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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현정씨에게, 부탁함

노현정 씨 결혼을 보면서 든 오지랖 넓은 생각들 ;;; 

 

며칠 전까지도 포털에 줄줄이 사탕으로 엮인
노현정씨 결혼 기사 제목을 지나치면서
뭐 미국서 공부한다는 재벌가 자식이
‘첫 눈에 반해 두 달 만에 결혼을 결심하고야 만’ 흑인 여성이나 치카노 여성 쯤의 기사도 아닌데 읽어본 들 무슨 재미냐 하는 생각이었다.
그건 뒷북이다 싶게 이제사 본 영화 ‘호텔 르완다’에서
후투족의 학살장면을 찍어서 가져온 기자가
‘고맙다, 이걸 보고 사람들이 르완다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알게 될 거야’ 하는
주인공에게 내뱉는 그 스산한 대사가
차차차 즈려밟듯이 마음 속에 차차차 스며들었기 때문이었다.
 
“고마울 거 없다. 사람들은 뉴스에서 이 학살 장면을 보고는
오, 테러블, 댓츠 소 테러블, 하고는 저녁 먹으러 나간다”
그 기자 말대로 유엔 평화군과 기자들과 르완다와는 다른 국적의 여권을 가진 사람들은 르완다에서 모두 철수하고,
또 그 밖의 사람들이 오, 테러블과 뭐 먹을까를 왔다갔다 했던1994년 여름,
르완다에서 근 백 만명의 사람이 죽었다.
 
순진무구하게도 마치 그 대사가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기사를 읽고는
오, 나쁜 새끼들, 나치들한테 배웠냐, 하고는 금새 돌아서서
노현정씨 결혼기사를 읽는다’는 식으로 들렸다.
그래서 웬지 궁금했지만(도대체 왜!!)
, 노현정씨 결혼 기사는 결코 클릭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에헤라디야, 자진방아를 돌려라,
라는 심정으로 오늘 노현정씨 결혼 기사를 읽고 말았다.     


 



참말로, 누구 블로그에서 본 글처럼
그 놈의 힐튼 상속녀 기사만 뜨면 저절로 기사를 클릭하고 마는 것처럼(제길슨!) 나도 빠져, 빠져, 들었다.
 
이런,
우리의 힐튼 상속녀가 애완견 팅커벨을 살 쪘다고 내팽개치거나
새로운 ‘심플 라이프’ 시리즈에서는 니콜 리치랑 따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설정으로 간다거나
한 번 입은 옷은 절대 거들떠 보지 않는다는 기사들보다
따분하고 지지리부진한 그 기사를 클릭하다니!
홍세화씨 식으로 말하자면, 존재를 배반하는 손가락의 클릭질이었던 게다.
 
기사를 읽으면서
‘예쁘게 잘 살게요, 미국서 공부하고 이 년 후에 돌아올께요’라는노현정씨 멘트에 ‘언니, 이 년 뒤에 난 고 3이라서 텔레비 못 보는데, 어떠케요 ToT’
라는 댓글을 다는 절박한 심정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결혼을 축하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평소 텔레비를 하도 안 봐서
그녀가 진행했다는 시청률 1위의 스타 골든벨을 한 번도 본적은 없지만
뭐랄까,
우물에 빠진 아이를 보면 달려가서 건져낸다는 ‘인’의 마음이 들어부렀다.
그래서 ‘생얼’ ‘엑스 파일’ 이런 기사를 보면서
다덜 부러워서 환장했구먼, 이봐들, 자제하자고,쯤의 마음이었다.
 
적어도 우리의 현정씨는 말이다,
이 년 후 어찌돼든, 암튼 일을 그만두는 대신 ‘휴직’을 선언했고,
그것 때문에 비록 아나운서 지망생들의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지만
암튼 빡 터지게 경쟁율 치열한 아나운서 자리에 공백을 만드는데 기여했다.
(한 자리의 공백이 중요한지 아니면 아나운서 같은 전문직 여성도 결혼 후 커리어 단절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공고히 한 것이 더 중요한지는 모르겠사와요.)
 
또한 삼성가의 아들처럼 동아일보 사주의 딸과 결혼한 것도 아니고,
사실 현대가 아들이랑 조선일보 뭐시기네 딸 이런 기사보다는 백 배 낫지 않수?     
 
또또한 재벌과 결혼했다 이혼한 다른 현정씨처럼
미국서 우연히 뭐시기 공연을 보다가 사랑에 빠졌어요, 그가 누군지 몰랐죠, 라는 식의 ‘로맨틱한 멘트’도 날리지 않았다.
현대가에 납품하는 아버지와 현대가 사이에 혼담이 오가면서 시작했다는,
그렇지만 첫 눈에 반해 두 달간 뜨겁게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는
‘믿거나 말거나’를 일부러 조장하는 듯한 멘트만 날렸을 뿐이다.
 
아마도  현대가에서도 텔레비젼 뉴스에 하청업체 사장 얼굴이 모자이크로 처리되고 목소리가 변조된 채 나와도 다음 날 바로 그 대기업에서
“납품단가 인하니 착취니, 그런 말을 들을 바에는 납품 계약 끊겠다”는
전화를 하는 그 민첩성을 가지고 노현정 씨를 찾아냈나 보다.
다시 한 번 깜딱 놀랐다고 할 수 밖에.
 
