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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어린이 건강 토론회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렸던, 김상희 의원측 주최의 '환경과 어린이 건강 토론회'에 다녀왔다.

센스있게 2시에 시작해서 4시 반에 끝난 관계로

거기서 바로 퇴근했더니 집에 도착해서도 6시 전이었다.

아아, 좋아라

일찍 퇴근하여 듣는 빗소리, 오롯이 아름답구나~~ 에헤라디야.

비야, 세차게 내려도 좋다구나. 얼씨구.:-)

 

타르 색소나  아질산나트륨 등의 식품첨가물 제한, 이런 것들도 다 좋았지만

환경정의 다지사 박명숙 국장이 잠깐 스치며 했던 말이 콕 마음에 박힌다.

 

환경오염이나 개발로 인해 미래세대의 건강권이 위협받는다고 하면서

아토피 지원센터를 만들고, 아토피 예방 지침서니 뭐니를 뿌리고 보건소에서 교육 백날 하는 것이 뭔 소용이란 말인가.

사회 전체가 개발 안 하면 다 망해버리는 것처럼 벌벌 떨고

시멘트가 세워지기만 하면 다들 환장하는 이 시츄에이션에서 말이다.

새만금도 '지속가능한 개발'이고 '친환경 개발'이라는데

이런 '친환경'의 물결 속에서 아토피 예방은 언감생심.

 

그래서 한번쯤 잠깐 일하다가,

'생활 속 유해화학물질 제로운동'은 어디다 써야 하는 물건인고, 하는 심정이  되버린다.

우석훈 말대로 생태적 미학이나 감수성이라고는 눈꼽마치도 없는 이 사회에서,

'땅값'으로 말해야 소통이 되는 이 세상에서,

이런 것들이 '까탈'스러운 몇몇 개인의 기호나 실천이 아니라 사회적 감수성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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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하게 한걸음

쿨하게 한 걸음  by 서유미

 

'스타일'이 너무 스타일리쉬해서 질린 나머지,

서른 세살, 직업도 없고 연애도 없고 아버지 환갑잔치 해 드릴 돈도 없고

'따뜻하고 달콤한 카라멜 라떼'만이 삶의 존재 한 가운데에 있는 여자의 이야기를 단숨에 읽었다.

 

머리에 염색하는 아버지를 보고 저러다 검정 매직으로 대머리 부분 칠하면 어쩌냐는 어머니와

멀쩡히 대학 졸업하고도 이력서 백만번쯤 쓴 동생과

오랫만에 구립도서관에서 만났다 했더니 공무원 시험준비하는 동창과

대학 다닐때는 제일 보헤미안처럼 살더니만 결국엔 의사와 결혼을 준비하는 친구와

어릴때 발랑 까져서 남자나 사귀고 팔레레 돌아다니다가 시집잘가서 떵떵거리고 사는 '엄친딸'  사촌동생.

 

그리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직장을 관둔 것도 모자라

도통 떨떠름한 남친과 헤어지고

엄마 앞에서 직장 관둔 것도, 헤어진 것도 이야기를 못하는 서른 세살의 나.

 

소설 제목은 '운수 좋은 날'처럼 반어법이었다.

 '쿨하게'는 커녕 예전 애인을 어쩌다가 길에서  만났을 때 절대 입고 싶지 않은

무릎나온 고무줄 추리닝 같구나.

소설의 대사처럼 '무슨 인생이 평생 삼재냐, 지겹다, 지겨워'쯤 되시겠다.

 

소설상황과 비스꼬롬한 '똥구리' 미스인 내 마음은 소설을 읽으면서 안타깝다 못해 찢어졌다.

(울엄마가 남들 딸은 골드미스네, 실버미스네 하고 있는데 넌 '똥구리 미스'구나, 라며 내 맴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엄마, 난 '친환경 스댕steinless 미스'거등, '똥구리'가 뭬야 구리게시리.)

그래서 작가의 말을 읽는데

작가가 서른 세살이 약간 넘은, 게다가 결혼해서 남편도 있는 분인 것을 알고 뭔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주발도 작가가 싱글이 아냐, 라면서 볼멘 소리를 했다.

그 정도로 우리는 소설 속 주인공의 감정에 ET가 손가락을 맞대는 것처럼

감정을 잇대고 들들들 재봉틀로 박아버렸던 것이다.

열심히 박음질 하고 났더니 천을 뒤집어서 박어버린 듯한 이 배신감.

 

흥, 그래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짠했지만 위로받았고 스스로에게도 '화이삼'이었다.

소설의 결말은 공무원 시험 패스도 아니고 영화비평상 당선소식도 아니고 하다못해 고만고만한 연애도 아니었다.

