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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4/03/20
    [시/신경림] 나무여, 큰나무여
    간장 오타맨...
  2. 2014/03/18
    [시/김선태] 그러나,
    간장 오타맨...
  3. 2014/03/11
    [시/나희덕]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간장 오타맨...
  4. 2014/02/20
    [시/신동엽] 산에 언덕에
    간장 오타맨...
  5. 2014/02/19
    [시/신동엽] 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은 이길 것이다.
    간장 오타맨...

[시/최영미] 선운사에서

  • 등록일
    2014/03/27 13:02
  • 수정일
    2014/03/27 13:02

선운사에서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요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요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어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 최영미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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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경림] 나무여, 큰나무여

  • 등록일
    2014/03/20 12:29
  • 수정일
    2014/03/20 12:29

나무여, 큰 나무여

신경림

이 큰 나무를 키워온 것은
비와 햇빛만이 아니었다
뿌리를 타고 오르는
맑고 시원한 물줄기만은 아니었다.
뿌리를 몸통을 가지를 이루면서
얽히고설켜 서로 붙안고 뒹굴면서
때로는 종주먹질 다툼질도 하는
수만 수십만의 숨결이 있었으니,
비와 햇빛과 함께 물줄기와 함께
이 큰 나무를 키워온 것은
이 숨결이었다 이 뜨거움이었다.

이 숨결들의 등살에 몸부림에
나무는 자라면서 몸살을 앓기도 하고
아예 여러 날 몸져 눕기도 하고
잔가지를 수없이 잃기도 했으나
이때마다 나무는 새롭게 푸르고
한 뼘씩 한 발씩 더 자랐다.
보라, 숨결들은 굵은 몸통에
불거져 있다, 가지 끝에 우뚝 솟아 있다.
온 나무에서 아름다움으로
잔결의 아름다움으로 피고 있다.

어려서는 발길질에
이웃 도둑들의 윽발지름에
새벽 잘리고 가지 꺽여
앙상하게 뿌리만으로 버티기도 했고
또 전쟁통에는 뿌리째 뽑혀
심한 목마름에 협박이기도 했다.
이때마다 숨결들은 더욱 뜨거워지고
이때마다 숨결들은 더욱 단단해졌다.
비와 햇빛을 불러올 사람들이
오히려 그것을 막아서고
물줄기를 빼돌릴 때도
숨결들은 더욱 올곧고 굳세여졌다.

이 숨결들이 만들어놓은
그 등살과 몸부림이 만들어놓은
그 생체기 그 흠집과 함께
나무는 자라고 큰 나무가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 숨결들은
나무를 타고 하늘 끝까지 오르지만
아니다, 이 큰 나무 더욱 크게 하는 것은
하늘만도 땅만도 아니다
짓궂은 장난질로 나무를 온통 뒤흔들고
때로는 휘청거리게도 하면서
서로 얽히고설켜 굳게 버티고 섰는
수만 수십만의 숨결이 있으니.
하늘과 땅과 함께
이 큰 나무 더욱 크게 하는
숨결들을 보라, 나무를 타고
하늘 끝까지 오르는 뜨거움을 보라.

....신경림 시집 "가난한 사랑노래"중에서.....

p.s 우리내 노동자 인민의 모습도 이러했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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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김선태] 그러나,

  • 등록일
    2014/03/18 02:02
  • 수정일
    2014/03/18 02:03

그러나,

 

김 선 태

 

내 딸 여진이가 두 살 적
기분이 좋으면 <까르르> 웃고
기분이 나쁘면 <으아앙> 울던,
<어> 벌린 입을 다물었다 떼면 <엄마>가 되고
<아> 벌린 입을 다물었다 떼면 <아빠>가 되는,
그때, 바로 그때까지가 아름다웠습니다.

 

내 딸 여진이가 네 살 적
꽃을 보면 <꽃아 안녕> 꽃잎에 입맞추고
별이 뜨면 <별아 안녕> 별에게 손 흔들던,
옷 벗은 나무가 춥겠다며 한참을 껴안아주고
어항 금붕어가 죽었다고 몇 날을 울며 보채던,
그때, 바로 그때까지도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시집 『동백숲에 길을 묻다』(세계사,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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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희덕]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 등록일
    2014/03/11 11:42
  • 수정일
    2014/03/11 11:43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나희덕

 

말들이 돌아오고 있다
물방울을 흩뿌리며 모래알을 일으키며
바다 저편에서 세계 저편에서

휜 갈기와 검은 발굽이
시간의 등을 후려치는 채찍처럼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나는 물거품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 해변에 이르러서야 
히히히히힝, 내 안에서 말 한 마리 풀려나온다

말의 눈동자,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파도 속으로 사라진다

가라, 가서 돌아오지 마라
이 비좁은 몸으로는

지금은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수만의 말들이 돌아와 한 마리 말이 되어 사라지는 시간
휜 물거품으로 허공에 흩어지는 시간

...나희덕 시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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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동엽] 산에 언덕에

  • 등록일
    2014/02/20 17:50
  • 수정일
    2014/02/20 17:50

산에 언덕에

신동엽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

그리움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시집 아사녀 1963년>

p.s 알바로 나간 청년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 부인과 함께 그리고 이번 눈사태로 죽어간 경주 부산외대 그 꽃다운 넋 장례식을 떠올리며 시 한수 날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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