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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사노위 : 11호> [생활의 파문] 회사는 사장의 것이라는 자본주의 상식에 도전하자!

 

[생활의 파문] 

회사는 사장의 것이라는 자본주의 상식에 도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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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상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통용될 수 없다

가상해 보자. 산길을 헤매던 실직자 A는 우연히 B를 만난다. B는 흥미로운 제안을 한다. 자신은 임자 없는 황무지를 알고 있고, 다행히 호미와 낫과 같은 농기구가 있으니, 함께 황무지를 개척하자고 한다. A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좋은 제안이기에 흔쾌히 응한다. 둘은 열심히 황무지를 개척하였고, 각고의 노력 끝에 곡식을 추수를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곡식은 어떻게 나누는 것이 상식일까? 세월이 지나 농장에 창고도 짓고, 현대식 농기구도 장만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누구의 것일까? 아마도 독자 대부분의 대답은 반반 혹은 B에게 조금 더, 이 질문에 답은 대충 이렇게 나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독자들의 상식은 틀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두 B의 것이다. 말도 안 된다고? 천만에! 생각해보자. 임자없는 황무지는 시장이고, A는 노동력 외에는 가진 것이 없는 노동자이고, B는 알량한 생산 수단인 호미와 낫을 가진 자본가라면, 생산수단을 가진자가 모든 잉여가치를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것을 용인하는 이 사회에서는 독자들의 상식은 틀린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B는 이미 가진 생산수단을 제공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그 이상의 생산수단과 부를 획득하고, 심지어 생산된 모든 것의 주인이 된다.
 
그렇다면 생산수단을 B가 소유하는 것은 정당한가? 오래 전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는 수탈과 폭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오랜 세월을 통해 수탈은 합법으로, 합법은 상식으로 강요되었다. 애초의 자본가는 이렇게 부를 축적하고 노동력을 착취했다. 회사는 사장의 것이라는 상식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미신이며, 사기다.
 
사회운영에 대한 상식은 계급에 따라 당연히 다르다. 자본가계급은 자신의 이념을 모든 영역에서 관철하려한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의 이해에 기반하여 사고하면, 자본가계급이 강요하는 상식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는 가장 핵심적인 자본주의 상식이며, 때문에 이것은 노동자계급에게 가장 위험한 상식이다.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는 애초에 반사회적이다.

생산수단의 사적소유, 이를 통한 잉여가치의 배타적 독점은 인류에게 크나큰 고통과 차별을 양산하고 있다. 인류의 비극은 바로 이것에 기원한다. 한 쪽에서 1달러의 돈을 벌기위해 12시간 내내 축구공을 만드는 어린 노동자가 있고, 지구 반대편에서는 이 공으로 수백억의 축구잔치가 벌어진다. 어떤 이들은 음식물쓰레기로 골치가 아픈 반면, 어떤 이들은 하루의 일용할 양식이 없어 죽어가기도 한다. 자본은 거대화되어도 노동자는 늘 해고와 강화되는 노동강도로 인해 불안한 삶을 이어간다. 이것은 현상은 동정과 시혜로 해결될 수 없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면, 회사는 사장의 것이라는 상식에 도전하고, 깨버리지 않는다면 언제나 노동자계급은 쳇바퀴 다람쥐와 같은 신세일 뿐이다. 인류공영과 호혜평등은 누구나 이야기 하지만,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는 이를 근본적으로 막고 있어 실현될 수 없다.
 
김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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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사노위 : 11호> 사회주의 당건설! 이제, 출발이다! - 4.30 정치대회 후기 -

 

사회주의 당건설! 이제, 출발이다!

- 4.30 정치대회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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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근저에 각인된 빨갱이에 대한 ‘어린 시절’의 형상이 있었다. 후일담과 개인으로의 침잠이 시대의 트렌드가 되고, 제도에 대항하는 무정형의 일탈만이 이야기되던 ‘20대’를 보냈다. 비정규직의 서러움과 아픔을 감내하면서, 체제의 견고함과 우리들의 무기력에 눈물 흘리는 ‘30대’를 보내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왜곡과 패배감, 전망없는 장기투쟁에 괴로워만 할 것인가? 자본의 이윤착취에 정확하게 노출되어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서른 몇 살의 어느 해, 우리들이 해방의 주체이고, 그 전망은 명확히 사회주의임을 깨우치게 되었다. 존재에서 오는 분노와 울분을 사회주의적 대안으로 예각화시키고, 더욱 풍부한 투쟁의 전망을 부여잡고자 했다.
 
