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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독차에 대한 안좋은 추억

  • 등록일
    2004/08/26 17:18
  • 수정일
    2004/08/26 17:18

사무실 부근 자주 소독차(오늘은 소독차가 지나났는데 이전에는 소독차가 아닌 자전거를 타고 소독을 하고 다닌다.)가 지나 다닌다.

 

소독차에 대한 안좋은 기억은 언 24년전의 일이다. 동네 아이들과 어김없이 소독차를 딸아다녔는데.... 깡촌에서 차를 보는 것도 그리 흔한 일도 아니기에 우리는 소독차 뒤 꽁무니를 따라서 연실이 마을 이리저리를 돌아다녔다.

 

그러던중 소독차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소독차가 마을 신작로를 달리다 펑크가 난 것이다. 그리고 그 소독차는 펑크를 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도 모르고 연기를 따라가다 그만 소독차와 부딪치고 만 것이다.

 

소독차와 정면 충돌 그리고 기억이 없다. 병원으로 급행..... 동네가 온통 날리가 났다.

깡촌에서 교통사고라는 것이 처음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기절을 한 상태라 전혀 모르고 동네어르신의 말에 따르면 어찌나 피를 많이 흘렀는지 동네 어르신은 거의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래도 병원에서 혹시나 치료를 할 수 있을까라는 한가닥 희망을 갖고 경운기 뒤 짐칸에 멍석 깔고 누여 놓고 읍내 병원으로 이송하였다고 한다.

 

기사는 거의 정신이 없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동네가 날리부르스 났다. 나로 인하여..... 다른 아이들은 옆으로 달려가 그 상황을 본 것이다. 나만 앞에 가려서 못보았던 것이다. 그때 사고의 기억은 아픈것은 없다. 퍽하고 뭐가 부딪혔다는 기억은 있는데 그후론 기억이 없다. 일어나보니 온 몸에 웬놈의 붕대가 이리도 많이 감긴것인지.... 내 평생 쓸 붕대를 어린시절 다 써보았다. 팔 골절, 다리골절, 갈비뼈 2대가 금갔다고 한다. 다행히 머리엔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다. 가뜩이나 머리가 나빴는데 그때 머리까지 다쳤으면 어찌 되었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스럽다.

 

이 사건으로 난 무려 2개월 병원 신세를 져야했다. 그런데 병원에 입원하니까 집에서도 먹기 어려운 음식들이 즐비하게 있는 것 아닌가? 몸은 비록 붕대에 감겨서 활동이 자유롭지 않았지만 명절에나 먹어 봄직한 과일과 음료수... 그리고 늘 사골국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부모의 속도 모르고 난 병원에서 오래오래 살았으면 하는 기도도 드려보았다. 정말 철없는 녀석이지... 부모는 송장 치루는 줄 알고 논과 밭에서 일복 차림으로 뛰어와 병원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는데.... 난 수술이 끝나고 난후 몸이 조금 좋아졌다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내가 생각해도 정말 철딱서니 없는 놈인 것 같다. 그래도어쩌랴 맛난것이 수두룩 한 것을....

 

동네 친구녀석들은 먹을 것을 빼서 먹기위해 문병을 가장해 자주 왔다. 나를 보는 부러운 눈초리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머니머니해도 학교도 안가도 된다는 것이 가장 좋았다. 그리고 소 여물을 써는 것도, 땔감하러 산에 가지 않고, 침대에 누워 맛난 음식과 잠을 실컷 잘 수 있다는 즐거움..... 이것이 바로 천국이 아니고 뭐겠냐...... 자고 일어나도 끊이질 않는 맛난 음식들.... 교통사고를 낸 사람이 공무원인 지라 면사무소 직원들이 미안하다고 먹거리를 매일 바리바리 싸가지고 왔다. 무릉도원이 이 곳 병실이 아니고 어디겠는가???? 

 

그 당시가 난 못 먹어 봤던 음식을 읍내에서 다 먹어봤다. 하하^^ 정말 행복한 나의 유년시절.... 그러나 지금 생활하면 내가 봐도 우낀다. 그 당시 나의 상태가 진짜 별로 좋지 않았나 보다. 그나마 교통사고 당하고 난후 조금 나아진것 같다.   

 

소독차만 보면 과거 생각이 새록새록 난다.

 

오늘도 소독차가 지나가면서 그 당시 생각에 잠시 잠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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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천상병] 광화문 근처의 행복 * 새

  • 등록일
    2004/08/26 14:21
  • 수정일
    2004/08/26 14:21

광화문 근처의 행복                                                 새

                                                                

광화문에,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옛 이승만독재와                                             내 영혼의 빈터에 

과감하게 투쟁했던 신문사,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그 신문사의 논설위원인                                   내가 죽는 날,

소설가 오성원은 나의 다정한 친구.                    그 다음날, 

 

어쩌다 만나고픈 생각에                                   산다는 것과 

전화 걸면                                                      아름다운 것과

기어코 나와 단골인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아리랑> 다방에 찾아온 그                              한창인 때에

모월 모일, 또 그랬더니                                    나느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와서는 내 찻값을 내고                                     한 마리 새,

그리고 천원 짜리 두 개 주는데.....

나는 끄때                                                      정감에 가득찬 계절 



"오늘만은 나도 이렇게 있다"고                         슬픔과 기븜의 週日

포켓에서 이천 원 끄집어내어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명백히 보였는데도                                          새여 너는

"귀찮아! 귀찮아!" 하면서                                  낡은 목청을 뽑아라

자기 단골 맥주집으로의 길을 가던 사나이!         

                                                                   살아서

그 단골집은                                                   좋은 일도 있었다고

얼마 안 떨어진 곳인데                                     나쁜 일도 있었다고

자유당 때 휴간당하기도 했던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신문사의 부장 지낸 양반이

경영하는 집으로

셋이서

그리고 내 마누라까지 참석케 해서

자유와 행복의 봄을.....

꽃동산을.......

이룬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저와 같은 버러지에게

어찌 그런 시간이 있게 했습니까?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중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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