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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4/25
    빈곤화와 이주여성(7)
    schua
  2. 2005/04/17
    삶의 한 토막.(11)
    schua
  3. 2005/04/10
    우열(22)
    schua
  4. 2005/04/03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12)
    schua

빈곤화와 이주여성

"빈곤화와 이주여성"....최근의 화두다.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점점 더 가난하게 만들면서 이주하는 인구 중에 여성의 숫자가 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이전부터 가난은 여성의 삶을 구속했다.

 

왜 그런 상황 말이다...집안이 가난해지면 제일 먼저 여자아이의 학업을 중단하는 상황, 혹은 여자아이가 경제활동을 시작하는 상황....그래서 여성은 가난해지고 가난해지고 가난해지는 상황....어쩌면 조금씩 상황은 다르지만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

 

맏이인 엄마가 동생들을 위해서 학업을 중단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그리고 나서도 동생들의 학비를 위해 양계장을 했던 것 처럼 말이다.

 

이번 다큐를 보고 사람들이 이런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정말 엿 같다'(여기서 '아시아'는 가난한 나라의 은유이다. ) ......그리고 여성이주의 특수한 한 형태인 국제결혼으로 들어온 이주여성의 삶을 보면서 좀더 보편적인 질문이 모든이의 가슴속에 남길 바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같이 공유했으면 한다.

 



이제 슬슬 기획서를 구체화시켜야 하는데 민망할 정도로 드라마를 못 만들겠다.

다큐 작업이 픽션 작업과 다른 것이 아마 이 부분이 아닌가 싶다. (물론 내가 보기에는 말이다) 픽션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면 되는 데 (물론 무지 어렵지만 말이다^^;;) 다큐작업은 우선 사건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 감동도 있어야 하고 또 그 안에 입장을 들어내는 메시지도 있어야 한다. 휴우~~~~~~~~~

 

요즘 제일 고민이 되는 부분이 드라마이다. 이야기 하고 싶은 주제는 대략 정리가 된 것 같은데...그 주제를 어떤 사실을 통해서 들어낼까? 요거이 매우 고민이 된다.

 

걱정도 된다. 국제결혼이란 매우 특수한 소재를 통해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을 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정말 이럴때 내공이 필요한 데...내가 그만한 일을 할 수 있을지..

 

어찌 보면 사람의 생활은 다 특수한 어떤 것인데...그 안에서 보편적인 것을 찾기 위해 우린 통계를 사용하기도 하고 다양한 연구를 하는 것은 아닐까....이런 저런 생각이 든다.  

 

기획서를 쓸때 가장 힘든 것이 아직 있지도 않은 상황에 대해 상상하고 소설을 쓰며 내용을 구성하는 것이다. ^^;; 아마도 사전 조사가 모자라서 이런 소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자꾸 마음이 조급하다.

 

잘 할 수 있을까? 자꾸 이런 질문이 머리를 맴돈다. ㅠㅠ

그래서 죽을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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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 토막.

전화만 그렇게 안 받았어도...

 

연행된 이주노동자분들은 출국 전에 최종적으로 화성외국인 보호소에 가게 된다. 들판에 있는 보호소에 가는 길은 항상 황량하다. 말이 보호소인 그곳은 사람을 죄인으로 만든다. 면회실은 이중 아크릴 판으로 막혀 있고 각 아크릴 판마다 다른 방향으로 구멍이 뚫려 있다. 그래서 대부분 말을 할 때 소리를 질러야 한다. 그래도 뭐라 알아 듣기 힘들다. 그도 그럴 것이 옆 면회실과 칸만 쳐저 있지 문이 없어 그쪽도 소리를 질러 대니 면회실에 들어 서면 웅웅 소리에 정신이 아련해지면서 모든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곳에서는 여러가지 감정들이 격하게 진행한다. 얼굴을 봐서 반갑다가 다시 못 볼 것 같아 마음이 울컥했다가 다시 만날 것을 다짐했다가 '한국에서 살았던 삶은 뭔가'란 생각에 이 사회가 싫어진다. 그리고 어떤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단 생각에 무기력해진다. 그래서 그곳에 가지 않으려 했고 한 동안 안 갔다.

