을 예리하게 간파한다. 지젝은 마르크스 사상과 로베스피에르의 ‘폭력적 혁명’을 옹호한다. 폭력은 유혈 충돌이나 물리적 테러 같은 의미가 아니다. 그가 말하는 폭력은 단번에 비민주적인 것을 제압할 수 있는 방식에 다름아니다. 바스티유 감옥으로 돌진하듯이 말이다.
 
자유주의적 관용보다 적대감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그런 맥락에서 읽힌다. 책은 자유민주주의의 대안에 대한 모색이다. 동시에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자신이 서있는 자리, 즉 계급적 시선을 거두지 말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
[BOOK 깊이읽기] ‘청바지 입은 좌파’ 지젝이 본 ‘자본주의 너머’ (중앙, 조우석(문화평론가), 2009.09.05 01:31)  
  
무엇보다 그는 좌파다. 이 책에서도 “보수주의자들이 보기에 끔찍한 악몽의 (좌파) 호러 쇼”로 보여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태연히 던진다. 현실사회주의 몰락 20년인 지금 그는 둘 중 하나다. 시대착오적 몽상가이거나, 뭔가 철학적 배경을 가진 희귀종이거나…. 여러모로 보건대 뒤쪽이 맞다. 
   
헤겔·마르크스에서 프랑크푸르트학파(비판철학), 포스트모더니즘 까지 철학적 배경을 깔고 있기 때문에 그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회변혁에 경도됐던 80년대 한국사회의 냄새가 난다고 해도 ‘구호꾼 386’과는 다르다. 700여쪽 분량의 논문모음집인 이 책은 ‘지젝 읽기 종합세트’인데, 종래 단행본에서 했던 주장이 좀 더 쉬운 형태로 반복되고 있다. 글은 책 제목대로 ‘인간해방의 기획’이라는 대의(cause)에 대한 강력 옹호로 모아진다.

그는 탈 이데올로기를 주창하는 다니엘 벨이나 프랜시스 후쿠야마와 대척점에 선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체제이자 기본 조건이라는 전제부터 반대하기 때문이다. 도구적 이성 비판에 그치는 프랑크프루트학파나 칼 포퍼, 레비나스 등과도 다르다. 그들은 자본주의를 일단 수용했으며, 지젝의 표현대로 ‘전복적 날카로움’을 잃어버렸다. 반면 그는 ‘자본주의 너머’에 대한 구상을 총체적인 대의 복원이라고 본다.

헤겔이 구현했던 의미·진리의 총체성을 21세기에 감히 구현하려 한다는 점에서 ‘철학 사무라이’가 분명한 지젝은 당연히 ‘부드러운 디카페인 혁명’을 반대한다. 프롤레타리아독재가 없는 혁명을 주창하는 가짜혁명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영성(靈性)회복이나 생활혁명을 외치는 것은 좀상스러운 ‘뉴에이지 운동’에도 코웃음을 친다. 대신 ‘세상이 망하더라도 진리를 구하라’라고 했던 프랑스혁명의 조타수, 로베스피에르를 찬양한다.

그런 지젝을 어찌 봐야 할까? 서구 지성사의 적자(嫡子)인 정통 철학자인 것은 분명하다. 19세기 신념이 때론 불편하기도 하지만, 동유럽 출신으로 동서의 구분을 뛰어넘은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사족. 지구촌 60억 인구 모두가 같은 생각, 같은 삶의 지평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래서 ‘왕 돈키호테 지젝’을 읽는 일은 일단 즐겁다. 그러나 TV예능프로의 단골 자막대로 굳이 그를 따라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
가난한 이들의 해방은 어떻게 이룰까 (한겨레, 고명섭 기자, 2009-09-18 오후 07:27:53)
자본주의 한계 극복엔 혁명적 단결뿐
‘전체주의’ 비난에 변혁 피해선 안돼
‘빈민 민주주의’ 차베스의 실험 주목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최근작이다. 2008년에 나온 이 책은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는’ 지젝의 급진적 견해가 다른 어떤 책에서보다 과격하고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머리말에서 지젝은 말한다. “이 책은 일말의 거리낌도 없이 보편적 해방을 위한 투쟁이라는 메시아적 관점에 선다.”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 주장을 비웃지만, 지젝이 보기에, 후쿠야마의 테제는 지금의 세계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다. 진보·좌파가 저마다 대안을 이야기하지만, 그 대안이란 것들이 근본적 변혁을 포기한 채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지젝은 이 ‘상식의 한계선’을 돌파하려면 ‘신념의 도약’, 다시 말해 그 상식의 지평에서는 광기로밖에 보이지 않는 ‘잃어버린 대의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젝이 이 책에서 굳건한 연대의식을 보이는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발언은 지젝의 관점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우리는 대중적 규율을 필요로 한다. 더 나아가 ‘아무것도 갖지 못한 자들은 오직 자신의 규율만 가지고 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가난한 사람들, 아무런 재정적·군사적 수단도, 아무런 권력도 갖지 못한 사람들, 그들이 지닌 것은 규율과 단결력뿐이다.” 지젝은 이런 ‘스파르타적’ 요소야말로 변혁의 거점이라고 말한다. “스파르타의 군사적 규율 안에는 해방적인 고갱이가 있다. 그래서 트로츠키가 ‘전시공산주의’의 어려운 시기에 소비에트연합을 ‘프롤레타리아 스파르타’라고 부른 것도 이상할 게 없다.”
 
이런 주장에 당장 ‘전체주의·근본주의 아니냐’는 힐난이 날아들 것이 분명하다. 지젝은 이런 비난 앞에서 물러나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전체주의’라는 비난이 두려워 근본적 변혁을 회피해서는 진정한 해방의 지평을 열 수 없다는 것이 지젝의 신념이다. 그런 신념에 입각해서 그는 스스로 ‘악몽의 호러쇼’라고 부르는 이름들을 차례로 불러낸다. 진리를 앞세워 폭력과 공포를 휘둘렀던 혁명적 실험들, 곧 프랑스혁명의 자코뱅, 러시아혁명과 스탈린 체제,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이 여기서 적극적으로 또는 긍정적으로 참조된다. 이 실험들이 실패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거기에는 분명히 ‘해방적 고갱이’가 있었다는 것이 지젝의 판단이다. “우리는 더러운 물과 함께 아이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
  
지젝은 여기서 머물지 않는다. 그는 20세기 최악의 정치적 악몽이라 할 히틀러의 나치즘까지 적극적 검토의 대상으로 세운다. 그가 보기에 나치즘은 단순히 정치적 일탈이나 변종이 아니었다. 나치즘의 핵심 요소들은 좌익 혁명운동에서 빌려온 것들이었다. 그 안에는 근본적 변혁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지젝은 벼랑까지 사고를 밀어붙인다. “미친 주장일지 모르지만, 히틀러의 문제는 충분히 폭력적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 부연하면, “나치즘은 충분히 극단적이지 않아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공간의 근본 구조를 파괴하는 용기를 내지 않았다. 이 때문에 나치즘은 유대인이라는 창조된 외부의 적을 파괴하는 데 몰두한 것이다.” 히틀러는 과격해서 비난받는 것이 아니라 비겁해서 비난받는다.
 
지젝은 나치즘 문제를 숙고하기 위해 ‘나치 참여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를 끌어들인다. 많은 하이데거 연구자들이 하이데거 철학이 나치즘과 무관하다거나, 그가 한때 나치였지만 실체를 알고 거리를 두었다거나, 처음부터 나치가 아니었다거나 하는 식으로 그를 변호한다. 그러나 지젝은 하이데거는 나치였을 뿐만 아니라, 나치에 참여했을 때 올바름에 가장 가까웠다고 말한다. “하이데거가 가장 많이 틀렸을 때, 다시 말해 그가 나치에 참여했을 때, 그는 가장 진실에 근접했다.” 하이데거는 나치를 통한 근본적 변혁에 몰두했다는 것이다. 그 변혁의 내용이 좌익적 변혁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음을 지젝은 일화를 들어 말한다. “1968년 독일 학생운동 대표가 하이데거를 방문했을 때, 하이데거는 자신은 학생들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은 비록 정치적 입장은 다르지만 1933년 프라이부르크대학 총장으로 있을 때 하이데거 자신이 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지젝은 이렇게 파시즘을 뒤집어 해석하면서, 자유주의자들이 ‘파시즘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들, 곧 총체성·규율·집단성 같은 것들이 애초에 파시즘과는 무관한 것들이라고 강조한다. “파시즘은 그것의 본디 창조자인 노동자들의 운동으로부터 그것을 훔쳐내서 자기화한 것이다. ‘원파시즘적’ 요소들 중 어느 것도 그 자체로 파시즘적인 것은 없다.” 일본 파시즘의 원형으로 묘사되는 ‘죽음을 초월한 사무라이 정신’도 파시즘과 관련이 없다. “우리는 이것을 파시즘적 군사주의의 일환으로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혁명적인 입장의 구성요소로 간주해야 한다.” 지도자라는 범주도 “대의를 향한 열광을 촉발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라고 그는 말한다. 파시즘 운동의 특수한 접합이 이 모든 것들을 파시즘적인 것으로 비틀었을 뿐이다.
   
지젝은 이런 검토 위에서 과거 혁명들이 수행했던 것들, 다시 말해, 진리의 정치, 당-국가-지도자 정치,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다시 과감하게 실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런 정치를 수행하고 있는 사례가 있는가? 지젝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지목한다. 차베스의 정치는 여러 가지 약점과 결점이 있지만, ‘자기 몫이 없는 자들’ 곧 빈민들과의 특권적 연대라는 방식으로 민주주의 형식 안에서 일종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실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위기의 지방재정, 탈출구는 없나 (내일신문)

 

<포럼> 지자체 예산 감시 기능 강화해야 (문화, 임승빈 / 명지대 교수·행정학, 2009-11-28)
 
국회에서 심의중인 2010년도 국가 예산안의 규모는 약 290조원으로 천문학적이다. 특히 지출이 수입보다 32조원이나 많은 적자 예산이다. 그런데 이 국가 예산 중 60% 이상을 자치단체가 집행한다. 적자 재정이기 때문에 200조원에 가까운 예산을 사용하는 자치단체들 가운데 비록 여유있는 지자체라 하더라도 예산을 적재적소에, 아껴 쓰지 않으면 안된다.
 
호화 청사로 문제가 되고 있는 성남시와 용인시는 시장이나 공무원들이 노력해서 부자가 된 자치단체가 아니다. 단순히 입지가 좋아서 땅 팔고 신규 아파트 팔고 해서 걷어들인 예산이다. 정부의 지원금 없이 자신들의 돈으로 쓰는 데 무슨 상관이냐고 하면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 맡긴 주인집 격이다. 바로 그 낭비적인 예산을 절약해 잘 사용한다면 내 이웃의 한 사람의 식탁이라도, 한 사람의 치매환자라도, 한 사람의 일자리라도 더 돌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성남시·용인시뿐만 아니라 호화 청사를 짓는 자치단체들 모두가 지탄받아 마땅하다.
 
지방 도시 어딜 가든 특색 없는 거리, 알루미늄 새시 문짝으로 열을 지어 있는 점포들, 뽀얀 먼지가 잔뜩 앉아 있는 주택들…. 그런 곳에 초현대식 시청 건물을 짓고 공무원들이 일을 한다고 해서 잘 될지는 의문이다. 아무리 주민을 위한 부대시설을 넣는다 해도 신청사는 지나치게 호사스럽고 크다. 공산주의 국가의 관공서를 연상케 한다. 더군다나 주민의 대부분은 시청사에 갈 일이 없다. 대낮에 시청사의 부대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갈 형편이 되는 주민들은 역설적으로 말하면 행정 서비스가 필요 없는 대상들이다.
 
대낮에도 잔일거리를 찾으면서 헤매는 주민, 집에 가도 아무도 없는 결식 학생, 아이를 맡기도 싶어도 공립 보육원이 없어서 비싼 사립 보육원을 찾아 헤매는 주부, 이들 주민은 한가롭게 호화로운 시청사에 가서 부대시설을 이용할 시간이 없다. 빵을 굽는 오븐도 없고 꽃꽂이를 놓을 거실도 없는 집에 사는 주민들에게 아름다운 시청사의 문화센터에서 빵만들기, 꽃꽂이를 무료로 가르쳐 준다고 하면 행정에 대한 냉소주의만 키울 것이다.
 
물론 유럽의 나라들을 돌아보면 시청사가 역사 유적으로서 가치가 있는 곳이 많다. 그러면 지금 국내의 각 지자체가 짓고 있는 호화 청사들도 후대에 역사 유물로 남을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대개 주변과 어울리지도 않고 전통적 미적 감각도 없는 고속도로변의 규모만 큰 러브호텔과 다름없다.
 
자치단체 집행부의 예산안에 대해 준엄한 눈으로 심의해야 할 지방의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지방의회는 건전한 의미에서의 견제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하다. 예산안 심의가 매우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일이 다반사다. 심지어는 의원들끼리 나눠먹기를 할 수 있도록 집행부가 밥상을 차려주는 것을 마지못해 받아먹는 타협과 야합의 예산도 있다.
 
54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룬 일본의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도입한 ‘예산 공개 심의제’는 예산 낭비 유무를 철저히 검증하고 국민의 세금을 한 푼도 헛되게 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이에 대해 일본 국민은 “신선하다. 자민당 정권 때 보지 못했던 상황”이라며 환영했다고 한다. 지방의회의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활동에 대해 학계 및 시민사회단체가 정보 공개를 주장했지만 마이동풍이다.
 
결론적으로 자치단체의 예산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예산 공개 심의제,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정보 공개,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외부감사제도 등의 도입이 필요하다. 특히, 영국과 일본에서 시행중인 외부감사제도를 도입한다면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이 훨씬 효율적이고 낭비를 없앨 수 있게 될 것이다.
  
---------------------------------------
[내일신문 창간 16주년 함께하는 시민행동 공동기획] "위기의 지방재정, 탈출구는 없나"
감세·4대강으로 지방재정 ‘휘청’
(내일, 곽태영·방국진·김진명 기자, 2009-10-13 11:59)
감세로 향후 4년간 지방재정 65조 감소
자치단체 “내년엔 더 악화” … 대책 요구
 
‘지방재정’이 위기에 처했다. 지방은 복지업무의 지방이양 등으로 돈 쓸 곳은 늘어만 가는데 경제난의 여파로 세수는 감소하고 있다. 더욱이 내년부터는 정부의 감세정책의 영향으로 지방재정은 더 악화될 전망이다. 정부는 세재개편과 지방에 투입될 4대강 사업으로 지방자치단체들을 달래고 있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내일신문은 ‘함께하는시민행동’과 공동으로 지방재정이 처한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해 본다.
 
