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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박몽구] 길이 끝난 곳

  • 등록일
    2014/04/30 16:54
  • 수정일
    2014/04/30 16:54

길이 끝난 곳

박몽구

모두들 훌훌 옷 벗어버린 만추에도
향기 잃지 않는 생강나무 몇 포기
땅거미 밀쳐서 갈길 분명하게 일러준다
유명산은 부드러운 흙길 내주어 쉽게 정상으로 올리더니
하산길 십리 내내 모난 돌만 깔아놓았다
두부를 잘게 갈라놓은 듯
거대한 바위들이 비바람에 부서지면서 만든
칼 같은 모서리들이 끝없이 가로막는 길
처음에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발바닥이 바늘에 찔린 듯하고
산문으로 닿는 길 아득하던 것이
이내 익숙하고 푸른해졌다
느리게 걸음을 옮기면서
가을 깊도록 향기의 주인 기다리는
고추나무 향기를 맡고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는 팥배나무 열매를 만날 수도 있으니
나는 그때서야 정상에 모인 바위들을 쪼개
산 아래로 던져놓은 사람의 뜻을 헤아릴 수 있었다
좀 천천히 가라고
쫓기듯 살아가면서 놓친 것들의 이름을 불러보라고
구상나무의 귀를 빌어 누군가 일러주었다
새차게 산 아래로 치달릴 줄밖에 모르는
물들을 모아 벌거벗은 나무들
얼굴을 비추고 있는 박쥐소에서
한참 동안 물 낯바닥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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