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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3/13
    고마움...(5)
    schua
  2. 2006/03/10
    시작...(7)
    schua
  3. 2006/03/08
    이런 저런.(14)
    schua
  4. 2006/03/02
    압박(8)
    schua
  5. 2006/02/24
    쥐어짜기와 성찰(4)
    schua
  6. 2006/02/22
    네가지의 묘미?!(4)
    schua
  7. 2006/02/20
    다시 한주를 시작하며..(6)
    schua
  8. 2006/02/13
    어이 없으려나?(1)
    schua
  9. 2006/02/09
    고립 혹은 배려(8)
    schua
  10. 2006/02/03
    '졸작의 행진'을 위하여(이어서)(7)
    schua

고마움...

다큐멘터리 작업은...특히나 독립 다큐멘터리 작업은 노가다이다.

대부분 혼자서 기획, 촬영, 편집을 하니 그럴만도 하다.

가끔 선배들이랑 그런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노가다야.'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이리 저리 뛰어 다니며 촬영하고

화장실도 못가고 두세시간을 꼬박 앉아 촬영한 테이프를 확인하면서 프리뷰하고

구성에 맞게 캡쳐하면서 꼼짝 못하고......

그 과정 안에는 창작의 고통도 있지만 성실하게 몸을 움직여서 시간을 투자해야만 

얻어지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우린 작업을 아르~ 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 노동하는 거라고 이야기하면서 웃는다.

 

오늘도 그 육체노동 중의 하나인 캡쳐를 하는데...

머릿 속에 있는 것들이 주르륵 파일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어림도 없다. 혹시나 놓친 것이 있나 다시 촬영한 것을 살피면서 캡쳐를 한다.

 

캡쳐하는 일은 반복 작업일수도 있고 단순한 작업일 수도 있다.

촬영한 테이프에서 오케이 컷을 고르고 구성에 맞는 부분을 찾아 캡쳐를 하고...

계속해서 그 일을 반복하고...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어 좋다.

이번 작업에는 너무 게으른 촬영을 해서 한심하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을 본다.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의 숨결을 본다.

그 순간 그녀가 나를 믿었던 안 믿었던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에 심취해서 정신 없이 이야기를 했던

그 안에서 그녀들이 겪었던 일들을 듣고 있자면

살아 남아서 지금 카메라 앞에 있는 그녀들이 너무나 대단하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나눠줘서 고맙다.

 

그녀들이 단순히 이주여성이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보여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도 안되는 국제결혼 과정 속에서 사회적 안정망이 없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위험을

한 개인이 고스란히 온 몸으로 겪으면서 상처 받고 힘겨웠지만

그 어려움을 당당히 겪어온 단단한 존재임을 세상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워낙에 이주여성의 이미지는 피해자, 혹은 피해를 입히는 존재이다.

그녀도 우리와 같은 입체적인 인간이란 것을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잘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한심한 촬영본을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 본다.

그래야 내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눠준 그녀들에게

고마움을 겨우 표현할 수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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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보라돌이님의 [머리를 감다] 에 관련된 글.

 

 

보라돌이님 글을 보면서 항상 함께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미안하다.

많이 훌륭한 분이랑 생각을 하면서 난 참 작다 싶었다.

그러다 문득 이글에는 트랙백을 걸어도 되겠다 싶어 이렇게 남긴다.

힘내세요. 훌륭한 존재가 옆에 있잖아요. ^^

 

 

 

오늘....

 

캡쳐를 시작했다.

캡쳐는 편집의 시작이다.

테이프에 있는 영상들을 파일로 만드는 작업이다.

이제 시작이다. 

 

편집을 하면서 부족한 촬영분에 한심해 하고

다급한 마음에 카메라 들고 나가 보충 촬영도 하겠지만

여하튼 이제 시작이다.

 

그런데

자궁속에 있는 아기가 엄청나게 움직인다.

지도 편집하는 것이 좋은가?

ㅋㅋ...

 

며칠전 병원에서 초음파로 보는데 코랑 입이 보였다.

그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상당히 구체적인 모습이었다.

난 "사람이네~~" 했다. 

같이 간 같이 사는 사람은 "그럼 사람이지. 알람소리 듣고 깨는데" 한다.

 

아침에 알람 소리가 울리면 깨어나서는 엄청나게 꼼지락 거린다.

게으름을 피울수가 없다.

우리집에서 제일 부지런한 사람이다.

 

말도 안통하고 모습도 모르는 생명체에게 이런 느낌이 드는 것...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알엠님이 이전에 그러더라. 작업을 하다 보면 아이가 힘이 많이 된다고..

그때는 정말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대략...무슨 말인지 알게 되는 듯도 싶다.

 

보라돌이님도 그렇게 힘내시길...

 

부끄럽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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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schua님의 [압박] 에 관련된 글.

달군님의 [메종 드 히미코] 에 관련된 글.


 

1.

메종 드 히미코는 사실 약간 실망..

시오리의 성장드라마라는 말에 동감하게 되는...

히미코는 정말 우아하더라는..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젊은이는 너무 이쁜데 연기는 아쉽다는..

그리고 루비에 대한 처사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결국 다시 가족에게 넘기는...그런 방식은 진정 그 공동체가 새로운 준거집단으로서의 공동체인지 의심가게 한다는...감독이 너무 쉽게 혹은 현실적으로 기존의 틀인 가족을 이용했다는 그래서 새로운 공동체의 모델 때문에 감동 받기를 기대하면서 간 슈아는 너무 실망하면서 돌아왔다는...

 

그리고 황당한 일...

영화관에서 통화를 하는 아저씨를 만났다는..

한 50대 정도 되는 아저씨, 영화 상영 중 통화를 하더라는...