 



어제 연행된 지번씨가 전화를 했다. 평소 차분한 성격의 지번씨는 연행된 상황에 보호소에서 전화를 하는 데도 역시나 차분하다. 그래서 그랬나 보다 '어떻해요' 자꾸 그 소리만 나왔다. 보통은 보호소 안에 있으면 답답해지기도 하고 이런 저런 생각에 맘이 많이 약해져서 약한 소리를 하신다. 그게 당연하기도 하고....그러면 난 평소 대로 실 없는 소리를 해가며 웃게 하려고 한다. 그런데 지번씨는 그런다. "집에 가는 건데요. 괜찮아요. 걱정하지 말아요.", "좀 마음이 안좋은 건 그 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들한테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가야해서 그게 좀 그래요." 그 소리를 들으니 더 막막했다. 괜시리 우는 소리를 한다. "어떻해요."

 

전화를 끊고 후회했다. 그렇게 받지 말았어야 했는데 평소 처럼 너스레 떨었어야 했는데 그곳에 있는 사람이 더 막막하지 우째....내가 그랬을까 싶어 더 막막해졌다. 결국 한동안 안가던 보호소에 가야겠다고 맘 먹었다.

 

아침에 모자란 잠을 뒤로 하고 마님님이랑 면회를 갔다.

여전히 담담하다. 반가우신지 약간 얼굴표졍이 밝아지시긴 했는데 별 말도 없이 웃는다. 옆에 있는 다른 분들은 얼굴이 까칠하고 그래서 걱정을 했는데 방에 사람이 많아서 어제 잠을 못 자서 그런단다. 그 분은 농성을 하지 않으신 분이다. 지번씨가 그런다. "농성을 안해서 그런다. 농성때는 한 텐트에 35명 정도도 있었다."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이 웃는다.

 

면회를 마치고 나오는데 지번씨는 당신의 이주를 어떻게 기억할지 궁금해졌다. 평범하게 이주노동자로 살다 농성을 하고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그러다 결국 불법체류란 이유로 연행된 이곳에서의 삶을 어떻게 기억할까?

 

그리고 그 경험은 어떻게 그녀/그를 강제할까?

그녀/그는 본국에 돌아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나는 언젠가 그분들을 다시 만나야겠다.

삶의 한 토막들이 어떻게 다른 토막을 구성하며 어떻게 그녀/그가 속해 있는 사회를 구성하며 영향 받는 지...알고 싶어졌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의 끝을 밀고 온 사람들의 경험을 기록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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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열

* 이 글은 동동이님의 [매맞는 여성] 에 관련된 글입니다.

 

라디카 언니가 전화를 했다. 최근 들어 이런 저런 의욕이 떨어진 언니를 보고 있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언니 목소리는 매우 가라 앉아 있었고 '뭐 하나 물어볼께요'로 말문을 연다. 언니는 가끔 존댓말을 사용한다. 그럴때는 나는 예민해진다. 뭔가 우리 둘의 관계가 아닌 사회적 관계를 언니가 투영하는 것 같아서 긴장하게 된다.

 

언니왈, 언니는 잘 모르는 사람인데, 건너 건너 아는 젊은 네팔 여자가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그녀는 21살 정도 됐는데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온지 3~4개월 정도 됐고 임신을 한 상태인데 남편이 자꾸 때린다는 거다. 전화를 거는 지금 집을 나왔단다. 그런데 그녀는 한국말도 할 줄 모르고 자기가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른단다. 경남 어딘것 같은데 서울에 언니가 있는 곳으로 오고 싶다고 했단다. 언니는 올 수 있겠냐고 하니. 잘 모르겠다고 했단다.

 

나는 빨리 가방이 있는 방으로 가, 가방 안에 있는 자료집을 찾아 이런 저런 전화번호를 불러줬다. 그리고 넘 흥분하지 말라고 언니 걱정하지 말고 다시 전화 오면 여기 전화번호 알려주고 서울에 와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라고 했다.

 

이주여성에 관한 다큐를 준비하면서 이런 저런 자료들을 둘러 보는 중이어서 여성이주관련한 단체 전화번호를 알고 있어 넘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녀가 다시 전화 할 수 있을까? 아니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경남쪽은 비가 오나...비는 피하고 있나? 꼬리에 무는 질문을 억누룰수가 없다.

