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만화영화책 - 2007/05/24 15:48

잊을 수 없는 기억, 그래 잊을 수 없는 기억이지.

동독 출신 작가인 게오르그 바젤리츠는 그림을 거꾸로, 또는 옆으로 눕혀놓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림이 반드시 올곧게 걸려 있을 필요는 없겠지.

가장 확실한 사실은 눕혀놓은 그림이 사람의 집중도를 월등히 향상시킨다는 점이다. 오랜 시간 들여 하나하나 보게 된다.

 

이번 전시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러시아 사회주의 리얼리즘 회화나 사진 등의 이미지를 작가가 다시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예를 들어 본래의 [연단 위의 레닌]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으나,


 

작가가 재해석한 그림은 이런 것.

새로이 작성된 그림은 다양한 의미를 뜻할 수 있는데,

(특히 작가가 동독 태생이라는 점에 주목한다면)

땅으로 쳐박힐 듯 한 얼굴과 이마의 주름으로 인해 원판보다 훨씬 피로하고 늙어보이는 레닌의 모습이 찬란한 혁명의 좌절을 나타내주는 듯 하다.

 

 





토카네프의 [카자흐 여인]을 다시 그린 그림에서,

물동이를 운반하는 억세보이는 여인은 콘크리트같은 회색으로 표현되어 오래된 추억과 같은 존재로 보인다.

그러나 그녀의 머리 위, 즉 캔버스의 바닥에 깔린 붉은 별은 지금도 사그라들지 않는 혁명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듯 하다.

 

 

아래 그림의 원본인 코르제프의 [전쟁의 나날들]은 매우 인상적인 그림이었는데

[전쟁의 나날들 I]에선 그림 속 화가가 붓을 든 채 캔버스 하나 가득 스탈린의 당당한 모습이 차있었다.

반면 [전쟁의 나날들 II]에서는 그림 속 캔버스가 텅 빈 상태에서 화가 역시 붓조차 들고 있지 않은 망연자실한 모양새였다.

 

바젤리츠는 이 두개의 그림을 합쳐 화가가 붓을 들고는 있으나 무엇을 그려야 할 지 알 수 없을 만큼 텅빈 캔버스를 표현하였다.

마치 혁명이라는 커다란 백지에 더이상 무엇을 그려야 할지 알 수 없다는 느낌으로...


 

 

전시공간 한켠에는 바젤리츠를 인터뷰한 영상이 상영되고 있는데,

솔직히 그림보다 그 영상이 더 재미있다.

작가가 무슨 생각을 품었는 지 어떤 원본에 대한 추억 더듬기인지 직접 들을 수 있다.

 

작가는 혁명에 대한 좌절을 가슴 절절 공감하기엔 너무 당사자였다.

그는 이미 꽤 유명하고 성공한 신표현주의 화가이다.

 

그의 그림이 품은 러시아 혁명에 대한 추억에서는 건조함이 묻어난다.

좀 웃긴 비유일지도 모르는데 하버드대는 멀리 있는 곳에서 더욱 유명하다고,

그 도가니 속 한 존재에겐 실패에 대한 낭패감이 좌절까지 갈 필요가 전혀 없는 그 무엇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민중을 표현할 때는 사뭇 다르다.

스탈린이니 레닌이니 하는 소위 알려진 인물에 대한 작품은 다소 명백한 패러디적 성향이 강한 반면,

(인터뷰를 들으니 레닌을 독재자로 부르더만)

공장 직공이나 물동이 들고 가는 여인, 이사하며 기뻐하는 여인 등의 모습은 좀 낡고 오래된 사진첩같이 아련하기도 하고, 여전히 내재된 힘을 느끼게 해주는 강인함을 풍기기도 한다.


 

* 사진출처 : 국립현대미술관(http://www.moca.go.kr) 팜플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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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24 15:48 2007/05/24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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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생각_펌 - 2007/05/19 13:35

당신의 고양이님의 [고양이 놀이] 에 관련된 글.

 

생각외로 재미있는걸염?

