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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서설 § 46

§46) 수학은 선험적인 것을1 다룬다고 해서 순수수학이라고도 일컬어지는데, 시간을 공간에 대치하여 제2의 고찰소재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 역시 시간 그 자체가 다루지는 것은 아니다. 이동이나2 그밖에 실재적인 것을 다루는 응용수학의3 경우 시간 그 자체를 전혀 다루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응용수학은 복합적인 명제를4,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시간개념에 의해 규정되는 시간이 갖는 성질에5 관한 명제를, 경험에서 추출하여 전제로 사용하고 이렇게 전제가 되는 이런 명제에만 [수학]공식을 적용할 뿐이다. 수학에서는 이런 유의 명제를 증명하는 일이 흔히 벌어진다. 지렛대의 평형에 관한 명제나 낙하운동에서 공간과 시간의 관계에 관한 명제 등을 증명하는 일 따위를 증명이라고 내놓고 또 그렇게 통용되는 사실은 인식에게 증명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 그 이유는 수학적 인식에서 볼 수 있듯이[참다운] 증명이 없는 곳에서는 그것의 껍데기라도 마다하지 않고 그것을 붙들고 안위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증명을 비판하는 일은 방기할 수 없는6 일로서 뭔가를 깨닫게 해주는 일이 될 것이다. 이러 비판을 통해서 한편으로는 수학의 매끈하지만 거짓된 화장을 깨끗이 씻어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학의 한계를 보여줌과 동시에 수학과는 다른 지식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밝힐 수가 있겠다. — 공간에 대치되는 다른 소재로 순수수학 제2부의 소재가 된다는 시간은 사실 시간 그 자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면7 개념이[운동하고] 현존하는 모습임을 알 수 있다. 개념 없는 차이만을 들추어내는 크기라는 원리와 추상적이고 생명이 없는 하나됨일 뿐인 일치라는 원리로는 살아있는 것에서 끊임없이 작용하는 동요로서의 시간과[그런 시간의 동요에서] 절대적인 차이로[나타나는 대립을] 포착할 수가 없다. 수학에서는 이와 같은[생명과 개념의] 부정성이 단지 마비된 것으로, 다시 말하면 분절된 하나라는 것으로8 인식의 제2 소재가 되는데, 이때 인식은 단지 사태의 외면을 겉도는 행위로서 스스로 운동하는 것을 소재로 떨어뜨리고, 이렇게 하여[시간의 실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외면적이고 생명이 없는 내용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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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원문 <immanent>. <immanent>를 <내재적>으로 번역하지 않고 <선험적>으로 번역하였다. 칸트는 시간을 경험적인 개념이 아니라, 필연적인 관념이고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한다 (참조: 순수이성비판 B46)텍스트로 돌아가기
  2. 원문 <Bewegung>.텍스트로 돌아가기
  3. 여기서 응용수학은 역학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텍스트로 돌아가기
  4. 칸트는 시간이 유개념과 같은 <보편개념>이 아니라고 한다. 이런 저런 시간이 공유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로 다른 시간이 유일하고 동일한 시간의 한 부분일 뿐이고, 그래서 시간에 대한 관념은 유일한 대상을 통해서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유일한 대상을 통해서만 주어지는 것이 바로 직관이라고 한다. 시간은 직관의 대상이기 때문에 시간에 대한 명제는 복합적(synthetisch=선험적인 것과 후험적인 것이 짬뽕된 것)인 것이라고 한다. 예컨대 서로 다른 시간이 [공간과 달리]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는 명제는 일반적인 개념에서만 추출해 낼 수 없고 시간에 대한 직관과 관념에 뗄 수 없이 붙어있는 (unmittelbar) 것이라고 한다. (참조: 순수이성비판 B 47) 텍스트로 돌아가기
  5. 원문 <Verhaeltnisse> <관계>로 번역하지 않고 <성질>로 번역하였다. 동사 <verhalten>에 기댄 번역이다.텍스트로 돌아가기
  6. 원문 <merkwuerdig>. <이상하다>란 의미이지만 옛날에는 <의미 있는>이란 의미로도 사용됨.텍스트로 돌아가기
  7. 원문 <was die Zeit betrifft>텍스트로 돌아가기
  8. McTaggert의 물리적 시간과 비교해 볼만하겠다. 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