정부의 감세정책이 본격화되는 2010년부터 향후 4년간 약 65조원의 지방재정 부족분이 발생, 지방재정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자료 등을 토대로 검토한 결과 감세정책이 본격화되는 2010년부터 4년간 약 65조원의 지방재정 부족분이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 위원에 따르면 향후 4년간 내국세 감세액의 일정 비율을 차지하는 지방교부금(-14조9079억원)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15조4968억원)이 크게 감소한다. 또 종합부동산세 개정에 따른 부동산 교부금은 연간 2조5770억원 감소하고 국고보조금은 4년간 17조6537억원이 감소하게 된다. 홍 위원은 “정부의 대규모 감세로 2010년부터 4년간 98조원에 달하는 국세 세수가 줄어들고 그 영향으로 65조원의 지방재정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이런 부작용을 우려해 지방소득세·지방소비세를 신설하고 4대강 사업으로 지방재정 확충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4년간 투자할 4대강 사업예산을 빼도 48조3455억원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당장 현실로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 감세 등으로 부족해진 예산을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홍 위원은 “올해 51조원 규모의 재정적자가 발생했지만 교부금은 줄지 않았다”며 “정부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빚을 내 무너지는 둑을 막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빚내서 구멍 난 둑 막아” = 정부는 지방재정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지방소득세·지방소비세를 신설하기로 했다. 현재 국세인 부가가치세 세수의 10%를 지방소비세로 돌려 시도별 소비지출 비중에 따라 지역별로 배분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지자체들은 일단 환영하지만 기대에는 못 미친다는 반응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그동안 지방소비세 신설을 꾸준히 요구해온 만큼 환영은 하지만 기대에는 못 미친다”며 “심각한 지방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재정지원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간 재정불균형이 심화될 뿐 실제 지방재정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병호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방소비세가 도입돼도 전체적인 지방재정 규모는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세수 격차로 지방간 재정불균형이 심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어쨌든 대부분 지자체와 전문가들은 정부의 대규모 감세정책 효과가 나타나는 내년부터 재정 위기가 심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 ㅈ구청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 조기집행 때문에 하반기는 상황이 어려워 연말 불우이웃돕기도 못할 지경”이라며 “내년 세입은 올해보다 5%가 줄어 더 악화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실제 연말이 다가오면서 전국 지자체들이 ‘돈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세입은 줄고 고정 지출은 늘어 = 이처럼 감세와 더불어 지방재정 여건을 악화시키고 있는 주요 원인은 사회복지 등 중앙사무의 지방이양 문제다. 정부가 돈이 드는 업무를 지방에 넘기면서 재정지원은 확대하지 않기 때문에 지방재정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실제 분권교부세(내국세의 0.94%)는 지난 5년간 연평균 8.6% 증가했으나 사회복지이양사업은 20.5%나 증가했다.<표 참조>
 
오관영 함께하는시민행동 사무처장은 “사회복지사무이양과 종합부동산세 개편으로 인한 사회복지예산 감소 등으로 지방재정여건이 악화되고 있다”며 “특히 지방비 비율의 차이가 큰 자치구의 재정 부담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경제난과 감세효과가 맞물리면서 대부분 지자체들이 재정난에 직면해 있다. 경기도의 경우 올해 1조450억원 규모였던 가용재원이 내년엔 4000억원대로 60%가량 줄어들 것으로 추산돼 벌써부터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도 관계자는 “거래과세 비중이 큰 도세는 부동산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근본적으로 세수는 줄고 복지예산 등 고정 지출은 늘고 있어 재정여건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도는 내년 지방세 수입액이 올해 당초 세입예산 6조2580억원보다 7% 감소한 5조8000여억원에 그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비수도권 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광주시의 경우 자체세입이 줄면서 중앙정부에 대한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광주시는 정부의 감세정책 등으로 내년에 지방세는 0.9%, 세외수입은 연평균 4.9% 감소하는 반면 지방교부세, 국고보조금은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광주시 관계자는 “지방재정 여건을 감안하지 않은 법 개정, 매칭펀드제 운영 등으로 부담이 가중돼 가용재원이 감소하고 있다”며 “자체 정책사업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기에도 한계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중앙-지방간 재정구조 개선해야” = 지자체들은 재정부족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부사업의 부담금을 줄여 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경남 남해군은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를 통해 내국세 감소에 따른 지방교부세 2조2000억원 감액에 대해 지원을 요구했다. 하지만 행안부는 “지방교부세 감액에 따른 지자체 재정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지자체의 지방채 발생시 공공자금관리기금을 통한 장기저리 자금제공과 이자보전을 추진하고 있다”며 요구를 거부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지방재정 이전, 국세와 지방세간 세목 교환 등을 통한 재정분권을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병호 교수는 최근 지방분권 및 국가균형발전에 관한 토론회에서 “다양한 제도의 포괄적 개선과 중앙-지방간 관계의 틀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위해 “지방소비세 등 새로운 세목설치와 함께 지방재정이전제도의 개편, 국세와 지방세간 세목교환 등을 동시 또는 순차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행정체제 개편도 중앙-지방간 재정관계의 개편 등 분권강화를 함께 추진해야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
[내일신문 창간 16주년 함께하는 시민행동 공동기획]"위기의 지방재정, 탈출구는 없나"
지방소비세 도입 효과 ‘미미’ (내일, 김신일 기자, 2009-10-15 12:06)
 
정부가 지방자지단체의 재정난을 덜어주기 위해 내년부터 지방소비세를 도입하기로 했지만 실제로는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지방소비세가 도입되더라도 16개 시·도 모두 감세로 인한 지방재정 세입감소 규모가 지방소비세 세입증가 규모보다 크기 때문에 지방재정 세입의 순감소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최근 발표한 ‘감세의 지방재정 영향분석’ 자료에 따르면 정부의 각종 감세정책으로 인한 2008~2012년 지방재정 세입은 30조1741억원 감소하지만, 2010~2012년 지방소비세 도입에 따른 세입순증 효과는 4조4355억원에 불과하다. 결국 이 기간 지방재정 세입은 무려 25조7387억원이나 순감소한다는 것이 예산정책처의 예측이다. 국회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2008년 세제개편안 발표 당시 기획재정부가 전례를 들어 지방정부에 대한 재원보전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했지만 이대로 가면 지방정부는 재정압박으로 꼭 필요한 지역공공재 지출도 못하게 될 것”이라며 “지방정부의 세입감소분에 대한 중앙정부 차원의 적절한 보전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2010년부터 부가가치세의 5%를 지방소비세로 전환하기로 했다. 매년 2조4334억원 규모다. 하지만 지방소비세 신설로 인해 자연 감소하는 지방교부세가 9549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여 전체적으로는 해마다 1조4785억원 정도의 지방재정 순증 효과에 그친다.
 
◆지역간 재정불균형 오히려 심화 = 정부의 지방소비세 신설이 지역간 재정불균형을 더욱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높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소비 규모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재정격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지방소비세에 권역별 가중치를 적용하고 지역상생기금을 조성키로 했다. 수도권을 100%로 봤을 때 비수도권 광역시는 200%, 비수도권 도는 300%의 가중치를 두고, 수도권 자치단체가 10년간 해마다 지방소비세 수입 중 3000억원을 출연해 모두 3조원의 기금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이 기금은 자치단체가 조합을 구성해 자율적으로 관리·운영하며, 비수도권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사업에 포괄보조금 형태로 지원하거나 지역 현안사업에 필요한 대규모 자금을 장기저리로 융자해 줄 예정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지자체의 상생발전을 위한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기금은 수도권 규제완화에 따른 지방 반발을 막기 위한 정치적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계명대 행정학과 윤영진 교수는 “지역상생기금은 수도권 규제완화에 따른 지방 반발을 막기 위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며 “오히려 지자체간 나눠먹기식 이전투구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방소득세 도입은 이름뿐 = 정부는 지방소비세와 함께 지방소득세도 함께 도입키로 했다. 현재의 소득할주민세(소득세의 10%)를 내년부터 지방소득세로 전환하고 성격이 비슷한 세목(종업원할사업소세)은 통합한다. 이러한 정부방침은 정부 부처들의 반발로 당초 계획과 달리 한 발 물러서 단계적으로 추진키로 한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지방소득세의 경우 현재의 지방세 내에서 이름만 바꾸는 셈이어서 당장 지방재정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강장석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지방재정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등 내실화하려면 소득할주민세 세율을 10%에서 20%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며 “이렇게 하면 3.5%의 지방세 증대효과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행안부 관계자도 “이번에는 지방소득세로 인한 실질적인 변화는 없다”며 “관계부처와 공동으로 TF를 구성해 앞으로 3년간 지방의 과세자주권을 신장시킬 수 있는 지방소득세 도입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세원공유로 재정자립 발판 마련 긍정적 = 2009년 현재 지방세 수입으로 인건비도 해결하지 못하는 지자체가 114개(46.3%)나 된다. 재정자립도도 1995년 63.5%이던 것이 2005년 56.2%로 떨어졌고, 올해는 53.6%까지 낮아졌다. 지방재정의 국가 의존도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정부의 감세정책과 경기침체로 지방재정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지방소비세 도입에 대해 지자체와 학계의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다. 당장 지방재정에 미치는 영향은 미비하겠지만 지방재정 확충을 위한 재정중립, 자주재원 마련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목원대 행정학과 권선필 교수는 “지방소비세 도입은 국가와 지방이 세원을 공유함으로써 자주재원의 토대를 만들었다는데 의의가 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대전시 윤영병 세정과장은 “부가가치세는 세수 신장성이 좋기 때문에 기득권을 갖고 있는 국세에서 포기하기 어려웠던 세원이었다”며 “중요한 세원을 국가가 지방정부와 나누기로 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지역서 쓴 돈 지방재정 흡수 = 지방소비세 신설은 지역경제와 지방세의 연계가 부족한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도 담겨있다. 지역경제 활성화가 지방세 확충으로, 다시 자치단체의 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해 지자체의 자생력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지방재정세제의 가장 큰 구조적 문제였다. 지자체가 기업을 유치해도 사업은 지방에서 하고 세금은 모두 국가에 납부하기 때문에 지방재정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관광객이 지방에서 먹고, 자고, 물건을 사도 전부 국세에 귀속됐다. 지자체의 경제활성화 노력이 실제로는 지방재정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한 것이다.
 
예를 들면 충남 서산 대산공단의 경우 2007년 기준 매출액이 16조6000억원에 이르고 고용인원도 5000명이나 된다. 지방비도 진입도로공사에 든 13억원을 포함해 300억원 이상이 투자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걷힌 세금을 보면 국세가 연간 2조7000억원 규모인데 반해 지방세는 188억원(국세의 0.7%)에 불과한 실정이다.
 
지방 축제의 대표적인 성공사례고 꼽히는 함평 나비축제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나비축제는 2007년 기준 102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갔고 101억원의 경제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됐다. 개최비용(5억원)과 환경처리비용 등 지방비 투자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정작 지방에서 거둬들인 세수는 전무했다. 계명대 윤영진 교수는 “지역경제 활성화가 직접적으로 지방재정에 영향을 줄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지방소비세 도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
[내일신문 창간 16주년 함께하는 시민행동 공동기획]"위기의 지방재정, 탈출구는 없나"
현정부 ‘생색’낼수록 미래세대에 ‘독’
(내일, 김선일 곽태영 최세호 방국진 기자, 2009-10-19 12:06)
전체 SOC사업 중 민간투자 18% 차지 … 신중한 접근 필요
 
지방재정여건이 어려워지면서 정부와 지자체가 민간자본유치사업을 확대하고 있지만 오히려 재정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민간투자 협약 규모는 2009년 6월말 현재 수익형 민자사업(BTO)이 48건에 총 투자비 36조4000억원, 임대형 민자사업(BTL)은 35건에 3조1000억원 규모다. 모두 39조5000억원에 달한다.
 
지자체가 주도하는 민간투자 협약 규모도 같은 기간 수익형 사업이 23건에 총투자비 12조3000억원이며, 임대형 사업이 239건에 10조5000억원이다. 지자체가 고시한 민간투자사업 규모는 22조8000억원으로 내년 정부예산(안) 292조원의 7.8% 수준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민간투자 약정액을 합하면 60조원을 넘어서 국내 SOC투자의 18%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민자사업이 부족한 재정을 메우고 재정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당초 취지와 반대로 지방재정에 부담을 주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수요예측을 잘못해 적자가 발생해도 세금으로 이를 보존해줘야 하는 최소운영수입보장제도(MRG) 때문이다.
 
◆초기 민자사업 ‘돈 먹는 하마’로 전락 = 서울시는 2003년 개통된 우면산터널과 관련 2008년까지 실시협약에 따라 415억원을 운영권자에게 보장해줬다. 그나마 두 차례 협약개정을 통해 애초 90%였던 최소운영수입보장 비율을 79%까지 낮춘 결과다. 대구시는 지난 1995년부터 범안로, 대구시립미술관 등 6건의 민자사업을 추진했다. 2002년 9월 개통된 범안로는 실제교통이용률이 수요예측 교통량의 30%수준에 머물러 개통 후 5년동안 336억원의 세금을 민간사업자에게 보전해줬다. 계약만료기간인 2026년까지 수입보장 한다면 약 1600억원을 지원해야 한다.
 
광주시는 광주 제2순환도로1구간 운영적자 보전금을 줄이기 위해 운영권자인 맥쿼리측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 광주시는 지난해까지 재정보전금으로 맥쿼리측에 969억원을 지급했다. 이는 민간자본투자금 1731억원의 절반이 넘는 금액이다. 광주시는 앞으로도 1조696억원을 더 지급해야 한다. 인천시는 추정 통행료의 90%를 보장해 주기로 한 계약 때문에 지난 2002년부터 올해까지 문학·천마·만월산 등 3개 터널에 870억원을 투입했다. 시는 이 사업에 계약기간인 2035년까지 총 2777억원의 적자보전금을 지원해야 한다.
 