 

jineeya 로 넣어보면 요놈인데,

 

 



이런 녀석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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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9 13:35 2007/05/19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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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생각_펌 - 2007/05/18 18:32

잠깐의 외출에도 비가 와서 물 먹은 솜처럼 늘어지는 오늘.

 

너무나 너무나 높이는 아냐.
약간만 약간만 박동을 올려.
조금만 조금만 가슴을 데워.
조용히 조용히 호흡을 느껴.

 


<a href="http://www.bbc.co.uk/collective/nb/nf_sunny_16x9_nb.ram">Play the clip in RealPlayer</a>


*출처 : http://www.nathanfake.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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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8 18:32 2007/05/18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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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생각_펌 - 2007/05/18 08:31

1.

화창한 날씨.

보라매공원엔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이 바깥놀이를 즐길 마땅한 장소를 이미 찾았거나 찾기 위해 떼지어 다니고 있다.

 

그중 초등학교 1학년생들로 보이는 한 무리에 눈길을 빼앗겨 버렸다.

진분홍도 아닌 그냥 분홍, 핑크색의 티셔츠로 빼입은 아이들의 무리.

 

고왔다.

그런데 '선생님, 대단하다. 아이들에게 저 색을 어떻게 입혔을까?

분명 여자색이라며 거부의사 표시한 남자애들이 있었을텐데.

학년초 떼쟁이 저학년들을 제압한 건 결국 권위의 탈을 쓴 권력?^^;;'

 

'남녀를 구분하자던 부모들에겐 어떻게 설명했을까?

그래. 반별로 색이 달랐는데, 재수가 없었다(-_-;;;)고 설명하는 거야.

다음번엔 -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파란색 계열로 입기로 했다고 하는 거지.'

 

그 색 자체의 아름다움에 취한 건 정말 1초도 안되는 짧은 순간.

다음 순간 대부분을 차지한 생각은 걱정과 타협의 길 모색.

 

이런 저런 생각의 파도가 끝날 무렵, 눈앞에 파란색 무리, 주황색 무리 등이 스쳐지나가기 시작했다.



2.

-누군가는 군사문화라 놀릴 지 모르나-

어른들의 가장 기본적인 책임이자 어린이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보호'를 위한 쓸만한 방법 중 하나는 의복의 무언가를 통일시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선택의 자유라는 권리와 보호받을 권리 사이의 충돌은

- 집단 생활 속에서 완전 만족스럽진 않겠지만-

바깥놀이의 경중에 따라, 미세한 연령별 관찰을 통해,

'어느 정도의 연령대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바깥놀이 시 어느 정도의 개인 선택이나 보호가 필요한 지에 대한 검토'가 요구된다.

 

한편, 선택권을 부여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묻는 건 생각외로 정확하지 못한 방법일 수 있다.

 

일단 사람에겐 색이란 게 구분되지 않는 사자눈과 같은 시기도 있다.

원래 색이란 건 태양빛의 얄팍한 장난이지 않는가?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에게 색은 중요하다. 색만큼 감성과 생활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도 드물다.

그러나 태어나 얼마 안된 사람들에게 색은 어떤 의미를 가질 지 어른들이 알 수 없는 세계일지도 모른다.

 

또 한가지, 일단 '말'이라는 건 어른들에게나 익숙한 방식이지, 아이들에겐 아직도 상당히 낯선 방식일 수 있다.

게다가 혹여 한 아이가 언어적으로 어떤 색을 선택했더라도

어른이 1초라도 뜸을 들이거나 목소리톤이 바뀌거나 얼굴의 미소가 슬며시 옅어지면

표정 읽기에 능한 아이는 자신의 의견을 과감히 철회할 지도 모른다.

 

 

순수해지길 원하는 어른일수록 아이의 氣運을 품길 간절히 소망하지만

기운이 좋다고 세상 살기 편한 건 아니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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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8 08:31 2007/05/1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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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_2007 - 2007/05/13 08:21

타울로스산맥은 터키 남쪽의 해발 1200미터 정도되는 산맥인데,

이 산맥으로 인해 그 위는 준스텝, 그 아래는 지중해성 기후로 나뉘게 된다.

