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5/11

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11/30
    출근(4)
    schua
  2. 2005/11/23
    펑펑 울다. - 이젠 씩씩해진다.(15)
    schua
  3. 2005/11/05
    호흡 - '안녕 평양'(2)
    schua

출근

참 다양한 공간에서 작업을 했다.

 

처음 영상 작업을 시작할 때는 장비가 없어서 대학로 어딘가에 있었던

영상 편집실에서 한시간에 얼마씩 내면서 20G 하는 컴을 빌려서 20분짜리 영상을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정말 편집 장비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무슨 용기가 있었던지 일을 맡아서 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일이다. 하루에 하나씩 프리미어 기능을 배워가며 영상을 만들어 납품을 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 모르는 사람은 당해낼 수가 없나 보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무섭다.

 

그리고 나서는 옥탑방에서 생활을 하면서 한쪽에 컴을 장만해 놓고 모니터도 없이 데크도 없이 조그만 카메라로 프리뷰하면서 편집을 했었다. 옆에 사람이라도 있을라치면 미안해서 이어폰을 끼고 프리뷰를 했었다. 귀가 아파도 옆에서 괜찮다고 해도 생활과 작업을 동시에 해야 하는 그 공간에 대한 예의 같았다. 그것이....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난 누가 프리뷰를 하면서 미안해 하면서 이어폰을 찾으면 그냥 하라고 한다. 그게 작업실에 대한 예의인 것 같아서. ㅋㅋ ...그렇게 생활과 작업이 분리되어 있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그래도 햇볕이 잘 든다며 좋아했다.

 

그러다 어렵게 방이 두개 있는 공간을 얻었을 때는 신이 났다. 나도 작업실이 생긴 것 같아 우쭐했다. 그래서 잠자는 공간에서 작업하는 방으로 갈 때는 옷도 갈아 입고 가고 정말 오만 '지랄'을 했다. 그래도 역시나 생활하는 공간과 일하는 공간은 분리될 수 없었다. 일을 하다 말고 빨래를 돌리고 청소를 하고 요리를 하고 했으니까.

 

지금? 난 출근을 한다.

얼마전 역시 옥탑이긴 하지만 이젠 명색히 "작업만 하는" 작업실을 마련하였다. 재정적으로 부담이 되기도 하고 내가 이 공간을 잘 꾸려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아직 정리가 안돼서 정신이 없는 공간이지만 아침에 출근해 올때면 기분이 좋다. 출근을 해서 보일러를 올리고 컴을 키고 라디오를 키고 창문 열어 환기도 시키고 그리고 일을 시작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별거 아닌 공간일지 몰라도 내겐 참 여러 공간을 거쳐 온 작업실이다. 이제 이곳에서 작업만을 위한 짓꺼리를 하겠지. 벌써 한쪽면에는 전지를 두개 붙여 놨다. 이주여성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적을거다. 이 작업실이 어떤 모습이 될 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 다큐에 대한 사랑(닭살스럽다 @@;;)과 고민이 풀풀 넘쳐 나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으아...

 

이제 이주여성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어여 기획서 써야 하는데...기획서를 쓰시오~~~슈아!!!

 

 

<공지>

곧 연말 파티를 열까 합니다.

날짜는 작업실을 같이 쓰고 있는 분과 상의를 해야 합니다.

곧 공지하지요.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펑펑 울다. - 이젠 씩씩해진다.

오늘로 임신 14주가 되었다.

어제 오늘 몸이 안좋더니 조금씩 갈색혈이 나온다.

 

임신 6주 정도쯤에 그런 일이 있었다.

의사는 그저 조심하라고 될 수 있으면 누워 있으라고 했다.

위험한 시기이니 긴장되고 걱정되고 우선 하던 일들을 대폭 줄이고

한달 정도는 집에 들어 앉았다.

무섭고 어렵더라...그래도 그래야 한다니 그렇게 했다.

맨날 이리 저리 뛰어다니던 사람이 가만히 있는 것도 힘들고

그 시간에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경험이 있었던 일이 아니니

어렵더라. 그래도 그럭 저럭 한달을 보내고 나니

어느정도 적응이 된 듯 싶었다.

몸도 편하고 마음도 편했다.

그런데 그만 갈색혈이 또 나왔다.

겁도 나고 해서 병원에 갔다.

 

 



병원은 갈 때 마다 놀랍다.

처음에는 임신을 알게 돼서 놀랬고

그 다음에는 아기 심장 소리를 들어서 놀랬고

그 다음에는 아기가 2주 새 3배가 커서 놀랬고

(그 전 주에는 0.7cm,  이주 후에는 2.2cm) 

그 다음에는 아기가 사람 모양을 해서 놀랬다.

(그 전까지는 아메바 모양이었는데...)

그런데 이번에는 아기가 막 움직인다. 이리 저리...

그래서 놀랬다.

 

그런데 갈색혈이 좀 보인다는 말에 의사는

"조심하셔야겠네요. 될 수 있으면 누워계시는 시간을 늘리세요." 한다.

