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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의 보름달은 어려운 이웃과 함께 바라봅시다.

  • 등록일
    2004/09/29 18:54
  • 수정일
    2004/09/29 18:54

한가위의 유래와 풍속을 새겨본다. 

 

 


 

 '추석 달'

                                                               / 김정기


뉴욕에서 보는 추석 달 속에

코스모스 무리지어 핀

고향 철길 있네

장독대 뒤에 꽈리 한 타래

가을볕에 익어 있네


가난이 따뜻하고 아름답던

성묫길 소슬바람 송편 향기

마천루 달 속에서 물씬거리네


함지박에 가득 담긴

머루 다래 수수 차좁쌀

쪽머리에 이시고

흰 옥양목 적삼의 어머니 계시네

울음 때문에 바라볼 수 없는

어머니 모습이네




우리 겨레의 3대 명절하면 설, 단오, 한가위를 꼽는다. 그 중에서도 ‘한가위’는 가장 큰 명절이다.

‘열 양세시기’에 있는 ‘더도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라는 말처럼 한가위는 햇곡식과 과일로 풍성한 좋은 절기로 ‘5월 농부, 8월 신선’이라는 말이 실감이 될 정도이다. 한가위에 단순히 송편을 먹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한가위의 유래와 어원을, 그리고 우리 조상들은 한가위를 어떻게 지냈나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가위의 유래와 어원


한가위는 음력 팔월 보름날(15일)로 추석, 가배절, 중추절, 가위, 가윗날 등으로 불러진다.


' 한가위'라는 말은 "크다"는 뜻의 '한'과 '가운데'라는 뜻의 '가위'라는 말이 합쳐진 것으로 8월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뜻이다. 또 '가위'라는 말은 신라 때 길쌈놀이(베짜기)인 '가배'에서 유래한 것인데 다음과 같은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신라 유리왕 9년에 국내 6부의 부녀자들을 두 편으로 갈라 두 왕녀로 하여금 그들을 이끌어 7월 기망(旣望:음력 열엿새 날)부터 길쌈을 해서 8월 보름까지 짜게 하였다. 그리곤 짠 베의 품질과 양을 가늠하여 승부를 결정하고, 진편에서 술과 음식을 차려 이긴 편을 대접하게 하였다. 이 날 달 밝은 밤에 임금과 백관 대신을 비롯해 수십만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왕녀와 부녀자들이 밤새도록 ‘강강술래’와 ‘회소곡(會蘇曲)’을 부르고, 춤을 추며 질탕하고 흥겹게 놀았다. 이것을 그 때 말로 ‘가배→가위라고 하였다.”


한 가위의 다른 이름인 중추절(仲秋節)은 가을을 초추(初秋), 중추(仲秋), 종추(終秋) 3달로 나누어 음력 8월 가운데에 들었으므로 붙은 이름이다. 추석이라는 말은 ‘예기’의 '조춘일(朝春日) 추석월(秋夕月)'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과 중국에서 중추(中秋), 추중, 칠석, 월석 등의 말을 쓰는데 중추의 추(秋)와 월석의 석(夕)을 따서 "추석(秋夕)"이라 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더 많이 쓰이는 ‘추석’은 어원이 명확하지 않을뿐더러 중국에서 유래된 것이어서 토박이말 ‘한가위’라고 부르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한가위에 뜨는 보름달


우 리는 예전에 보름달을 보고 계수나무 아래서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다고 믿었다. 어려웠던 시절에는 방아찧는 상상만 해도 풍요로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우리나라처럼 인도, 중앙아메리카에서도 달에서 토끼를 보았고, 유럽에서는 보석 목걸이를 한 여인의 옆얼굴, 책 또는 거울을 들고 있은 여인을 상상했다고 한다. 두꺼비, 당나귀, 사자의 모습을 생각한 나라도 있다.


