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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3/27
    "무서운 건 쓰나미가 아니라 가난"
    간장 오타맨...
  2. 2005/03/27
    "치외법권지역 삼성왕국이 대한민국에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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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5/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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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5/03/24
    소소한 일상(2)
    간장 오타맨...

"무서운 건 쓰나미가 아니라 가난"

  • 등록일
    2005/03/27 12:08
  • 수정일
    2005/03/27 12:08
김성환의 History Today - 남아시아 해일 재난에 대한 좌파의 시각 편집부 editor@digitalmal.com 김성환 본지 편집위원 작년 12월 16일 남아시아를 강타한 지진해일은 사망자만 15만 명에 이르는 충격적 사건이었다. 언론은 천편일률적으로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었던 자연재해라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스리랑카의 트로추기주의적 좌파정당인 사회평등당 총서기 위제 디아스의 지난 2월 4일 시드니에서 있었던 연설을 통해 좌파는 이 재난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들어보자. <본문 > 오늘(2월 4일)은 스리랑카가 영국의 식민통치로부터 독립한 지 57년째를 맞은 국경일입니다. 정부는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농민과 군대의 행진 행사를 가질 것입니다. 비록 쓰나미 재난 때문에 그 열기가 예전 같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의문은 남습니다. 빈농, 어부, 청년 실업자 등 스리랑카의 노동자 대중이 그런 기념식에 참석해야 할 이유가 있는 걸까요. 재난의 주범은 가난


스리랑카 총인구의 5%에 달하는 1천 2백만 명이 지금 난민 캠프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45만 명은 지난 20년 동안 부르주아 정부들이 잇달아 벌인 내전 때문에 떠돌이 신세가 된 사람들입니다. 나머지는 이번 쓰나미로 인해 비참한 상황에 처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쓰나미로 성인 남녀와 어린이 약 4만 명이 죽었고 4천 명이 실종됐습니다. 내전 기간 동안 죽은 사람들이 약 6만 5천 명입니다. 쓰나미는 결코 자연재해가 아닙니다. 피해의 주범은 이 지역 반(半)식민지 국가들 전반에 만연해 있는 가난입니다. 프라풀 비드와이는 <프론트라인 > 최근호에 쓴 글에서 “재앙의 정도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그 원인은 사회구조에 있다. 일본에서는 1회의 자연재해로 평균 63명이 죽지만 페루에서는 그보다 46배나 많은 2천 9백 명이 죽는다. 1985년 허리케인 엘레나가 미국을 덮쳤을 때 단 5명 만이 죽었다. 그러나 1991년 사이클론이 방글라데시를 강타했을 땐 무려 50만 명이 죽었다. 한번 지진으로 1만 명 이상이 죽는 일은 제3세계에서만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나는 주로 스리랑카에 대해서 언급할 것인데 이는 내가 그곳에 대해 잘 알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곳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여타 후진국들에 만연해 있는 일반적인 상황을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 국가들 국민들 대다수가 겪고 있는 가난은 인재(人災)입니다. 그 가난의 뿌리는 신이나 자연의 영역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연은 이들 나라들에게 유용한 광물자원과 쾌적한 기후조건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국민의 대다수를 비참한 가난에 빠져 있게 한 것은 바로 사회구조인 것입니다. 가옥과 인명 피해를 당한 이들은 주로 바닷가에 살고 있던 빈민들입니다. 그들 대부분은 어부이거나 일정한 직업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집은 오두막이라고나 할 정도로 허술해서 쓰나미는 말할 것도 없고 아주 작은 규모의 홍수나 태풍에도 견디지 못합니다. 쓰나미가 지나간 뒤 찍은 일부 사진에서 때때로 광활한 판자더미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견고한 집을 볼 수 있었을 겁니다. 자본가의 집은 견뎌낼 수 있을 만한 쓰나미였다는 말입니다. 어부들은 작업 때문에 바닷가에서 살지만, 그 밖의 많은 사람들은 땅 한 뙈기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바닷가에 삽니다. 해안철도는 주변에는 많은 철도용지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곳에 무허가 판잣집을 짓는 것이지요. 지금은 다 날아가 버렸지만요. 그들에게는 은행 통장도 없고 사회보장 혜택도 없습니다. 집이 없어지면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불법 점거자’로 취급받아 보상에서도 제외됩니다. 서민 생명 경시하는 지배층 이들은 사전에 어떠한 경보도 받지 못했습니다. 