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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3/23
    오늘 꽃몽우리를 보았다.
    간장 오타맨...
  2. 2005/03/21
    고호와의 만남
    간장 오타맨...
  3. 2005/03/21
    잊고 지내다.
    간장 오타맨...
  4. 2005/03/21
    독도는 지구의 일부이다.
    간장 오타맨...
  5. 2005/03/20
    공부방 아이들
    간장 오타맨...

오늘 꽃몽우리를 보았다.

  • 등록일
    2005/03/23 00:49
  • 수정일
    2005/03/23 00:49
햇살 따스한 날 밖에 나무를 우두커니 쳐다보았다. 꽃봉우리에 꽃몽우리가 살포시 앉아있는게 아닌가? 그래 봄이 오는구나... 아침 새지저귐이 좋다. 그리고 꽃샘추위의 바람도 살포시 내 몸을 스치면서 지나간다. 무슨 소식을 알려주려는지... 햇살 따스하다. 오늘 소리 없이 오는 봄과 마주쳤다. 아직 꽃잎이 피지는 않았지만... 목련 꽃이 활짝 피어났으면 좋겠다. 화사한 흰색의 꽃으로... 봄맞이 단장 준비차 보름 전에 써놓았던 글들을 살며시 열고 트랙백을 걸치러 다녔다. 간장 오타맨이... p.s 프로젝트 날짜는 다가오고 있다. 낱말이 이리저리 도망쳐 다니는 것을 주우러 오늘하루도 정처없이 모니터와 씨름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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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호와의 만남

  • 등록일
    2005/03/21 16:47
  • 수정일
    2005/03/21 16:47
Starry Night Over the Rhone /Arles: September, 1888/ Paris: Musee d'Orsay Evening landscape with Rising Moon/ Saint-Remy: early July, 1889/ Kroller-Muller Museum White House at Night/ The Auvers-sur-Oise: June, 1890/ St. Petersburg, Hermitage The Potato Eaters Self-Portrait in Front of the Easel Japonaiserie : Flowering Plum Tree (after Hiroshige) Skull with Burning Cigarette Langlois Bridge at Arles with Road Alongside the Canal, The Sower, The Tree Roots and Trunks Vincent's House in Arles (The Yellow House) : Arles Wheat Field with Crows Starry Night


고호와의 만남 (II) 1편에서 고호와의 만남이 우연한 만남이었다면 이번의 만남은 나의 의도된 그와의 만남이었다. 난 그를 만나기위해 Amsterdam에 있는 그의 박물관을 찾아간것이다. 먼저 고백하고 싶은건,지금까지 난 London National Gallery에서 보았던 고호의 해바라기를 난 고등학교 미술책에서 본 그 그림이라고 이곳에 오기전까지 믿어왔는데 이곳에 와서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는걸 알게되었습니다. 내가 고등학 교 미술책에서 본 해바라기의 그림은 이곳 고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해바라기'였던것이었습니다. 어느 그림이 더 미술적 가치가 있느냐를 떠나서 다만 나의 미술에 대한 무지한 안목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박물관에 전시된 고흐 미술관련 책자에서 고흐는 해바라기를 5점을 그렸는데 3작품이 노란색 바탕의 그림이고, 2작품은 파란색 바탕의 그림이라고 읽었는데 (아무래도 나의 영어실력에 문제가 있었던것 같습니다) 웹에서 본 그의 그림에서 15송이의 해바라기 그림 3점은 노란색배경으로, 12송이의 해바라기 그림 2점은 푸른색 배경으로 되어있었으며 그외 다른 몇송이 해바라기의 그림도 여러점이 있었습다. (관심이 있으신분은 여기를 보시고 London에 있는 해바라기 와 Amsterdam에 있는 해바라기 의 구분법 을 연구해보심이...개인적으로는 테이블과 배경의 경계선의 색깔과 화분에서 그의 서명의 위치로 구분하기로 했답니다.-London=푸른색,윗쪽, Amsterdam=적색, 아래쪽-) 고호는 고갱과 같이 지낸적이 있는데 이 '해바라기' 그림(들)은 고갱의 방을 장식해주기위해 그렸다고 합니다. 