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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도종환] 노래하는 시인, 시 쓰는 가객

  • 등록일
    2010/03/09 15:14
  • 수정일
    2010/03/09 15:14

노래하는 시인, 시 쓰는 가객
--- 정태춘 시집을 읽고

                                                                                                                                                               도 종 환

올 초에 동갑내기 몇이 내가 기거하는 보은의 산방에 모인 적이 있었다. 지난 해 여름부터 한번 만나자는 이야기를 해 오다가 겨우 겨울이 깊어져서야 자리를 같이 했다. 만나자는 이야기를 꺼낸 사람은 정태춘이었다.


오후 늦게야 도착할 것 같다는 시인 곽아무개를 기다리며 판화가 이아무개와 나와 정태춘은 두부를 만드는 일을 함께 했다. 사실은 동네에 두부 잘 만드는 아주머니를 모셔다가 그분이 만드시고 우리는 가마솥에 불이나 때고 장작 패고 물이나 퍼 나르는 허드렛일을 했지만 두부 맛에 해 지는 줄도 몰랐다. 방금 만들어낸 따끈따끈한 두부를 큼지막하게 잘라 간장에 찍어먹기도 하고 노릇노릇하게 구워먹기도 하는 동안 배가 가득 차, 내가 차린 저녁상은 먹는 둥 마는 둥 하였다. 쉰내 나는 남자들끼리 모여 뭐 하려고 하느냐고 판화가 이아무개의 부인은 전화로 걱정 반 놀림 반인 말을 하며 웃었지만 그냥 만나서 밤새워 이야기라도 하고 싶었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열심히 산 삶의 끝에서 느껴지는 허전함, 답답함의 실체는 무엇인지. 남들도 그런 건지 나만 그런지, 그냥 답답해서 터놓고 이야기라도 했으면 싶은 심정은 서로 마찬가지였다. 벽난로 앞에 모여 앉아 밤 깊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가장 말을 많이 한 건 정태춘이었다.
 

사람과 능력을 바르게 보고 평가하지 않는 예술판, 학벌에 따른 차별, 권력의 모순, 물신숭배에 빠진 자본주의의 허상, 고향마을을 밀고 들어오는 외세의 거대한 폭력, 그의 입에서는 쉴 새 없이 천박한 세태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어떤 때는 이런 삶의 대열에서 이탈하고 싶어하기도 했다. 중간 중간 그는 시를 꺼내 큰 소리로 읽거나 그 시를 쓰게 된 배경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정태춘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때론 위로하기도 하고 때론 대신 대답을 해 보기도 하고 걱정을 나누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몸이 신통치 않은 내가 제일 먼저 자리에 눕고 나머지는 새벽닭이 울 때쯤 되어서야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다 아는 것처럼 정태춘은 지난 8, 90년대 내내 한 번도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가난하고 억눌리고 짓밟히고 빼앗기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노래해온 가수이다.
 

1989년 가을 ‘송아지 송아지 누렁송아지’ 공연을 통해 노래가 그저 노래에 그치지 않고 공연과 집회가 결합된 일종의 전투무로서의 새로운 공연양식을 창출해 내었으며, 그 공연과 함께 했던 수십만 참가자들의 가슴을 두드리던 북소리는 한 시대를 새롭게 열어 간 북소리였다. 그의 노래에는 현장성이 살아 있었고 리얼리티와 서정성이 함께 녹아 들어가 있었다. 음악성과 서사가 하나 되어 있고 감동이 있었다. 절망과 비극도 아름다움과 용기로 바꾸는 힘이 있었다.
 

그가 ‘일어나라 열사여’를 부르면 우리는 찢어지는 가슴으로 눈물을 흘리며 경찰저지선을 향해 달려갔고, ‘우리들의 죽음’을 교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노래테이프로 들으며 불에 타 죽은 세 살 다섯 살 어린 남매가 불쌍하여 울었다. “엄마 아빠가 거기 함께 있었다면....우리가 방안의 연기와 불길 속에서 부둥켜안고 떨기 전에,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방문을 세차게 두드리기 전에, 손톱에서 피가 나게 방바닥을 긁어대기 전에.....,”이런 부분에 이르면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노래는 노래 이상이었다. 그의 노래는 시였고 깃발이었고 진혼의 나팔소리였다.
 