너무 어이가 없어 헉헉 대하는 슈아에게

같이 간 같이 사는 사람이 그 나이가 되면 자신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그런 감각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음..

그럴수도 있겠구나 싶었지만 너무 어이가 없었다는...

 

2.

전화가 걸려왔다.

"왜 징징거리고 지랄이야....."  첫마디가 시원한 욕이다.

힘들다고 징징거린 포스트를 보고 전화를 했나 보다.

덩치는 산만한 녀석이 정말 맘은 봄날 햇살 마냥 따땃하다.

촬영본이 얼마나 되길래 그려냐고 묻는다. 촬영분이 적어도 느낌이 오면 된다고

지는 2년 촬영했는데 테이프는 좀 돼도 느낌이 오는 게 없다고 오히려 오버다.

치이....고마워~~~친구!

한두해 하고 말 것도 아닌데...참 징징되지.^^;;

 

어쩌겠어.

정말 객관적으로 한심해도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이번주에는 대략 캡쳐를 시작할까 하는데...도대체 이야기가 될까 심난하지만..

글고 함 시도하려고 했던 애니메이션 작업은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얘기를 듣고

좌절하고 있지만......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

 

그래도 몇번은 여기에 더 칭얼 될 것 같다는...^^;;

그때 마다 전화해서 욕해줄꺼야? ㅋㅋ 그럼 고맙지~~~

 

3.

요 며칠 새 어질어질..

주변에서는 철분이 모자라서 그럴 거라고 하고

담당의는 임신을 하면 달팽이관에 이상이 생길 수 있으니 두고 보자고 하고..

여하튼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질어질...왠지 소녀적 로망이 이루어진 느낌.

하지만 역시 몸이 안좋은 것은 힘든 일....

 

품질 좋은 철분으로는 등심이 최고라고 해서 카드질해서 등심을 반근 샀다.

아침에 한 조각 구워 먹었는데,

엄마 왈 "아침에 고기 구워 먹는 사람은 강호동하고 너 밖에 없을꺼라고..."

의무감에 고기를 먹는다는 것이 좀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등심은 너무 비싸다. 오늘은 순대를 사 먹어야 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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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박

전화를 끊고 심호흡을 크게 한번 내쉰다.

그래야 살 것 같다.

 

어제 밤 잠도 설치면서 촬영 일정을 머리 속으로 잡았는데

그 중 하나가 어그러진다. 휴우~~

 

벌써 3월이다. 이제 슬슬 편집에 들어가야 한다.

촬영한 분량은 턱 없이 적다.

이걸로 작품을 할 수 있을까 싶다.

한심하단 생각까지 들기 시작한다.

 

집중력이 떨어졌단 생각도 들고...

피가 제대로 돌지 않아 다리가 저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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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어짜기와 성찰

 

 

1.

 

구성안을 확인하고 있다.

 

물론 구성안은 있다. 처음 작업을 시작할때 만든 기획서에 있지만

 

이내 촬영을 하다 보면 그 안에 있는 이야기 보다는 좀더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다시 구성안 검토하고 보충 촬영을 해야 한다.

 

다큐의 매력은 이렇게 매번 고민하면서 살 수 있는 거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 매번 할때 마다 쉬운 일이 아니다.

 

 

2.

 

열심히 촬영본을 확인하고 이런 저런 의미를 붙이지만....

 

에피소드가 별로 없다. 그저 있다면 내가 다큐를 만들고 있다 정도....

 

아쉽다. 언니들을 인터뷰 하면서 느꼈던 이런 저러한 감회를 전달하고 싶은데

 

인터뷰로만으로 될까?

 

 

3.

 

사적인 공간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신뢰를 쌓아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시간이 턱 없이 부족했다.

 

너무 많은 주인공을 설정했나 싶어 고민도 된다.

 

에피소드가 없는 것을 매꾸기 위해서 이런 저런 촬영을 하겠지만

 

객관적 조건이 안되는 것은 애니메이션을 사용할까 하는 생각도 한다.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걱정도 되고 또 새로운 것이니까 뭔가 설레이기도 한다.

 

잘해보고 싶은데 언니들의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 그런 애니였으면 좋겠다.

 

 

4.

 

글고 결정적으로 사생활이 더 드러나려면 남편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는 데

 

그게 영 자신이 없다.

 

다행이 내가 만난 언니들은 남편들이 다들 언니를 존중하는 분들인 거 같다.

 

그래도 자신들의 삶이 드러나는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나올지....

 

이전에 여성관련 다큐를 할 때도 남편들은 자신들이 나오는 것을 극구 사양했다.

 

그리고 당사자인 언니들도 남편들 눈치를 봤고....

 

만약 반대였다면...남편이 주인공이었다면 다른 양상이지 않았을까 싶다.

 

여하튼 남편들을 만나야 하는 일도 남은 것 같다.

 

그들이 마치 언니들의 보호자인양 행세하면 난 참 벨이 꼬일 것 같은데...

 

그래도 언니들은 위해서 잘해야 겠지.

 

 

 

5. 

 

이런 저런 도전을 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내가 드러나야 한다는 것인데....

 

작업을 하면서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의 그 생각들과 느낌들을 잘 끄집어 내어 공유할 수 있을지....

 

나를 성찰하는 다큐가 될 것 같다.

 

 

 

쉽지가 않다.

매번 그렇듯이.

 

이번에는 얼마나 쥐어짤 수 있을까?

나를 꼭꼭 쥐어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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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지의 묘미?!

시와님의 [내 인생의 네가지] 에 관련된 글.

Rory님의 [왜 하필 네 개일까나?] 에 관련된 글.

 

 

왜 하필 네 개일까 막 생각해 밨는데 몰겠다.