이번 ‘4·30 사회주의 정치대회’를 통해서, 이런 나의 판단과 결단이 정당하고 올바른 것이었음을 확인했다. 사회주의 당건설이 막연한 지향이 아니라, 우리가 움켜쥘 수 있는 현실임에 가슴이 벅찼다. 자본주의는 수정되고 개량되는 것이 아니라 끝장내야하며, 우리들의 직접적인 전망이 바로 사회주의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물론, 한 번의 정치집회로 당건설이 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억수와 같이 쏟아지는 폭우를 버티어내며, 이것이 시작임을 다짐했다.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대중적·공식적으로 사회주의와 인터내셔널을 외친 정치집회 아니던가! 언제나 마음속으로만 간직해왔던 정치적 전망을 동지들과 함께 목청껏 외치며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은 패배와 슬픔이 아닌 당당한 자부심과 위대한 전망을 함께하는, 감격과 해방의 눈물이었다. 가라, 자본주의! 쟁취하자, 사회주의!
 
심인호
 
 
 
 
올 정월에 우여곡절을 겪고 우리는 정치집회를 결정 했다.
 
당 건설을 결의 후 준비모임 2년, 공동실천위 1년, 추진위 전환까지의 5개월여를 앞둔 시점 이었지만 정파별 그룹시절을 합치면 10여년 세월이고 남한의 변혁운동을 더하면 수십년의 세월을 넘나드는 가름하기가 쉽지 않은 세월이다. 그 시간 속에서 지도부 구성의 파행과 조직 내 정파의 분열 등으로 조직의 난맥상은 앞날을 가늠하기 힘들었지만 지금껏 이 땅에서 그 누구도 시도해 보지 못 했던 ‘사회주의 대중 정치집회’를 한 줌도 안 되는 남한의 사회주의자들이 수도 한복판에서 당당하게 집회를 개최했다. 정말 여러 가지 열악하고도 어려운 조건에서의 결정과 결단 이었다. 
 
하지만 집회는 성공이었고 감동이었다. 심장은 요동치고 살결은 떨렸다. 역사의 소용돌이를 스스로 창조해냈다는 전율과 이것이 시작이라는 자각이 이어져 왔다. 이 땅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스스로를 드러낼 무대를 마련하기란 쉽지 않다. 아무도 우리에게 우리의 주장을 전달해 주지 않는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의 무대이고 무대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사회주의의 대중화’, ‘당 건설의 전면화’, 더 이상 망설일 이유도 주저할 이유도 없다. 이 땅의 변혁은 일하는 자들, 고통 받는 자들이 스스로 이룩해야 하고 우리의 준비는 이제 전면적으로 대중을 향해야 함을 이번 집회는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
 
왕종필
 
 
 
 
 
사노위 지지 서울대모임이 출범하면서 내건 과제는 ‘학생 사회에서 사회주의 정치를 전면화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뜻인지 조직에서 합의되지는 않았지만, 나 개인의 생각으로만 보자면 이 목적에 비추어 스스로의 활동이 썩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내가 이해하는 ’전면화‘란 사회주의의 노선이 무효화되지 않았음을,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여전히 있음을, 그들이 여기저기 무력하게 흩어져 말과 글만 띄엄띄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조직으로 결집하여 행동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대중 앞에 드러내는 것인데, 사실 내가 해온 활동이란 주변에 그나마 말이 좀 통할 만한 사람에게 사회주의적인 내용을 단계적으로 설득해내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물론 대중 선전을 계속 해왔고 정세가 있을 때마다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입장을 표명해 왔지만, 오늘날 제정신이 박힌 사람치고 사회주의를 진지하게 고려하는 사람은 없다는 인식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다수의 학우들이 사회주의를 소수 괴짜들의 의견 이상으로 취급하고 있는지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4월 30일 저녁은 정말로 감동적이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힘차게 이어진 발언들에 가슴이 뜨거웠고, 집체극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숨도 크게 쉴 수가 없었고,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새삼스레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정치대회 이후 ‘전면화’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단기적 행동으로서는, 내가 이해하는 ‘전면화’의 의미에 430 정치대회 이상으로 부합하는 것을 찾기 어렵다.
 
