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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운동의 상관관계...

  • 등록일
    2004/08/07 16:48
  • 수정일
    2004/08/07 16:48
술한잔을 한 상태에서 요즘 나를 돌아보게 되더군요....(가난한 날의 행복 수필에서 "걸인의 찬 왕후의 밥"은 온데간데 없고 안위와 평안에 만족에 휩싸여 생활하고 있는 지금,..... 돈과 운동의 상관관계를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더군요... 상근비를 받는 것이 이제는 월례행사/당연지사로 여겨지면서 과거 비록 상근비는 없었지만 열정이라는 무기하나로 지탱하였던  순수성들은 운동의 지속성이라는 미명하에 사라지고....


모든 사업에 돈을 어떻게 마련할까라는 궁리에만 온 신경이 집중되게 됩니다. 여기서 저는 개인적으로 운동과 돈에서 갈등이 생기더군요. 마치 자본이 돈을 벌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착취와 억압을 노동자들에게 행하고 있듯 단체 또한 노동조합의 소중한 자산들을 운동이라는 미명하게 쉽게 도용하기 위한 고민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반문을 해봅니다. 자본주의를 살고 있기에 지극히 활동을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지극한 생각은 그 단체에 처한 조건에 의해 그 단체의 주관적 해석에 의해 생각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속한 단체에서 생활하면서 늘 드는 생각입니다.

운동은 분명 자기 대중을 갖고 행동을 취하고 정치를 펼치는 것인데...
민주노조운동이 사회적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하면서 노동조합을 둘러싼 운동지형의 의존도는 날로 높아가고 있습니다. 서울은 그나마 중앙이라는 지역 중심성에 의해 지역단체들과는 사뭇다르게 많은 단체들이 존재하고 그 의존도는 지역과는 다른형태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저희 또한 "국경과 지역을 넘어  노동자를 이러주는 네트워크" 그 목적과 취지를 밝히고 있지만 저희 대중이라는 노동자들을 대상화로 일관되게 치부하면서 운동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더군요. 특히 소중한 조합의 자산을 운동의 경험과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쉽게 취하고자 하는 태도와 대공장과 민주노총이라는 부피와 상급단위 중심의 운동을 지양해야 할 저희 자신이 이를 앞세워 더욱더 부추기고 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이 운동인지 아직 경험과 운동의 성숙이 무르익지 않는 저로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을 때가 있지만 현재 생활속에 돈이라는 것이 필요하기에 상근비에 위존하여 별 생각 없이 돈이라는 것에 의존합니다. 운동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전문성 획득이라는 미명하에 저는 편하고 쉬운 운동을 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속가능한 운동을 위해 상근비는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운동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취해할 것은 단체의 자기 대중과 운동의 독립성이  아닌 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직의 자기 대중과 독립적 활동이 없이는 재정적 안정은 한 곳에 의존하거나 사업체로서의 성격에 치우친 사업으로 일관되지 않을까라는 우려스러운 걱정이 듭니다. 운동과 사업은 활동의 형태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아무리 경험과 운동의 마인드가 높다고 자부하더라도 그 현장의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운동의 경험과 마인드는 개인의 산물이거나 아니면 상품 가치로 전락할 위험성이 농후합니다. 저는 지금 제가 속한  단체에서 주요하게 생각하며 일하고 있는 것은 평조합원들이 운동의 주체에서 노동자계급으로 정치의 주체로 나서는 것은 정보공유와 노동조합 활동의 투명성 그리고 노동조합간부와 평조합원들간의 일상적 소통공간의 형성이 중요하다는 판단이 들어 정보통신이 아주 주요한 매체라 생각되어져 학생때 고민하던 활동을 접고 다른 형태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현재 노동운동의 위기이니 노동조합의 위기이니 하는 많은 위기론을 극복할 주요한 수단이라는 생각때문이었죠... 그러나 현재 인터넷은 급소하게 확산되어 노동조합 대부분이 자신의 조합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지만 제작과 운영에서 부터 활용까지는 아직 멀게만 느껴집니다. 저는 노동자들이 성숙되고 운동의 주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제가 친한 사람들과 과거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들을 만나면 그토록 부정하던 맨세비키적 사고들을 많이 하고 있더군요. 그 이유는 대게 계급주체 형성이 아직 남한내에서는 멀었다.

