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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금요일,그리고 민희.

지도교수님이랑 지도교수 학생들이랑 함께 회식 자료에 앉아있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다. 비는 주룩주룩 오고 우산은 없어서 지도교수 학생들 중 한명한테 우산 신세지고 밑단부터 빗물에 젖어든 청바지는 기름종이가 기름을 빨아먹듯이 척척해지면서 무거워가고 고깃집에 들어앉아 (하필 자리도 고기 굽기 딱 좋은데 잡아서) 고기를 불판에 올리고 가위로 척척 자르고 그러면서도 바보같기는, 마음이 둥둥둥 드림 울리듯이, 뇌수에 콜라가 들어가 머릿속을 탄산방울로 톡톡 쏘듯이 기대감에 가득차 행복했다. 고깃집 시계를 흘끔흘끔 보면서 시간이 왜 이리 안 가~ 라고 생각했다. 밤 10시 30분 약속, 내일은 더군다나 토요일이라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금요일 밤. 내 자전거를 회사 앞에 세워둬서 비를 꼬박 맞고 있을 자전거한테는 미안했지만 비, 너도 오고 싶으면 맘대로 해, 쯤의 관대한 나. 10시 20분, 모임이 늦어져서 어쩌지, 라는 문자가 왔고 나도 모임은 더 늦어질 기세였지만 이미 콜라는 김 샜고 드림은 여전히 울렸지만 그건 아까와는 다른, 기대감이 아니라 실망감에서 오는 둥둥둥. 다음에 보자, 늦었어. 라는 답문자를 보내자 그러자, 하는 기다렸다는 식의 대답에 나 참, 내가 잡은 약속도 아니었고 말이지, 억하심정이 되었다. 왜냐면 공식적인 자리도 아니었고 회사동료들과 함께 한 자리라서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는 어떻게든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아니까. 왜냐면, 왜냐면, 나는 교수님과 있어도 빠지고 갈 생각이었거든. 모임에 엉덩이 붙이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서 비오는 금요일, 민희에게 문자를 쳤다. "늦게 끝날 것 같아, 재워줘, 자기" 그런데 문자를 받기도 전에 그녀가 전화를 했다. "언니, 학교 근처서 모임 하고 있으면 우리집서 자고 가." ㅎㅎㅎ. 우산을 들고 마중 나온 민희를 위해 따뜻한 찐빵을 사고 그네 집에서 둘러앉아 따뜻한 구기자 차를 마시는데 위로 받는 느낌이 들었다. 고맙다는 말보다는 홀짝거리며 구기자 차 정말 맛있어, 라고 했다. 알겠지, 문자를 보기 전에 바로 그 시간에 전화를 날려준 친구니까. 친구와 빗 소리를 듣고 불 끄고 누워있으니 비오는 금요일 밤도, 네가 없는 이 시간도 충분히, 볶은 구기자 차보다 따뜻하고 구수했어. 니가 예의가 그렇게 계속 없으시면 안 봐도 될 만큼. <친구와의 차,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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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유해화학물질, 핑크리본 캠페인

아래는 유방암을 예방하기 위한 생활수칙들! (친절한 금자씨라고!) 1.온갖 화장품, 향수 등의 개인용품,살충제(모기향, 바퀴벌레 약 등), 세정제(데오드란트, 삼푸, 치약, 보습제) 등을 살 때 라벨을 확인하세용. 프탈레이트 (DBP, DEP ,DEHP) 파라벤 등은 아니되삼. 그런데 한국은 전성분표시제가 아니라서 화학성분 표시가 라벨에 다 드러나지 않으니 식약청에 이것을 요구하는 번거로운 작업도 함께 -_-;;;; (약청이~~입법 예고 했다고 들었는데 좀 빨리 하면 안 되겠니??) 관계된 회사에 이런 화학물질을 빼고 물건을 제조하라고 마구 압력. - 요새는 화장품도 만들어쓰고 치약도 만들어쓰는데~~(담에 레시피 올리겠삼 ^ ^) 이참에 손품을 팔아서 몸에도 좋고 화학물질도 안 쓰는 '핸드메이드' 라이프로 고고싱하삼. 글고 모기나 바퀴벌레는 손으로 때려 잡거나 두꺼운 책으로 -_-;;; 아직까지 티베트 스님들 처럼 공생은 나에게는 무리겠삼. 2. 화학물질 덩어리인 청소약품 대신 베이킹 소다, 레몬즙, 식초,등으로 집을 청소하자. 요새는 마법의 세제 EM 발효액도 있어라~ 아 좋은 세상이여. 공공장소 (학교,지하철,동사무소,관청,병원, 백화점 등등)에서도 안전한 청소약품을 사용하도록 압력을 넣는다. 3. 살충제 사용을 줄이기, 그리고 각자의 공동체 안에서 학교나 정원, 공원 등의 장소에 살충제 줄이는 것을 제안하기 4. 전자레인지를 사용할 때 유리용기 사용하기, 플라스틱 용기, 주방용품 등을 주방에서 몰아내기 (환경호르몬 방출) 5. 드라이클리닝 줄이기. (에틸렌계 용제는 발암물질!) 만약 꼭 드라이크리닝 할 옷이면 외부에 3일 정도 내 놓은 후 집 안으로 가져오세요. 6. 탄 음식을 먹지 않기 (PAHs 나옴), 구워먹지 말고 되도록 음식을 삶거나 끓이거나 익혀먹기. (숯불구이 이런 거 안 좋다고!) 7. 농약이나 살충제 성분을 섭취하지 않기 위해서 유기농 음식을 구입하기(생협 좋아부러~) 8. 자가용이 아니라 대중교통을, 혹은 카풀 이용. 자전거도 재미있어용. (자동차 배기가스 속 발암물질 들어있음) 9. 어린 시절 부터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습관을 기르자 10. 천염섬유로 만들어진 카펫, 침구, 쿠션 등을 이용하고 천연페인트를 이용하거나 그것을 이용한 가구를 구입하기. 한가지 더, 간접흡연을 줄인다 ^^


