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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1/16
    나의 아름다운 정원 - 심윤경(2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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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5/01/14
    낭만적 사랑과 사회 - 정이현(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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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4/12/13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 최장집(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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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4/12/13
    실크로드의 악마들 - 피터 홉커크(19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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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4/11/29
    박홍규의 에드워드 사이드읽기 - 박홍규(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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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4/11/29
    지구영웅전설 - 박민규(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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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4/11/03
    현대가족 이야기 - 조주은 著(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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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4/11/01
    세계화의 덫 - 한스 페터 마르틴, 하랄트 슈만 著(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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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4/10/31
    경성트로이카 - 안재성著(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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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4/10/19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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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 - 심윤경(2002)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 때문에 읽게됐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곳은 경복궁 옆의 인왕산 아랫동네.

바로 나의 친할머니가 사는 동네다. 

지금은 재개발이 되어서 신식빌라촌이 되어버렸지만, 그전만 하더라도 슬레이트지붕에, 흙벽, 퍼세식화장실로 대표되는 옛날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던 달동네였다. 

지금도 내가 그토록 미워하는 할머니는 여기서 아버지를 포함해 6명의 아이들을 낳고 길렀다.

 

경복궁과 청와대가 바라다 보이고, 좁고 추레한 골목을 조금만 걸어내려가면 으리으리한 저택들이 즐비한 이곳에 달동네가 존재했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나는 아직도 어린시절의 서울구경을 인왕산 아래의 달동네로 기억하곤 한다.

 

이 소설은 언어장애가 있는 한동구라는 작은 아이가 겪는 1977년부터 1981년까지의 기록이다. 자신만 아는 그악스러운 할머니와 고부간의 갈등의 짐을 항상 아내에게만 지우는 비겁한 아버지로 인해 집안분위기는 항상 험악하다.

 

게다가 동구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도 글을 제대로 읽고 쓰지 못해서 할머니로부터 툭하면 갖은 욕설과 매질을 당하곤 하며(할머니의 말은 항상 "야이 새끼야"로 시작한다), 아버지도 동구에게 애정과 관심을 표현해주지 않는다.

 

이렇게 동구는 주변사람들의 냉대를 받지만, 마음만은 너무나 착하고 순수해서 6살 터울의 동생'영주'와 자신의 엄마를 누구보다 사랑한다. 엄마가 매맞고 부엌의 냉바닥에서 잘라치면 부엌에서 엄마를 꼭 끌어안고 잠이 들고, 아직 아기인 동생 영주를 업어 키우며, 자신이 읽지 못하는 글자를 동생 '영주'가 신동처럼 읽어내자 진심으로 기뻐하며 동네를 뛰어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자랑을 한다.

 

이런 동구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은 오직 동구의 엄마와 담임선생님인 박영은 선생님뿐. 이후 이야기는 동구의 가족사와 남한의 현대사가 뒤섞이며 담담한 결말을 향해 숨가쁘게 흘러간다.

 

소설을 읽다가 몇번 눈물을 흘렸는데, 내가 아직 유치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난 아직도 (동구같이) 이타심을 가진 순수한 인간의 모습을 볼때면 괜시리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선생님 : 동생 영주가 처음 글씨 읽었을 때 식구들이 많이 좋아하셨겠네. 동구는 아직 글씨 잘 못 읽는데, 속상하지 않았어?

 

동구 : 사실은요, 창피할 때도 있는데요, 제가 3학년 되도록 글씨도 모르는데 동생은 아직 어린데 다 아니까요, 저는 사실 창피한데요, 음음... 엄마랑 아버지가 되게 좋아하시거든요.... 할머니도 좋아하시구요. 동생이 글씨 읽고 나서는 엄마랑 아버지랑 한번도 안 싸우셨어요. 얼마 전에는 엄마가 아버지 구두를 닦아놓으셨는데 제가 뛰어나가다가 밟아서 발자국이 났거든요. 그래서 할머니가 저더러 왜 어린 동생만도 못하냐고 그러셨는데요, 할머니는 원래 맨날 그러시니까 괜찮아요.