발언자들이 거듭거듭 ‘이제는 당당하게 사회주의를 이야기하자’고 강조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자리 자체가 사회주의 정치를 ‘전면화’하는 움직임의 일부였고, 그렇기 때문에 학생 사회에서도 그 움직임을 이어가는 하나의 계기였다. 사회 일반적인 인식과 학우대중의 인식이 동일하지는 않지만, 전자가 후자의 기반을 이루는 것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430에서 이야기한 말들이 공허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 자리에 모인 남한 사회주의자들 모두에게, 이론으로, 선전으로, 실천으로, 대중에게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각인시키기를, 그리하여 사회주의가 소수 사변가들의 공론이 아니라 하나의 유력한 정치 노선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를. 물론, 나도 포함해서 말이다.
 
유수진
- 4.30 정치대회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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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위> 노동절 특보

<4.30 정치대회> 폭우를 뚫고 터져나온 사회주의 건설의 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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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였다!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공개적 사회주의 정치대회를 우리가 만들어냈다.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노동현장활동가, 학생활동가, 그리고 사노위 회원 500명이 모여 4.30 정치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뤄냈다. 역시나 폭우 따위는 별다른 제약이 되지 못했다. 우리 500명의 가슴에는 자본주의를 기필코 박살내야 한다는 절박함이 사회주의 건설의 굳은 결의로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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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적으로 선언했다!

 

더이상 노동자민중은 자본주의 아래에서 살 수 없다고. 이제 노동자민중은 오직 자신의 힘으로 자본주의를 역사의 박물관 속에 쳐 넣을 때가 왔다고. 자본가정당과 권력을 나누어 갖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진보정당으로 더럽혀진 노동자계급정치를 바로 세우겠다고. 사회주의노동자정당을 건설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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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나의 온몸이 자본주의를 거부한다고 외치는 동지들!  모든 억압과 차별이 없어지는 진정한 인간해방 세상을 꿈꾼다고 외치는 동지들! 죽음의 행렬을 끝내자는 동지들! 사상을 속이고 무릎꿇고 사느니 노동자투쟁의 사회주의 길잡이가 되겠다는 동지들! 동지들의 목소리 하나 하나가 여전히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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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들의 결의가 우리 모두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사회자가 물어봤다. '심장뛰는 소리가 들리냐'고!
보통 집회의 상투적인 발언이 아니었다. 집회 참가자들 어느 누구도 그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았고, 이 흥분은 정치대회의 끝까지 이어졌다.
 
우리는 자신있게 말한다.
최근 몇년간 이렇게 진정성 있는 집회를 본 적이 있느냐고!
목이  터져라 외치는 야권연대에는 없는 노동자계급의 대의가 이곳에 있지 않느냐고!
이들과 함께 노동자계급의 직접정치 실현을 일구어내지 않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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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필코 건설한다!

 

동지들, 이날의 진정성은 잘 만들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전국에서 이를 악물고 투쟁하는 동지들의 결의가 주체할 수 없이 터져나온 것이다. 폭우로도, 국가보안법으로도 결코 막을 수 없는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전진이다. 지옥같은 자본주의 사회를 뒤엎어 버릴 유일한 방안, 사회주의노동자정당을 기필코 건설하자. 그 역사적 대열에서 동지들의 심장뛰는 소리를 다시 한번 들을 때, 4.30 정치대회의 설레임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동지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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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 정치대회 선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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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문>

 

 
절망과 한숨, 붉은 피가 자본주의 대지 위에 뿌려진다. 이 땅 한켠에선 하루 세끼 끼니걱정에 자살을 하고, 몸뚱이 하나를 누울 집을 얻기 위해 불에 타 죽는다. 쫓겨나 죽고, 떨어져 죽고, 병들어 죽어간다.
 
그렇게 흘린 노동자의 피와 분노로, 이중착취에 억눌린 여성의 마른 한숨으로, 차별과 배제로 인한 장애인들과 소수자들의 한으로, 착취에 지친 피억압 대중의 눈물로 자라는 운동. 그러나 종국에는 자본이 더럽힌 세상을 뒤엎을 거대한 운동이 움트고 있다. 우리는 오늘 사회주의 운동의 전면화를 선언한다.
 