하지만 하라면 해야지. ^^;;

 



 

Four Jobs I’ve had in my life(일생에 가졌던 네 개의 직업)

 

-IT업체 인터넷팀장

(카메라 사려고 들어간 회사, 정보통신운동이 이럴때 유용할줄이야. 경력사원으로 월급 많이 받았다. 놀랬다. 그래도 카메라 살돈 모으고 나왔다. 4개월)

-방송국 영상취재

(대략 3년은 한 것 같다. 미친 듯이 촬영했다. 한달에 하루 정도 쉬고 일할 때도 있었던듯. 그때는 촬영을 잘하는 줄 알았는데...지금 생각하면 * 팔린다.)

-미디어 강사 (재미나다. 아이들을 교육할때는 정말 내가 늙었나 싶기도 하고. 전문강좌를 할 때는 공부도 되고 해서 좋다.)

-다큐멘터리 감독 (평생하고 싶고 할 수 밖에 없는 직업이다. 좋다. "잘은 못해요. 하지만 하고 열심히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  영화 '아는여자'의 도둑의 억양으로..^^)

 

 

I can watch over and over(몇 번이나 다시 볼 수 있는 네 가지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우후~~ 좋다. 안토니아스와 그녀를 둘러싼 삶들의 평화로움과 따뜻함, 당당함...그 분위기가 좋아서 보고 보고 또 보고 싶은데 어데서 영화를 구할 수 있을 지 몰겠다.)-미션 임파서블(웃기는데 첩보영화 좋아한다. 뭔가 명쾌한 것이 좋아서..그리고 주변에 오래 세워놓은 차안에 있는 사람들을 의심한다. 짭새일꺼야. 등등.)-칠레전투(칠레전투 중 민중권력인가 그 부분을 좋아한다. 정말 혁명시기의 교육은 어떤 교육보다 훌륭한듯...자신의 삶을 스스로 바꿀 수 있는 역동성....으흐흐...그래서 지금 베네슈엘라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부럽다.)-노팅힐(영국식 로맨틱 코미디 좋다. 나오는 캐릭터들이 성숙해서 보면 배려 받고 있단 생각이 든다.)그리고도 참 많네....힘들군요. 네가지를 골라 쓰는 것은...그래도 좋아하는 영화의 양태는 반영된 듯...ㅋㅋ
Four places I have lived(살았던 적이 있는 네 곳의 장소)

-남산 주변 용산

(백일까지, 당시 아빤 택시기사를 했는데 강도를 만나 사고를 당하시고 겨우 살아나셨다고..그때 그 사건이 기사에도 났었다고. 그 이후 치료비로 없는 돈 더 없어지고 경기도 산골로 이사.)

-딸기원

(백일 이후 대학때까지, 부모님은 아직도 거그 사신다.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곳인데 행정구역으로는 따로 이름이 있는데 동네사람들이 그렇게 부른다. 이름이 이뻐서 좋다.)

-관악구, 영등포구 일대

(보증금 50만원에서 월세 20만원 부터 시작한 생활, 8년)

-동작구

(결혼해서 옮겨온 곳. 집 앞에 공원이 있어 좋다. 서울시내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오래 오래 살고 싶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사를 가야겠지. 우리가 살기엔 너무 비싸다.)

 


Four TV shows I love to watch(좋아하는 네 가지 TV 프로그램)

TV를 안 본지 대략 2년은 넘은 듯....라디오라면 얼마든지...

 

내 맘대로 라디오로 대체해 보면...

 

-손석희의 시선집중, 표준 FM 오전 6시부터 8시까지

(너무 이른 시간에 해서 자주 듣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가끔 너무 숨가쁘게 진행을 해서 나도 같이 숨가빠지지만 그래도 그즈음 사람들이 어떤 것에 관심 있어 하는 지 알 수 있어 좋고. 특유의 깔끔한 진행이 좋다. )

-여성시대, 표준 FM 오전 9시 부터 11시까지

(현재 진행자들이 맘에 든다. 송승환, 양희은.)

-오지혜의 문화속으로, 표준 FM 일요일 오전 11부터 한시간

(텔레비전으로 친다면 '출발비디오여행'과 같은 존재, 일요일에 느긋하게 듣고 있으면 가끔 독립영화 소식도 해준다.)

-김미화의 세계는 지금 그리고 우리는, 표준 FM 오후 6시 부터 8시까지

(세계 소식도 좋아하고 김미화 특유의 매력이 있다. 한번 들어보시라. 반하게 된다.)

 

 

 
Four places I have been on vacation(휴가 중 갔었던 네 곳의 장소)

-제주도

(같이 사는 사람과 처음 갔을 때가 제일 좋았던 듯. 그때는 한달에 50만원으로 월세 내고 생활비 하고 그리고 적금도 넣었던 시절인데 어찌하여 20만원이 더 생겼다. 미친 듯이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갔는데 제주도 공항에 도착해서도 우리가 정말 제주도에 온거야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던 기억. 돈이 없어 맛난 것도 못 사먹고  지냈지만 그래도 넘 좋았다는...)

-스페인의 한 해변

(긴 해변이었는데 사람도 별로 없고...대략 유럽인들이 썬탠을 하고 있었던 듯. 하지만 수영을 좋아하는 나와 같이 사는 사람. 열심히 수영을 했다. 나는 수영모 쓰고 아무것도 안 입고 수영을 했다는...물론 물에 들어가서 살짝 벋었지만...아무도 안쳐다 보고...글고 뭐랄까 자유로움...ㅋㅋ...다시 꼭 해보리라~~)

-파리

(하루 종일 한 24km를 걸으면서 파리 시내를 돌아다녔다. 지금도 파리 지도에 갔던 곳이 표시 되어 있다. 같이 사는 사람이랑 신나게 걸었는데 개선문, 몽마르뜨 언덕, 라데빵스까지...휴우...한 도시를 알려면 걸어서 다녀야 한단 생각이 든다.)

