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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H.Carr 역사란 무엇인가?

  • 등록일
    2004/08/06 20:16
  • 수정일
    2004/08/06 20:16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가지만, 자신이 바라는 꼭 그대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환경 속에서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주어진, 물려받은 환경 속에서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모든 죽은 세대들의 전통은 악몽과도 같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머리를 짓누른다.
                                                                  - 맑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이 구절은 맑스의 프랑스 혁명 3부작 중 하나인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 나온 유명한 문구이다.

우리에게 역사란 과거로부터의 유산이요, 현재의 거울이며 미래에 대한 교훈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순간에도 새로운 역사들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 역사는 과거와의 단절속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맑스의 표현대로 "죽은  세대들의 전통"하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E.H.카의 표현을 빌리자면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역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1. 역사란 역사가의 해석여하에 달렸다.
E.H.카는 1960년에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라는 제목하에 여섯개의 강의로 이루어진 초고를 완성하였다.

서문에 따르면 2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이후 유럽지식인 사회에 불어닥친 절망과 회의적인 분위기를 반성하면서 '보다 낙관적인 미래를 전망'하고자  이와 같은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생각처럼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그 시대가 낳은 산물이라 할 수 있겠다.

E.H.카는 지난 세기인 19세기 역사풍토를 되짚어보면서, 영국 빅토리아  여왕기의 낙관주의적 역사관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른바 랑케류의 실증주의적 역사관에 대해선 비판적으로 그려내었다.
 
역사란 사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실중에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여 역사적 사실로 전환시키고 이를 해석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1장에 나온 예처럼 그리스의 역사는 소수의 아테네 지배계급에 의해 왜곡된 역사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역사가의 임무란 과거의 역사속에서 중요한 사실들을 골라내어 새롭게 재구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문제는 역사가의 시각 역시 시대적, 사회적 산물이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18세기 역사가가 바라본 그리스의 역사와 20세기 역사가가 바라본 그리스의 역사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20세기 프랑스에서 탄생한 아날학파는 E.H.카와는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해석한다.

아날학파 중 한사람인 앙리 페브르는 "역사학의 역할은 과거와 현재는 다르다는 인식, 즉 <시대 착오>의 위험성을 환기시키는 일이다."라고 말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바라보는 그리스의 역사는 카의 해석대로라면 오늘날의 시각으로 재구성된 그리스의 역사이다. 그렇다면 "그당시 그리스인의 생각과 삶은 어떠했는가?"라는 물음을 던질 수 밖에 없으며 이에 대한 아날 학파의 지적은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E.H.카의 말처럼 역사란 시대의 산물이지만 과거 그 자체를 알고자하는 시도 역시 역사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는 "역사란 역사가의 해석여하에 달렸다."라는 E.H.카 류의 역사해석에 대한 물 음이라 할 수 있겠다.
 
2. 역사속의 위인과 클레오파트라의 코
[사회와 개인]이라는 2장부분에서 '역사속의 위인'에 대한 언급이 있다. 위인이란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자 대리인이며 이와 동시에 세계의 모습과 인간의 사유를 변화시키는 사회적 힘의 대변자이자 창조자인 탁월한 개인이라 하였다.

위인에 대한 정의를 통해 카는 역사의 두 가지 의미 즉,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그려내고 있다. 역사 속의 뛰어난 개인인 위인은 역사밖에서 살펴볼 수 없고, 역사 속에서 살펴볼 수 있는 사회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에서의 인과관계]라는 4장부분에서는 '클레오파트라의 코'라 불리우는 "역사란 우연의 계속이다."라는 논리에 대한 비판이 그려져 있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이라도 낮았더라도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비극적 사랑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 거라는 논리이다.

앞에서 설명한 위인과 연결되는데 레닌이 없었다면 러시아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레닌이 죽지 않았더라면 러시아는 달라졌을 것이다라는 논리 역시 '클레오 파트라의 코'적 오류이다. 레닌이 없었다 할지라도 러시아혁명이 안일어난다고 볼 수 없으며 그 양상만 달라졌을 것이다. 또한 레닌이 1924년도에 죽지 않고 더 오래 살았다할지라도 스탈린주의적 러시아가 생기지 않았을까? 라는  가정은 가정일 뿐결코 합리적인 역사해석이라 말할 수 없다.