한 시대가 치열하였다가 쇠잔해지다가 사람을 쓸쓸하게 만들 때도 ‘촛불’과 ‘떠나가는 배’와 ‘봉숭아’를 불렀다. 그의 노래는 힘이 있었고 아름다움이 있었고 위안과 즐거움과 따뜻함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자신을 “야무진 칼 한 자루도 없이 / 로맨틱한 비장감도 없이 / 실현성 있는 대안도 없이” 불뚝성질만 부리는 ‘외로운 전사’라고 말한다. ‘슬픈 이탈자’, ‘끌려가는 이탈자’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오로지 경제 / 경쟁력 / 새해벽두부터 또 신자유주의의 구호를 외치’는 권력 때문이라고 한다. 물신을 숭배하는 사회와 물신숭배의 강고한 조직이 끝내 허물어 질 것 같지 않기 때문이요, 국가주의, 수구냉전주의, 약육강식의 생존양식, 변할 것 같지 않은 계급 격차, 그것들이 온존하길 바라는 야만의 질서,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전쟁도 불사하는 광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이제 다시는 / 계속 저들의 행렬에 발을 맞추기 위해서 종종걸음을 치거나 / 저들과의 동질성으로 확인시키기 위해서 / 거짓말을 하거나, 모호하게 말하거나, 둘러대거나 / 가짜에 박수를 치거나 / 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이탈을 꿈꾸는데 이탈을 할 수 없게 된다해도 ‘행렬의 끄트머리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가며’ ‘투덜대고 욕지거리하고, / 소리치고, 궁시렁거릴 거’라고 한다. 우리도 그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쳤기 때문에, 화가 나기 때문에 이젠 노래를 그만 부를 것인가. 만약 지구상에 내일 다시 광기의 전쟁이 터지고, 남북관계는 파탄에 이르며, 권력의 횡포가 극에 달하고, 빈부의 격차는 날이 갈수록 더 커지고, 자본의 물결이 우리 농촌을 휩쓸어 노동자와 농민들이 몸에 불을 지르고 죽어간다면 이탈한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시 안 쓰고 그림 안 그려도 편안할 것인가. 행복한 개인이 되어 생의 변두리를 돌며 한가하게 구름이나 올려다볼 수 있을 것인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세상과 불화하며 거기서 다시 시를 쓰고 노래하게 될 것이다.

불화. 세상과의 불화. 그래서 그는 세상에 대해 자꾸 싸움을 걸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그 싸움 걸고 싶어하는 마음, 그 도전의식, 권력에 대한 저항, 그 뚝심이 불화를 창조의 에네르기로 옮겨가게 한다. 지금껏 그래왔다. 그걸 잘 보여주는 시 중의 하나가 「양양 장 무쇠 낫」이다.

--아하, 조놈들 가져다 숫돌에다 그저 벅벅 갈아
날만 그저 잘 세우면, 시퍼렇게 그저 잘 세우면
광문 앞에다 걸어놓고 보기만 해도 좋것다
..................
묵직한 도끼날,
세상 못된 거 퍽퍽 찍어낼 만한 놈으로 골라
잘 생긴 놈으로 골라
부르는 대로 돈 쥐어주고 사온
저것들
저것들을 한번 써먹어야 할 건데
---「양양 장 무쇠 낫」중에서

한 번 써먹어 보고 싶어하는 이 도끼는 저돌성, 민중적 저항, 공격성의 등가물이다. 그러나 이 시는 공격성, 공격 심리의 직접성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질박하면서도 힘이 있고 시대와 불화하고 불의에 저항하면서도 여유와 해학이 있다. 그게 이 시의 또 다른 힘이다. 민중적 삶이 있고, 뚝심이 있고, 토속적인 정취가 있고, 왁자지껄한 흥과 신명이 있고, 사설로 풀어내는 이야기가 있다. 정태춘 시와 노래의 힘도 바로 이런 힘과 연결되어 있다. 저항권력에 대한 넉넉한 믿음, 그러면서 “아, 도끼들고, 도끼들고.......”하다가 “(어쩔건데?)” 하고 묻는 여유, 한 템포 쉬어 갈 줄 아는 여유를 우리가 믿음직스러워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작고 보잘 것 없고 버림받은 것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 그 시심을 미더워 하는 것이다.