브래지어를 태우지는 않았지만 쓰레기통에 몽창 던져버린 후 '노브라'로 살아가고 있고 막내라서 그런지 느자구 없게도 지금까지도 엄마 '쭈쭈' 만지고 잠에 드는 것이 좋고 도대체 '가슴 오르가즘'이 있을까를 궁금해 하기도 했지만 유방암에 대해서는 일절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캐나다 토론토의 작은 동네에서 분홍색 옷을 입고 분홍 날개를 달고 암튼 눈에 확 띄게 분홍으로 꾸민 사람들이 캠페인을 작게 열었는데 그걸 보고도 '핑크 리본 캠페인'이 뭔지 모르던 나였다. 서른의 한국 여자에게 유방암보다는 유방성형술이 더 땡기는 주제이기도 했을 것이고 다행히 주변에 유방암에 걸린 사람이 없어서 잘 몰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본 유방암에 걸린 여자는 섹스 앤 더 시티의 '사만다' 언니 밖에 없었다. 미국과 서유럽에서 유방암에 대한 경고가 수위를 높여가고 관심을 끌고 핑크 리본 캠페인을 통해 돈을 끌어모을 수 있는 이유는 가까운 언니나 엄마나 친구나 친척 아줌마가 사만다처럼 어느 날 덜컥 유방암에 걸리기 때문이다. 서유럽과 미국에서는 평균 여덟 명의 여성 중 한 명이 일생에 걸쳐 유방암에 걸린다. 1960년대부터 꾸준히 해마다 1% 씩 증가해 온 결과이며 아직 현재 진행형. 또한 10년 동안 유방암은 전 세계적으로 33% 증가했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은 스무 명 중의 한 명이 걸린다. 그래서 미국와 서유럽의 그녀들은 왜 내가, 그리고 내 주변의 그녀가 유방엠에 걸렸나, 왜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눈에 띄게 유방암에 걸리고 있나,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보통 유방암 발병률 증가의 원인으로 유전적 요인, 늦은 출산 및 이른 초경, 늦은 완경, 고지방질 위주의 식단, 운동 부족, 흡연 및 음주 등의 요인을 든다. 그렇지만 유전적 요인은 겨우 10-15% 밖에는 책임이 없고 30%은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 50%의 원인들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미국 침묵의 봄 재단 자료 참고) 밝혀지지 않은 원인들은 우리 사회 자체에 원인이 있다는 것으로, 예방할 수 있는 큰 기회가 있다는 의미도 된다. 한국이나 일본 등 유방암 발병률이 낮은 국가에서 미국으로 이민한 여성들의 경우 8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유방암 발병률이 66%나 증가했다는 연구결과를 참고해봐도 유전적 요인이 '만고 땡'은 아니라는 말씀. 서구에서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로, 그리고 우리의 경우 70년대 이후로 화학물질이 일상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밝혀지지 않은 50%의 요인이 화학적 물질에 대한 노출에서 왔다는 '확실하고 총체적인' 과학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일정부분 그렇다는 것은 인정받고 있다. 농촌 지역의 여성 중 살충제를 살포할 때 보호장비를 끼지 않은 여성이 착용한 여성에 비해 2배 높은 유방암 발병률을 보이고 화학물질에서 나오는 내분비계 교란물질이 유사 에스트로겐 작용을 하면서 유방암의 위험을 높인다는 것 등 여러가지 조사가 나왔다. 동물들에게 참 미안하지만 이는 동물실험에서도 입증되었다. (흐흑, 이렇게 동물실험을 많이 할 수가!) EWG의 결과에 따르면 72명의 혈액, 제대혈, 오줌, 모유 검사를 통해서 몸 속에 있지 말아야 할 455가지의 화학물질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평균적인 미국인들의 경우 성인의 경우 개인용품에 의해서 126가지의 화학물질에 노출된다고도 한다. 한국자료를 찾고 싶지만 한국에서 모유나 태반 검사를 통해 화학물질 노출에 대해서 연구한 결과는 아직 없다.(돈 엄청 들고 별로 인식도 없걸랑 -_-) 또한 DDT 연구에서 입증되었듯이 화학물질이 한번 쓰이면 그걸 금지한다고 해서 생활 속에서 바로 없어지지도 않는다. 1972년 미국에서 사용이 금지된 DDT가 2000년 이후 행해진 실내가정 공기질 검사에서 발견되었다는 보고서를 보드라고. 유방암, 암~~ 조기 검진이 중요하지. 모든 암처럼. 그렇지만 사전에 예방하는 것은 훨씬 훨씬 더 중요하다. 문제는 예방은 검진보다 더 모호하고 돈은 훠얼씬 많이 들고 연구성과도 그닥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유방암을 줄이기 위한 '핑크리본 캠페인'을 후원하는 기업들 속에는 유방암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화학물질을 마구마구 팔면서 그 돈으로 후원하는 기업도 많다. 한국에서 10월에 열리는 유방암 마라톤, 핑크리본 캠페인 등을 후원하는 기업의 이름을 살펴보라. 화학물질과 관련된 세정제, 화장품, 세제 등에 전성분제 표시를 의무화하고 (들어있는 모든 화학성분을 라벨에 표시해서 소비자에게 알림) 유해한 물질은 사용하지 않는 노력이 훨씬 더 가상할 테지만, 이런 것들보다 핑크리본 캠페인에 돈을 쓰는 것이 홍보효과가 크다. 유방암은 30년, 그리고 길게는 30년 이상의 기간 동안 천천히 발달하는 병이다. 동물실험에는 태아일 때, 그리고 완전히 성장하기 이전에 화학물질에 노출된 경우 다 커서 유방암 발병률이 훨씬 높았다. 25살 이전, 특히 태아나 청소녀기에 노출된 경우 위험하다. (나는 벌씨 서른이여 -_- 젊을 때 알아서들 잘 하더라고, 나넌 운동이나 해야써 -_-) 유해화학물질들, 이를 테면 파라벤, PAHs, 프탈레이트, 다이옥신, PPD, 비스페놀, 노닐페놀... 이 놈들은 이름은 어려워도 일상생활 속에서 찾기는 느무 쉽다. 온갖 화장품, 살충제, 세정제, 세제, 프린트, 향수, 일회용 생리대, 페인트, 드라이크리닝 제품, 염색약 등등에 들어있다. 아래는 유방암을 예방하기 위한 생활수칙들! (친절한 금자씨라고!) 1.온갖 화장품, 향수 등의 개인용품,살충제(모기향, 바퀴벌레 약 등), 세정제(데오드란트, 삼푸, 치약, 보습제) 등을 살 때 라벨을 확인하세용. 프탈레이트 (DBP, DEP ,DEHP) 파라벤 등은 아니되삼. 그런데 한국은 전성분표시제가 아니라서 화학성분 표시가 라벨에 다 드러나지 않으니 식약청에 이것을 요구하는 번거로운 작업도 함께 -_-;;;; (약청이~~입법 예고 했다고 들었는데 좀 빨리 하면 안 되겠니??) 관계된 회사에 이런 화학물질을 빼고 물건을 제조하라고 마구 압력. - 요새는 화장품도 만들어쓰고 치약도 만들어쓰는데~~(담에 레시피 올리겠삼 ^ ^) 이참에 손품을 팔아서 몸에도 좋고 화학물질도 안 쓰는 '핸드메이드' 라이프로 고고싱하삼. 글고 모기나 바퀴벌레는 손으로 때려 잡거나 두꺼운 책으로 -_-;;; 아직까지 티베트 스님들 처럼 공생은 나에게는 무리겠삼. 2. 화학물질 덩어리인 청소약품 대신 베이킹 소다, 레몬즙, 식초,등으로 집을 청소하자. 요새는 마법의 세제 EM 발효액도 있어라~ 아 좋은 세상이여. 공공장소 (학교,지하철,동사무소,관청,병원, 백화점 등등)에서도 안전한 청소약품을 사용하도록 압력을 넣는다. 3. 살충제 사용을 줄이기, 그리고 각자의 공동체 안에서 학교나 정원, 공원 등의 장소에 살충제 줄이는 것을 제안하기 4. 전자레인지를 사용할 때 유리용기 사용하기, 플라스틱 용기, 주방용품 등을 주방에서 몰아내기 (환경호르몬 방출) 5. 드라이클리닝 줄이기. (에틸렌계 용제는 발암물질!) 만약 꼭 드라이크리닝 할 옷이면 외부에 3일 정도 내 놓은 후 집 안으로 가져오세요. 6. 탄 음식을 먹지 않기 (PAHs 나옴), 구워먹지 말고 되도록 음식을 삶거나 끓이거나 익혀먹기. (숯불구이 이런 거 안 좋다고!) 7. 농약이나 살충제 성분을 섭취하지 않기 위해서 유기농 음식을 구입하기(생협 좋아부러~) 8. 자가용이 아니라 대중교통을, 혹은 카풀 이용. 자전거도 재미있어용. (자동차 배기가스 속 발암물질 들어있음) 9. 어린 시절 부터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습관을 기르자 10. 천염섬유로 만들어진 카펫, 침구, 쿠션 등을 이용하고 천연페인트를 이용하거나 그것을 이용한 가구를 구입하기. 한가지 더, 간접흡연을 줄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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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일간의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공항에서.