이들 사업은 대부분 실시협약체결 당시 수요예측을 잘못해 문제가 되고 있다. 광주 제2순환도로 1구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증가해야 할 통행량(1일 평균)이 지난 2007년 3만7700여대에서 2008년 3만5200여대, 올해는 3만3700여대로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지자체가 재정부담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추진했던 민자사업들이 오히려 재정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BTL사업, 20년간 28조4천억 갚아야 = 정부가 학교·보육·보건의료시설 등 국민생활 필수 기반시설 확충을 위해 2005년부터 도입한 BTL제도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공공서비스의 조기도입에 따른 경제적 효과와 소비자 효용성 증가 등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 효과는 사업 시행초기에 나타날 뿐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공공서비스 수준이 낮아질 가능성이 커 미래세대에 대한 형평성 측면에서는 불리할 수 있다.
 
특히 미래의 재정부담 규모에 대한 관리가 부실해 장기적으로 재정경직화를 초래할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 5월 현재 실시협약이 체결된 BTL사업에 정부가 향후 20년간 지급해야 할 예산은 28조3816억원이다. 2013년 이후 매년 1조4000억원이 넘는 돈을 줘야 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정부의 BTL사업 한도액이 민간투자비(임대료)만 고려하고 운영비는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재정사업과 BTL사업간 합리적 재원배분계획 없이 추진돼 미래 정부지급금 도래기에 재정경직성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개별시설에 대한 국가회계처리기준이 없어 지자체들이 리스회계로 처리하고 있기 때문에 건설기간 동안 자산과 부채는 인식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안태훈 국회예산정책처 사업평가관은 ‘BTL 적격성조사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BTL사업의 타당성 관련 지침이 미흡해 일부 사업은 재정사업으로 추진하는 것보다 지출이 많은 것으로 평가됐다”며 “검증방식에 대한 획기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옥동석 인천대 교수는 “BTL사업으로 현 정부가 생색을 낼수록 미래정부는 곤욕을 치를 것”이라며 “정부보증으로 미래 재정부담이 확실한 민자사업은 금융리스로 간주해 추정 융자금을 국가채무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제도보완해 민자사업 활성화 = 기획재정부는 2006년 ‘민간제안사업’에 이어 지난 8월 ‘정부고시 민자사업’에 대해서도 MRG를 폐지하는 법률 개정안을 제출했다. MRG가 부족한 재정을 메우는 순기능보다 정부와 지방재정을 옭아매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민간투자 활성화 방안도 내놓았다. 부대·부속사업을 활성화하는 등 민자사업구조를 개선하고 민간사업자가 지금보다 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금융여건을 개선하는 내용이 골자다. 또 민자사업 대상분야를 자전거도로와 신재생에너지시설 등 녹색기반시설까지 확대했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정부가 민자사업을 활성화하려는 방침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윤순철 경실련 시민감시국장은 “민자사업은 당장은 돈이 안들지만 결국 시민의 세금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며 “꼭 필요한 사회기반시설인지 신중하게 판단하고 민자가 아닌 재정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을 먼저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
[내일신문 창간 16주년 함께하는 시민행동 공동기획]"위기의 지방재정, 탈출구는 없나"
무분별한 투자·경쟁 … 줄줄 새는 곳간
(내일신문, 김진명 방국진 기자, 2009-10-21 12:13)
지방의회 견제기능 못해
주민감시 기능 강화해야

 
재정자립도 14%에 불과한 경기도 연천군이 민간기업에 투입한 출자금과 국도비 지원금 50여억원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군은 2007년 강원도에 소재한 한 장류 소기업을 유치, 군비 25억원과 지역 3개 농협에서 10억원을 출자했다. 여기에 더해 ‘신활력사업’과 ‘경기농정드림프로젝트’ 명목으로 2년간 26억원 가량 국·도비까지 지원했다. 그러나 대폭적인 지원금이 투입되는 동안 이 기업 부채는 2007년 10억원, 2008년 23억원 가량 늘었고 같은 기간 이익잉여금은 각각 -17억원이 넘었다. 한 기업신용등급 평가기관은 올해 이 기업이 채무불이행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어 ‘투기적’(CCC)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군은 이 기업에서 지난 연말까지 52억원을 출자하면 군남면 옥계리에 조성중인 로하스파크(LOHAS park)에 올해 말까지 장류 생산·체험시설을 설립할 계획이었지만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수요·타당성 부족해도 밀어붙이기 = 지자체들이 살림살이가 어렵다고 우는 소리를 하면서도 방만한 재정운영으로 스스로 발목 잡는 일이 허다하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수요나 타당성이 부족한 사업도 강행해 예산만 날리곤 한다.
 
광역지자체 중 재정자립도가 전국 최하위인 전남도가 수요나 사업타당성이 부족한 사업을 강행해 막대한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2006년 외빈용 숙소나 만찬장으로 활용한다며 개관한 비즈니스센터(수리채). 도는 13억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650㎡ 규모의 건물을 새로 지었지만 이용실적은 2007년 12회, 지난해 4회에 불과했다. 올 들어서는 단 한 차례도 사용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당초 목적과 달리 자체 회의나 ‘보육원생 초청 간담회’ 등으로 사용돼 예산 낭비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강원도에는 알펜시아리조트가 있다. 동계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필요한 시설이라며 막대한 자본금을 투입해 대형 위락단지를 조성하고 있지만 올림픽은 손에 잡히지 않는 꿈이다. 공사채 6327억원을 발행, 아직까지 이자만 부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숱한 뭇매를 맞으면서도 고쳐지지 않는 타성적인 낭비도 만만치 않다. 광주 ‘시민이 만드는 밝은 세상’은 최근 시를 감사원에 고발했다. 2006~2007년 집행된 민간경상보조금과 사회단체보조금 등 민간이전 예산 가운데 지원금과 영수증이 일치하는 경우가 3.2%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상석 ‘시민이 만드는 밝은세상’ 사무처장은 “시에 자료를 요구한 이후 해당 민간단체에서 ‘어떤 서류를 준비하면 되느냐’고 문의, 영수증 원본을 보내온 경우도 있다”며 “심의위원회가 실질적으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처장은 “회의록을 분석한 결과 40여건이 넘는 보조금 지원을 2~3시간만에 결정하는가 하면 지원 대상인 단체 관계자가 심의위원회에 참석해 자기 단체에 예산을 지원해달라는 요청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엇비슷한 지역 축제에 대한 중복투자도 해마다 거론된다. 행안부에 따르면 2009년 현재 전국 각지에서 937개 지역축제에 3275억원을 쏟아붓고 있다. 이 가운데 728개가 지방자치 이후 신설됐다. 그러나 3억원 이상 예산이 들어가는 지역문화행사 가운데 그 쓰임새를 꼼꼼히 살필 수 있도록 규정한 조례가 있는 경우는 63개로 26%에 불과하다. 또 경기도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지은 문화예술회관과 시민회관 등 문화시설 44개는 연평균 50%대만 가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익률은 3년 평균 20.5%였다.
 
업무추진비와 각종 수당, 지방의원 의정비와 해외연수비 등도 금액은 적지만 새는 곳간 중 하나. 최인욱 함께하는 시민행동 국장은 “고위공직자부터 도덕적 해이, 만성적 예산낭비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행안부가 상반기에 자체 점검한 결과 최근 5년간 16개 지자체 공무원들이 가족수당 95억3120만원, 자녀학비 보조수당 6억3062만원을 부당 수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최근 마포구의원 9명은 4900만원을 들여 해외연수를 다녀와서는 각종 웹사이트에서 긁어모은 자료로 보고서를 만들어 ‘표절논란’을 빚기도 했다.
 
◆무력한 지방의회, 의지 없는 정부 = 지자체 곳간이 곳곳에서 새고 있지만 1차적으로 견제 역할을 해줘야 할 지방의회는 무력하기만 하다. 최의순 연천포럼 기획실장은 “지방의회도 지자체와 한 목소리를 낸다”며 “예산안은 그대로 통과시키고 문제점을 지적해도 꼼꼼히 따지기 부담스러워한다”고 지적했다.
 
의회 안에서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 한 자치구의회 관계자는 “예결특위 위원들은 자기 지역구로 선심성 사업을 끌어오는데 급급하고 급기야 올해 결산검사에서는 수백만원에 달하는 결산위원 수당을 노리고 자리 나눠 먹기식으로 위원을 지명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지자체 내부 감사가 제대로 될 리는 만무하다. 전남도만 해도 감사 전담부서가 없는 시·군이 22곳 중 19곳(86.4%)에 달한다. 그나마도 제 역할을 못하기는 매한가지. 서울 한 자치구 감사담당관은 “강력한 감사를 했다가는 다면평가 등에서 불이익을 보기 때문에 아예 기피부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인욱 함께하는 시민행동 국장은 “일부 지자체에서 주민참여예산제를 도입했지만 예산에 밝지 못한 일반 주민들이 낭비요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며 지자체 내부의 감시와 견제를 요구했다.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크다. 국민들이 공공기관 예산낭비를 감시·신고하는 기구인 예산낭비신고센터 예산이 대폭 깎여 손발이 묶이는가 하면 최근에는 아예 국민권익위원회로 흡수 통합돼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도 하다. 이상석 사무처장은 “활동가 3명이 40일간 살펴본 자료를 제출했는데 감사원에서는 1주일도 안돼 광주시 의견과 같은 답변을 내놓으며 ‘문제가 없다’고 했다”며 “어렵사리 얻은 정보를 토대로 감사청구를 하고 나면 감사원에 대한 불신만 남는다”고 꼬집었다. 
 
----------------------------------------
예산 통제·감시, 시민사회 몫 (내일, 김진명 기자, 2009-10-21 12:13)
[인터뷰]이원희 한경대 교수
 
“거시적으로는 재정난에 허덕이지만 미시적으로는 낭비하는 구조다.” 이원희 한경대(행정학) 교수는 지방정부가 호소하는 재정난과 방만한 재정운영에 대해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상적 예산운용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은 가용재원이 300억~400억원에 불과한 지자체에서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고 여러 분야에 예산을 분산하면서 그만큼 운용도 방만해진다는 것이다. 특히 민간단체 경상보조금은 단체장이 이런저런 고마움을 표하는 방법으로 애용되는 선심성 예산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집행부와 의회가 하나로 움직이다보니 통제할 방안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덩지가 큰 일부 사업은 “몇몇 사람이 책상머리에 앉아 솔깃한 제안에 귀 기울이는 형태”가 되기 일쑤. 비전문가들이 제한된 정보에 따라 움직이다 큰 사고를 치기 십상이라는 얘기다. 그는 특히 “잘못 투자해도 망하지 않기 때문에 위험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현재는 중앙정부가 지자체 재정을 뒷수습하는 형태이다보니 파산 개념이 없다는 것이다. 지방재정이 방만해도 중앙에 손을 뻗치는 게 지금의 모습이다. “제어장치로 투융자심사라는 제도를 만들어놓았는데 이또한 악용되고 있다. 타당성 검사를 자기 입맛에 맞게 내줄 곳으로 발주를 한다. 제도적 장치가 없는 가운데 나눠먹기를 하고 있다.”
 
이 교수는 “그래서 시민단체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가 10여년 전 경실련에서 예산감시활동을 시작한 이유도 그때문이었다. 시민단체 활동은 크게 사후감시와 사전통제로 나뉜다. 지금은 사후감시에 무게중심이 쏠려있다. 사업이 진행되는 현장을 수시로 확인하고 감시·고발하는 형태다. 그러나 지치기 쉽다는 단점이 있다. 아무리 지적해도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사전통제는 참여예산제도다. 이 교수는 “공무원이 문을 열어줘야 활성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방의회에 예산안을 보고하기 전에 공청회 등을 통해 예산안을 공개하고 시민사회 의견을 적극 수렴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사회에서 시작된 예산감시 움직임을 정부에서 받아들여 확산시켰다는 점에서는 칭찬할 만하지만 그 권력을 시민사회에 돌려주어야 지속될 수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양육쇼크〉 포 브론슨·애슐리 메리먼 지음·이주혜 옮김

사실 고래를 춤추게 해서 무엇에 쓸까? 헌책방에 가면 눈에 뜨이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을 보면 괜시리 반감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칭찬에 많이 인색한 사람인 듯 싶다.
 
아래 <양육쇼크>라는 책은 아이들에게 칭찬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칭찬을 하라는 충고를 하고 있다. 그 외에도 육아에 관한, 귀담아둘만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듯하다. 언젠가는 도움이 될 책.
 
-----------------------------
칭찬은 때로 아이를 병들게 한다 (한겨레, 허미경 기자, 2009-11-27 오후 07:08:07)
잦은 보상과 칭찬, 끈기 발달 해쳐
잘못된 육아정보 과학적으로 규명
60개 나라 학자 7천여명 성과 녹여
〈양육쇼크〉 포 브론슨·애슐리 메리먼 지음·이주혜 옮김/물푸레·1만4800원

 
아이들은 칭찬을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요즘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또한 틀린 말이다.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의 자신감을 키워주려면 칭찬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미국의 경우 부모의 85%가 똑똑하다고 말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믿는다. “똑똑하기도 하지, 어이구 내 새끼.” 그들은 습관처럼 그런 칭찬을 입에 달고 있다. 우리의 경우도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미국에서 올해 출간되어 화제를 일으킨 책 <양육쇼크>는 말한다. 칭찬의 중독에서 벗어나라. 똑똑하다고 칭찬하는 습관이 역효과를 낳는다. 이런 칭찬은 오히려 아이들의 자신감과 자긍심을 해친다. ‘넌 똑똑한 아이야’라는 칭찬은 아이가 아니라 부모 자신을 칭찬하는 말일 뿐이다.
 
책은 유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아이들을 다뤘으며, 아동발달과 지능 연구, 신경생물학에 이르기까지 60개 나라 7000여명의 교육학자와 과학자들의 최근 10년간의 연구 성과를 녹였다. 여기엔 한국 학자들도 들어 있다. 이 책은 말한다. 광범한 연구조사 결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육아 정보 대부분이 과학적이지 않으며, 경험적 사실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고. 그래서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캐럴 드웩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팀은 10년 동안 뉴욕의 20개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칭찬의 효과를 연구했다. 5학년생을 대상으로 연속실험했는데, 우선, 아이들에게 아주 쉬운 퍼즐식 지능검사를 첫 시험으로 내줬다. 검사를 마치면 연구자들은 한쪽 집단엔 똑똑하다는 칭찬을, 또다른 집단에는 열심히 했다는 노력에 대해 칭찬을 해줬다. 그 뒤 두 번째 시험에 앞서, 첫 시험과 비슷한 쉬운 시험과 더 어려운 시험 중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노력을 칭찬받은 아이들 90%가 더 어려운 문제를 택했다. 지능을 칭찬받은 쪽은 대부분 쉬운 문제를 택했다. ‘똑똑한’ 아이들이 오히려 회피를 선택한 것이다. 드웩은 이 결과를 이렇게 설명한다. “아이에게 지능을 칭찬해주면 자신이 도전해야 할 시험이 ‘똑똑하게 보이기’가 되므로 실수를 할 수도 있는 모험에 나서지 않는다.”
 
