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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8/19
    창밖을 내다보니
    간장 오타맨...
  2. 2004/08/19
    안티-아테네 시위대, 건설노동자 죽음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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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4/08/19
    [시/윤동주] 看板 없는 거리
    간장 오타맨...
  4. 2004/08/19
    교도소의 추억...(2)
    간장 오타맨...
  5. 2004/08/19
    돌아오지 못한 兵士
    간장 오타맨...

노동자대회 탐방기

  • 등록일
    2004/08/06 21:11
  • 수정일
    2004/08/06 21:11
노동자 잃어버린 이름을 되찾자
이승만정권에 의해 명명되어진 근로자
투쟁으로서 이름지어진 노동자.... 그러나 우린 노동자란 이름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지....
 
전태일 열사의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는 구호가 아직도 우리 노동형제들에게는 가슴속 깊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투쟁으로 쟁취한 노동자 이름 우린 80년 광주 87년 노동자 투쟁 그리고 93년 총액임금 철폐 투쟁,,, 96년 날치기 통과 저지 투쟁 등 우리 노동자들은 수많은 투쟁들을 승리로 이끈 저력을 가지고 있다.


이번 노동자대투쟁을 시발로 다시금 노동자들의 투쟁의 판을 만들어 내야한다. 더이상 자본의 쓰레기 앞에 굴종을 떨쳐 버리고 투쟁으로 각인시키자!!!

 

노동자들은 언제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 저력을 가지고 있다. 투쟁하는 사상 우린 투쟁을 하지 않으면서 이론의 위기이니 현실 대안의 부재이니 수많은 고민과 번뇌속에 패러다임들에 대한 각조직간의 고민들을 하였다. 그러나 자랑스런 노동자들은 현실 실천속에서 노동자들의 이론들을 각 현장에서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노동자의 저력을 잃지말아야 한다.
이번 노동자대회가 노동자들의 굴종의 벽을 허물고 새롭게 투쟁의 신화를 만들어나가는 장이 되어야 한다.

 

언제까지 자본의 개쌔끼들 앞에서 생존권에 전전긍긍하며 살 것인가. 비타협적 노동자 투쟁으로 노동자들의 권의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자랑스런 노동자로 그리고 죽어간 열사정신을 계승발전시키는 것. 이것들이 바로 노동자들의 투쟁의 권의들을 만들어 내는것이 아닌가????
 
수많은 현장의 열사들....
아직도 생생하다... 민주버스를 만들기 위해 자신이 몰던 버스에서 분신으로 동지들에게 투쟁을 호소하던 민주열사... 투쟁의 밑거름이 되겠금 자신의 몸을 노동자들에게 헌화한 열사들..  그들의 목소리는 아직도 우리들 가슴속에 생생하게... 투쟁하라는  외침을 하고 있지만... 우리 노동자들은 열사들의 외침을 잊어버 렸다. 눈물과 분노로 투쟁을 다짐하던 그모습은 우리들 모습 속에서 지워져 버렸다. 아니 열사들을 가슴속에서 지워버렸다.
 
열사들의 외침을 다시금 되새겨야 한다...
일천만 노동자가 살아있음을 보여줘야한다...
언제까지나 경제적 노동조합 투쟁에 생존권을 건 투쟁에만 의존 할 것인가?? 노동자 계급의 전위적 투쟁을 전투적 투쟁들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잊어버린 노동자 정신 아니 노동자 계급의 선진적 투쟁들 속에 이땅의 고통받는 전민중들에게 투쟁으로서 현 자본의 위기를 각인 시켜줘야 한다.
 
실천없는 혁명적 이론이 없듯... 언제나 투쟁의 선봉에서 자본가 개쌔끼들을 싸그리 쓰려 버려야 한다.
그것만이 노동자 권의를 도찾는 길이다.
 
잊어버린 노동자 이름을 전태일 열사가 만들어 주었다면. 노동해방 세상을 만드는 것은 현재 노동자들의 몫이다.  그리고 산화해간 민주노동열사들에 대한 살아남은 자들의 몫인 것이다.
 