 

선생님 : 그럼, 영주가 말 안 듣고 동구 속을 썩이는 일은 없어?

 

동구 : 예, 영주가 속썩일 때도 있어요... 사실은요, 어저께 엄마가 선생님한테 오실 적에 카스텔라를 만들어 오실 생각이셨어요. 우리 엄마는 집에서 카스텔라를 만들 줄도 아시거든요. 선생님께 좋은 선물을 드리고 싶어하셨어요. 그런데 엄마가 잠깐 나가신 사이에 영주가 계란 거품에다가 석고 가루를 넣어버렸어요. 영주는 카스텔라를 만들어서 선생님만 드릴 거라고 하니까 심술이 났던가 봐요. 그래서 제가 계란 거품을 뒤엎어버렸어요.

 

선생님 : 왜? 영주가 혼날까 봐서?

 

동구 : 예

 

선생님 : 그럼 네가 야단을 맞쟎아

 

동구 : 예. 하지만 저는 크쟎아요. 영주는 아직 어리니까요

 

선생님 : 많이 야단맞았니?

 

동구 : 예. 하지만 제가 야단맞는 게 나아요. 영주가 혼나는 모습은 못 보겠어요. 엄마랑 아버지도 많이 속상해하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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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사랑과 사회 - 정이현(2003)

* 이글은 씨앗님의 우리들의 낭만적 사랑을 위하여-정이현 '낭만적 사랑과 사회', 보라돌님의  정이현 "낭만적 사랑과 사회" 문학과 지성사 2003와 관련된 글입니다.

 

 

달군님의 포스트에서 정이현씨의 영화평을 읽고 그가 쓴 글을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마지막으로 소설읽은 게 도대체 언제냐?-_-a) 그래서 그의 얇은 소설집을 하나 구해서 읽어봤는데, 표지디자인도 이쁘고 재미까지 있다. 이런이런...

 

8편의 단편소설 속의 흥미로운 그녀들.

남성들의 세상에서 '그'들을 절묘하고도 영악하게 가차없이 이용하며 저항한다.

사회적 성공을 위해 情夫를 적절히 이용하고(종국에 가서는 죽여버리지만),

꼰대의 허위의식을 적나라하게 비웃어주기도하며,

남편 몰래 동성과의 사랑에 몰입하기도한다(그녀에게 결혼은 단지 위장수단일 뿐이다).

쑈킹하다.

 

개인적으로 젊은남녀 커플의 결혼과정을 그린 "홈드라마"와 조선최초의 modern girl에 대한 이야기인 "이십세기 모단걸"을 재미나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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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 최장집(2002.11)

 

난 최장집 교수를 잘 모른다. 김대중 정부때 자문위원으로 오르락 내리락하다가 조선일보 이한우를 비롯한 수구세력의 색깔논쟁으로 입각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 외에는 말이다. 그러던 중 알라딘에서 우연히 김명인 선생님의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읽고 사 두었던 책을 최근에야 한번 훑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주제는 80년대 민주화 이후의 한국민주주의는 왜 오히려 보수화, 퇴화하였는가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현재의 문제점을 짚은 뒤 나아가야 할 추상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공부를 하려면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싶더라. 정치학을 업으로 삼고 계신 분이지만, 일반인이 읽기에도 부담스럽지 않게 쉽게 쓰여졌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정치한 이론적 틀로 현실을 날카롭게 분석한 것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옆에 두고서 다시 한번 읽어본 후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할 듯 싶다. 그렇기에 이곳에 내용만 대충 메모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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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민주화이후 왜 한국정치는 보수화, 퇴하하였는가

 

1.냉전반공 이데올로기에 의한 제도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정당이 제한되었다

2.한국야당 성립의 역사적 과정 - 명사정당, 정치계급형성, 가장 보수적인 정치 엘리트그룹

3.권위주의적 산업화과정의 문제(과잉성장국가)