<공항에서 책 읽으면서 비행기 기다리는 중>

 

말레이시아 KLIC에서 달달한 초코머핀과 커피를 먹으며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KLL to ICN SOON!

생각나는 것은 우편함에 첩첩히 쌓여있을 고지서들, 먼지 속에 담금질 되었을 내 식물들의 잎파리 하나하나. 박희정 만화 '마틴 앤 존'에서 존이 갑작스레 트럭에 치이면서 "그런데 왜 이 순간 고지서들만 떠오르는 걸까"라고 묻는 것이 자연스레 이해가 되는 순간.

 

한국행 비행기에 체크인 하면서부터 벌써 인천에 와 분 것처럼 좀 지긋지긋해지고(ㅎㅎ), 리무진 버스를 타고 도착한 집에서 기다리는 것은 첩첩산중의 고지서 뿐인데도, 왜 한국에 가는 것이 '또' 설레고 그런지. 주책 맞다.

여기 온지 일주일이 막 지나서는 주발양에게 "너 홈씩(Homesick)이냐"라는 말까지도 들었다. 골고루 한다. <커피빈 커피와 달달한 초코머핀>



하루 먼저 귀국한 주발양과 방콕 쑤쿰윗 거리의 J.W. Marriot에서 뷔페 식사를 했다.

먹으면서 "별 것도 없음시롱 한국돈으로 한 명당 45,000원이나 하고 지랄이야" 하고 흐흐흐, 웃었다.

음식도 훌륭했지만 (안 그러면 어쩔쏘냐.) 우리는 돈으로 익숙함을 눅진눅진하게 몸에 체화시키고, 자연스러움을 몸에 스르륵 스며들게 하는 것임을 안다.

부르디외 식으로 말하자면 그 놈의 문화자본.