 언제까지 경제적 노동자 투쟁을 벌여낼것인가... 실용적인 노동자 투쟁을 벗어나 노동자 계급투쟁으로 2000년 계급운동의 포문을 열어내야 할 것이다.
 
노동자 투쟁은 경제장악이 아니다. 철저한 사회를 갈아엎는 투쟁이다.
노동자대회 이후 사회변혁 아니 노동자투쟁을 힘차게 열어 재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노동자 계급의 권의와 투쟁의 대오를 정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노동자들은 46년 철도 노동자들의 계급 투쟁... 이후 광주 무장혁명... 87년 노동자 대투쟁... 96년 사회개혁 투쟁 등... 계급의 혁명성을 끊임없이 투쟁속에서 관철 시켰다. 그러나 현재 imf금융구제 이후 노동자들은 경제적 아니 생존권에 목숨을 건 투쟁만을 진행하고 있다.
 
이제 관념과 타성에서 벗어난 노동자 자랑스런 이름을 다시금 투쟁을 통해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노동자들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고.... 노동자들의 힘 으로 진정한 노동자 계급해방을 일구어 낼 수 있다. 언제까지나 관념과 경제적 실용주의 투쟁에 머물지 말기를 바라며. 계급해방은 노동자들의 주도로 일구어내야 한다.

진정한 역사의 주인 무산계급인 노동자들에 투쟁의 승리를 기원하며....
 
인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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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방네에 원고, 인천노동문화제 수기

  • 등록일
    2004/08/06 20:58
  • 수정일
    2004/08/06 20:58
인천에 내려온 지 언 2년이 되어서야 인천노동정보화사업단(이하 인노정단)이 문화단체와 지역 민주노총이 주최로 개최하는 제 12회 인천노동문화제 기획단에 참여하였다.
 
문화라는 것에 대해 전혀 낯설고 개념이 서지 않은 나에게 있어 이번 기회가  문화에 대한 이해와 운동적인 흐름들을 직접적으로 경험과 고민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설렘과 기대심으로 제 12회 인천노동문화제 기획단에 결합.

.
인천노동문화제 기획단 회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던  나에게  회의는 고문에 가까웠다. 그냥 두 눈만 멀뚱멀뚱 뜬 상태로 사람들의 얼굴만 쳐다보기만 하였으니.....
 
잠시 나를 말하자면 거의 노비근성 빼고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고 보면 나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거의 무식에 가까운 사람으로 보면 이해가 더 빠르겠군요. 이런 나의 머리를 가지고 지역 문화운동을 하시는 각  단체 분들의 대화들을 들으니..


이해는 커녕 어려움만이 증폭되는 게 아닌가... 정말 짧은 준비기간 동안 노동문화제기획단 회의에 참여하는데 의의를 가지고 기획단 준비기간을 보낸 것 갔다.(무지한 나를 타박할 수밖에...)
 
그리고 일정의 빡빡함과 힘겨움을 극복하고 드디어 제 12회 인천노동문화제 개막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난 인하대 학생회관 4층 전시실에 전시물들을  다 부착하지 못해 일을 하고 있었다.

 

약속하기로 한사람들의 배신 그리고 실종.

정말 준비한 보람이 꽃을 피우지 못하였다. 인천노동문화제는 개막되었건만 전시실은 아직 개막식전의 상황이었다... 준비는 많이 한 것  같은데 과정에  비해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오니 가슴이 탁 막혀 왔다.... 정말 내가 뭘 좀 알았다면 불철주야 야근을 하여서라도 전시장을 멋있게 꾸며놓았을 텐데 하는 생각들이 아쉬움으로 다가온다.(이게 나의 한계라는 점들....) 수고한 만큼의  보람을  느끼지 못한 아쉬움을 접고 인천노동문화제의 첫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인하대에 들려 전시물을 챙겨 둘째 날 행사장에 가서 극단 '현장'의 백두거인의 비밀 공연 행사장에 도착 야외 전시물 전시....  날씨는 우리편이었다. 정말 화창한 날씨와 햇볕의 따사로움이 감도는 봄날의 맑고 따뜻한 날씨가  어우러져 행사준비기간동안 우려한 인원 동원이 잘될 까라는 의구심들을 한 큐에  종식시켰다. 행사를 마치고 난 후 극단 '현장'과의 3차에 걸친 만찬은  내  생애 잊을 수 없는 아주 소중한 경험과 만남이었다.
 
