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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일 연대 총파업 투쟁의 아쉬움과 발전노조 파업투쟁...

  • 등록일
    2004/08/07 12:10
  • 수정일
    2004/08/07 12:10

발전노조 파업은 승리를 목전에 둔 싸움이었습니다. 비단 저뿐만이 아니라 노동운동이라는 것을 행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이번 발전노조 파업투쟁은 새로운 노동자투쟁에 대한 희망과 가능성들을 발견하고 그동안 침체일로에 있던 노동운동이 역동적으로 발돋움하는 자랑찬 투쟁으로 생각하고 연대와 지지 그리고 헌신적 투쟁에 감동하느라 정신이 없이 지난 1달여 기간을 가슴졸이며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나 어제 발전노조 관련의 언론보다 그리고 잠정합의안 작성은 정말로 생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진일보한 내용일지라도 승리를 목적에  두고 굴욕적으로 비친 발전노조 파업투쟁의 모습들은 노동운동의 새로운 도약에 있어 굴종과 오욕을 가져온 행위라 생각됩니다.


무산계급에게는 오로지 몸뚱아리 하나로 이세상을 지탱해 나가고 있는데 무엇이 두려울게 있겠습니까? 투쟁이 아름다운것은 이를 통해 진정한  인간으로 주인으로서 거듭나고 노동자계급이라는 것이 역사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우칠 수 있기때문이 의미있는 투쟁입니다. 저에게 발전노조 투쟁은 의미있고 생각을 많이 하게 해준 또다른 투쟁의 원동력이었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지만 발전노조는 기대이전에 노동자의  잃어버린 자화상들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래서 희망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정책으로 20:80에서 10:90 사회로 전화해하는 한국사회의 모순을 전면으로 거부한 투쟁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4월 2일 민주노총은 3월말 대의원대회를 통해 국가기간산업 사유화(민영화) 저지를 위한 2차 연대 총파업 투쟁을 전개를 결의하였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총파업 투쟁 돌입 10분전 정부(산업자원부)와의 협상을 통하여 극적으로 잠정합의안이 발표되어 민주노총 제2차 연대 총파업투쟁은 유보(대기) 상태로 돌아갔다.
 
민주노총은 대정부투쟁의 부담감을 느낀 나머지 연대파업투쟁을 철회하였다.

민주노총에서 그 동안 발전노조 총파업투쟁을 위해 적극적 연대를 전개하였지만 4월 2일 대정부투쟁의 부담감으로 인하여 지도부들이 정부와의 타결을 선택한 것은 민주적으로 결성된 발전노조에 대한 묵살 행위이며,  민주노총을 위시한 전체 노동계급들에 대한 배신행위이다.
 
노동자 투쟁에 무엇이 두려운가? 착취와 억압의 사슬을 당당히 떨쳐 일어난 노동자투쟁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못하더라도 찬물을 끼언지 말아야하는 민주노총 지도부들은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굴욕적인 잠정합의안을  작성하였는가?


발전조합원들은 자발적으로 산개투쟁을 전개함으로써 지역에서는  자발적으로 가대위를 결성되어 지역 노동사회단체들의 투쟁들을 통하여 정부의 신자유주의 민영화(사유화) 정책에 대한 대다수 대중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는 현시점 민주노총은 정권과 잠정합의안 작성은 이후 국가기간산업 민영화(사유화)를 노정간의 명분화 및 사문화해준 행위이며 민주노총 60만  조합원과 1300만 노동자들에 이끌어 나갈 조직으로서의 발전을 수행을 민주노총은 임무를 왜면한 처사이다.
 
민주노총은 1998년 김대중 출범과 함께 도래한 IMF사태때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통해 합의한 정리해고가 이후 노동자들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었고 지금 비정규직 양산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왜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가? 이후 가져올 민영화 저지 투쟁은 민주노총의 발전노조 잠정합의안 작성으로 더욱  더 어려워게 되었다.