연애는 커녕 주인공은 서른 세살에 이런 말까지 하지 않겠는가.

"사랑하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한 조바심도 사라졌다. 억지로 사랑해야 할 필요는 없다."

결론은 정말로 '쿨하게 한걸음'이었다.

따뜻하고 달콤한 카라멜 라떼 한 잔에 위로받으면서.

그게 이 소설의 진정성이었다.

 

평론가의 말처럼 너무 평범하고 정직하고, 연필로 꾹꾹 눌러쓴 느낌의 착한 소설이었다.

문체도 그랬다.

요새 너무 멋부리는 소설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내가 촌스럽게 잔잔한 소설을 많이 안 읽어서인지

평범해서 참으로 좋았다.

그 평범함이

"그래, 오래 흔들렸으므로 너는 아름답다.

그래, 오래 서러웠으므로 너는 아름답다."

에서 나온 것이라서 마음 깊이 아름다웠던 것 같다.

(구광본 ‘오래 흔들렸으므로’ -소설 뒤 평론가의 글 중에서 발췌)



 

 -같은 싱글의 입장에서 내 마음은 안타깝다 못해 미어졌다.

순간 엉뚱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연애세포나 노처녀 히스테리 이야기는 이 생각에 비하면 로맨틱하기까지 하다.

희주가 거품을 물며 불만을 토로하는 동안 내 머릿 속에는 유방암과 자궁암이 쌍둥이빌딩처럼 우뚝 솟아올랐다.

삼십대 환자 급증. 특히 출산은 커녕 모유수유 경험이 없는 미혼여성에게서 발병률이 높다는

뉴스와 신문기사가 슬라이드처럼 착착 장면을 바꿔나갔다.

출산은커녕 당분간 결혼계획도 없는 늙은 싱글들은 어쩌면 좋단 말인가.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여자 혼자서 나이 들어간다는 건 이렇게 위험부담이 큰 건가.

p44-45

 

-사십대를 기대하기에는 인생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자식 자랑을 할 수 없는 세상의 모든 부모가 불쌍했고 자랑거리가 되지 못하는 머저리 같은 자식들도 불쌍했다. 150

 

-열심히 해 보고 또 그 때 가서 생각해보면 된다.

실컷 자고 나서도 여전히 뭔가를 저지르고 싶으면 뜨거운 캐러멜라떼를 한 잔 하시며 길거리를 쏘다닌다.

 

-죽음 앞에 치통은 얼마나 하찮은가.

그런데도 타인의 죽음은 개인의 치통을 뛰어넘지 못하는 법이다.

이제 그걸 순순히 인정하는 나이가 되었다. 242

 

-따뜻하고 달콤한 캐러멜라떼

아, 캐러멜 라떼, 그걸 보는 순간 저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 커피는 참으로 삶의 한가운데 있는 존재 같았다.

입 안으로 넘긴 커피가 하도 달콤하고 따뜻해서 왈칵 눈물이 났다.

동남은 이제 이렇게 맛잇는 커피를 마시지 못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자 마음이 아팠다. 245

 

 

-작가의 말 중에서

 

미혼의, 게다가 애인도 없고 실업자이며 은행잔고마저 넉넉지 않은 여성이 바라보는 자본주의 사회란 두려움 그 자체다.

돛단배를 타고 사나운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가진 것도 없고 자기 편을 들어주는 사람도 없고 경험조차 없으니

풍문만으로도 두려워지고 자꾸 다른 사람들을 힐끔거리게 된다.

그 막막함과 상대적 빈곤감 같은 걸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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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스타일,을 읽고 주발에게 빌려주면서 말했다.

 

"이거 읽고 너도 칙릿소설 한 번 써봐, 1억원 벌어서 나 좀 호강시켜줘봐"

 

그래도 스타일의 작가 '백영옥' 에게 가혹하다든가,

혹은 난 작가를 너무 우습게 봐, 뭐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나만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아니었나 보다.

주발이가 미용실에서 본 '싱글즈'라는 잡지에서도 이번 여름 휴가에

'젊은 언니들이여, 칙릿 소설을 한번 써보자'라고 부추겼다고 한다.

 

이 책이 서점마다 베스트셀러 전시 코너에 보무도 당당하게 전시되어 있고,

신문에 대문짝하게 광고되는 것도 좋다.

나도 ‘서른 하나, 홈쇼핑에서 파는 옥돌매트가 필요한 나이’라는 광고 문구에 혹해서, 지갑을 열었다.