4.운동이 제도정치화되지 못했던 점(구체제를 해체한 힘과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가져온 힘의 괴리, 민주화 = 운동에 의한 민주화 + 협약(pact)에 의한 민주화)

 

민주화가 보수적으로 종결된 이유 p.115

1.냉전반공주의와 성장 이데올로기를 구현하고 있는 국가의 강력함

2."2단계 민주화"라고 부르는 이행의 방법

3.제도권의 야당과 운동이 서로 분리되고 약했다는 것

 

3과 관련하여, p.119

 

"그러나 운동의 약함이 한국민주주의의 구조적 제약의 결과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것은 운동의 주체적 역량과 관련된 것으로, 무엇보다 민주화 과정에서 운동이 어떤 대안적 이념과 비전을 발전시키고 이를 공유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운동권이 지녔던 이념은 대체로 사회주의나 급진적 민족주의처럼 도식적이고, 낭만적이고, 교리적이고, 비경험적이고, 추상적인 것이었다. 강력한 군부독재와의 투쟁 속에서 그들은 가장 급진적이고 강력한 이론에서 투쟁의 무기를 발견하려 했다. 운동권의 이러한 이념적 급진성은 선거경쟁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함께 선거불참여주의(abstentionism)적 경향 또는 선거에 소극적인 태도를 갖게 했다.

 

이러한 이념적 급진성은 운동권내에서의 분파주의를 강화하고,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현실을 경험적으로 보지 못하게 하는 문제를 낳았으며, 무엇보다도 정치 세력화에 장애요인이 되어 기존의 보수적 정당들과는 다른 대안적 이념과 비전을 발전시키지 못하게 했다. 다시 말해 운동권의 이념적 급진성은 운동권의 강함의 반영이 아니라 약함의 반영이었다.

 

한국의 경우 민주화 이후의 국가가 보여 주는 가장 큰 특징은 '무력한 국가'라는 것이다.p.130

 

현대 한국정치의 주요 문제점 p.125

1.정치(무능한 국가, 무능한 관료제, 대중적 기반이 없는 야당 etc)

2.경제(고도의 집중과 불평등을 초래)

3.세계화(97년 이후 IMF등 세계화의 문제)

4.시민사회의 문제

 

최장집 교수는 너무 온건한가...?
이렇게 써놓으니 정리된 게 아무것도 없군...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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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의 악마들 - 피터 홉커크(1984)

 

이 책의 부제는 "중앙아시아 탐험의 역사". 타클라마칸사막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령 동투르키스탄지역(현재 중국의 신장위구르자치구)에 대한 19세기말~20세기초까지의 탐험가들의 기록을 흥미롭게 정리한 책이다.

 

실크로드의 중심루트인 투르키스탄 지역은 파미르고원을 중심으로 구소련령 서투르키스탄과 중국령 동투르키스탄으로 나뉜다. 그리고 옛날의 대상들에게는 타클라마칸을 통과해야하는 중국령 동투르키스탄 지역은 生과死를 가르는 공포의 지역이었다. 이곳은 하늘에 닿을 듯한 천산, 곤륜, 캐라코람, 힌두쿠시산맥과 파미르고원으로 둘러싸여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죽음의 불모지, 타클라마칸사막(원주민어로 들어가면 못나온다는 뜻이란다)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실크로드가 둔황에서부터 천산남로, 북로로 갈라졌다가 카쉬가르(현재는 카스)에서 다시 만나는 것도 바로 이 타클라마칸사막 때문이다.

 

서구의 입장에서 19세기말은 고고학적 발견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리스, 이집트를 포함한 중근동, 캄보디아, 중국에서 엄청난 고고학적 발견이 있을 때마다 서구는 열광했다. 그것은 그들의 근대적 합리성의 승리였던 것이고, 제국의 명예를 드높이는 수단이기도 했으며, 식민건설을 위한 필수코스이기도 했다. 19세기 서구제국주의 국가들은 탐험가와 선교사를 먼저 보내고, 다음에 군인과 상인들을 보내면서 식민지 건설에 열을 올리지 않았던가.