연예 전문 기자도 아니고 노현정씨를 스타킹(stocking)한 것도 아니라서
현대가에 납품한다는 그녀의 아버지네 기업에 대해서는 모른다.
하지만 혹여나 노현정씨나 그녀의 아버지도 원 하청 불평등 관계나
해마다 평균 5-10%를 깎아 내린다는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관행에 분통터져본 경험이 있으시다면,
하청업체나 중소기업을 위해서 조금 ‘공부하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그리고 현대가에게는 언론에 대기업을 ‘꼬지른’ 하청업체 사장이나 며느리가 될 노현정씨를 찾거나, 포털 사이트 인기 검색어를 주물럭 거리는 그 민첩성과 실력을‘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상생관계’같은 방향으로 돌렸으면 하는 오지랖 넓은 바램을!!
 
하청 업체 사장님들이 언제 사돈이 되고 장인 어른이 될지 누가 안단가?
 
부디 장인 어른 모시는 마음의 발톱 때만한 크기로 중소 하청 기업들을 대접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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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read enough?

Toronto, Canada

Danforth Ave.

 

간만에 부시의 귀염둥이 표정을 보았다.

과자님한테 습격당했을 적에 '과자 먹다가 다쳤어요' 하던, 그 수줍어하던

미소 그대로였다. 대박

아이고, 깨물어주고 싶네 그랴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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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몰라

조금 많이 뻔하거나 상식적으로 조금만 머리를 굴려 생각하면

웬만한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결과들을 학문적으로 세심하게 풀어내서

이론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사회과학의 일이지만,

그래도 그걸 위해서 깨알같은 각주를 달고

참고문헌이랑 인덱스다는데 조교들 노동력을 이용하고

그 많은 나무들 깍아서 종이책으로 펴내고

하는 걸 생각하면, 완전 회의 만빵이다.

싸가지 없게 말하자면

난 그렇게 먹고 살고 싶지는 않다는 거야.

 

이건 파블로 네루다

무엇을 쓰기보다는 무엇 하나라고 제 손으로 만들고 싶다라면서

목수가 되고 싶어했다는 것과는 질이 다르다. 나도 안다고. -_- 

 



싸가지 겁나 없게 나가기로 했다, 오늘 블로그 긁적긁적에 말이쥐.

 

대학원에 들어와 그 등록금을 내고 '여봐라' 할 수 있게 배운 것은,

영어로 책 읽기랑 아메리칸 앤스로폴로지 같은 외국 학술지에서 

자료찾는 것이다. 

아주 자랑스럽게도 마음 먹고 책 잡기 시작하면 삼 사일 안에 웬만한 

영어 책은 읽고 발제문도 쓴다 -_-

학위 없이 대학원을 그만 둔다고 해도 

하루에 영어 책 한 페이지를 죽을 똥 싸는듯한 심정으로 읽었던 내게

참으로 여봐라, 란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캐나다에 와서 중고 영어 책들, 대개 사회과학, 그 중에서도
인류학 관련 전공 도서들을 샀다.

이 책들을 읽는 내내 얼마나 한국 책들이 읽고 싶어서 환장했는지 모른다.

특히 나는 동남아시아와 관련된 책들을 읽고 있는데

 

아아, 아니올시다.

어거지로 한장한장 읽어내려가면서 짬짬이 푸드 채널도 보고

홈 인테리어 채널도 본다.

마치 주발이가 김기덕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하루에 17분씩 할당해

의무량을 채운 뒤에야 다른 디브이디를 본 것처럼,

나도 그런 식이다.

 

서구학자들의 해 놓은 연구들을 보면 그닥 새로울 것도 없는 아시아적 상황

(급속한 근대화에 눈이 멀고 모든 생활 양식이 근대화를 향해서 마구잡이로 달려드는)을 그 긴 참고문헌들을 가지고 아주 세련되게 풀어논다는 것이다.

저번에 읽은 Intimacy Economy of Bangkok 도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별반 많이 잘못 한 것도 없이 (제국주의적이라거나 이런 아주 무선 놈들)

나는 많이 지치고,지겹고, 하품나고, 오늘분 2챕터만!!! 이라는 심정에 들끊는다.

모르겠다, 왜 공부하는지.

인류학자들처럼 매력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재미없는 글을 쓰는지 모르겠다는 그 누구의 말처럼

이것들, 참 매력없다.

 

 

조금 많이 뻔하거나 상식적으로 조금만 머리를 굴려 생각하면

웬만한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결과들을 학문적으로 세심하게 풀어내서

이론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사회과학의 일이지만,

그래도 그걸 위해서 깨알같은 각주를 달고

참고문헌이랑 인덱스다는데 조교들 노동력을 이용하고

그 많은 나무들 깍아서 종이책으로 펴내고

하는 걸 생각하면, 완전 회의 만빵이다.

싸가지 없게 말하자면

난 그렇게 먹고 살고 싶지는 않다는 거야.

 

이건 파블로 네루다

무엇을 쓰기보다는 무엇 하나라고 제 손으로 만들고 싶다라면서

목수가 되고 싶어했다는 것과는 질이 다르다. 나도 안다고. -_- 

 

하지만 나도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뻔한 이야기 주저리주저리 하느니

치공기술이나 목공예, 가구 디자인, 도공, 요리, 리코더 불기 같은 것을 배워서

무엇인가 소박하게나마 손으로 만들고,

시위에 가서 리코더도 불고 

사람들 불러서 맛난 것도 해 먹고  

주변 사람들이 그걸 가지고 좋아라하는 것을 느끼고

그걸 가지고 관계를 만들고 또 사람들에게 잘해주고,

마구마구 잡지 '좋은 생각'류의 그런 생각들... 

 

필드워크는 너무 작위적으로 보이고

-현지조사지에 가서 1년 살고 그걸로 이빨 까서 박사 학위 받고,

그러고 어쩌라고?