또 박물관에는 고호가 Theo와 주고 받은 많은 서신들도 함께 전시 하고 있었습니다. 그 서신들중에는 고호가 고갱과 함깨 지내면서 싸운 시시콜콜한 내용들의 서신들도 있었는데 그것을 보면서 문득 스쳐가는 생각은 혹 고호는 동성연애자가 아니였을까?.. The Potato Eaters : 그외 나의 인상에 남는 작품들로는 먼저, '감자 먹는 사람들(The Potato Eaters)' 이란 작품이었는데 그림 옆에 붙은 설명서에 의하면 왼쪽에 있는 사람이 앉아 있는 의자는 그의 그림처럼 옆면과 뒷면이 동시에 보일수 없다고 한다. 아마도 이것은 그의 실수는 아닐것이고 입체화의 첫 시도가 아닐까?. 무엇보다 이 그림 에 관해서는 그 옛날 국어교과서에 나온적이 있어서 잘알고 있었다. 책에서 고 호는 그의 형/동생(brother)에게 이 그림은 금색액자에 넣으라고 했던걸로 기억 한다. 그때는 몰랐던(어쩌면 국어선생님이 배경설명을 해주셨지만 내가 잊었을 지도 모르는)사실은 그의 형/동생 Theo는 그림 판매상이었다. 그래서 아마도 고호는 금색액자에 넣어달라고 요구했던 모양이다. Self-Portrait in Front of the Easel : 이 그림은 그의 많은 자화상들 중에서 화가로서의 유일한 자화상이라고 설명서에 서 읽은것 같은데...난 다른 한점의 화가 자화상을 웹에서 보았다. 아마도 이 그 림은 제대로된 그의 화가로서의 유일한 자화상이 아닐까?. Japonaiserie : Flowering Plum Tree (after Hiroshige) : 기분이 그렇게 좋은 일은 아니지만 고호는 일본의 그림에도 관심이 많았던것 같다. 그의 귀가 짤린 자화상(Self-Portrait with Bandaged Ear)(고호와의 만남 (I)에서 세번째 만남의 그림으로서 이 그림을 난 영국의 Courtauld Institute Galleries에서 보고 진한 감동을 받았었다)의 배경중에 일본풍의 그림이 있듯이 그는 몇점의 일본 풍경화를 그렸다. 이 그림의 설명에 의하면 그는 일본 풍경화들처럼 그림에 액자모양의 테두리를 그렸으며 그 둘레 에 쓰여진 글들은 아무 의미없는 그림적 효과를 위해 써 넣은것이라고 한다. Skull with Burning Cigarette : 이 그림을 처음보았을때 난 고호가 이러한 그림도 그렸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금은 의외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떠오른 잡념은 이 그림은 금연 공익광고의 그림으로 사용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그리고 박물관 기념품 가게에서 이 그림을 한장샀다. 책상위에 붙여놓고서 금연을 시도해 보려고... Langlois Bridge at Arles with Road Alongside the Canal, The : 아마도 암스테르담을 여행하다가 보면 이 그림의 다리를 볼수 있을것이다. 나도 다리가 아름다워 이 다리의 야경사진을 찍었으니까..그의 그림에서도 이 다리가 모델이 된 여러 그림들이 있었다. 하지만 설명서에 의하면 고호는 이다리를 보고 그린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 다리가 만들어졌을때 그는 파리에 있었고 그곳에서 그렸다고 한다. Sower, The : 사실 이 씨부리는 사람의 그림에 대한 설명서의 기억은 확실하지 않다. 다른것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나. 기억이 맞다면 나무가 그림의 대각선 으로 지나가는데 그림에서는 이러한 구도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림이 2등분 되는 인상을 주기에. 하지만 그는 그러한 금기를 의도 적으로 사용한것 같다. Tree Roots and Trunks : 이 그림이 무엇을 묘사하는지 애매하지만 나무의 뿌리와 줄기(Tree roots and Trunks)들을 그린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고호의 표현에 의하면 'something life's struggle'(정확하게 옮겨적은건지는 잘 모르겠음)이라고 하는데.. 설명서에서도 정말 그렇게 느껴지는지 독자에게 묻고 있었다..하여턴 난 그의 의도가 마음에 들어 이 그림의 엽서도 한장 샀다. Vincent's House in Arles (The Yellow House) : Arles에서의 그의 집을 그린것이라고 한다. 그의 집을 녹색으로 표현한것이 정말 녹색대문과 창문의 집에서 살아서 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집을 녹색으로 칠한것은 꼭 어린아이들이 그들의 그림에서 자신의 집들을 밝은색이나 크게 그려서 강조하는것 처럼 그린것 같아서 재미있게 느껴졌다.