 

아기가 막 움직인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점심을 먹고

다음 일정을 위해 가는 데 자꾸 의사의 말이 생각 나면서 막 서러워지는 거다.

'얼마나 더 조심해야 하나?' 한 숨이 나온다.

하고 싶은 일은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임신 12주만 지나면 안정기에 들어가니 그때까지만 조심하자 맘을 먹었는데

그리고 나면 일을 조금씩 할 수 있겠구나 했는데

아직도 조심하란 소릴 듣는다.

속상하다.

 

다음 일정은 촬영이었다.

임신 때문에 지체되고 있는

이주여성 다큐의 인트로로 쓸까해서 촬영을 하기로 했다.

이래 저래 걱정이 되고

도대체 얼만큼 움직여야 괜찮은지 몰라

후배에게 촬영을 맞겼다.

후배도 급히 맞겨진 촬영에 불편한가 보다.

열심히 이렇게 저렇게 촬영하지만 익숙하지도 않은 카메라를 가지고

촬영하는 게 영 불편해 보인다.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역시나 속상하다.

 

집에 돌아와서는 한동안 멍 하니 앉아 있었다.

내가 지금 뭘 해야 하고 뭘 할 수 있을까

머리속으로 수백번을 대차 대조표를 만들고 지우고 한다.

 

그러다 눈물이 터졌다.

일이 많아서 몸이 너무 힘들어도 차라리 힘든 걸 택했던 것 같다.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몸이 힘들면 힘든 만큼 쾌감도 있었던 것 같다.

가끔 내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넘는다는 생각에 기뻤던 기억도 있다.

잘하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뭔가 열심히 하는 것 만큼은 그런 대로 잘해서

내가 조금씩 확장된다는 생각에 기뻐했던 기억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걸 못한다니...

막 목이 메인다.

 

눈물이 난다.

소리 없이 나오던 눈물이 어느새 엉엉 소리를 낸다.

에라모르겠다. 울자.

앞에서 해줄 것이 없어 같이 눈물만 흘리고 있는

같이 사시는 분(?)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래도 울자.  

 

골이 아플 때까지 울고 나니

이젠 뱃속에 있는 애기에게도 미안해진다.

그래...

이젠 씩씩해지고 싶어졌다.

그래 씩씩해지자.

 

도대체 그 많은 여자들이 어떻게 아기를 낳고 기르고

자기 일을 하는지...난 도대체 그동안 모르고 살았다.

 

이제는 좀 알아봐야겠다.

 

그래 씩씩해진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호흡 - '안녕 평양'

schua님의 [독립다큐멘터리에 흠뻑 빠져 보아요-인디다큐페스티발에 영화 보러 갑시다] 에 관련된 글.

내겐 다큐멘터리는 보약인거 같다.

이래 저래 복잡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가득한 주말을 보내고 다큐멘터리를 보러 다니다 보니 그만 기분이 너무 좋아져 살맛이 났다. 정말...살맛.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살맛이 내게 있어서.

같은 상황에 있는 나의 남편(참 어색한 단어당)은 한동안 분에 못이겨 일도 손에 안잡힌다고 힘들어 했으니.

 

여하튼 그렇게 다큐멘터리에 빠져서

열심히 보긴했지만 사실 화요일부터 보기 시작했으니 그리 많은 편수의 다큐를 본 것은 아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마더 데런의 모험', '나의 선택, 가족', '잊혀진 여전사', '안녕 평양'이 전부이니 말이다. 아쉬운 일이다. 보고 싶은 영화가 더 있었는데...아쉽고 또 아쉽다. 한독협에 프리뷰용 테이프라도 있으면 한번 빌릴 수 있는지 물어봐서 볼 수 있는 것을 찾아 봐야 할 것 같다.

 

아쉽게 봤지만 한 작품 마다 얻은 것은 참 다양하다.

다큐를 처음 시작할 때는 정신이 없어서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자 점점 이런 마음이 스물스물 들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를 하고 싶다고 마음 먹은 이후로는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없는데 정말 묘한 두려움이 나를 감쌌던 기억이 있다. 난 어쩔줄 몰라하면서 고민하다 무작정 다큐멘터리를 보기로 맘 먹었다. 이런 저런 다큐멘터리를 하루에 세네편씩 봤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다큐멘터리를 보고 온 날은 무엇으로 꽉 찬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 하나도 부러울 것이 없었고 가슴속에는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보다는 해보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던 기억이 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심히 의기소침했는데

이렇게 다큐를 보고 나니 역시 이전의 기분이 든다. 모든 다큐멘터리는 내겐 정말 보약이다. 너무 아쉬운 다큐멘터리는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게 하고 너무 좋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면 나도 저렇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하면서 잘해봐야지하는 생각이 든다.



'안녕, 평양'이란 영화를 보면서 참 많이 좋았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다큐를 보면서 이렇게 만들었구나. 구성은 어떻구나. 조명은. 저건 어떻게 했을까 등등을 생각하게 하는데 이 영화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정말 영화에 흡뻑 빠져든 나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통일에 대한 영화인가 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은 그저 배경일 뿐이다.