우 리나라에선 보름달이 뜨는 날은 정월대보름, 한가위 등 풍요로운 명절이지만 서양에서 달은 주로 마귀할멈이나 늑대인간 등 무시무시한 악령과 연관된 할로윈데이 등 귀신의 날이다. 서양에서는 달의 영기를 받으면 미친다고 여겨 미친 사람을 '달의 영기를 받은 사람(lunatic)'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가위의 시절놀이


추석에 행해지는 세시풍속으로는 벌초(伐草), 성묘(省墓), 차례(茶禮), 소놀이, 거북놀이, 강강수월래, 원놀이, 가마싸움, 씨름, 반보기, 올게심니, 밭고랑 기기 등을 들 수 있다.


그 중 가장 보편적인 풍속은 벌초와 성묘 그리고 차례이다. 한가위 때에 반드시 벌초를 하는 것이 자손의 도리로 여겼으며, 한가위의 이른 아침에 사당을 모시고 있는 종가(宗家)에 모여 차례를 지낸다. 그리고는 성묘를 가는 것이 순서이다.


'소놀이'는 풍물패를 따라 소를 흉내 내며, 온 마을을 다니며 노는 놀이이다. 소놀이를 할 때는 그 해에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집 머슴을 상머슴으로 뽑아 소등에 태우고 마을을 돌며, 시위하기도 한다.


' 거북놀이'는 수수잎을 따 거북이 등판 마냥 엮어 이것을 등에 메고, 엉금엉금 기어 거북이 흉내를 내는 놀이이다. 이 거북이를 앞세우고 “동해 용왕의 아드님 거북이 행차시오!”라고 소리치며, 풍물패와 함께 집집을 방문한다. 대문에서 문굿으로 시작하여 마당, 조왕(부엌), 장독대, 곡간, 마굿간, 뒷간 그리고 마지막에는 대들보 밑에서 성주풀이를 한다.


조 왕에 가면 “빈 솥에다 맹물 붓고 불만 때도 밥이 가득, 밥이 가득!” 마굿간에 가면 “새끼를 낳으면 열에 열마리가 쑥쑥 빠지네” 하면서 비나리를 한다. 이렇게 집집을 돌 때 주인은 곡식이나 돈을 형편껏, 성의껏 내놓고 이것을 잘 두었다가 마을의 공동기금으로 쓴다.


' 강강술래'는 손에 손을 잡고 둥근 달 아래에서 밤을 새워 돌고 도는 한가위 놀이의 대표라 할 수 있다. 이 놀이는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물리칠 때, 의병술로 시작한 것이라는 설이 있으며, 또 이러한 집단 원무의 시작은 원시 공동체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강강술래는 둥글게만 돌지 않고, 갖가지 놀이판으로 바뀌면서 민요를 곁들인다.


" 하늘에는 별도 총총/강강술래, 동무 좋고 마당 좋네/강강술래, 솔밭에는 솔잎 총총/강강술래, 대밭에는 대도 총총/강강술래, 달 가운데 노송나무/강강술래” 앞소리꾼이 소리를 내면, 모두는 받아서 강강술래로 메긴다. 새벽이 부옇게 움터올 때까지 강강술래는 그칠 줄을 모른다.


' 원놀이'는 서당에서 공부하는 학동들이 원님을 뽑아서 백성들이 낸 송사를 판결하는 놀이로 요즘의 모의재판과 비슷하다. 가마싸움은 이웃서당의 학동들끼리 만든 가마를 부딪혀서 부서지는 편이 진 것으로 하는 놀이이다. 이긴 편에서 그 해에 과거시험에 급제한다는 믿음이 있다.


' 반보기(중로상봉:中路相逢)'는 한가위가 지난 다음 서로 만나고 싶은 사람들끼리 때와 장소를 미리 정하고 만나는 것이며, 중도에서 만났으므로 회포를 다 풀지 못하고 반만 풀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마음대로 친정 나들이를 할 수가 없었던 시집간 딸과 친정의 어머니가 중간 지점을 정하고, 음식을 장만하여 만나서 한나절 동안 회포를 푸는 것이다.