쓰나미가 스리랑카 동부 해안을 강타한 직후 방송에서 한마디 보도만 했었더라도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해일이 서남 및 남부 해안에 도달하기까지는 30분이 걸렸습니다. 사람들이 15분 동안만 내륙을 향해 걸을 수 있었다면 모두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보는 없었습니다. 정부 측의 이러한 치명적 실수를 정당화하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수많은 합리화 논리가 동원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12월 26일이 공휴일이라 관공서가 문을 닫았기 때문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은 정부나 엘리트층이 서민들의 생명에 대해 총체적으로 관심이 없었다는 데 있습니다. 특히 스리랑카에서는 야만적인 내전 때문에 인간의 생명은 훨씬 값싸게 취급받아 왔습니다. 정부가 서민들의 고통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은 구호활동에서도 드러났습니다. 정부당국과 군은 재앙이 일어난 지 이틀이 지나도록 손을 쓰지 않았습니다. 자발적으로 일어나 피해 주민들을 도운 인접 지역 주민들이 아니었더라면 수천 명이 더 죽었을 겁니다. 서민들의 이러한 자발적 구호활동은 지배 부르주아 정당들이 노동계급과 피억압 대중들을 갈라놓기 위해 수십년 동안 만들어 내고, 재생산하고, 활용해먹은 인종적, 종교적 갈등을 초월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제국주의 주인장들에게 철저하게 복종하는 토착 부르주아지들은 대중들의 사회적, 민주적 요구를 해결해 줄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애초부터 그들은 반동적인 싱할라 쇼비니즘의 분리 통치 전략에 의존해야만 했지요, 1948-49년에 타밀어를 하는 플랜데이션 노동자들에게서 그들이 인도에서 온 이주자라는 이유로 공민권을 박탈하면서 시작된 차별정책은 1956년에 싱할라어를 유일한 공식언어로 지정하고 토착 타밀족에게서도 공민권을 박탈하는 사태로 이어졌습니다. 마침내 1983년 내전이 시작되자 쇼비니즘에 대한 호소는 더욱 격렬해졌습니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조성한 비합리적인 지역분리 정책은 이번 쓰나미 이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생존자들을 구조할 때 아무 위력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도움을 구하는 사람이 싱할라인인지, 타밀인인지, 무슬림인지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던 것입니다. 각지에서 온 난민들을 수용하고 있는 장소가 불교 사원이든, 기독교 교회이든, 무슬림 모스크이든 가리지 않았습니다. 민중의 편에 선 노동대중 구호 활동 가운데서도 계급관계가 전면에 드러났습니다. 주도권을 쥐고 활동한 것은 인구 중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잘 조직된 노동대중이었습니다. 특히 병원 노동자들은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들은 최근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 과정에서 숱한 욕을 들어먹어야 했습니다. 자본주의적 언론매체는 그들은 환자에 대한 적으로 묘사했었지요. 노동대중이 쓰나미 피해자들 구호활동에 즉각 자발적으로 참여하자 지배계급은 겁을 집어먹었습니다. 그건 마치 서민들이 금지된 영토를 침범한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정부는 신속하게 모든 구호활동을 군의 지휘 아래로 이전시켰습니다. 그 결정을 합리화하기 위해 언론을 동원해 대중들이 일으킨 몇몇 유아 성 추행 및 강간 사건을 확대 과장 보도하도록 했습니다. 피해자 및 자원봉사자들 모두로부터의 공적인 분노에 직면한 정부는 한발짝 물러나 군은 난민캠프의 안전만 담당하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지 않은 1월 6일, 쿠마라퉁가 대통령은 스리랑카의 총 25개 행정구역 가운데 14개 구역에 적용되는 일련의 가혹한 비상조치법을 공포했습니다. 그것들은 의회는 물론 각료회의의 토론도 거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인권위원회가 시민은 자신이 적용받게 될 법률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고 발표하기 전까지 그 법률들은 비밀에 부쳐져 있었습니다. 긴급조치법은 공공질서와 기초 공공 서비스를 유지한다는 미명 아래 군과 경찰에 과도한 권한을 주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임명한 소관 부서장 및 지역 군사령관들은 구호활동을 위해 건물, 토지, 자동차를 징발할 권한을 갖습니다. 나아가 그들은 쓰나미 관련 구호활동 뿐만 아니라 국가안보 관련 일을 위해 어떤 사람에게든 일을 시킬 수 있습니다. 이는 징병제를 실시하는 것과 같은 조치로서 민주적 권리에 대한 중대한 침해인 것입니다. 지난 20년 동안 군의 야만적이고 살인적인 행동들을 상기할 때 이번 조치법들로 인해 대중들이 심각한 위험에 놓이게 된 것은 확실합니다. ‘재난을 독재의 기회로’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쿠마라퉁가 대통령은 남부지방 함반토타에서 가진 군중연설에서 선거는 5년 뒤로 연기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민주적 권리에 대한 이러한 공격에 대해 야당들 가운데 좌파든 우파든 어느 곳도, 심지어 노조 지도부도 항의를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항의의 부재는 ‘쓰나미 충격’의 결과가 아닙니다. 