세 번째 시험은 중1생들이나 풀 만한 어려운 문제를 냈다. 시험을 본 뒤 두 집단의 반응은 달랐다. 노력을 칭찬받은 쪽은 그 시험에서 실패한 이유가 충분히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문제를 열심히 풀었고 온갖 해결책을 적극 시도했다. 반면, 똑똑하단 칭찬을 받은 아이들은 그 시험에서 실패한 이유는 사실은 자신이 똑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들은 “한눈에 봐도 긴장한 채 땀을 뻘뻘 흘리며 괴로워했다.” 마지막 네 번째 시험에선 첫 시험만큼 쉬운 문제를 내줬는데, 노력 쪽 아이들은 첫 시험에 비해 30% 정도 성적이 오른 반면, 똑똑함 쪽 아이들은 첫 시험보다 20% 정도 성적이 하락했다. 노력을 강조하면 아이들은 스스로 성공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게 되지만, 타고난 지능을 강조하면 오히려 통제력을 앗아갈 수 있다는 걸 이 연구는 보여준다. 이는 반복된 실험을 통해 확인됐다. 취학 전 아이들도 칭찬의 역효과는 비슷했다. ‘똑똑한 아이’라는 딱지 붙이기는 학력 부진을 막아주기는커녕 실제로는 부진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또다른 연구에선 아이들에게 직접 성적표를 작성하게 했는데, 지능 칭찬 아이들의 40%가 자신의 점수를 부풀리는 거짓말을 했다. 노력 칭찬 학생들은 거짓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너무 잦은 보상과 칭찬에 대해서도 이 책은 부정적이다. 그것은 아이들의 끈기를 해친다. 칭찬 ‘중독’이라는 말은 단지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신경생물학과 심리학자들의 연구 성과다. 포기하지 않고 더 열심히 노력해서 실패에 반복적으로 대응하는 능력, 곧 끈기는 의식적 행동일 뿐 아니라 두뇌의 신경망 회로가 관장하는 무의식적 반응이기도 하다고 그들은 말한다. 우리 두뇌는 ‘좌절을 안겨주는 시간도 얼마든지 헤쳐나갈 수 있음’을 학습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책은 수면과 학습능력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잠 부족은 납에 노출된 것만큼이나 어린이의 지능을 해친다고 단언한다. 과학자들의 신경생물학적 기능 시험에서 한 시간의 수면 차이가 만들어낸 수행능력의 차이는 전체 4학년 평균과 6학년 평균의 차이보다도 컸다. 약간 졸린 6학년 학생은 수업시간에 4학년 학생 정도의 능력밖에 보여주지 못한다는 걸 의미한다. 낮 동안에 많은 것을 배웠다면 그날 밤은 더 많이 자야 한다는 것이다.
 
부부싸움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지 않는 게 능사가 아니며, 오히려 싸우다 자리를 피해버리는 모습보다는 싸우더라도 갈등 해결과 화해의 과정을 보여주는 게 더 낫다고 이 책은 말한다. 책은 ‘외동이와 형제자매’, ‘아이들의 거짓말’, ‘청소년기 반항’, ‘아이들의 어휘습득의 진실’ 등 주제별로 모두 10장으로 이뤄졌다. 장마다 자칫 난삽해질 수도 있는 복잡한 연구 성과들을 한 아이의 사례에서 시작해 술술 녹여낸 지은이의 이야기 솜씨, 대단하다. 마지막으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은 어른들에게 해당된다. 아이들은 발달 단계상 다르다는 것이다. 
 

---------------------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만 할까?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2009-11-25 18:23)
 
토머스는 명문 유치원의 입학시험에서 상위 1%를 차지한 영재였다. 걸음마를 뗀 이후부터 토마스는 끊임없이 똑똑하다는 말을 들어왔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는 매사에 자신감을 잃고 쉽게 포기해버리는 아이가 됐다. 분수를 처음 배울 때도, 필기체를 처음 배울 때도, 토머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회피했다. 무엇이 영재 토머스를 이렇게 자신감 없는 아이로 만들었을까?
 
미국 언론인 포 브론슨과 애쉴리 메리먼이 함께 쓴 '양육쇼크'(물푸레 펴냄. 원제 Nurture shock)는 토머스의 사례를 통해 '칭찬의 역효과'를 역설한다. 지나친 칭찬, 특히 진정성이 결여된 칭찬은 아이들의 동기를 왜곡시키고 스스로 판단할 기회를 박탈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이 밖에도 그동안 많은 부모가 믿어왔던 양육 상식을 뒤엎는 다양한 정보들이 들어 있다. 가령 많은 부모가 아이들의 지능 발달을 위해 보여주는 유아용 비디오가 오히려 아이들의 언어발달에 해롭다고 한다. 차라리 어른들이 보는 TV 프로그램을 보여주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성인용 TV와 달리 유아용 비디오는 화면의 추상적인 이미지와 상관없는 실체 없는 오디오 해설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언어를 습득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아이의 말에 얼마나 반응을 보이는지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이밖에 이 책은 다양한 연구사례 등을 통해 수면시간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막대한 영향과 아이를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부모의 실수, 형제·자매와 싸우는 진짜 이유 등을 알려준다. 
 
----------------------------
[책과 길] 미 저널리스트 포 브론슨·애쉴리 메리먼 공저 ‘양육 쇼크’… 과도한 칭찬,문제 해결능력 저하시킨다 (국민일보, 양지선 기자, 2009.11.26 17:59)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아니, 칭찬도 칭찬 나름이다. 내 아이에게 어떤 칭찬을 해야 하는지 모르고 그저 “똑똑하지, 내 새끼”라는 말을 달고 산다면 이건 약이 아니라 독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두 공저자는 세계 60개국 7000명의 과학자들이 10년 동안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전통적인 우리의 자녀 양육방식은 틀렸다”고 단언한다. 물푸레가 펴낸 ‘양육 쇼크(Nuture Shock)’는 아이들에 대한 교육과 그 결과의 괴리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했다. 요즘처럼 부모들이 자녀 양육에 열심인 시대에 왜 이토록 많은 아이들이 공격적이고 잔인한 모습을 보이는지, 98%의 아이들이 거짓말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대답했으면서 왜 98%의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는지 등 등. 그리고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 칭찬의 효과,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 형제자매의 영향력과 청소년기의 반항 등 부모라면 누구나 고민할 수 있는 주제를 중심으로 세계 각국의 연구 결과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칭찬의 역효과다. 10여 년간 칭찬에 대해 연구한 캐롤 드웩 콜롬비아대학 교수의 연구 결과를 인용, 이들은 아이들을 칭찬할 때는 지능이 아니라 노력을 칭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능에 대한 칭찬이나 과도한 칭찬이 아이들의 문제 해결력을 저하시키고, 행위의 동기 자체까지 왜곡시키는 결과를 빚을 수 있는 것이다.
 
거짓말 역시 마찬가지다. 부모는 자식의 거짓말을 알고 있다고 믿지만, 아동의 거짓말 행동에 대한 세계적 권위자인 빅토리아 탤워 박사는 이 믿음이 얼마나 잘못된 신화인지 여러 가지 통계와 실험을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아이가 거짓말을 하기 시작할 때 부모가 이를 파악하고 대처하는 법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한다. 거짓말은 아이의 지능이 발달한다는 상징이며, 집단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는 주의를 끌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좌절감을 배출하는 통로 역할도 한다. 따라서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다는 신호라는 것이다. 이 때 부모가 “거짓말 하면 혼난다”라고 말하는 건 효과가 없다. 대신 “네가 잘못했다고 해도 화내지 않을께. 사실을 말하면 엄마는 정말 기쁠 거야”라고 말해야 한다. 대개 아이들의 거짓말은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기존에 우리가 우리 자녀를 더 착하고 똑똑하고 정직한 아이로 기르기 위해 해왔던 많은 훈육법이 재고될 필요가 있다고 느꼈던 부모, 또는 전통적 교육법이 진리라고 믿었던 부모라면 이들이 인용한 연구 결과를 한번 쯤 참고해 볼 만하겠다. 
  
----------------------------
<북 다이제스트> “육아 상식 ?… 당신은 잘못 알고있다” (문화, 최현미기자, 2009-11-28)
 
“지금까지 당신이 해온 자녀 양육방식은 틀렸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당신 마음은 어떻겠는가.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자녀 양육과 관련된 책 여러 권을 저술한 두 저자는 참으로 사람들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우리들이 흔히 알고 있는 자녀 양육 방법들 중 상당수가 옳지 않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단순하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10년간 전세계에서 이뤄진 다양한 과학적 실험과 연구 결과를 광범위하게 끌어모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그래서 책 제목도 ‘쇼크’이다.
 
컬럼비아대 심리학자 캐럴 드웩박사와 연구진이 10년간 뉴욕의 스무 군데 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칭찬의 효과를 연구한 결과, 기존의 상식과 조금 다른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오랫동안 똑똑하다고 칭찬을 들어온 아이들의 성취도가 갈수록 낮아졌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칭찬은 아이들이 실패나 고난을 당할 때 역작용해 아이들로 하여금 곤란한 상황을 회피하게 만들었고, 칭찬을 통한 부모의 섣부른 개입은 아이들에게서 문제해결능력을 빼앗아 갔다고 한다. 칭찬보다는 부모가 노력을 강조한 경우 아이들은 자기 삶을 스스로 통제하려는 경향을 강하게 보였다고 한다. 게다가 아이들은 칭찬의 내용과 진정성을 귀신같이 알아채기 때문에 내용이 없는 광범위한 칭찬은 아이들에게 아무런 감동도 자극도 주지 못한다고 한다. 따라서 칭찬을 할 때는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칭찬하라고 저자들은 조언한다.
 
또 다른 양육쇼크는 영재 검사의 문제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아이가 어릴 때 영재 여부를 판별해 이에 걸맞은 교육을 해줘야 한다는 신념이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다. 하지만 저자들은 여러 과학적 연구 결과를 인용해 이 역시 진실이 아니라고 분석한다. 한 연구팀이 영재로 선별된 100명의 유치원생을 추적조사했더니,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 여전히 영재 범위에 있는 아이들은 27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은 영재 판명은 적어도 11세 이후에 이뤄져야 한다고 결론내린다.
 
이와 함께 많은 엄마들이 자식과의 싸움은 파괴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많은 딸들은 싸움이 엄마와의 관계를 강화시킨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부모들은 아이들의 거짓말이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거짓말이 때로는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힘과 통제력을 향상시키기도 한다고 한다. 부모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만나는 다양한 상황과 문제에 대해 기존상식과는 다른 시선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렇게 책은 우리가 익히 알던 육아 상식을 끊임없이 흔들어댄다. 하지만 이는 사람들을 단순히 혼란에 빠트리기 위한 것은 아니다. 하나의 거대한 우주와 같은 아이들을 기존의 잣대, 부모들의 통념으로 섣부르게 재단하지 말고, 깊이있고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며 가능한 폭넓고 정확하게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진화경제학, 마이클 셔머 지음 | 박종성 옮김 | 한국경제신문사

----------------------------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멸종! 돌연변이가 경제위기 불렀다 (한경, 황규희 한국직업능력개발원 과학기술인력공동연구센터소장, 2009-11-19 17:45)
진화경제학, 마이클 셔머 지음 | 박종성 옮김 | 한국경제신문사 | 516쪽 | 2만5000원 
 
'경제학'하면 수식과 그래프부터 떠올리는 사람이 많겠지만 《진화경제학》은 제목에서부터 우리를 매우 낯설게 한다. '진화'라는 생물학 용어를 가지고.
 
그간 신고전파 경제이론은 설명요인을 확대하며 분석 능력을 높이고자 했으나 '설명요인과 피설명요인 간''각종 설명요인 간' 상호 연계는 여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테면 '내생적 성장모형'은 기술혁신-교육 등을 추가하며 경제성장이론을 설명하려 하지만 기술혁신이나 교육 투자가 어떻게 성장을 추동하는지는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진화경제학》은 진화론의 틀로 여러 요인들의 상호작용과 그 변화를 설명한다. 한마디로 '경제는 매우 복잡한 시스템으로,단순한 단계로부터 진화 · 발전하며 환경에 맞춰 적응하고 변화해왔다'면서 '진화경제학은 경제학을 진화 · 발전하는 복잡한 적응시스템으로 보고,생존을 위해 무리생활을 하는 영장류의 길을 택했던 인간의 특성과 관련짓는 경제학 연구의 한 갈래'라고 설명한다.
 
이 책의 문제 제기는 △경제는 어떻게 수렵채집경제에서 소비교역으로 진화했는가 △수렵채집경제에 맞도록 진화 · 적응한 인간의 두뇌가 어떻게 소비교역 경제시스템 안에서도 기능하는가 △어떻게 도덕적인 감정이 진화해서 서로 협력하게 하고 또 공정하고 자유로운 교역을 촉진시켰는가 하는 것이다. 아울러 사회와 경제 시스템의 행태,시장과 경제 시스템에서 작동하는 인간의 심리,도덕적 면모 등을 검토하고,이를 통해 인간이 도덕적 감정을 진화 발전시켜왔다고 분석한다.
 
이 책은 다양한 사회경제적 진화 현상을 설명하며,전통적 경제학 개념을 진화주의 관점에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를 심리학,뇌과학,행동경제학을 동원해 조명한다. 특히 경제현상 내 협력,도덕적 선택,신뢰가 어떻게 인간의 본성으로 진화된 것인지 살피면서 시장기능에 대한 지지를 역설하고 있다.
 
또 '현실 경제의 시장실패는 신뢰의 환경이 붕괴되고 도덕적 행동이 발현되지 않은 데서 생긴다'며 이에 대응한 정책은 인간의 최대자유에 최소한의 제한을 가하는 것임을 입증한다. 따라서 교역과 신뢰를 이어줄 수 있는 도덕적 감정이 지속적으로 진화했듯이 이를 더욱 촉진시키기 위해 자유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역설한다.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시장 자본주의를 확산시키고,개인 간 그리고 국가 간 신뢰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며,정치 · 경제권력의 투명성을 유지하고,어디에서든 누구나 모든 지식에 접근할 수 있고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하며,정치적 경제적 국경을 개방해야 한다.' 이 같은 진화경제학적 입장이 '자유주의에 기반한 시장경제'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경제 제도의 진화에 주목하면서 자유주의와는 상당한 거리를 가지는 시각도 있다.
 