심지어 기후마저 다양한 나라다.




 

산맥 넘으면서 들른 휴게소의 목각물.

몽땅 진지한데다가, 고양이가 개를 바라보는 지긋한 표정이라니...

(뎡야님이면 알 것 같은데, 섹피의 히로마사와 시마,우메 같다는 생각이 잠시 ㅋㅋ)

 

 

역시나 산맥을 넘어 내려오니 풍경이 완전히 바뀐다.

지중해성 기후, 바닥이 보이는 깨끗한 물, 그리스를 닮은 집들...

안탈랴는 터키의 유명한 휴양지인데, 진짜 지리상으로도 그리스와 엄청 가깝다.


 

 


 

 


 

 


 

 


 

 


 

 


 

이 남쪽에도 제국의 흔적은 남아있다.

아래는 시가지 한가운데 사람들의 한가로운 공원 역할을 해주는 하드리아누스문.

 

 

안탈랴는 햇빛이 강해서 모든 집은 차양막을 단다.

여름엔 40도가 넘고 바닷가 근처인지라 습도가 엄청나다고...

그런데도 가만보면 창문이 엄청 깨끗한데,

터키인들은 창문이 더러우면 복이 안들어온다고 생각해서 하루에 1번씩은 꼭 유리창 청소를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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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3 08:21 2007/05/13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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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7/05/10 17:17

예술가 부부. 서로가 서로에게 삶과 예술의 동반자이자 경쟁자인 사람들.

각별한 주문이었을까? 아니면 큐레이터의 마술일까?

각 쌍들은 예술이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서도

유독 비슷한 분야에서 함께 활동하는 이가 많은 것 같다.

 

원성원+이배경의 10년지기 개와 고양이

 

사진이 너무 작아 아쉬운데,

아래 그림들은 이배경의 [100개의 꿈 드로잉]이라는 작품으로,

100개의 -주로 다양한 사람 군상의- 스케치가 들어있다.

이 그림을 가지고 원성원은 [IT answers us]라는 상호작용적 영상 설치 작품을 만들었는데,

관람객이 정신을 집중하고 콩을 상자안에 던지면 앞의 스크린에 100개의 드로잉들이 마구 움직이다가 점괘를 내준다.

마치 타로카드를 볼 때 자신의 정신을 집중하여,

실상 타로점을 누군가 봐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 의지를 그대로 반영하게 만드는 원리와 비슷하다.

내 점괘는 '서로 화합하다'래네..ㅋㅋ

역시 상호작용적 작품이 정말 재미있다.

 



강미선+문봉선의 동상이몽

 

이 커플은 한지에 먹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있다.

 

전시된 작품만으로 본다면

강미선 - 작은 작품 -    채색

문봉선 -    큰 작품 - 무채색

같이 분류할 수 있으려나?

 

 

문봉선의 [관조]는 무채색의 수묵이지만 오래 보고 있으면 햇빛이 강물에 닿는 반짝거림으로 눈을 잠시 감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과 더불어 [임진강]이라는 722cm 길이의 수묵화가 걸려있는데,

첩첩산중을 배경으로 유유히 흐르는 강줄기가 진정 임진강이라면 그 시간대를 물어 꼭 가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민정+신치현의 무한 이중주

 

이 두사람의 작품은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김민정의 [숨쉬는 벽]은

마치 거울이 공간을 두배로 만들어주는 시각적 효과를 만들듯,

벽에 영상을 통해 벽 뒤의 공간을 창조하였다.

그런데 비단 공간을 창조하는 데서 멈춘 것뿐만 아니라 점점 더 커졌다가 한쪽으로 기울기도 하고 거대한 숨소리를 내기도 한다.

 

아래 작품은 실제 각진 벽 모서리에 비추던 [모서리]라는 설치 영상작품으로,

[숨쉬는 벽]과 마찬가지로 공간의 창조와 능동적 변조가 독특한 작품이다.