또한 인도주의적 활동이 중단 없이 진행되게 하기 위한 배려에서 나온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돼 대다수 국민이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는 상황에서 노동자와 빈민들의 민주적 권리를 보장해줄 여유가 없어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현재 스리랑카 인구의 40% 이상이 하루 1달러 수입으로 최저생계비 이하 수준에서 살고 있습니다. 자유무역지대 노동자들은 월 45달러의 임금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구요.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적 권리와 대의정치는 지배계급에게 점점 더 불필요한 부담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헌법을 파괴하고 독재체제를 수립하려는 시도는 그들에게 오랜전부터 하나의 아젠다였습니다. 2003년 11월, 쿠마라퉁가는 국민연합전선 정부로부터 3명의 장관직을 강탈하는 사실상의 헌정 쿠데타를 시도했습니다. 3개월 뒤 그녀는 독단적으로 정부 전체를 장악했습니다. 노동계급을 대변한다고 하는 어느 정당도 이러한 조치들에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안정된 정부’라는 것은 다른 말로 타밀 소수민족에게 전쟁을 선포하는 정부를 말합니다. 한때 스리랑카 최대의 노동계급 정당이었던 랑카 사마 사마자는 스탈린주의 공산당과 함께 대통령 측에 가담하여 반민주 조치들을 지원했습니다. 민주적 권리들을 짓밟은 지배 엘리트들은 제국주의 국가들 특히 부시 정부와의 관계 개선에 의해 더욱 고무되었습니다. 쓰나미 이후 미국은 1만 3천 명의 군사요원과 21척의 해군 함정 그리고 75대의 수송기를 인도양에 배치했습니다. 스리랑카는 부시 정부의 남아시아 지역에 대한 지정학적 전략 구상에서 핵심적인 지역입니다. 예일대의 역사학자 존 루이스 개디스는 뉴욕타임즈에 이렇게 썼습니다. 쓰나미 재난은 “부시에게는 이라크에 대한 선제공격과 그 실패, 그리고 이슬람 세계와의 갈등에서 벗어날 하나의 기회이다. 이곳은 미국이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일을 할 수 있는 모범적 지역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언론이 미군을 인도주의적 구호활동자들로 홍보했음에도 지난 수십년 동안 제국주의에 억압당하고 착취당해온 이 지역의 노동계급과 빈민들은 그들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베트남이라는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으며, 최근 미군이 이라크에서 벌인 야만적 행동들이 이들에게 미 제국주의 및 제국주의 전체에 대한 적대감을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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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치외법권지역 삼성왕국이 대한민국에 존재&quot;

  • 등록일
    2005/03/27 11:57
  • 수정일
    2005/03/27 11:57
** 개인적으로 김성환 위원장을 아는 것은 정확히 1999년 인천에서 이천전기(그때는 삼성에 매각되기 전이어서 해고자들이 일진그룹과 원직복직 쟁취 투쟁을 위해 인천 만석동으로 가는 철기 옆에 텐트를 치고 투쟁을 하였을때 였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우량기업이 었던 이천전기가 일진에 매각되며 이 지역 경제가 어렵다고 난리 였다. 사무실이 송림동에 있었던 터라 걸어서 텐트를 종종 방문하였다. 만석동으로 나 있는 철길-기차가 과거에 비해 많이 지나다니지는 않지만... 동국철강 옆 이천전기가 생각이 난다.)을 걸으며 싸움을 하였을때 얼굴을 알게 되었고, 작년 삼성공대위 활동을 하면서 얼굴을 뵐 수 있었다. 올해 2월 말인가 3월초 민주노총 경기본부 사무실에서 봤었는데.... 구속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을 터이지만 이 글을 보고 구속이 되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부디 몸 건강하시기를... 원직복직 싸움을 회사가 2번 바뀔때까지 끊임없이 진행하는 위원장이 옥중에서나마 이후 투쟁을 위한 충전의 기회가 되기를 빌어본다.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 옥중 편지 이태준 기자 ltj@digitalmal.com 김성환 삼성일반노동조합 위원장 수감중인 김성환 삼성일반노동조합 위원장이 편지를 통해 "삼성재벌의 불법비리에 맞선 노동자는 구속"됐다며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김 위원장은 '삼성SDI 노동자 불법위치추적 사건'과 관련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 삼성 임직원들을 고소한 바 있다.


하지만 울산지법은 지난 2월 22일 오히려 김 위원장이 '삼성재벌 노동자 탄압백서'와 같은 홍보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삼성SDI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징역 10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이미 지난 2002년에도 명예훼손으로 징역 3년과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김 위원장은 집행유예 기간에 다시 법정구속되면서 모두 3년 10개월 실형을 받고 있다. 그리고 지난 2월 16일 검찰은 불법위치추적 사건에 대해 기술상 어렵다며 수사를 중단했다. 