2008년 세계공황으로 자본주의는 야만성을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 공황을 타개해 자본을 살리려는 각국 정부의 정책은 물가폭등, 복지 축소, 해고, 노동착취를 강화하면서, 노동자민중에 대한 공격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더 이상 노동자민중은 자본주의 아래서 살 수 없다. 이제 노동자민중은 자신의 힘으로 자본주의를 역사의 박물관에 쳐놓을 때이다. 이미 그 가능성은 확인되고 있다. 공황 이후 전세계 곳곳에서 자본주의가 낳은 모순에 맞서는 거대한 항쟁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유럽에서, 미국에서, 아랍지역에서, 노동자민중투쟁과 혁명이 분출하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이후 핵 폐쇄를 위한 투쟁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 ‘자본주의는 영원할 것이며, 다른 대안은 없다’라는 지배세력의 호언장담이 세계공황과 노동자민중투쟁으로 산산조각 나고 있다.
 
한국은 아직 거대한 대중투쟁이 분출하고 있지 않지만, 노동자민중의 분노는 켜켜이 쌓이고 있다. 이 분노를 노동자민중의 단결과 투쟁으로 조직할 때이다. 자본과 정권의 고통 전가에 맞서 노동자민중의 생존권과 민주적 제권리 투쟁을 시급히 조직할 때다. 생존권과 민주적 제권리투쟁을 넘어, 자본주의를 끝장내는 투쟁, 노동자민중의 해방사회를 향한 투쟁으로 전진해 나갈 때이다.
 
이를 위해 더 이상 진보정당에 기대는 정치, 노동조합 지도부의 지침에 수동적으로 따르는 활동을 끝내야 한다. 노동자민중이 투쟁의 주체이자 정치활동의 주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 자본가정당과의 권력분점을 향해 질주하는 진보정치로 더렵혀진 노동자계급정치를 바로 세워야 한다. 조합주의와 실리주의에 갇힌 노동조합운동을 계급적이고 전투적인 운동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서 노동자민중에게 단결과 투쟁만이 살 길이며,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투쟁만이 노동자민중이 해방되는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정치적 전망을 제출해야 한다.
 
바로 지금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노동자계급정치가 절실한 때이다. 사회주의 정치로 노동자 정치운동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타협과 개량의 깃발이 아닌, 투쟁과 혁명의 깃발을 올려야 한다.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로 노동자계급정치의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
 
오늘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이 땅에서 금기의 언어가 된 ‘사회주의’의 깃발을 우리는 높이 들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자본주의가 낳은 야만과 재앙이, 우리를 이 역사적 광장에 서게 했다. 우리는 노동자민중의 해방을 위해, 사회주의를 노동자민중의 현실운동이자 미래운동으로 만들어 나갈 것을 결의하며,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하나. 자본의 고통전가에 맞서 노동자민중의 생존권과 민주적 권리를 위해 투쟁할 것이다.
하나. 자본주가 낳은 모든 억압과 착취, 차별에 맞서 투쟁할 것이다.
하나. 전세계 노동자민중 투쟁의 승리를 위해 적극 연대할 것이다.
하나.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로 노동자계급정치를 바로 세우고 사회주의운동을 전면화할 것이다.
 
 
2011년 4월 30일
 
4.30 정치대회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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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430 정치대회로> 430 정치대회 팜플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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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 팜플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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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사회주의자 4호>민주대연합? 진보대통합? 대안이 뭔데?

반MB정서? 물론 존재한다!
 

  당연한 바이지만, 현재 조직 노동자들을 비롯하여 노동자 대중들의 반MB 정서는 매우 광범위하고 뿌리 깊다. 집회  시위에 대한 억압조치, 파업권 제약 및 노조 말살 등과 같은 민주적 권리에 대한 공격뿐만 아니라 자본가와 부자들을 살리기 위한 경제위기 고통전가(노동유연화와 ‘양극화’, 해고 실업, 비정규직 양산, 단협 해지, 복지 삭감, 정리해고 요건 완화, 파견제 확대 등등)로 인해 ‘이명박 OUT’을 절실히 바라고 있다.
 

