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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꽃 피고 지고

  • 등록일
    2019/04/15 13:17
  • 수정일
    2019/04/15 13:17

4월 꽃이 피고 지고 그렇게 시간은 지나간다.
4.3 제주항쟁, 4.16 세월호 학살, 4.19혁명 등 그 역사의 아로 새겨진 인민항쟁과 학살의 흔적이 고스란히 역사란 이름으로 남겨져 있다.

자연의 순리와 함께 봄은 찾아 오지만 4월, 5월, 6월의 그 함성은 봄과 함께 되풀이 되고 있다.

4월늦은 꽃샘추위의 시샘에도 불구하고 강렬히 꽃망울을 터트리는 목련꽃이 꽃망울을 가냘프게 피우고 있다. 
목련의 강렬함은 목련꽃을 아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을 해봄직 한 것이지 아늘까 생각해 보게 한다.

봄과 함께 처음으로 꽃망울을 터트리는 목련 꽃 짧고 강함이 강렬하게 느끼게 할 정도이다.

목련꽃은 꽃망울이 터짐과 함께 꽃잎은 단 한번 지고 마는 운명을 지녀 비련해 보이지만 그 꽃망울과 생명력은 강렬하다. 아마 목련꽃의 강렬함 그 자체는 한해 시련을 이겨내기 위함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꽃잎의 강렬한 산화 그 자체를 통해 목련의 비련 함이 시작되지만 그 나무의 끈기는 꽃잎의 비련 함을 대조적으로 나무를 강하게 지탱해주기 위한 버팀이며, 원동력으로 전화시켜준다. 그게 자연의 진리이겠지 싶다.

어찌 보면 아주 비련하게 보이는 꽃이지만 나무는 잎을 무성히 번창시키며 늘 한해의 어려움들을 잘 극복해 나간다. 
또한 그 나무의 끈질김은 아마 그건 꽃잎의 가냘픔이 주는 나무에 대한 배려라고 한번 생각해 봄직하다. 봄이면 꽃들이 먼저 꽃망울을 터트리고 난후 새순이 돋듯이 나무와 식물들은 푸르름으로 가득 채운다. 이 긴 겨울이란 시련을 이겨냈다는 꽃들의 환의에 찬 광경(꽃망울을 터트려 꽃을 피우고온 천하를 푸르름으로 뒤덮는 그 광경)은 마치 온 세상에 온기와 희망을 주는 듯하다. 그래서 긴 겨울이지나 봄이 오면 사람들의 얼굴에도 활기와 웃음꽃이 환하게 피는 것 같다.

그래 봄이란 생명의 시작이다. 
그 시작은 겨울 시샘하는 꽃샘추위의 얄미운 장난에도 굴하지 않고 모든 식물들이 자신이 건재함을 꽃망울을 터트리면서 또다시 시작을 한다. 그렇게 무단한 세월 반복을 계속하면서 그 나무도 세상에 하나의 존재물로서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한다. 
그게 또 숲이란 걸 이루면서 원시림처럼 빼곡하게 나무의 숲을 만들고 있듯이 그런 시련과 반복의 연속성에서 우리도 희망과 좌절을 대물림 하면서 이렇게 노동의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을까....

그래 시간은 해결해 준다. 그리고 우리의 희망과 좌절은 또 다른 희망이라는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활동의 원동력이기도하다. 
그래서 봄은 늘 좋게 느껴 지나보다. 늘 만물의 무성함속에서 나의 마음 또한 한층 커져있음을 느끼기에.... 봄의 푸르름이 온 대지를 뒤덮을 때 우리도 꿈이나마 크게 꾸어보자. 언젠가 노동자 민중의 세상도 저럴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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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삶

  • 등록일
    2019/04/12 15:38
  • 수정일
    2019/04/12 15:38

굴종의 노동의 삶으로 잔업 몇푼에 몇푼 받은 돈으로 욕망을 채워야 하는 그런 미조직화된 아니 조직화되기 어려운 자본의 덫에 걸린 노동자의 삶을 엿본다.