월요일 단체상근일로 해서 사무실에서 일을 보기로 하였는데..  우째 이런  일이내가 행사전시물을 설치하러 나가게 되었다. 이때부터 난 인천노동문화제에 뼈를 묻었다.
정확히 말해 노동문화제 노비의 전성시대를 만들어 낸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난 노비로서의 자격은 누구보다 탁월하다고 생각이 든다... 이런 일정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마침내 노동문화제의 폐막제.... 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열심히 했다는 부듯함과 내년에 있을 문화제에 대한 생각들이 머리를 교차하듯 지나친다.
처음으로 노동문화제를 지역에서 특성화된 행사로 만드는 실험정신들이 기리  남을 문화제였다라고 개인적으로 판단해본다. 그리고 인천지역 일하고 있는  문화단체 및 그리고 사회단체분들의 노고들을 격려해주고 싶다. 정말 시작은 미비하였지만 인천노동문화제가 그 뜻이 창대하여지기를 바라면서....  이만  글을 줄이고자 한다...
 
정말 글솜씨 없는 나에게 동네방네 지면을 할애해 주신분에게 고마음울 표하면서....
 
인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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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 물든 청춘을 보고와서....

  • 등록일
    2004/08/06 20:51
  • 수정일
    2004/08/06 20:51
피에 물든 청춘...  대만의 장제석 총통의 좌익에 대한 탄압과 선량한 민중에 대한 잔악상들이 감동과 눈물을 자아내게 하는 영화이다... 우리도 제주 4.3을 말하고 있지만 미/소로 대표되는 이념적 냉전이 지난 지금도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만행은 계속되어지고 있다.


역사에 부끄럽지 않는 대만인이 되기위해 역사에 치부를 드러내고 이를 통한 반성을 말하고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들은(대만의 228사건이라고 명명되는 좌익에 대한 잔악한 처형과 숙청 사건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도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

 

역사라는 굴레에서 그들은 권력에 대한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위대한 국민이라는 영화와 그리고  그당시 살아남은 자들... 그리고 장기수들의 증언이 다큐형식으로 잔잔하고 애절한 음악과 함께 흐른다... 영화가 진행되면 진행되어질 수록 눈가에 눈물이 젖어 있음을 느낀수 있는 영화이다.
 
대만의 2조 1항이라는 법을 배경으로  역사적 사건은 전개되어 진다. 그리고 화면 초반부에는 그 당시 사형당한 사람들의 무덤 발굴 현장 그리고 사형장면 그리고 그들의 추도하는  행사 가족의 오열... 교수들의 역사에 대한 평가들이 쉼없이 위대한 국민이라는 영화의 장면과 함께 전개되어진다.

 

우리도 제주 4.3항쟁에 무고한 시민을 살해한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잔악상 처럼.. 대만의 228사건은 한국전쟁과 국공합작의 결렬과 본토에서 밀려난 장제석 국민당 정부의 잔악상들이잘 보여주고 있다.
 
맥아더의 한국 상륙부대인 미 제 7함대의 대만진입과 함께 이루진 228사건은 미군정의 묵인하에 장제석 국민당 정부가 대만원주민,  일제독립 운동을 주도한 좌익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전면적인 살상이다.
 
그리고 장기수의 눈물... 살아남은자로서 죽은 동지에 대한 죄스러움 그리고 동지에게 촛불하나만 덜그라니 바치는 애절함 눈시 울이 불거지다 눈물이 나도 모르게 주르륵 흐르게 한다.
 