 

서른 하나, ‘마놀로 블라닉’ 때문이 아니라

브런치를 함께 하고 생일을 챙기는 단 하나의 특별한 그놈 대신,

서로를 소울메이트로 챙기는 여자들 때문에 ‘섹스 앤 더 시티’를 보는 나이,

내 경우 겉멋만 부리고 내용은 별 것 없다고 생각되는 칙릿에 환장하는 이유는 이런 것이다.

 

흠, 그런데 이 소설은 중고등학생용 100% 하이틴 로맨스였던 것이다.

우석훈이 ‘직선들의 대한민국’에서 이명박 시대를 미학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시대라고 하던데,

이명박 시대에는 '하이틴 로맨스'도 문학상에 당선되는가?, 하고 교육감 선거 이후 좌절이시다.

공교육감도 대략 난감하시고 '1억원 짜리 하이틴 로맨스'도 난독증을 불러 일으킬 것 같다.   

 

‘체 게바라의 혁명 정신도 스타벅스의 카페라떼처럼 테이크 아웃할 수 있다고 믿는 이 시대에

혁명이란 몸 사이즈가 66에서 44로 줄어들거나, 키가 160에서 170으로 늘어나는 일 뿐‘

이라는 초반의 경쾌한 문구도

나중에는 뭐 작가가 이런 수사학 정도는 쓰셔야지 쯤으로 변했다.

‘제대로 된 수트를 입거나 완벽한 구드를 신는 일에도 진정성이 있다’고 믿으며

패션지 기사로 일해 온 여주인공 이서정의 그 진정성을 나는 찾지 못했다.

그저 '수석에 수석을 거듭한 수재'에서 외과의사로 (당빵 S출신이 아닐까 사료되옵니다),그리고

최고의 이태리 요리 전문가가 되어서 원 테이블 레스토랑를 차리는 남주인공에 홀렸다.

그래, 잘난 놈들은 가지가지 하는구나, 니가 '스탈'나는 직업은 혼자 다 하시라, 쯤의

못난 인간의 되둥그라진 열등감까지 발로하였던 것이다. 흠흠 

 

나 역시 그 진정성을 좋아라하는 서른 한 살이라고 생각한다.

허영덩어리가 마음 속에 응어리져 있다.

이 놈이 좀더 크면 종양보다 더 무섭게 삶을 망가뜨릴 것이다.

스타벅스에 너무 자주 가서 스스로를 된장녀라고 한탄하면서도

스타벅스의 초록간판만 봐도 위로받는다. 그리고 '히말라야 커피' 같은 공정무역 커피에 열광한다.

사실 사회과학 서적보다 보그나 엘르의 핫 아이템이 훨 재미있지만 들고다니는 책은 '한겨레21'같은 시사잡지다.

 

여 주인공은 ‘왜 그 사람들이 되먹지 못한 불편한 옷을 만들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있기에

(잡지사에서) 버틸 수 있었다’고 말한다.

내가 소설에서 기대했던 것은 도레스 레싱의 문학성 같은 것이 아니라

이 두 가지 욕망이 가진 두 가지 진정성이었다.

‘되먹지 못한 진정성’이 있다고 마구 우기는 이 시대 칙릭들의 욕망.

그런데 소설은 ‘프라다에 끌리는 눈길과 굶어주는 아이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 이 상반된 욕망’에 대한 이야기 아니라

‘이제 무엇이 윤리인지 고민하지 않겠다’라는 결론만을 반복한다.

그러니까 여주인공 이서정과 서른 하나의 여자들이 공유하는 것이

‘스키니진 체험기’나 살 빼기 다이어트 약의 부작용인 ‘뿡뿡 방귀’ 밖에 없단 말이더냐?

 

모르겠다,

이서정처럼 결국 그런 남자를 만나지 못할 팔자의 서른 한살이라서

이 책을 산 만원이 이렇게 고까운지.

공정무역과 기아에 허덕이는 어린이 마저도 요새는 가장 '스타일리쉬'한 소설에 등장해야 하나보다.

그게 세상의 진보이고 윤리라니,

갈 길이 너무 멀다.

고작 나는 서른 하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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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좋아

기묘가 중국의 교환학생을 끝내고 들어와 내 방에 잠시 머물고 있다.

중국 공산당 서열 108위 쯤의 '짱골라' 아들내미를 만나서 결혼소식을 팡팡 터뜨리며

우리에게 중국행 비행기표를 선사하라는 말도 민망하게,

연애 한 번 안 하고 한국으로 들어와버린 것이다.

 

그래도 좋아, 아무래도 좋아.

 

기묘 덕택에 그동안 게으름에 파묻혔던 못 보았던-실은 연애질에 매진하느라,(컹컹,친구들, 자네들도 그랬잖은가-_-;;;)-

휴지, 미물, 달순, 오정, 성현 등을 만나고 있다.

