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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10/18
    짧은 공장생활....
    간장 오타맨...
  2. 2004/10/17
    어느 재개발 지구에서의 추억(4)
    간장 오타맨...
  3. 2004/10/17
    여름휴가 추억....
    간장 오타맨...
  4. 2004/10/17
    라디오는 일하는 이의 벗입니다.
    간장 오타맨...
  5. 2004/10/16
    토요일에 쉬지 않는 사람들....
    간장 오타맨...

짧은 공장생활....

  • 등록일
    2004/10/18 22:41
  • 수정일
    2004/10/18 22:41

참 언제 가도 정겹고 힘이 넘치는 공간 공장이다.

이 공간에 잠시 머물렀고 노동을 하였고 땀을 흘렀고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았다.

내가 늘상 접하던 선진노동자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이 참 노동자라는 사실을 나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조직되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 비록 민주노총 사업장 소속의 노동자들은 아니다. 그리고 전태일 정신이니 민주노조이니 하는 말들과 담벼락 쌓고 사는 이들이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누구보다 정직 근면 성실하게 여지껏 삶을 이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너무나 순박해 노동조합 결성을 못하고 주어진 직업이 천직이라 생각하고 사는 이들이다.

그들에겐 민주노조라는 말보다 월급날 월급명세서에 적힌 숫자가 더 중요하다. 무엇보다 먹고살기에 버겁게 살지만 자신의 육체를 팔아 번 돈으로 당당히 살아온 우리내 형제요 어버이들이다. 그들이 비록 민주노조라는 깃발은 세우지 않았다. 너무나 순박하고 정직하기에....

 

우리가 앞으로 조직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그러나 나는 다만 작은 바램을 가져본다. 이들이 부당노동행위와 고용불안의 먹구름에 들게 하지 말라는 소망을 가져본다.

 

찗지만 내 집처럼 편한 공장... 이곳은 치열함이나 분노는 없지만... 정직한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가르쳐 주는 공간이다.

 

앞으로도 이 곳에 갈 수 있기를 기원하며... 오늘 짧은 5일간의 공장에서 용역으로 근무를 마감하였다.

 

다들 일 못한다구 구박은 주었지만 헤어질 마당이 되어서 고생하였다는 한마디가 얼마나 고맙던지... 근육이 땡치는 고통이 다 치유 될 정도였다.

 

이 공간을 빌어 고맙다는 말을 남겨본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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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재개발 지구에서의 추억

  • 등록일
    2004/10/17 22:48
  • 수정일
    2004/10/17 22:48

2000/03/13 23:35
 
추억이라 하기에는 좀 그러한 철거촌 아니 재개발 지구에서의 세입자 투쟁에 결합적이 있었다.

 

나는 가슴과 마음 그리고 뼈속으로 스며드는 그들의 아픔을 모르면서 투쟁이라는 말들을 하고 설치고 다녔었다. 그들의 고충과 그리고 철거라는 그들의 자의감에 대한 생각없는 투쟁이라는 당위에 대한 말들... 용역깡패들이 몰려오면 골리앗 사수투쟁을 하라는 말들... 네가 철거민이 아니니까 쉽게 말하고 쉽게 행동하 는 그러한 모습 속에 난.... 철부지 였는지 아니면 투쟁을 쫓아다니는 몰이배 였는지도 모르게 난 당위와 그리고 원칙이라는 가식들을 가지고 그들을 대했다.

 

그러나 그들은 철거투쟁을 하면서 늘 구호로  임대주택 쟁취!  가수용 단지 건설! 등만의 문제로 치부하기엔 너무 아픈 그들의 마음을 정작 보지 못했다.  아니 보려고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단지 투쟁이 좋아서 그들이 싸우니까 노빈학연대이니 뭐니 그런 허울 뿐인 단어에 휩쓸려 모리배 정도로 정착했을 지도...



그들도 가족을 거느린 사람들이다. 그러나 철거민들의 투쟁을 보면서 늘 생각하지만 늘 안묵적으로 그들에게 투사가 되라 아니면 철거투쟁가가 되라는 보이지 않는 압박과 강요들이 그들을 때론 힘들게  때로는 어렵게 만든다. 대부분의 철대위분들이 그렇듯이 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대부분의 남자의 경우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철거지역 사수와 투쟁에 온힘을 기울인다.