 

한편 신치현의 작품은 기존의 입체조형물을 컴퓨터로 스캐닝한 후 아크릴 판을 마치 픽셀을 상징하듯 사각으로 잘라 3D로 재창조한다.

 

 

 이소영+김건주의 we are sailing

 

이 둘의 공통점은 꽤나 현대적 소재로 만든 조형물이다.

전시된 작품 중에 가장 눈에 띄었던 건

빨간 선반과 그안의 일기 같은 기록들이었다.

그냥 멍하니 보고있자니

마치 보내고 싶었으나 보내지 못했던 글과,

우체통 역할을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빨간 선반의

암울한 기운이 그대로 몸 속에 들어오는 느낌이다.

 

 

박소영+김지원의 still life 시리즈 중에

김지원의 다양한 회화와 사진이 어우러진 작품군을 봤는데,

그 중 부부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2장 있었다.

하나는 88년도 청첩장에 활짝 웃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최근에 찍은 데 각자 팔짱 끼고 벽에 기대어 카메라를 바라보는 모습의 사진.

그때나 최근이나 부부는 왠지 닮았다.

그런데 젊은 시절의 모습이 더욱 편안하고 넉넉해보인다.

최근 사진은 뭔가 프로페셔널해졌으나 비집고 들어갈 구석이 없을 정도로 무장된 것 같은 표정이다.

 

마치 인간이 가진 관용과 즐거움을 더욱 풍부히하는 영원한 '유머'를 잊고

돌아가는 정세를 읽고 항상 날카로움을 지닌 상황에서 나오는 '위트'를 선택한 것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그들의 예술 세계는, 그들이 걸어온 세월의 예술은

한 시대를 잠시 풍미한 언어적 유희가 아닌

인간적이고 마르지 않을 것 같은, 위트가 아닌 유머같은 것이길 빈다.

 

 

* 사진출처 : 금호미술관(http://www.kumhomuse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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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0 17:17 2007/05/10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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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7/05/07 17:03

* neoscrum님의 [< Seeing > 서평] 에 관련된 글.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주제 사라마구가 쓴 '눈먼 자들의 도시'는

한 도시에서 단 한 사람을 뺀 모든 사람이 눈 멀면서 벌어진 일들을 담고 있다.

그 소설이 가장 가슴 치게 만드는 점은

어떤 도시라도 전 민중의 눈이 멀면 묘사되는 상황처럼 되지 않을까하는 

매우 현실적인 인지, 사실주의적 감각이다.

 

눈먼 자가 사회의 일부일 땐

우리에서 '너'와 '나'의 분리가 명확해진다.

격리 수용되고, 다가온다는 이유만으로 총살당하고, 먹을 것도 제때 지급되지 않고...

아이러니하게 격리된 와중에도 배급되는 음식을 독점하여 사람들의 재산을 뺏고 강간하는 매우 조직화된 -그러나 인간의 집단 형성 본능의 실체를 의심하게 할만한 매우 사악한- 집단체가 생기고...

 

모두가 눈이 먼 시점에선

인간의 창조물 도시는

- 누군가는 몇백년 몇천년 이어갈 거라 착각할지도 모르나-

신기루와 같이 단 1주일간의 인류 생존조차 보장할 수 없는 곳이며,

이미 자연과 너무 멀리 떨어진 인간이란 존재들은

먹을 것을 약탈하고 약자를 폭행하고 함께 살기 위한 어떠한 규칙과 합의도 이루지 못한채 낱낱으로 흩어지다가

시체가 되면 개들에게 뜯어먹힌다.

 

여기서 작가는 눈이 멀지 않은 한 여인을 배치함으로써

휘몰아치는 이야기의 폭풍우 속에서 독자를 위한 작은 숨구멍 하나를 열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유일한 희망인 양

눈먼 자들의 사이에서 유지할 수 없는 정신을 유일하게 유지하며

가까스로 생존한 -더불어 주위 사람들을 함께 생존시킨 - 한 여인은 그러나,

후속편격인 [눈뜬 자들의 도시] 속 '권력에 눈먼 자'들의 사이에선 끝내 생존할 수 없었다.