그래서 나는 점점 공부에 흥미를 잃고

그러고 있다.

 

사람들은 "석사 마치면 박사, 지금 석사할 나이도 아니고

박사할 나이구먼"의 눈빛인데 

몰라, 몰라. -_-

양키 데리고 산책 나가서 꽃향기나 맡을래, 킁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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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정원

토론토도 지금 한참 여름,  

햇빛은 한국과 비슷하게 뜨거운데 좀 덜 찝찝하고 끈적끈적해서

바람이 휘익, 불면 기분이 마구 좋아져.

바람이 불면, 여기저기서 나무들의 잎파리가 싸그락 거리는 소리가 귀를 채워.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면

작은 나무들과 큰 나무들알록달록한 꽃송이들.

옹기종기 모여앉아있는 그 식물들이 가진 '인간'다운 얼굴

 

그 식물들이 ‘인간다운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알록달록한 색깔이나 시간의 결을 촘촘히 묻고 있는 그 큰 나무들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야.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선물이랍시고 꽃 사들고나타나는'로맨티스트'들을

책장에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시리즈로다가 꽂아놓은 사람들과 쌤쌤으로 치는인간. -_-




캐나다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날마다 가만히 앉아서 혼자 생각할 시간을 즐길 수 있다고 대답했는데,

그 시간들, 돈을 벌기 위한 노동시간과 가사노동시간을 제외하고 남는 시간들을 나무를 키우고 집을 가꾸고 하는 시간들로 채울 수 있는 삶, 그런 것들.

 

그리고 한국의 '저부가가치' 노동자가 갖는 시간.  

         

7 1일은 캐나다 데이였어.

잘은 모르지만 아마 영국에서 독립한 날을 기념하는 듯.

그 날은 나와 엄이 스페인에서 돌아온 날이였고 칠월의 첫째 토요일이었어.

5일 근무를 하는 캐나다에서는 7 3, 그러니까 그 다음 월요일날 따로 날을 잡아서 하루를 쉬더구먼.

그 때 나는 완전 눈 시뻘겋게 뜨고 마치 반공반핵 김정일 타도에 참여한 교회사람들이 미국을 받들어모시는 마음가짐으로 캐나다의 이 멘털리티에 빠졌지. 

이 사람들은 그 시간들을 가지고 인간의 얼굴을 한 나무들을 만들고 가꾸고, 그런 거겠지.

         

태국의 한 벽돌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이 마시는 물에 암페타민 (각성제)을 넣어서 잠도 안 자고 일하게 만들려는 수작을 폈고 (1998년 방콕 포스트에 난 기사)

언젠가 본 다큐먼터리에서는 한국 여성노동자들이 눈에 이쑤시게를 끼우고 재봉틀을 돌리는 모습이 나오더군.

         

자신마저 돌볼 수 없는 삶에서 나무를 키운다는 것이 가능할까,

나무와 함께 삶이 커가는 므흣한 기분,

런 게 바로 사회 책에 나오는 삶의 질이 아닐까. 시간이 조용히 흐르는 길을 걸으면서 남의 집 정원들을 찬찬히 보았어.

 

그러고 여기와서, 포스코, 에 대해서 읽었어.

그들이 가졌을 시간의 양, 하루 중 혼자서 가만히 앉아 생각하고

누군가와 나무를 키우고 누군가를 돌보고 돌봄을 받았을 시간의 양을 생각하니,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이요원이 저부가가치 인간이라는 소리를 듣고 

화장실에서 울었던 그 장면이 생각났지. 

 

건설 노동자의 삶와 골프 캐디를 액면가 그대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전전했던 몇 저부가가치의 직업 중 가장 육체 노동군에 속했던 골프 캐디로서의 몇 달간을 생각해보니, 마음이 찌르르했어.

 

 

정말이지 말 그대로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와 멍하게 텔레비젼을 보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어. 

특히 새벽 5시 티업이 있고 저녁 7시가 넘어 경기가 끝나는 여름 시즌에는,

'날 잡아 잡순다'고 해도 암 것도 할 수가 없었어.

콧구멍에 파를 끼운다고 해도나무에 물을 줄 시간이나 여력이라곤 없었어. 

 

건설노동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 사실 잘 몰라.

노가다를 해서 학비를 번 것도 아니었고

가까이 건설노동을 하시는 분들이 계신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가졌을 시간의 양, 이런 것은

공사 현장에 옷을 갈아입는 곳이나 화장실처럼 기본적인 시설조차 없다는

신문기사만으로도 충분히, 잘 알 것만 같았다.

느자구없게도 그런 기사들은 캐디 생활을 떠올리게 헸어.

 

오늘 동네를 산책하면서 몇몇 정원을 찍었어. 

부디, 부디 므흣하게 나무와 함께 커갈 수 있는 삶,

그런 것들이 있는 곳으로 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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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

아래 글, 스페인의 말라가와 미하스에 이어진 글입니다 :)

 

 

스페인, 말라가의 뭐시기 해변서 두 시간 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그라나다 (Granada)

미하스보다 훨씬 더 '시내' 여서 규모도 크고 사람도 많아서 그런지

미하스만큼 아기자기한 느낌은 없다.

차비도 더 비싸고 -_-;;;

며칠 조용히 묵고 싶다면, 정말이지 미하스 강추..

 

이슬람이 몇 백년 동안 차지했다는 알람브라 궁전은 볼거리.

 

공공버스 타고 갈까, 기차 타고 갈까 고민하다가

여행사 패키지 상품으로 다녀왔다.

버스비랑 알람브랑 궁전 입장료랑 합하고 가이드도 붙여주고 그러니 

뭐 그렇다면야 남는 장사였던 것.

