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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서설 § 58

§58) 그래서[위와 같은 작태를 멀리하고] 학문에 열중하기 위해서는 개념이 씌우는 멍에를[1]마다하지 않고 몸소 걸머지고[황소가 논밭을 갈듯이] 노동해야 한다. 개념이 씌우는 멍에를 달갑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하는데는 개념 그 자체에Aufmerksamkeit[주의][2]하는 것이 요구된다. 즉Ansichsein [즉자존재], Fürsichsein [대자존재], Sichselbstgleichheit [자기동일성][3] 등과 같은[개념의 운동에 나타나는] 단순한 규정에 파뭍혀 들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규정이[대상의 왜곡되지 않은 모습인] 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순수한 자기운동이기 때문이다. 혼의 개념은 물론[정신이라는] 뭔가 더 높은 것을 지향하고 있지만 말이다. 줄줄이 이어지는 표상에 기대여 앞으로 나아가는[사유]습관에게는 개념에 의해 표상의 줄이 단절되고 정지되는 것은 성가신 일이다. 이점은 비실재적인 사상들을 놓고 이리저리 한번 따져보는 형식적인 사유에도 마찬가지다. 전자의 사유습관은 물질적 사유라고도 칭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우발적인 의식이 단지 어쩌다가 소재에 퐁 빠진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의식은[어쩌다가 양반이 된 놈이 지가 무슨 한얀 의복을 입고 태어난 양반이나 되는양  똥물에 빠지면 재수없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고 거기서 빠져나오기 급급하고 똥물을 씻어내고 체면을 차려 다시 하얀 의복만을 입는 양방행세를 하기 바쁜 것처럼] 인상을 찌푸리고 소재에서 다시 벗어나 자기란 것, [즉 자기는 순수한 의식이란 것]을 말끔하게 부상시킴과 함께 그런 자기란 것에 안주하기에[4]급급할 뿐이다. 그런가 하면 이리저리 따져보는 사유는 이와 대조적으로[지가 무슨 도사나 되는 양 이젠 어떤 똥물도 더 이상 자기를 더럽힐 수 없다는 식으로] 어떤[천박한] 내용과도 결부되어 있지 않다는 자유를 행사하고 자기가 우뚝 서있는 바 이젠 어떤 내용도 자기를 담글 수 없다고 우쭐해 하는 것이다. 이런 우쭐함에 젖어있는 사유를 다그쳐, 내용을 자의적으로 이리저리 뒤흔드는 동력이[5]되는 그 따위 자유는 갖다버리고, [그런 자유를 행사하는] 대신 그런 자유는 내용 속에 함몰시켜[죽여버리고 다시는 내용에 손대는 일이 없게 하여] 내용이 자신의 속성에 의해서, 다시 말해서 내용이[운동의 주체가 되는] 자기를[6]자기 것으로 하여 스스로 운동하게 가만두고[7], 이러한 운동을 바라보기만 하게 하는 것인데, [우쭐함에 젖어있는 사유에게는 실재로 하기 힘겨운 일이다.] 개념을 능욕하여 그 안에 내재하는 리듬을 자기 멋대로의 박자로 대치하는 발상을 물리치고 개념에 자의와 어디에선가 취득한 지혜를 수단으로 삼아 침범하지 않는 것, 바로 이런 자제가[8]개념에Aufmerksamkeit를 온통 집중하는 하는데 빠질 수 없는 본질적인 동력이[9]된다.



[1]원문<Anstrengung des Begriffs>. 어원을 살펴보니<Anstrengung>에는<Strang/역어꼬은 줄>이란 의미가 어근이다. <멍에>로 번역했다. 개념의 필연적인 운동이<멍에>와 같다는 의미가 있고, 개념이 이런 멍에를 씨운다는 의미와 함께 이런 멍에를 또 달갑게 받아들인다는 변증법적 운동이<Anstrengung des Begriffs>란 표현에 스며있는 것 같다.

[2]<Aufmerksamkeit>를 담아내는 적당한 우리말을 찾지 못해서 원문을 그대로 두었다. <Aufmerksamkeit>에도 역시 변증법적 운동이 스며있는 것 같다. <Aufmerksam>하려면 우선 주의가 산만한 자신을 하나로 엮어꼬아[의식의] 힘을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집중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려 이렇게 집중하는 가운데 자신은 사라지고, 이렇게 집중된 힘에 대상이 그 모습 그대로 나타나는, 즉 대상의 힘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Aufmerksamkeit>는 사랑의 운동과 유사한 것 같다. 이렇게 자신의 힘이 대상의 힘이 되게 하기 때문에<Aufmerksamkeit>은 또한<배려> 혹은<친절>이라는 의미가 있다.

[3]원문을 그대로 두었다. 전문용어이기 때문에<Ansichsein>을<즉자존재>라고 한다고 해서 더 이해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풀어 번역한다고 해서 더 이해가 되는 것도 아니다. 정확하게 설명하려면<정신현상학>을 새로 써야 할 것이다.

[4]원문<bei sich sein>

[5]원문<Prinzip/원리>

[6]원문<das Selbst>

[7]키에르케고르가<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말한<자기/Selbst>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키에르케고르는 거기서 물론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렇다. 

[8]원문<Enthaltsamkeit>. 훗셀의<Epoché> 혹은<eidetische Reduktion>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9]원문<Mo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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