이에 전문단체들이 노동조합운동을 전개하는 선진활동가들을 지도하고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전문성 있는 단체들이 정치/경제투쟁을 책임지고 노동자들에 대한 의식적으로 지도를 획득해야 한다라고 말하더군요. 주체형성이 더디기에 단체들이 노동자들이 할일을 책임지겠다는 발상과 주도권 쟁탈 양상은 대중들을 운동으로 부터 괴리시키는 현상을 발생하였던 과거의 오류들을 여과없이 일상활동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닌 곳이 있다고  말하시는 분들이 많은 수 있겠으나 현재 제가 보기에는 별반 다른게 없다고 생각되어
 지더군요. 어느 주요한 파업투쟁이나 노동조합 활동에 생생내며 자기 조직들의 공을 부추겨 세우는 모습을 보며 아직도 남한운동내 조직의 활동 성숙은 멀었구나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가져봅니다.)
 
열정이라는 초기 순수성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모든 사업에 돈 때문에 고민하는 활동가들을 보면서 과연 활동의 지속성을 위해 수익사업에 매몰되고 모든 활동의 초석을 민주노총 또는 노동조합에 의존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듭니다. 조직의 운영을 위해 회원구조를 통한 독자적 재정 기반이 있어야 하거나 전문성(연구소/정보통신단체/문화단체 등)있는 단체들이 자기내적 구조를 갖고 있지 못한 아쉬움이 듭니다.
 
오랜기간 운동이라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재정이 안정되고 생활이 지탱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재정이라는 미명하에 행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이 과연 운동이라는 것을 위해 필요한 수단인가?라는 의문이 듭니다.(아직도 많은 단체활동가들이 단체일과 과외라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을 지탱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그나마 안정적 운동을 보장받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와 그렇지 못한 분들에 대한 미안함이 동시에 들더군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안위와 관성에 젖은 저를 발견할 때가 많습니다.
돈을 벌기위해 운동을 한것이 아니지만 다른 활동들을 벌이면서 재정적 문제가 발생하게 되어 개인적으로 비용을 대체하지 않기 위해 단체들에게 돈을 빌려준 사체업자 처럼 행사하고 있는 지금 저의 모습에 제 자신이 놀라곤 합니다.(노동미디어 공동의 서버를 운영하면서 단체들에게 꿔준돈  받는 심정으로 돈을 걷는 저를 보며 광녀 노동미디어 공동의 서버라는 것은 무엇 을 위해 출자받았는지 몇 안되는 대규모 단위의 파업과 미디어 활동을 위해 분명 구축한 것은 아닌데.... 돈이 없으면 지원받거나 혜택을 받기가  어렵
 다는 것을 생각하며 노동조합 활동가들에게 죄스러울따름입니다. 노동조합은 조합비와 돈이 있는 곳이기에 당연히 돈을 받아야 한다는 이 고정된 관념의 문제성이 심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일상 그리고 활동에서 고민되는 것은 상근비를 받기위해 운동을  하는 것인지 활동을 위해 상근비를 받아야하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조직이 개인의 활동을 책임지기 위해 상근활동비와 활동을 보장해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문제이지만 그 상근활동비를 마련하기 위해 하는 일들이 과연 운동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의구심이 요즘들어 부쩍 들더군요.

상근비를 버는 행위 그자체가 이제는 자본의 상술과 별반 다른게 없다는 생각만 하면 할수록 저의 고민들은 증폭됩니다.
 
운동을 지속하기 위해 활동비를 마련하는 것이 이제는 활동을 위축하고 정체성과 활동을 위축시키고 운동이라는 기능을 축소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할 수록 운동의 지속성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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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고 실천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 등록일
    2004/08/07 16:37
  • 수정일
    2004/08/07 16:37

노동운동에 꿈을 갖고 학교를 졸업하고 노동단체 활동을 한지도 언 6년이란 시간이 흘러갑니다.

처음 인천이란 동네에서 단체와 현장일을 해보았지만 무르익지 않은 인식의 부재로 현장생활과 노동단체 활동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뜻을 접었고, 지금 활동을 지향할 수 있게 만든 단체에 머문지도 언 2년하고도 6개월이 지났습니다.