(이건 순전히 저의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왜 하필이면 녹색일까?..풍차마을에서 느낀것인데 그곳의 집 들은 거의가 녹색으로 되어있었다. 아마도 그 옛날 이곳사람들은 녹색을 무척 좋아했었나보다. Wheat Field with Crows 내가 이 '밀밭의 까마귀들(Wheat field with crows)'을 소개하는건 설명서에 의하면 이 그림이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믿어지는 작품이라고한다. 외국에서는 까마귀는 길조를 의미하는데.... 그외 여러가지의 그의 그림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나는건 이정도인것 같다. 여기서 발혀두고 싶은건, 음악과 더불어 그림에 대해서 난 완전히 무지한 사람이다. 이 글의 내용은 부정확할수도 있으며, 전적으로 나의 주관적인 느낌이라는것을 꼭 발혀두고 싶다. 물론 자세한 원문을 찾아가며 적을수 있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들고...나의 개인적 감정에 영향을 미칠수 있다는 변명같지 않은 변명으로 대신하며...... Starry Night :마지막으로 천문학도로서 난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아쉽게도 이 그림은 고호 박물관에는 없다. 그래서 조사를 해보니 New York에 있는 The Museum of Modern Art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언제가 난 뉴욕으로 가리라. 이 그림을 보기위해서. 그리고 그 그림을 보고 난후 난 고호와의 만남 (III)완결편을 쓸것이다. 정말 이건 우연이라고 난 생각한다. 고호 박물관을 갔다온후 이틀뒤 난 벨기에의 숙소에서 우연히 영국의 신문 Guardian지를 보게되었다. 그것을 보게된건 그곳에 난 기사를 보고서 난 그것이 어디 신문인지를 확인하였 던것이다. 기사 내용의 요점은 최근 허블망원경(HST)로 찍은 어떤 별의 사진이 고흐의 starry night에서 묘사된 별과 유사하는것이었다. 그리고 그 두사진을 위 아래로 나란히 실고 있었다. (돌아와 인터넷 신문을 검색 해보니 HST로 찍은 별사진만 있고 고흐의 그림은 인터넷판에 없었다. 이런 나쁜놈들 고호의 그림은 왜 인터넷에 실지 않은거지?.. 그 기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해보세요..음 활자판 신문을 구해서 스크랩을 하고 싶은데.....) 2004년 3월 7일 암스테르담에 있는 고호 박물관을 다녀와서.... 고호와의 만남-(III) 먼저 다시 한번 고호와의 만남을 갖게 된것이 무엇보다 무척 기쁘다. 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었다. 고호와의 두번째 만남이 있은후, 나는 인터넷을 통해서 그의 'Starry Night'이라는 작품의 2000조각 직소를 사서, 외로운 날들이면 그의 작품과 대화를 하며 하나하나 맞추어나갔다. - 완성된 직소를 보시려면 자화상 (I)의 배경을 유심히 살펴보시길.- 완성후 방에 걸어놓고 지내다 그가 그린 별이 최근 우주망원경으로 찍은 먼지에서 별이 탄생하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기사를 읽은후 난 매일밤은 아니지만 그 그림을 쳐다볼때면 혹 또 다른 천문학적 연관성은 없을까 하는 생각에 그 그림을 한번씩 더 쳐다보곤하였다. 하지만 그 어떤것도 찾지 못하고 세월은 그렇게 흘러갔더이다... 그러던중 올초 난 다시 그의 그림으로 된 달력을 갖게되었고 달력속의 그림들을 한장 한장 넘겨보다 난 예전에는 미쳐 감지하지 못했던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의 그림 'Starry Night over the Rhone'라는 그림에는 북두칠성의 그림이 선명 하게 그려져있었다. 그리고 천문학도라면 머리에 스치고 지나갈 생각을 하게되었다. 그당시의 별자리 모습을 재현해보면 이 그림이 그려진 시기를 정확히 추정할수 있지 않을까? 라는.....그래서 당장 구글에서 그 그림을 그린 Arles 지방의 위도를 조사하기위해 'arles latitude' 를 치는 순간 난 허탈해졌다. 이미 누군가 나와 같은 생각으로 이미 조사 한것이 아닌가!!!. 