 

서울에 처음 왔을 때 나는 사람이 붐비는 신촌, 압구정 같은 전철역에서 주변지도를

보고 어디로 나가야 하는지 찾는 것이 좀 '족팔렸다'.(아아, 이거 말하는게 지금은 더 족팔려~) 그건 마치,밀양서 온 내 친구가 지도 남들 하는 것처럼 전철표를 '띡'하고 소

리나는데 댔는데 웬일인지 남들처럼 통과가 안 되서 당황하다가 달려나온 공익한테

(그 땐 공익 담당이었으~)고건 카드가 아닝께 들이대지 말고 -_-;;; 요기다 넣어야 한다는 지도편달을 받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스타벅스가 처음 생겼을 때에도 톨이랑 그란데도 모르고 휘핑도 모르고 해서 시골영

감 서울 온 것처럼 겁나 신기해함시롱 몸에 긴장감 팽팽 유지했었다. 주발과 나는 나

름, 긴장을 풀고 메리어트 카페를 천천히 돌면서 음식을 골랐다.

프랑스 식당 빼고는 이제 어디라도 '편히'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45,000원의 입장료.

 

여행은 경험이라고들, 한다. 실제로 '선진국' 인간들은 웬만해서는 집과 차가 다 있으

니 어디를 얼마나 자주 휴가를 다녀왔는냐로 사회적 지위를 떠본다.

몸에 찍힌 사회계급의 바코드.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장시간 비행을 하려면 여름에도 파시나마 목도리 하나쯤 둘러

야 하고(추울 때 숄로 쓰면 유용하삼) 간단한 가디건이나 얼굴에 뿌리는 작은 스프레

이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방콕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는 '익스프레

스' 도로 이용료 40 바트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도(난 처음엔 택시기사가 사기치나, 하고 괜시리 의심했었다), 에어 아시아 오후 비행기는 웬만해서는 늦어지니(인도 기차

저리가라다..) 혹시 바로 비행일정이 있는 경우 다른 비행기를 놓치지 않으려면 시간

을 아주 넉넉히 잡아야 한다는 것 쯤을 한달음에 '익히게' 된다.

웬만한 곳에 가서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행동하게 하는 입장료, 여행비과 항공료.

 

집에 돌아가면서, 정말 정말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에 조금 목이 메었다.

돌아와줘서 기뻐, 라고 말해줄 사람이 있다면 말레이시아 공항의 초코머핀보다 더 달달할텐데,

나는 그런 것들이 필요해서 그런 것들의 입장료는 얼마일까하고 헤아려 보고 있다.

 

여행비와 항공료와 메리어트 부페 식사 곱하기 만 배 정도는 치른 것만 같은 기분인데 연애는 늘, 익숙하지가 않다.

 연애도, 경험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경험은 그저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나에게는.

관계가 시작될 때마다 서툴고 어색하고 구리고 긴장만 잔뜩하고, 그리고 상처받는다.

입장료를 그리도 많이 냈는데 '연애 자본'은 여전히 택도 없다.

 

고지서가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안 그러면 어쩔쏘냐)

기다려주는 사람이 없지만,

한국은 그 자체로도, 입장료 없이도 '익숙'한 일상이니. 초코머핀과 커피를 다 먹었다. 파시미나 숄을 목에 둘둘 감고 척척 체크인 데스크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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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5 엄마와의 잠깐동거

엄마랑 이렇게 오랫동안 같이 있다니, 고등학교를 떠나 대학에 온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지난 토요일부터 오늘까지, 우리는 고고싱.

엄마랑 있을 때 이런 기분이 들기도 고등학교 이후 처음이다.
내가 뻔히 반육식주의자인 줄 알면서도 닭도리탕을 만들어서 먹으라고 하는 엄마랑 고기도 먹고 (으~~ 슬쩍 나 고기 싫어하잖아, 암시롱~ 하고 살짝 반항)
냉장고를 닦다가 욕실청소를 했다가 이불이 낡아서 사야겠다고 돌아다니며 하루종일 일 못하고 죽은 귀신처럼 구는 것도 그냥 놔두고 (그래도 날마다 빨래를 할 필요는 없다고 여전히 생각함) 
엄마가 서울에 있어도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으면서 친구랑 밖에서 저녁도 먹고 (음, 그래도 10시는 안 넘기고 들어오려고 노력했어요) 
엄마가 내 부엌살림의 위치를 바꾸거나 세제를 다른 것으로 사다놓아도  짜증이 덜 나고 (흠, 그래도 내 집인데...)
내가 이번에 다녀온 말레이시아 여행 사진을 찬찬히 같이 보며 조근조근 이야기도 하고 (ㅎㅎ 미리 못 보여줄 사진은 다른 폴더에 넣어부렀으)
엄마가 선 봤으면 좋겠다고, 이런 저런 인간이 있다드라고 하니 그래도 그 돈 내 감시롱 선보게 하려는 엄마가 가상스럽기까지 하고, (그 돈 있으면 도대체 나한테 주라고요!)
좀 많이 이기적인 그리고 엄마에게 가장 이기적인 그 인간, 울 아빠를 지금도 좋아하는 엄마가 이해도 되고 (난 아빠 같은 남자는 안 만나야지, 라고 내 취향은 계속 고고싱)

엄마를 '개조'시키지 않으려고 해, 

그대로 받아들이고 촌스런 울엄마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 제일이라는 것을 아니까.
그랬더니 엄마가 서울 있을 때 엄마한테 '봉사'하니라 친구 못 만나는 날 좀 아깝고 속 상하기도 했는데
이젠 엄마랑 있는 '지금, 여기'의 시간이 보글보글 따뜻하게 느껴지드라고.
난 도대체 나이 서른에 도를 닦아부렀을까?? 킁킁~~

엄마랑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커피 그라인더를 같이 사러 다니거나
일요일날 엄마가 그렇게 좋아하는 그 놈의 전국노래자랑을 같이 좋아라하고 볼 수는 없겠지만
집에 엄마가 있으니
혼자 카페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홀짝홀짝 마시는 호사보다 (내 인생의 최고 사치라고!)
왕주전자에 엄마가 끊여놓은 보리차를 대접에다 대고 함께 마시는 것도
참 위로가 되었어. 
니가 있어서 좋아, 라고 내 존재 자체를 보듬어주는 엄마가 있으니,
뜨끈뜨끈한 아메리카노보다 더한 위로,가 후끈 내장을 덥혀줘요.