 



지자체 선거가 있은 다음날, 어느 나라의 한 수도에서 투표자의 80%이상이 백지투표를 했다.

투표 결과의 무정부주의적 성격에 흥분한 정부는 같은 선거를 다시 한번 치렀으나 백지투표자의 수를 더욱 늘려주었을 뿐이다.

 

이런 극악무도할,

어쩌면 -결코 그렇지 않았으나- 국제적 거대 무정부조직의 나라 흔들기라고 여길 수 밖에 없는 이 투표 결과에 대해 정부는 수도 민중들에게 합당한 처벌을 내리기로 한다.

 

공식적으로 행해진 처벌은 계엄령 선포와 모든 행정, 입법, 사법기관의 이전.

그러나 경찰도 정치인도 사라진 수도에서 예상된 대규모 폭력이나 약탈 사건 따윈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정부가 비공식적으로 행한 처벌 중 하나였으나 무정부주의자의 행위로 규정지워진 지하철역 폭파사건이 있었을 뿐이다.

 

정부가 아무리 시민들을 감시해도 그 뒤에 숨어있어야 할 악독한 무정부주의자들의 개입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도시의 민중들은

비록 폭압적 계엄령 속에서 입밖에 내지 못하지만

모두들 '시켜서 한게 아니예요. 내 의지대로 백지투표를 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처음부터 정부가 민중의 소리에 귀 기울여 항복을 선언하게 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우연히 4년 전 모두 눈먼 사태 와중에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았던 한 여인을 찾아낸 정부는 그녀를 백색투표 사태의 주동자로 지목하여 여론을 조작하고 끝내 암살시키고 만다.

 

그렇다고 시민들이 정부의 장난질에 놀아나거나 한 것 또한 아니다.

정부의 조작을 드러내려는 한 경찰과 어떤 언론사의 노력으로 새벽시간 아주 잠시 가판대에 나왔던 신문기사는

-비록 단기간에 가판대에서 사라졌지만-

시민들의 손에 의해 민주화 찌라시 마냥 서로 복사하고 서로에게 나누어주고 서로 읽어나가면서 퍼져나갔다.

 

 

민중의 찬란한 단결을 믿고 민중의 분열에 좌절했던 사람이라면 이번 소설에서,

민중이 여전히 분열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줌도 안되는 권력집단의 영원한 쳇바퀴 속에서 놀아날 수 밖에 없는 사회라는 색다른 좌절과 패배를 맛볼 것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 속에 나타난 긍정주의는 사라지고

노작가는 빠져나올 수 없는 인간 사회의 사슬에 갇혔다.

 

과연 이 책의 그후,

4년 전 눈이 멀지 않았던 그녀를 통해, 그녀의 죽음을 통해

민중은 무언가를 촉발시킬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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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7 17:03 2007/05/0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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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_2007 - 2007/05/06 13:05

터키에서 단일민족이니 혼혈이니 하는 말은 쓸데없는 말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래전부터 -지금도 역시 - 유명한 무역 중심지이고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대륙 통치의 중심지였던 곳이니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고 함께 살았던 건 매우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외모에 대해서 까탈스럽지 않은 것 같다.

일례로 대머리같은 건 흠도 아니다.

물론 경향은 눈에 보인다.

TV를 보니 굉장히 풍만한 타입을 좋아하는 것 같다.

(물론 밸리댄스를 잘 출 것 같은 관능적인 건강미를 갖춘..)

 

그래도 동양인은 좋아한단다. 납작하게 평면으로 생긴 게 '신비롭다(?)'고...

신기한 게 아니고?ㅋㅋ

아닌 게 아니라 여행 중 생판 모르는 터키 남자 중 작업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장난 아니다.

1분만 얘기하면 그 다음 바로 작업 멘트 시작! ^^;;

 

신기하지? 여행이라 그런가?