오랫만에 보았더니 새삼 너무 좋아서,

아 나는 인복이 철철철 넘치는 사람이라서 '88만원' 세대쯤이야, 하는 미친 마음이 되었다.

대체 88만원 월급과 인복이 무신 상관관계란 말인가.

그저, 돈어 없어서 어쩔 때는 과일 사 먹는 것도 저어되는, 참으로 추레한 삶이지만

친구들 때문에 참 좋다, 라는 이런 착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보지. ㅋㅋ

 

기묘와 자기 전에 불 꺼 놓고 이래저래 이야기 하고

말똥만 굴러가도 웃다 쓰러진다고, 웃고 자지러지느라 침대보를 엉망으로 헝클어놓아도 친구와 있어서 참 좋다.

아침에 같이 일어나 밥도 같이 먹고 물통에 물도 척 하니 싸가고

밤에는 또 얼굴을 보니,

왜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서울 타지 생활을 하면서도 남들과 함께 사는 것을 그렇게 좋아라 했는지 감이 왔다.

 

암튼 요새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블로그는 참 오랫만에 들어와 봤다.

행복하니,

뭔가 적고 싶은 기분이 도통 들지 않았던 것일까.

 

자랑질이다.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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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란의 다카포

빌려놓고도 한동안 일하는 곳, 책장 위에 오롯이 앉혀놓기만 했는데,

어느날 외부 회의에 가는 길에 뭐 읽을 거리가 없을까, 하는 심정으로 집어들었다가

홀라당 호란에 빠져

이제는 무수히 들었던 클래지콰이의 노래들과  그녀가 피처링한 성냥팔이 소녀라든가, will you love me tomorrow?

등의 노래가 내게 와서 '꽃'이 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세상의 테두리 밖으로 벗어나지 않고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주장할 수  있는 세상'을 만나고 있는 것 같아,

호란이 부러웠다. 

부러워서 몸이 베베 꼬이다가 책 말미에 있는 여러 블라블라 인사들의 호란 소개 글은 '눈꼴셔서

못 보겠어,쳇' 쯤이 되셨다. (되둥그라졌기는 -_-)  

 

책에서 본 호란은

두 마리 페르시안 고양이에게 부비부비하고, 책을 읽고, 가사를 쓰고, 술을 마시고, 아날로그를 사랑하고

이해받고 이해해줄 수 있는 관계 안에서 사랑받고, 겉멋부리는 연애에서 호되게 차이고,

혼자 카페에 앉아 글을 쓰면서 므훗해하고(덩달아 나도 그 기운을 받아 책을 읽으면서 행복해하고) 

얼리 업댑터 아빠이자 어머니란 존재를 딸로서 존경할 수 있게 만드는 훌륭한 엄마의 딸이었다.

그리고 책과 음악과 관계, 경험을 엮은 망을 통해

'모든 관점 보텍스'를 겪어 본 듯한 사람으로 보였다.

'모든 관점 보텍스'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나오는 고문기구로,

우주의 광대함과 비밀을 가르쳐줌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실감하게 해서 사람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기능을 한다.(p63) 

나도 호란처럼 모든 사람이 한 번쯤은 군대 말고 '모든 관점 보텍스'에 내쳐졌으면 좋겠다.

그 고문기구를 거쳐서 사람이 우주의 미물로서 미물만큼만 욕심낼 수 있기를,

여기 저기, 어차피 미물인  서로의 존재를 기꺼이 가여워하고 그래서 감싸주는

뭉글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되었으면.

 

부러워서 몸이 베베 꼬여도,

김윤아라든가, 이상은이라든가, 그리고 호란 들이 많이 많이 나와서

그런 가수들이 주류에서 뜨고,

'아, 더 이상 뜨면 안 되는데' 하는 안타깝고 서운한 마음이 자주 들었으면 좋겠다.

  

 

-호란의 책장에서 밑줄그은 책들, 나도 볼 테다!

 

아르토 파실리나 <기발한 자살여행>

 

뮈리엘 바르베리 <고슴도치의 우아함>

 

제레드 다이아몬드 <섹스의 진화>

 

-호란의 쥬크박스 중

 

Beth Gibbons

 

Rebecca Pidgeon

 

Jeff Buck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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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oad

"여행, 커피, 뜨거운 물로 날마다 샤워하기."

내 생활의 세가지 계륵.

 

뜨거운 물로 날마다 샤워하기,는 작년 겨울 11월부터 고치기 시작해서

요새는 이틀에 한 번 샤워로 완전히 안착! 

올 여름에는 '찬물로만 샤워해야지'로 진화를 기다리고 있는 중.(짝짝짝!)