오래 살아요, 엄마.
그리고 우리 집에 내가 제일 싫어라 하는 텔레비 사다놓을 생각은 그만 하고.

아 글씨 내 집잉께 텔레비는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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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9 각질과 흰머리

24살 즈음, 발 뒷꿈치에 각질이라는 놈이 낀 것을 발견했을 때, 
30살 즈음, 가르마 주변으로 흰 머리가 뻐시게 나와 삐죽 솟아있는 것을 거울을 보며 뽑고 있을 때

늙어간다는 것이 한달음에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신촌과 홍대 앞 이반 모임에 참석하면 어김없이 드는 느낌, 늙었다는 것.
도대체, 흰머리를 뽑고 발뒷꿈치 각질을 제거하는 레즈비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레즈비언 모임에서 주민등록증 출생년월일을 이렇게 열심히 밝혀야 하다니.
정통부 인터넷 실명제보다 더한, 너무한다, 라는 기분이 마구 들었다.

주말에 간 이반 모임에서는 30살 넘은 사람을 찾기도 어려웠을 뿐더러 이름표 옆에 나이를 떡 하니 명시해놓았다.

그래서 서른인 나는 "서른, 잔치는 끝났다" 의 나이에 주책바가지 마냥 잔치 벌이려고 나타난 사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이에 따라 위계서열이 달라지고 존대말과 반말이 달라지고 모이는 층도 달라지고 대하는 분위기도 다르다.
마흔 몇 살의 전 하우스 메이트 '휴지'랑 반말을 섞고 거의 마흔이 되어가고 울 학교에서 강의도 하는 미물이랑도 반말을 섞고,
서른 여섯 오정의 여섯 살 난 아들내미 성현이도 내 이름을 부르는 막역한 사이라서
이런 분위기 영, 낯설다.
이반 모임을 몇 번 나가봤지만 웬만한 모임에서는 별칭과 부치/펨의 구분 다음으로 나이가 중요했다.
그건 너와 나의 관계를 따지는 바로 미터였다.

그러니까,
불쑥 나이가 든다는 것이 죽는 것보다 무섭다는 노화공포증이 생길 것만 같았다.
나이가 들수록 '다른' 관계를 맺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원하는 관계에서 소외되고
사람을 가려 사귀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고
남들이 나를 '늙은' 사람으로 취급할 것이라는 두려움.
더군다나 여자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 은 남자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과는 다르다.
나이를 먹은 여자는 젊은 사람과 '다른'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틀린'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이가 먹은 '미혼'의 여자는 정말 '틀려' 먹은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는다는 것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발 뒷꿈치 각질을 박박 문질러 없애고 흰머리를 핀셋으로 집어없애는 것처럼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이반 모임에서는 나이보다 뭐 먹을지를 먼저 물어봤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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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2 못난인간



사무실 한 층 아래에 자리한  '에너지 시민연대'에서 '불을 끄고 별을 켜자'라는 에너지 절약 소등 캠페인을 열었다.
사무실의 모모양에 따르면 '에너지'네 사무처장과 우리네 사무처장이 모여서 한 번씩 '뒷담화' 간담회도 열만큼 절친하다고 하는데, 그래서였는지 저녁 6시 업무를 마치고 '에너지'네 행사에 자원활동으로 '착출'되었다.
밤 9시 부터 불을 확 꺼불고, 통기타를 들고와 2020명이 다구리로다 한대수씨의 곡을 연주하면서
독일의 신기록 1768명인가 뭐시긴가에 도전한다는 거였다. '착출 일꾼'들 우리는 친절하게 통기타를 들고온 사람들의 접수를 받고 응모권을 나눠주고 물도 나눠주고 그랬다.

바람은 살랑, 시청 광장 앞은 총총.
우리도 언젠가 하짓 날 하는 소등행사 '캔들 나이트' 혹은 세계공정무역의 날 하는 '한국 페어트레이드 행사'를 여기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흠, 그 때 '에너지'들도 착출 당하겠군, ㅋㅋㅋ 도 함께. :-)
 
적어도 그 놈이 나타나고 '경희궁의  파크' 어쩌고가 도대체 어디서 쓰는 것인지 듣기 전까지 그랬다.

통기타를 매고 와 참가 신청을 하고자 하는 그는 한국어를 못하는 아시아인이었다. 키는 훌쩍, 얼굴은 반짝, 윤이 났다.
칸을 메우는 곳을 영어로 설명하다가, 한국 주소는 내가 적어주는 것이 빠를 것 같아서 메모 사 주소를 보게되었다.
경희궁 파크? 이거 광화문에 있는 주상복합 아파트 '경희궁의 아침'의 영어판인가 하면서 옆의 모모 양에게 물어봤다.
그녀가 웃으면서 "우리 집도 여기인데"라고 한다. 경희궁 뒤에 바짝 붙어있는 5층 빌라로 한남동이나 이태원 쪽에 근무하지않는외국인, 나무가 많고 좀 고즈넉하면서 조용한 곳을 찾는 외국인 전용 렌트 빌라라고 했다. 그는 301호, 그리고그녀의'우리집'은 4층으로 폴란드 대사가 세 들어 산다고 했다. 사실 그녀의 '우리집'은 평창동이었고, 그 경희궁 파크의'우리집'은주거가 아니라, 소유 상의 '우리집'이었다.  모모양은  그와 함께 온 외국인 아줌마를보더니  저사람도 그 빌라에 사는데 유엔에서 일한다고 '내부인'용 정보도 주었다.