진화경제학에 접목된 진화는 다윈의 이론보다 라마르크의 이론과 더 가깝다. 생물체의 유전 정보가 다윈의 돌연변이와 적자생존으로 설명되는 것에 비해 사회경제에서는 성공 경험이 반복 · 증폭될 수 있으며 학습을 통해 확산되고 발전될 수 있다는 점에서 라마르크의 용불용설 이론에 가까운 것이다.
 
유기체의 진화는 변이와 누적적 선택(도태)에 의해 움직이나 사회경제에서는 인간의지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진화는 '이미 온 결과'를 해석할 때는 유리하지만 '아직 오지 않은 결과'를 전망할 때는 불리할 수 있다. 그러나 생물학적 진화론이 유전공학과 바이오 혁명의 모태가 됐듯이 진화경제학은 수식과 그래프에 의한 도식적인 설명을 넘어 살아있는 유기체로의 경제 현상을 설명하고 경제문제 처방과 정책 개발에 새 생명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통경제학과 생물학,진화이론,심리학,행동경제학,진화경제학을 넘나드는 저자의 박식함이 놀랍다. 그래서 번역의 어려움도 더 컸으리라. 많은 이론들을 아우르면서 이해하기 쉽게 우리말로 옮긴 역자의 소감이 개정판에는 포함되길 기대한다. 
 
------------------------------
[책으로 읽는 경제이야기]경제는 ‘불안’을 먹고 산다 (내일, 박준규 기자, 2009-11-20 오후 12:54:55)
“고전적 경제학은 태생적 실패” … 진화론적 관점이 불황 해법
 
전통적인 경제학은 ‘서브프라임사태’ 앞에서 말을 잃었다. 특히 미국발 위험이 우리나라까지 전염되는 부분을 ‘효율성’과 ‘생산성’ ‘균형’이라는 기존 경제학의 코드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시장이 탐욕과 방탕에 노출될 때를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작은 요동이 시스템 내에서 증폭과정을 통해 일파만파 확산된 경로를 알 수 없었고 지금도 모른다. 금융위기가 마무리국면에 접어들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원상태로 돌아갈 따름이다. 모르는 것은 덮어두자는 것이다.
 
마이클은 ‘진화경제학’이 원인을 풀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한 두 개의 변수로 극단적인 수치화를 거쳐 이론을 만들어낸 전통적인 경제학과는 달리 복잡해진 경제현실을 반영한 또다른 해석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는 “변이와 다양성을 중시하고 동태적으로 시장을 관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인 ‘진화’로 경제학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화는 다양성 중 일부가 강화되고 확산되는 연쇄작용이다. 한 특징이 많은 무리에 의해 채택되면 균형이 그 쪽으로 옮겨간다는 ‘경로 의존성’과 한 특징을 많은 무리가 선택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는 ‘전략적 보완성’은 균형이 합리성이나 효율성과는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마이클은 ‘진화론적’ 관점이 시장을 이해해 돈의 흐름을 읽고 불황의 원인뿐만 아니라 해법도 찾아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 새로운 고객과 블루오션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유혹했다. 
 
-------------------------------
[BOOK] 정교하던 판다의 발가락, 편리한 ‘드보락 자판’이 도태한 이유 (중앙일보, 정강현 기자, 2009.11.21 01:51)
 
 정통 경제학은 미국의 서브 프라임 사태와 같은 비합리적 시장 상황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다. 합리성과 균형의 잣대론 미국 시장에서의 작은 요동이 글로벌 경제 위기로까지 번진 것에 대해 해명하기란 어렵다. 그러니 경제는 생물 어쩌고 하며 발뺌을 하곤 하는 게다. 진화생물학자인 저자는 그러나 ‘경제=생물’이란 등식에 주목했다. 예측 불가능한 시장에 대한 변명거리가 아니라 경제학의 핵심으로 이 등식을 불러들였다. 시장 경제는 물리학의 세계처럼 질서정연하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경제가 생물이라면, 생물학적 관점에서 경제를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화경제학’이란 학문의 틀은 그렇게 빚어졌다. 경제의 진화 역시 생물의 진화와 구조적인 유사성을 띄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책은 경제를 진화·발전하는 복잡한 적응 시스템으로 간주한다. 경제도 생물처럼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진화해가며 성장·학습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제학의 ‘경로 의존성’이란 개념은 진화생물학과 묘하게 포개진다. ‘경로 의존성’이란 특정 전략을 채택하는 사람이 많으면 균형이 그쪽으로 쏠리게 된다는 이론이다. 더 나은 구조를 가지고 있어도 경로 의존성이 낮을 경우 시장에서 퇴출된다는 것이다.
 
‘쿼티 컴퓨터 자판’에 비해 훨씬 정교했던 ‘드보락 자판’이 시장에서 외면당한 것이 좋은 예다. 저자는 판다의 진화를 예로 들며 경제학과 진화생물학의 유사성을 살핀다. 판다의 엄지발가락은 원래 오밀조밀했지만, 대나무 잎사귀를 훑어 먹기에 편하도록 투박하게 변화됐다. 정교함이 무력화되곤 하는 시장의 경우와 딱 맞아 떨어진다.
 
책은 이와 유사한 다양한 경제적 진화 현상을 심리학·뇌과학·행동경제학 등의 메스로 집중 해부한다. 그러면서 생물학적 진화가 그랬듯, 진화하는 시장의 방향을 인간이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도탄에 빠진 시장을 살릴 해법을 진화생물학의 눈으로 모색했다. 종종 예측의 실패를 거듭했던 정통 경제학의 구멍을 넉넉히 메워줄 책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경제학이 숨겨온 6가지 거짓말/피트 런 지음ㆍ전소영 옮김/흐름출판

---------------------------------
[신간도서] '경제학이 숨겨온 6가지 거짓말' (프라임경제, 2009년 10월 23일 (금) 10:51:17 한종환 기자)
불안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경제학에 관한 진실 
 
최근 ‘신용경색’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등장했다. 하지만 표준 경제학은 이 단어가 발생한 상황을 설명하지 못한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투명성에 대해 말하면서, 마치 무언가가 부실채권의 실제 가치를 적극적으로 가리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자신이 무엇을 거래하고 있는지 사실상 몰랐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두뇌들조차 속은 것이다. 만약 불확실성이 그들을 속일 수 있다면 당연히 우리 모두를 속일 수 있다. 행동경제학은 실제로 현실이 그러하다는 사실, 우리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런 문제를 다루기 위해 정교한 본능을 발달시켜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행동경제학은 시장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놓을 것이다. 근로자 사이에 임금 격차가 발생하는 이유, 마케팅의 역할, 경쟁이 효율적이라는 잘못된 관점, 다국적기업의 위력, 낮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집착 등에 관한 진실을 알려줄 것이다. (본문 중에서)
  
◆인간은 ‘의외로’ 합리적·효율적이지 않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길을 가르쳐줄 때 오래 전에 문을 닫은 술집의 위치를 기준으로 설명해준다. 문을 닫은 술집이라도 마치 여전히 성업 중인 술집인 것처럼 어떤 집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라고 길을 가르쳐준다. 한때 방향의 지표였던 술집이 일종의 ‘정신적 지표’가 된 것이다. 심지어 더블린에서는 레너드의 술집이 있었던 “레너드 모퉁이로 갑시다” 하고 말하면 모든 택시기사가 바로 알아듣는다. 이런 기준은 그들에게는 길을 찾는 완벽한 방식이다.
 
그런데 최근 시의회에서 더 효율적인 체계를 만든다는 계획 아래 더블린의 주요 교차로에 알파벳과 숫자로 이름을 붙이고 그에 맞는 새로운 도지 표지판을 만들었다. 시의회의 계획대로라면 더블린 시민들뿐 아니라 관광객들도 체계화된 도로 시스템 덕분에 길 찾기가 한결 수월해져야 한다. 하지만 누구나 짐작하듯이 시민들은 여전히 “레너드 모퉁이로 갑시다”라고 외치고, 관광객들이 택시기사에게 J14에 내려달라고 말하면 아일랜드 상소리나 들을 게 뻔하다. 이처럼 한 사회에서 공통된 인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인간의 기본적인 사고체계는 경제학에서 내세우듯 항상 효율적이거나 합리적인 방식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의외로.
 
◆인간을 ‘불행’에 빠뜨린 경제학
지금까지의 경제학은 ‘인간은 합리적이다’라는 전제 아래 인간의 마음속은 들여다보지 않은 채 경제 이론만을 내세웠다. 경제학이 인간의 마음을 보지 못한 오류는 이런 것들이다. 예를 들어 백화점에 옷을 사러 갔다면, 예산 범위에서 자신의 행복을 최대화해줄 수 있는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고 합리적이다. 하지만 막상 쇼핑을 시작하면 인간의 마음은 ‘합리성’에서 벗어나 예산 범위를 넘어서는 것은 물론, 때론 지름신 앞에서 속수무책이 되어버리곤 한다. 합리적인 인간이 왜 땅을 치며 후회할 짓을 한 걸까?
 
이 책은 그에 대해 명쾌한 답을 제시해준다. 바로 ‘인간은 이기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는 행동경제학적 논리다. 특히 기존의 경제학이 주장해온 6가지 전제―1. 인간은 무조건 이익을 추구한다, 2. 세상은 예측 가능하다, 3. 인간은 이기적이다, 4. 아무리 광고해도 소용없다, 5. 조직은 합리적이다, 6. 기업은 이윤 극대화를 목표로 한다―는 경제학이 ‘행복’을 내세우며 오히려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전통 경제학에서 말해온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공간을 마케토피아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마케토피아 인으로 설명한다. 반대로 행동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이기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오히려 불확실한 지금과 같은 현실 세계를 머들톤, 그리고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머들톤 인이라 칭한다. 마케토피아 인에게 ‘행복’은 자신이 선호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어느 정도 살 수 있는지와 그 비용을 지불하려면 얼마나 일해야 하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고 주변 사람들의 인생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물질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 것이다.
 
◆새로운 경제학이 필요하다
현실 세계는 ‘불확실성’이 존재하고 인간에게는 ‘본능’과 ‘충동’과 같은 심리가 존재한다. 그런데도 경제학에서는 효율성과 합리성에 근거해 ‘경제적인 인간이 가장 행복한 인간’이라며 인간을 옥죄왔다. 인간에게는 ‘1+1=2’나 ‘give and take’와 같은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사고가 나지 않으면 돈을 받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자동차보험에 가입하고(3장, 인간은 무조건 이익을 추구한다), 비싼 찻값에도 불구하고 공정무역 카페를 찾거나(5장, 인간은 이기적이다), 광고란 속임수임을 알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그 물건을 사게 되는 경우(6장, 아무리 광고해도 소용없다)들 말이다. 지금까지의 경제학은 인간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피트 런은 특이하게도 신경과학을 전공한 신경경제학자로, 그는 이 모든 상황의 실마리를 ‘인간의 본능’에서 찾았다(사실 원서 제목은 ‘Baic Instincts경제 본능’이다). 그는 과학적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구시대의 명제를 교체할 경제학은 새로운 핵심 이론 명제로 부상할 것이며, 신경과학의 연구 기법을 경제학 문제에 적용한 ‘신경경제학(neuroeconomics)’의 도래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살과 피로 이루어진 존재라는 사실을 경제학자들에게 알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뇌 연구가 미래에 경제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서는 회의적이라고 밝히긴 했지만, 분명 경제학이 맞이하고 있는 변화와 쇄신의 시기를 대표하는 징후임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경제학과 학생들이 논문이나 시험에 필요한 엄청난 양의 방정식과 도표만 잔뜩 들어 있는 경제학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인간의 마음속까지 들여다보는 더 나은 경제학이며, 그 경제학은 불확실한 세계에서 우리가 지혜롭게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줄 것이라고 피력하고 있다.
 
◆차례
프롤로그- 경제학조차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들
덧붙이는 글- 주류 경제학은 ‘서브 프라임’을 모른다
 
1부. 위기의 경제학
  1장. 당신이 믿어온 경제학은 가짜다
  2장. 경제학의 함정
 
2부. 경제학이 숨겨온 6가지 거짓말
  3장. 경제학의 거짓말
      -1. 인간은 무조건 이익을 추구한다
  4장. 경제학의 거짓말
      -2. 세상은 예측 가능하다
  5장. 경제학의 거짓말
      -3. 인간은 이기적이다
  6장. 경제학의 거짓말
      -4. 아무리 광고해도 소용없다
  7장. 경제학의 거짓말
      -5. 조직은 합리적이다
  8장. 경제학의 거짓말
      -6. 기업의 목표는 이윤 극대화다
 
3부. 경제학의 진화
  9장. 행동경제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경제
 10장. 올바른 경제학의 미래 
 

-----------------------------------
[책과 삶]생활경제 움직이는 ‘내안의 지름신’ (경향, 김종목기자, 2009-10-23 16:56:16)
 
일반 경제 이론을 따르자면, 사람들은 적게 일하고, 많이 벌 수 있는 직장을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돈을 덜 받고 일은 더 많이 하는 직장을 선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임금과 실업에 관한 일반치가 무조건 적용되지는 않는다. 윤리적 소비 개념에 따라 상대적으로 비싼 공정무역 커피를 사먹곤 한다. 비싼 줄 알면서도 동네 슈퍼에서 물건을 사는 일도 흔하다. 대형 유통업체에 대한 반감이나 슈퍼 주인과의 안면·인연도 무시할 수 없다.
 
책은 최근 떠오르는 ‘행동경제학’의 관점으로 일반 경제 이론 즉 표준경제학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 저자는 리스크가 크면 손해를 보더라도 익숙함을 택하고, 친구나 선후배, 동료에게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고 말한다. 광고로 한순간에 불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고, 불확실한 현실에서 기업은 이윤 극대화보다 장기적 생존을 최우선 순위로 꼽기도 한다.
 