 

커피는,

공정무역 커피를 이용하거나 작은 카페에서 직접 볶은 것을 아주 연하게 마시는 '차악'까지는 갔지만

한국에서 나지 않는 커피를 아예 끊는 것은 못 하고 있다.

언젠가 친구 미물이 뉴욕에서 만난 한인 교포 중에 온 몸이 마비된 할머니 이야기를 해 줬다.

"이렇게 살 바에는 자발적으로 죽고 싶다"고 하루에 스무번도 더 생각하다가도

아침에 일어나 커피 냄새가 방 안에 가득 흐르는 것을 맡고 누워있으면

"살아서 이 커피향을 아침마다 맡고 싶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지금도 나는 토요일 아침, 조용히 일어나서 전기포트에 물을 데우고

원두커피를 슬슬 갈아서 드리퍼에 올린 후 "코피 루악"하면서 맛난 커피를 내려마시고 있다.

("코피 루악"은 인도네시아에서 나오는 디게디게 맛난 커피라는데

나는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식당 주인이 커피를 내리면서 읖조리는 것을 보고

영화도 너무 좋고, 그걸 읖조리는 식당 주인님도 너무 좋아서 따라하고 있다,)

뉴욕 할머니처럼 커피 향 때문에 살고 싶은 바램이 자라날 정도는 아니지만

커피는 토요일 아침, 휴일 아침에도

스스럼없이 일어나 너무나 기꺼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해 준다.

The corrs나 cardigans 노래를 아침에 크게 켜 놓고 커피를 내리고 있으면,

죽을 때 주옥처럼 스쳐가는 하루의 모습에, 이 아침에 떡 하니 떠오를 거라는 확신이 든다.

 

그리고 여행,

쿠바를 갔을 때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지 않았을 때를 제외하고는 (다른 종이에 찍어준다)

갔던 곳의 도장이 여권 곳곳에 찍혀 있다.

그러니까, 나는 너무 많은 에너지를 사용했다.

평생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랑질처럼 내세웠지만

비행기 한 대가 뜨면 자동차 팔만대가 일제히 배기가스를 뿜어내는 효과가 난다.

 

작년에 국제회의를 개최하면서

영국의 여성환경연대 WEN에 연락했을 때 들었던 말,

"저희는 저희가 꼭 참석해야 하는 회의에 갈 때만 비행기를 타요.

그 외에는 영상자료를 보내드려요."

그래서 프리젠테이션 자료만 받고 회의비 중 아주 작은 돈을 털어 단체 기부금으로 돌렸다.

히드로 공항 확장 문제로 영국환경단체들이 일제히 해외여행에 들어가는 에너지에 더욱 촉수를 세우고

비행기 탄소세나 뭐 이런 저런 대안(?)등을 내놓고 있다는 것을 직후에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여행, 특히 낯선 곳을 어슬렁거리는 장기 해외여행은

공항가는 리무진 버스만 봐도 속이 콩닥콩닥 흔들릴만큼

매력적이다. 여전히.

 

여행이 없어도

오눌 아침 커피를 마시고 블로그글을 읽고 친구와 연락하고 촛불집회에 갈 생각을 하면서도 충분히 좋지만

카오산 로드에서 느꼈던 그 한 여름밤의 열기,

슬러퍼를 찍찍끌고 과일 주스 봉다리를 손에 끼우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혹독하게 덥고 절절하게 한국소설이 읽고 싶고 혹독하게 외로울 만치

온전히 홀로, 인 나로 부유하고 있다는 자각과

그런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느낌.

그런 것들도 나를 못견딜 만큼 행복하게 한다.

 

<온 더 로드>는 장기 어슬렁 해외여행에 대한 그런 느낌을,

너무 내 맘같이 써 놓은 장기 해외여행 여행자에 대한 인터뷰 글이다.

특히 카오산 로드로 가는 길, 거기서 느꼈던 여행자들이 내뿜는 열기들.
(나 역시 카오산 로드가 태국이 아니고 거기서 느꼈던 부정적인 생각이 있지만
다 접고 여행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말이쥐)

이 책을 읽으면서 인도를 두 달 여행하고 태국 공항에 처음 접어들었을 때

고가도로를 훤히 밝히며 카오드 로드까지 뻗어있던 그 길에서 가슴 먹먹했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여행,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해야 할 일 없이 늘어진 시간들,

그리고 연유가 듬뿍 들어간 달달한 얼음 봉다리 동남아 커피와 찍찍 끌고 다녔던 게다짝이 그리웠다.