못났지, such a loser!
그런데도, 갑자가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면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어쩌면 '작은' 시민단체에서 일하거나 '저부가가치' 일임에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호사는 다만 '가진 사람이 못 가진 사람 생각하는 것이  나쁘더냐'라고 말할 만한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케리가 '빅'과 결혼한 스물 여섯의, 랄프 로렌 디자이너 나타샤를 보면서
"나는 고작 성기 이식 수술 광고 뒷면에 섹스 칼럼이나 쓰고 있잖아"라고 울먹이는 기분과 비슷했다.

대안녹색생활도 좋고, 5분 간 소등도 좋고, 자전거도 좋고, 잠시나마 불이 꺼진 서울시청 광장도 좋고, 달팽이도 좋고,아날로그도좋고, 그런 것들이 봄날의 곰새끼처럼 앙징맞다. 그런 것들은  내  속에 들어와 나를 따뜻하게만들고 살아간다는것도 괜찮아, 라는 느낌을 주고 반짝반짝 빛나는 나를 만들어 주는 것 같다. 그런데도 나는 한 번씩 갑작스레닥친 '무섬증'에울컥증이 솟아오른다. 소유상의 "우리집"도 없고, 잔고도 없고, 애인도 없고 성기 이식광고 수술 뒷면에 칼럼을쓸 정도의 글빨도없는 사람, 이라는 불꺼진 시청 광장에서의 자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비가 오는 어느 날 환하게 불 켜진 대형 쇼핑마트에서 쇼핑 카트를 천천히 밀다가 갑자기 심장마비 같은 것으로  휙, 하고 죽었으면 좋겠어"라는 어느 소설의 문구가 가슴을 칠 때, 는 더욱.

결국은 이렇게 못난 인간, 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돌아와
습기찬 반지하방을 뽀송하게 만들기 위해 30도로 보일러를 켜고
것보다 더 따뜻한 75도의 BOH 차를 홀짝이면서 생각했다.
"못 가진 사람이 못 가진 사람 생각하는 것도 당연지사!" :-)

p.s 아무리 환해도, 아무리 커도, 아무리 비가 와도 이랜드 계열 대형마트는 안 가야지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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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되기, 의 지겨움

김훈은 밥벌이가 지겹다고 했다. “전기밥통 속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나는 한평생 목이 메었다. 이 비애가 가족들을 한 울타리 안으로 불러모으고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아 밥을 벌게 한다” 그런데, 나는 전기밥통 속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를 킁킁, 나누고, 그리고 한 울타리 안으로 사람을 불러 제끼고 그들을 내몰 수 있는 그런 힘을 가진 관계에 환장할 것만 같다. 밥벌이가 지겨운 것이 아니라, 혼자되는 것이 무섭다.


룸메는 한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남친과 근 한달 간의 여행을 떠났다. 미안하다고 했다. 그래서, 고추도 심어놓고 토마토도 심어놓고 유독가스를 들이마심시롱 칙칙한 철문을 빨간 색으로 페인트칠했던, 그 집 구석에 별로 들어오고 싶지 않아졌다. 바보같기는. 결국 집에 들어와 <<용을 찾아서>>라는 발리에 대한 논픽션 여행기를 읽으면서 비겁하게도 이런 구절에 위안받았다. "모험에 쓸 돈이라면, 벽에 걸어둘 대형 평면 텔레비전을 사는데 보탠다거나 큰아이를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등의 실질적인 일들에 쓸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반드시 수행해야만 하는 의무들이 늘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11) "아, 그래. 발리라면 요즘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자주 나오던데.꽤 좋은 곳 같던걸. 비행시간이 그렇게 길지만 않으면 우리도 한번 가볼 텐데 말이야. 아이가 있으니 여행이고 뭐고 이젠 아주 힘들어졌지 뭐야." (289) '이렇게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는 없는' 서른이 마디게 마디게 지나가면 친구들은 결혼도 할 것이고 아이도 생길 것이고 그리고서는 남친과의 여행이 아니라 이젠 아이가 있으니 여행이고 뭐고 아주 힘들어졌다며 밥벌이의 지겨움을 토로할 것이다. 그 때 여행을 갈거야, 보란듯이! 라고 뻐겨볼라 했지만, 먹고 죽을 돈도 없으면 어쩔테냐, 라는 밥벌이 멘트가 생각나서 더 우울해졌다. '때때로 여자들은 남자를 필요로 한다. 자동차 타이어에 펑크가 났을 때, 욕실 변기가 고장 났을 때, 생수통을 옮길 때, 그리고 당연히 게임과 오락용으로' 식으로 생각하던 호시절도 있었다. 한국에서 하는 결혼은 여자들에게 -2와 -6 중 하나를 택하는 것 밖에는 안 된다, 고 결혼하는 여자들의 심정이 이해가 안 가기도 했다. 한마디로 윤똑똑이 짓은 다 하고 있었던 셈이다. 요새, 그것들이 한달음에 이해가 갔다. 사람이 사무치게 외로우면 과부사정도 홀아비 사정도, 결국엔 결혼도 안 해 보고 결혼한 여자들 심정도 알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서론이 넘어서 공무원이나 선생님 같은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집세를 안 내고 살 수 있는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비혼공동체'를 꾸리자는 친구들이 정말로 내 곁에 남아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것들이 무서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세상이 훈육하는 속도와 중력을 거슬러, 자신만의 리듬을, 자신만의 파고를 간직하는" 사람일만큼 나는 강한 사람이 아니라는 자각. (정여울, <<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문화를 보다>> p307) "어쨌든 우린 이제 서른이 훨씬 넘었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지금쯤은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한단 말이야. 그렇지 않다면 입을 다물로 조용히 있는 편이 낫겠지. 인생에 대해 여태 모른다는 걸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11)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지금쯤, 알아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조바심. 결혼을 하거나 사랑에 미치면 이렇게 밀치고 올라오는 울컥증이 조금 가라앉을 것 같은 기대.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 지루하고 단조로운 삶에 절망한 상태로, 뭐든 마음을 쏟을 만큼 애정이 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안온하고 무감각한 이 생활을 당장 청산'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20) 나는 외롭고 약하고 관계가 그립고, 그래서 여행을 가버린 친구가 찍어올 사진들이 미울 것이다. 바보같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집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토마토와 고추, 쑥갓을 가지고 소박하고 따뜻한 밥상을 챙겨먹어야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마지막 장면에서 한 몸 같았던 그 사람이 떠나고 난 자리에서 일인분의 생선을 그릴에 구워 밥상을 차리던 조제처럼. 그렇게 튼튼해지고 나면 '비혼여성생태공동체' 같은 모임에 갈 것이다. 지금은 자신만의 리듬을, 자신만의 파고를 가지고 살 수 있는 내가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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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의 가내노동자 관련 시위