그 잔업이 주는 몇푼의 돈이 잉여임금이고, 그게 차량, 핸드백, 여가의 일부를 자신의 노동을 팔아야 하는 그 고된 노동의 삶을 엿본다. 
언제 우리는 그 노동을 정지시켜 금요일이 노동자의 일주일 노동을 마감하는 날이 올것인가? 그것도 자본으로부터 완전히 얻어낸 자유노동을 얻어낼 것인가?

우리내 노동자의 삶의 고달픈 현실... 일정정도 자본이 있어야 자신의 집을 가져야 하지만 그 꿈마저 포기하고, 그 협동이라 불리는 삶에서도 돈이 자본이 그리고 여유가 필요한 일정정도 소부르주아지의 삶도 못미치는 그런 바닥노동자의 삶.... 그 삶이 꺼진 기숙사 원룸촌... 지친 노동끝내고 잔업없이 8시간 특근 끝내 고향집으로 향하는 여성노동자, 젊은 노동자가 빠져나간 그 유령촌에서....

노동의 굴종을 엿본다. 
미조직노동자 조직화를 이야기하지만 조직노동이 제대로 작동하여야 그 노동을 만들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상기해본다. 조합을 늘리기 보다 노동을 다시금 일으켜 세우려는 노력없이 기교 확대 양적확대만을 이야기하고 알맹이 빠진 초라한 쭉쟁이 우리내를 본다.

그 허울이 얼마나 부실하였던가? 그 외침 그 함성 다시금 투쟁을 위해 빈 머리 채우고 다시금 전열 가다듬어야 하지 않을까? 
맑스-레닌시대 자본론이 노동자의 교양서였다지만 과연 우리내 그 교양서로서 철학과 이론을 접하고 있는지 고심해 본다. 다시금 일구어낼 것이 무엇인지 자명하지만 외연적 확장만을 한다.

그 노동자의 삶의 단면을 함께 공유하기 위해서도 노동을 일으켜 깨우고 빈 자리 빈 공간 채우고 조직, 투쟁, 학습이라는 그런 삶.... 그 대포집에서도 토론하고 사회를 바라보던 냉철한 이성 그리고 따스한 감성 다시금 그 노동자의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사상이라는 이름으로 되살려야 한다.

선험적 경향적 경험주의와 무지를 벗어나... 노동자에게 그 역사를 다시금 되돌려줘야 한다. 그 길에 우리사회 투쟁하는 자들 현장활동가들이 다시금 재조직화 길과 그 현장에서 정치를 노동을 불지펴야 한다.

관성과 타성을 벗어나... 모르면 배우던 시절로.... 노동자만이 아니라 활동가라는 자들부터 그 학습에 게으리 하지 말야한다. 함께 책한권 토론하고 논쟁하고 비판하고 서로 상호발전할 수 있는 그 길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노동이 힘이 없는데 어찌 조직되지 못한 자들을 조직한단 말인가? 우리부터 재조직화 되어야 한다. 사살의 누각을 건설하여야 한다. 
그 노동자 정치와 노동자계급이라느 계급성, 당파성, 맹아를 만들기 위한 사상의 누각 건설을 통한 노동자 계급의 유일한 무기 노동자 당, 사상의 이행기로서의 사회주의라는 것을 건설하는 길.....

현실 운동이 꼬이니 프랑스와 유럽사회주의자들 처럼 좌익맹동주의, 경향적주의가 판친다. 그러나 블랑키주의자와 프루동만에도 미치지 못하는 우리내 현실이 참 서글프다. 그 투쟁이 희망이라지만 그 희망이 아닌 전망 그 새싹을 키워야 하지만 좌익맹동주의로 치닫는 그 경험주의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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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경계 없이 현실을 안주하고 있다.

다시금 세워내고 만들고 건설하여야 할 것을.... 정치라는 이름으로 사민, 기회로 급속히 우회하는 현실에 그 깃발을 부여잡고 스스로 그 노동과 이념 사상을 건설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어 전망이 있다 본다. 그 전망 스스로 밝히고 그 힘으로 다시금 노동과 정치 이념 세워내는 길 투쟁만이 아닌 현장의 노동조합운동을 계급적 선진활동가 현장정치의 태를 만들기 위한 고민으로 이어지를 바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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