요근래 발생한 인천화재사건에 대한 의견 중에서도 이러한 오류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날 인현동 라이브 호프집에서 청소년들이 술을 먹지 않았더라면 살수있었을텐데..."라는 가정 역시 이러한 예라 할수 있겠다.

인현동 라이프 호프집 화재사건도 우연이고 거기서 죽은 청소년들도 우연 이라고 돌릴수 있는 것인가?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한국의 소방시설과 감독부실을 일차적 원인으로 제시할 것이다.

인현동 라이프 호프집이라는 특정 업체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예상할수 없겠지만 이와 비슷한 화재가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은 한국의 소방상태라는 객관적 조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전에 발생한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역시 우연이 아니라 한국사회가 지니고 있는 구조적 모순속에서 나온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3. 역사는 목적의식을 담아내야 한다.
헤브라이즘이 서양정신사에 유입되면서 목적론적 역사관이 탄생하게된다. 목적론적 역사관이란 역사과정이 지향하는 어떤 목표를 설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헤브라이즘은 "신의 뜻대로 역사가 이루어진다"라는 중세의 역사관을  이루었으나 서구 계몽주의시대의 합리주의자들은 이러한 역사관을 세속적인 역사관으로  전환시켰다. 이러한 목적론적 역사관은 19세기 후반 빅토리아여왕기에 절정을  이루는데 이 시기에 역사는 '진보적인 학문'이라는 명칭을 얻게 된다.

하지만 서구자본주의의 폐단이 등장하고 두차례에 걸친 세계대전과 1930년대 대공황을 겪으면서 서구의 몰락과 진보에 대한 회의가 전유럽지성사회를 뒤덮게 된다.

이에 E.H.카는 역사의 진보로서 목적론적 역사관의 복원을 주장한다. "역사에서의 객관성이란 어떤 고정불변의 판단기준에 의존하거나 의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미래에 남겨진 그리고 역사과정이 전진함에 따라서 발전하게 되는 그러한 기준에 의존하거나 의존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과연 역사는 진보라는 이름의 목적의식을 담고 있는 것인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라이토스는 "한번 담은 물은 두번 다시 담을 수 없다"라는 변증법적 명제를 제시한다.

인간의 역사가 고정불변이라고 가정한다면 고대 인간의 문명과 오늘날 인간의 문명은 별다른 차이가 없다. 하지만 우리가 대충 살펴보아도 고대 인간의 문명과 오늘날 인간의 문명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물질적인 차이 뿐만 아니라 사회적 제도 더 나아가 인간의 윤리적 판단까지 변화하였다. 그렇다면 미래의 문명은 오늘날의 문명과는 다른모습을 담아낼 것이다.

이에 물음이 하나 남게되는데, 단지 변했다는 것을 진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라는 것이다. 이에 E.H.카는 "진화의 원천이 생물학적인 유전이라면 역사에서의 진보의 원천은 사회적인 획득이다"라는 유용한 모델을 제시한다.

과거의 유산과 경험은 오늘날까지 축적되어 보다 나은 오늘을 만들어 냈으며 오늘날의 유산과 경험은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토대를 이루게될 것이다.
 

 4. 밀레니엄 시대의 역사
 사실 2000년이라는 숫자는 해를 나타내는 연도일뿐이다.

 그이상 그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서구 기독교문명이 전세계를 제패하면서 서기는 전세계적으로 사용되는 표준 연도가 되었고, 천년이라는 연도-요한계시록의 천년 왕국류의 해석-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게 되었다.

 E.H.카가 슈펭글러류의 "서구의 몰락"과 두차례의 세계대전 이후에 나타난 회의주의와 상대주의에 대한 무기로서 "진보로서의 역사"를 제시하였듯이 오늘날 포스트 모던과 세기말적 분위기속에서 인류의 진보에 대한 새로운 각오가 필요하다.