 

이 책의 악마(Red Devils)들은 바로 그 시기 중국령 동투르키스탄을 탐험했던 탐험가들을 중국의 입장에서 부른 말이다. 실크로드는 동서문화교류의 동맥으로서 고고학적으로 엄청난 가치를 지닌 유물이 잠자고 있기도 했고, 사막이라는 지리적 특성이 유물보존에 있어 천혜의 조건을 제공하기도 했으며, 열악한 자연환경으로 인해 19세기까지 서구인들에게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땅이기도 했다.

 

스웨덴의 탐험가 스벤 헤딘이 서구인으로서는 최초로 이곳을 탐험하여 유물을 약탈해간 이래, 영국의 오렐 스타인, 독일의 폰 르콕, 프랑스의 폴 펠리오, 일본의 오타니 고즈이, 미국의 랭던 워너 등이 들어와 유적을 닥치는대로 싹쓸이해갔다. 심지어 그들은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마저 벽째로 뜯어갔고, 돈황에서 발견된 어마어마한 고문서들을 푼돈을 쥐어주고서 "신사적으로 사갔다".

 

이러한 범죄에 대해 저자인 피터 홉커크는 애매한 입장을 취한다. 물론 과정에서 잘못은 있었으나, 극도의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던 당시 중국의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일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하고, 당시에 과학적 고고학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던 동양의 한계에서 서구의 어르신들이 나서서 그들의 역사를 정립하는데 도움을 준 것이나, 당시 탐험가들의 고고학적 열정을 높이 평가하는 듯한 말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다시 읽다가 괜히 배가 살살 아프더라.

 

하지만 이 책은 실크로드에 대해 관심을 환기시키기에 꽤 훌륭한 책인 것만은 사실이다. 특히나 한국에서의 실크로드가 동서문화의 교류, 타자에 대한 이해라는 데 방점이 찍히기 보다는 "대륙정벌", "만주진출", "고구려..."등의 쇼비니즘적 주장의 근거로 인용되는 때가 더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월간조선 조갑제의 아이디가 mongol 이라지 아마?

 

사족) 남한의 국립중앙박물관도 실크로드관련 유물을 다량 보유하고 있다. 일본의 오타니 고즈이가 약탈한 유물의 30% 정도가 남한의 광업권획득을 위한 대가(?)로 조선총독부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이 "오타니콜렉션"은 일반에 공개는 되지 않고 박물관창고에서 썩어가고 있다. 그러고 보면 남한도 제국주의 국가의 유산을 물려받은거다. ㅎㅎㅎ

 

* 읽고 싶으신 분이 있으시면 덧글로 남겨주세요. 우편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위의 설명대로 독일의 폰 르콕 3차탐험대의 모습이다. 현지 노동자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있고, 그 뒤로 독일인들이 거만하게 서 있는 모습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맨 앞줄의 노동자들 중 양쪽의 노인2명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비해, 중간의 어린 아이는 눈의 흰자위를 보이며 카메라를 노려보고 있어 흥미롭다. 겨울에는 영하 20도 이하의 강추위속에서 작업이 이루어지게 된다고 한다. 아마 이때도 겨울이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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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에드워드 사이드읽기 - 박홍규(2003)

 

* 이 글은 molot님의 [2001년 오늘(9.24) 에드워드 사이드 영면] 에 관련된 글입니다. 

"서구에 대한 나의 시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산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분량에 눌려 지금껏 먼지만 쌓여 있다.-_-;; 그러던 중 우연히 알라딘에서 이 책을 발견해서 읽게 됐다.

 

이 책은 2003년 세상을 떠난 에드워드 사이드를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박홍규 교수("오리엔탈리즘"의 역자)가 쓴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한 개론서다. 머릿말에서 그가 밝혔듯이 에드워드 사이드가 죽었다는 비보를 전해 듣고 무엇이라도 해야겠기에, 급하게 그에 대해 써놓았던 이전의 글들과 평상시의 자신의 생각의 편린들을 모아 펴냈고 그것이 하나의 책이 되어 나온 것이다. 