-한강 자전거 도로

(작년 여름, 휴가기간이긴 한데 결혼 전이라 준비로 정신도 없고 이런 저런 일이 많아서 어딜 갈 수 없었다. 결국 둘이서 자전거로 여의도에서 출발해서 엄마아빠 집인 구리시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다. 좋더라. 한 6시간 걸렸던 듯. 중간에 허기져서 갈비도 먹고...한 30km 정도...시원한 바람과 함께~~할만하다. 하고 나면 오히려 몸이 개운해진다.)

 

Four websites I visit daily(매일 방문하는 네 개의 웹싸이트)

참세상

진보블로그

다음

네이버


Four of my favorite foods(가장 좋아하는 네 가지 음식)

-같이 사는 사람이 해주는 돼지고기 김치 찌개 (라디카 언니도 한번 먹어 보고는 볼 때 마다 이야기했던. 정성이 중요하다.)

-외할머니가 만들어주는 호박떡 (설이면 어김 없이 해서 준다. 단호박, 팥, 콩 등이 들어간 떡인데 참 맛나다.)

-내 맘대로 해물 샤브샤브 (싸고 만들기 쉽고 먹고 나면 속이 편안하다. 요즘은 입맛이 변해서 소고기 샤브샤브가 더 땡긴다. 임신 때문이란다. )

-엄마표 된장찌개 (정말 넣은 것 없이 맛나다. 우선은 짠 듯한데 먹다 보면 바닥이 보인다는...요상한 마법을 가진 찌개이다.)


Four places I would rather be right now(지금 있고 싶은 네 곳의 장소)
-아프리카 (거기 가면 다른 데는 안가고 싶어진다고 하더라. 문정현감독이...)

-태국의 조그만 섬(수영이나 실컷 하고 싶다)

-베네슈엘라 (확인하고 싶어)

-집 앞 공원. 봄이 오면.

 

Four bloggers I’m tagging(태그를 넘기는 네 명의 블로거)

뻐꾸기

산오리

네오

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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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주를 시작하며..

다시 한주를 시작한다.

 

저번주에 할 일들이 수첩에 빼곡히 적혀 있다.

 

근데 별로 못했다. 마음이 급하다.

 

그래서 그랬는지 어제밤에는 작업과 관련한 꿈을 꾸었다.

 

꿈에서는 답답한 마음에 여기 전화를 하고 결국 담배까지 하나 물었다. 꿈에.

 

아기가 꿈틀거려서 결국 두 목음 빨고 끊었다.

 

웃긴다.

 

 

 

오늘 아침에는 맘이 급해서 그랬는지 몸 상태가 별로 안좋았는데

 

일찍 나왔다. 일찍 나왔으면 일을 해야 하는데 블로그를 이리 다니고 있다.

 

다행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글고 시와의 글에서 나의 치열했던 한때를 보면서

 

오히려 기운을 내고 있다.

 

 

그 동안 얼마나 열심히 했나?

 

열심히 하고 있지만 그래도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짜투리 시간을 잘 사용하고 절실히 해야 한다.

 

난 나를 잘 안다. 뭐든 더뎌서 남보다 열심히 해야 남들만큼 한다. ^^

 

부지런 하게 일하는 것 밖에 없다.

 

부지런히. 부지런히. 부지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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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없으려나?

봄이 오기는 오는 것 같다.

집 앞 공원 벤치에 할아버지가 앉아 계시니 말이다.

그 할아버지는 겨울이 오기 전까지 항상 그 자리에 앉아 계시던 분이다.

그분이 다시 나오신 게다.

봄이 왔다. 헤헤....

 

봄이 오는 마당에 설날 이야기를 하기가 좀 머쓱하지만

이 느낌을 적어 놓지 않는다면 워낙 이것 저것 잘 잊어버리는 나의 정신 상태로는

또 알멩이는 잊어버리고 느낌만 남아 뭔지 모를 께림찍함으로 불편할 것 같다.

 



얼마전 일이다.

한 친구랑 이야기를 하다 설날 이야기가 나왔다. 

그 친구는 결혼한지 대략 일년은 안된 친구다, 

그러니 이번이 결혼하고 첫 설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 친구왈 "설날에 집에 가고 싶어서 혼났어."

여기서 집은 그 친구가 여자니까 친정이다.

그 말이 가슴에 콕 박혔다.

그리고는 설날에 시댁에 가서 뭔가 불편했던 마음의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너무 철 없고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다.

 

결혼 했으니 당연히 명절에 가는 거지 그걸 몰랐나?

그걸 모르고 결혼했어? 그걸 이제서야 알았어?

 

자연스럽게 이런 저런 물음들이 들려 오지만

그리고 그걸 모를만치 순진하지도 않지만

 

나도 별스럽게 식구들이랑 친한 것도 아니니

굳이 나의 식구들이 그리운 것도 아니지만

왠지 외할머니가 해주시던 떡이 생각나고

격이 없이 자연스럽게 음식을 해 먹고

잠이 오면 잠자고 먹고 잡으면 뭐든 누구든 음식을 하고

그러던 분위기가 그저 막 그리웠다.

 

시댁에서 나는 며느리로서 당연히 음식을 하고 당연히 상을 차리고

당연히 상을 치우고 당연히 남자들이 식사를 하길 기다렸다.

그 자리를 치우면 먹어야 한다. 그리고는 당연히 설겆이를 한다.

난 그 '당연히'가 불편하다.

당연히 누군가는 노동을 엄청나게 하는 데 당연히 누군가는 그걸 누리기만 한다.