한반도가 유일한 분단 국가라고들 말하지만 대만 또한 본토와 섬이라는 해안적 경계선에 의해 분단이라는 민족의 분단을 맞이하고 있다. 그들은 그래도 본토라는 고향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우리는 북한땅을 제한적이나마 금강산 관광을 통해 북녁의 흙이라도 그리운 금강산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역사에 반성의 노래... 사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아무말도 없이  한손에 2라는 숫자를 가리키는 V자, 그리고 한손은 1이라는 가리키며 2조 1항이라는 법에 대한 부당성을 죽음을 맞이하기전에도 끊임없이  가리키고 있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역사에 대한 진실성에 대 밝혀야 한다는 그들의 침묵의 외침들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제주 항쟁에서 마찬가지로 대만에서도 15살 소녀이 죄목없이 좌익이라는 누명을 쓰고 죽이는 야만성.... 그게 바로 냉전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잔악상이다... 자유를 억압하는 민주주의라는 허구성의 적나라게 나타낸는 것이다....
 
레드헌터와 다르게 잔잔하면서 침묵이 흐르면서 애절한 피에 물든 청춘은 그 당시 유능한 20대 30대의 젊은이들을 이데올로기라는 미명하에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아직도 대만 민중들에게는 228사건이라는  지울 수  없는 역사적 죄를 부여잡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에 대한 진실은 누구도 이야기 하고 있지 않다. 다만 그당시 무고한   장수와 자식과 가족을  잃어버린 유족들과 살아남은  자들에게만 역사적 맹락을 이어내려오고 있다.

아무도 장제석 국민당  정부의 죄를 욕하고 있지  못하고그들은 가슴속 깊이 큰 한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비디오로 대만 영화 "위대한 국민"이라는 테잎과 피로 물든 청춘을 볼 기 회가 있는 사람들은 이 시대 인권이라는 화두를 되짚어 불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볼 사이에 흐르고 있음을 느끼게  하여준 영화이다....
 
인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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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길 옆 공부방 영상을 보고 든 생각

  • 등록일
    2004/08/06 20:34
  • 수정일
    2004/08/06 20:34

푸른영상에서 만든 기차길 옆 공부방 영상을 보고서 인천에 살면서 그곳을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었다.. 그곳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인천 만석동에 있는 오래된 공부방.....



깊이 있는 공부방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때 대학가에 불기시작한 야학과 공부방 교사는 서울의  철거촌과 공단지역이  점차 사라지면서 서서히 그 명맥을 잃어가고 있느데.. 인천 만석동의 공부방은  약 12년간이나 지역민들의 애환을 가슴으로 간직하면서 함께 희노애락을  함께  한 공부방이라는 것을 영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성장한 공부방 어린이... 그리고 지속적으로 기차길 옆 공부방을 지켜온  교사 들... 그들이야 말로 이 시대를 부여않고 살아온 사람들인 것 같다.  계속 한 지역에서 자신의 사람의 터전을 마련하면서 초기의 생각을 가지고  살 아가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만석동 주민들의 애환이라 말로 표현하지만 그들의 삶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막연히 공부방 교사의 삶이 낭만적 지식인으로서 비추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들의 내면을 유심히 살펴보면 무언가 우리와 다른 이상이 있지 않은지 감히 생 각을 해보게 된다.
 
정말 만석동 아이들의 그늘진 얼굴... 삶의 그늘진 모습들.. 마음으로  가슴으 로 느끼지 않고서는 말료 표현하기란 정말 힘들다.
 
인천  만석동이란 곳에 이런 곳이 있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고..  전에 철거촌에서  잠시나마 공부방 선생님 역활을 했던 내가 부끄럽게 느껴진다...

인천 만석동이란 동네에 있는 기차길 옆 공부방이라는 곳을 방문하여 그들의 진한삶 의 단면을 같이 느끼고 싶다....
 
인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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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수 부소장의 강의를 듣고....