 일 한것도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시간만 흐르는 것 같습니다.
 
 서울에 위치한 노동넷이라는 단체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으나 풀리지 않는 갈증과도 같은 고민만 날로 증폭되어만 가고 있습니다.(투쟁은 무형의 산물이라 믿었고, 노동자의 헤게모니에 의해 정세는 규정되어지고 투쟁지형은 만들어진다는 말이 지금도 유효한가라는 의구심이 들더군요.)
 다름아닌 활동의 방식에 대한 저의 부재가 가져다준 또다른 문제점이죠.
 
 학교때 생각한 사고는 활동이라는 공간과 잘 접목이 되지 않더군요.(남들은 학생운동을 운동에 속하지도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 이유는 부모님으로 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으면서 생존의 위협에 자유롭고 또한 학생이라는 인털리겐챠의 특성을 들어가며 말하더군요... 치열함, 열정, 투쟁은 있으나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에 좌절하는 학생운동에 대한 따끔한 질책이라 믿습니다. 학생운동이라는 말 자체의 궂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80년대의 학생운동 복원에 촛점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운동이라는 것은 활동가라는 자임의 오만에서  나오는 실천이 아닌 지향성이라는 과정의 단련속의 성숙이 아닐까 개인적 생각을 해봅니다. 활동가는 많지만 운동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적다는 개인적 생각을 해봅니다.)
 
 정보통신운동을 하면서 드는 딜레마는 활동을 지향하는데 많은 의문을 저에게 던져주었습니다.
 표현의 자유운동을 하면서 정말 산전수전 수중전을 겪고 다양한 방식의 사업들을 펼쳤으나, 결과는 냉혹했습니다. 그러나 더욱이 문제시 되어졌던 것은 법안이 통과가 정말 쉽다는 것이고, 막을 수 없다는 무력감이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고 대중적 운동으로 활동을 하고자 공대위를 구성하였지만, 이 문제는 역시 해결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말해야 할지... 뭐라 할말이 없습니다. 정확히 초기에 비해 결합도가 낮아진 저로서는 무어라 말 할 자격도 없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이를 위해 고전분투한 분들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저는 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업습니다. 그리고 공대위 같은 느슨한 운동체는 시기에 의해 만들어지는 비상설투쟁체이기에 이러한 운동은  폐기되어야 한다는 개인적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유의 준거는 저는 우리의 운동 이 언제부터 대중적이고 대중적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매너리즘과 대리주의 빠져 운동보다는 공대위 안의 힘의 역관계에 의해 공대위 활동이  파행되어지고 있기에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인터넷공대위가 이렇게 운영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정말 저를 뺀 나머지 운영위원과  운영위원장님의 헌신적 활동이 있었기에 아직도 투쟁은 유효하다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후 활동을 하더라도 공대위 같은 방식의 활동은 대중화시키는데 결코 유효한 전술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올해 7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판결이 난 전기통신사업법 53조 개정안이 정통부의 국회로비로 통과되었다라는 글귀, 헌신적으로 활동을 진행하던 한 활동가의 이야기를 통해 정말 무기력함과 투쟁이라는 말은 말처럼 쉽지않다는 것을 또다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하기에 누가 겆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어렵다라는 말과 투쟁을 함께하자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러하지 못하였습니다.   같이하지 못한 죄스러움과 동지를 혼자 그 힘든 역정에 내몰았다는 자책감에 그냥 말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저에게만 벌어지는 현실이 아니라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투쟁은 무형의 창조물이라는 의미를 다시금 알 수 있었습니다.
 
법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국회의원 로비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활동을 지향하는 사람으로서 무기력함이 들더군요. 비판의 대상이 칼자루를 들고  있기에 그들을 설득하여야 한다라는 말에서 서글픔 또한 들지만 지금 처한 현실 조건이기에 더욱 냉혹하게 다가옵니다. 법이 만들어지면 폐지하기 힘들고, 그 법이 우리를 옥죄오는 것을 막기위한 최소한의 방법임을 알고 있지만... 우리의 선택이 아닌 최선의 수단이 국회로비라는 것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만 듭니다.
 시민운동 다양한 운동단체들이 늘어났지만 운동의 진일보가 아닌 퇴보가 되고 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혹자들은 다양한 영역에 운동이 진행되고 있어  시민단체들의 사회적 참여와 시민권력이 형성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이 많지만 그 다양성에 의거 분열과 반목을 어떻게 설명할지... 다양성이라는 것은 시민이라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말장난에 불과하지 않을지...
 