이에 지난 19일 김 위원장은 '삼성재벌 물신의 경지에 오르다, 대한민국 사법부를 장악하다'는 제목으로 부인에게 편지를 전달해 억울함을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이 편지에서 "삼성재벌의 무노조 경영, 노동자 탄압과 족벌세습경영을 위한 불법비리에 대하여, 그리고 그러한 삼성재벌의 불법 비리에 눈을 감는 노무현 정권과 무능한 검찰에 나는 분노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제는 이(건희)씨 일가가 족벌세습경영을 위한 주가조작, 세금 포탈 등 온갖 불법비리를 저질러도, 또 무노조 경영을 위해 온갖 노동자 탄압을 자행하더라도 천민자본식의 경제발전에 눈이 멀고 돈 고물에 눈이 먼 개혁정권하에서는 절대로 삼성을 수사하거나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삼성에버랜드주가조작 사건, 삼성재벌 친족회사 (주)새한(옛 제일합섬)이 복수노조금지를 악용해 유령노조를 만들고 먼저 구청에 신고해 노조를 탄압한 사건, 삼성 SDI수원공장에서 노조를 건설하려던 박경렬씨가 감금, 일본으로 납치당한 사건들을 예로 들면서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비판했다. 이러면서 김 위원장은 검찰과 법원이 삼성 관련 사건에 대해선 제대로 수사나 판결을 하지 못한다며 "대한민국 안에 존재하는 천민자본 삼성재벌에 대한 법 적용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것"이라며 "치외법권 지역 삼성왕국이 대한민국과는 별도로 존재"한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삼성구조본 이종왕 법무실장은 노무현 대통령 사시동기이고 서 모 검사는 에버랜드 불법주식증여 사건을 수사하던 곳에서 부장검사를 했고, 수원지검 특수부 이 모 검사는 삼성전자 관련 정차장 사건의 공판검사로서 재판이 진행중에 삼성구조본부로 직장을 옮겼다"며 "삼성재벌 물신이 사법부를 장악"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사법부가 삼성재벌을 제대로 심판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다음은 김 위원장이 감옥에서 보낸 편지 전문. 삼성재벌 물신의 경지에 오르다 . 대한민국 사법부를 장악하다 법정구속된지 한 달이 되어간다. 그리고 0.93평 독방에 앉아 법정국속에 울산구치소에 갇혀 있는 것이 억울하여 분노하고 있다. 삼성재벌의 무노조 경영, 노동자 탄압과 족벌세습경영을 위한 불법 비리에 대하여 그리고, 그러한 삼성재벌의 불법 비리에 눈을 감는 노무현 정권과 무능한 검찰에 나는 분노하고 있다. 마침내 삼성 재벌은 군부 독재 시절에도 감히 오르지 못한 천민 자본의 최고의 경지인 '물신'의 경지에 올랐다. 이제는 이씨 일가가 족벌세습경영을 위한 주가 조작, 세금포탈등, 온갖 불법 비리를 저질러도 또 무노조 경영을 위해 온갖 노동자 탄압을 자행하더라도 , 천민 자본식의 경제발전에 눈이 멀고 돈 고물에 눈이 먼 개혁정권하에서는, 절대로 삼성을 수사하거나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됐다. 2000년 법학자들과, 본인, 단병호의원이 고발한 삼성 에버랜드 주가 조작고발사건은 시효 하루 전에 고소되어 구형이 3년, 5년이 떨어져, 05년 2월 선고날을 잡았는데, 당일 재판부 스스로 변론 재개를 결정하여, 재판 장기화를 통해 삼성재벌을 봐 주었다. 또한, 04년 7월 1차. 2차 검찰에 고소한 핸드폰 불법 복제를 통한 위치추적, 그것도 죽은 사람의 명의를 도용하여 삼성관련 노동자를 사찰한 사건이 검찰 수사 8개월만에 05년 2월 수사가 중단됐다. 과거 검찰이 권력의 시녀라고 온갖 비난과 매도를 당한 적은 있어도 검찰의 무능을 스스로 인정한 전례는 없었다. 검찰의 무능을 인정하면서까지 삼성재벌을 봐 준 위치추적 고소사건을 기소중지한 날은 검찰의 치욕의 날로 기록될 것이다. 특별 검사가 삼성재벌을 재수사하라! 개혁이라는 국민의 뜻을 등에 업고 등장한 노무현 정권마저도 밝혀내지 못하는 천민 자본 삼성재벌의 온갖 불법비리에 대하여, 국회에서 임명한 특별 검사에 의해 엄정한 재수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수많은 피해 사례와 수 많은 피해 당사자들이, 두 눈 부릅뜨고 살아 있는데 검찰은 가해자를 밝혀 내지 못하고, 가해자가 없다는 말을 믿으란 말이냐 ! 국민과 피해 당사자들은 , 불법 행위의 가해자, 범죄자가 삼성재벌임을 아는데, 검찰과 삼성재벌만이 모른다고 하는 것은 사회적 죄악이다. 민주노동당은, 노무현 정권하 검찰에 대해, " (수사)주체는, 의지도 없고 능력도 없음을 스스로 고백한 검찰이 아니라, 국회에 의해 임명되는 특별검사여야 한다"며 삼성재벌 관련 의혹 사건과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 검사 임명등에 관한 법률안을 제출하여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중이라 한다. 위치 추적당한 피해노동자는 법정 구속 ! 본인은 이천전기에서 노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이천전기의 주식인수를 통해 경영권을 장악한 삼성재벌이 파견한 삼성중공업, 삼성전관 (현 sdi ) , 삼성전자 관리자들에 의해 96년 불법 단체 구성등의 이유로 징계해고당하였다. 이후 이천전기는 본인 징계해고 후 삼성계열사로 편입되었다. 이후 본인은 2000년 삼성그룹 해고자 복직 투쟁위원회 위원장으로 2002년에는 민노총 해고자 복직 특별위원회 (전해투) 위원장으로, 2003년에는 삼성일반노동조합 위원장으로, 해고자 원직 복직과 삼성계열사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조직 건설활동을 하다가 2005년 2월 22일 삼성sdi 명예훼손 고소사건으로 , 집행유예기간중에 법정 구속되어 앞으로 3년 10개월의 수감생활을 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본인은, 징계해고 이후 10년 가까이 삼성재벌과 투쟁하면서 수 많은 사건에 직간접적인 연관을 맺어왔다. *삼성에버랜드 주가조작 고발사건 *(주) 보광 민주노조 건설 탄압사건 *(주) 새한 유령노조 민주화투쟁 탄압사건 *삼성에스원 노조건설 탄압사건 *중앙일보 인쇄노동자 노조건설 탄압사건 *전남 광주 아르네 삼성전자 노조건설 탄압사건 *호텔 신라 노조건설 탄압사건 *분당 삼성프라자 노조건설 탄압사건 *99년 삼성 sdi수원공장 노조건설 일본감금 납치사건 *삼성 sdi 울산공장 하청노동자 노조건설노동자 납치. 감금. 