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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3/13
    이주노동자 연대의 밤 행사에 갔다왔다.
    간장 오타맨...
  2. 2005/03/10
    [글] 윈도우 라이센스 정책 변화와 리눅스에 대하여
    간장 오타맨...
  3. 2005/03/10
    흐린 봄날...
    간장 오타맨...
  4. 2005/03/10
    이 곳에 내려와서
    간장 오타맨...
  5. 2005/03/09
    Chiapas IMC (Indy Media Center) cartoon
    간장 오타맨...

이주노동자 연대의 밤 행사에 갔다왔다.

  • 등록일
    2005/03/13 01:51
  • 수정일
    2005/03/13 01:51
이주노동자 연대의 밤 행사를 갔다 왔다. 그곳에서 정말 반가운 이들도 만났다. 같이 학생운동이라는 것을 하였고, 이주노동자 운동의 산역사인 동지를 만났다. 오산에 내려와서 일하게 된 것이 다행이라는 의로의 말 또한 들었다. 장목사님에게 저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듣는데 싫지가 않았다. 고맙게 다가왔다. 그전보다 얼굴이 많이 좋아보였다. 그래 지금도 그렇게 소리없이 세상을 움직여 나가는 동지들이 있기에 간혹 집회나 호프에서 만나면 반갑다. 아니 정말 고맙게 다가온다. 지금도 변치 않음을 유지하고 살아가고 있음이 고맙게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 또한 힘을 얻거나 힘을 받는다. 이제 같은 공간과 같은 활동이라는 것을 하지는 않지만 그 곳에서 만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정말 정겹게 다가온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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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윈도우 라이센스 정책 변화와 리눅스에 대하여

  • 등록일
    2005/03/10 14:46
  • 수정일
    2005/03/10 14:46
** 동네주민 게시판에 들어가 몰래 훔쳐왔습니다. 글이 좋아서... [글] 윈도우 라이센스 정책 변화와 리눅스에 대하여 kldp에서 논의가 있어 올렸던 글입니다. http://bbs.kldp.org/viewtopic.php?p=234501#234501 --------------------------------------- 주제: 윈도우 구매 고객도 늘어나도 리눅스 쓰는 사람도 늘어나겠지요 윈도우 구매 고객도 늘어나도 리눅스 쓰는 사람도 늘어나겠지요. 윈도우 구매 고객은 주로 기업시장에서 더 많이 늘어날 것이고 윈도우에 익숙한 개인도 등록을 하는게 늘어나겠지요. 이와 더불어 기업시장과 개인적으로 리눅스를 쓰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고 윈도우 고객 성장률보다 더 높을 것 같습니다.