철도노조가 2월 27일 특별교섭합의안 작성을 통하여 파업이 철회되고  조합원들의 찬/반투표를... 
 
파업투쟁이 힘차게 전개하고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해야할 4월 2일 민주노총 2차 연대파업 투쟁은 무엇을 위해 계획되었으며,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개최를 통한 발전노조 지지와 엄호투쟁은 민주노총 지도부는 왜 결정하였는가?
 
발전파업투쟁은 승리한 투쟁이다. 굳이 민주노총이 무리수를 던져 2차 연대 총파업투쟁을 선언하지 않더라도 기층 노동 대중들의 자발적 결의로 이루어진 발전투쟁은 매일매일 노동운동사를 새롭게 쓰고 있었다.


2월 25일 가스, 발전, 철도노조를 위시한 공공 3사의 총파업 투쟁선언은  IMF 구제금융 신청을 통한 노동자들에 대한 일방적 정리해고,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정책을 통한 노동현장에 대한 정부의 공세적 정세에 대한  전면전을 전개하였다. 이는 그동안 노동자들에 대한 신자유주의 일방적 정책에 대한 새로운 투쟁의 포문 형성과 노동운동의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을  만들었다.
 
연일 노동운동진영에서는 발전노조 장기파업 투쟁의 지속되면서 발전노조원들이 얼마동안 지속적으로 파업투쟁을 전개할 수 있을까?라는 초미의 관심과 조직적 결속력에 대하여 매일매일 놀라고 신이 났다. 학생때 전지협투쟁과 한통노조 투쟁을 지지하면서 공공노조들의 파업투쟁의 위력과 이를 통한 민주노조운동의 전통을 세워나가고 있음을 보면서 노동의 위기니 이념적 부재라는 허의의식들을 한순간에 날려버리면서 운동에 대한 열정이라는 불을 지폈다.


노동운동이 정권의 공세기에 전면전을 펼친 발전노조 파업투쟁이 지금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 어제 각 산별연맹 집회를 취재하기 위하여 나가면서  집회장의 정보과 형사들은 발전노조가 타결되었다라고 말하면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왜 발전노조 조합원들의 파업투쟁 찬/반투표가 진행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저들(공권력)은 파업투쟁이 끝났다고 말하고 있을까? 그건 지금 민주노조하는 지도부의 공신력때문이다. 민주노총에 가입한 발전노조 또한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의 결정이 지대하게 미치는 것이 현  노동운동 현실이다. 발전노조 조합원들이 결의가 아무리 드높다하더라도 지도부가 파업투쟁을 결의하지 못한다면 파업은 진행될 수 없다.


발전노조는 과거 한국노총을 상급단체로한 전력노조에 있을때 2000년  11월말 12월초 전력산업 민영화 저지를 위한 총파업 투쟁 돌입시점 지도부의 극적 타결로 파업이 집행되지 못한 아픔 경험을 통하여 민주노조 건설과 민영화 저지를 결의를 드높여 민주노총으로 상급단체를 전화한 노조이다.  


민주노총은 그때와 별반 다른 무엇을 하였는가?(민주노총 지도부들이  고심하고 또 고심하였을 것이라지만 책임질 소재가 아니었음에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 어이가 없고 안타깝다... 발전투쟁은 전사회적 투쟁이었는데 왜 민주노총은 상급단체라는 이유만으로 투쟁을 책임지고 끝내려 했는가? 민주노총은 정리해고 도입때와 같은 실수를 왜 했는가? 이후 가져올 파장력에  대한 것을 본다면 이제 민영화 싸움이 이렇게 드높게 일어날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작년 대우, 울산 효성, 태광 등의 투쟁이 시간이 지나면  뭍혀지듯이 노동자들의 투쟁이 서서히 뭍혀지고 있다. 87년 노동자대투쟁만이  노동운동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투쟁이 존재할 수 있는 어려  기폭제들이 있음을 잊지말아야 한다. 발전노조 투쟁은 87년 노동자대투쟁과  마찬 가지로 노동운동활동가들이 밀레니엄시기에 새로운 투쟁의 모범으로 우뚝세워내야 한다. 그럴때만이 이후 투쟁은 존재 할 수 있고, 지속적 투쟁이 전개되어질 것이다.)
 