 얼마지나지 않아 노동운동 또한 국회와의 로비가 이루어질까? 과연 노동운동 정신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막연하지만 엄혹한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저의 무르익지 않은 인식은 위의 국회로비, 공대위, 대중운동의 매너리즘이 만연 되어지고 지속된다는 미래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제가 인식으로 부재로 상황을 판단을 잘 못 할 수 있으나, 전술을 취함에 있어   저는 이후 운동에 미칠 파장력과 원칙이라는 기조에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개인적 생각을 갖게 되더군요. 그래야 저또한 운동이 존속됨속에 운동을 삶으로써 지향할 수 있으니까요... 요즘 집앞의 냇가에 나있는 길을 자주걸으며... 무서운 상상을 해 봅니다. 운동이 없어진다... 일본의 극우파 대두... 운동권의 시민세력화 등등.. 그냥 엄울한 상상만을 해봅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운동의 주제이고, 주체적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늘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지 않고 지도와 피지도의  수직적 관계설정... 대중과 활동가라는 이중적 잣대의 태도는 또다른 대중과의 괴리만을 증폭시킬 것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말이 떠오르더군요.
 관계의 최고형태는 "입장의 동일함"이라고, 과연 우리는 "입장의 동일함"을 획득하면서 운동이라는 일상적 행동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간장 오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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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전집中 중등학생들에게...

  • 등록일
    2004/08/07 16:22
  • 수정일
    2004/08/07 16:22
  우리는 학생 여러분의 정력적인 창의력을 진심으로 환영하면서 다음과 같은 동지적 충고를 드리려고 합니다. 학습하고, 자기자신을 확신으로 가득찬, 꿋꿋하고 견고한 사회민주주의자로 단련시키는 것을 여러분 조직의 주요목적으로 삼도록 노력하십시오. 이 대단히 중요하고  필요한 준비활동을 직접적인 실천활동과 가능한 엄밀하게 구별 하십시오.
 
  야전군에 입대할 때에는(입대 이전이라도) 여러분의 사업을 홀로 시작하지 않도록, 지금까지 해온 사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거듭 다시 시작하기 보다는 지방, 또는 전러시아 사회민주주의 조직들과 가장 긴밀한(그리고 가장 비밀스런) 연계를 갖도록 노력하여, 대열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단번에 확보하고 운동을 추진하여 보다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십시오.
 
                                                             [ 이스크라 ]  제 9호, 1902. 12. 1
                                                                                             [전집] 제 6권 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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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경작되는 것

  • 등록일
    2004/08/07 16:20
  • 수정일
    2004/08/07 16:20

사랑이란 생활의 결과로서 경작되는 것이지 결코 갑자기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한 번도 보지 않은 부모를 만나는 것과 같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는 까닭도 바로 사랑은 생활을 통하여 익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를 또 형제를 선택하여 출생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사랑도 그것을 선택할 수는 없다. 사랑은 선택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사후(事後)에 서서히 경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처럼 쓸데없는 말은  없다. 사랑이 경작되기 이전이라면 그 말은 거짓말이며, 그 이후라면 아무 소용없는 말이다.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이 평범한 능력이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다. 따라서 문화는 이러한 능력을 계발하여야 하며, 문명은 이를 손상함이 없어야 한다.

Das beste sollte das liebste sein.
가장 선한 것은 무릇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어야 한다.
 
                                                                                          감옥으로부터 사색 中...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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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의 시대는 가고 실리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 등록일
    2004/08/07 16:18
  • 수정일
    2004/08/07 16:18

선배의 말에 대해 이제는 저는 부정하려 합니다. 열정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가 아니라 현실은 열정에 의해서 지탱되고 있으나까요.