 

그리고 같이 사는 사람의 식구들이 이런 저런 과거의 재미난 이야기를 하며 웃을 때

그저 '그런 일도 있었어요'하며 마짱구 정도 칠뿐이다.

참 외롭다. 

 

난 시어머니가 안쓰럽다.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에 맏며느리로 이런 저런 일을 해내는 모습을 보면

이제 나이도 드셨는데 엄마 생각이 나면서 안쓰럽다. 여성연대. 뭐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명절에 일찍 시댁에 가려 한다.

하지만 그런 나의 행동은 그저 며느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아 이 오해의 끝 없는 반복......

 

얼마전에 결혼한 후배는

시댁에서 설날, 추석 명절 중 한때는 시댁에 한때는 친정을 가라고 했단다.

휴우~~~ 부럽다. 근데 생각해 보면 합리적인 처사이다.

물론 명절이라고 시댁이나 친정을 안가도 되면 더 좋겠지만 굳이 가야 한다면

따로 따로 갈수는 없으니 이렇게 한곳으로 몰아가면 좋을 듯 하다.

 

그리고 앞의 친구에게 그 후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추진해보자고 다짐을 했다.

 

그런데 과연 될까?

같이 사는 사람은 5대 장손이고

나름 합리적인 그 사람의 부모님은

할아버지의 가부장적인 분위기에 편입되어 살고 계신다.

가끔 어떻게 이런 가족분위기에서 이런 사람이 나올 수 있나 심히 궁금해질때가 있다.

 

나는 과연 이야기라도 꺼낼 수 있을까?

 

막연하기만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꼭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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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 혹은 배려

어제는 아침부터 험난했다.

 

유난히 추운 날씨 덕에 중무장을 하고는 전철역보다는 조금 가차이 있는 버스 정거장에 가서 버스를 탔다. 임신을 하고 나서는 될 수 있으면 전철을 탄다. 훨씬 덜 흔들리기 때문에 안그래도 나온 배 때문에 몸에 힘이 들어가는 데 그런 몸을 릴렉스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전철역까지는 길이 경사진데다가 눈으로 미끄럽고 바람도 많이 부는 바람골이어서 험난하다. 그래서 어제는 그냥 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그놈의 버스가 오늘따라 왜 이리 사람도 많고 흔들리고 자리도 안나던지 앉아 있던 모든 사람이 원망스럽고 서운했다.

 

그렇게 힘들게 갔는데 오전 회의는 한 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겨우 시작했다. 회의는 나름대로 재미나게 했다. 3월에 하는 다큐멘터리 강좌 기획회의 였는데 정말 해보고 싶은 강좌여서 32주 정도 되는 임신시기에 해도 괜찮을까 걱정도 했지만 결국 하기로 결정했다. 기획자들도 걱정을 했는데 '걱정하는 마음에 임신한 사람을 격리시켜서는 안된다. 그녀가 결정할 수 있게 하자' 고 결정했다며 내게 바톤을 넘겼다. 그렇게 까지 마음을 읽어주는 것이 고마웠다. 임신 이후에는 회의 가는 것도 약간 꺼려졌던 일이 있다. 특히나 흡연자가 많은 회의에 가면 괜시리 눈치가 보인다. 나 때문에 사람들이 불편한 것은 아닌가 반가워하지도 않을 텐데 내가 가도 되나 등등....그런 생각이 들면 외롭다. 그런데 오히려 나를 배려하고 기회까지 주다니 그때는 제대로 말을 못했지만 임신한 나를 제대로 인정해 주는 것 같았다. 그저 임신한 사람도 아닌 그저 감독인 나도 아닌 임신한 감독으로 날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 같아 고마웠다. 세상엔 그렇게 고마운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회의는 즐거웠지만 배가 고팠다. 엇저녁 싸놓았던 도시락도 그만 냉장고에 넣고 그냥 나왔다. 배는 슬슬 고프고 인터뷰 약속을 해 놓은 곳으로 발길을 돌기며 허기진 배를 이것 저것으로 채우면서 갔다. 배고프면 왜 그리 서러운지....날은 또 왜 이리 추운지....날이 추워서 감기에 걸리는 경우는 드문데 이상하게 목이 메캐한 것이 아프기 시작했다.

 

같이 인터뷰 장소로 가기로 한 사람이 또 한시간 늦었다.

오늘은 정말 기다리는 날인가 보다. 맘을 먹고 투덜투덜 모드 돌입...

이주언니와 인터뷰 약속을 했는데 어찌 하여 내가 그 언니에게는 선생님이 되는데

그만 다른 한글교실 선생님도 초대가 되었다. 인터뷰 일정과 집들이가 섞이고 말았다.

이주언니는 맛난 음식으로 우리를 맞았고 그 마음이 너무 좋아서 난 배고픈 배를 달랬다. 언니의 시어머니의 대략 몰상식한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분노했다. 근데 도저히 못듣겠다.

 

임신을 하면 왜 갈비뼈가 그렇게 아픈 것일까? 왜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어떻게 임신한 그 많은 사람들은 이런 아픔을 견디며 지낼 수 있을까? 무기력해진다. 아기집이 커지면서 점점 갈비뼈를 누르고 올라온다. 어제는 길까지 미끄러워서 임산부에게는 매우 위험한 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온 몸에 힘을 이빠이 주고 안 넘어지려고 몸을 앞으로 구부리고 다녔더니 그놈의 갈비뼈는 더더더 아팠다. 그리고 아까 부터 슬슬 올라오던 감기기운도 본격적으로 진행되려고 하고  결국 난 이야기를 듣다 말고 쓰러져 잤다. 속으로는 계속 '인터뷰 해야 하는 데' 하면서......