패키지지만 쇼핑센타 이런데 안 데리고 다녔다.

(한 육만원-칠만원 정도 한 것 같은데 여행사마다 차이가 많으므로 발품을 팔아야!!) 

 

1_그리나다의 시장 쏘다니기




2_ 여행사 버스는 아니지만, 그라나다 시내의 알록달록한 관광버스

 

 

 

알라브람 궁전의 내부, 궁전을 싸고도는 물 때문에 궁 내부는 몹시 시원함

영어 가이드님께서 뭐시라 뭐시라 했지만 -_-;;;

알아들은 것은 아아...

그 옛날에 술탄이 자기 정부랑 바람난 놈을 찾다가 그 놈을 못 찾으니

그 날 그 궁에 있었던 36명의 남자를 모조리 죽였다는 이야기 뿐이었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좀 많이 못 알아들었다고나 할까 -_-^

3_

 

4_

 

 

왕의 사적 공간, 가이드 왈 여기가 하렘입니다.

5_

 

여기는 작은 정원 :)

궁전 주변에는 정말 아름다운 정원들이 손질이 잘 된채 놓여있었다

6_

 

 

궁전 전경

7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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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말라가와 미하스

이런데 주저리 주저리 여행 사진을 올리면

마치 '싸이질'이 되는 것 같아 무척 부끄럽지만 -_-;;;; -

('나 어디 가봤어 식의 자랑질' 쿨럭)

 

며칠 전 남들 블로그에서 먹을 거랑 못 가본 데 여행 사진을 봤는데,

한마디로 환장하면서 보게 되었삼..

그리하야 나도 올려봐야지 하는 의욕이 마구마구 들어부렀다...

 

외국인들은 -_-;;; 휴가를 위해서 사는 '할리데이 애니멀'들 같은데

그 휴가 동물들을 따라 나도 난생 처음으로 스페인의 말라가 Malaga와 미하스 Mijas에 가봤다.

 

(내 마음 속의) 고양이에게는 엄청난 밥을, 여행가방에 온갖 작은 샘플들을 쳐 넣고

스페인어 '올라'를 외우면서 즐긴 일주일 여행.

 





 

 

말라가에 있는 뭐시가 해변이었는데 이름은 까 묵었지만,

중앙에 아주 큰 여자 둘의 석상이 서 있었다.

이건 뭐랄까, 레즈비언적 관계를 넘어서

쥬이쌍쓰 (여락)를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서 몹시 므흣

 

-> 엄청난 인구의 게이들이 포진하고 있는 해변이었는데 

(뚜드드 '게이다' 마구 작동)

삐끼에게 걸려 들어간 한 바에서 여기가 시내의 유일한 '스트레이트 바'라는 농담조의 말도 들었다. -_- ;;;; 



 

말라가의 뭐시기 해변서 공공버스를 타고 한 시간 쯤 가면

(버스도 자주 있고 가격도 1500원 정도 함, 강추강추!!)

작은 마을 미하스가 있는데,

마치, 엽서에서 지중해 해안의 흰집들 사진을 눈 앞에서 보는 기분.

 

 


 

 


 

 


 

 

스페인의 음식, 타파 (tapa)

마치 '반찬'들처럼 여러종류가 조그만 그릇에 옹기종기 담겨있다.

다만 밥과 같이 먹지 않고 빵이랑 같이 먹는다.

김치처럼 집마다, 레스토랑마다 각기 종류랑 맛이 다르다.

아래 사진에는 오징거를 올리브 오일에 절인 거, 새우튀김을 양념통닭 양념과 비스꾸리한 것에

버무린 것, 페다치즈랑 토마토 샐러드 등이 담겨있다.


 

 

투우는 싫지만 -_-;;; (죽음에도 자비를!!)

투우경기장이 있길래 들어가봤다.

처음에는 고색창연한 옛날 투우 경기장인줄 알았는데

지금도 이주에 한번씩 여기서 투우경기가 열린다고... 쩜쩜...

말라가 해변에도, 미하스에도, 하루동안 머문 마드리드에도

투우사들의 사진과 광고, 경기일정 포스터가 지천에 깔려있었다.


헉 ;;;

스페셜 땡쓰 투, 테일러 


 

온통 흰 집들,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또한 다른 유럽에 비해 미하스는 미치도록 비싸지도 않았다.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 살이 빠질정도로 입맛이 '꼴보수'인 나지만

음식까지 잘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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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좀 아니잖아?

 

아빠랑 나랑은 웃고

엄마는 빗자루를 들고 혼자 찡그리고 있다.

그 그림 아래에는 친절하고 상낭하게도

"청소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지 마세요.

우리 뭐시기로 청소하면 훨씬 쉬워요,"

뭐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  ...

 

 



 

     노조원의 가족들이 싸운 도시락을 두고 지어미가 정성스레 싸온 도시락 어쩌고 저쩌고를 읽다보니 머리가 핑, 돌면서 (한겨레 손석춘 칼럼서 '지어미'를 보고 화들짝 놀라부렀다) 성노동자들이 투쟁하던 현장에는 누가 도시락을 싸들고 왔는지 묻게 된다. 나라고 그 도시락을 바리바리 싸고 먹을 것을 챙겨오던 심정에 마음이 핑, 하고 아프지 않겠냐만은

 

      그런 말들, 그런 말들, 아 꼬라지가 나.