학생운동시기 조급성 그리고 정세적 주객관적 조건에 대한 인식의  미비로 운동을 제단하려는 습성을 버리기 위한 저의 작은 노력이라 하겠습니다.
운동의 획득된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지탱해 나가는 것이니까요 .

선진활동가 그리고 직업적 활동가로 구분되는 혁명시기의 필요한 활동가의 상은 이제는 다시금 재정립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운동을 알기에 부족한 나이에 운동을 선엄적으로 재단했던 과거의  요인들 에 대한 자명한 비판을 해보려 합니다.



레닌에 의해 주창된 민주집중제라는 사회주의 모델링에 대하여 우린  기계적 도식을 통해 정세적 공세기로의 전화를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의 미성숙함은 현실적 토대를 주요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87년 노태우의 6.29선언에서 명시된 "대통령직선제"? 진행은 운동에 있어 지금 하나의 질곡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선거에 있어 혁명을 바라지 않았지만 대통령지선제를 통한 운동권의 정치운동의  대두는 현실운동의 대안세력으로서의 가능성이라는 정세적 인식에 기인하였지만 그 당시 운동을 하였던 사람이라면 자명히 알것입니다.


얼마나 무모한 생각이었던 가를.... 민중의 당, 민중당 교훈은 아직도 자세한 비판적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운동세력들의 민중의 독자적정치세력화(이하 민독정)은 지금 표류히고 있습니다. 선엄적을  통해 획득될 수 없는 계급투쟁의 지형들을 우린 현실 정치를 위해 파편적으로 왜곡하고 실질적 사민의 발호를 용인하고 있습니다.
 
89년 부터 불기시작한 동구사회주의 붕괴 그리고 한국에서 실업적으로 전개된 합비합 동시건설론은 맹아적 잔재를 저해하는 극단을 몰고 갔습니다.
 
이러한 사안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아직도 학교 책상 서랍에 남아 있을 92년 진보와 지성이라는 책을 내고 공개학생정치조직운동(이하 공개학정조)의 대중에 대한 양적 측면만을 강요하게 하는 문제점을 낳았습니다.


현실 비합에서 운동을 하던 이들은 생활과 활동반경의 협소성 개인의  전망부재로 하나둘 비합에서 합으로 전화하며 운동의 양적인 측면을 상쇄시켜 놓았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우린 상당히 맹아적 조직을 잃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은 열정이라는 시대의 표상이라 말하며, 동구사회주의로 대별되는 사회주의권 붕괴를 현실적 문제로 대두시켰으며, 대안적  이념모색(사민의 발호와 개량적 흐름으로의 전화)을 통해 포스트주의로  회귀하는 기이한 현상을 초래하였습니다. 또한 밀려오는 이론의 늪에  빠져 합리화를 위한 운동권들의 모색의 시기였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실패는 아마도 예견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중 노동자계급적 시각에 대한 명확성들은 수립하지 못하였습니다. 정세조건의 변화속에 첨예하게 대립되는 노동운동의  공세적 투쟁은 전체 노동계급운동으로 전화이기 보다는 대공장 그리고 남한 운동의 미성숙으로 인해 암울한 침묵으로 몰고 갔습니다.
 
지금 자명히 들어나고 있는것은 노동자계급들의 역사주체임을  다시한번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늘 노동자들은 투쟁을 전개해 왔던 것인데... 운동을 지향하는 분들은 큰 것 그리고 운동의 파장력에만 기대 사소한 것들에 대해 중요한 고리에 있어 포문들을 확립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이러한 과정들은 노동자계급들의 투쟁에서 자명히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에 저는 열정의시대 실리의시대라는 그런 운동의 관념적 태제를 이제는 버리려 합니다.
운동은 늘 존재하는 것이며 일상인 것 같습니다.
자기 도그마에 빠져 운동이라는 것에 대하여 거창한 것 그리고 무언가 감동과 파장력을 주는 것이라는 올바르지 못한 인식에 대해 이제는 하나 둘 비판을 통해 저를 추스려 볼라 합니다.

운동은 인생의 긴 여로라 생각하며....
그래서 이제는 서둘고 싶지 않습니다. 보다 천천히 더디게 가겠지만 이를 통해 제가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습니다.

그들과 투쟁속에서요...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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