  • 등록일
    2004/08/06 20:29
  • 수정일
    2004/08/06 20:29
20세기 운동사에 관한 채만수 부소장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그간의 평가들에 대한 개인적 생각들을 그냥 생각해 보았다....
 
80년 광주로 부터 시작한 이념운동의 성숙과 쇠퇴 한국사회의 계급운동 대한 고찰의 계기였다. 이념운동이 쇠퇴(정확히 말해서 사회주의 국가로 통칭되어졌던 동구사회주의권의 붕괴의 충격 그리고 한국 진보진영의 이념적 빅뱅시기...


내가 운동했던 곳에서는 NDR론(NationalDemocacy Revolution)의 폐기 한 후 모색의 일환으로 일국적 사회주의에 대한 재고찰이라는 한국적 사회주의 구현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한국 정치 경제 문화 사회에 대한 접목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사추위와 민중회의의 통합을 통해 만들어진 민정련등 합법정당 전술을  구사하면서 자신들의 이념적 조직적 고리들을 하나둘 읽어갔다.)폐기하고 한국적 사회주의라는 일국적 사회주의에 대한 망상과 합법정당운동의 과대포장에 얼룩져 조직의 방향들이 거의 소진되어졌던 시기를 기억한다..
 
그처럼 한국 진보진영의 급격한 쇠퇴의 요인이 무엇이였는지 이념에 대한 재고찰이였는지 아니면 운동에 대한 접근방식에 대한 문제였는지 나름대로 고민들을 다시 한번 하는 계기였다.....
 
러시아 노동자 농민들에 의해 건설된 혁명적 사회주의 국가인 소비에트(평의회) 즉 소련의 혁명은 20세기의 충격 그이상의 의미였다. 맑스- 레닌주의가 이념적사회가 아닌 현실로서 만들어질 수 있는 사회임을 보여준 사건이며.. 노동자 인민의 국가는 노동자계급에 의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켜주는 20세기의 잊혀지지 않는 역사적 사건이다.
 
러시아의 혁명에 대한 고찰로 부터 시작한 모델적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는 학계 그리고 학생운동 진영과 진보운동 진영들의 입장을 조직하고 이후 대안적 사회에 대한 전형을 혁명에 대한 복원이라든지 아니면 새로운 사회에 대한 모델적  접근이 추상적 이론이 아닌 현실적 태로서 러시아에서 이루어졌다. 이것이 주는 의미는 맑스주의가 이론적 산물이 아닌 현실 세계에 대한 해법임을 증명하는  계기였으며 19세기 프롤레타리아트여 단결하라는 맑스의 구호가 현실적 과업으로  이룩되어진 사건이다. 맑스주의는 급속도로 노동자 계급 진보적 인텔리겐챠들에게 확산되어졌으면 각 국가들은 인터내셔날을 통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슬로로건 아래 모이고 각 국가들의 계급해방 투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맑스-레닌주의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논쟁의 화두이며 이후 일국적 사회주의  구현이라는 국가권력을 모든 노동자에게로 라는 슬로건 국가의 소멸 등 혁명 기치의 근원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학계에서 맑스주의에 대한 다양한 각도에서의 연구 그리고 실천적 활동에 대한 해법들을 많은 학자및 사회진보운동진영에서의 지속적 토론의 개재들이다.
 
그러나 아무도 아직도 이념적 사회주의라는 기치에 대해 명확성을 가지지 못하며 자신의 조직적 강령과 노선으로 채택되어지고 있지 못하는 현실에서의 이번 강연회는 초보적 수준의 강연회였을 망정 현재 한국진보진영 운동에 대한 성찰의 기회였다.
 