MS를 그냥 심적적으로 미워하는게 아니고 MS가 지금까지 성장을 해온 역사는 남의 소프트웨어 빼앗고 자본주의적인 도덕성(?)에도 걸맞지 않고 OS의 독점력을 이용한 횡포를 통하여 발전해왔습니다. 이것은 자본주의천국이라는 미국에서도 미법무부등에서 반독점법 위반으로 MS와 싸우는 사례에서도 드러납니다. 독점으로 인하여 오히려 자본주의가 계속 발전을 하는데 저해가 된다면 이것을 막자는 것이지요. 한편으로 윈도우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대한 패러다임이라고 할까요? 이러한 것들이 변화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터넷과 정보의 대중화, 리눅스와 공개소스의 발전등으로 인하여 이제 개별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점차 서비스가 중요한 비증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IBM등 굴지의 IT기업들이 리눅스를 지원하는것도 리눅스가 예뻐서 그런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구매, 사용, 지원등이 변화되고 있기에 거기에 조응을 하는 것이지요. 벤더입장에서는 리눅스 등 공개소프트웨어의 발전으로 소프트웨어개발에 대한 부담을 덜고 이것을 이용한 서비스에 더 주력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OS에 대한 생각을 해볼때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반드시 필요한 필수요소라고 했을때 하나의 공공재 성격을 가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렇다고 당장 바뀔수는 없겠지만 OS가 가진 공공재의 성격을 고려한다면 지금처럼 기업에서의 OS지원이 아닌 국가나 정부, 지자체등에서 정책을 가지고 지원을 하는 형태도 가능할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물론 이러한 경우 MS등 자본측에서의 엄청난 공격을 해오리라는 예상은 들지요. "반자본주의적"이라는 이유로. 그러나 중국이나 유럽등에서 MS소스공개를 요구하여 일정부분 비밀로 한 상태에서 들어주고 있고 제3세계국가에서 공개소스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OS가 가진 성격때문에 특정한 기업에 종속되는 경우 더 큰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상황에서 이게 되겠냐고 의문을 가질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반드시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이러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고 또 꿈이 있으면 그 꿈은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사 꿈이 실현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실현할 가치가 있다면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한다고 생각을 하구요. 음. 제가 너무 어려운 이야기들만 했나요. 쩌업~ _________________ 문태준 http://tunelinux.pe.kr http://database.sarang.net ============================================== dsn의 다른 분 답글에 제가 다시 올린 글입니다. 저도 리차드 스톨만의 글은 읽었습니다. 내용은 동의를 하지만 그러한 근거를 가지고 "공산주의자"라고 역으로 비판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빌게이츠가 비판한 것을 역설적으로 비판하기 위하여 썼지만 이러한 경우에는 이미 공산주의자는 나쁜 것이다라는 개념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우익(극우보수수구꼴동세력)이 판쳤던, 판치고 있는 사회에서 좌파다라고 빨갱이라고 하면서 모든 토론과 대화는 멈추고 마녀사냥을 하는 경우가 무척이나 많았지요. 리차드 스톨만은 체제자체에 대해서는 저항을 하지 않지만 비자본주의적인 생각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자유주의자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고 그게 잘못되었다 그런 말은 아니고요. 사람마다 자기 이념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고 그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던 사람이지요. 그렇지만 자본주의의 이윤의 논리에서 벗어나 다르게 생각하는것들을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라고 공격을 하는게 많고 리차드 스톨만의 이념적 지향이 공산주의자는 아니기에 위와 같은 식으로 글을 썼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미국의 사회적인 분위기와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되네요. 이것은 다른 이야기이지만 리누스 토발즈의 부모님이 공산주의자였을 것입니다. (본인은 아니지만) 이에 대한 자료를 최근 본 것이 있는데 아직 인터넷에는 올라오지 않아서 여기 링크를 걸지 못하네요. 리누스 토발즈가 커널 을 개발하고 그것을 인터넷에 올려서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개인만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살고 있던 사회적인 분위기와 가정의 분위기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리누스 토발즈가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어쩌면 리눅스의 역사가 달라졌을지도 모르고 아예 안 나왔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다른 사람에 의해서 리눅스가 나왔을 수도 있겠지요. 리누스 토발즈의 이념이 어찌하든 정보를 공유하고 그것을 함께 개발해나가면서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던 문화적, 사회적인 풍토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자기가 판단하고 생각하여 진행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무의식적인 뒤에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지요. 우리가 모든것을 상품으로서 구매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또다른 사회체제에서는 이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지요. 북한에서 탈북한 사람들이 남한에 와서 병원과 학교에 돈을 내고 가야하는 것이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영국이 자본주의국가이지만 의료는 무상으로 제공을 하는데 이러한 사람이 우리나라에 오면 당황스럽겠지요. ===================================== 그 대안중의 하나가 사회주의, 공산주의였지만 현실의 사회주의국가들은 몰락한 곳들이 많았지요. 우리나라의 경우 6.25 전쟁으로 인하여 남한에서 좌익은 몰살을 당했기에 좌파의 이념과 논리가 다시 등장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87년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을 통하여 좌파가 다시 역사적으로 복원되었지만 현실사회주의권의 몰락과 함께 90년대는 이념의 동요시대였습니다. 거꾸로 80년대 사회주의운동을 받아들였던 쪽에서는 하나의 종교처럼, 성경처럼 맑스레닌이즘을 받아들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또한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요즘 책들을 보면서 다시금 현실사회주의운동에 대하여 비판적인 고찰을 해보고 있는 중입니다. 요즘 보고있는 것이 "유예된 유토피아, 공산주의"라는 책인데 기존의 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을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그와함께 소련 등 현실사회주의국가가 무너졌지만 그 이념적 지향, 자본과 이윤의 논리가 아니라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협력, 연대로 움직이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였던 그 부분들은 결코 잊혀지면 안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사회주의라고 하면 무조건 중앙집권적인 당독재, 계획경제만 알고 있는데 꼭 이런것만은 아닙니다) 사회주의권이 무너지고 90년대 자본주의가 펄펄 날아갈것 같았지만 2000년대 자본의 세계화에 대항하여 새로운 운동의 흐름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존재한다면 맑스와 맑스의 자본주의 비판의 논리는 계속 살아서 생명력을 가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음. 기술관련된 사이트에서 이런 이야기도 하게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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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봄날...