-그 후 많은 시간이 흐르고, 이제 내가 여행을 하면서 가장 즐기는 건 작고 예쁜 카페를 찾아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게 되었다.
외국까지 가서 가장 좋은 게 고작 커피 한 잔 마시는 일이냐고 타박하는 친구도 있지만

커피 한 잔이 주는 한가한 시간은 더할 나위없이 나를 편안하게 했다. (p57)

-여행이란 어쩌면 내가 살고 싶은 곳을 찾으려고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달과 6펜스>를 보니까 이런 대목이 있어요. 자기가 살아야 할 곳에서 태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살고 싶은 곳을 찾아 

여행을 하는 거라고. (65)
 

-나이 예순이 되어 두 손 맞잡고 거리를 걸을 수 있는 부부로 사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일까... (195)

-내가 나인 게 미안하지 않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어.

여행을 하면서 사회가 날 어떻게 볼까 고민하는 대신 좀 더 나를 인정하게 됐다고 할까... (263)

-사람들을 나와 구별하려고 하면, 정작 힘들어지는 건 자기 자신이거든. 나와 다르다는 걸 발견하면 그냥 안아주는 거야.

(268)

-낯선 세계에 온 몸을 던져놓는 일은 늘 흥미진진했다.

대단한 일들이 생겨서가 아니다. 익숙하지 않는 거리를 걷는게 좋았고

작은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게 좋았다.

쓸쓸함마저도 좋았다. 그것은 자유였다.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자유일지라도 그 짧은 시간이 주는 기쁨은 언제나 나를 유혹했다.

여행의 즐거움이란 그런 것이었다. (301)

가끔 일상을 떠나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은 모든 이에게 필요하다.여행은 바로 그런 시간일 뿐이다.(315)

-어떤 사람들은 여행이 참을 수 없는 유혹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행이 중독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중독은 겸손을 배운다는 여행의 의미에 어긋난다.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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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대신 스윙댄스!

31살,

결혼식에 불려나가고 결혼 안하냐고 채근당하고 결혼하는 친구들과 거리가 생기고.

비혼일지라도 결혼, 결혼에 연루되는 나이.

 

중국에서 공부하는 기묘가 친구 결혼식 때문에 잠깐 한국에 들어와서 하는 말이

"공무원 결혼이 젤 좋더라, 아주 둘 다 공무원인데 초 간단 식으로 빨랑 끝내더라고, 공무원 그거 하나 좋드라"

공무원과 초간단 결혼과의 상관성은 모르겠지만

친구 결혼식마저 초간단해서 좋을만큼 결혼식은 대개 지루하고 지겹다.

주발이는 웬만하면 돈으로 때우고 정말 축하해주고 싶은 친구의 결혼식만 간다,고도 했다.(난 돈이니, 시간이니?)

나는 무쟈게 사랑해도 결혼식 야외촬영을 고집하는 인간이라면 그 결혼 물리고 말만큼 신혼부부 거실벽에 붙은

결혼식 사진이 싫다. 그리고 결혼식은 그 결혼사진에 붙어서 기어다니는 똥파리 쯤으로 여긴다.

차라리 일본처럼 하객들 모두 엄청 멋내고 드레스 입고가면 조금이라도 룰루랄라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드레스 사려고 쇼핑구 다니면서 돈 쓸 생각을 하니 것도 손사래질 쳐진다.

 

또 어쩌고 저쩌고 남의 결혼식에 연루되는 일이 생겨서

투덜이 스머프가 되어 있었더니

"너라면 어떻게 결혼할건데?"라는 질문이 들어왔디.

"흠, 난 비혼으로 살건데" 가 답이지만 이러면 대안도 없이 무능한 꼴통페미 -_-로 오해받을까봐

 만약 파트너와 함께 동거식이라도 한다면, 라고 바꿔 생각해봤다.

 

결혼식 야외촬영 할 에너지와 시간과 돈으로

같이 살 사람이랑 친구들과 스윙댄스를 배워서 야외에서 춤추고 맛난거 먹고 싶다.

(살사, 탱고는 나한테 너무 느끼혀) 

 

그렇게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스윙 초보 '지터박'을 배우고 있다.

우리가 배우는 것이 지루박이냐고 물어보는 너에게

아냐, 지터박이야, 라고 했는데 인터넷 검색했더니 현장용어로는 '지루박'이 맞았다.

뭔들, 좋아, 우리는 지루박 차차차.

더 많이 배우거나 바에서 화려하게 춤추거나 간지가 안나도 좋아.

그냥 너랑 손잡고 좋아하는 노래 한 곡 따라서 스텝만 맞으면 돼.

유럽 여행이라도 같이 가게 되면

저녁식사 자리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커플이 밥 먹다가 일어나

가볍게 춤추고 다시 앉아서 차 마시는 곳 같은 데서 나도  너랑 가볍게 스윙 저터박 한 번. 