 

박홍규 교수의 말빨(?)탓에 쉽게 읽힐 수 있는 재미있는 개론서 하나가 태어나기는 했지만, 책이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구성된 것은 아닌듯 싶고, 앞부분은 내게 조금 어려웠다. 사이드에게 영향을 주었던 이탈리아의 철학자 잠바티스타 비코에 관한 장이었는데, 철학적인 깊이가 없는 나로서는 읽던 책을 던져버리고 싶었다.(난 추상적인 개념을 별로 안 좋아하거덩-_-;)

 

이 책에는 사이드가 입에 거품을 물고 말했던 "서구에 의한 동양개념의 날조", "문화적 제국주의", "에드워드 사이드의 지식인론"에 더해 남한에서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이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를 "남한의 번역의 문제와 영어교육, 서구의 기준에 매몰되어 우리 자신을 잃어버린 인문학강단 "에서의 사례를 들어가며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나서 내겐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나도 지금껏 영어의 문제나 서구의 여러 이론에 대해서 일종의 컴플렉스를 느껴왔다는 뜻인데, 서양과 동양을 가르는 이분법 자체가 사라짐으로써 내가 느끼던 컴플렉스 또한 사라졌던 것 같다.

 

사족) 이 책속에서 사이드가 자신의 지식인론(지식인의 고향은 세계)을 말하며 인용했다는 빅토르 위고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자신의 고향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부드러운 초보자이다. 모든 땅을 자신의 고향으로 보는 사람은 이미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전세계를 하나의 타향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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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영웅전설 - 박민규

 

직장동료가 읽고서 권해주길래 지하철에서 읽었다. 장편이라기 보다는 중편에 가깝다. 그만큼 분량에서 부담이 안되는, 박민규씨의 재치가 느껴지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미국중심의 제국주의적 세계질서를 슈퍼맨, 배트맨, 로빈, 아쿠아맨 등 만화속의 영웅들을 통해 그려냈다. 그의 첫번째 장편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그의 대표작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 비해 그리 재미있지는 않다. 겉은 황인종이지만 머릿속의 관념은 순종백인임을 자처하는 주인공 "바나나맨"의 독백을 통해 소설이 서술되는데, 그의 독백은 의미심장할지는 몰라도 독자를 웃기지는 못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분위기와 주인공의 독백이 연상됐다. 그만큼 이 소설의 서술은 담담하다. 하지만 그것만큼 가볍지는 않으며, 소설안에서 자신이 쓰고자 하는 바를 위한 준비도 철저한 것 같고, 일단 하루키보다 재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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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가족 이야기 - 조주은 著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서 올해 5월부터 "대화"라는 기획연재가 시작되었다. 그 첫번째 코너로 이 책의 저자인 조주은씨와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의 저자 전순옥씨와의 대담이 "우리는 왜 그렇게 혁명을 갈구했나"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다. 그때 너무나 재미있게 기사를 읽은 나머지 두권 모두 구매를 했었는데 아직 읽어보지도 못하고 쳐박혀(말 그대로다. 포장박스째 방구석에 나뒹굴고 있었다)있던 걸 몇일 전에야 읽게 되었다.

 

70년대 여성노동운동사를 학술적 방법으로 다룬 전순옥씨의 책은 다소 읽기에 힘들 것 같아 조주은씨의 책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마치 우리가족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 같아 책장을 넘길수록 흥미가 더해왔다. 왜냐하면 내 고향은 울산으로 나는 그곳에서 태어나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20년을 살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가 조주은씨가 현대자동차가족의 일상을 지적할 때마다 나는 "맞아. 맞아"라는 말을 연발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보아온 것들이라 너무나 당연스럽게 생각하거나 으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부분을 조주은씨는 날카로운 시각으로 집어내었기 때문이다.