그 사이트는 첫번째 검색항목으로 검색되어졌다..... (혹 믿기지 않으시면 www.google.com에 직접 검색해보시길) 하여턴, 자세한건 아래에 링크한 사이트를 참조 하시기 바람니다. Van Gogh's Starry Night over the Rhone (Arles, 1888) 그 사람들은 고호가 그의 동생(Theo)에게 보낸 서신들을 기초하여 이 작품의 제작일을 1888년 9월 25일로 추정하고 그림에서의 모양처럼 북두칠성(Big Dipper or Great Bear)이 위치할려면 오후 10:30분경이라며 'The Sky'라는 프로그램으로 그당시의 북두칠성의 모습을 재현하여 설명하고 있었다. 아래 그림은 내가 'starry night'(참 프로그램 제목도 잘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라는 천문 프로그램으로 재현하여 비교한 그림이다. 그 사람들의 지적처럼, 밝기나 상대적 위치는 조금 부정확한것 같다. Starry Night Over the Rhone Arles: September, 1888 Paris: Musee d'Orsay Great Bear 25 Sept 1888, 10:30 PM simulated with 'Starry Night' 혹시나 하는 마음에 또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내가 그렇게도 찾아헤메이던 해답에 대한 제안들이 있었다. 'starry night'에 그려진 별자리는 과연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은 Aries(양자리)라고 제안하고 있었다. Vincent online Forum에서, 아울러 자세한 그림 비교 설명과 함깨. 사실 위의 그림처럼 그렇게 선명하지 않고 신빙성은 낮아보이지만 난 나름대로 어쩌면 그게 정답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고호가 이 그림은 비록 Saint-Remy 로 옮겨와서 그린것이지만, 혹 그가 어떤 별자리를 그리고자 했다면 Arles 지방이름에서 연상하여 Aries를 그릴수도 있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두 단어의 유사성에 그 가능성은 높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이는 그 당시 그는 Saint-Remy병원에 있었기에 실제로 야외에 나가서 그린것이 아니고 병원창문을 통해보아 퍼져보이는 별을 그린것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들은 중앙의 나선모양은 그 당시 나선성운에대한 천문지식을 고호도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그린것이라는 말을 한다. 정말 고호가 야외에서 그린것이라면, 그건 역사상 가장 나쁜 천체 관측 기상조건이었을것이라는 우스개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생각한건 그 나선모양의 회오리들이 얼마전 본 영화 '윔블든'에서 영향을 받아 혹 혜성을 그린것이 아닐까 하고 그림이 그려진 1889년의 헤성들을 조사해보니 3개정도 있는것 같은데 그건 맨눈으로 보이기에는 너무나 어두웠다. Alphonse Loyis Nicolas Borrelly라는 프랑스 Marseilles(Saint-Remy와도 가깝 다고 할수있는)사람이 1904년에 발견한 19P/Borrelly라 명명된 혜성(물론 가장 밝을때가 8등급인)도 있었지만. 또 다른 떠오른 생각은 그럼 중앙의 가장 밝은 별은 혹 초신성이 아닐까? 또 인터넷을 검색하니 그 당시에 폭발한 초신성의 기록들은 발견할수 없었다. 어떤 글을 보니 그 중앙의 밝은 별은 금성(Venus)라고 한다. 인터넷의 정보들은 이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Evening Landscape with Rising Moon (1889)'라는 작품은 고호가 그의 동생 테오에게 달이라고 언급한 편지가 발견되기전인 1930년도까지는 일몰(sunset)인지 월출(moonrise)인지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그 편지는 날짜가 적혀있지 않고 종국에는 분실되어서 그 편지의 진위가 의문시 되었는데, Southwest Texas주립대의 Olson교수가 1889년 7월 13일 오후 9:08분에 달의 모양이 그렇게 해안절벽에 걸린다는 사실을 현지조사와 컴퓨터 계산을 통해 밝혀냈다고 한다. 