폭행사건 *삼성 sdi 천안공장 노조관련 노동자 납치사건 *수원 삼성코닝 아텍엔지니어링 노조건설 탄압사건 *삼성 sdi 울산공장 홍보물 배포노동자 납치, 감금, 폭행사건 등에서부터, 최근에는 *핸드폰 위치추적 고소사건 *삼성전자 노조건설 격리, 감금 금품 매수 고소사건 *삼성 sdi 부당노동행위 고소사건 *삼성전자 하청 애니스 노조건설 탄압, 폭행및 불법 하도급사건 *삼성재벌 친족회사인 신세계이마트 노동자들의 경기일반노조 가입관련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미행, 감시, 면담빙자 감금, 인권유린사건등 삼성재벌의 무노조경영을 유지하기 위한 노동자 탄압의 불법, 탈법행위는, 정규직, 비정규직,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무차별적으로 자행되는 범죄행위이다. 이처럼 본인은, 삼성재벌의 족벌세습행위를 위한 불법비리와 노동자 탄압에 맞서 10년 가까이를 고소 고발하고 당하면서 투쟁을 전개하여왔지만 삼성재벌이 처벌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본 적이 없다. 심지어 , 삼성 sdi 울산공장은 집회신고장소에 흙을 쌓고 나무를 심어 아예 노골적인 집회방해를 , 온갖 불법적방법을 자행하여, 이를 울산 지검이 아닌 서울검찰청에 고소하였어도 수사결과는 혐의없다는 것이다. 신세계이마트 취업규칙을 공개하라고 , 경기일반노조에서 행정정보공개 청구를 하였지만 수원 지방노동사무소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비공개결정을 내렸다. 즉, 삼성재벌이라는 물신의 이익에 반하는 수사나 결정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검찰은, 수사 핑계. 시간 지연 삼성재벌 노동자 회유, 탄압고소 취하 ! 04년 7월, 1차, 2차 고소한 핸드폰 불법복제 위치 추적 고소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을 보면, 1) 검찰은 사건접수 이후 수사를 빙자하여 최대한 시간을 지연한다. 2) 검찰에서 시간을 지연시켜 주는 동안 삼성재벌은 , 그 시간동안 고소인을을 회유, 압력을 행사하여 다수의 현장노동자들이 고소취하 하고 노조 (민주노총 금속노조) 에서 탈퇴하였다. 마지막으로 검찰은 , 적당한 시기에 고소취하라는 삼성재벌의 성과물을 토대로 위치추적 고소사건을 기소중지하여, 삼성재벌에게 시간적이고 일시적인 도덕적 면죄부를 주었다. 이처럼, 삼성재벌과 검찰의 사이는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처럼 ,군부독재정권이후 변함이 없다. 과거 삼성재벌은, 집시법을 악용하여 대사관을 유치하여 집회자체를 원천봉쇄하여 왔다. 그러나 민주노총법률원과 본인은, 헌법소원을 제기하여 3년만에 위헌판결을 받은 바 있다. 또한, 삼성재벌은 업무방해 접근금지 가처분신청을 통해 합법적인 집회, 심지어 1인 시위마저 법을 악용하여 원천봉쇄하고 있다. 삼성재벌의 무노조 경영유지를 위해 복수노조 금지조항이라는 악법을 악용하여 노조설립을 원천봉쇄하는 것처럼 말이다. 삼성재벌의 불법 비리에 맞선 노동자 구속 ! 삼성sdi 해고자 송수근은, 소위 합법적인 집회에서 발언한 내용을 꼬투리잡아 두 번이나 구속되었다. 삼성 sdi 수원공장 박경렬씨는, 노조건설 관련하여 99년 12월 , 납치 감금되어 탄압받은 적이 있고 이후 강제 해외출장을 강요당하고 동료에 대한 장기간 해외출장에 항의하다 오히려 폭행범으로 구속되었고, 출소후 해고되었다. 이와 같이, 삼성재벌과 노동자에게 차별적인 사법부의 법 적용은 노노간의 형평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즉, 대한민국안에 존재하는 천민자본 삼성재벌에 대한 법 적용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치외법권 지역 삼성왕국이 , 대한민국과는 별도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삼성재벌의 물신은 사법부를 장악하여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다 ! 삼성재벌이라는 물신이 떨어뜨리는 돈 고물과 영향력 앞에, 한없이 초라해지고 추해지는 노무현정권하의 사법부에 대하여, 사회단체는 실망과 분노를 감추고 있지않다. 삼성구조조정 본부 법률팀 소속 변호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검, 중앙지검. 서울지검. 수원지검 출신 이종왕법무실장은 노무현대통령 사시동기이고, 서모검사는 에버랜드 불법주식증여 사건을 수사하던 곳에서 부장검사를 하였고, 수원지검 특수부 이모 검사는 삼성전자 관련 정차장사건의 공판검사로써 , 재판이 진행중에 삼성구조본부로, 말 그대로 공직자의 윤리의식도 없이 직장을 옮겼다. 삼성재벌은, 05년 현재 국내 변호사 , 외국 변호사를 합쳐 100여명의 변호사를 두고 있다. 검사출신 변호사들도 배경이 화려하지 않은가 ! 그러니 감히 누가 삼성재벌을 수사하고 처벌할 수 있단 말인가 ! 그러기에 삼성재벌은 , 이씨 일가 족벌세습경영을 위한 불법비리도, 노동자 탄압 , 인권유린도 , 아무런 죄의식없이 탈법을 저지를 수 있는 것도, 법과 원칙을 앞세워 불법을 합리화시키는 조직적이고 사회적인 범죄조직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본인은, 분노하는 마음으로 삼성재벌의 불법비리를 제대로 수사하기 위한 특별검사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그 날까지, 울산구치소에서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다. 2005. 3. 19. 울산구치소에서 ....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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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고

  • 등록일
    2005/03/25 01:18
  • 수정일
    2005/03/25 01:18
* 이 글은 행인님의 [기회다~! 철군하랏~~!!] 에 관련된 글입니다.