이 해 이월 말, 방콕에 머물 때 방콕에서 열리는 가내노동자 시위에 가게 되었다. CLIST(태국노동자교육문화센터)의 활동가들을 따라서 쪼르륵 갔지만 짧은 태국어로는 뭐라 하는지 도통 몰라 뻘쭘, 사진만 댑따 찍었다. 이 날 고런 생각을 했드랬다. 종로나 광화문 행진하면서 'DOWN DOWN(따운따운) 아메리카' 뭐 이런 구호들은 얼마나 친절했던가. -_-;;; (외국인에게!) 시위는 태국 정부청사 같은 곳에서 두 시간 정도 진행되었고, 그 후 우리는 도시락을 배급받아 나들이 온 것처럼 돛자리 깔아놓고 야외에서 먹었다. ^^ 시위는 태국의 가내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고 최저임금을 보장하고 더 나은 노동환경을 보장하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날씨는 맑고 하늘은 드높고 태국엔 한들한들 산들바람마저 부는데, 내가 묵던 곳 옆에 있던 곳에서도 아침마다, 그리고 주말마다 집을 개조해 놓은 공장에서 미싱 돌리는 소리가 드들들들 옹골차게 들렸었다.


여기 저기, 곳곳마다 '별'들이 반짝인다 ^^ 정부청사 앞 시위인데, 푸미폰 국왕의 색인 '노란색'을 맞춰입듯 입고 나왔다. 정부청사 앞에도 태국 국기와 왕실을 상징하는 노란 깃발이 나란히 쭈욱 담을 따라 꽂혀있었다. 정말아지, 우리의 왕님을 누가 말릴쏘냐. -_-;;; 노란색 뿐은 아닌걸 ^^ 붉은 기가 펄럭인다. 어느 단체에선가 평화를 상징하는 종이학을 나누어주었다. 활동가들이 이걸 접고 있었을까나?? ZERO UNFAIR!! 햇빛은 쨍쨍 ^^ 도시락과 물은 빵빵, 그래서 돛자리 깔아놓고 밥도 먹고 담배도 피우고! 두 분의 포스가 찌리리 ~~ 와 닿아부렀네 그랴. 한 분은 '전인권' 스탈이셨으며, 한 분은 날씨와 왕콤비조로다가 '하와이안 셔츠'로 붉은 기를 압도하셨삼. 어이, 젊은이들... 한 명은 플랭카드 들고 한 명은 옆에서 떠 먹여주고, 호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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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 라이프, 에고 에고

여성환경연대에 회원으로 가입하고서 나는 드디어 에코 라디오를 선물로 받게 되었다. 고 놈을 보여줘서, 고 놈을 가지고 싶은 부르르한 욕망에 떠는 나의 룸메 양까지 여성환경연대 회원으로 엮었다. 룸메 양은 쪼르르, 그 에코 라디오를 가지고 남친에게 선물했다. 너무 예쁜 놈들만 보면 그 놈 생각이 나는지 너무 예쁜 놈들은 다 그 놈에게로 간다. 근데 그 너무 예쁜 놈들은 정작 가지지도 못했음시롱 룸메 양은 봄날의 새끼곰처럼 파릇파릇하고 뭉클해 보였다. 오도카니 지켜보고 있자니, 나도 사귀는 사람 이런 거에 츱츱한 마음이 뭉게뭉게 솟아올랐다. 이 봄에, 심드렁할만치 외로웠다. "이거, 돌리면 얼마나 가는거야?" 라고 묻길래 "십분 돌리면 한 시간 정도 라디오 들을 수 있어"라고 대답했다. 여봐라 하는 표정으로 에코 라디오 손잡이를 한 번 돌려주면서 대꾸했다. 그는 참내,하는 표정으로 십 분 돌리면 24시간 쯤은 거뜬히 가야한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또 아무리 외로워도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라는 식의 마음이 되버린다. 그러니까, 또 니 옆에 있으면 '봄날의 새끼곰' 을 볼 때보다 더 외로워져 버린다. 당신은 늘 십 분 쯤 돌려서 24시간 쯤은 당연히 돌아가는, 그런 관계밖에 모르고, 나는 전기없이도 십분 돌려서 한 시간 정도 가는 것이 감지덕지하게 뿌듯한, 그런 관계를 원하고,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사무실에 혼자 앉아 라디오 손잡이를 한 십분 쯤 돌렸다. 그 십분 동안 이 에코라디오처럼 나도 십 분 돌려주면 한 시간쯤은 전기없이 그저 혼자서도 온전히 존재할 수 있기를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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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근교 랑싯 (Ransit)

