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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으로가 아니라 손으로 쓰는 동지

[경기] 경기 준비모임 쌍차 구속동지 마니또

우린 요즘, 자꾸만 우편함을 뒤지게 된다
요즘 나에게는 작은 습관이 하나 생겼다. 아침에 나갈 때나, 한 밤중에 집에 돌아올 때면 제일 먼저 우편함부터 확인하게 된다. 공과금이나 대출홍보 전단지가 전부였던 나의 우편함에, 지난달부터는 작은 편지봉투들이 터를 잡기 시작했다. 이 편지봉투들은 모두가 다 하얀색 규격봉투다. 굳이 차이점을 찾자면 발신인들의 수번과 함께 적혀있는 이름과 편지 두께 정도다. 이 작은 봉투 하나가 우편함에 들어앉아 있으면 크리스마스 날에 산타에게 선물 받은 느낌이랄까?
이 작은 선물에 서툴게 적힌 글자들이 나를 울고 웃게 만든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만, 이런 증세들이 내 주변에서는 간간히 포착된다. 기혼의 한 남자 선배는 “연애하는 것처럼 편지가 기다려진다”고 한다. 쌍차 구속동지 마니또를 하고 있는 경기 준비모임 동지들이 공통되게 느끼는 심정(?)이다.  

정말 잘 싸웠다고, 주체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밖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나에게도 이렇게나 편지가 기다려지는데, 구속되어 있는 동지들이야 오죽할까. 하루 10분 면회시간이 대화의 전부이고, 그나마도 구속된 날수가 늘어갈수록 면회도 뜸해지기 마련이다. 쌍용자동차 투쟁에 연대했던 단위들은 누구나 아쉬움을 갖고 있겠지만, 특히 경기지역의 동지들은 그 아쉬움이 더 컸다. 치열한 투쟁이었지만, 사법부는 주체들을 죄인취급하며 탄압했다. 지리한 수사, 감옥이라는 갇힌 공간에서 그 동지들이 조금이나마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으로 경기 준비모임에서는 쌍차 구속 동지 마니또 사업을 시작했다. 못 다한 이야기들, 듣지 못한 이야기들,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잘 싸웠다는 말을 주체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어설픈 ‘빵’바라지지만 괜찮아
마니또는 이탈리아어로 비밀친구라는 뜻이다. 학생 시절 한 두 번 경험했을 마니또는 아는 사람을 상대로 모르게 도와주는 거지만, 쌍차 구속동지 마니또는 그 반대다. 쌍차 조합원이라는 사실 외에는 거의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대상이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내가 당신의 마니또라는 것을 알리고 시작했다. 면회도 가고, 편지도 쓰고, 읽고 싶다는 책도 넣어주고, 필요한 물품도 넣어주자고 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의 면회나 편지가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서서히 구속동지들과의 교감을 시작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어설픈 ‘빵’바라지 수준이지만, 시큰둥하던(?) 경기 준비모임 회원들의 일상으로 면회와 편지가 자리 잡혀 가는 모습을 보니 시간이 갈수록 좀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긴다.

느껴본 사람들이 ‘동지의 소중함’을 안다
“어디에서나 열심히 밝고 건강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밖에 있는 동지들도 건강하게 밝게 지내셨으면 좋겠네요. 따뜻한 정종 한 잔 꼭 사주시는 걸로 믿고 이 겨울 견디어 보겠습니다. 12월이에요. 모두 다에게 따뜻한 연말 됐으면… 노동 3권이라도 제대로 지켜지는 세상 되었으면… 용산 유가족 분들이 얼른 상복을 벗으실 수 있으셨으면…”
구속된 쌍차 동지에게 온 편지다. 구속된 다른 조합원들 걱정, 탄압받는 밖의 조합원 걱정, 연대 동지들의 안위 걱정, 장투 사업장 걱정, 용산유가족 걱정… 그런 동지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투쟁 속에서 연대의 소중함, 단결의 소중함을 느꼈기 때문에 구속과 탄압 속에서 동지애를 더욱 소중하게 느끼는 듯하다.
얼굴을 모르면 어떠랴. 가공할만한 국가의 폭력에 정면으로 맞섰던 동지들이다. 쌍차 구속동지 마니또를 경기 준비모임뿐만 아니라, 많은 동지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연대의 아쉬움을 느꼈던 동지라면, 주저하지 말고 편지 한통, 책 한권 보내주시길… 입으로 부르는 동지가 아니라 손으로 쓰는 ‘동지’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보라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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