글과 상관 없는 글 덧글을 보고 좀 생각이 되어서 글을 몇자 끌적인다. 난 일전에 사회구성체 논쟁이라는 책(죽산)을 소개하면서 우리내 남한 운동에서 사회구성체 논쟁이 사라졌음을 아쉬워 한적이 있다. 그리고 이 논쟁이 사그러 들면서 정파운동이 종파운동으로 치다는 폐단의 시기를 일정정도 90년대 거쳐오지 않았나 생각을 필역한 적도 있었던 것 같다.(사회구성체논쟁을 바라며... 뉘앙스의 글...) 덧글 하나 엔엘이라는 지칭이 나에게 있어 눈에 들어왔다. 난 아직도 96년 연세대 사태때 한총련을 사수하지 못한 좌파의 무능력이 학생운동의 총체적 위기와 조직의 위기로 낳았다 본다. 엄밀히 말해 서대협을 만들었던 좌파선배들의 위력 이를 바탕으로 출벌한 전대협... 다 한국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한 세대... 그 당시가 87년과 89년이라는 간극은 있지만 다들 민주대 반민주라는 시대 구호 속에서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 외쳐불렀던 민주주의여 만세와....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이미 떠났다고 라는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이라는 노랫말 처럼 우리내 정말 가슴에 멍 어루만지며 나갔던 시기... 누구를 떠나 치열하고자 했던 시기... 일부 전술에 있어서의 다수의 무오류성.... 그러나 잊지는 말아야 한다. 86년 서울대에 있었던 한 학우를 죽음으로 치닫는 사건(품성론은 이때부터 등장하기 시작하였다.)을 활동을 이 활동은 좌파에게 있어서 치명적이었던 사건... 다수였던 이들의 만행... 오류 그 사건은 일파만파 전국을 휨쓸었다. 이전 선배들이 치를 떨면서 비판하던 그 사건... 그러나 이 사건의 파장은 크게는 CA(제헌의회)의 그룹의 다수파 소수파 논쟁까지 붉어지게 하였던 파장력을 이끌었다. 엔엘 운동에 있어서는 대중속으로의 자각을 하였던 계기... 이 원동력은 87년 투쟁보다는 88년 홍제동 판문점 진격투쟁으로 그 대중적 학생동력의 위력으로 조직화 되었다. 그렇듯이 쉽게 한 정파에 있어서 농이라고 하지만 쉽게 제단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건 활동을 떠나 운동에 있어서의 기본은 아니라고 판단되어 진다. 그 글자... 내포함에 있어서 난 우월의식이 존재한다고 본다. 나 또한 그런 면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최소한 내가 그렇다면 난 바꾸고자 노력은 하겠지만... 그건 나의 주관적 관념에 불과하지만... 내가 소중한 만큼 남을 인정하면서 최대한 활동이라는 토대속에서 비판은 이루어져야 하며 비판과 비난은 차별의 획을 그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우리 쉽게 늘 엔엘... 엔디. 피디 이러한 말을 쓰거나 좌파라는 통념을 쓰고 우파라는 통념을 쓴다. 그 바탕은 우월 의식이다. 난 차라리 쪽파... 대파로 더 낳다고 본다. 입장은 있으되 실천을 담보하지 못하는 활동에서 우리가 스스로 좌파라 자임할 수 있나... 좌파라고 자임하면서 활동을 지향하였던 시절이 언제 였던가... 현장과의 긴밀한 연대와 공투때 이외엔 없지 않던가? 내용을 비판함에 있어 한 이론에 대해 쉽게 그리고 가볍게 이야기 하는 버릇을 없앴으면 한다. 사업과 활동의 모습은 다르지만 최소한 내가 봤던 NLPDR을 지향하였던 활동가들은 혁명운동가였던 것만은 부인하지 않았으면 한다. 입장이 다르지만 최소한 엔엘이라고 속칭되는 활동가들중 학생운동의 면을 보고 전체 아래에서 열심히 하는 활동가들을 도매급으로 넘기는 무오류를 우리부터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도매급으로 나와 다르다는 차별을 운동의 과정에서 끌어내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중 분명 비판할 것은 비판하여야 하지만 운동이라는 것을 본다면 우리 다 같은 피해자 가해자 아니었던가? 내용보다는 활동보다는 입장이라는 명확성(무르익지 않은 내용)으로 얼마나 수많은 것들을 제단하였던가? 그 사람 길재의 시 한수 철머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년월이 꿈이련가 하노라... 처럼.... 우리 또한 그런 함정ㅇ에 우월의식에 사로잡힐 위험성이 다분하다. 그들과 진정 토론을 원한다면 활동이 아닌 사회구성체 논쟁을 시발로한 다양한 영역에서의 토의와 방향의 모색이 되었으면 한다. 일부 엔엘을 지향하였던 조직이 전체적으로 많은 것을 흐려 놓았다 그러나 이 또한의 문제는 아니다. 좌파 우파라는 이런 명명이 서로를 더욱더 옥죄이는 칼날로 다가온다. 우리 최소한 활동가라는 범위에서 서로가 존중되고 논의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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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방송국... 미디어참세상... 새민중언론 이름공모...