내가 읽어낸 이 책의 주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저학력 저임금의 노동과 넉넉지 못한 가정환경의 미혼여성들에게 결혼이란 일종의 탈출구 내지는 환상으로 작용한다는 것
  2. 대기업에서 일하는 남편의 상대적 고임금수준과 기혼여성을 퇴출시키는 노동시장의 상황이 기혼여성들에게 전업주부의 길을 강요한다는 것
  3. 노동자계급내에서 상대적인 고임금이 자녀들에 대한 계층상승욕구를 충동한다는 것
  4. 인간의 노동력을 극도로 착취하는 노동환경(2교대 혹은 3교대 컨베이어작업)에서 남성노동자들을 견뎌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업에서는 교묘한 좋은아내 이데올로기를 강요하고 있다는 것
  5. 이러한 기제를 통해 가정중심성이 강화되고 있으며 여성은 자본과 가부장제에 대해 이중으로 착취를 받고 있다는 것
  6. 노동자간의 집단거주방식이 올바른 형태의 여성공동체형성을 위한 기반 혹은 여성자신을 억압하는 기제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등등...

나는 어머니로부터 아버지를 만나기 전에 무슨 일을 했었고 학교 다닐 때의 추억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거의 들은 바가 없다. 아마도 어머니가 어렸을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에 가정형편은 힘들었을테고 아버지와의 결혼이 단조롭고도 고난한 일상에서의 탈출을 의미하였을수도 있다. 또한 세명의 아이들에 대한 양육과 울산이라는 기혼여성노동자가 일자리를 구할 길이 막막한 환경 속에서 전업주부로 생활이 강요되었을테고 남성중심의 지역문화와 좋은 아내를 강조하는 기업들의 전략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아이와 가정에서 찾으려고 했을 것도 같다. 그렇게 보면 어머니가 자식들에 대해 그토록 큰 집착을 품고 계신 이유와 비슷비슷하게 살아가는 이웃들과 거의 경쟁을 하듯 교육에 관심을 가지셨던 이유도 쉬 납득이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퍼뜩 이제는 어머니 자신의 삶을 찾도록 도와 드려야 할 때이고 좀더 어머니와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대화를 통해 내가 생각하는 바를 말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머릿속에 그리고 몸 속에 녹아있는 고정관념을 깨는 일이 급선무라는 것도 알겠고 말이다. 근데 맨날 생각은 이렇게 해도 부모님 앞에 가면 말은 왜 반대로 나오는지... 갑갑하다. 머리 속에 든 것과 실제 행동을 일치시키는 일은 평생을 안고 가야 할 숙제인 듯 싶다.

이런 이유로 책을 읽다가 먼저 눈길을 끈 건 조주은씨의 특이한 인생내력이었다. 남부럽지 않은 중산층가정에서 성장하여, 서슬퍼렀던 공안당국의 탄압과 뜨거운 운동권적 투쟁열기가 뒤덮고 있던 80년대 대학이라는 전장(?)을 현명하게(?) 잘 넘기고 사회로 진출했던 여성이 갑자기 자신의 생활을 통해 늦깎이 운동권이 되다니.. 또 여성학을 공부하기 위해 젖먹이 아이들을 이끌고 상경을 감행하기도 하고... 그런데 그것은 저자가 자신의 삶을 그만큼 진지하게 바라보고 행동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직장에서 착취당하는 사람들을 직접 목격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바꾸기 위해 일어서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육아와 가사의 쳇바퀴 속에서 여성의 정체성에 대해 자각하고 현 상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다.

때문에 나는 이 책이 저자의 경험을 통해 삶의 문제를 제기했기에 훨씬 흥미롭고 값진 저작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가족임금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서 노동 주체를 상정해야만 남성들을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여성들의 사회적 노동이 가시화되는 계기도 만들 수 있다... 그것이 남녀 모두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한 노동의 기회를 갖게 되고 가정 내 책임을 공유하는 시작이 될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감명깊은 말이다. 하지만 레니님이 말했듯 당신의 투쟁이 나의 투쟁이 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항상 어려운 문제다. -_-a


* 참고 : 랄라님의 서평 http://blog.jinbo.net/bepossible/?pid=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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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덫 - 한스 페터 마르틴, 하랄트 슈만 著

 