 

      언젠가 KTX 여성노동자들이 투쟁하던 곳에 그녀들의 어머니가 와 있는 사진을 보고 좀 뭉클했었다. 아마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가족들이 지지해주는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나 낯설어서 그랬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투쟁을 쌍수들어 지지한다고 해도 남성노동자들의 투쟁에만 따라붙는 아빠 힘내세요식의 가족들의 지지에 대해서 뭐라고 말해야 하나,

얼쑤. 장하십니다. 이러고 지지하면 되는거야?

 

     나는 남성 생계부양자와 가족임금의 참상을 보는 것 같아 그저 벨꼴린 마음이 앞선다.

 

     그러다가 위의 광고를 발견했는데 역시 꼬라지를 불러일으키는 캐나다의 쌍팔년도식 광고였다. 물론 쌍팔년도에 뿌려진 광고가 아니라 2005년도 광고라는 것이 문제였다.

 

     아빠랑 나랑은 웃고 엄마는 빗자루를 들고 혼자 찡그리고 있다. 그 그림 아래에는 친절하고 상낭하게도

"청소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지 마세요.

우리 뭐시기로 청소하면 훨씬 쉬워요,"

뭐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 

 

      나도 '쌍팔년도'식으로 중얼거렸다.

      "염병하고 자빠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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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운다는 것

         

         진보넷 블로그 글들을 보니 엄마가 되는 것,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읽으면 좀 가슴이 아프다. 나는 아직 아이도 없고 아이를 낳을 생각도 없으니 애송이들아라는 말을 듣겠지만 (아 노래방 가고 잡다)  재작년에 여섯날 난 성현이랑 싱글맘 오정이랑 함께 살면서 한 아이를 기른다는 것을 곁눈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인간이 있다는 것을.

 

          자기 손으로 자기 똥꼬를 닦을 수 있는 인간과 남이 똥꼬를 닦아줘야 하는 인간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 당시 여섯살에 접어든 성현이는 거의 내 몸무게의 절반이 나가는 다 커부렀네는 느낌을 주는 아이였는데도 불구하고 똥 싸고 나서 화장실에서 엄마, 엄마를 불렀다. 나는 부모가, 특히 엄마가 내 기저귀를 빨며 날 키운지는 알았지만 저렇게 덜컥 클 때까지 똥꼬를 닦아주면서 키운지는 몰랐다.

         

          사람을 키운다는 것의 의미, 한 사람이 된다는 의미가 그렇게 절절할 수가 없었다.

 

          박민규의 말대로 다음 세기에는 이 세계를 찾아온 모든 인간들을 따뜻하게 대해 줘야지라는 경건한 마음이 들어드랬다. 모두들 똥꼬를 제 손으로 닦을 때까지 그 무수한 시간들을 누군가의 헌신으로 채운 존재들이니까 말이다. 누군가는 많이 힘들었을 테니까, too much work에 힘들었을 테니까 말이다.

...



               며칠 전 친구들이 밤늦도록 술을 마시더니 단숨에 아이들을 키우는 화제로 슥슥 이동하였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 뭐 이런 식으로 아이들을 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자기 새끼들을 대하는 자세는 어쩔 때 내게 유치하게도 질투심을 유발할 정도였는데 (나도 사랑해줘!) 그런 그들이 이젠 지쳤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Too much work,라고 영어로 이야기했는데 그네들 아이들은 고등학생, 대학생이라서 별로 손이 갈 것이 없고 상대적으로 한국보다 상황이 좋은 캐나다 사람들임에도 그랬다. 글렌 역시 막내 딸이 19살에 접어들었지만 대학을 멀리 가서 집에 자주 오지 말라고 딸에게 말했다고, 아직도 돈들고 신경 쓰는 일이 너무 많이 남아서 힘들다, 라고 말했다. 그냥 이 사람들이 내가 아는 그 사람들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드는 밤이었고,

그리고, 좀 짠, 했다.

          내 하우스메이트였던 휴지는 논문을 써야함에도 불구하고, 또 휴지통과의 끈끈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캐나다에 있는 아달과 1년을 보내기 위해서 올 6월에 한국을 떴다. 지난번 하우스메이트였던 오정은 물론 자기 욕심도 있었겠지만 아달 성현이에게 자기가 겪은 고생을 안 하게 해주고 싶다며 8살난 그 놈 손을 잡고 뉴질랜드로 어학연수를 갔다. 나랑 함께 살 때 오정은 그런 말을 했었다. 아무리 다 잡으려 해도 이혼한 것 때문에 성현이에게 상처준 것 같아 늘 마음에 걸린다고 말이다. 아마 영어를 솰라솰라 하면서 얻을 수 있는 기회들을 성현이에게 주는 것으로서 좀 위로받고 싶었는지 모른다. (쳇, 돈도 없음시롱 방값 보증금 빼서 가면 어쩌란거야??) 

          언젠가 내 친구, 씨앗이 잡지사에서 편집일을 하다가 아이를 낳고 일을 잠시 쉬고 있는 선배를 찾아갔던 이야기를 했다. 나름 평등 결혼이런 것을 하고 나름 의식있는 부부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 그 언니를 공적인 자리에서 찾을 수가 없어졌다. 씨앗이 그 집으로 찾아갔던 날,  언니는 씨앗을 배웅하면서 유모차에 아이를 태워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서는  집 밖에 나온 것이 오늘 처음이야, 라고 했다. 씨앗과 헤어지는 순간, 이야기를 하는 순간, 서로 눈을 마주치며 웃는 순간, 순간순간 그녀는 유모차의 손잡이를 잡고 앞 뒤로 천천히 흔들고 있었다.

 

          진보넷 블로그 글들을 보니 엄마가 되는 것,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읽으면 좀 가슴이 아프다. 나는 아직 아이도 없고 아이를 낳을 생각도 없으니 애송이들아라는 말을 듣겠지만 재작년에 성현이랑 오정이랑 함께 살면서 한 아이를 기른다는 것을 곁눈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인간이 있다는 것을.