저자의 목표는 인간의 경제 행위를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 즉 ‘경제 본능’을 찾아내는 것이다. 담배를 다량 구입하면 돈을 절약할 수 있지만, 한두 갑씩 사면 흡연량을 줄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소량 구입하는 게 경제 본능의 한 사례다. 지름신 같은 ‘충동’은 표준경제학에서 측정하기 힘들지만 실제 생활 경제에서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저자는 표준경제학 이론이 이상적으로 실현되는 가상의 경제지역 ‘마케토피아(Marketopia)’를 설정한다. 마케토피아인들은 완벽한 ‘경제적 인간(호모 에코노미쿠스)’들이다. 물건을 사고 팔 때 독립적이고, 이기적이며 합리적이다. 시장과 상품에 관한 정부를 꿰뚫고 있다. 사과를 살 때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따라 먹을 사과 개수와 만족도를 따져 구입한 뒤 행복해한다. 표준경제학처럼 사는 게 가능할까. ‘마케토피아’는 한 편의 우화와도 같을 것이다. BBC 기자 출신인 저자가 풍부한 사례와 상상력으로 행동경제학을 쉽고 재밌게 소개하는 게 장점이다.
 
--------------------------------------
충동구매 설명 못하는 가짜 경제학은 가라 (한국, 박광희기자, 2009/10/23 21:57:58)
경제학이 숨겨온 6가지 거짓말/피트 런 지음ㆍ전소영 옮김/흐름출판 발행ㆍ328쪽ㆍ1만4,000원
 
하는 일이 술술 풀릴 때 사람들은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 반대로 하는 일마다 뜻과 달리 되면 자신과 세상을 되돌아본다.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간다면 경제학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현재 경제가 좋다고 보는 사람은 드물다. 이처럼 경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경제학은 그 능력을 의심받았다. <경제학이 숨겨온 6가지 거짓말>은 기존 경제학의 전제에 반기를 들고 그 오류를 꼬집으려는 행동경제학 서적이다.
 
기존 경제학은 인간은 '합리적'이라는 견해를 바탕으로 깔고 있다. 인간이 합리적이라면 그 마음 속 깊은 곳을 들여다볼 필요가 없고 그 행동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 책에 따르면 인간의 경제행위가 꼭 합리적이지는 않다. 가령 옷을 사러 갔다가 예산 범위를 초과하는 옷을 가방에 집어넣는 경우가 있다. 집에 돌아와 후회하지만 이미 옷값을 지불한 뒤다. 후회를 하고도 또 반복하는 게 인간이다.
 
사고가 나지 않으면 보험금을 받지 못할 것을 알고도 자동차보험에 들거나, 광고가 속임수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느새 광고에서 본 물건을 사게 되는 것도 기존 경제학은 설명하지 못한다. 이런 행위의 배경은 세계에는 불확실성이, 인간에게는 본능과 충동의 심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 경제학은 그런 점을 간과한 채 인간의 경제행위는 효율적, 합리적이며 경제적인 인간은 행복한 인간이라고 주장해왔다.
 
이 책은 기업과 노동자의 관계 및 임금에 대한 시각에서도 기존 경제학은 한계를 드러낸다고 주장한다. 전통 경제학에 따르면 노동자는 돈에 의해서만 움직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노동자들이 손해를 감수하며 일한다. 임금 역시 개인의 생산성과 정비례하지 않는다. 생산성 높은 사람이 임금을 많이 받는 경향은 있지만, 개인의 임금은 생산성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으며, 기업 역시 그렇게 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신경과학을 전공했다. 따라서 행동학적 실험을 통해 밝혀지는 인간의 경제 본능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런 접근이 기존 경제학이 놓친 인간의 행동, 인간의 마음을 주목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
인간은 이익을 추구하고 합리적이다? 당신이 믿어온 경제학은 가짜 (서울, 문소영기자, 2009-10-24  18면)
 
미국의 행동경제학자이자 경제심리학자인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연구에 따르면 피실험자들 중 지폐를 잃어버린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 표를 사서 영화를 보겠다고 답변했지만, 표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경우는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답변하는 사람이 절반 이상이었다. 표를 잃어버린 사람이나 지폐를 잃어버린 사람 모두 4만원을 손해 봤지만 행동은 서로 달랐다. 왜 그럴까. 인간의 인지에는 돈을 잃어버리는 것이 표를 잃어버리는 것보다 ‘돈의 낭비’이라는 구체적인 느낌이 적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행동경제학이나 심리경제학에서 사람들의 경제행위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설명한다.
 
‘경제학이 숨겨온 6가지 거짓말’(피트 런 지음, 전소영 옮김, 흐름출판 펴냄)은 주류경제학에서 주장하는 ‘인간은 경제생활을 할 때 이기적이고 독립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물질주의자’라는 전제가 이처럼 오류라는 것을 다양한 실례를 통해 보여 주는 책이다. 저자 피트 런은 BBC 기자 출신으로 현재는 아일랜드 더블린 경제사회연구소(ESRI)에서 일하는 경제학자다. 24살에 런던 대학에서 인지신경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경제 문제도 인지와 신경과학의 차원에서 점검하고 있다. 그는 통화주의자나 신자유주의 등 주류경제학자들이 인간의 경제생활이 합리적이지 않은데, 합리적이라는 전제를 깔고 자원의 배분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경제사회적인 오류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근로자들의 임금격차는 당연하고, 경쟁은 좋은 것이며, 규제는 최소화해야 하며, 노동시장은 유연해야 한다거나 세율과 인플레이션은 낮아야 한다는 등 최근 정권을 잡으려는 대다수 정치인들이 내놓은 정책은 잘못된 전제를 활용한 잘못된 정책이라고 전한다. 임금격차를 예로 들어보자. 주류경제학에서 A씨와 B씨의 임금격차는 A씨와 B씨의 생산력의 차이를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가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승진과 출세에는 그 사람의 순수한 생산력의 차이뿐만 아니라 가족의 배경이나 운, 사회적 네트워크와 그에 대한 접근 능력 등 경제와 생산 외적인 요인이 작용한다는 것을 잘 알지 않느냐고 말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여기저기 사례로 적시한다. 당신은 옷을 살 때 왜 전국의 옷가게 가격을 다 점검해 보고 가장 저렴한 옷을 구입하지 않는가. 사람들은 왜 ‘공정무역’이란 상표가 붙은 커피나 의류, 소비재들이 더 비싸다는 것을 알면서도 구입하는가. 사람들은 왜 질레트 면도기가 다른 수입면도기보다 더 비싼데도 굳이 질레트를 고집하는가. 질레트의 시장점유율은 미국 65%, 영국 60%, 프랑스 70%, 중남미 국가 85% 등등이다.
 
이쯤에서 주류 경제학의 여섯 가지 거짓말을 밝혀 보자. ▲인간은 무조건 이익을 추구한다 ▲세상은 예측가능하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광고해도 아무 소용없다 ▲조직은 합리적이다 ▲기업의 목표는 이윤추구다 등이다. 저자는 이 여섯 가지의 주류 경제학의 명제가 모두 ‘F(False)’라고 3장에서 8장까지 설명한다. 인간은 정의로운 일에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은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로 인해 발생한 2008년 세계경제 위기처럼 예측가능하지 않으며, 광고를 통해 구현된 시뮬라시옹(가상현실)에 홀려 기업들이 거액의 광고비 지출을 용인하는가 하면, 조직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게 돌아간다.
 
현재 주류경제학자들의 주장은 사람들의 인식은 물론 마음까지 잠식해들어간 상태다. 하지만 저자는 독자들에게 말한다. 기존 경제학의 오류를 뼈저리게 깨닫고 기존 경제학의 쇄신과 혁명을 이끌어 새로운 경제학을 만들어 내자고. 
 
-------------------------------------
[책]경제학이 숨겨온 6가지 거짓말(피트 런 지음/전소영 옮김) (매일신문, 조두진기자, 2009년 11월 04일)
전통 경제학 오류는 인간의 비합리성 외면한 탓
 
‘갖가지 통계와 미사여구로 무장했지만 전통 경제학은 인간의 마음을 볼 수 없다. 그래서 오류투성이다.’ 이 책 ‘경제학이 숨겨온 6가지 거짓말’을 간단히 정의한다면 그렇다.
 
지은이는 “지금까지 경제학은 ‘인간은 합리적이다’는 전제 아래 이론을 세워왔다”고 말한다. 예컨대 백화점에 옷을 사러 간 사람은 자신의 예산 범위 내에서 행복을 최대화 해줄 수 있는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고 합리적이다. 그러나 막상 쇼핑을 시작하면 ‘합리성’에서 벗어나기 일쑤다. 이른바 ‘지름신’이 강림하면 속수무책이 돼 버린다. 합리적인 인간이 어째서 나중에 땅을 치며 후회할 짓을 하는 것일까. 자신이 감당하기도 어려운 일을 저지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경제학은 ‘지름신’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책은 ‘인간은 이기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는 행동 경제학적 논리를 내세운다. 특히 기존의 경제학이 주장해온 6가지 전제는 틀렸다고 비판한다. 기존 경제학의 6가지 전제로는 ‘광고에 거짓말이 많은 줄 알면서도 구입하는 행위, 비싼 찻값에도 불구하고 공정무역 카페를 찾는 행위’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전통 경제학은 인간이 저지르는 실수나 변덕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전통 경제학이 말해온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공간을 마케토피아로, 그곳에 사는 사람을 마케토피아인으로 설명한다. 반대로 행동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이기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으며 불확실한 현실 세계를 머들톤, 그곳에 사는 사람을 머들톤인이라고 칭한다. 마케토피아인에게 ‘행복’은 자신이 선호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어느 정도 살 수 있는지, 그것을 사는 데 얼마나 비용이 필요한지가 관심사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고 주변 사람들의 삶은 중요하지 않다. 마케토피아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물질이다. 지은이는 바로 이점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지은이 피트 런은 신경과학을 전공한 신경경제학자다. 그는 경제학과 학생들이 방정식과 도표만 잔뜩 들어있는 경제학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의 마음속’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신경경제학’이라는 것이다. 이 책이 말하는 ‘신경경제학’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분야이지만, ‘주경제학’이라기보다 ‘보완 경제학’ 정도가 돼야 할 듯하다. 아직 완전히 통계화하지 못했을 뿐 현대 경제학 역시 궁극적으로 인간의 심리를 연구 대상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슈퍼 괴짜경제학/스티븐 레빗, 스티븐 더브너 지음·안진환 옮김

 
----------------------------------
더욱 괴짜스러워진 '슈퍼 괴짜경제학'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2009-11-24 09:41)
'괴짜경제학' 후속편 출간
 
마약 거래자나 KKK 단원들의 행태 등 엉뚱한 소재로 경제학을 풀어놓은 책 '괴짜경제학'의 저자들이 4년 만에 후속편 '슈퍼 괴짜경제학'(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원제 Super Freakonomics)을 냈다. '세상의 이면을 파헤치는 괴짜 천재의 실전경제학'이라는 부제가 붙은 '슈퍼 괴짜경제학'은 '경제학계의 인디애나 존스'로 불리는 스티븐 레빗 시카고대 교수와 언론인 출신의 스티븐 더브너가 함께 쓴 두 번째 책이다.
 
image지난 10월 출간되자마자 인터넷 서점 판매 순위 상위에 오르고 폴 크루그먼, 그레고리 맨큐, 브래드 드롱 등 저명 경제학자들이 이 책의 내용을 놓고 열띤 온라인 논쟁을 벌이는 등 전작 못지않은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경제학이라는 말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소재에 '경제학적 접근'을 시도하던 저자들의 '괴짜스러움'은 이번 책에서 한층 더해졌다. ▲길거리 매춘부와 백화점 산타클로스가 노리는 것 ▲자살폭탄 테러범들이 생명보험에 들어야 하는 이유 ▲앨 고어와 피나투보 화산의 공통점 등 목차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내용 중 하나는 이들이 풀어낸 매춘의 경제학. 이들의 조사에 따르면 시카고의 매춘부들은 평균 주당 350달러를 벌어들이는데 이는 100년 가격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다. 이러한 매춘부들의 수입 감소에는 수요의 급감이 큰 영향을 미쳤는데, 매춘부를 위협하는 가장 큰 경쟁상대는 다름 아닌 '일반 여성'들이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미국 남성 가운데 적어도 20% 첫 경험을 매춘부와 한 데 반해 요새는 그 수치가 5%로 줄었다. 남자와 기꺼이 무료로 섹스하는 여성들이 많아진 탓이다. 결국 혼전 섹스가 매춘의 대체물이 된 셈이다.
 
시카고 매춘부들의 '영업'행태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은 그들이 백인 손님보다 흑인 손님에게 화대를 적게 받는다는 것이다. 화대를 흥정하려는 경향이 있는 흑인들에게는 납득할 만한 가격을 단호하게 제시해 더이상 깎지 못하게 하지만, 부유한 백인들에게는 직접 가격을 제시하게 해 자신이 기대한 것보다 높은 화대를 받아낸다. 이는 기업 출장용 비행기 티켓을 여행용 티켓보다 비싸게 판다거나 미용실에서 여자 손님에게 남자 손님보다 훨씬 비싼 비용을 내게 하는 것과 같은 원리의 이른바 '가격 차별' 정책이다.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효율적인 대안을 경제학적으로 모색한 부분은 이 책에서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이기도 하다. 저자들은 개인이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하는 일이 대부분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거나 상황을 악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가령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타더라도, 그 차로 마트에 가서 소고기를 구입했다면 소가 뿜는 메탄가스가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효과를 모두 상쇄한다는 것이다. 메탄가스를 내뿜지 않는 캥거루 고기를 소고기 대신 먹을 게 아니라면 이러한 방법들보다는 긴 호스 끝에 풍선을 매달아 하늘에 띄우고 극소량의 이산화황을 뿌려 지구 기온을 떨어뜨리는 식의 인위적인 방법이 더 현실적이라고 말한다.
 
어려운 경제학 용어라고는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 이 독특한 경제학서를 통해 저자들은 통찰력 있게 세상을 읽어내는 시선을 길러준다. 저자들은 서문에서 "우리의 경제학적 접근법은 세상을 우리가 바라는 모습이나 꺼리는 모습으로 설명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설명하기 위한 방법"이라며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세상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인간이 배출하는 CO₂가 온난화 주범? 천만에! 당연한 통설에 딴죽걸기 (문화, 김종락기자, 2009-11-27)
 
출간되자마자 지상 최대의 ‘키보드 배틀’을 불러온 바로 그 책이다. 여기서 ‘지상 최대’라는 의미는 여러가지다. 우선은 논쟁의 주제다. 상대가 보이지 않는 인터넷에서 인격을 돌아보지 않고 벌이는 키보드 배틀, 즉 인터넷 막싸움판의 주제가 머잖아 60여개국의 정상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지구촌 최대의 화두 ‘지구 온난화’라니 말이 되는가. 싸움판에 참여하는 이들의 면면은 더하다. 논쟁의 한 쪽 당사자는 당연히 저자다. 저자 스티븐 레빗은 ‘괴짜경제학’으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은 시카고대의 젊은 석좌교수로, 미국의 예비 노벨상으로 알려진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받은 천재 경제학자다.
 