  그러나 대중들은 이명박의 공격에 맞서 민주적 권리와 생존권을 방어하기 위해 싸우고, 나아가 공세적인 투쟁으로까지 요구하고 있는데 반해 소위 진보라 불리는 이 땅의 좌파들은 방어적인 투쟁조차도 일관되게 이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수위를 제한하고 타협과 양보로 정리하려고 한다.

 

민주대연합의 뿌리는
MB가 아닌 좌파들의 무능력이다

 

  이러한 지도력 위기 문제로 인해 사람들은 반MB 정서를 삶에 기반을 둔 투쟁에서부터가 아니라 선거를 통한 MB‘심판’으로 해결하는 쪽으로 유도되고있다. 어차피 대중투쟁이 안 된다면 선거를 통해서라도 저 지긋지긋한 이명박 정부가(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찌그러지고 없어지도록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민주노총과 민노당의 반MB 야권연대/민주대연합은 바로 대중들의 이런 체념 상태를 악용한 것이다. “어차피 선거를 통한 심판이라면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 연대를 통하지 않고서는 MB심판이 가능하지 않다. 고로 MB 심판을 위해서는 민주대연합이 불가피하고정당화된다.”
 

  이러한 프레임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만신창이로 만드는 민주대연합을번성케 하는 근본 토양이다. 그리고 이것이 민주대연합이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민주대연합에는 MB에 대한 폭로는 있지만 대안은 없다. 정책도 세력도 과거와 다르지 않다. MB가 권력을 잡고 난장을 부림에도 그가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국민들이 MB의 본질을 몰라서가 아니다. 그 이외에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에서내놓은 선택지 중 제대로 된 선택지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상황이 그러할진데 뽑히지 못한 정당들을 묶어 떨이 팔듯이 판다고 상황이 바뀌지는 않는다. 
 

민주든 진보든
 

  자 이제 민주대연합이 아닌 진보대통합을 한번 보자. 진보대통합은 사실 ‘진보’대통합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것이다. 진보대통합론자들의 핵심 기조가 무엇인가? 바로 ‘반신자유주의’이다. 그러나 한국에 신자유주의를 들여온 세력이 누구인가? 바로 민주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노당은 민주대연합 행보를 취하는 중에도 틈나는 대로 ‘신자유주의 반대’를 주장함으로써 배신적인 민주대연합과 ‘반신자유주의’가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진보신당 역시 ‘반신자유주의’를 외치면서도 반MB 야권연대에서 민주당, 국민참여당 등 신자유주의 세력들과의 연합을 끊임없이 시도하지 않았는가.   
 

  실제로, 민주대연합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한 민노당이 진보대통합도 함께 내걸고 있는 데서 보듯 민주대연합과 진보대통합은 대립 관계가 아니라 보완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다. 민주대연합 전략의 하위전술로서 진보대통합이 존재하는 것이다. 둘의 차이는 단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열망을 배신하는 데서 좀 더 노골적인 것과 좀 더 포장한 것 간의 차이일 뿐이다.
 

계급투쟁을 함께하고
이끄는 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민주당을 비롯한 ‘신자유주의 세력’ 배제를 천명하고 민주대연합과 선을 긋는 그러한 진보대연합(진보신당 일부, 사회당 등), 즉 ‘반신자유주의 진보대연합’이 있다고 가정하고 이야기를 진행해보자.
 

  언뜻 이런 반신자유주의 진보대연합에 대해서는 반대해야 할 이유가 없는것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반신자유주의 진보대연합은 진보대통합당 등 새로운 진보정당을 상정하고 있다. 이 정당이 지금까지 민주대연합과 반MB 야권연대를 통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만신창이로 만든 민노당, 진보신당과는 달리 자본가 정당과 철저히 선을 긋는 정당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과연 새로운 진정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선거판에서 ‘진보’의 독자성을 견지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담보된다고 보지 않는다. 선거에서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계급투쟁 전선에서, 특히 현 시기 자본의 위기전가 반대투쟁과 ‘민주주의 후퇴’에맞선 민주적 제권리 방어투쟁/반MB투쟁에서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와 같은 당면한 현재의 투쟁들에서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를 세워나가지 못한 채 단지 선거에서 진보의 독자성을 견지하는 것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이뤄질 것이라 보지 않는다.
 