 

          자기 손으로 자기 똥꼬를 닦을 수 있는 인간과 남이 똥꼬를 닦아줘야 하는 인간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 당시 여섯살에 접어든 성현이는 거의 내 몸무게의 절반이 나가는 다 커부렀네는 느낌을 주는 아이였는데도 불구하고 똥 싸고 나서 화장실에서 엄마, 엄마를 불렀다. 나는 부모가, 특히 엄마가 내 기저귀를 빨며 날 키운지는 알았지만 저렇게 덜컥 클 때까지 똥꼬를 닦아주면서 키운지는 몰랐다.

         

          사람을 키운다는 것의 의미, 한 사람이 된다는 의미가 너무 무거웠다.

 

          박민규의 말대로 다음 세기에는 이 세계를 찾아온 모든 인간들을 따뜻하게 대해 줘야지라는 경건한 마음이 들어드랬다. 모두들 똥꼬를 제 손으로 닦을 때까지 그 무수한 시간들을 누군가의 헌신으로 채운 존재들이니까 말이다. 누군가는 많이 힘들었을 테니까, too much work에 힘들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노동이 한 사람의 여성이나 한 쌍의 핵가족 부부에게만 전가되는 한 사람들은 존재들을 키워가는 것에 진절머리를 치게 된다. 그건 ‘4인용 식탁에 나오는 장면처럼 젖 달라고 기어오는 아이들이 그악스럽게 느껴지면서 자기 새끼를 베란다 아래로 떨어뜨릴만한 고통일지 모른다. 그 뭐신긴가의 말처럼 (아프리카 속담에서 왔다고 했던가, 암튼 고들리에 책에서 봤으)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

 

 

(이렇게 알았으면서도  함께 살때 성현이 구박하고 혼내고 그랬던 것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네 그랴 -_-;;;; 뉴질랜드에서 잘 지내라옹, 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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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naslated woman


 

Women's Studies/ Anthropology/ South America

 

Ruth Beher. 1993 Translated woman: crossing the boder with Esperanza’s story. Beacon press.

 

 >> 번역은 반역이다

   오래전 이탈리아 사람들은 번역은 반역이다”이라는 말로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어 옮기는 일의 난감함을 토로했다. (권용선2003:5) 이 난감함은 언어들 간의 변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문자로 쓰여진 텍스트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일, 오감을 통해 감각되는 것을 지각하는 일, 대화를 나누고 정서를 교감하는 일 또한 번역(translation)에 포함된다.(Ibid., 5) 하나의 문장을 읽어내는 데에 무수한 각주와 해석과 설명이 동원되는 것처럼, 인간은 누구나 외부와 만날 때 그 나름의 경험과 지식과 취향을 개입시킨다. 공통감각은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 그래서 번역은, 서로 다른 것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불통과 불화의 선 뿐만 아니라 소통과 화해의 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반역의 작업이다. (Ibid., 5) 

 

이 책은 에스페란자와 베하가 나누었던 대화, 번역, 그리고 반역에 대한 글이다.



   I. 에스페란자 이야기, 그녀의 구술사

 

   내가 동네 아줌마들에게 처음 들었던 에스페란자는 남편의 눈을 멀게 할 만큼 독하고 사납고 거칠고, 몰염치의 아성으로 굳어져 있는 그런 아줌마였다. 동네 사람들은 그녀를 '마녀'라고 불렀다.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의 그림 속에 나온 그 인디언 여자를 떠올렸다.

   우리는 1985년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의 작고 허름한 집에서 나는 민트향의 냄새를 맡으며 역시 작고 허름한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말이다. 때로는 지겹고 잠이 쏟아지고 황당해서 후딱 깨기도하면서 수많은 밤을, 몇 년간 지속되었던(1990년 초까지) 그 무수한 밤을 그렇게 지새웠다. 에스페란자는 내가 얼마나 열심히 귀 기울이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귀를 기울인다고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진짜로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이다.

 

   에스페란자의 이야기는, 말들은 끊어지고 반복된다. 처음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컬러퍼플(The Color Purple)의 주인공 씰리를 떠올렸다.

   "아빠는 엄마를 마구 팼어. 다섯 살 땐가 여섯 살 땐가의 기억인데 우리들 보는 앞에서 엄마 머리채를 끌고나와 마구 발로 찼어. 엄마를 마체테(machete)로 패고 나서 마마가 널 부러지면 우리들을 팼어. 아빠가 때리고 나서 집을 나가면 마마는 우리들에게 이야기를 늘어놓았어.

나는 마마가 겪었던 삶을 기억해, 그것은 바로 인디언 여자들의 깜깜한 삶이었어. (black life)"

 

   에스페란자 역시 인디언 여자들의 깜깜한 삶을 살게 된다.

 "나는 울 엄마처럼 남편한테 마체테로 머리를 맞았어. 그 놈은 취해서 울 엄마를 남편도 버리고 도망간 창녀 같은 년, 너도 니 엄마랑 똑 같은 년이라고 했어맞는 순간 핫, 했어. 피가 바닥으로 흘렀어. 아이를 꼭 안고 있었어. 그 때 나는 울었어. 그 때 맞은 곳이 여전히 뜨거워. 아직도 코라제(coraje, 화)를 느끼면 그 곳이 불 붙는 것처럼 아파, 너무 아파."  나는 에스페란자의 머리와 이마에 여전히 남아있는 흉터를 기억한다.