 



자료조사 때문에 여성관련 인권센터에서 낸 토론회 자료집이며 신문기사들을 보고 있는데 정말 참 다양한 상황에서 맞는 여성들이 있다. 말도 하기 싫다. 맞는 여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고 많은 이들이 연구했고 논문도 수두룩할 거다. 하지만 참 숨막히는 것은 여성들이 처해 있는 상황에는 거대한 먹구름이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자라면서 '여성이기 때문'이란 인식 없이 자랐던 것 같다. 그러다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지 않다란 것을 알게 되면서 참 이상했다. 왜 평등하지 않아. 평등한데 당연히 평등한 존재들인데 그런 막막한 답답함이 있었다. 물론 이런 저런 책도 읽으면서 정말 왜 그러한 사회가 됐는지에 대한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요즘 드는 생각은 내가 정말로 여성이 불평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지 않다. 그저 평등하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올드패션이고 그 사람들이 현실적이지 않고 뭔가 이상한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난 요즘 점점 무게를 느낀다. 역사 안에서 오랜 시간 동안 불평등했던 아니 더 구체적으로 존중 받지 못했던 그래서 항상 열등한 존재로 인식됐던 여성들의 역사가 느껴진다. 그래서 끔찍하다. (하지만 이상하게 답답함은 조금씩 가신다)

 

'여성이 열등하다'라는 이 사회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생각들...

난 가끔 르귄의 <빼앗긴 자들>에서 읽은 한 대목이 생각난다. 그 대목을 읽을 때 난 소설인 줄도 잊고 줄을 쳤다.

(<빼앗긴 자들>에 대해서는  달군님의 [빼앗긴 자들(The dispossessed)] 을 읽어보시길)

 

그는 왜 우주선 안에 여자가 없느냐고 물었고 키모에는 우주 화물선을 움직이는 것은 여자가 할 일이 아니라고 대답했다....키모에가 물었다. [쉐백 박사님, 그쪽 사회에선 여자들이 남자와 완전히 똑같은 취급을 받는다면서요. 사실입니까?] [여자를 남자 취급하다니, 그건 좋은 장비가 있는데도 써먹지 않는 꼴이겠는데요].....키모에는 당황해서 말했다 [아, 아뇨. 성적인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당신은, 그들은...., 그러니까 사회적인 지위 면에서 말입니다][지위라는 건 계급과 같은 건가요?]..........[남자들이 하는 일과 여자들 일 사이에 아무 구분이 없다는 게 정말이냐고요][그야 없지요. 아주 기계적인 데 기반을 두고 노동을 구분하는 군요. 그렇지 않은가요? 사람은 흥미, 재능, 힘에 따라서 일을 선택하오...., 성별이 무슨 상관인가요?][하지만 남자들이 육체적으로 더 강하잖습니까][그야 종종, 넓은 범위로는 그렇기는 하지요. 하지만 기계가 있는데 그게 뭐 중요한가요? 게다가 기계 없이 삽으로 땅을 파거나 등에 짐을 걸머질 때에도, 덩치 큰 남자들이 더 빠르기는 할지 몰라도 여자들이 더 오래 일하잖아요......, 난 종종 내가 여자들만큼 강인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는걸요]키모에는 충격을 받았는지 공손함을 깡그리 잃어버리고 그를 응시했다.[하지만 그런 손실을, 여성적인 것을 다, 우아함이라든가, 그런, 거기다 남성적인 자기 존중을 잃은다면, 아니 당신 일에서 여성들이 동등한 척할 순 없잖습니까? 물리학이나 수학이나 그런 지적인 분야에서요? 자신을 계속 그들 수준으로 낮춰줄 순 없잖아요?].............[그다지 그런 척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카모에][물론 저도 고도로 지적인 여성들을 알기는 합니다. 남자와 똑같이 생각할 수 있는 여자들 말입니다]

 

우열이라는 문제는 우라스의 사회 생활에서 중추적인 일임에 분명했다. 키모에가 스스로를 존중하기 위해 인간 종의 절반을 열등하게 여겨야 한다면, 여자들은 어떻게 스스로를 존중할까. 그들 역시 남자들을 열등하게 간주해야 하는 걸까?

 

난 정말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면서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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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시작해볼까?!

이번에 시작할 작업은 '여성이주'에 대한 것이다.