 

그러다보면 그들의 가정은 점차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아니 모아둔 저축통장을 하나둘씩 깨가면서 투쟁을 한다는게  올바르겠군... 그러다 보면 또한 가족이란 울타리에 보호받고 귀여움을  맘껏 받으면서 자라야할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고 죄스러움들이 때론 그들을 힘들게 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중학교 고등학교의  자녀를 둔 철대위 분들은 자식들이 학교에서 받는 어려움들....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그들을 죄여 온다...


그들도 철거민이기 전에 이땅의 국민이요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 땅의 어버이 들이다. 어찌 자식사랑에 지위 고하를 구별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무너져 가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몇푼의 이주비를 받고 철거싸움을 종료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게 아니다.

그들이 이주비를 받고 떠나서 철대위가 무너졌다고 분노하는 많은 학우들,, 단지 우리가 철대위분들 이주비 챙겨줄려고 노빈학연대투쟁을 했냐고 푸념하는 후배들을 보면서.. 정말 안타까움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히 나마 느낄 수 있었다...


나의 푸념과 함께 나는 철거민이 아니면서 왜 그들에게 투쟁만을  왜 쳤을까.. 그들이 늘 그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난 무엇을 하였단 말인가... 그들이 자식걱정을 할땐 난 골리앗 보수와 철대위 강화를 위한 교육을 하자고 말한 것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겠다..  지금 들어선 정말 한심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투쟁도 어찌보면 전쟁에서와 마찬가지로 보급과 무기의 문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지금 든다.

보급이라면 그들이 늘 자식 학비 걱정, 생계걱정, 집걱정 없이 늘 자신들의 주장을 펼수있는 그런 조건들이 구비되었으면 과연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


그후가 어떤 무기인가? 무기라고 해서 뭐 사물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고 끝까지 자신들의 영구임대 주택쟁취! 가수용단지 건설! 이땅의 노동자 민중 빈민들의 주거권 쟁취라는 더 커다란 내용들의 무기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았는지 생각해 본다.

 

뭐 지금도 투쟁이라는 것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건 나라는  주관에서 너라는  존재가 서로 만나 주관이 아닌 서로 상호관계속에서 만들어내는게 아닌지... 잘 모르지만 그때는 그들의 심정을 아무것도 보지 못 하였다. 싸워주는 그들만 바랬을 뿐...

 

정말 아픔을 함께 가지고 투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함께 나누고 함께 나가는 그러한 모습으로....

 

인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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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추억....

  • 등록일
    2004/10/17 22:34
  • 수정일
    2004/10/17 22:34

2000/07/18 14:11 
 
석모도 도착 하루
그날따라 그동안 내리지 않았던 비가 내리면서 출발부터 수련회가 잘 진행 되어질까라는 의구심을 가지면서 출발을 감행하였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더니 갑자기 강화터미널에 도착하면서 부터 비는 장대비로 바뀌어 수련회가는 우리들을 불안케 하였다.. 그러나 강화도와 석모도간의  배편은 운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우리가 표를 끊고 석모도에 들어오자 마자 비는 비가 아니었다. 하늘에서 소방 호수로 물을 뿜어내듯이 비는 그칠줄 모르게 좔좔하늘에서 내였다.

그리고 우리가 배로 도착한후 강화도와 석모도간의 배편이 운행 중단되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정말로 아찔한 순간이었다. 좀 늦게 도착하였다면 우린 아마도 석모도에 들어오지 못하고 그냥 강화도 이름모를 어느곳에서 수련회를 보냈을 것이다.

 

비가 좀처럼 그치질 않았다. 비가 계속해서 내려 우리 일행들이 비로 인해 온 몸이 젖어 버릴 지경이 었다. 그러나 어느 자상한 석모도 유원지 식당겸 횟집을 하시는 아주머니 한분이 비를 피해 들어오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일행은 잠시 머뭇거리고 있다가 비를 피해 들어가기로 결정하고 그집에 들어가서 비를 잠시 피하기로 하였다.

 

시장기가 감돌고 있던 일행들은 김밥을 안주삼아 소주를 먹기로 하였다. 비도 좔좔 하늘에서 내리고 시장기는 감돌고 요기차 몇잔의 소주를 먹기로 하였다.


그러나 소주와 김밥만 먹기에는 너무나 미안하였다. 그래서 일행중 비상금을  가지고 있었던 여러명의 사람들이 새우와 쑥 튀김과 인삼대추막걸리를 시켰다.  소주는 우리가 가져온 米ZOSU(경월에서 나온 미색소주.   월-마트에 있던 상점원의 꼬임에 빠져 술보다는 경품을 많이 가져가기로 하고 米ZOSU를 구입하였다.  경품은 무려 소주값과 같았다. 한박스를 구입했는데 구입한 가격과 경품가격이  거의 같은 수준이었다. 미색소주 20병 한box 1만5백원. 경품 1만원 상당 히히^^)를 먹기 시작하였다. 우린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잠시 비를 피해 있기로 하였으나  일정은 여기서 부터 수정되어지기 시작하였다.