정말 오래 걸려서 읽은 책이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2인이 쓴 책이기도 하고, 옮긴이인 강수돌 교수가 번역을 잘 하기도 해서인지 문맥이 쉬우면서도 잘 읽히긴 했다. 그래도 굵기나 무게가 좀 나가는 책이어서 출퇴근 시간에 오며가며 읽기에는 부담감이 느껴진 건 사실이다. 그래서 머리맡에 놓아두고 잠들기 전에 잠깐씩 읽다가 어제서야 끝장을 봤다. 한번에 원샷으로 읽지 못하고 오랫시간에 걸쳐 야금야금 읽어서인지 뭘 읽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이런~~~-_-a

 

이 책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실체와 그 대안에 대해 서술한다. 언론인 저자들답게 유럽과 미국의 풍부한 사례들과 인터뷰들을 섞어 써서 그 양은 상당히 늘어났지만, 물 흐르는 듯 쉽게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구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세계정세를 파악하는데도 상당한 도움을 주는 책이다. 또한, 우리보다 먼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폐해를 겪은 독일에서 1997년경 씌여진 책인만큼, 책의 곳곳에서 현재 우리의 모습과 그 대안을 엿볼 수 있다.

 

저자들는 유럽연합과 국제연합 등 세계기구 차원에서 국가간 긴밀한 협력을 통해 국제적 투기자본의 흐름을 차단하고 정치적, 생태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자고 역설한다. 대안은 있으되 자본과 권력자들에 의해 행해지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식이다. 하지만 그 국가 혹은 정부라는 것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난 아직 어떤 확신도 없고, 그런 이유로 저자의 말이 가능할지의 여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의해 갈수록 우리들의 삶이 팍팍해지는 것이 사실인만큼 무언가 대안이 있다는 것이 내 마음을 조금은 가볍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세계화론자다. 하지만 "저들"처럼 "자본의 세계화", "범죄의 세계화", "착취의 세계화"만이 아닌 "자유와 평등의 세계화", "인권과 생태의 세계화"를 원하는 진정한 세계화론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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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트로이카 - 안재성著

 

이 책은 '파업'의 작가 안재성씨가 1930년대 조선내 사회주의자들의 자취를 뒤쫓아가며 쓴 소설이다. 주인공은 조선내 자생적 사회주의 그룹이었던 "경성트로이카"를 이끌던 이재유, 김삼룡, 이현상 그리고 그들의 수많은 동지들이다.

 

저자는 책의 첫부분 "사라진 시간을 찾아서"라는 章에서 자신이 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해 간략히 적고 있다. 1990년대초 소장파 사학자 김경일 교수에 의해 발굴되어 비로소 활자로 기술된 "이재유 연구"와 이효정 할머니(경성트로이카조직의 유일한 남한내 생존자)의 아들 박진환씨와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작가인 안재성씨는 이 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도중 주인공들의 모습이 대단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그들의 비극적 죽음을 보고 허탈하기도 했다. 죽음을 각오하고서 활동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들이었지만, 이재유는 해방을 1년 앞둔 채 감옥에서 죽음을 당했고, 해방정국과 6.25를 거치며 남로당 총책이었던 김삼룡과 빨치산 총대장으로 활동했던 이현상도 남한정부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또한 항상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던 순박한 이상주의자 이관술의 죽음은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일제의 모진 핍박을 받으면서도 그 고통을 온몸으로 이겨냈던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남한과 북한 모두에게 버림받고서 설자리를 잃고 죽어갔다. 박헌영 또한 미제의 간첩이라는 죄명으로 북한에서 총살당했으니 말해 무엇하랴. 이 대목을 읽으면서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수많은 혁명적 좌익세력이 생각났다. 인류의 이상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졌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다. 스페인의 혁명적 좌익을 탄압하고 심지어 사살했던 스페인의 스탈린주의자들과, 자생적이고 현장중심적인 사회주의자들인 경성트로이카를 견제했던 국제파의 모습이 과히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그들의 삶의 숭고한 의미를 더욱 기억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따라서 이후에도 일제하 자생적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역사학계의 연구와 그들의 삶을 재조명할 수 있는 이러한 책들이 더욱 많이 나와야 한다.