새벽 뱅기로 방콕이 온지 15일이 지났다. CLIST (노동자교육 문화정보센터) 에서 꼬물꼬물 지내면서 하청 노동자 시위 한 번, 출산 후 부당해고를 당한 여성노동자 집 방문 한 번, 그리고 병원 노동자 조직 회의에 한 번 참석한 것을 빼곤 룰루루, 바지런을 떨면서 놀았다. :) CLIST 에는 디렉터만 빼곤 여기 중앙에서 일하는 사람은 세 명 모두 결혼 안한, 애가 있거나 없는, 나이 삼십대의 여성이다. (난 참으로 복을 타고 났나봬. 여기 옹께 내 룸메들을 대체할 여자들이 이렇게 떡 버티고 있다니!!) 우리는 일 중간에 콩을 까먹거나 따땃한 차를 마시거나, '까훼 옌' -태국식 봉지 커피로 연유를 듬뿍 넣고 설탕을 한 움쿰 넣은 뒤에 얼음을 이따시만큼 넣어서 그 위에 살짝 깡통 우유를 뿌려줌 -을 찾아서 시멘트 바닥에서 햇빛 아지랭이가 피어오르는 오후 2시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쏘다니기도 한다. 점심은 동네 야외 식당에서 먹는데 큰 나무 밑에 있는 탁자에 앉으면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이 날려 수프 그릇 위를 양 손으로 단단히 단도리해야 한다. 그러다가, 어느 주말 수출지향적 공장들이 바글바글 모여있는 랑싯으로 덜덜덜, 왠 (태국의 봉고버스, 주요 지역으로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봉고버스가 버스 정류장에 턱 하니 있음.)을 타고 두 시간 걸려서 놀러 갔다. CLIST의 스텝 랏(RAT)넷 부모님 집으로 랑싯에 있는 작은 마을. 나, 요새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남쪽으로 튀어' , 'Susbsistence perspective' 같은 책들을 들입다 읽어댔는데, 정작 닭과 돼지들이 마을에 떡 버티고 있는 곳을 가기는 십 년도 더 된 것 같았다. 그 동안 나, 마치 루소의 그림에 걸린 자연을 감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책을 읽었던 걸까. 아이스크림 오토바이가 삐용삐용 마을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졸랐다. 동네에는 아이들이 아주 많아서, 잠시 난감해부렀네, 쓰읍 -_-;;;;


랑싯의 작은 마을, 닭들이 마구 돌아다니는데 처음엔 축 늘어져있는 태국 개들보다 무서웠삼. 태국의 절, 불상 앞에는 요일 별로 공양을 드릴 수 있게 단지가 쭈욱 놓여있는데 자기가 태어난 요일에 맞는 단지에 돈을 넣고 절을 하면 된다. 태어난 날이 중요한 모냥인데.. 생일날은 이렇게 장에서 새를 사서 날려보낸다. 물고기 방생처럼 새 방생 :) 동네 집 뒤에는 돼지가 살고 있다. 우리 밖에서 닭이 돼지 보란듯이 밥 먹고 있다. 태국 사람들은 '모터 사이'를 느무느무 좋아한다. 한 낮에 동네를 어슬렁 걸어다니는 인간은 나밖에 없고 모두들 10분 거리도 이 오토바이 택시를 이용한다. 부릉부릉, 밤에 오토바이 택시 뒤에 타고 있으면 머리칼 속으로, 훌렁훌렁 나시 속으로 바람이 솔솔 분다. 동네 아이들, 엄마 하이힐을 신고 동네를 산보하는 아이들, 검정 멍멍이랑 아침부터 모여노는 아이들, 파우더를 얼굴에 희옇게 칠한 아이들 :) 가난한 사람들은 도시에서도 자급형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마리아 미즈가 말했듯이, 이미 DVD가 집마다 들어차고 오토바이를 타고 수출지향형 공장에서 교대로 일하고, 한 방, 한 모기장 아래에서 다섯명은 족히 함께 자면서도 집마다 TV는 두 대가 있는 이 마을에서도, 사람들은 밤마다 꼬물꼬물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내가 가져간 백세주를 돌려 마시고 동네마다 알고 보면 이리저리 다 친척이고, 그래서 딸이 혼자 낳아 떨쳐놓고 간 아이도 아주 자연스럽게, 여기저기의 친척이자 동네사람들이 알아서 키워내고, 닭과 돼지와 개와 아이들이 새벽 댓바람부터 삼삼오오 몰려다녔다. 숟가락 갯수를 아는게 문제가 아니었다. 이렇게 문을 훌쩍훌쩍 열어놓고 동네 사람들이 불쑥 들왔다가는 곳에서, 밤에는 그 문 앞의 탁자에 모여앉아 한솥밥을 먹는 곳에서 어떻게 아이를 만드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도, 나는 그게 몸에 익질 않아 글쎄, 몸 둘 바를 모르다가, 급기야는 아, 스타벅스 같은 곳에서 휘핑 얹은 달달한 놈들을 마심시롱 혼자 책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해 대면서 하루 만에 마을을 빠져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에어컨 버스에서 나오는 찬 바람을 맞으며 구공탄 향기에 향수를 느끼는 성북동 비둘기처럼 가련하게 좋아라하고 있었다. 그런 책들을 백 만권 읽어도 소용없을지도 몰라, 라고 생각했다. "비오는 날 눈이 부시도록 환하게 불을 밝힌 쇼핑몰에서 천천히 카트를 밀다 심장 마비로 죽었으면 좋겠어"라는 가장 행복한 죽음에 대한 어느 회사원의 말처럼 나도 이미 그런데 몸이 달아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이들을 키운다면 기필코 시골으로 내려갈거야, 라고도 생각했다. 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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