아주머니의 자상함 그리고 비에 의해 우린 계획을 수정하였다.
원래 계획은 석모도 민머루해수욕장에 들어가 텐트를 치고 2박3일 음주가무를 감행하려 하였으나 비의 상태와 아주머니의 자상함에 우린 계획을 수정하고 민박집을 잡고 석모도를 차근차근 둘러보기로 계획을 수정하였다.


그리고 지부장님의 민박집 가격흥정.... 유원지의 상인들은 고단수라는 것을  새삼 석모도에서 느낄수 있었다. 비도오고 민박집 구하기도 힘들다는 핑계호  우리 일행들에게 더이상 가격을 내려 받을 수 없다는 민박집 주인의 단호한 태도에 우리 일행들은 그냥 2박 3일 6만원에 흥정을 마치고 민박집을 구했다.

 

그리고 민박집으로의 출발.....
내평생 이런 집에서 민박하기는 처음이다.(너무 환상적인 집이다. 전통가옥을 개조해 겉과 속이 전혀 딴판의 집이었다.) 6만원에 별장을 빌려 쓰는 기분이  들었다. 방 두개와 거실 그리고 주방이 딸린 집이었다.  독채를 우리가 6만원에 빌렸다는 사실이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너무나 좋은 집에었다. 그리고 모든 주방기기가 가추어져 있는 집이었다. 먹을 것만가져가면 모든것이 해결될수 있다.  우린 인천에서 강화도 석모도 까지 무거운 주방기기와 그리고 잠동사니를  가져왔는데 하나로 이집에서는 필요치 않았다. 오로지 먹을 것과 음주가무를 할 수 있는  술만 있으면 된다. 전기밥통, 가스레인지, 그릇, 퐁퐁 등 다 가추고 있었다.  한가지 없는 것은 수저와 젖가락이었다.

 

민박집에서 석모도에 새로난 농수 배수로로의 출발....
주인집 아저씨는 물고기를 잡기위해 그물을 치러 간다고 하였다. 우린  아저씨와 함께 그물을 쳐주는 대신 물고기 몇마리를 매운탕 끌여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무조건 아저씨를 따라가서 그물 치는 것을 도와주었다.
바다의 짠기운이 감도는 바람을 가르면 우린 검을 하늘에도 굴하지 않고  그물을 쳤다. 서해 바다이지만 정말로 바람의 시원함은 지금도 잊기 못하게 느껴지고 있다. 더위를 날려 버릴 바다의 거센바람들 정말로 생각만해도 시원하다...


그물을 마치고 다시 민박집으로 들어와 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나서 우린  본격적으로 술먹기에 들어갔다. 술을 먹고 있는 도중 민박 주인집 할머니가 찾아와  직접 수확한 토마토를 우리에게 건내면서 마음껏 먹으라고 했다. 우린 직접  수확한 토마토와 숫불에 익혀지는 삽겹살에 술을 물먹듯 위장으로 집어 넣었다.  공기의 상쾌함과 술의 알딸딸함에 취해 우린 석모도 하루를 술과 함께 보냈다....

 

담배가 없어 진석이와 난(간장 오타맨) 폭우를 속에 석모도 시내를 비를 쫄딱 맞아가며 담배를 사러갔다. 정말 비가 많이 내려 앞이 보이질 않을 정도의  폭우였다. 그러나 진석이와 나는 담배를 피워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푹우를 해치면서 담배를 사왔다. 그러나 담배를 사오라는 사람들은 다 잠을 자고 우린 비에 젖은 옷 을 벗고 샤워실에서 샤워를 한후 옷을 갈아입고 담배를 피려는 순간 오면서 뜯어놓은 담배가 비에 젖어 거의 회생불능 상태가 되어있었다.   어찌 구한 담배인데 식당에 한개 남아 있다는 담배를 애걸복걸하면서 사온 담배인데 제대로 필수  있는 담배가 없다니... 오호통제라.........


이에 우 린 이와중에도 담배를 피워야 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중 양호한 담배들을 골라 가스랜지에 구워 놓고 담배를 피웠다....  담배 피는 사람의 고충이 이리도 서러울 줄이야...... 흐흐 T.T

 

석모도 이틀째.....
비가 많이 내렸는지 텔레비젼에서는 수재상황이 특보와 속보로 나오고 있었다.