또 한 마을의 여자들이 이웃 마을의 여자들과 경치 좋은 곳에 같이 모여 우정을 나누며, 하루를 즐기기는 일도 있었다. 이때에 각 마을의 소녀들도 단장하고 참여하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며느릿감을 고르는 기회로 삼기도 한다.


속 담에 ‘근친길이 으뜸이고 화전길이 버금이다(가까운 친척을 만나러 가는 것이 먼저이고, 꽃구경은 나중)’라고 하여 한가위 앞뒤로 반보기가 아닌 ‘온보기’로 하루 동안 친정나들이를 하는 것은 여성들에게 큰 바람이었다. 오늘날도 민족대이동이라 하여 4천 만 명이 고향을 찾아 일가친척을 만나고, 조상에게 입은 덕을 기린다.


전 라도에서는 '올게심니(올벼심리)'라 하여 한가위를 전후해서 잘 익은 벼, 수수, 조 등 곡식의 이삭을 한 줌 묶어 기둥이나 대문 위에 걸어 두고, 다음해에 풍년이 들게 해 달라고 기원하는 풍습이 있는데 이 때 음식을 차려 이웃과 함께 잔치를 하기도 한다. 올게심니한 곡식은 다음해에 씨로 쓰며, 떡을 해서 사당에 바치거나 터주에 올렸다가 먹는다.


경 상도 지방에서도 ‘풋바심’이라 하여 채 익지 않은 곡식을 천신(薦新:철따라 새로 난 과실이나 농산물을 먼저 신위(神位)에 올리는 일)할 목적으로 벤다. 또 새로 거둔 햅쌀을 성주단지에 새로 채워 넣으며 풍작을 감사하는 제를 지내기도 한다.


' 밭고랑 기기'는 전라남도 진도에서는 한가위 전날 저녁에 아이들이 밭에 가서 발가벗고 자기 나이대로 밭고랑을 긴다. 이때에 음식을 마련해서 밭둑에 놓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하면 그 아이는 몸에 부스럼이 나지 않고 밭농사도 잘된다고 믿는다.

 

한가위의 시절음식


'설에는 옷을 얻어 입고, 한가위에는 먹을 것을 얻어먹는다.'라는 우리나라의 옛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가위는 곡식과 과일 등이 풍성한 때이므로 여러 가지 시절 음식이 있다.


‘동 국세시기’에는 송편, 시루떡, 인절미, 밤단자를 시절음식으로 꼽았는데, 송편은 대표적인 한가위음식이다. 송편에 꿀송편, 밤송편, 깨송편, 콩송편, 대추송편 등이 있으며, 이때 솔잎을 깔아 맛뿐이 아니라 향과 시각적인 멋도 즐겼다. 솔잎에는 살균물질인 피톤치드(phytoncide)가 다른 식물보다 10배정도 많이 포함되어 있어 유해성분의 섭취를 막아줄 뿐만 아니라 위장병, 고혈압, 중풍, 신경통, 천식 등에 좋다고 한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모시잎을 삶아 넣어 빛깔을 낸 모시잎 송편, 강원도 지방에서 감자송편이 있으며, 쑥송편, 치자송편, 호박송편, 사과송편 등도 별미이다.


‘농 가월령가’에는 신도주(新稻酒), 오려(올벼의 옛말)송편, 박나물(덜 여문 박을 얇게 저며서 쇠고기와 함께 간장에 볶은 뒤에 파, 깨소금, 후춧가루를 치고 주물러서 만든 나물), 토란국 등을 이때의 시식이라고 했으며, 송이국, 고지국( 호박, 박, 가지, 고구마 따위를 납작납작하거나 잘고 길게 썰어 말린 것)도 영동 지방에서는 별식으로 먹는다.