 

2004년 6월의 어느 초여름밤 경성트로이카 조직의 일원이었던 남한내 유일한 생존자 이효정 할머니가 숨을 거뒀다. 그의 삶은 빨갱이라는 낙인 때문에 모진 핍박만 받았던 한많은 생이었다. 할머니는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며 이 세상을 등진 것일까? 세월이 모든 것을 용서해 줄 수 있을까? 그건 결단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딱딱한 역사서같은 구성을 피해 소설적 장치를 차용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씌여졌으며, 인물을 중심으로 당시의 사회주의 운동의 전개과정을 시대순서에 따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 특징이다.

 

읽고 싶으신 분은 덧글로 남겨주시라. 널리 읽힐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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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

 

지난주 지방으로 출장갈 때 차안에서 읽으려고 한겨레21을 샀다. 그 한켠에 이 책에 대한 한쪽짜리 서평이 있었다. 출장에서 돌아와 영풍문고에 서서 읽어봤다. 한번 책장을 넘기니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은 십수년간 전선을 취재한 기자가 자신의 기자觀과 그동안의 취재기록을 엮어 펴낸 책이다. 저자는 자신을 종군기자라 칭하지 않고 전선기자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종군기자란 일제가 만들어낸 軍言일체의 치욕적인 단어이기 때문이다. 군대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자국군의 일방적인 전과를 '실황중계'하는 것은 기자의 역할이 아니다. 진정한 전선기자의 역할은 전세계 민중을 대리하여 정치의 연장으로서 전쟁을 취재하며 그 진실을 파헤치고 감시하는 것이다. 그는 "전시언론통제는 전선기자들을 전선에 오르도록 만드는 에너지다. 그곳에 전시언론통제가 있었기 때문에 전선기자들은 사력을 다해 전선에 올랐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베트남전쟁을 전선기자의 황금기라고 말한다. 전선의 참혹함과 전쟁 뒤에 가려진 권력의 추악함을 파헤쳐 냄으로써 전쟁의 종식을 앞당기는 등 인류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권언유착은 심각해지고, 우리는 지구의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전쟁을 "종군기자"들을 통해 마치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을 보듯 즐기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저자는 참 많은 곳을 다녔다. 16년간 그는 버마 소수민족과 학생반군들의 투쟁, 베트남전 당시 캄보디아와 라오스에서 벌어진 미국의 더러운 전쟁, 파키스탄과 인도사이의 카슈미르분쟁,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아체와 동티모르의 독립투쟁, 예멘 내전, 아프가니스탄 내전, 팔레스타인에서의 이스라엘군의 학살, 미국과 나토에 의해 날조된 코소보내전을 취재했다. 그가 전하는 전쟁의 모습은 참혹하며 전선에 들어선 인간이 느끼는 공포감까지도 잘 묘사했다. 그리고 "정치가 없는 전쟁기사는 자위행위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그인만큼 전쟁의 참상뿐만 아니라 배후에 도사린 정치지형을 해박하게 정리한 것도 훌륭하다.

 

책의 내용중에 이스라엘군의 조준사격에 팔레스타인 어린아이들과 기자들이 차례로 고꾸라지는 상황에서 학살의 현장을 눈으로라도 보아 기억하기 위해 꿋꿋이 전선을 지켰던 기자들의 모습과, 동티모르의 위급한 상황에서 전선을 떠났다는 자책감으로 저자가 딜리의 바닷가에서 혼자 쪼그려앉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나도 괜히 콧물을 훌쩍였다. 진정 양심적인 저널리스트의 모습이란 이런 것일까?

 

*관련글 : http://armarius.net/ex_libris/archives/000220.html (강유원님의 블로그)

             http://blog.jinbo.net/docu/?pid=42 (슈아님의 블로그)

             http://blog.jinbo.net/kuffs/?pid=124 (뻐꾸기님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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