변두리 지방도로 언덕배기 휴게소
조그만 이삿짐 차가 쉬고 있는데
싸구려 찬장에 붙은
칼라 사진 한 장
아빠와 딸이 뽀뽀하는

그 사진 모쪼록 떨어지지 않기를,
이 이삿짐 차가 세상 끝까지 달려도
그 사진 떨어지지 않기를
---「시골 이삿짐 차」중에서

허름한 살림살이 가재도구 등을 싣고 가는 고물차를 바라보다 거기서 발견한 사진 한 장이 주는 따뜻한 인간의 온기를 우리도 피부 깊숙이 느낀다. 시인의 눈이 발견한 이런 따뜻함, 이런 따뜻함을 발견할 줄 아는 눈을 가지고 있는 정태춘을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그가 ‘그저 무너지는 바다’, ‘벼랑의 바다’, ‘단애의 바다’가 아니라 저물면서도 빛나는 길을 찾고자 하는 물결이라고 생각한다. 지는 노을빛을 열정의 빛깔로 바꾸어 색칠하는 저녁하늘 같은 영혼이라고 생각한다. 체게바라를 이야기하는「은재호씨」같은 시가 그 증거다.

그가 티토와 소련에 대해 참지 못하고 내뱉었던 비판들과
그 바탕의 순수한 혁명 열정은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요?
무덥고 침침한 작업실에서
다시 한 불온서적을 보듯이 흥분하며
그의 영혼을 사랑했다오
위대한 영혼의 인간은
타인의 삶에 가슴 뛰는 영감을 훨훨 불어 넣어주는 사람이란 걸
다시 한번 깨달으며
사무실 문을 잠그고
차를 몰고 큰길로 나왔다오
.................
이미 도시에서는 져버린 붉은 햇살을 아직도
넉넉하게 받아
그쪽 하늘을 훤히 반사하고 있는
거대한 구름 산을 보았다오
---「은재호씨」중에서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혁명에 몸을 던진 사람, 혁명의 좌절에 실망하지 않고, 혁명의 성취에 자만하지 않는 사람, 혁명의 과정에 목숨을 바쳤고 순수한 혁명의 열정으로 세계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가슴 뛰는 영감을 불어 넣어주는 사람’ 그 사람의 삶을 대하면서 아직도 뛰는 가슴을 억누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그저 단순히 아나키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는 아직도 혁명가의 삶을 생각하며 팔뚝에서 묵직한 힘을 느끼는 사람인 것이다. 위대한 영혼과 아름다운 죽음을 동경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시집의 곳곳에서 발견하는 아나키즘은 어찌 보면 이상적인 삶과 사회에 대한 동경의 반어이기도 하다.

거기 가서 살았으면 싶더라는 거야
아래쪽 베트남에 붙어 있는 장족 자치구도 좋고,
북쪽의 내몽고 자치구도 좋고
설마 그 자치구 오지 깊숙이까지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미치지는 못하겠지 싶어서 말야
.....................
거기 어디쯤
국가란 것도 없고, 정부란 것도 없고, 자본이나 그 하수인,
인간의 대표란 것들도 없는
그런
사람 세상이 있을 수 있지 않겠어?
---「노독일처」중에서

그가 숨막힌다고 말하는 야만의 문명, 물샐틈없는 사회조직과 획일적인 이데올로기 속에서 우리도 늘 답답해하면서 산다. 인간을 지배하는 인간의 힘이 이렇게 강력했던 적이 없었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래서 이런 사회에서 이탈하여 전혀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꿈을 꾼다. 국가주의, 전체주의, 획일주의처럼 사람을 숨막히게 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어머니,
저 야만의 행렬은 해산돼야 해요
일사분란한 명령 체계와 조직도 해산되고
모두 개인으로 돌아가야 해요
가족으로
최소한의 자급 공동체 마을로 돌아가야 해요
---「어머니」중에서

그러나 그가 해체 뒤에 가야한다고 말하는 곳은 무정부주의의 밀실이라기보다 최소한의 자급자족이 가능한 공동체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공동체는 지구상에 존재할까? 나는 그 날 정태춘의 시를 보며 라다크 이야기를 꺼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라다크에서 보았던 이상적인 공동체.
 