얼 마 전만 해도 가정에서 온 식구가 둘러앉아 정담을 나누며 송편을 빚는 정경이 아름다웠었다. 송편을 잘 만들어야 예쁜 아기를 낳는다는 말에 서로 은근히 솜씨 경쟁을 벌이기도 했으며, 빚은 송편이 예쁜지 볼품이 없는지에 따라 배우자 될 사람의 얼굴도 그렇게 된다는 말을 믿었다. 또 임신한 부인들은 송편에 솔잎 한 가닥을 가로로 넣어 쪘는데 찐 송편을 한쪽으로 베어 물어서 문 부분이 솔잎의 끝 쪽이면 아들이고, 잎꼭지 쪽이면 딸이라고 했다.


한 가위의 차례상에서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술이다. 한가위 때 마시는 술은 ‘백주(白酒)’라고 하는 데, 햅쌀로 빚었기 때문에 ‘신도주(新稻酒:?햅쌀로 빚은 술)’라고도 한다. 한가위 때는 추수를 앞 둔 시기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이 풍족해져 서로 술대접을 하는 수가 흔했다. 녹두나물과 토란국도 한가위의 시절음식이다.

 

달은 어려운 이웃과 함께 보아야 더 커진다.


한가위는 모든 배달겨레의 큰 명절이다. 이 큰 명절을 단순히 연휴라는 개념으로 보내지 말고, 우리 조상들의 마음속에 있던 ‘더불어’ 정신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지 난해 한가위엔 태풍 ‘매미’의 영향으로 40여명의 사망과 실종, 2천 여 명의 이재민이 생긴 것은 물론 엄청난 재산피해도 있었으며, 부안 주민들의 핵폐기장 반대 대규모 촛불시위 등으로 어둡고, 우울한 명절이 되었었다. 올해도 최악의 경기상황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살고 있는데 주변이 우울하면 나도 행복할 수 없다. 그래서 명절은 나와 내 식구들의 기쁨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주 위에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도 있으며, 일하다 다치고도 치료는커녕 고국에도 가지 못하는 이주노동자와 신용불량으로 온 식구가 뿔뿔이 헤어져 사는 사람, 그리고 태풍으로 농사를 망치고, 하늘만 멍하게 바라보는 농민도 있다. 그런 어려운 이웃들을 외면하지 말고, 함께 바라보는 달은 아마도 훨씬 더 클 것이다.


또 소나무가 피톤치트로 썩는 것을 막아주듯 소나무와 마찬가지로 곧은 인품의 향으로 다른 사람을 건강하게 해주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의 삶을 더듬어보고, 훈훈한 입김을 쐬면 나의 잘못된 생활이 올곧게 정리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말함이다. 이 가을에는 솔잎을 깔고 찐 송편처럼 향기로운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아니 내가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은 어떨까?


세 월이 풍속을 바꾸는 탓인지 점차 가정에서 송편을 빚는 모습을 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어쩌면 세상살기가 힘들어진 탓일 수도 있으며, 개인주의가 만연되어 식구들의 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원인일 수도 있다. 게다가 빠름과 즉석의 개념이 온통 사람들을 지배하여 식구들이 한 자리에 모이 것조차도 허용을 하지 않는 세상 탓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따뜻한 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라면 한가위에는 온 식구가 둘러앉아 오순도순 얘기꽃을 피우며 송편을 빚어보는 행복함을 올 한가위엔 누려보자.

 

※ 참고

국립민속박물관 : http://minbak.nfm.go.kr/html/subhtm/sub02_8.htm
송정근의 우리나라 명절 : http://home.hanmir.com/~jungkeen/song.htm
이야기 한자여행 : http://www.hanja.pe.kr/10-han/10-han81.htm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하여라, 심우성, 공주민속극박물관장
세시풍속, 최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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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퍼뮤니케이션’ 시대