또 하나 그의 작품 'White house at Night'에 떠있는 별은 금성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추정시간은 1890년 6월 16일 오후 8:00경, 고호가 자살하기 정확히 6주전. Venus pinpoints Van Gogh painting (BBC news) Evening landscape with Rising Moon Saint-Remy: early July, 1889 Kroller-Muller Museum Moonrising 09:08PM, 13 July, 1889 Simulated with 'Starry Night' White House at Night, The Auvers-sur-Oise: June, 1890 St. Petersburg, Hermitage Venus 08:00 PM, 16 June 1890 simulated with 'Starry Night' Starry night에 관한 여러사람들의 의견에 기초를 하여 나름대로 그 그림이 그려진 시기를 추정해보았다. 먼저, 고호의 편지들중에서 이 그림이 제일 먼저 언급되는(혹 내가 편지를 철저히 조사하지 않아서 오류가 있을수도 있지만) 편지를 찾아보니, 1889년 6월 17(혹은 18일) 그의 동생 테오에게 보낸편지 인것 같았다.(아래부분의 전 편지내용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 At last I have a landscape with olive trees and also a new study of a starry sky...... 그리고 내가 이 그림이 그려진 시기를 추정함에 있어서 가장 큰 가정은 고호가 그 당시 달의 위상(phase)을 그대로 그렸다는고 가정하는 것이다. 물론 고호가 달의 위상을 제대로 그렸다고/혹은 그리지 않았다고할 아무런 근거는 없다. 하여턴, 그리하여 달의 위상이 맞는 달을 찾아보니 6월에도 있었지만 그건 17일 이후여서 이전 달(month)을 조사해본 결과 22일무렵부터 달이 기울기 시작하고 있었다(아래 오른쪽 그림 참조). 다음으로 한 가정이 중앙의 밝은 별이 사실은 금성(Venus)이라는 사람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그 그림과 비슷한 시간을 찾아본 결과 5월 25(나름대로 25일 위상과 비슷한것같아서) 오전 4:00경(금성과 달위 위치를 고려하여)이 나왔다. 과연 고호가 그런 이른 새벽에 일어나 이 그림을 스케치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고, 또 양자리의 별들로 그림 왼쪽 위의 몇별들은 설명할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특히 달옆의 두별들을 설명하지는 못하는것 같다. 논의의 여지가 많고 앞으로 더 조사할 필요가 있지만 잠정적으로 난 고호는 이 그림을 1889년 5월 25일 이른 새벽(4:00) 에 일어나 이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한다(결론내렸다). Starry Night Saint-Remy: September June, 1889 St. Petersburg, Hermitage Venus and Moon 04:00 AM, 25 May 1889 simulated with 'Starry Night' 후기 : 사실 고호는 개인적으로 현재 그의 그림중 최고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이 작품(starry night)보다, (별과 관련해서) Starry Night over the Rhone나 Cafe Terrace on the Place du Forum at Night을 (또는 Road with Cypress and star) 더 좋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편지들 속에서 많이 회자되는걸로 보아서. 그리고 한가지 궁금증으로 떠오르는것은 왜 Starry Night over the Rhone를 Starry Night이라 제목으로 붙이지 않았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편지 글들속에서는 늘 그 작품을 starry night(sky)로 표현한것 같은데...그리고 사실 Starry Night작품에 대해서는 언급이 별로 없는것 같았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결과를 얻어서 이 작품(starry night) 이 그려진 시기에 대한 언급이 없는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들었다. 분명 다른작품을 했다면 이 작품에도 욕심이 났을텐데... 시뮬레이션 사진의 배경밝기는 하늘의 배경밝기정도를 고려한 색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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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지내다.