석모도를 둘러봐도 비피해상황은 확인할 길이 없었는데, 경기도 북부의 비피해가 아주 심각함을 느낄수 있었다... 우린 이런 와중 한 누군가가 우린 수련회 (야유회)게 아니라 피난 왔다라는 말을 하면서 비피해 상황을 예의 주시하였다.


그리고 아침식사 겸 점심 식사 진석(곰돌이)이는 전문 요리사였다. 정말로  요리 솜씨가 가공할 정도로 굉장하였다. 장인의 정신을 엿보듯이 도마에 야채를  넣고 정성스럽게 썰고 있는 모습이 정말로 일류 요리가 저리가라 였다.  우린  맛있게 진석이가 요리한 카레와 여러가지 반찬을 가지고 아침겸 점심식사를 마쳤다.  점말로 맛있는 카레였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진석(곰돌이)  요리강연회를 열어야 겠다. 히히^^

 

비피해가 좀 몸으로 느껴 지기 시작하였다. 할머니는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지이시면서 밤새 비로인해 떨어진 고추들을 손질하고 쓰러진 고추들을 일으켜 세우고 있으셨다. 지부장님 친구이신 박동호형이 할머니를 도와 우리가 쉬고 있는  동안 고추밭 일을 도와주고 오셨다. 그리고 양손에 탐스러운 만큼 먹음직스러운  수박 2개를 앉고 오시면서 할머니를 도와주었더니  수박을 주셨다고 하시면서  수박을 먹자고 하였다. 우린 해장술을 겸해 수박에 소주한잔을 곁들어 먹었다.

 

그리고 민박집 주인아저씨는 어제 쳐놓은 그물 하나를 걷어오셨다. 비가 많이 내려서인지 정말로 고기들이 많았다... 메기, 잉어, 붕어, 강 준치 등 여러 종류의 물고기들이 그물에 엉켜 있었다. 우린 아저씨와 함께 그물에 걸려있는  고기들을 하나하나   내어서 고르고 있었다. 반은 죽었고 반은 살아서 꿈뻑꿈뻑 숨만 내쉬고 있었다.  그물을 다 겉어내고 난후 아저씨가 가져간 물고기를   고나서  우린 죽어있는 강 준치를 4마리 정도를 골라 매운탕을 끌여 먹었다. 난 알레르기가 있어 매운탕을 못먹어 맛있다는 강 준치 매운탕을 먹지 못하였다. 그러나 먹은  사람들의 이구동성은 정말로 맛있다는 찬사를 자아내었다. 흐흐 난 민물고기를  못 먹는게 한탄스럽기 까지 했다.(민박주인집 아저씨는 정말로 야속하게도 메기 한마리도 우리에게 남겨주지 않았다. 민물고기를 잘 먹는다는 사람들이 대부분  메기 메운탕이 맛있다고 하는데 우린 메기메운탕 대신 붕어와 준치 메운탕으로 물고기 맛을 달래야 했다....

 

그리고 휴식과 비피해상황에 대한 보도를 보면서 휴식을 하였다.
휴식을 마치고 난 후 우린 석모도 시내로 다시 나가기로 하였다.  석모도에 들어와서 어찌 조개구이를 먹지 않고 그냥 갈 수 있으랴... 우린 조개를 사러 석모도 시내로 나가보았지만 석모도 시내에서는 오로지 새우젖과 여러종의 젖갈만을  팔고 있을뿐, 조개는 구경할 수 없었다. 이런 와중 사람들은 조개를 갯벌에서 케자고 하였으나 지역주민들이 지형을 모르면서  조개를 케는 것은 의험하다고  말해 우린 배타고 나가기로 하였다. 강화도 선착장에 가면 조개가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을 가지고 강화도로 나가보았지만 정말로 조개를 찾기가 영 힘들었다.  여러번 주변을 돌와보았지만 강화도 외포리에는 조개가 없었다. 그런데 배를  타고 다시 석모도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선착장에서 작게 식당을 하시는 아주머니가 주변을 잘 둘러보면 있을것이라고 말을 하였다. 그래서 다시금 우린 조개 찾기에  나섰다. 그런데 정말로 조개가 있었다... 여러 종의 조개는 아니었지만 두 종류의 조개가 있었다. 요즘 병균이 심해 조개를 잘 팔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면서 조개를 외 먹냐고 하게에 우린 조개 구워 먹을 려고 한다고 말을 하면서  조개구이를 할 조개를 2kg 만원어치를 사서 들어왔다....