선거 전술로의 진보대연합?
전망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렇다면 정치세력화/당 건설 차원이 아니라 선거 전술 차원에서는 반신자유주의 진보대연합이 필요하지 않을까? 2012년 총선, 대선 같은 구체적인 선거 국면에서의 전술에 대해 여기서 미리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분명히 전제해야 할 것은 선거라고 해서 계급투쟁 강령과 별개의 강령이 따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선거강령을 반신자유주의 수준으로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정치권력 장악 전망을 명확히 열어주는 강령을 중심으로 선거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비정규직 철폐! 일체의 해고 금지
△생활임금 보장 하에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임금 삭감, 노동조건 저하 없는 1일 6시간 주 30시간 노동제 도입)
△집회 시위 결사 표현의 자유 쟁취! 완전한 파업권 쟁취! 노동악법 철폐! 국보법 철폐!    
△노동자 생산통제권 도입
△은행을 비롯한 모든 금융기관 몰수 국유화,
△재벌 대기업 몰수 국유화, 국가기간산업(재)국유화
△제국주의 전쟁 반대, 군사주의 반대
△구사대, 용역깡패, 경찰 폭력에 맞선 노동자의 자위적 무장, 노동자 정당방위대 건설      

 

  자본주의에 도전하고 자본주의를 공격해 들어가는 이 같은 강령에 반대하여 단지 소심하고 모호하기 짝이 없는 반신자유주의 수준으로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제한하려 하는 진보대연합으로는 오히려 지금의 지도력 위기를 가중시킴으로써 민주대연합을 창궐케하는 토양을 넓혀주는 역할만 할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정치권력 장악의 전망을 배제하는 반신자유주의로는 당면한 자본의 위기전가에 맞선 생존권 방어투쟁조차도, 이명박의 ‘민주주의 후퇴’에 맞선 민주적 제권리 방어투쟁조차도 일관되게 이끌 수 없다.

 

*진보대연합 연속기획
1. 반MB연합에 대한 비판
2. 잘못된 진보양당의 노동자정
치 세력화와 그 연속선상의 진보
대통합
3.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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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사회주의자 4호>당과 강령은 건설되고 있다!

당과 강령은 건설되고 있다!
-사노위 전국강령토론회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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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위는 강령 건설 중
 

  사노위는 명확히 당추진위(당 건설 추진위원회)로의 확대전환을 목표로 출범했다. 당추진위로 도약하기 위해서 필요한 핵심 지표는 다름 아닌 당 규약과 강령의 건설이다. 사노위는  가장 정확하게 자본주의 사회를 분석하고, 가장 정당한 요구안을 제시하며, 가장 효율적인 투쟁전술을 제출하는 최선의 강령을 건설하기 위해 내부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사노위는 수많은 지역위원회별 강령토론회를 거쳐, 지난 3월 19일 전국강령토론회를 개최하였다. 분회별 토론도 계획, 진행 중이다. 총회에 준하는 참여인원으로 진행된 전국강령토론회는 아래와 같은 주제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3개 초초안을 중심으로 통일된 강령초안 건설을 위한 치열한 토론이 오갔다. 

 

 

1. 자본주의 시대 규정 

2. ‘현실 사회주의’ 국가 문제 

3. 한국사회 성격 분석 
4. 노동조합에 대한 태도와 개입방향 

5. 재생산영역과 지역정치활동 

6. 의회-선거 전술에 대한 태도 

7. 여성해방의 실천방향 

8. 생태문제에의 실천방향 

9. 전쟁-한반도에 대한 입장 

10. 무장-폭력혁명 문제 

11. PT 독재 명시 문제.


 

대중은 도대체 왜 일어나지 않을까?
왜 강령이 필요한가?