  • 등록일
    2005/03/21 15:41
  • 수정일
    2005/03/21 15:41
잊고 지냈다. 노동자 감시모임을 잊고 지냈다. 98년 이후 만들어진 작업장 감시모임을 시발로 추동된 노동자 감시 모임.... 그래 떠나오면서 노기연 황동지에게 부탁을 하였는데 모임이 잘되지 않는가? 보다. 이 모임이 잘되어야 할 것인데... 정보인권으로 담기엔 노동권 또한 중요한 문제이다. 간과해서는 안되는 중요한 사안이 었음에도 불구하고 나 하나의 안위를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뒤돌아 섰던 것이 못내 아쉽게 다가온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모임의 형태를 그리고 견고하게 만들어 놓고 내려왔어야 하거늘 뒷 정리를 하고 오지 못한 것이 이렇게 미안할 수가 아니 책임을 지지 못한 죄의식이 오늘 든다. 어떻게 만들어진 모임이었던가? 중요한 사안이었음에도 챙기질 못하였다. 다들 바빴지만 이 모임을 통해 노동권에 대한 문제... 정보화가 노동자를 어떻게 착취하고 이를 통해 구조조정이라는 미명하에 벌어질 무수한 탄압을 알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니 모임을 추스리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 다들 얼마나 열심히 하였던 모임이었던가? 2003년 실태조사 및 인식조사 결과발표가 나왔을 때의 환희 그리고 이후 더 열심히 하자는 결의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때 지속하여 2005년도에ㅤㄷㅗㅎ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매 대응마다 최선을 다하자는 결의는 어디로 팔아먹었는지... 나를 돌아보건데 한심하다. 이 모임을 재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활동가들의 노고가 꿈틀거렸던가? 생기가 느껴졌던 모임이던가? 아 가슴이 미어진다. 책임을 통감하여야 하는데 나는 은근쓸쩍 빠져버린 느낌이 들어 죄의식만 증폭되어간다. 그래도 동지들을 믿는다. 나 없다고 모임이 안될 것이라는 생각은 아니다. 지금 내가 모르는 동안 모임이 잘 진행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삼성공대위 활동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못하고 핸드폰 위치추적 활동이 정체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 한켠 편안하지많은 않다. 이제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누구에 의해서라도 그리고 이땅의 노동자가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해 어떠한 고통을 받고 있는지 그리고 기술은 어느 것들이 있는지... 이 도입 논리들의 면면을 살펴보고 이 정보통신 기술발달이 생산현장의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에 대한 관찰과 대응이 절실히 필요할 때이다. 정보화의 양면성.... 우리에게 있어 득으로 작용하던 것이 이제는 독으로서 화답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한 면밀하고 구체적인 대응 방안이 마련되어 전체 차원에서의 노동자 주도의 정보통신운동의 길을 열어 나갔으면 하는 바램만 가져본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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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지구의 일부이다.