 

그리고는 그제 밤에 임산부 운동 강좌 시간이 어정쩡해서 촬영 일정이 안나온다며 투덜 되는 내게 "운동에 너무 욕심 부리지 말고 차라리 촬영하고 스트레스 받지 말아"라고 말한 같이 사는 사람을 원망했다. 괜시리 운동하지 말라고 해서 괜시리 나의 작업욕망을 자극해서(안그래도 강박적인데) 오늘 나오는 바람에 몸이 안좋아지고 아파지면 이번주 남은 날을 날릴 수도 있는데...원망 원망스러웠다. -.- 

 

시간은 휘리릭 지나 저녁시간이 다 되었다. 촬영을 해주러 온 조연출은 다음 약속 시간이 얼마 안남았다고 눈치를 주고..ㅠ.ㅠ

과연 오늘 인터뷰를 하는 것이 맞나? 빨리 조연출도 회의에 가게 하고 나도 집에 가서 쉬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고민이 되긴 했지만....한번 촬영 기회를 놓치면 다시 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뼈져린 경험을 몇번 했기에 그냥 밀고 나가는 것이 좋을 듯 했다. (촬영 한번 하는 것이 이렇게 비장하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알려나? ^^;;)

'다음에 할까?'하는 나의 질문에 다행히 조연출도 그냥 하자고 하고 이주언니도 별 불편해 하지 않았다. 고마운 일이지.

그렇게 인터뷰를 했다. 여자를 인터뷰 하면 참 좋다. 하고 나면 힘을 얻는다고 해야 하나?

살아가는 것이 다 똑같고 다 그만큼 힘들고 다들 힘내서 산다는 생각이 들어서 힘이 난다. 어제도 그랬다. 그래서 너무나 다행이다라고 마음을 쓸어 내렸다.

그냥 인터뷰를 접고 갔으면 마음에 준비를 한 언니에게고 미안했을 것이고

촬영을 하러 온 조연출에게도 미안했을 것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작업을 진행하지 못한 스스로가 넘 괴로웠을 것이다.

 

지쳤지만 그래도 행복하게 지하철을 탔다.

노약자 좌석이 비었다. 망설일 수 없다. 오늘은...

 

저번에 임신한 이주언니와 함께 노약자 석에 앉은 적이 있었다.

이전에는 한번도 앉은 적이 없어서 너무 눈치가 보이고 불편해서 몸은 편했지만

마음이 불편해서 오히려 아기에게 안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찰라에...

어느 노신사가 오더니 위압적인 태도로 노약자석표시를 가르키며 '이거 안보여. 이거' 한다. 후우...올것이 왔구나. '임산부인데요'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이야기를 하는데, 옆에서 이주언니가 '임신 너무 힘들어요' 하고 크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 노신사는 어정쩡하게 서 있는데 옆에 있던 아주머니들이 '임신했나 보구만, 힘들겠네'한다. 결국 그 노신사는 물러갔다. 그 이후에도 맘 편안하게 가지는 못했지만, 옆에 있는 이주언니가 넘 든든했다.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 언니가 너무 멋지고 든든해서 마구 그냥 좋았다. 그리고 어딘지 당당하지 못하고 움추려 드는 내가 부끄럽고 반성됐다.

 

그런데 어제도 그런 일이 있었다. 내 옆에 앉았던 남자분이 어느새 내 옆에 서 계셨던 할아버지를 가르키며 '노인이 서 있으면 젊은 사람이 일어서야지'하는 것이 아닌가? 휴우~~ 앞에 서 있는 조연출이 아저씨를 째려봤다. 다른 때 같으면 억을해하면서도 한마디 못하고 그냥 앉아 있거나 내리거나 했는데....당당했던 이주 언니도 생각 나고 든든한 조연출도 있어서 "아저씨, 임산부거든요. 다 사정이 있어서 그런 것인데 무작정 그렇게 이야기하시면 안돼죠"했다. 그랬더니 그 아저씨 암말 없다. 휴우~~

 

대부분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아저씨들이다. 위압적인 그 분위기가 너무 싫다.

사정이 있겠지 생각하면 안되나? 가끔은 젊은 남자가 버스나 지하철에서 앉아 있으면 너무 밉다. 푸후후....그래도 속으로 생각한다. '뭔가 힘든 일이 있을꺼야.' 하고 미움을 달래본다. 임신하면서 정말 세상의 배려에 대해 밀도 있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여자에 대한 사회적 배제와 격리에 대해서도 밀도 있게 생각하게 된다.

세상은 젊은 남자들 중심으로 배치되고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쫄지 말자. 

스스로 쫄고 스스로 고립시키지 말지어다.

좀더 당당하고 좀더 소통하고 싶다. 그래야 서로를 잘 이해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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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작의 행진'을 위하여(이어서)

알엠님의 [좋은 사람] 에 관련된 글.

내가 고 3때 처음으로 골방이긴 하지만 내 방이 생겼다.

직사각형으로 길다란 방이였다. 

한 쪽면에 책상이 들어가면 그쪽면이 꽉찼고 나머지 공간에 겨우 누울 수 있는 그런 방이었다. 

그래도 너무 기뻤다. 나만의 공간이 생긴 것이 왠지 어른이 됐다는 의미로 여겨져서 뿌듯했다.

나만의 공간을 꾸미는 것에 재미도 들렸던 거 가다.

그 동안 그렸던 그림이며 이런 저런 포스터를 벽에 여기 저기 붙여 놓았다. ^^

거기엔 맥가이버 사진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내 방에도 가전제품이 들어 왔으니 그게 TV였다.

14인치 정도 되는 TV였는데, 어릴 적 부터 토요명화를 열심히 봤던 나로서는 내 방에 나의 TV가 생긴다니 꿈만 같은 일이었다. 물론 TV는 그때 마침 시작한 TV과외를 보라고 놓아준 것이긴 했지만 ....