  • 등록일
    2004/09/29 17:51
  • 수정일
    2004/09/29 17:51
‘펌’인터넷의 새로운 문화로 정착 `회사원 K씨의 싸이월드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자신이 써서 올린 글보다 다른 사람의 글을 퍼온 것이 더 많다. 그는 재미있는 이야기나 사진을 여러 사람과 공유하기 위해 이를 퍼오는 경우가 많으며 퍼올 때는 양해를구하는 것을 인터넷 에티켓으로 생각하고 있다' 광고회사 휘닉스커뮤니케이션즈는 인터넷 일기장인 블로그나 싸이월드, 미니홈페이지 등 1인 미디어를 보유하고 있는 전국의 16∼34세 500명을 대상으로 `펌' 이용 실태를 조사.분석한 `퍼뮤니케이션의 시대'(Purmmunication Age) 보고서를 통해 펌 문화가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의사소통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29일 밝혔다. 펌 문화란 `퍼옴' 또는 `퍼나름'을 의미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이 인터넷에 올린콘텐츠를 퍼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리는 행위를 말하며 이는 곧 인터넷에서 이뤄지는 디지털 입소문 역할을 한다.


휘닉스컴의 조사에 따르면 대상자의 98%가 다른 사이트에 있는 글을 퍼온 적이있으며 1주일에 한번 이상 퍼온다는 응답자도 72%에 달했다. 자신의 1인 미디어에펌을 통해 올린 글이나 사진의 비중이 25%를 넘는다고 응답한 경우도 64%에 달했다. 이는 1인 미디어를 통한 교류가 활발해 질수록 콘텐츠 확보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다른 사람의 콘텐츠를 자연스럽게 퍼오게 되기 때문이라고 휘닉스컴은 설명했다. 휘닉스컴은 이같이 펌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을 펌과 즐거움을 뜻하는 킨의 합성어인 `펌킨족'으로, 이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퍼뮤니케이션'으로 각각 명명했다. 휘닉스컴은 펌 문화가 1인 미디어의 폭발적 성장으로 나타난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기업들이 펌 문화를 디지털 구전이라는 새로운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1인 미디어가 친구와의 주요 교류 수단으로 활용되는 상황에서 펌을 통한 디지털 입소문은 1인 미디어를 거치면서 자발적으로 무한 확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휘닉스컴은 기업이 `펌 마케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안주같은 이야기를 할것(친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될만한 보편적 주제를 선택) △콘텐츠에 익살을 선물할것 △풀잎처럼 누워있을 것(요란한 호객행위를 하지 말고 은근하게 노출) △콘텐츠에 대한 접촉을 제한시켜 강력한 호기심을 유발시킬 것 △회사나 제품에 대한 뒷이야기를 적극 누설할 것 등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휘닉스컴 김태용 마케팅플래닝본부장은 "1인 미디어는 네티즌들이 직접 만든 자발적인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이뤄지는 의사소통의 태도도 매우 적극적"이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퍼뮤니케이션의 철저한 분석을 통해 소비자들의 네트워크 사이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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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김소월] 옷과 밥과 자유

  • 등록일
    2004/09/29 10:35
  • 수정일
    2004/09/29 10:35

공중에 떠다니는

저기 저 새요

네 몸에는 털 있고 갓이 있지.

 

밭에는 밭곡식

논에는 물벼

눌하게 익어서 수그러졌네!

 

楚山 지나 적유령

넘어선다

짐 실은 저 나귀는 너 왜 넘니?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 중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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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주민이 마련해준 작은 환송회...

  • 등록일
    2004/09/29 03:22
  • 수정일
    2004/09/29 03:22

세상 살면서 친구를 하나 얻었습니다.

이전 인천에서 노동정보화사업단 인천지부 활동을 하면서 서울 노동정보화사업단(본조)에서 상근하였던 문태준 동지입니다. 이에 인연이 닿았습니다.

 

내 삶에서 문태준 동지를 만났다는 건 큰 행운입니다. 늘 도움만 받았지... 보태준 것이 없는데도 늘 찾아주고 말 벗이 되어주는 그가 있어 참 행복합니다. 오산으로 내려가더라도 계속하여 연락을 하고 술을 얻어먹을까 합니다/ 저 정말 못됐죠...

 

문태준 동지는 PHP책과 MySQL책을 보면 유독 많이 나오는 이름입니다.