여성에 관한 것, 너무나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동안 만났던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남성이주노동자이고 그리고 대부분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농후한 사회의 출신들이다 보니 '강고한'(?) 연대의식으로 무장한 나의 카메라를 멈추게 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때면 '내가 모잘라서 그런 거다' 하면서 마음을 달래기도 했지만...힘든 시기를 보낸 것은 확실하다. 그 와중에서도 내가 작업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은 여성이주노동자의 관계 때문이다. 같이 하면 즐겁고 끊임 없이 줘야 하는 관계가 아닌 서로 나눌 수 있는 관계, 가끔은 비숫한 고민을 나눌 수도 있고...정말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이 되는 관계였다. 그래서 입버릇 처럼 '난 다음에는 꼭 여성이주노동자에 대한 다큐작업을 할거야.'하고 다녔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여성이주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준비하는 와중에 이주여성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급하게 제작을 부탁하는 전화였다.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들어온 한 언니가 임신을 했는데 그 언니의 신원을 보증해줄 남편은 교도소에 있고 배속에 있는 아기의 상태가 안좋다고 그 언니의 상황이 국제결혼한 여성의 한국에서의 어려운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촬영을 의뢰했다.

 

여성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준비하는 와중에 그런 부탁이 오니...어찌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게다가 그 언니가 촬영에 찬성을 했다 하더라도  그런 상황에서 생판 얼굴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와서 자신의 매우 사적인 모습을 촬영하는 것을 그 언니가 받아들일 수 있는지...혹은 그녀의 불행을 좋은 기회다 하면서 촬영을 부탁한 센터를 믿을 수 있는지..그리고 좀더 근복적인 문제인데....그 언니의 고통을 내가 동요 없이 카메라에 담아 낼 수 있는 지....고민이 되었다.

 

그러다 문득 스위스 갈때 봤던 태국여성이 생각났다. 비행기를 태국에서 갈아탔는데 스위스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장소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에 반 이상이 유럽남성과 태국여성 커플이었다. 나이도 대부분 유럽남성은 나이가 많고 태국여성들은 매우 젊거나 혹은 그 남성들 보다는 어려보였다. 난 그 모습을 보는 것이 매우 불쾌했다. 마치 성매매 장면을 현장에서 목격한 것 같아 약간은 화가 났던 것 같다. 그래서 붙들고 뭐라 해야하는데 하는 마음이었던 듯 하다. 계속 불편했던 정신이 결론을 내렸다. 제국주의 커플...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커다란 성매매 굴레 아래에서 오랫동안 숨죽여 살아왔다는.... 

 

여성이주센터에 계신 분을 만나니 그 분 왈, "이주란 상황에서 가정(국제결혼으로 한국에 들어오는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셨다)으로 들어오든 2차 산업으로 들어오든 3차 산업으로 들어오든 다르지 않다고 본국을 떠나서 가족을 먹여살리려고 혹은 미래를 위해서 한국에 들어오는 것은 같은 것이다" 라는 것이다. 다른 분이 이야기해주신 국제결혼 실태는 정말 놀라운 것인데....잘못하면 그 분들에게 누를 끼칠 것 같아 지금은 적지 않겠다. 나중에 나의 생각이 정교히 정리되었을 때 올리도록 하겠다.

 

처음 여성이주노동자에 대한 작업을 하려 했을 때는 여성노동자에 중심이 맞춰졌다.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여성이주노동자들도 같이 겪는다는 것 단지 이주라는 것 때문에 한번 더 차별 당하고 억압 당하고 소외당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여성은 남성중심 사회에서 같은 굴레를 공유하고 그렇기 때문에 연대해야 한다...뭐 그런 류의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글로 쓰니 진부하네요. ^^;;) 그래서 국제결혼해서 이주해온 여성이주분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넘 어렵게 느껴졌다. 그런데 여성이주센터에 계신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서 이주라는 것 안에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것을 들어낼 필요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국제결혼은 여성만이 선택할 수 있는 이주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서글프다.

 

내게 힘들때 위안과 소통으로 편안함을 주었던 이주언니와의 이야기는 어쩌면 사적 다큐가 될 것 같다. 조금씩 조금씩 언니와 나의 관계가 나타나는 촬영을 할 것이다.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우리가 정말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지..성찰 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 

 

하지만 국제결혼으로 들어온 언니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야겠다. 물론 작업을 하다 보면 국제결혼을 해서 들어온 언니들에 대한 이야기만 하지는 않겠지만 이제 조금은 그 언니들과 함께 가정이라는 굴레가 아닌 좀더 넓은 공간에서 즐겁게 이야기하면서 놀고 싶어졌다.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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