난 TV과외를 조금 보다가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려 그 시간대에 하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이런 저런 역사에 대한 것, 자연에 대한 것, 사회적 이슈에 대한 것 등 참 다양했는데 닥치는 대로 봤던 거 같다. 그러다 아....이렇게도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나도 저런 거 만들어 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왠지 다큐멘터리를 만들면 행복해질 것 같았다.



대학에 들어가자 마자 다큐멘터리를 공부할 수 있는 강좌를 듣기도 하고 거기서 TV에서 보는 다큐가 아닌 다른 종류의 다큐가 있다는 것을 알고 다큐를 통해 그 동안 알고 있었던 것들은 반쪽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신나게 공부를 했다. 거기서 이전에 포스트로 썼던 '첫사랑' 다큐도 만났다. 그렇게 다큐에 대해 알아갔지만 정작 만드는 것은 엄두가 나질 않았다.

 

꿈은 쉽게 이룰 수 없었다.

 

겉으론 활발하지만 난 속으로 참 많이도 곪아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을 긍정하는 방법을 몰라 끙끙댔고 자신감이 없어서 항상 어딘가로 숨고만 싶었다. 그러면서도 이런 저런 일들을 계속 했다. 하지만 그속에서 행복하지는 않았다. 인간관계도 참 척박했다.

 

그러다 정보통신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것도 '5년만 있으면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볼 수 있어, 그건 말이지 너만의 채널을 가질 수 있단 뜻이야'란 친구의 꾐에 빠져서 말이다. 지금이야 넘 당연한 것이지만...당시가 95년이니 그 친구의 멘트는 좀 오버였다. 그렇게 정보통신운동을 시작했지만 참 어려웠다. 여전히 온라인의 세계에 익숙하지 못한 나인데 그 당시는 어떻겠는가?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하루하루가 참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 사무실을 자주 오는 비슷한 또래의 영상활동가가 오는 날은 난 더 초라해졌다. 

그녀는 항상 바쁘게 사무실에 왔다 일을 보고는 휭하니 가곤 했다. 그녀는 너무 당당했고 지금 제작하는 영상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는 했지만 그저 멋지게만 보였다. 그녀가 그렇게 멋지게 보일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항상 카메라 가방을 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저거 하고 싶은데.....난 내 꿈에서 너무 멀리 온 것이 아닌가? ' 

참 많이 부럽고 슬펐다. 

 

그러다 아는 친구가 중국으로 여행을 가는데 그걸 다큐로 만들고 싶다고 내게 기획을 맞아달라며 부탁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그런 부탁을 한 친구가 너무 고마웠다.

몸 담고 있는 단체에서는 나의 나이를 생각하라며 새로운 영역을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했다. 그때 나의 나이 28정도였다. 틀린말은 아니지만 그때는 그게 마지막 기회처럼 느껴졌다. 내꿈을 향해 가는 ...

 

이래 저래 그 작업은 미완성으로 끝났지만 난 그 일을 통해서 내 안에 있는 욕망이 더 이상 덥어둘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때 나는 참 맑았다. 한가지 욕망 밖에 없었다. 다큐를 하자. 사람들고 만나고 사람들과 호흡하고 그렇게 다큐멘터리를 만들자. 당장 마음 속에서는 하나의 생각만 났다. 

'카메라를 사자!' 푸훗...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나지만 당시는 참 절박했던 것 같다.

그래서 생전 처음 회사를 들어가 돈을 벌었다. 딱 카메라 살 돈만 벌자. 그런 맘으로 일을했다. 그리고 딱 그 돈

을 벌어 나왔다. 그돈으로 카메라를 사고는 닦고 닦고 또 닦았다. 그 카메라가 PD100 이었는데 이름도 지었다. "카멜" 이걸 이름으로 부르면 '카멜아'가 된다. 소리로는 '카메라' ㅋㅋ...그러면서 어찌나 좋아했던지.

 

회사를 나오기 전에 강좌를 하나 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배울 것이 없는 그런 강좌였다. 그래도 그때는 강좌를 들으러 가는 길이 너무 좋았다. 그 길은 걸어가기에는 어둡고 추운 길이었는데 그길만 들어서면 이상하게 가슴이 뛰고 꿈을 다 이룬 것 마냥 벅찼다. 

 

무대뽀도 그런 무대뽀가 있을까?

참 운도 좋았던 것이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아는 선배가 동영상 컨텐츠 만드는 것을 부탁했다.

먹고 사는 것이 그때 만큼 쉽게 풀렸던 적이 없는 것 같다. ^^

프리미어를 조금 배워서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긴다.) 그걸로 막 산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하루 종일 주물럭 거리면서 편집해서 겨우 납품을 하곤 했다. 

그래도 그때는 그게 먹혔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이제 일을 시작해야 하는 데 정말 내가 갈 곳은 없었다.

영상 동아리 출신도 아니었고 푸른영상이며 노뉴단, 서영집이 있었지만

새내기로 시작하기엔 너무 나이가 많은 날 선뜩 받아 줄 곳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받아달라고 말할 그럴 용기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 방송국에 아는 사람이 생겼다.

인터넷 한 카페에 가입했는데 그곳에서 알게된 사람들이다.

그때는 뭐가 그렇게 신났는지 아는 것도 하나도 없으면서 사람들을 막 만나고 다녔다.

그래도 기뻤다. 그저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는 영역으로 들어왔다는 것만으로

세상이 참 좋아보였다.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던 중에 촬영을 하러 가지 않겠냐고 전화가 왔다. 그것도 뉴스 꼭지를 위해서...떨렸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게 그러겠다고 했다. 그렇게 방송국에서 일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촬영하러 나간 날,

같이 나간 기자에게 내가 초보자인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꽤나 노력했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카메라를 돌렸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난 자괴감에 빠졌다.