 

   II. Literary Wetback (미국에 불법입국하는 멕시코 인을 경멸적으로 칭하는 용어)

 

    II-1. 실제세계 

   

   “재현은 재현되는 주체에 대한 폭력을 포함하는 작업이다.” 

    사이드(Said)

   

   멕시코의 작은 집에서 풍기는 민트 향의 냄새를 맡으며 식탁 넘어 손을 꼽을 수 없을 만큼의 밤을 보냈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신식민주의가 만들어 낸 국제적 노동 분업 안에서, 그 정치적 자장 안에서 우리는 한치도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 에스페란자도,나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문화를 번역하는 작업은 세 살난 내 아들 가브리엘이 멕시코의 다섯 살 배기 동네 애들보다 더 발육상태가 좋다는 현실에서 미끄러질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행상 다니면서 이것 저것 얻어먹고 남긴 음식 받아오는 나를 보고 거지라고 해. 하지만 자기, 내가 너한테서 뭘 빼앗았어?"

   그녀의 행상을 따라 나선 날 아침, 에스페란자는 내게 이렇게 물었다. 그 날 거리를 나란히 걷는 우리들만큼 기묘하게 보이는 것도 없었다. 레이밴 선글라스에 카메라 가방을 들고 스웨터를 입은 미국여성과 인디언 복장에 앞치마를 두르고 어깨에 넝마 같은 바구니를 이고 가는 에스페란자. 사람들은 우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우리가 에스페란자네 식탁에서 백 만번의 대화를 하고 그 시간을 공유한다고 해도 여기는 실제세계였다. 인종적, 계급적 경계가 우리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우리는 단지 함께 나란히 걷는 것만으로도 그 거리에서 조용히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환상일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나를 타고 여기저기의 경계를 넘겠지만 실제의 그녀는 국경선에서 저지당할 것이다. 혹은 고작 해야 미국의 미등록 불법가내 노동자로 비참하게 국경을 넘어야 할 것이다. 에스페란자는 책을 통해 자신(self)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될 저기에서 멕시코 사람들이 얼마나 혹독하게 취급당하고 또 얼마나 비참하게 삶을 살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었던 수많은 밤, 아직도 가물가물해지지 않는 기억 속의 그 밤들을 통해 경계를 넘었다고 믿었다면, 에스페란자, 그것은 기만일까?

 

   II-2. 여기, 그리고 저기

 

   “동네 여자들한테는 말하지마에스페란자가 간곡히 이야기했다.

   “저 곳 (over there)에서만 영어로 출판될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저 곳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 같아요?”  얼떨결에 에스페란자의 의견을 묻는다.

   “재미없을 거야, 별로 와 닿는 이야기가 아니야 그런 말이 있잖아.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심장이 있어도 못 느끼는 거 (eyes that don’t see, heart that doesn’t feel)”

   “왜 동네 아줌마들한테 그렇게 비밀로 해야 해요?”

  “나는 멕시코 사람들이 미국에 건너가 몸을 팔아 먹고 사는 것처럼, 여기서 말을 판 거야. 여기서는 어디서도 쓸데 없는 말들을 풀어서, 이런 이야기 거기서는 못 구하는 거잖아. 그런 말들을 판 거야.”

 

   III-3. 진실 혹은 거짓

 

   에스페란자가 있는 사실 그대로를 이야기 했는지는 나도 모르고 며느리도 모른다. 아마 극적인 사건을 더 강조했을 것이고 자신의 섹슈얼리티 같은 민감한 문제는 두루뭉술하게 넘어갔으며 어떤 사건은 부풀렸을 수도 있다. 그녀는 자신의 섹슈얼리티, 관계, 욕망 보다는 그녀의 고통, 그녀가 당한 물리적 폭력, 그리고 그녀의 분노, 종교적 관념이나 의례 등이 더 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이미 그녀에  의해 한 꺼풀 걸러진 삶에 관한 것이다.

   에누리없이 말하자면, 삶에 진실된버전 같은 것은 없다. (there is no true verstion of a life, after all) 그저 삶에 대해서, 삶의 주변을 서성이는 이야기만이 존재할 뿐이다.(There are only stories told about and around a life)

    내가 에스페란자 이야기를 믿느냐고? 내 교육적 배경을 업고서 책이 출간된다면 그녀의 이야기는 진짜가 되겠지.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녀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는 묻혀질 것이다. 에스페란자와 나는 동네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사람들이 잠든 후 그녀의 작은 식탁에 모였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나에게 해 준 이야기는 다른세상의 사람들에게 보여지기위한 버전의 이야기일 뿐인가?

   에스페란자의 이야기는 생애사(life history) 인가 그저 이야기(life story) 인가? 논픽션인가 아니며 픽션에 해당하는가?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스페인어를 그대로 사용해 historia 라고 칭할 것이다. Historia는 히스토리와 스토리의 경계를 유동적으로 넘나드는 단어이다.

 

   III-4. 보이는 대상, 보는 주체 (타자화)

 

   페미니즘의 이론화는 분명히 민족지적 기술을 재고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의의가 있다. 그것은 정체성이나 자기/타자 관계의 역사적, 정치적인 구축을 문제로 삼는다. (마커스)

 

   아더 문비 (Arthur Munby)라는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은 자신의 하녀였던 한나쿨윅 (Hannah Cullwick)천한일들을 하는 것을 지켜보고 그녀의 사진을 찍고 그녀의 일기를 읽어보는 것을 즐겼다. 그녀는 일기장에 자신의 이야기를 적었는데 이는 그의 주인의 뜻에 따라 쓰기 시작한 것이었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문자가 없는여성들의 이야기를 구술사라는 이름으로 정리해갔지만 그들이 우리 시선(gaze)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것, 그들이 기꺼이 보여지는 주체로서 역할 했다는 사실은 많이 간과된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아더 문비의 작업을 도돌이표하고 있는 것일까?