이에 맞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UC 버클리의 경제학자 브래드퍼드 드롱, 노벨상에 근접한 하버드대 경제학자 그레고리 멘큐, 세계적인 환경학자 조지프 롬 등이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책의 원제목인 ‘Super Freakonomics’를 치면 구글에서만 150만건에 이르는 게시글이 올라오니, 논쟁의 참여자도 대단하다. 40대 천재 경제학자가 과거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와 노벨상 후보들을 상대로 세계 시민들이 관전하는 싸움판을 벌이게 된 책은 대체 어떤 것인가.
 
책을 보자. ‘괴짜경제학’이 그랬듯이 이 책도 일반 경제학 책의 통념을 거부한다. 재기발랄한 스티븐 레빗의 끝간 데 없는 아이디어에 대중적 글쓰기의 달인이다 싶은 스티븐 더브너가 옷을 입혀 경제학 책 읽기의 재미가 어지간한 소설을 능가하는 것도 그렇다. ‘괴짜경제학’에서 마약판매상, KKK단, 범죄율 통계 등에서 경제학의 숨은 원리를 찾았듯이 이 책의 첫 주제도 음주보행이다.
 
자, 당신이 오랜만에 친구들과 어울려 미리 송년회식을 하며 술을 몇잔 마셨다 치자. 술을 마신 곳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다행히 1∼2㎞. 이때 당신은 음주 운전을 하는 것이 안전할까, 차를 두고 걸어가는 것이 안전할까. 국내에서는 관련 통계가 없어 알 수 없다. 하지만 책이 미국의 사고 통계 등을 따져 계산한 바에 따르면 술을 마신 채 걸어가다 자동차에 치여죽을 확률이 음주 운전보다 8배쯤 높다.
 
음주 보행 소재는 맛보기에 불과하다. 책은 이어 밤중, 아파트 앞 주차장에서 30분에 걸쳐 한 여성이 살해되는 것을 지켜본 주민들 중 단 한 사람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아 현대인의 비정함의 상징이자 심리학의 주요 주제로 등장한 ‘키티 제노비즈 사건’도 다룬다. 어떻게? 저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사건 자체가 경찰과 신문기자가 만든 허구다. 이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심리학 이론을 확 허물어버리는 것이다. ‘독재자 게임 실험’을 통해 세계의 석학들이 수많은 논문을 쏟아낸 인간의 이타성도 단 몇 개의 조건을 추가한 실험을 통해 가볍게 짓뭉개 버린다.
 
뒤집기의 절정은 역시 책이 제기한 지구 온난화 해결책이다. 책은 인간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는 것 자체에 딴죽을 걸며 그렇지 않은 증거를 수집해 나간다. 이를테면 소나 양 같은 반추동물의 방귀에서 나오는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25배나 강력한 온난화 물질이고, 해수면 상승은 빙하의 녹은 물보다는 해수 온도 상승이 보다 더 큰 원인이며, 지구 전체로 보아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이 2%뿐이라는 것 등이 그것이다. 그러니 탄소 저감으로 온난화를 잡겠다는 계획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당연하다. 레빗과 더브너는 "값비싼 탄소 규제 정책을 만드느니 인위적인 방법으로 지구의 환경 문제를 해결하라"고 말한다. 지구 대기 성층권에 빛을 잘 반사시키는 이산화황을 뿌리는 기구를 설치하거나 풍력 등을 이용해 물보라를 일으킴으로써 구름의 반사 능력을 높여 태양광을 반사시켜 온도를 낮추라는 식이다. 이산화탄소 배출권 거래 등은 실현돼도 이미 늦었으며, 만약을 위해 당장 실행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이 제안이 지닌 정치적인 함의와 위험성으로, 세계적인 인터넷 논쟁을 불러온 것은 우리가 아는 바와 같다.
 
그렇다고 책의 최종 목적조차 통념 뒤집기에 있는 건 아니다. 뒤집기에서 저자가 일관되게 놓치지 않는 것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어내는 경제학의 원칙이다. 책은 음주운전에서 매춘, 살인사건, 의사의 손씻기, 온난화 문제 해결책 등 온갖 것을 다룬다는 점에서 ‘괴짜’임에 틀림없지만 최소 비용과 최대 효율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경제학’책이 분명하다. ‘슈퍼’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발상 뒤집기가 더욱 본격적이면서도 강도가 더욱 세졌다는 의미이리라. 하지만 출간하자마자 불러일으킨 ‘슈퍼 논쟁’으로 인해 수식어에 관계없이 책은 이미 ‘슈퍼괴짜경제학’이 돼 버렸다. 
 
-----------------------------------------
산모 사망 원인은 의사들의 불결…손씻을 때마다 인센티브를 주자 (매경, 손동우 기자, 2009.11.27 14:40:42)
`경제학계 인디애나 존스`의 괴짜경제학 2탄
   
전작이 인센티브로 움직이는 세상을 주제로 했다면 `슈퍼 괴짜경제학`은 인센티브의 원리를 가로막는 외부 효과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은 4년 전보다 더 도발적이다. 하지만 이 책이 다루고자 한 바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은 `산모 사망의 딜레마`가 아닐까 싶다. `매춘의 경제학` 부분도 흥미롭다. 이들의 조사에 따르면 시카고 매춘부들은 평균 주당 수입이 350달러로 100년 전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 책에 따르면 매춘의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인데 그 경쟁상대란 혼전 섹스 등에 너그러워진 ‘일반’ 여성들이란다. 1933~1942년 사이에 태어난 미국 남성 중 적어도 20%가 매춘부와 ‘첫 경험’을 했지만 현대 젊은이들의 경우 5%만이 그렇다든가, 이전 세대에선 33%만이 혼전 섹스를 경험했지만 지금은 70% 이상이라는 근거를 제시한다. 일반 여성이 매춘부의 `대체재`가 된 셈이다. 레빗과 더브너는 또 `매춘부들이 미국 독립기념일 대목을 겨냥해 가격을 30% 정도 올리는 행위는 수요ㆍ공급 곡선을 무의식적으로 이용하는 행위다` `매춘 소탕은 사회의 대리인이라 할 수 있는 현직 경찰들에게 주어지는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내용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저자들은 왜 `괴짜` 같은 방법으로 경제학을 일상에 적용하는 것일까. 그들은 서문에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선 먼저 세상을 이해해야 한다"며 "우리의 접근법은 세상을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설명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즉 일상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괜히 어려운 경제학 용어를 이야기하며 요란만 떨지 말고 그 이면의 진실을 보면 보다 간단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게 그들의 얘기다.
 
----------------------------------
[BOOK] 100년 전 뉴욕의 골칫덩이 마차의 말똥 처리 전차·자동차가 해결했다? (중앙, 김성희 기자, 2009.11.27 19:39)
매춘부 수입은 왜 떨어졌나
음주운전이 음주보행보다 안전?
엉뚱발랄하게 경제학 비틀어
 
지은이들은 혼전 섹스를 범죄로 규정하거나 무거운 세금을 물리도록 하는 법안이 만들어졌다면 이 ‘가장 오래된 산업’이 흔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란 우스개를 던진다. 덧붙여 매춘업에 종사하는 많고 많은 사람들이 정부 고위관리들과 ‘안면’이 있지만 ‘슬프게도’ 설탕이나 제강산업과 달리 그런 입법을 추진할 로비스트를 구하지 못한다고 한탄한다. 이것이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엉뚱하게 적용했다는 느낌이라면 미국 학생들의 학력저하를 다룬 대목은 도발적 주장이 눈길을 끈다. 1967과 1980년 사이에 미국 학생들의 시험 점수는 약 1.25학년만큼 낮아졌다.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이런 사태는 페미니즘의 성공 탓이란다. 1960년대 평등임금법과 민권법이 통과된 후 고학력 여성들이 임금이 높은 법률· 의료· 비즈니스 등으로 많이 진출했기에 교사들의 ‘두뇌유출’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1960년 여성교사의 약 40%가 IQ 및 기타 적성검사에서 상위 20%에 속했고 바닥수준은 8%에 그쳤다. 하지만 20년 후 조사에서 상위수준 여성교사는 절반으로 준 반면 바닥수준 교사는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결국 교사의 수준이 낮아지면서 학생들의 학력도 떨어졌다는 설명이다.
  
그런가 하면 남녀임금격차는 성차별보다 성취욕의 차이가 더 큰 원인이란 주장도 제시한다. 고소득 남편을 둔 여성들이 첫 아이 출산 후 몇 년 이내에 노동시간을 줄인다는 연구결과가 그 논거다. 그러면서 똑똑하고 총명한 수많은 여성들이 더 높은 임금을 받기 위해 MBA를 따지만 결국은 똑똑하고 높은 임금을 받는 남성과 결혼해 일을 덜하게 되는 모순을 슬쩍 꼬집는다.
 
책에는 이처럼 ‘과연 그럴까’ 싶은 설명과 주장이 수두룩하다. 19세기 말 미국 뉴욕시가 주요 교통수단인 말과 마차에 의한 교통정체와 소음, 교통사고 사망자 그리고 말똥처리에 쩔쩔 맸는데 이 난제를 해결한 것이 전차와 자동차였다는 대목에서는 실소가 나오기도 한다.
 
이 책은 ‘경제학’보다 ‘괴짜’에 방점이 찍힌 책이다. 그러니 취업이나 고시 준비에 도움이 될 책은 아니다. 돈을 버는 데 쓸모있는 책은 더욱 아니다. 하지만 실망할 것 없다. 경제학 자체가 부를 쌓는 데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이름난 경제학자 중 데이비드 리카도, 존 메이너드 케인스 정도가 갑부 소리를 들을 정도였음 기억하자. 대신 다양한 일상의 사건과 인간행동을 이해하는 ‘경제학적 사고’를 키우는 데는 이만한 책을 찾기는 힘들겠다. 
 
----------------------------
[경제경영]‘흑인 손님에겐 왜 화대를 적게 받을까?’… 경제학 비틀기 (동아, 민병선 기자, 2009-11-28 03:00)
◇ 슈퍼 괴짜경제학/스티븐 레빗, 스티븐 더브너 지음·안진환 옮김/348쪽·1만3000원·웅진지식하우스
 
전작인 ‘괴짜 경제학’이 마약 판매상, KKK단 등 독특한 소재를 다뤘던 것처럼 이 책의 소재도 엉뚱하다. 매춘부의 경험담, 사람을 죽인 의사들의 잘못된 관행, 하이브리드 차를 타면 안 되는 이유 등이다. 저자들은 이런 소재를 통해 일반인이 갖는 선입견과 그것이 얼마나 근거 없는 것인지를 밝히는 통찰을 보여준다. 딱히 경제학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들을 통해 사람들의 결정 방식과 마음을 바꾸는 방식을 설명한다.
 
저자들은 인센티브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방해하는 ‘외부효과’를 끌어들여 세상이 의도와 다르게 돌아가는 이유를 설명한다. 저자들은 여러 통계를 예로 들어 많은 의사가 손을 씻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주 저렴한 비용(손을 씻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편익(높은 치료율)을 얻을 수 있는데도 의사들이 손을 씻지 않는 이유는 인센티브가 너무 낮기 때문이다. 즉 죽는 것은 환자지 의사가 아니기에 손 세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
   
19세기 중반 오스트리아의 한 종합병원에서는 산모 6명 중 한 명이 출산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수 많은 산모들을 죽게 한 범인은 다름아닌 의사들. 당시 의사들이 시체를 해부한 손을 씻지 않고 치료해 세균에 감염된 산모가 죽게 된 것이다. 연구통계에 의하면 여전히 많은 의사들이 제대로 손을 씻지 않고 환자를 치료한다. 책은 이 원인이 의사들이 손을 씻는 데 부여되는'인센티브'가 너무 낮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시더스 사이나이 병원에서는 의사들이 손을 씻을 때마다 스타벅스 카드를 주고 손을 세균배양 접시에 찍은 뒤 세균덩어리를 컴퓨터 스크린세이버로 보여줌으로써 100% 가까이 손 세척률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
인간은 왜 기부를 할까? (조선, 신정선 기자, 2009.10.22 03:04)
실험 결과, 상황 따라 베풀기도 하고 뺏기도 해
"대부분은 자신 마음 편하기 위해 이타심 발휘"

 
인간의 행동을 경제학적 시각과 논리적 실험으로 파헤친 베스트셀러 '괴짜 경제학'의 속편인 '수퍼 괴짜 경제학'이 20일 발간됐다. 공동 저자인 스티븐 레빗(Levitt) 시카고대 교수와 저널리스트 스티븐 더브너(Dubner)는 새 책에서 '자살폭탄 테러범이 생명보험을 들어야 하는 이유' '의사들이 손을 씻지 않는 이유' '허리케인·심장마비·고속도로 사고사의 공통점' 등을 들여다봤다. 뉴욕타임스는 발간에 맞춰, 이 책에서 다룬 '이타심(利他心·altruism)의 숨은 진실'에 대한 내용을 소개했다.
 
너무나 순수하고 말 그대로 박애적인 기부 행위는 과연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이뤄지는 것일까. 실제로 기부행위가 바라는 것 없이 이뤄지는 것으로 밝혀지면, "인간은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경제적인 동물인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는 경제학의 기본 명제가 뒤집히게 된다.
 
이타심을 측정하기 위해 실시된 실험은 '독재자 게임(Dictator Game)'이었다. 돈의 배분에 대한 전권(全權)을 가진 '독재자'로 지명된 사람에게 ▲20달러를 절반으로 나누어 갖거나 ▲자신이 18달러를 갖고 상대편에게 2달러를 줄 수 있는 경우 중 선택하도록 했다. 그랬더니 실험자 중 75%가 절반으로 나눠 가지기를 선택했다. 이 결과에 따르면, 인간은 무조건적으로 베풀 수 있는 '호모 알트루이스티쿠스(Homo altruisticus)'가 된다.
 