  • 등록일
    2005/03/21 00:57
  • 수정일
    2005/03/21 00:57
* 이 글은 개굴님의 [독도는 바다제비와 괭이갈매기의 것이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고생대/중생대/신생대 등 지구의 역사를 보고 있노라면 독도는 지구의 일부분이다. 누구의 것이라 볼 수 없다. 다만 지금 누가 점유를 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화두이다. 지구가 하나의 공동체 하나의 사회로서 가능하지 않는 사회... 바다갈매기와 그외 무수한 자연 동식물이 어우러진 독도.... 이 공간은 지구라는 환경이 지금 살아 있음을 이야기하는 하나의 대목이다. 현존하는 생물체들의 것이기 보다는 누구의 것이기 보다는 머물다 가는 곳에 불과하다. 인간은 힘을 바탕으로 국경이라는 것을 긋어나가면서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면서 힘을 확장하고 있다. 그러나 혁명이라는 것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초기적 형태에서는 일국에서의 정치적 사회적 조건에 의해 일국적 상황에 맞는 혁명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혁명이 전지구적으로 확장하기 위해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국경이라는 힘이 제국이 선으로 명명한 국경이라는 틀을 하나둘 해체해 나가는 것이 아니던가? 그러나 지금 이러한 의미는 국가적 이익과 국가적 영역이라는 틀에서 다들 인식을 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최고라는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한... 붉은 악마의 필승 코리아... 축구를 열광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편을 가르고 경기를 관람하는 문화가... 내가 속한 나라의 이익이 곧 나의 이익이라 생각이 사글어 들지 않는한... 영원히 지속될 문제이다. 동식물의 보고... 그러나 변증법을 이야기한 다면 아마 그곳이 영구적으로 지금 현존하는 동식물의 터전일까? 아니다. 지구의 일부분이며... 언젠가 이 곳 또한 시간이라는 흐름속에 그 형태를 달리 할 것이다. 지금 독도를 둘러싼 쟁점은 한일 영유권이라는 쟁점으로 치닫고 있는데... 독도가 갖고 있는 의미를 다시금 살펴보기 바란다. 독도를 한일어업협정에서 배타수역 영역 결정에 있어 한일이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지점이다. 한국정부는 독도라는 영역을 일본에게 내어줄 경우의 문제.... 배타수역에 있어서 한일어협 협정에서 상당한 어획량(북대서양 난류가 흐르는 곳... 쿠우슈우 난류가 지나가는 관통로)의 보고와 이후 미래 자원이라 할 수 있는 자원의 경쟁에 한일이 서로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쟁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이렇듯 미래 자원에 대한 동해를 둘러싼 쟁점의 한축에 불과하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를 마치 한일의 분쟁으로 호도하고 있으며, 한일 분쟁으로서 민족감정을 자극한다. 누구의 것인가?를 떠나 합당한 논리를 한일 감정으로서 이 문제를 호도하면서 쟁점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다들 그럴 것이다. 독도를 일본에 내어줄수는 없다. 그러나 내어준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를 보면 그렇지 않다. 국제 관계법상 점유권을 가지고 있는 곳에서 자신의 점령지를 과거 통상관례에 따라 내어준 적이 있던가? 제국들이 식민지 지배전략을 하여 과거 민족분할 정책으로 독립국가를 형성하며 소수 지배민족에게 지배권을 분할 한 이후 없는 사례이다. 왜 궂이 이러한 쟁점을 만드는 것인가? 그렇다고 이 문제로 인해 독도는 일본으로 넘어갈 것인가? 전쟁이 일어나 점유권을 주장하기 전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전국운영에 있어 핵심이슈를 흐르거나 다른 한편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하며 정치경제적 문제점들을 희석화 하기 위해 벌이는 농간들이 아니던가? 특히 선거철만 되면 붉어지는 북한한계선(NLL) 문제만 보더라도 적의 적은 동지로 된 적이 많이 빈번히 일어나던 일 아닌가? 독도 문제는 일본에 비해 한국인들이 반일감정을 자극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정치적 이용물로서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안타깝다. 이는 한일 정치권이 서로간의 경쟁을 하는 것 처럼 비추면서 서로에 있어서 자국내 이익을 그리고 보수적 정치권의 서로의 정치적 힘균형성을 받기 위한 제스쳐에 지나지 않은지 생각된다. 늘 붉어진 문제.. 그리고 동해니 일본해니 하는 문제들.... 과연 이것이 우리내 민중에게 있어 피부로서 얼마나 다가오는가? 내가 한국에 속한 국민이라서 이것을 주장하여야 한다면 난 아예 한국인임을 포기하겠다. 그냥 지구인으로 남고 싶다. 지구의 일부인 그곳에 머물다 가고 싶다. 제발 정치적 이용거리로 국민을 더이상 쟁점이라 하면서 더이상 맹목적 반한 감정으로 치닫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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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방 아이들

  • 등록일
    2005/03/20 09:57
  • 수정일
    2005/03/20 09:57
노는 것에 온통 정신이 팔린 아이들.... 아이들에게 혼내는 것이 미안하지만 간혹 아이들 때문에 짜증나거나 화가 가슴에서 머리 끝까지 날때가 많이 있다. 사랑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없는 것... 그래 나도 사람이기에 그러려니 한다. 어제는 아이들 때문에 혼쭐이 났다. 귀가 시간도 잊어버리고 자전거를 타고 이리저리 쏘다니다. 동네 사방을 이리저리 찾아다녔다. 노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을 조금만 해주면 좋으련만... 십년 감수하였다. 이리저리 돌아다녀봐도 아이들은 도통 찾을 길 없다. 내가 그런데 담당을 하고 계신 선생님 마음은 어떠했을까?