착목한 지점은 스탈린적 한계가 구체적인 사회주의 붕괴의 요인으로 간주되어질 수 있는 담론인가라는 문제 부터 시작한 20세기 사건과 계급대립의 양산에 대한 이야기들이 진행되어지면서 과거로의 여행 그리고 그 당시에 대한 생각들을 한번해보는 계기였으며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과연 스탈린의 공산당의  일당 독재라는 형태의 논의점들.. 여기서 우린 스탈린적 과오들에 대한 맹공적인 비판과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성찰의 부재라는 측면들을 강조하면서 그의 당운영및 이행기적 사회주의 구현(사회주의라는 것은 레닌에 의하여 규정하자면 과도기적 이행기라 볼 수 있다... 러시아에서의 혁명이 부르주아지혁명을 통한 사회주의 혁명으로 전화 즉 2단계적 혁명론이라고 우리는 속칭해서 부른다.. 이사회에 대한 공산주의로 가기 위한 끝임없는 혁명적 사업의 완수는 즉 노동자 평의회에 대한 권력의 이양과 국가라는 제도에 대한 국가의 소멸론적 근접 그건 모든 권력과 생산수단이 노동자들에 의해 장악되어지고 운영 되어지었을 때 공산주의로 가는 이행기적 사회주의라는 것은 완수되어질 수 있다.

공산주의라는 개념은 분명 맑스가 사용한 언어이지만 러시아 혁명기에 레닌에 의한 맑스-레닌주의적 입장에서 단계론적으로 사회주의를 통한 공산주의로의 전환이라는 고민들이 이루어졌으며.. 또한 국가라는 토대가 서서히 소멸해가는 과정 속에 모든 상부구조에 있어서의 실질적 프로레타리아트 독재는 구현되어질 있다는 고전적 사상들에 대한 생각들이다..   국가와 혁명과 공산당 선언에서 비추어 견주한다면....)이  실질적으로 구현되어지지 못하고 당에 있어서의 중앙적 통제의 강화가 이루어졌다....
 
  채만수 부소장님의 이야기에 대한 나의 사견을 부쳐 이야기 한다면은  러시아 사회는 아직 자본주의라는 제도가 아직 구현되지 못한 생산력이 낮은 상태였다라는 점을 창목한다... 그 당시 러시아에서는 플레하노프를 위시한 사회민주주의 세력(사회과학서적에서 사회주의자를 속칭 할때 사회민주주의 자라고 속칭한다)과 나르시즘을 위시한 농촌 계몽운동을 하는 세력들이 존재하였다. 나르시즘은 우리가 중학교인가 고등학교인가 에서 배운 상록수가 계몽주의 운동으로  대표되어지는 브나르드 운동이라는 농촌계몽활동의 전형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무정부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아나키즘에 빠진 러시아 인민들 상황들... 여기서 스탈린주의의 오류라는 점들을 그동안 많이 논의하였다. 러시아 사회는 혁명의 시기에 있어서도 봉건제 사회에서 자본주의로 전화되어지는 과정에 있던 봉건제와 자본주의적 요소가 혼재되어진 사회였다... 이러다 보니 혁명이후 레닌의 사후에 스탈린에 의해 당장악이 이루어진후 당에 대한 통일성 강조와 당강화와 이행기적 혁명을 완수하기 위한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대한 스탈린의 기계적 생산성 향상 정책(높은 생산력으로 도달하기 위한 인위적 노동강화)에 대한  문제점들을 지적하였다....

 음 해깔린다 나르시즘인가 나드로키주의자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책을 읽은지 오래되어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 것을 보니 머리가 썩어가고 있다는 반증이이겠군요... 흐흐
 
그러나 이러한 후문도 존재한다...
레닌에 의해 주창되어지고 계획되어진 NEF(New Economic Plan)  일명 네프정책에 대해 구체적으로 실현한 인물이 스탈린이 었지 않았느냐는 반문들... 그리고 당의 결속력과 강력한 중앙집권이 필요한 러시아의  혁명 이후의 사회에 대한 모습들은 올바르지 않았는지... 그러나 이 논의에서 조금 비켜 생각하면 스탈린의 당의 강제는 개인적이 사견과 정치적 논리들의 혼재속에서 이루어졌다는 후문들이 있다. 나야 사회과학자도 아니고 학자도 아니니 판단의 기준이 분명 없지만 노동자들에 의한 자발성에 의한 당의 강제가 그 시기에 적절하게 배치되어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내적 모순들이 존재하지 않았을까라는 문제들이 든다.
 