  • 등록일
    2005/03/24 17:11
  • 수정일
    2005/03/24 17:11
민중언론이 출범한다는 소식은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난 아직도 언론이라는 기능보다는 다양한 정보통신 기술과 정책의 융합이 미완으로 그친 지금... 진보넷에서 미디어참세상과 정보통신운동의 분리를 통한 서로의 발전적 전망을 내온 것에 대해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초기 진보넷 하나의 팀으로서 출발한 참세상 방송국... 리얼플레이어로 듣던 음악방송... Zoo님의 공간.... 무명씨의 구닥다리 노래창고인가... 시타라는 분의 나름데로 어떤음악... 그리고 여타의 글 카인즈로 뉴스클리핑하던 진보넷 기사들... 감당하기 힘들었고 재정적으로 어려웠지만 스스로 이러한 것들을 감당해 내며 만들었던 기억들... 지금도 어려운 시절이 끝나지 않았지만.... 프레시안, 오마이뉴스의 여타 또한 좌파 방송국을 태동하게되는 원동력을 낳은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러나 난 아직도 미디어 참세상(속편히 참세상방송국)이라 생각한다. 그들의 선택이지만 난 과거 초기 만들었던 분들의 고려들... 언론으로서의 기능이 결코 놓쳐서는 안되지만 내가 바라보았던 초기 참세상 방송국의 분들은 소통을 위한 방송... 사회적 소수자들의 발언에 포커스를 맞추며 그들과 작지만 하나하나 긴 호흡을 하고자 하였던 소소한 분들이 아기자기 하지만 나름데로 큰 뜻을 지키고 어려운 재정에도 신명나게 일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입장을 내세우기 보다 사회에 있어서 통찰력을 기르고 왜 사회적 소수자 중소영세사업장 그리고 낮은 곳에서 일하는 그런 분들이 소외 받지만 중심에 놓여야 하는지를 또박또박 리얼 플레이어에서 나오거나 움직여 나갔던 그 방송... 음악과 텍스트가 조화를 이루었던 기억이 난다. 리얼플레이어를 참세상 방송국을 청취하기 위해 깔았던 기억들.... 일하면서 고정되지 않는 시선이 필요없이 흘러나오는 음악이나 멘트를 들으며 딴일을 하거나 술한잔 하던 기억... zoo님의 방송이 흘러나오면 아 이 오래된 민중가요 음악을 컴퓨터에서 들을 수 있었다는 기쁨 소소하지만 참 정감넘치게 다가왔다. 테이프가 없어져 듣지 못하던 음악을 컴퓨터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던 그 당시.... 참 소소하게 다가왔지만 나에게 있어서 만큼은 중요한 것들이었다. 축하할 일이지만 또 진보넷과 같이 발기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 부담으로 다가온다. 많은 민중언론들이 있고 또 그 민중언론들이 나름데로 자신들의 입장에 따라 충실히 언론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돈이 부담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민중언론이라는 상에서 내가 바라는 노동자 방송국의 위상... 장기적 포석에 의한 FM 라디오 운동(Public radio)라는 방송 매체를 통한 전국의 노동자들과 만나는 일상적 공감의 장을 열어나가는 움직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 내용을 보고 그래도 중요하다 보지만... 난 아직도 정보통신과 미디어 융합에 따른 다양한 실험과 기술적 정책적 그리고 마인드 기반한 인식의 확장이 되기를 바램해 본다. 휘앙 찬란한 멀티미디어 기반의 엔터테이너먼트가 발달하더라도 텍스트 매체는 죽지 않고 간다는 생각은 맞다. 그러나 그 기반이 다양한 대중들과 만나고자 하는 것은 하나의 언론형태라는 외형이 아니라 지속성과 그 언론이 갖고 있었던 기자들의 보이지 않는 활동들이 었으리라 본다. 무엇보다 과거 묵묵히 일하였던 그 무수히 참세상방송국을 거쳐갔던 활동가들의 눈물겨운 고전분투어린 활동이 이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난 조금더 우리의 갈길이 어떠한 시대적 요구보다는 이후 장기적 안목과 그 확장 가능성을 갖고 이제는 출발하였으면 한다. 실험이라는 틀이 아직도 미완으로 남아있고 향후 언론 그리고 이후 언론으로서의 불확실성.... 회원구조로서 언론이 갖을 수 밖에 없는 한계점들... 