 

그리고 저녁식사후 최후의 만찬....
번개탄에 조개를 지글지글 구우면서 우린 조개구이의 맛에 다시금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술을 먹었다... 노래를 부르면서 신나게 조개구이를 먹었다. 그런데   또 문제가 발생하였다.. 가져온 소주 20병이 금새 바닥이 나서 우린 다시금  술찾기에 나섰다. 술을 사러갈 사람들을 정해 술을 사러 시내로 나가려고 하는데  민박 집 주인아저씨가 차를 몰고 오셨다.(술이 만취한 상태에서 음주운전을 하고 나타나시더니 술이 있다면서 얼마나 필요하냐고 우리에게 물으셨다. 그래 우린 한 4병 정도의 술이 필요하다고 말한 후 술을 받아왔다. 그리고 4병의 술과 함께 우리의 기억은 가물가물 사라지기 시작하면 석모도의 이틀을 보냈다.

 

석모도의 마지막 날.....
정말로 비피해가 장난아니었다. 상당히 심각한 모양이다 사상자도 많이 났고  재산 피해도 상당수에 이른다고 하였다. 강화도 석모도에는 비만 많이 왔다.  그리고 그렇게 비 피해가 심하다는 생각을 못하였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난후 우린 낮잠과 휴식을 취한 후 오후 2시경에 짐을 다챙기고 석모도 시내로 나왔다.(민박집 주인 아저씨의 자가용을 타왔다.) 배를타고 나와 외포리에서 강화도 터미널에 나와 인천 송림동에 가는 직행버스를 타고  인천으로 오는데 김포 일대의 논과 밭들이 비에 잠겨 있었다. 이 광경을 보면서 우린 이제서야 비가 장난아니게 많이 내렸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비가 억수로 내리는 와중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굳건히 놀러갔다 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남는군요.. 이때부터인가 놀러갈려는 날짜가 잡히면  모두 비가 오는날이 되는 불길한 징후가 보였다.... 흐흐 T.T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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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는 일하는 이의 벗입니다.

  • 등록일
    2004/10/17 20:23
  • 수정일
    2004/10/17 20:23

라디오는 일하는 사람들의 벗입니다.

공장 한켠 옛날 구형 라디오가 성능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고음을 내면서 작업장에서 노동하는 일손에 힘을 불어넣어 줍니다.

 

혹자들은 올드미디어라 라디오를 구식으로 치부하며 인터넷 쌍방향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라디오의 이점은 다름아닌 조작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번거롭다면 자신이 애청하는 채널 주파수와 청취하는 프로그램을 메모하는 것 이외엔 별다른 어려움 없이 누구나 라디오를 청취할 수 있습니다. 

 

또 딴 일을 하면서 들을 수 있는 매체라는 장점을 갖은 매체입니다. 고정하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매체이기에 작업장에서 접근성이 널리 확대되지 않았나 생각듭니다. 쪼그만 공장엔 라디오는 필수 매체이니까요. 얼마나 정겹습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누군가의 소리를 들으면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도 그래서 인터넷방송을 들으며 작업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마도 라디오도 인터넷시대를 맞아 인터넷으로 사연을 받거나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실시간 모니터하여 방송맨트로 사용하는 것 이외에는 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이야기가 있고 노래가 있고 사회 소식을 접할 수 있는 라디오.... 작업장 이동이 많은 공간에서 누구나 청취하기 쉽고 고된 노동의 시름을 달래는 올드미디어 입니다.



 

공장에선 지금도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와 진행자들의 방송맨트를 들으면서 일하는 손길을 바삐움직이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매일 잔업, 철야, 특근으로 세상과 동떨어져 살아가는 박스공장 노동자들에게 공중파 라디오는 세상의 소식을 접하고 최신가요 올드가요를 듣는 중요한 보물상자입니다. 비단 이곳만이겠습니까?

 

시대에 밀려 구세대로 전락한 늙은 노동자들에게 라디오는 친근한 벗이며, 그 분들 젊은 시절의 추억의 방울방울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아닐까요.

 

오늘도 여김없이 라디오를 틀어놓고 작업하는 광경.... 노래 한곡이 끝날때마다 시간 잘 흘러간다 외쳐대면서 일한 내 모습도 반성해 봅니다. 오늘 참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웃음지어 보았답니다.

 

스리랑카 부부 노동자의 밝음 미소.....