한국에서 남모르는 누가 말을 걸려하면 바로 묵묵무답 무시전략에 돌입하는데

여행이라 마음 열리고 몸이 열린 상태라 그런지

걸려오는 작업이 짜증나는 게 아니라 그냥 재미있는 에피소드이고 기분을 좋게 해주는 여행의 꽤 괜찮은 소득이다.

이제 거리에서 말 걸어오는 사람이라곤 사이비종교집단이나 강매집단뿐이고,

붙은 날파리를 떼어내기 위해 언제나 무시와 차가운 시선을 유지하게 만드는 삭막한 이 나라가 새삼 서글프다고나 할까.

 

어쨌든...

이렇게 왕래가 잦은 지역이다보니 어느날 아프카니스탄에서 전쟁을 피해 건너온 사람들 중에 루미라는 성직자도 끼어있었다는데,

그는 성선설을 믿으면서 수행을 통해 선한 의지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콘야라고 지금 터키에서 가장 이슬람 색채가 강한 동네에 메블라나 사원을 짓고 포교했다.

 

예전 TV 광고 중에(불가리스던가?) 긴 모자에 하얀 치마 두른 남자들이 계속 제자리에서 도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나는 데, 그게 바로 루미가 만든 수행 방법 중 하나인 '셰마'였다.

보통 왼손바닥 아래, 오른 손바닥 위로 향하게 하고(하늘과 땅을 상징한단다) 시계 반대방향으로 2,3시간 정도 돈다는 데 나중에 손이 펴지면서 하늘을 향해 올라간단다.

5분 정도 셰마하는 사람을 봤는데, 어찌나 평온한 표정인지..

셰마 비슷한 수행을 해본 대체의학하는 내 친구가 그러는 데,

마약한 것 같이 굉장히 기분이 좋단다.

음...

Zoo Keeper나 웹이미지 코딩같은 단순 작업을 오래 했을 때 느끼는 각성 같은 건가?^^;;

 


 



이렇게 처음으로 이슬람 사원에 들어갔다.

이슬람 사원의 특징 중 하나인 저 뾰족 탑을 '미나레트'라고 부르는데,

하루 5번이나 기도하는 무슬림들의 기도 시간을 알려주는 곳이라고 한다.

목청 큰 사람이 저기서 소리쳤다고... 지나다니며 보니 요즘엔 스피커가 한두개씩 달려있다.

 

 

보통 이슬람 사원 내부는 가운데 거대한 돔이 있고 안은 텅 비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모두 메카를 향해 꿇고 앉아 기도할 수 있도록 천장부터 내려온 긴 줄에 초받침이 있는 정도?


 

이곳은 박물관이라서 그런지 원래 사원들이 그런지 모르겠지만,

루미를 비롯한 성직자들의 관이 사원 안에 있다.

아래 사진은 가장 조명 많고 가장 큰 관이었는데 바로 루미의 관.


 


 

 

 

메블리스트들은 엄격한 수행이 유명하다고 해서 굉장히 소박한 실내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화려해서 약간 놀랐다.

 

 

한켠엔 손으로 베낀 경전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책의 삽화 역시 화려하기 그지 없다.

세세한 그림 중에는 굉장히 재미있는 것도 있었는데, 잘 안찍혀도 몇장 찍을 걸...-_-;;



이슬람에선 보통 여성이 머리카락을 보이게 하지 않게끔 하고 다닌다지만,

요즘 터키에선 하고싶은 대로 한다.

콘야는 가장 보수적인 동네라 그런지 확실히 머플러 여인들이 많긴 하다. 다들 독실해 보이기도 하고...

 

모든 이슬람 사원에 있는 것 중 하나가 세정의식을 할 수 있는 곳, 즉 씻을 수 있는 수도 시설이다. 아래 사진은 둥근 정자 모양의 수도시설이 있던 구조물의 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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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6 13:05 2007/05/06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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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풍경관람기 - 2007/05/05 18:58

가까워도 절대 가본 적 없는 사육신공원.

오늘같이 어디든 붐빌 것 같은 날, 절대 안붐빌 것 같은 사육신공원으로 슬렁슬렁 걸어가봤다.