  로잘도는(Renato Rosaldo) 인류학자들은 생애사를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것으로 상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했다. 나는 그의 말을 곱씹으며, ‘문자없는 여성들 앞에 녹음기를 들이대면서 그들의 삶에 대해서 진짜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를 물었다. 인간이 고통을 느끼고 표현하고 인정하고 공감하는 행위는 그 사회의 권력관계로부터 자유롭지 않다.(정희진 2002:54) 고통을 보는 작업, 그들의 고통을 느끼는 작업, 그리고 자기와 타자 관계의 구축하는 작업은 보이는 대상과 보는 주체 사이의 정치학을 포함한다.

 

   더 사랑하는 사람처럼 보여지는사람이 더 상처받는다.

   그래서 타자화되는 존재들은 상처 받기 쉬운 위치에 놓이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주체는 견고한 위치에서 그들을 재단한다. 나는 바라보는 민족지 학자이고 에스페란자는 나의 시선에 의해서 타자화되는 존재이다. 나는 내 콤마드레, 에스페란자의 historia를 내게 반사해 내 자신의 삶으로 돌아오는 통로를 만들었다.

   이야기를 통해 다른 여성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 자아와 타아와 섞인다는 것은, 말만큼 멋진 작업은 아니다. 특히 다른 세계에 속한 여성들이 함께 작업하는 것은 그만큼의 불협화음을 포함하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인류학은 이제 온전히 이러한 불협화음을 껴안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이름없는 페미니즘과 너무 이름을 가진 나의 페미니즘 사이에서, 나는 이제 에스페란자가 아니라 나를 번역(translating)한다.

 

   III. 에스페란자, 희망

  

    그 시절, 온갖 매체에서 베를린 장면이 무너지고 있었다.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자료를 정리하고 있을 때, 사회주의 국가에 살던 사람들이 서구의 자동차와 아파트를 사탕 가게에서 알록달록한 사탕들을 쳐다보는 아이들처럼 바라보는 사진이 뉴욕타임즈를 장식했다. 하지만 멕시코에서는 국경을 넘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미국에서 사용된 일회용 기저귀가 시장에서 새 기저귀로 팔리고, 사람들은 쉬쉬하면서 저기에서 온 산업페기물이 싸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살아있는 시체’ (living dead)라고 불렀다.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선이 전쟁터처럼 되어가고 있었고, 불법으로 미국에 침입한 외부인(illegal aliens)에 대한 기사가 넘쳐 났다고, 나는 그 시절을 그렇게 기억한다.

   당시 남편과 나는 현지조사를 위해 국경을 넘을 때 달러를 건네면서 관광객이라고 말했다. 멕시코로 들어갈 때 솔직하게 신원을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많은 일들을 요구하는지 알게 되면서 체득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우리가 사실은 관광객이 아닐까 의심한다. 학계적인 관광객, 말이다. (academic tourist)

 

   이 책은 1991 5월에서 8월 사이에 쓰였다. 엉덩이에 땀띠가 날만큼 책상 앞에 앉아있는 동안 얼마나 에스페란자네 식탁을 그리워했는지 모른다. 그 해 9월 출판을 준비했고, 11월 에스페란자에게서 한 장의 편지를 받았다.

콤마드레, 멕시코에서 나와 보냈던 시간이 헛되지 않기를 바래요. 당신이 멕시코에 다시 올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게 그 책이 팔렸으면 해요. 내 이야기를 번역할 수 있는 권한은 당신에게 있습니다.”

 

   부디 이 이야기가 불법 외부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의 목소리로 읽혀지길 바란다. 또한 멕시코 남성들의 '원초적 가부장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그녀의 삶이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에스페란자가 스스로 말하고 있듯이, 자신보다 더 약한 존재인 여성과 아이들 이외에는 어떤 것도 손에 쥘 수 없었던, 절망적인 멕시코 하층 계급 남성들의 '더 약한 자를 향한 폭력'이 구조적인 폭력 속에서 이해될 수 있기를 바란다. 비록 멕시코 남성들의 폭력이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이 책에 나온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에스페란자는 그녀 스스로 만든 가명이다. 에스페란자는 스페인어로 희망을 뜻한다.

 

권용선. 2003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그린비

정희진. 2002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또 하나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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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심기

도자기를 만드는 내 룸메이트 선주가

'흙을 만지는 기분' 어쩌고 저쩌고 했을 때는 별 실감도 안 났는데

난생 처음으로 작은 나무를 땅에 심고 고이고이 물을 주고 탱탱 영글어가는

고추를 보니 마음이, 간질간질해지면서 마구 좋아.

 

반육식주의자라고 떠들고다닌지 (그래야 비자발적으로라도 안 먹을 수 있으니까 -_-;;)

까무룩할만큼 오래되었지만

둘둘치킨 앞에서 '컹컹' 코를 낼름낼름거리고

미리 만들어진 1000원 김밥을 사 먹음시롱 '어쩔 수 없이' 햄을 먹는다고 하면서

(버리는 건 더 큰 환경오염이여, 뭐 이런 식으로)

'구공탄 굴뚝 연기에 향수를 느끼는' 비둘기처럼 햄 향기를 느끼던

나이지만,

 

내가 먹을 고추를 땅에 심고 바라보고 애정을 듬뿍 주고 함께 여름을 보내고 있자니

채식이 더 큰 기쁨!!

 

<체리 고추> 동그란 고추 속에 씨앗이 한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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