 

 

너랑 같이 살든 못 살든, 고잉 온 하든 깨지든, 동거식을 하든 못 하든,

너와 함께 결혼식보다는 스윙댄스를 배우는 지금이 좋아.

 스텝 스텝 라아~ 스텝,  결혼하는 커플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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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요리, 같이 만들어먹어용:-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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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만단체, 진짜 주 5일인 거니?

시만단체, 진짜 주 5일인 거니? 

믿을 수 없어.

시민단체들이 주 5일  문구를 채용 조건에 써 놓는 것은 파렴치한 짓이라는 생각이 마구 든다.

허위, 과장 채용 광고로 노동부에 제소할까보다.

 

3월 여성의 날부터 시작하여 지구의 날, 공정무역의 날, 태안 방제활동, 대운하 반대 행사 등등

행사가 끝나고 하루 종일 서 있어서 허리가 찌르르하는 느낌을 부여잡고 집에 돌아오면

설겆이 통에는 그릇이 쌓여있고

방바닥에는 먼지가 구릅처럼 뭉쳐 떠 다니고

아침에 쓰고 던져놓은 수건이 먼지 구름들 옆에 뒹글고 있고

냉장고 안에는 며칠 동안 해 먹지 못해 시들해진 야채나 허연 곰팜이가 끼여있는 버섯.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50주의 주말을 통으로 가져다 바쳐서

대운하 폐지 선언이 으랴차차, 터져 나와도

나는 이런 냉장고를 청소하면서 음식 재료들을 싹쓸어 쓰레기통에 쳐 넣으면서

행복할 거 같지는 않다.

 

5월 24일,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의 행사로 서빙고 역에 아침 8시 도착했다.

토요일 아침 6시 일어나는 것이 나름 억울해

모여있는 다른 단체 활동가들에게

토, 일요일 근무를 하면 평일에 대체휴무를 쓸 수 있는냐고 물어보자

그런 건 없다는 대답과 있어도 일이 많아서 못 쓴다, 라는 대답을 들었다.

도체 그런 걸 왜 물어보냐는 표정과 대체휴무는 영 모른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이어서

같이 침 튀기고 피를 토함시롱 단체 욕을 하거나, 

것도 거시기하면 이렇게 아침부터 오두망정을 떨게 만든 이메가 욕이라도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모두들 환경운동을 열심히 한 각고의 세월 끝에 욕망마저 사그라든 성인군자의 세계, 극락의 세계, 도의 세계에

진입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나는 도대체 도가 통하지 않는다.

 

플랫슈즈를 흔들면서 카페에서 허섭한 책도 읽고, 음식물 쓰레기는 말린 후 잘게 썰어 텃밭거름으로 만들고,

블로그 글도 쓰고, 진보넷 집들이도 놀러가고, 비혼 축제도 느긋이 즐기고, 가만히 빈둥빈둥 나인채로 있고

나 사용기도 적어보고, 친구네 냐옹이 채식 간식도 만들어주고,

그런 것들을 하면서 주말을 보내고 싶다.

 

 평일에는 이걸 하다가 이걸하고 저걸하고 하고하고 ,이멜 보내고 이걸 하고 돈계산하고 하고하고, 마구 복잡하다가

 주말에는 다시 일하니 

 왜 시민단체에서 일하는지, 내가 맡고 있는 프로젝트를 왜 하고 있는지

 그런 거를 생각하는 것조차 귀찮다.

 

 단체에서 일하는 주제에 욕심도 많다라든지,

 일반 직장인들은 더 죽을둥 살둥 일한다든지

 그런 말은 위로되지 않는다.

 

 나에게는 기쁘게 일하고 일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고 내가 일을 어떻게 꾸리고 싶은지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어느 날 일이 없는 주말 아침에,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해하는 황당한 시츄에이션이 있는 생활은 싫다.

 내 삶에 마구 드드드드드, 대운하가 건설되고 있는 중이다.

 플러그를 뽑고, 한 박자 천천히.

 내가 일하는 단체의 슬로건이지만, 그래서 더욱 쾌씸하다.

 천천히, 가고 싶다.

 사랑도, 관계도, 잡스러운 것도 이 세상의 모든 러블리한 것들 중에 시간이 걸리지 않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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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밥상

<고대대학원 신문사에 쓴 글, 블로그에 옮기니 딱딱하네 그랴 -_->

 

『죽음의 밥상』 by 피터 싱어, 짐 메이슨

 

 

 

칠 만원짜리 서평 원고를 위해 만 오천짜리 책을 샀다.