 

  당에는 강령이 있음은 당연한 상식으로 통용된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강령은 기존 정당들의 ‘강령’과는 많은 의미에서 의미와 용도가 다르다. 많은 의회주의 정당의 강령에는 “어떤” 사회를 원하는지가 있을 뿐 “어떻게” 만들어가자는 말은 없다. “이런 사회를 원하는가? 우리에게 투표하라. 국회의원들이 당신들 대신 해 줄 것이다”가 이들의 정답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당의 강령은, 사회주의 사회가 어떤 사회일지뿐 아니라 “노동자민중이 자본에 도전하고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전략전술”을 담아야 한다. 사회주의 강령은 “우리가 대중 대신 사회를 바꾸겠다”가 아니라, “함께 바꾸자”고 대중에게 호소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회모순에도 대중은 왜 일어나지 않을까? 이에 대한 답을 조심스레 내려 보자.  “도대체 누가 진짜 노동자 대중의 편인지” 그리고 “투쟁하면 뭐가 좋아지고,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이 없는 이상, 공산주의 이론서가 다수 대중을 투쟁하게 만들 수는 없다. 강령이 필요한 이유이다.
 

  전국학생행진 동지들과 같은 운동가들은 “대중 앞에 전략전술(초안)과 당강령을 제시하는 것은 대중의 운동을 통제하는 엘리트주의다”라며 비판한다. 이는 그럴듯한 이야기이지만 실제로는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방법론(초안)을 전혀 내놓지 못한다. 운동의 성패를 대중 탓으로 떠넘기는 무책임한 노선이다. 결국 운동의 실패를 대중의 이론적 무지 탓으로 규정하고, 대중의 무지를 깨기 위한 의식계몽운동에 주된 목표를 두게 된다. 의식계몽운동은 언제나 대중운동이 아니라 소수의 좌파 지식인을 재생산해 왔을 뿐이다. 사회주의와 계몽주의, 둘 중 어느 쪽이 진정 엘리트주의로 비판받아야 할지는 독자가 판단할 몫이다.
 

강령은 우리의 무기다
 

  대중적인 언어로 쓰여 있고 대중의 필요를 분명히 읽어내면서도 사회주의에의 전망을 명확히 제시하는 강령, 그것은 사회주의자들이 반드시 손에 쥐어야 할 무기이다. 운동의 전진을 위한 전략전술을 제공하고, 정세의 변화에 따라 대중과의 소통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강령. 그것이야말로 대중 앞에 책임지고 지도력을 심판받는 사회주의 정당이 가져야 할 강령이고, 사노위가 건설할 사회주의노동자정당의 강령이다. 당과 강령은 건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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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사회주의자 4호>전북 버스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한다!

전북 버스 노동자 무기한 단식, 고공농성 돌입!
-정당한 파업투쟁과 고공농성을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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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권을 얻기 위해 시작된 전면 파업
 

  전북 버스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이 100일을 훌쩍 넘기고 있다. 전북 버스 노동자들은 수십 년간 하루 15-16시간의 노동, 급여150만원, 사고자 비용 본인 분담, 일인당 천만원이 넘는 임금 체불 등에 시달려 왔다. 이들에게도 노동조합이 있었다. 하지만 회사의 편만 들던 한국노총의 어용 노조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함께 찾기는커녕, 회사와 협상을 하면서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에 바빴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고자 작년 여름부터 버스 회사 곳곳에서 노동자들이 민주노조의 깃발을 올리기 시작했고, 한국 노총을 탈퇴 했다. 그리고 작년 12월, 당당하게 세운 민주노조 깃발 아래 노조탄압중단·민주노조인정·최저임금지급·통상 임금 미지급분 지급·노동시간단축·식사시간보장 등을 요구하며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진보교육감’의 탄압을 받는 버스노동자의 투쟁
 

  하지만 민주 노조를 건설하고, 자신의 노동권을 찾기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험난하기만 했다. 버스 사업은 공공재이기 때문에 버스 자본은 전주시로부터 일 년 간 150억 원에 달하는 지원금을 받는다. 하지만 이 지원금이 어디로 쓰이는지에 대해서는 사용주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제대로 된 감사절차도 하나 없는 상황에서, 그 막대한 지원금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극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전주시는 이 지원금을 빼돌린 회사를 탓하기는커녕, 버스 회사들과 합심하여 노동자들의 파업을 끝장내기 위한 데만 힘을 쏟고 있다.  100일이 넘는 파업 투쟁에도 회사 측은 계속해서 교섭을 거부하기만 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의지가 없다. 그래서 지난 26일 버스 투쟁 지도부가 전교조 전북지부 옥상에서 무기한 단식, 고공 농성에 돌입했다. 정말로 기본적인 요구안을 가지고 목숨을 건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노동자들에게 정권을 벌써부터 불법을 운운하며 투쟁을 끝내려고만 한다.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하나도 듣지 않은 채로 말이다. 불법이라면 엄청난 공공 지원금을 받고서 그 돈을 제대로 쓰지 않은 회사가 훨씬 많이 저질렀을 것이다. 그런데 전북교육청까지 합세해 ‘진보 교육감’이라고 불리는 이가, 노동자들이 전교조 건물 옥상에서 내려올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처럼, 버스 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 투쟁은 이명박정권, 전주시, 버스 자본에게 탄압받고 있다.