  • 등록일
    2005/03/10 13:02
  • 수정일
    2005/03/10 13:02
회색으로 온통 단장한 하늘이며 도시를 난 좋아한다. 늘 밝지 않은 내 성격 탓도 있지만 난 그런 회색을 동경하거나 좋아한다. 어릴 땐 파란색을 좋아했고, 20대 청춘 빨간색을 좋아했다. 그러나 30하고도 중간에 다다른 지금 난 회색을 좋아한다. 혼탁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어둡지도 않은 그런 회색... 회색을 이야기할때 드는 생각들 기회주의.... 그래도 그 기회주의자라도 되어보고 싶다. 기회주의자가 되는 것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온통 도시는 회색 그런 색깔로 덧칠된 그런 풍경을 난 좋아한다. 컴컴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밝지도 않은 그런 회색도시... 그런 회색은 나의 현재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 회색하늘을 쳐다보며 이후 어떠한 삶을 살아갈까 잠시 망상에 사로잡혀 보았다. 회색하늘.... 회색 구름이 거치고 나면 찾아올 해를 떠올린다. 그 밝음에 화사함... 눈부심을 떠올린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도시는 온통 회색이다. 그러나 나는 확신을 가져본다. 그 회색이 거치고 찾아올 그 태양의 작열하는 모습을.... 그래서 시간의 흐름은 늘 기다림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그러나 세상사에 찌들어 지친 사람들은 그 기다림에 갈증을 느끼거나 그 기다림에 조급함에 휘말려 그 태양 빛을 보지 못하고 뒤돌아서는 경우가 많다. 그 길에서 많은 이들이 떠나갔고, 몇 안되는 동지들이 깃발만 부여잡고 지금까지 지탱하고 있다. 그러나 그 삶을 사는 사람들.... 남들은 미련 곰탱이라고 한다. 그리고 바보라고 한다. 그리고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낙오자라고 한다. 그래 낙오자, 미련 곰탱이, 바보, 멍청이, 미친 놈 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말은 하는 이들의 눈에는 낙오자, 미련 곰탱이, 바보, 멍청이, 미친 놈이라고 말 하는 이들 스스로가 그런 사람이지 않을까? 보이는 현상만을 쫓아다니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이상주의가 허무주의자 일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지향하지만 그것은 결코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일구어가고 있는 역사임을.... 회색도시가 어둠에 휩싸이더라도.. 태양을 기다리는 이들은 늘 있듯이 누군가 이 역사적 길... 그리고 태양이 작열하는 그 광명과도 같은 세상은 끝임없이 이어지리라는 것을.... 흐린 회색이 도시를 감싼 지금... 회색도시의 미래를 상상해 보았다. 그래 지금은 회색이지만 태양의 작열하는 풍경을 상상하여 살아가 보련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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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 내려와서

  • 등록일
    2005/03/10 11:21
  • 수정일
    2005/03/10 11:21
오산이주노동자센터에 내려와서 무엇하나 속시원이 한 것이 없다. 소장님의 경우 바닥을 보지 못하고는 일을 할 수 없다는 말... 맞는 말일 수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현실은 그렇지 않다. 바닥노동자들의 삶... 그들의 인식... 그리고 누구하나 자신이 담당하는 것에 대한 책임의 소지를 갖고 그렇게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얼마나 있는가? 분업화 그리고 많은 일들에 대한 역분... 열심히하고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일을 더 열심히하라는 격려와 활동의 기본을 가르쳐 주는 것이 지당한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아리다. 뭐 내가 그렇다고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련다.