채만수 소장님은 그건 아마도 제국주의의 방해책동에 의해 어쩔수없이 그렇게 우리에게 비추어졌다는 이야기를 한것으로 생각해 본다.... 러시아의 붕괴는 한 요인에 의해 붕괴한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페레스트로이카라는 개방화 물결과 자유화 물결로 러시아의 붕괴 요인으로 복기엔 좀 한계들이 내재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러시아가 과거와 같은 자신의 사상적 국가로서의 사회주의 기치는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평가는 어떻게 날지라도 내재적 모순에 의해 붕괴 되어졌다는 사실을 우린 간과해서도 안되는 일이고 모든 책임을 스탈린주의라고 치부하기에도 채만수 부소장의 말처럼 여러 요인이 있다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관료화니 코민테른이라는... 문제보다 제3 인터네셔날 이후  코민포름이라는  러시아 중심의 국제적 사회주의 운동의 흐름들의 내적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다만 복잡 다양한 내재적 문제들 속에서 러시아라는 국가가 혁명 이후 너무 쉽게 붕괴 되어졌다는 점들에 있다,
 
이후도 계속 논의하면서 가져가야할 문제이지만....
이번 강의를 계기로 더욱더 심층있게 고민해 들어가야 겠다.
 
또한 소련사회 규정이에 있어 채만수 부소장님의 이야기들... 채만수 부소장님은 과연 어느세력에서 소련의 사회적 규정을 국가자본주의라 불리우는 세력들의 논의에 대한 확고한 입장... 과연 소련사회가 자본주의로  지칭되어질 수 있는 요인이 어느 곳에 있는가....
 
국가 자본주의를 이야기한 조직은 아마도 IS(국제사회주의자 그룹)에서 90년대 중반에 소련사회 규정을 하고 자신들의 활동을 펼치면서 노동자 연대라는 대중신문을 통해서 널리 자신들의 입장을 전파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논리는 이념적 국가의 붕괴에 대한 명확성을 제시해 주었다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들의 반정립적 사회주의 사상들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짜맞추기하는 것이였지.. 나의 사견임. 또한 중요하게 착목할 지점은 트로츠기가 스탈린에 의해 암살되었다는 것.  둘은 정치적인 앙숙의 관계였다.그리고 혁명의 시기에 있어 객관적인 사실에 의하면 전략가와 전술가로서의 면에서 트로츠키가 스탈린보다 더 뛰어났다는 사실.
 
그러나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쉽게 말해 도미노 게임식의 혁명)이 과연  일국적 국가라는 틀거리와 제국주의 시대와 냉전이라는 자본주의와의 첨예한 대립속에서 과연 타당한 문제였던가라는 문제들이 있다.
 
혁명에 있어서 지금은 어떨지는 잘 모르지만 난 개인적 사견은 아직도 연대라는 말에 대헤 동의. 그렇다고 그것이 각 사회규정과 정치적상황이 다른 자본주의 차이속에서 혁명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 문제가 아니다라는 생각이다.. 즉 아직도 일국적 사회주의자체에 대한 옹호를 하면서 난 각 국가간의 벽이 아무리 허물어 진다고 하지만 자본주의라는 국가들은 거의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가독점자본주의자들에 의해서  종속적으로 규정되어진다는 사실을 착목하면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구호 자체를 확장적 시각으로 해석하였다라는 생각을 한편으로도 한다....
 
이렇듯 20세기는 혁명과 혁명의 쇠퇴를 함께 지닌시기이다...
또한 성과들이 더 많은 사실들... 맑스주의가 이론적인 모델로서의 사회가  아닌 우리들의 현실사회였다는 점들을 본다면 정말 계급사회  허황된 끔이 아니였다는 점들이다.
 
오늘 이야기 하면서 여러 생각을 해보았지만.
21세기는 필연적 사회주의가 구현되는 세상이 될 것라는 말들이..
아직도 가슴속에 남는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서....

인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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