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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경림] 골목

  • 등록일
    2019/05/24 09:00
  • 수정일
    2019/05/24 09:00

골목

 

신경림

 

이발소 최씨는 그래도 서울이 좋단다
자루에 기계 하나만 넣고 나가면
봉지쌀에 꽁치 한 마리를 들고 오는 
그 질척거리는 저녁 골목이 좋단다
통걸상에 앉아 이십원짜리 이발을 하면
나는 시골 변전소 옆 이발소에 온 것 같다
술독이 오른 딸기코와 떨리던 손 
늦어린애를 배어 뒤뚝거리던 그의 아내
최씨는 골목 안 생선 비린내가 좋단다
쉴 새 없는 싸움질과 아귀

 

다툼이 좋단다
이발소에 묻혀 묵은 신문이나 뒤적이고
빗질을 하고 유행가를 익히고
허구한 날 우리는 너무 심심하고 답답했지만
최씨는 이 가파른 산동네가 좋단다
시골보다도 흐린 전등과 앰프 소리가 좋단다
여자들이 얼려 잔돈 뜯을 궁리나 하고 돌아가는
동네에 깔린 가난과 안달이 좋단다
그 딸기코의 병신 아들의 이름은 무엇이던가
사경을 받으러 다니던 딸의 이름은 무엇이던가
어느 남쪽 산골 읍내에서 여관을 했다는
이발소 최씨는 그래도 서울이 좋단다
골목에서 모여드는 쪼무래기 손님들과
극성스럽고 억척같은 어머니들이 좋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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