 인권, 노동, 환경문제 등이 산적해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역사는 "사회적 축적"을 통해 발전되어 왔다. 또한 지식이나 학문에 대한 상대주의는 수많은 고민들을 던져주었지만 이에 대한 실천적 대안들을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속에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우리에게 비판적이고 실천적인 인간상을 제시해준다.

 앞서 인용한 맑스의 문구처럼 비록 우리가 바라는대로 역사가 이루어 지지 않지만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체는 바로 우리들 자신, 인간이다. 밀레니엄 의 시대인 현시점 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역사의 주체"로서의 인간을 복원해본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진보에 대한 인간의 발걸음은 하나둘 전진해 나갈것이며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고민 또한 새로운 전기를 맞이 할 것이다.
 
 인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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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내가 느끼던 학교풍경

  • 등록일
    2004/08/06 20:07
  • 수정일
    2004/08/06 20:07
봄의 무거움...
봄은 계절의 시작을 알리기는 절기의 처음....
난 이러한 봄의 느낌들....
 
그러나 나의 봄은 늘 무거움 그리고 풀리지 않는 늘 갑갑한 마음의 한 언저리를 부여잡는 계절이었다.


늘 봄 학교내 풍경은 정말 우리를 늘 경건하게 만들었다.
늘 학교 방송국에서 나오는 5.18 방송멘트....
그리고 늘 차분히 마음을 경건하게 만드는 노래소리....
늘 무거움으로 나를 짖눌렀다.
 
아니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을 것이다.
늘 5월의 학교와 시내에 나가지만 하면 느낄 수 있었던 코를 찌르는 체루탄 냄새.... 그런 5월을 난 동경하면서 살아갔다.
늘 가슴을 조리면서 늘 연일 벌어지는 집회와 그리고 학내 투쟁들 속에서  파묻쳐 살았다.

그런 나에게 있어 5월은 정말로 늘 가슴이 텅빈 날들의 연속이었으며 늘 후배 동기 그리고 선배들과 함께 술집에 가서 5월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저녁 지는줄 모르게 술을 마시고 취하고 그리고 목청것 소리높여 노래를 부르면서 학교주변 술집과 학교켐퍼스를 누비면서 늘 술에 찌들어 가슴조이면서 살았던

5월......
그런 5월이 지금 특별법 제정이 된다고 한다.
그들이 국가유공자로 칭호 된다고 한다.
정말 잘된 일일까.....
그게 올바른 일일까....
 
내가 느끼던 5월 학교풍경 그런게 아니었다. 늘 떳떳하지 못하게  가슴을 움크리게 하던 그런 5월... 그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는 그런 추모의 한달로 난 기억한다. 그리고 늘 가두투쟁 속에서 5월 영령들을 만나던 그런 5월 지금은 과거의 한 추억으로 잊어져 가고 있다...
 
학교내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
학교내 5월의 방송가 멘트는 그런 분위기 조차 느끼지 못하게 할정도로 많이 세월이 지났다... 그리고 지금 나의 후배들은 나의 무거움보다는 지금 세대의 풍만함에 만취한건지 아니면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적 그런 경향들에 심취해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 나의 추억속의 흔적은 지금 현실에서 되살아나지 않더군요...
 
나만의 느낌은 아니고 나만의 추억은 아닌데... 그리고 시간이 이리 많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지금 나의 추억은 아주 먼 옛날 이야기 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아니 현실에서 되살아나고 있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잘 모르겠지만 시대가 변했다들 사람들은 말하지만 시대는 변하지 않았다. 다만 멈춰서 있을뿐 전진하지 못하면서 늘 전진만 사고하는 그런 시대에 난 지금 살고 있기에 이런 잡스러운 생각들을 해본다....
 
정말 학교는 그곳에 그대로 있는데  사람들이 바뀐 학교안은 나의 시대의 나만의 추억도 모두 ㅃㅒ앗아 가버린 착각을 느끼면서 학교안 내가 느끼고 숨쉬었던 공간들을 둘러 보고 왔다.
 
이제 학교에서 나의 흔적을 찾아보지 않으련다. 현실을 즉시하지 못하고 이상과 과거의 집착하는 버릇을 고치기 전 까지는....
 
인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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