그런데 생각보다 안타까운 곳이었다.

노량진이면 드넓게 펼쳐진 한강을 기대하겠지만, 강변에 깔린 고층아파트와 군사구역이라는 철조망이 눈앞을 가려버렸다.




공간도 좁고 볼 것이 있는 곳도 아니지만,

사당에서 묘로 올라가는 이런 길은 보기 좋다.


 





 

돌로 바닥도 평평하게 만들고 쉬라고 의자도 많이 만들어놨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곳은 역시 나무 그늘 시원한 잔디 위였다.

사육신들의 묘 위 나무 그늘에 늘어지게 낮잠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이 참 여유로워보였다.

좀 더 나무를 많이 심고 잔디를 깔아줬으면 하는 바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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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5 18:58 2007/05/05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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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_2007 - 2007/05/05 11:19

BC 7세기에도 사람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는 지하도시 카이막쿨러.

이곳도 터키의 카파도키아라 불리는 그곳에 있다.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든 걸로 유명한 순례지로 유명한 곳이지만,

이미 이전부터 가진 것 없는 자들이 하나 둘 근처를 파서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기독교인들이 박해 피해 들어오면서 더 확장되었다고...

사암이라 슬슬 긁어서 파면 되는데, 이렇게 100미터 깊이에 22층의 1만명 이상 수용이 가능한 공간이 되어있었다.

심지어 카이막쿨러 근처 9km 거리에는 데림쿨러라는 지하도시가 있는데 두 도시간 연결통로도 있었을 거라고...

참고로 카파도키아에만 지하도시가 30여개 있었단다.

 

대체로 통로가 좁고 낮은데 아래 사진만큼 큰 곳은 참 드물다.

이런 식으로 파왔다면 폭삭 무너졌을 거다.

 

이곳은 곡식저장창고인데, 지하도시 역시 완벽한 공동체 사회였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좁고 어두운 곳에서

누구나 하고싶을 때 불 떼서 밥 먹고, 똥 싸고 그랬으면 모두 질식사했을 것이다.

이곳은 성당, 곡식저장창고, 거실, 와인 저장고, 취사 등 모든 것이 공동이었고 규범도 상당히 엄겼했다고..

생각해보면 개인화된 사회는 그야말로 비효율적이고 비환경적인 소비사회다 싶다.

그러다보니 현대사회에서는 공동체적 삶을 구축하려는 많은 시도들이 있다.

대체로 사람들은 공동체사회를 만드는 것이 

매우 어렵고 본능적이지 못한, 인간 본연적이지 못한

높은 수준의 희생정신과 도덕성을 갖춘 사람들만이 가능한 삶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동굴을 파서 살았던 괴레메 계곡이나 카이막쿨러를 보면 그렇지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모이다보면, 제한된 자원에 대해 계산하다보면,

공동체사회는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고 그건 결국 생존과 직결된 것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인류에게 남은 시간은 8년 뿐이라던데,

불현듯 피 속에 내재되어있을 공동체 의식 끌어올리기에 매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이곳은 거실.

 

 

이곳은 와인저장고인데 항상 영상 12도가 유지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실제 카파도키아는 유명한 포도 생산지로, 포도주가 유명하다.

 

 

가구도 따로 필요없다. 슬슬 파면 옷장이 뚝딱.^^

 

 

 

이곳은 이 지하인들의 숨구멍이라 할 수도 있을 만큼 중요한 공기 환풍구이다.

수직 사각형으로 지상까지 뚫려있다.

이곳의 위치야말로 극비 중의 극비. 들키면 몰살은 순식간.

 

이 거대한 맷돌 모양은 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만들었단다.

워낙 통로가 좁고 어둡기 때문에 일단 적이 한번 침입하면 방어는 불능.

동시에 침입만 하지 않는다면 방어 역시 따놓은 당상.

아무리 적의 수가 많아도 어차피 통로는 좁으니 저런 거대한 돌을 동시에 치우는 사람들의 수도 적어 거의 성공하지 못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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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5 11:19 2007/05/05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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