아이들을 만약 찾기 못하였다면 선생님은 아마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으리라... 그나마 아이들이 이전에 동네 근처 농협 주변에서 놀던 생각이 나서 그 곳으로 가보았다. 그런데 그곳에서 요요를 돌리며 민규와 동근이가 있지 않은가? 아이들을 찾았다는 생각은 잠시뿐 나도 모르게 아이들 목덜미를 잡고 화를 내고 선생님 집으로 데려왔다. 아이들은 아무런 일이 없다는 것인지 자신의 처신에 대하여 생각을 하지 못해서인지... 서로에게 잘못을 돌리고 집에 들어가자고 했는데 들어가지 않았았다는 말만 연거풔 하였다. 그러나 난 이런 아이들이 왜 집에 들어가지 않고 주변을 서성이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내가 아이들을 발견한 시간은 저녁 10시 30분 그리고 이전에 다솜공부방에 와서 자전거를 놓고 사라졌다. 왜 그렇게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지... 세상이 험난하고 살기가 녹녹치 않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이들이 미워진다. 그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그런 아이들... 아픔을 간직하고 있고 상처를 치유하고 있다는 것... 내가 경험하지 못한 무수한 두려움을 지니고 사는 아이들이 그 순간만큼은 미워진다. 아니 아이들이 한 없이 얄밉고 밉상굽게 나에 눈에 비춰졌다. 선생님에게 아이들을 인계하고 돌아서는 길.... 선생님의 얼굴에 피어난 수심 꽃을 보고 마음이 아렸다. 사랑으로 늘 다스리고 아이들 하나하나 보이지 않는 시선을 갖고 함께하기란 말로서는 되는 것이 아님을.... 마음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열매가 없으면 나눠주지 못함을... 천천히 느낀다. 문득 생각이 든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런 소소한 일상 그리고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의 끊임없는 연대와 함께 가는 길 속에서 삶으로서 세상을 일구어나가는 것... 내가 바라는 세상을 지향하되 강요를 지양해야 한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할 수 있었다. 어제 아이들 사건으로 속이 타들어 간다. 그래도 우리 공부방 선생님은 그래도 어김없이 오늘이나 내일이면 아이들과 지지고 볶고 살아갈 것이다. 그러한 선생님이 나에 눈엔 참 대단한 분으로 비춰진다. 인간이라는 한계를 알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선생님과 얽힌 모진 사랑의 연을 어찌 쉽게 끊을 수 있으랴.... 말보다는 실천과 행동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이어나가는 선생님이야 말로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만큼은 입장의 동일함을 갖고 살아가시는 것은 아닌지.... 누구의 잘잘못을 판단하거나 입장을 내세우기보다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지적하며 아이가 가진 가장 값진 장점을 그 사람많이 가질 수 있는 특기로 살리는 일... 보통사람들에게는 흔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의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내어주어야만 얻는 그런 사랑의 열매 맺기는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 있어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의 삶을 일구어 나가는 데 있어 작지만 크나큰 힘으로 작용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공부방 선생님과 함께하는 아이들이 마냥 부럽게 다가온다. 그래도 동근이와 민규.... 철부지 이지만 큰 사고 없이 잘 자라고 함께하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본다. 늘 미운 짓을 골라하는 아이들이지만 늘 함께하면 가족과 같은 존재로 다가온다. 그래도 말썽좀 그만 부려라....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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