도대체 뭘 찍었는지 생각이 안났다. 너무 막막했다. 너무 쪽팔려서 얼굴을 들수가 없었다.겨우 방송국에 돌아와서 내게 전화를 해 일을 시킨 선배를 찾아갔다. 그리고 일을 시켰으니 책임지라고 땡깡을 부렸다. 그때 그 선배가 했던 말은 지금도 명언이다. "촬영할 때는 딱 두가지만 생각해. 앵글과 사이즈. 그것의 조합이야. 그 다음이 컨텐츠고..."

그리고 자꾸 하면 는다고도 했다. 카메라를 들고 자신감이 없을 때 그만한 조언도 없다. 지금도 가끔 강좌를 할 때 그말을 써먹는다. 그때 그말은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든 나의 마음을 쫙 펴준 말이었다. ㅋㅋ

 

방송국은 거대한 공장이다. 각기 맡은 일을 하면 되고 그 일을 제대로 못한다 싶으면 다음날 연락이 안온다. 그 첫날 내가 그 선배에게 했던 행동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거다. 어디 뭘 모른다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 앞에서 할 수 있나. 방송국에서...그곳은 정글이고 살아남아야 하는 공간이었다. 

 

 

임산부 체조하러 가야 한다...다음 이야기는 갔다 와서..........

^__________________^

 

 

으흐....이 뒷 부분이 다 날라갔다.

다시 힘내서 마무리를!

 

방송국에서 좋은 사람들도 만났다. 운이 좋았던 게지.

얼마나 개차반 같은 사람들이 많은 곳인데.

다행히 카메라를 든 여자는 별로 없었고 아이들과 여성에 관한 아이템이 오면

언제나 내 차지였다. 조금씩 카메라를 드는 것이 힘들지 않았고 또 나름대로의 내 장점도 발견하면서 일하는 게 즐거웠다. 하지만 그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 열심히 A를 찍어 가면 편집 후에는 B가 되어 방송 되는 모습을 보면서 오래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곳에서 참 얄굿은 것을 많이도 배웠다. 돈도 벌었고.

 

그러다 여성노조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하지만 작업에 대한 미련 때문에 그리 활발히 활동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거기서 좋은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독립다큐멘터리를 하고 있던 친구였는데 그 친구와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경험이 많은 친구는 얄굿은 경험만 있는 내게 별 불편한 표도 내지 않고 같이 일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친구 덕분이 아닌가 싶다. 그때는 그저 작업을 한다는 것에 정신이 없어서 별말 못했지만 고맙다는 이야기를 해야 할 듯. 친구~~고마워~~

 

왜 이런 이야기를 주저리 주저리 할까?

시작할 때의 나의 무대뽀를 자랑하고 싶어서?

아니 어쩌면 졸작이 될 것이 뻔한 이번 다큐를 생각하면서

그래도 지금은 작업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내 마음을 다지는 것이다.

 

그때는 한가지만 있었다.

하자.

다른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고 그럴 능력이 되지도 못했다.

난 참 이해력이 느리고 머리로 보다는 마음으로 느끼고 겪어야 겨우 이해한다.

 

그래서 다행이다.

내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머리로 '아,,,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고'해서 다큐를 만들 수 없으니 말이다.

다른 사람의 경험을 같이 마음으로 경험하면서 그들의 경험을 나누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걸 나눠 주고 싶다. 그렇게 소통하고 싶다. 다른 사람의 경험은 그게 즐거운 경험이든 힘든 경험이든 다 나에게로 오면 아프다. 이렇게 힘든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마음이 짠하다. 어쩌면 사는 것 자체가 참 아픈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아픈 마음은 다 마찬가지 일테지. 아닌척 이런 저런 것들을 갔다 붙여도 말이다. 이런 마음을 어떻게 하면 잘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하고 고민하다 보면 처음에는 안보이던 이런 저런 것들이 조금씩 보이고 그러면서 나도 성장할 수 있다.

어쩜 난 소통을 잘 못하는 사람인지 모른다. 너무 자기 안에 갇혀 있어서 남의 안에 뭐가 있는지 느끼기에 모자란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다행이다. 다큐멘터리가 있어서.

 

남을 느끼고 그걸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그 과정을 겪으면서 난 확장되고 사람들과 만나 소통한다.

 

'소재로 다큐를 한다.' 그건 아마 진짜 다큐가 아닐 것 같다.

겪고 경험하고 이애하고 소통하기 위해 고민하고 고민하고 방바닥을 구르면서 또 고민하고 그렇게 해서 겨우 만들어 내는 것이 다큐인데.....그걸 어찌 소재만 좋다고 할 수 있을까?

 

이번 작업?

졸작이 되겠지. 정말 졸작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졸작이면 어떠랴. 계속 다큐멘터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다행이 아닐까?

 

요즘 심한 딜레마에 빠졌다.

아기를 만나는 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정말 아기가 힘이 될 것 같다.

아기를 만나면 고맙다고 몇번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일 욕심 많은 엄마를 만나 고생했는데 고맙다는 말을 꼭 해야 겠다.

그런데 아기를 만나기 전에 작업을 마쳐야 한다.

작업을 졸작이 되더라도 마치려면 시간이 부족하다. 턱 없이 부족하다.

이야기를 여기서 하나만 팔까? 아니면 넓혀야 하나?

이상은 멀고 현실은 가깝다.

고민에 고민은 꼬리를 문다.

시간을 막 붙들고 늘어지고 싶다.

그래서 괴롭다. 어잉.....

 

그래도 해보자.

'졸작의 행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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