다큐를 통해서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는가 가 내가 가지고 있는 다큐의 가치이다. 

아무리 좋은 다큐라 하더라도 다큐를 만드는 사람이 주인공을 혹은 그 안의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단 생각이 들면 이상하게 불편하고 '나쁘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이 다큐는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보여주었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그리고 예의바르게 말이다.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사람들은 가끔 연출이 없는 줄 안다.

하지만 극영화와는 다르지만 다큐멘터리는 그것만의 연출이 있다. 어떤 이야기를 넣을까 뺄까? 어디쯤 그 이야기를 넣을까? 얼마만큼 보여줄까? 그리고 그걸 어떻게 보여줄까? 등이 연출이다.

 

난 가끔 성급한 감독을 만날때가 있다. 그러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내내 호흡이 가파르고 불편하고 짜증이 난다. 나 역시 성격이 급해서 내가 만든 다큐 중에서도 어떤 부분은 창피하리만치 성급한 모습을 볼때가 있다. 그럴때는 심장이 떨린다. ㅡ.ㅡ

 

'안녕 평양'을 보면서 배려를 받는단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가 아닌 배려, 단지 연출이 아닌 배려,

다른때 같았으면 그냥 연출을 잘했네 했을텐데 이 영화를 보면서는 내가 배려 받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영화로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해줘서 고맙고 배려 받아서 고맙다.

 

다큐를 만들다 보면 다급해질때가 있다. 이야기상 혹은 주제상 어쨋든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는데 못 들었을 때 특히 그런데 그러면 자꾸 그 질문을 하게 된다. 정말 조심한다고는 하지만 너무 다급한 나머지 그 질문이 그 사람에게 어떻게 느껴질지 잘 가늠이 안될때가 있다. 집에 와서 촬영한 것을 다시 보면서 나의 천박한 질문을 듣게 되면 얼굴이 화끈거려 그 질문을 한 게 내가 아니었으면 아니길 바래 본다.

 

근데 이 다큐에서도 보는 내내 드는 질문이 있었다.

나 같으면 아버지에게 몇번을 물었을 그 질문을 감독은 그저 담아두기만 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점점 그 질문이 아버지에겐 어떤 의미인지 알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 질문은 더 절실히 목구멍으로 터져나오려 했다.

그리고 포기할 즈음...그녀는 살며시 던진다.

그리고 아버지는 솔직하게 하지만 아픔을 그리고 세월을 담아 이야기해준다.

정말 고맙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배려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이런 다큐를 만들고 싶다.

보는 이도 배려 하면서 나눌 수 있는, 내가 느낀 것을 나눌 수 있는,

그래서 다 같이 고마워하고 아파하고 사는 것에 힘을 얻을 수 있는..

꼭 그렇게 하고 싶다.

 

이렇게 힘을 얻었으니 그래 봐야지.

이래서 다큐멘터리는 내게 보약이다.

 

 

 

-----------------------------------------------------------

  

안녕 평양

 

감독 양영희의 아버지는 조총련 고위간부였고 아버지는 세 아들 모두를 북송선에 태워 보낼 만큼 열렬한 친북주의자이다. 어릴 적부터 감독은 그런 아버지가 원망스러웠고 어느새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자유주의자가 되어 있다. 이제 노약해진 아버지는 딸에게 용돈을 타 써야하고 자전거 타고 동네한바퀴 도는 일이 유일한 취미일 뿐이다. 그렇지만 딸이 미국이나 일본남자와 사귀는 건 절대 용납 못한다. 국적까지 한국으로 옮긴 딸 역시 여전히 갖가지 선물들을 챙겨 오빠네 가족이 사는 평양을 방문한다.
‘안녕 평양’은 감독 자신의 얄궂은 가족이야기와 함께 우리의 암울한 현대사를 오버랩시키며 관객들에게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찬찬히 보여준다. 슬픈 이산가족의 이야기지만 영화는 의외로 따뜻하다. 이 영화의 따뜻함은 조건없는 가족애 혹은 단순한 휴머니즘이 아니라 원망스런 대상에 최근접하며 화해를 만들어나가는 카메라의 힘과 역사에 대한 감독의 긍정적 시선에서 나오는 것 같다. 물론 딸의 카메라 앞에서 내복바람으로 흐트러진 모습들을 보여주는 아버지 그리고 억척스러우면서도 낙천성을 잃지 않을 것 같은 어머니 역시 감독의 그런 시선과 상응하고 있다. 담담한듯 하지만 유심히 보면 스크린엔 가족과 조국에 뜨거운 사랑, 분노와 안타까움들이 뒤엉킨채 표현되고 있다. 또 절제된 나레이션속엔 영화 외적 변수들을 고려한 감독의 세심한 배려가 있다.  
양영희 감독이 사는 오사카의 허름한 집은 한반도 그 자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흩어져 사는 감독의 가족들은 반도의 남과 북에 갈리워 살고 있는 우리자신의 모습에 다름아니다,
그 전체적 인상은 복잡하지만 대단히 희망적이다.
[김동원/집행위원장]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