히말라야 북쪽 티베트 고원에 인접한 산맥에 자리 잡은 라다크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보리와 밀농사를 지으며 경쟁과 탐욕과 속도에 휘둘리지 않고 800년 동안을 행복하게 살아왔다고 한다. 젊은이들은 어머니 할머니에게 유순하고 다정하게 대하며, 아이들은 노인을 공경하고, 또래집단으로부터 격리되는 일이 없으며,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남성과 여성, 노인과 젊은이 사이의 차별이 없고, 삶의 질에 차이가 없다고 한다. 여성이 생활의 중심에 서 있고, 각자 다 공동체에서 자기 역할이 있으며, 높은 수준의 협력이 있고, 싸움과 범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도 불안해하지 않고 밤에 혼자 걸어다닐 수 있으며, 술에 취한 뒤에도 사람들이 공격적으로 되는 일이 없다고 한다.
 

일년에 여름 넉 달 동안 열심히 일해 의식주에 필요한 대부분을 마련하고 많은 여가가 주어지는 사회, 노동에는 유희가 따르며 결혼잔치를 2주간이나 계속하는 나라, 이야기와 음악이 있고 누구나 잘 먹고 건강하게 지내는 사회,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하며 사는데, 자연자원을 주의 깊게 이용하되 모든 쓰레기는 재순환하기 때문에 쓰레기라는 것이 없는 사회.
 

정태춘이 살고 싶어하는 자급자족의 공동체도 이런 마을이 아닐까 싶었다. 내 이야기를 들으며 정태춘의 눈이 반짝하고 빛나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러나 그 동경과 기대의 눈빛을 깬 건 곽아무개의 말이었다. 거기도 미국 문화와 관광객의 지폐, 인도의 영화가 젊은이들을 도시로 몰려나가게 만들지 않았느냐는 지적이었다. 물론 그런 과정을 겪으며 다시 새로운 라다크를 만들어 가기 위한 그곳 사람들의 노력에 대해 내가 덧붙이는 말을 하긴 했지만 다른 담화 속에 라다크 이야기는 묻히고 말았다. 그러나 정태춘이나 내가 꿈꾸는 우리의 미래사회가 지구의 어느 곳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는 것은 얼마나 희망적인 일인가. 옛날부터 있어 왔다면 앞으로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만들어 갈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노래하고 시를 써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세상, 그런 삶을 위해 우리가 지금까지 시를 쓰고 노래하고 그림을 그려오지 않았는가. 우리가 다시 또 노래하고 시를 쓰고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 있지 않은가.

유협이 지은 고대 중국의 문학이론서 『문심조룡』에 보면 “시란 음악의 마음이요, 소리는 음악의 몸”이라는 말이 나온다. “음악의 몸은 소리이기 때문에 악관들은 악기를 조율해야만 했고, 음악의 마음은 시이기 때문에 시인들은 그 가사를 고쳐야 만 했던 것”이고 말하고 있다. 음악의 마음인 시를 지어 시의 몸을 찾아주고, 음악의 마음인 시에 소리를 갖게 해주어 노래가 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행복한 달란트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이다. 정태춘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다. 노래하는 음유시인이요. 시를 쓰는 가객이다. 그의 노래말은 시 아닌 것이 없고, 그가 쓰는 시는 노래가 되어 사랑을 받는다. 이번 시집에 실린 많은 시들 중에도 노래가 되어 불려질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래가 되지 않고 그냥 시로 있는 것이 더 좋은 작품들도 참 많다. 시를 쓰는 사람들 중에 많은 이들이 의기소침하여 자리를 비운 무대 위에 아직도 순수한 열정을 품고 다니며, 아파하고 괴로워하며, 길을 찾고자 몸부림치는 그의 모습이 부럽기 그지없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타인의 삶에 가슴 뛰는 영감을 훨훨 불어 넣어주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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