그리고 구독자들의 요구에 따라 필연적으로 갖을 수 밖에 없던 인쇄매체를 출현시킬 수 밖에 없는 문제들.... 이러한 복합적인 것들이 스쳐 생각난다. 새롭게 하는 것에 축하는 하지만 난 지금 이전과 같이 언론을 출범시키고 책임을 지지 못하는 프로젝트 식 추진은 이제 좀 자중하고 긴호흡 강한걸음으로 자신의 기틀을 만들고 이를 통해 서서히 확장해 나가는 것이 더 바람직 하지 않나 생각된다. 발기인 모집과 새로운 민중언론 보다는 이제 새로운 운동이 태동되어야 할 듯 싶다. 축하할 일이지만... 걱정은 된다. 진보넷과 참세상방송국이 서로가 다른 영역으로 분리한다는 것이 조금은 모험이지 않은지 판단이 든다. 아무쪼록 잘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새로 출범하는 방송국에선 상근활동가들에게 매달 보투가 잘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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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 등록일
    2005/03/24 08:40
  • 수정일
    2005/03/24 08:40
요즘 들어 새벽에 잠들어 아침에 일어난다. 블로그를 한번 후루룩 읽고 아침 그냥 평상시와 같은 일상을 보낸다.


어린이집 아이들을 부시시한 얼굴로 반기거나 세면하고 난 후 머리를 털면서 만나면서 시작되는 일상.... 프로젝트 복이 넘쳐 무려 10개로 늘어난 프로젝트 그리고 센터 일상들을 만들어가는 일을 한다.(문화관광부 이주노동자 특화된 문화행사 및 체육대회 관련 5개 항목, 그리고 비영리민간단체 관련 프로젝트, 경기도 자원봉사센터 자원활동 프로그램... 문광부와 관련해서는 행사 비용과 자부담 계산수치를 놓고 씨름한다. 행사는 이주노동자센터 계획이 잡혀 있는 사업을 놓고 하면 되는데 재정이라는 놈이 우리의 뒷덜미를 잡는다. 일단 경기도에서 자원봉사센터에 하기로 한 프로젝트 이주노동자 노동상담 자원활동가 그룹 설정을 위한 프로젝트를 마감했고, 강의 계획서 초안만 작성하면 됨. 이주노동자 한글 교실 프로그램은 프로그램 진행과 관련한 대목까지는 작성...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를 놓고 씨름하고 있고, 문화관광부 프로그램은 일단 행사들을 나열해서 목적과 사업 계획들은 작성해 놓았고, 뭐뭐 다른 것들은 이제 시작하면 되는데 낱말들이 조합이 안된다.... 프로젝트에 원래 탐탁하게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은터라 조금 마음이 무겁다. 궂이 해야 하냐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그래도 어려운 살림을 지탱하기 위해선 차선의 선택이다.) 낮에는 아이들이 뛰어놀아 정신이 산만해져 그냥 그렇게 보낸다. 노동상담을 오는 분들을 이야기를 엿듣거나 모니터에 더이상 써내려 가지 못하고 막혀버린 대목의 프로젝트 문장을 뚜러지게 쳐다보다.... 그냥 담배한대 피우고... 이렇게 저렇게 오시는 센터와 관련된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풍경이 내 일상이다. 푸드뱅크로 음식이 오면 3층으로 음식을 나르는 일로 시작되는 오후 일... 그리고 평상시와 다름없이 오후 식사를 하고 또 모니터와 씨름을 한다. 낮에도 별 일 있으랴... 그냥 정신은 오산천에 내놓고 몸만 센터에 두고 아이들과 함께 지낸다. 저녁 그럭저럭 조용한 시간 프로젝트 사업 계획서와 씨름을 한다. 더이상 낱말 조합이 끝어져 버린 대목에서는 그냥 우두커니 모니터를 바라본다. 그러다 보면 시간은 새벽 3시경을 달린다. 오늘 또 일상사를 진행하여야 하기에 잠을 청하러 간다. 그러다 나도 모르는 사이 아침을 맞이한다. 3월을 이렇게 흘려보내고 나면 4월은 조금 여유로워지려나.... 뭐 일상이 그렇게 되겠냐많은 그래도 4월달 희망을 갖고 3월 마감해야할 일들을 끝내보련다. 오늘은 문화광광부 사업과 씨름하고 한글 교실 프로젝트를 마감해야 겠다. 하나하나 하다보면 기안에 맞춰서 내용이 나오겠지라라는 낙관을 해본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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