파업이 힘차게 전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업의 해결사로 나섰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발전노조 싸움은 민주노총이  책임져서도  책임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국민을 대표해 민주노총이나 그 어떠한 세력들이 책임질 소재가 아니다. 또한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되거나 정치꾼들이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왜냐하면 국민의 안전권 즉,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사안이며, 국가기간산업을 사용하고 있는 수혜자들에 대한 피해가  우려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문서로 사문화 될 수 있는 소재의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이다. 이에 국민들을 위시한 이땅의 진보적 세력들이 발전노조 투쟁에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결합하고 자신들의 입장을 천명하였다. 그  어떠한 때보다 중요한 투쟁이었으며, 노동운동만이 시민사회 각계각층의 참여를 통한 연대의 모범을 보인 투쟁이었다.

파업동력이 되지 못하고 단위사업장이 결의가 되지않아 파업은 유보되고 합의안이 도출이 되어 파업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통해 노조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수순을 밟아야 하지만 발전은 이와 전혀다른 양산을 보인 투쟁이었다.
 
현재 민주노총 가맹 산별연맹 지도부들의 선거포스터를 보면 과거 선진노동자라고 차칭하며 자신의 단위사업장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민주노조 건설과 노동운동을 전개하였고, 지금 또한 노동운동을 헌신적으로 전개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지도부들이 왜 지금 시점에 결정 내렸을까.... 그만큼 연륜이 되지 않는 나로서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 노동현장에서는 이 사태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파업투쟁이 힘차게 전개되어지고 근래 보기드물게 전조합원들의 결속을 통한 장기 총파업투쟁이 허무하게 마무리되는 것이 정말 아쉽다.


발전노조는 파업이 끝나지 않았다고 하지만, 기가 한풀꺽이면 다시  세우기 어렵듯 발전노조 파업 또한 이러한 힘찬 투쟁이 전개되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여론과 사회적 배경이 어제의 일로 전환국면을 맞이하고 있으니....
 
정말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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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도 갯벌의 조개는 살을 키우고 있을까

  • 등록일
    2004/08/07 11:50
  • 수정일
    2004/08/07 11:50
인천의 영종도
내가 처음 영종도에 간것은 98년 겨울이 늦추이를 부리면 초봄 어느날... 낮설고 생소한 인천에서 나름대로 운동이라는 것을 해보리라는 소박한 마음을 가지고 인천이라는 동네에 첫발을 내딪자 마자 찾아간 곳이 인천의 월미도와 영종도입니다.


태어나서 처음 가본 섬이라는 곳 그리고 월미도 선착장에서 생애 처음 탓던 영종도와 월미도를 오가는 카페리호....
 
그리고 첫발을 내딪은 영종도에서 처음 맞이한 석화구이 정말 겨울의  늦추이가 기승을 부리고 바다바람이 얼굴을 붉게 만들 그 영종도  선착장에서 조개들을 화로불에 구워먹는 석화구이는 영종도와 나의 기억을 이어주는 하나의 매개체로 자리매김 되어져 있더군요..
 
아직도 인천을 떠나와 서울 갈월동에서 일을 하고 있는 지금도 인천의 영종도를 생각하면 석화구이 생각이 뇌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이 겨울 시간이 한가하다면 인천의 영종도를 가보고 싶군요. 영종도 갯벌의 조개들은 아직도 살을 키우고 있을까라는 생각과 더불어...
 
지금 사무실에서 영종도의 겨울 풍경을 상상만해봅니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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