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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억.

Daybreak_님의 [대학 입학.] 에 관련된 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 만우절에는 짜장면을 반 전체가 시켜서 그 시간 선생님한테 옴팡 뒤집어 씌우는 것이 유행이었다. 해도 안 들어오는 복도에서 생활하는 여고생들에게 일 년에 딱 두 번 있는 해방일, 그건 만우절과 대청소 날이었다.

(우리학교는 대청소 날에 바닥을 물청소를 했는데, 모든 일을 까르르까르르 하는 여고생들로서는 그 날의 목표는 청소가 아니라 체육복 입고 물바닥을 뛰어다니며 선생님들한테 양동이 물을 퍼부어대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그러려니 하고 짜장면 값을 내주기도 했고, 더러는 화를 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들도 우리가 일 년에 단 두 번만 그렇게 말도 안 되는 행위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심하게 나무라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날은 상황이 좀 달랐다.



우리가 짜장면을 시킨 시간은 우리 담임이 수업을 하는 시간이었다.

악명높게 깐깐했던 여선생. 우리는 그래도 희망을 갖고 짜장면을 시켰다.

짜장면은 호통과 함께 되돌아 갔고,

우리는 종례시간까지 책상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어야 했다.

잘못이라면 잘못이었지만 억울했다.

그리고 종례시간, 일분단 맨 앞자리부터 차례차례 허벅지를 때리기 시작했다.

끔찍했다. 차라리 빨리 맞기라도 했다면 덜 힘들었겠지만 그 소리를 들으며 책상 위에 앉아 무릎을 꿇고 견디는 건 정말 괴로웠다. 일분단을 거의 다 때렸을 때쯤, 그 여자는 매질을 멈추더니 다시 맨 앞으로 가서 그 애에게 말했다.

 

"넌 꿈이 뭐야."

그 아이는 우물쭈물 거렸다. 잘못 대답하면 회초리가 다시 날아온단 사실을 알았다.

그 여자는 대답을 재촉했다. 아이는 조그맣게 말했다. "요리사요."

그 애의 진짜 꿈이 그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말한 것만은 분명했다. 그건 그 여자가 원하는 답이 아니었고, 그 애는 허벅지를 한 대 더 맞았다.

다른 아이들은, 나를 포함해, 모두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내 꿈, 저 여자에게 진짜 내 꿈을 말해야 하나,

저 여자가 원하는 답은 무엇인가.

 

그 애는 세 번이나 더 답을 해야 했다.

"건축가요."  "변호사요."  "선생님이요."

그리고 그 애는 세 대를 더 맞았다. 눈물을 뚝뚝 흘리자 그 여자가 말했다.

"그럼 무슨 과를 가야 하냐."

그 아이는 울먹거리며 사범대라고 답했고, 그제서야 그 아이는 자리에 앉혀졌다.

 

모두 답을 찾았다.

그 옆에 앉은 아이는 자기가 더욱 놀라서 함께 울며 자기도 사범대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 여자는 어느 대학이냐고 물었고,

우물쭈물 하던 아이가 서울에 있는 어느 대학 이름을 대자,

그녀 특유의 비웃음과 함께 "거기 가고 싶은 애가 이러고 있냐?" 라고 말했다.

 

몇 명이 더 지나가자 대답은 수월해졌다.

지금의 내 상황에서 적당히, 아주 조금만 상향 지원하는 대학과 전공을 대면 되는 것이었다.

내 꿈이라는 것은, 무엇이 되고 싶다거나 어떻게 살고 싶다가 아니라,

어느 대학에 가야 하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공부를 잘 못했다.

마땅히 댈 수 있는 학교는 없었고, 특별히 가고 싶어하던 학과도 없었다.

하지만 그 여자에게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서울 소재에 가장 낮은 점수대일 것 같은 대학에 유아교육과라고 대답했다.

그 여자는 피식 웃더니 나를 앉혔다.

 

벌써 10년 가까이 지난 일이지만,

나는 그 날이 잊혀지지 않는다.

생각보다 너무나 성적이 잘 나와서

예상했던 곳 보다 좋은 대학을 가게 되었을 때, 난 그 여자를 떠올렸다.

이걸로 복수할 수 있겠다 싶었다.

대학을 간 걸로 복수할 수 있겠다 싶은 선생은 그 여자 말고도 몇 더 있었고,

이런 것 따위로 복수할 수 밖에 없는 내가 좀 구차하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굳이 학교를 한 번 찾아갔고,

원서 다시 쓰러 왔나보지? 라는 비아냥 거리는 물음에 더 비아냥거리며 아니오, 제가 좋아하는 선생님 보러왔는데요, 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통쾌하고 더러운 기분이었다.

 

사실 드리머님 글과는 별 상관 없는 얘기 같다.

대학에 전혀 못 갈 것 같던 나는 대학에 가서,

진심으로 행복하고 좋은 순간들이 많았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그런데 어쩐지 저 날의 기억의 찝찔함 때문에 대학 입학이 아주 즐겁지만은 않았던,

그런 쓸데없는 생각이 떠올랐을 뿐이다.

 

드리머님 대학생활 잘 하세요. ^^ (참 뜬금없지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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