리눅스가 대중적으로 확산되지 않았던 시기... 홀로 원서인 MySQL책을 번역하면서 많은 이들과 정보공유를 하면서 리눅스 보급에 나름데로 기여한 분입니다.

저와는 이웃동네에 살아서... 술 친구요, 등산 친구요, 말 벗이기도 합니다.



그가 힘들때나 술이 고프면 내 손전화로 전화해 술먹자하면 난 단숨에 나갑니다. 그의 지론 활동하는 사람이 돈이 어디있냐.... 그나마 돈을 버는 사람이 술을 사야한다는 지론으로 무수히 얻어 먹었습니다. 

 

사람하나 믿고 돈을 겂없이 꿔줄 수 있는 사람이 문태준 동지입니다. 저는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에게 늘 저는 도움 받는 존재였습니다, 그런 그가 섭섭하다는 말을 하는데 미안함 때문에 뭐라 할 말도 없고, 잘못했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더군요. 미안해요 태준씨... 정말로.... 그렇지만 계속해 우리 술도 같이 먹고, 등산도 같이 가고, 살아가는 이야기 함께 나눠보죠... 오늘 고마웠습니다, 당신이 마련한 작은 환송회자리... 결코 잊지 않을께요...

 

오늘도 손전화하고 저희 집에 찾아왔습니다.

내가 활동하였던 노동넷에 상근을 그만둔다는 소식을 손전화 통화를 통해 알고 난 후 섭섭함이 들었고, 만날 시간이 별로 없다는 생각에 저희 집에 찾아왔습니다.

그는 그의 속내의 말과 활동(지금 서울지역사무노동직노조와 한국정보통신노동조합에서 중요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음...)을 했는데, 한마디 말없이 오산으로 내려간다는 말이 섭하였나 봅니다.

 

저희 집에 있던 맥주2병을 마시고, 그가 노래방을 가자는 말을 꺼내 우리 둘은 노래방에 갔습니다. 작은 환송회를 해주는 의미의 노래방.... 그와 노래방은 딱 한번 가보았습니다. 예전 술을 먹기만 하면 내가 2차 3차까지 가는 버릇이 있어 그날도 저희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새벽 늦게까지 술을 흥건히 먹고 노래방을 가본 기억... 주로 제가 가자고 했지... 그는 노래방을 가자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가 오늘 노래방을 가자고 해서 우린 노래방에 갔습니다.

추석 전날 새벽인데도 술집의 네온사인은 휘엉찬란하기만 합니다. 돈 벌기 각박하구나... 느끼면서 우리 둘은 주변 수퍼에서 캔맥주를 사서 노래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환송회인지라 그가 즐거운 마음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참 고맙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어... 저는 그의 노래하는 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보기만 하였습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또 있을까... 자신의 속내를 나에게 다 말해주고 고민을 털어줄 수 있는 사람.... 나는 그에게 이번 오산건 빼놓고는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는 아니지만 그나마 할 수 있었던 사람이다. 

 

순수와 열정을 가진 그와 오늘 노래방에서 작지만 뜨거운 환송회를 받았다. 

열심히 사는 모습으로 갚아나가야 겠다.

 

오산에 내려가는 것을 말하고 싶었으나 심약한 내 마음 흔들릴까봐 말못한 것도 있고, 사무실에서 나올때 오산보다는 막연히 공장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 이외엔 뽀족한 생각이 없어 말 못하였다. 그나마 지금 이야기하고 작은 환송회를 받을 수 있어 기분 좋았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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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과 월출산이 있는 내 고향...

  • 등록일
    2004/09/28 23:49
  • 수정일
    2004/09/28 23:49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이라는 촌 구석에서 태어나 국민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부모님의 성화로 인해 졸지에 서울로 상경하여  서울에서 언 20년이란 세월을 타향살이 하는 신세입니다.