서평이란 출판사가 뿌린 책 소개를 밑감 삼아 자기 감상을 양념 치듯 섞어 쓰라는 조언을 무시하고 화장실 변기 위에서, 달리는 지하철에서, 자다 깨서 노란색 형광펜을 그어가며 읽었다.(덕분에 원고 마감일이 지나서 이 글을 쓰는 중입니다)

진정성 있는 ‘어른’이 되었다는 기분을 주는 이 책, 참으로 기특하다.

허나 허구한 날 동물의 시체를 먹고 사는 인간들이 400쪽이 넘는 도덕적인 책을 읽고 개과천선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진정성의 문제는 늘 재미가 없고 불편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먹는 소고기에서(누렁아 미안, 널 고기라고 부르다니)

지구 온난화를 만드는 메탄가스의 1/3이 나오고 동물 사료를 만들기 위해 GM 곡물이 재배되어 생태계를 오염시키고 열림우림은 잘려나가고 수질오염은 엄청나고 소고기만 적게 먹어도 전 세계 굶주리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블라블라블라.

웬만한 채식 책은 다 읽어서 육식에 대해 A4 20장쯤은 참고문헌 없이 줄줄 써 내려갈 것 같은데도,

나는 7년 동안 채식을 3번쯤 뒤엎었다.

어찌된 것이 고기 냄새가 후강을 타고 내려오면 온 몸이 환장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아아, 고기가 먹고 싶어.

인간의 욕망이 진정성을 이기는 순간이란 이런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해한다.

이 책을 번역한 역자가 여전히 고기를 먹는 것도,

채식에 100% 동의하는 내가 애인과 함께 고깃집에 들어앉아 있는 것도

(된장국만 퍼 먹으면서 언젠가는, 교화시키고 말겠어!!! 부르르르르르 하고 앉아잇음) 

충분히 따뜻하고 인간적인 우리가 나치가 유태인에게 했던 것보다 더 잔악무도한 공장식 축산업에서 나온 고기를 먹는 것도 말이다.

 

올해 세계문학상 당선소설인 ‘스타일’의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뚱뚱한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얘기라면,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으로는 납득하지 못하겠다.

나라면 키가 작으면 하이힐을 신고, 피부에 자신이 없으면 화장을 하라는 빅토리아 베컴의 말에 기꺼이 한 표 던지겠다.”

 

아아, 옳으신 말씀.

 

이 글을 쓴 피터 싱어처럼 윤리학자도 아닌데 윤리가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밥을 먹는 것은 스스로에게 가혹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그래서 우리가 인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먹으면서 윤리가 무엇인지 고민씩이나 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존재.

사람에게 상처받고 ‘타인의 눈물은 물과 다름없다’는 러시아 속담을 곱씹으면서도

타인의 고통에 가슴 미어지는 쌈박한 동물.

그래서 우리는 이성과 도덕을 가진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아닐까.

 

 

『죽음의 밥상』은 여기에 박차를 가한다.

과연 얼마나 인도적이어야 충분히 인도적인 식사를 하는 것일까.

인도적으로 키워진 동물의 살코기와 공정무역으로 재배된 농산물을 구입하는 ‘양심적 잡식주의자’와,

생선과 유제품까지도 아예 먹지 않는 100% 채식주의자인 비건(vegan)의 차이는?

유기농 수입 농산물과 비유기농 지역 농산물을 먹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친환경적일까?

문어나 오징어 같은 연체동물은 고통을 얼마만큼 느낄까?

동물 세포를 실험실에서 키워 만든 배양고기(비동물성 고기)가 나온다면 죄책감 없이 고기를 먹어도 될까? 등등.

 

이 많은 질문들에 대한 답이 쏙쏙 들어오는 것은 저자 피터 싱어와 짐 메이슨이 책상 머리에 앉아 책을 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닭고기와 돼지고기를 즐겨먹고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가족과(우리 집의 모습?),

양심적 잡식주의자의 가족과, 아이 둘을 비건으로 키우는 가족을 졸졸 따라다니며 책을 썼다.

심지어 지구에서 가장 윤리적이며 싼 식사를 하는 ‘쓰레기통 다이버’들과 쓰레기통에서 따끈하게 건져온 재료로 음식을 해 먹는다.

이처럼 저자들은 세 가족의 밥상에 올라온 식품 회사들과 농장을 일일이 연결해서 방문하고 인터뷰하면서

우리가 선거일이 아니라 날마다 “마트에서 투표하는” 삶을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영국에서 풀어놓고 기른 닭의 달걀이 닭장 달걀보다 더 많이 팔리고 있는 현실을 통해 더 나은 선택이 시장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오늘 저녁, 한 끼라도 진정성이 욕망을 이기는 밥상을 마주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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