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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고

  • 등록일
    2005/03/25 01:18
  • 수정일
    2005/03/25 01:18
* 이 글은 행인님의 [기회다~! 철군하랏~~!!] 에 관련된 글입니다.

글과 상관 없는 글 덧글을 보고 좀 생각이 되어서 글을 몇자 끌적인다. 난 일전에 사회구성체 논쟁이라는 책(죽산)을 소개하면서 우리내 남한 운동에서 사회구성체 논쟁이 사라졌음을 아쉬워 한적이 있다. 그리고 이 논쟁이 사그러 들면서 정파운동이 종파운동으로 치다는 폐단의 시기를 일정정도 90년대 거쳐오지 않았나 생각을 필역한 적도 있었던 것 같다.(사회구성체논쟁을 바라며... 뉘앙스의 글...) 덧글 하나 엔엘이라는 지칭이 나에게 있어 눈에 들어왔다. 난 아직도 96년 연세대 사태때 한총련을 사수하지 못한 좌파의 무능력이 학생운동의 총체적 위기와 조직의 위기로 낳았다 본다. 엄밀히 말해 서대협을 만들었던 좌파선배들의 위력 이를 바탕으로 출벌한 전대협... 다 한국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한 세대... 그 당시가 87년과 89년이라는 간극은 있지만 다들 민주대 반민주라는 시대 구호 속에서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 외쳐불렀던 민주주의여 만세와....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이미 떠났다고 라는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이라는 노랫말 처럼 우리내 정말 가슴에 멍 어루만지며 나갔던 시기... 누구를 떠나 치열하고자 했던 시기... 일부 전술에 있어서의 다수의 무오류성.... 그러나 잊지는 말아야 한다. 86년 서울대에 있었던 한 학우를 죽음으로 치닫는 사건(품성론은 이때부터 등장하기 시작하였다.)을 활동을 이 활동은 좌파에게 있어서 치명적이었던 사건... 다수였던 이들의 만행... 오류 그 사건은 일파만파 전국을 휨쓸었다. 이전 선배들이 치를 떨면서 비판하던 그 사건... 그러나 이 사건의 파장은 크게는 CA(제헌의회)의 그룹의 다수파 소수파 논쟁까지 붉어지게 하였던 파장력을 이끌었다. 엔엘 운동에 있어서는 대중속으로의 자각을 하였던 계기... 이 원동력은 87년 투쟁보다는 88년 홍제동 판문점 진격투쟁으로 그 대중적 학생동력의 위력으로 조직화 되었다. 그렇듯이 쉽게 한 정파에 있어서 농이라고 하지만 쉽게 제단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건 활동을 떠나 운동에 있어서의 기본은 아니라고 판단되어 진다. 그 글자... 내포함에 있어서 난 우월의식이 존재한다고 본다. 나 또한 그런 면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최소한 내가 그렇다면 난 바꾸고자 노력은 하겠지만... 그건 나의 주관적 관념에 불과하지만... 내가 소중한 만큼 남을 인정하면서 최대한 활동이라는 토대속에서 비판은 이루어져야 하며 비판과 비난은 차별의 획을 그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우리 쉽게 늘 엔엘... 엔디. 피디 이러한 말을 쓰거나 좌파라는 통념을 쓰고 우파라는 통념을 쓴다. 그 바탕은 우월 의식이다. 난 차라리 쪽파... 대파로 더 낳다고 본다. 입장은 있으되 실천을 담보하지 못하는 활동에서 우리가 스스로 좌파라 자임할 수 있나... 좌파라고 자임하면서 활동을 지향하였던 시절이 언제 였던가... 현장과의 긴밀한 연대와 공투때 이외엔 없지 않던가? 내용을 비판함에 있어 한 이론에 대해 쉽게 그리고 가볍게 이야기 하는 버릇을 없앴으면 한다. 사업과 활동의 모습은 다르지만 최소한 내가 봤던 NLPDR을 지향하였던 활동가들은 혁명운동가였던 것만은 부인하지 않았으면 한다. 입장이 다르지만 최소한 엔엘이라고 속칭되는 활동가들중 학생운동의 면을 보고 전체 아래에서 열심히 하는 활동가들을 도매급으로 넘기는 무오류를 우리부터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도매급으로 나와 다르다는 차별을 운동의 과정에서 끌어내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중 분명 비판할 것은 비판하여야 하지만 운동이라는 것을 본다면 우리 다 같은 피해자 가해자 아니었던가? 내용보다는 활동보다는 입장이라는 명확성(무르익지 않은 내용)으로 얼마나 수많은 것들을 제단하였던가? 그 사람 길재의 시 한수 철머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년월이 꿈이련가 하노라... 처럼.... 우리 또한 그런 함정ㅇ에 우월의식에 사로잡힐 위험성이 다분하다. 그들과 진정 토론을 원한다면 활동이 아닌 사회구성체 논쟁을 시발로한 다양한 영역에서의 토의와 방향의 모색이 되었으면 한다. 일부 엔엘을 지향하였던 조직이 전체적으로 많은 것을 흐려 놓았다 그러나 이 또한의 문제는 아니다. 좌파 우파라는 이런 명명이 서로를 더욱더 옥죄이는 칼날로 다가온다. 우리 최소한 활동가라는 범위에서 서로가 존중되고 논의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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