노래는 만국의 공통어인가 봅니다. 한국어를 모르는 이분들도 라디오 소리를 들으며 콧노래 소리와 함께 부부가 정답게 박스포장일을 하였답니다.

 

내가 용역으로 나가는 공장 여(女)반장은 일할때는 매몰차지만 정이 많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다른 작업장에서는 한국어가 서툴다고 화를 버럭내거나 욕지거리 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을 홀대하는데 이곳은 그렇지는 않더군요. 비록 박봉의 월급을 받지만 이국땅에서 힘겹게 노동을 하는 이들에게 따스한 말한마디를 전해줍니다. 참 보기 좋더군요.

 

스리랑카 노동자 부부 참 정답게 서로 이야기하며 일하는 모습 보기가 좋더군요.

 

오늘 참 흐뭇했습니다. 그리고 점심때 같이 소주한잔 반주로 먹었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특근의 맛은 점심때와 쉬는시간에 먹는 소주맛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답니다.

확 박스공장에 취업해 버릴까라는 충동이 들었습니다.

 

좋은 하루였습니다. 일요일 작업장에서 돈을 번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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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쉬지 않는 사람들....

  • 등록일
    2004/10/16 21:38
  • 수정일
    2004/10/16 21:38

내가 용역으로 나가는 박스공장엔 쉬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박봉에 시달려서 그런지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잔업에 특근을 하면서 삶을 이어나가는 이들 모습을 보면서 삶이 애팔프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노동조합이 없어서 이겠지.... 임금인상은 기대도 하지 않고, 매일 잔업이 있다는 것에 힘을 입어 일하는 그들의 모습.... 난 과거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는 착각을 해본다.

 

내가 다녔던 남동공단은 이러지는 않았다.

박봉이지만 일요일은 어김없이 쉬는 사람들이 많았다. 노동이 고달프더라도 일요일은 지켜 쉬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내가 가본 용인 남사의 박스공장은 너도나도 할 것없이 일요일 특근으로 박봉의 월급을 불려나가고 있는 모습은 참 과거 노동자들의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한다.



 

오늘도 병역특례노동자들과 젊은 친구들은 4시간 근무만 하고 나가고 늙은 노동자만이 현장에 남아 특근을 하였다.

 

월급날이 전일이라 돈을 쓰러나가는 이들이 많아서 그럴거라 생각해 보지만.... 주 5일제가 적용되지 않는 사업장.... 최저임금에 미달한 노동자들이 많은 사업장이라고 한다.

 

사장 왈 잔업하면 돈 더 많이 받고 좋지라고 말을 하는데, 정작 사람 필요한 것은 사장이지만 당당히 말하는 태도를 보면서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힌다. 어이가 없다. 자신의 돈벌이를 위해 특근을 시키면서 자신이 마치 인심 쓰는 것 처럼 말하는 태도... 자본가의 본성이 아니구 무엇이겠는가?

 

남사에 가는 길은 경부고속도로를 넘어가는 길이 있는데.... 아침 늦어서 택시를 타고 가는데 경부고속도로에 즐비하게 늘어선 자동차 관광버스가 많이 눈에 뛰었다. 가을이라 단풍 나들이 가는 이들이겠구나 생각을 해본다.

 

주 5일제로 레져다 여행이다. 다들 산과들로 이리저리 싸돌아 다니지만 정작 내가 용역으로 나가는 공장 분들은 몇 푼 되지도 않은 특근수당을 받기 위해 기어이 공장에 나와 일을 한다.

 

내가 나가는 공장은 경총에서 지침으로 발표한 주 40시간 노동제를 한다. 그러나 변형시간근로제를 바탕으로 일을 한다. 주 7시간 노동에 토요일 4시간 근무... 나머지는 모두 잔업으로 처리한다. 시간당 150% 수당을 부여해주지만 토요일을 나와야 하는 노동자들의 심정은 어떠하곘는가?

 

스스로가 노동자라는 생각은 하지만 조직하고 노동조합 만들 엄두를 못내는 순박한 시골 아주머니 아저씨 노동자들이다. 사람들이 독하지 못해 아마 노동자로서 자신의 정당한 헹위를 모르거나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으리라..... 우리내 노동자들의 그늘진 모습이다.

 

많은 노동자들이 이런 생활을 하곘다는 생각을 해보니... 가슴이 막혀온다.

 

나는 단지 돈벌기위해 간 이곳에서 삶의 고단함을 느끼며 돈을 받고 하루살이 삶을 이어나가고있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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