그런데 이런 결론을 다시 뒤집는 결과가 나왔다. 시카고대 존 리스트(List) 교수는 독재자 게임의 조건을 약간씩 변경해 4가지 실험을 실시했다. 첫번째로, '주거나, 일부만 주거나, 아예 안 주는' 선택항목을 부여했다. 이 경우, 70%가 상대편에게 돈을 줬다. 이는 기존 독재자 게임과 엇비슷한 결과다. 그러나 "오히려 1달러를 뺏어올 수도 있다"는 선택항목을 추가하자, 오직 35%만이 돈을 줬다. '뺏어올 수 있다'는 항목을 추가하기 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1달러를 뺏은 사람도 20%나 됐다. 세 번째로 "상대편에게 동일한 금액이 있으니, 다 뺏어도 된다"고 했더니 오직 10%만이 돈을 줬다. 저자들은 "몇 가지 요소를 추가하거나 변형한 것만으로도, 그토록 이타적이던 사람들이 떼강도로 돌변했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일을 한 후에 돈을 주고 '뺏어도 된다'고 하자 뺏는 사람은 28%로 줄고, 나머지 사람들은 주지도 뺏지도 않았다. 리스트 교수의 결론은 "대부분의 이타심은 기부자 자신의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 자신이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 발휘된다"고 지적했다.
 
인간이 무조건 이타심을 실천한다고 가정하게 되면, 정부가 장기 기증과 빈민 구호 등에 대한 대책을 내놓을 필요가 없게 된다. 따라서 현실성이 떨어지는 '순수한' 이타심을 기대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저자들은 지적했다. 예를 들어, 이란에선 정부가 장기 기증에 대한 보상 정책을 실시하기 때문에, 대기자 없이 이식 수술이 실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레빗 교수는 "사람은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람일 뿐"이라며 "유인책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으므로, 건전한 유인책으로 전체적인 이익을 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
지상 최대의 키보드 배틀 (미디어스 2009년 10월 22일 (목) 13:47:10 노정태/칼럼니스트)
[노정태의 우물 밖 개구리]
 
개인적으로 온라인에서 온갖 논쟁을 보거나 참여해온지 벌써 10여년이 다 되어간다. PC 통신 시절까지 합치면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최근 『괴짜경제학』으로 유명한 미국의 경제학자 스티븐 레빗(Steven Levitt)과 뉴욕타임즈 출신의 저널리스트 스티븐 더브너(Stephan J. Dubner)의 신간 SuperFreakonomics가 출간되면서, 바야흐로 지상 최대의 키보드 배틀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0년의 경험을 걸고 말하는데, 이보다 큰 규모의 키보드 대전을 나는 일찍이 본 적이 없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분야의 학자들, 그 분야의 ‘빅 네임’들은 서로의 명예와 학자로서의 자부심을 걸고 진리를 밝히기 위해 논쟁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저널에 논문을 게재하고 비판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키보드 배틀’은 그렇게 정식화된 학계의 논쟁과는 무관하다. 우리가 인터넷에서 많이 보듯이, 몇몇의 블로거나 인터넷 사용자들이 공적이지 않은 경로를 이용해 서로 은근히 심기를 긁어가며 특정 주제에 대해 논하는 것으로 그 의미를 한정해볼 수 있겠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의 ‘키보드 배틀’ 중 가히 최대 규모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무언가가 최근 한창 진행되었다. 무대는 미국. 참여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 학문적 업적과 수준에 눈이 부실 지경이다.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크루그먼과 정치적 입장을 자주 함께하는 U.C. 버클리의 경제학자 브래드포드 드롱(J. Bradford DeLong), ClimateProgess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환경학자 조셉 롬(Joseph J. Romm), 기후 변화에 대하여 온라인 대중들에게 더 나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블로그 RealClimate 등이 한쪽에서 전선을 짜고 SuperFreakonomics를 공격해 들어왔다.
 
공저자 중 한 사람인 스티브 더브너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항변하였고, 스티븐 레빗 또한 (그의 동의 하에) 공개된 이메일을 통해 ‘오해’를 해명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노벨상 수상 확률에 관심이 많은 하버드 대학의 그레고리 멘큐는 간략한 코멘트와 링크 게시를 통해 이 사건에 슬그머니 개입하려다가 특별한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이 논쟁과 관련된 문서들의 대략이 위키피디아에 정리되어 있으나(http://en.wikipedia.org/wiki/Superfreakonomics), 결코 완전한 목록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논의가 끝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대체 이게 무슨 난리일까?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자들이 각자의 블로그와 이메일 등을 이용해 마치 평범한 블로거들처럼 치고 받고 싸우고 있다. 문제는 SuperFreakonomics의 5장에 등장한 지구 온난화에 대한 내용이, 적어도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대단히 부당할 정도로 온난화 문제의 심각성을 회피하고 그것을 사소한 오류처럼 만들고 있다는 데 있었다. “그러나 어느 종교에나 이단은 있는 법. 지구 온난화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저자들이 말할 때 이미 그 갈등은 예견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레빗과 데브너는 말한다. “이산화탄소로 인한 온난화 재앙을 믿는 것, 이산화탄소 배출 기준을 새롭게 규정하는 것만으로 그 재앙을 피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모두 비논리적이다.”
 
요컨대 온난화 회의주의의 문제인 것이다. 레빗과 데브너의 베스트셀러 『괴짜경제학』이 그러하였듯이, SuperFreakonomics도 ‘기존의 통념’이라고 불릴만한 것들에 대해 경제학적 시선을 통해 황당하고 기발하지만 납득할 수밖에 없는 반론을 제시하는 책이다. 적어도 저자들의 의도는 그러했다. 그래서 그들은 지구 온난화를 경고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통념’에 대해서도 반기를 들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그 ‘통념’이라는 것이 지구와 인류 전체의 미래가 걸린 주제이며, 수많은 학자들의 전문적인 연구를 통해 학계에서 널리 인정되고 통용되는 상식이라는 데 있다. 지구의 평균 기온이 4도 상승하면 현재 존재하는 생물 종의 절반 이상이 멸종한다. 환경의 파괴, 종 다양성의 파괴는 많은 경우 해당 문명의 몰락을 초래하는 요소가 되었다. 게다가 현재 벌어지고 있는 기후 온난화 문제는 전 세계적인 것으로, 그 어떤 나라도 독자적으로 회피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레빗과 더브너는 ‘지오 엔지니어링’(geo-engineering)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이산화탄소 배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기온이 상승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므로, 평균 기온을 낮출 수 있는 더 저렴한 방법을 찾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저자들은 환경학자 켄 칼데이라(Ken Caldeira)의 말을 인용하여 “이산화탄소는 진짜 악당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커지기 시작했다. 정작 인용된 당사자 켄 칼데이라는, 환경 블로그 ClimateProgress의 운영자 조 롬과의 이메일 대화를 통해, SuperFreakonomics의 저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완전히 잘못 인용했으며 자신의 학문적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말해버린 것이다. (화가 난 건지 웃자고 그러는 건지, 10월 21일 현재 켄 칼데이라의 연구소 홈페이지에는 ““이산화탄소는 진짜 악당이다.” 켄 칼데이라가 말했다. “사람이 아닌 사물을 ‘악당’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에 빛나는 뉴욕 타임즈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 이런 재미있는 싸움에 빠질 리가 없다. 레빗과 데브너는 경제학자 마틴 와이츠먼(Martin Weitzman)의 논문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전체적인 논문의 논지와 정 반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하며, SuperFreakonomics의 5장은 읽을 가치가 없다는 강한 비판을 가했다. 그렇게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크루그먼 본인이 해당 논문을 읽어봤을 뿐 아니라 그 주제에 대해 와이츠먼과 함께 작업한 바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키보드 배틀’이 흥미로운 것은 단지 참여자들이 최고 수준의 연구자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물론 그들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지만, 이 논쟁이 타블로이드 신문의 지면을 장식할만한 이슈는 결코 아니고, 그만한 쾌감을 안겨주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대신 이 논쟁은 우리에게 ‘인터넷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안겨준다. 인터넷 문서의 기본 포멧인 HTML은 학문적 텍스트의 형식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마우스로 링크를 클릭하는 것은 논문을 읽고 참고문헌을 찾아보는 바로 그 행동을 전자화한 것이다. 지금이야 컴퓨터가 생활 가전제품의 일부가 되어버렸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은 학문 연구의 도구였고 인터넷 또한 그러했다. 가장 난폭하고 거친 언어가 오가는 그곳은 사실 가장 정제된 지적 담론을 위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또한 진중권의 표현대로 ‘문자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채 구술문화가 인터넷을 지배’하게 되면서, 우리는 마치 인터넷이 반지성주의의 공간인 것처럼 여기게 되었다. 물론 인터넷을 통해 개인적으로 글을 쓰는 것은 기존의 출판 매체를 통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 별도의 편집자가 없기 때문에 저자의 감정적 판단과 기준이 여지 없이 노출되며, 한 번 공개된 텍스트는 국경을 넘어 순식간에 모든 곳에서 접속 가능한 것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매체가 가지고 있는 속성일 뿐, 그 속에서 어떤 내용의 담론이 오가느냐는 전적으로 이용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
 
SuperFreakonomics를 둘러싼 이 논란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레빗과 더브너의 인용이 잘못되었는지 여부를 논외로 한다면, 이 논쟁은 ‘지오 엔지니어링’이라는 개념에 대한 재평가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를 위한 전 지구적인 노력이 과연 비효율적인 행동인가, 그래서 경제학자의 눈으로 볼 때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가 또한 하나의 주제로 떠오를 수 있다. 데브너가 현재(10월 21일 오후 9시 50분) 기준으로 가장 최근 올린 글에서 ‘나의 목표는 더 많은 논의를 불러오는 것이었다’고 말한 것을 액면 그대로 존중한다면, 그와 레빗은 제 역할을 다 한 것이다. 비록 그 과정에서 학자로서, 또한 저널리스트로서 그들이 가지고 있던 신뢰가 크게 떨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유명한 지식인, 학계의 이름 높은 학자가 인터넷을 하고 있다는 그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바로 이렇게 중요한 이슈를 알아보고 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한국의 지식인들이 인터넷에서 홀대당하고 저평가당하는 듯 보이는 이유를 우리는 막연하게나마 더듬어볼 수 있다. 인터넷과 함께 성장한 세대는 그 공간을 지적으로 활용하기보다는 사생활의 영역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이 당연하기만 하던 세대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논의의 맥을 짚어내어 온라인 공간으로 이끌어내지 못한다. 오프라인에서 사고하고 온라인에서 표현하는 것은 아직 우리 현실에서 요원한 일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한국에는 노벨상 수상자가 없을 뿐 아니라, 그 노벨상 수상자가 동료들과 온난화 회의주의에 맞서 싸울 수 있을만한 환경 또한 조성되어 있지 않다. 어지러운 관계망 속에 얽혀들어 있는 지식인들은 서로에 대해 공정한, 냉정한 평가를 하지 않고 패거리 놀음에 열중한다. 현재 인터넷이 지적 담론의 토양이 되지 못하는 이유를 인터넷 자체의 속성에서 찾는 것은 어리석은 일처럼 보인다.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한국의 지식인들은 인터넷을 이렇게밖에 활용하지 못하는가? 물론, 그 이유는 폴 크루그먼도 모를 것이다.
 
--------------------------------
`슈퍼 괴짜경제학` 한권에 미국이 `발칵` (한경, 조귀동 기자2009-10-28 17:15)
"온난화, 화석연료 탓 아니다" 크루그먼·드롱 "헛소리"
환경전문가·언론도 논쟁 참여

 
책 한 권이 미국을 발칵 뒤집어놓고 있다. '괴짜경제학(Freakonomics)'의 공동 저자인 스티븐 레빗과 스티븐 더브너가 후속작으로 지난 20일 출간한 '슈퍼 괴짜경제학(Super Freakonomics)'이 그 주인공이다. 다양한 사회현상을 경제학적으로 풀이한 이 책을 놓고 지난해 노벨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UC버클리의 브래드 드롱 등 정상급 경제학자들이 자신들의 블로그에서 논평을 쏟아내고 있다. 환경 관련 전문가들도 들고 일어났으며 워싱턴포스트(WP)와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논쟁에 가담했다. 구글에 검색어로 '슈퍼 괴짜경제학'을 입력할 경우 28일 현재 인터넷 게시물은 무려 153만건, 블로그 포스팅은 20만6000건에 각각 달한다.
 
레빗과 더브너가 '앨 고어와 피나투보 화산의 공통점'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대해 "손을 씻으면 간단히 예방되는 병을 방치하다가 결국 의사만 찾고 있는 격"이라며 비판한 게 논쟁의 불씨였다. 이들은 화석연료 소비로 온난화가 심해지고 있다는 '상식'은 허구라고 주장했다. 또 탄소 배출을 줄이는 값비싼 정책 대신 지구 대기 성층권에 빛을 잘 반사시키는 이산화황을 뿌리는 기구를 설치,태양광을 반사시키는 값싼 '지오(GEO · 지구)엔지니어링' 등의 대안이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맨 처음 목소리를 높인 것은 환경학자와 운동가들이었다. 오바마 행정부 싱크탱크인 미국진보센터(CAP)의 선임 연구원인 조 롬은 자신의 블로그에 슈퍼 괴짜경제학 내용을 스캔한 PDF 파일을 올리면서 동지들을 모았다. 예일대 환경대학원이 운영하는 인터넷 매체 '환경360'은 '이산화탄소는 진짜 악당이 아니다'는 주장을 했다고 소개된 대기학자 켄 칼데이라를 인터뷰해 "온난화의 가장 큰 원인이 이산화탄소인데 어디서 내 논문을 인용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발언을 얻어냈다.
 
경제학자들도 비판에 합류했다. 크루그먼은 "1970년대 극소수의 학자들만이 주장한 학설을 진실인 양 호도하고 있다"며 레빗과 더브너를 비판했다. 또 나중에 온실가스를 어떻게든 처리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은 전통적인 경제학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드롱은 "한 번도 검증되지 않은 수상쩍은 기술을 대안이랍시고 내놓은 것부터가 문제"라며 "두 사람은 전혀 경제학자처럼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WP 기자 에즈라 클라인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슈퍼 괴짜경제학의 내용은 실제 파란색인 태양광 발전판이 검은색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며 "재미를 위해 정확성을 희생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 인터넷판은 27일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바보들이 기후학자들을 상대로 도전하고 있다"며 "싸고 간단한 해결책이 가능했다면 온난화 문제는 진작 해결됐을 것"이라고 비꼬았다. 하지만 WSJ 국제문제 전문 칼럼니스트인 브렛 스티븐슨은 28일 기고한 칼럼에서 "그들은 저술 과정에서 온난화 현상에 대해 다양한 입장의 연구자들을 만나며 주의 깊게 균형을 맞춰왔다"면서 옹호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