활동은 전체가 같이 해나가는 과정이기에... 그러나 과정과 절차 그리고 합의한 사항들이 소소한 일상들 이야기에서 바뀌거나 번복되는 모습... 그리고 회의를 통해 이야기되었던 내용들이 전체적 틀에서 변형되는 모습... 지역을 알고 하라는 말은 일정정도 타당할 수 있지만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있어 지역도 열려있는 것이지 무작정 아래만 보고 아래를 지향해야 한다는 말은 어찌보면 열심히 일하라는 소리에 불과하다. 늘 아래는 열려있고 함께하고자 한다. 무엇이 그러나 무엇하나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함께 해결할 대책 그리고 활동들을 펼치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없다. 소장님 또한 이러한 답답함은 날이 가면 갈 수록 증폭될 것이다. 많은 활동을 하는 것이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하자이다. 일이 힘들다. 그리고 늘어나는 일을 감당하기 힘들다. 이야기들이 많이 오고간다. 그러나 보자 현장에서 일이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불평할 겨를이 있는가? 현장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다보면 자신의 일에만 종속되지 않는다. 다른 일에 엮이거나 아니면 여러가지 일들을 해야 한다. 그래도 우리 노동자들 고된 노동의 현장에서 일을 하고 저녁 늦은 시간 학습과 뒷풀이 까지 하면서 노동운동을 이끌고 견인하지 않았던가? 불과 몇십년전 일이지만 오래된 이야기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정말 그 기간동안 우리내 운동이 쪼그라 들데로 쪼그라 든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삶이 그만큼 절박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증거는 아닐까? 삶이 절박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래 삶이 그전에 비해서 많이 나아졌다. 그리고 풍요롭게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노동자에 대한 인식은 얼마나 바뀌었는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사회가 그 동안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의 피를 요구하였던가? 아직도 모자라 노동자의 죽음을 부르는 사회 그게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고 내가 사아가고 있는 사회이다. 외형은 변하였지만 무엇하나 변하지 않는 현실... 그전에 받았던 월급보다 조금 많은 월급이 보장되는 사회... 여기서 평생일터는 사라지고 없어졌다. 현상을 보면 삶의 질이 향상되어진 것 처럼 보이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삶은 더욱더 궁핍으로 치닫고 있다. 80: 20이라는 사회가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만큼 바닥노동자 민중은 그만큼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일이고 무엇이 활동인지에 대하여 구분이 가지 않지만, 전체가 하향평준화 되었을때의 희망감보다 더한 절망감을 주는 80:20이라는 대칭사회... 계급이 고착되어지고 가난한 이와 부자의 경계가 명확히 구분되는 사회... 이것이 2005년도 한국의 현실이다. 민족주의를 넘어 국수주의로 가는 시대... 아! 대한민국, 필승! 코리아를 외치며 한국인 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일반 인민들의 모습에서 한국의 미래의 암울한 단면을 비춰본다. 왜 필승! 코리아 인가? 왜 필승 자신이 아니고 필승 노동자가 아니고 필승 민중이 아니고 필승! 코리아 인가? 집단적 전체주의의 신호탄이며 국수주의의 맹아의 태생이라 하겠다. 왜 코리아를 열광하는가? 집단의 광적 히스테리 아니면 설명하기 힘들다. 스포츠라는 매개를 통해 정치적인 선전선동의 도구와 국가 지배전략으로서 스포츠를 이용하는 사회... 스포츠 경기만 열리면 이성은 멈추고 국가라는 이미지와 자신의 소속감속에 차별을 흔쾌히 설치는 모습.... 스포츠에서 명 경기가 나온다고 하지만 다들 사람인지라 편가르기를 위한 하나의 나뉨과 차별을 서슴없이 하는 행위에서 스포츠 정신이란 구별을 위한 또다른 수단이며, 자신이 속한 곳에 대한 맹신적 복종을 위한 수단임을 느낀다. 스포츠 정신은 국가가 서로의 힘을 과시하고 서로간의 차별을 더욱 심화시키며 힘을 응집시키기 위한 전략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올림픽 금메달이 스포츠 선수들에게 염원인 나라 이게 내가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땅이다. 스포츠를 즐기기 보다는 돈벌이 밥벌이 그리고 자신의 명예를 쌓는 수단으로 여기는 한 스포츠는 죽었다고 본다. 이렇듯 우리는 바닥을 이야기하지만 열심히 뛰고 있지 못하다. 늘 뒷북 그리고 역량이 되지 않지만 역분한 일들을 이야기하며 서로가의 학제간 연구나 서로가의 협력을 방해한다. 담당자이기에... 그리고 배우는 것에도 너무 인색하다. 그렇지만 희망을 이야기해보아야 한다. 내 생각이 전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생각을 가져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것은 서로의 경험이 중첩되어 하나의 실천과제 하나의 사례로 전체의 발전을 위한 기틀을 만드는 것이기에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운동이라는 도그마에서 중첩과 실천은 서서히 실종되어져 간다. 배워나가면서 함께한다는 것은 오래 있고 적음이 아니다. 어떠한 생각을 그 과정에서 쌓아가며 삶으로서 사유하는 것인가이다. 우리는 삶으로서 사유 그리고 인생을 통한 배움을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재단하려 한다. 또한 그 과정이 전부인 줄 착각하고 있다. 내가 존재하는 것 만큼 남의 존재도 소중하다는 것은 서로의 활동과 협력이 어울리는 것이다. 분업화를 위해 체계를 나눈것은 책임지고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 오늘 그냥 생각나는데로 글을 써보았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힘을 너무나 많이 상실시켰다. 지금 상실의 시대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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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apas IMC (Indy Media Center) cartoon

  • 등록일
    2005/03/09 01:41
  • 수정일
    2005/03/09 01:41
Mexico Chiapas I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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