영산강 하구를 막기전에는 농사일과 어업을 하면서 생활을 하는 전형적인 농촌에 태어나 갯벌과 산들녘을 벗하는 곳이죠. 강과 산이 정겹게 들어서 있고 소나무 숲과 감나무 대나무 밭이 무성한 동네에서 태어나 자연과 벗 삼아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일 즐겁고 재미있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봄이면 형들따라 월출산에 올라가고 여름이면 영산강 갯벌에서 멱감고(수영) 가을이면 산들에 매달린 과일들을 따라 다니고 겨울이면 토끼나 꿩 잡으러 다니는 생활을 하면서 남 부럽지 않은 유년시절을 보냈죠. 지금은 이 지역도 도시화에 밀려 인심이 각박해졌지만, 제가 살때만 해도 정겹고 아름다운 고장이었죠. 

 

서울에 올라와서 시골이 있고 자연을  벗삼아 살아왔다는 것이 때론 자랑거리로 내세울 때가 많았죠.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지만 그래도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추억이 있다는 것만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청명한 하늘 쏟아질 듯 미어터지는 별  그리고 노루, 토끼, 꿩, 다람쥐, 살퀭이, 뱀, 갯벌의 무수한 어족들 남들은 돈내고도 구경하기 힘든 그런 삶을 저는 태어나 고장에서 늘 벗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내 고장이 변하지 않기만을 바랬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은 도시화로 인해 그런 자연이 풍미들이 빛을 발하였습니다. (한라 삼호조선소가 저희 동네 근처에 자리잡히면서 그런 추억 거리들이 사라졌죠.)



 이 땅의 부모님들이 다 그렇듯이 자식들 만큼은 자신들 처럼 힘들 노동을
 시키지 않겠다는 일념하나로 형편이 좋지 않은 집에서 서울 유학을  보내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러한 부모님  사
 랑만 받았지 사랑을 배풀지 못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남들은 부모님들 보려 방학이면 내려가서 집안일과 농사일을  도와주었지
 만 저는 대학들어온 이후 시골에 내려가기는 켜녕 그저 서울에 안주해 부
 모님 생각은 켜녕 저 한몸 지탱하는데 안주하면서 살았죠. 지나고 생각해
 보니 불효중에 불효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나간 시간이지만 부모 살아생전에 효도하라는 말이 남의 말이 아니었습
 니다. 지금은 부모님 묘소만 있는 시골에 내려가자니 서글픈 마음이 들더
 군요. 그리고 다음달 초에 동생이 결혼을 하는데.... 부모님에게  알리려
 고 가려니 서글프기까지 합니다. 그래도 내려가봐야죠...
 
 부모님이 아프다고 해도 내려가지 못한게 지금은 한으로 남더군요.
 무엇이 급했는지.... 그리고 생각치 못한 구속으로 교도소에 있는데 뜻하
 지 않게 어머님의 죽음을 교도소에서 소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부모님 병들었을 때 내려가봐야 했는데... 그래서  시
 골에 내려가는게 때로는 그때일을 떠올리기에 주저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 내려가면서 또한번이 속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나마 동생이 결혼해서 다행입니다.
 
 동생이 결혼한다니 청첩장이라도 부모님 묘소에 전해드리고자 오늘  저녁
 차로 시골에 내려 갑니다. 주저했지만 그래도 제일 먼저 결혼소식을 부모
 님에게 알려야죠 남동생이 어엿한 가장이 된다고... 살아계셨으면 흐뭇해
 하셨을 건데...
 그나마 다행입니다. 저야 결혼이라는 가부장적 생활을 하지않고 혼자  자
 족적 삶을 살고자 하는데... 동생이 한켠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어서 이제
 는 부모님 묘소에 면목이 슬 것 같습니다.
 
 남도에 비도 많이 왔다는데 부모님 묘소도 살펴볼겸 내려갑니다...
 
 기차시간이 남아 사무실에서 참세상 공간중 자주들리는 이 공간에 횡설수
 설 잡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간장 오타맨....
 
p.s 명절때와 가족 경조사가 있을때마다 부모님 생각이 더욱더 나더군요. 부모님이 살아계시지 않다는 것이 불행이라는 것을 이때 만큼은 절실하게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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