 

굽힐 수 없는 요구가 있다
 

  하지만 총자본과 공권력이 합세하여 노동자들의 투쟁을 파괴하려고 하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투쟁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미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쟁취해야 하는 권리가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투쟁으로 쟁취할 수 있는지, 전북 버스 노동자들은 100여일이 넘는 파업 기간 동안 자신들의 투쟁을 넘어 코아 백화점, 홍익대 비정규직 투쟁, 연세대 비정규직 투쟁, 재능 등 수많은 사업장에 연대 투쟁을 하면서 몸소 느끼고 있다. 전북 버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동권을 쟁취할 때가지 목숨을 건 투쟁을 끝내지 않을 것이다. 정권과 버스 자본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저지하려 하지 말고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요구를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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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사회주의자 4호>430 정치대회, 노동자계급의 새로운 대안을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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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안이 옳은 대안인가?
 

 

  사회의 부조리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현 자본주의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안다. 국회에서의 정치가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MB와 한나라당이 진행하는 막무가내식 기업위주 정치를 싫어할 수 밖에 없다. 자본주의가 없어지거나 최소한 자본주의가 바뀌기는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지난 20년간 해결되지 않은 질문에 답이 나와야 된다. ‘어떤 대안이 옳은 대안인가?’
 

 

진보정당의 진로이탈,
민주노조의 관료화

 

  불행히도, 우리는 어떤 대안을 선택할지 고민하기 이전에 대안으로 생각할 만한 것들이 전무하였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자신들을 지지하는 노동자민중과 민주당 등의 부르주아정당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위기와 전세계노동자 계급의 투쟁이 격화되고 있는 지금에도 그들은 여전히 자본주의의 틀을 벗어날 생각은커녕 오히려 그 속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늘리는 것이 민중을 위한 것이라 말하고 있다. 민주대연합의 이름으로 노동자 대중에게 거짓 환상을 유포하고 있는 그들에게서 희망을 찾을는 수 없다.
 

  민주노조운동 역시 이미 옛 모습을 잃어버렸다. 조합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날이 갈수록 관료화, 개량화 되고 있다. 많은 노동자들이 여전히 민주노총의 이름 아래에서 생존권과 더 나은 삶을 위해 활동하고 있지만, 이미 뿌리깊어진 상층부 관료들의 행동방식은 주류 정치권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대안은 노동자 계급정당
 

  진보정당 출범 시기, 그들의 목표는 노동자민중들의 정치세력화였다. 그들이 스스로 그렇게 말하였고, 많은 노동자들이 그렇게 믿었다. 그렇기에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실패와 민주노조 운동의 관료화, 개량화는 동전의 양면이다. 이를 더 이상 방치한다면 더 이상 노동자 계급의 미래는 없다.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조직하고, 이 속에서 투쟁하는 노동자계급과 함께 노동자 계급정치를 현실화 시키는 노동자정당, 바로 이것이 지금 필요하다. 그리고 그 정당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목표를 가지고 활동하는 사회주의자들 뿐이다.
 

가자! 430 정치대회로!
 

  이제 그 당의 건설을 위한 한 걸음 전진으로 사노위는 정치대회를 준비한다. 정치대회는 11년 노동자민중들의 투쟁을 총화하고 당건설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자본주의를 바꾸어야 노동자 민중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대안사회를 필요로 하면서 사회주의에 대해 열림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2011년 노동자민중의 삶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 관심이 있다면 4월 30일 6시, 마로니에 공원으로 모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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