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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2/02/25
    BAP - 날 니들 계산에 넣지마(3)
    ou_topia
  2. 2012/02/25
    독일 윤리위원회 간성(Intersexuality)을 법적으로 인정하라고 권유
    ou_topia
  3. 2012/02/24
    크리스탈나흐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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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2/02/24
    2012/0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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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12/02/23
    유럽경제위기 - 명명하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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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12/02/23
    유럽경제위기 - 명명하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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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12/02/23
    SNS - 반 가우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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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12/02/22
    가우크? - 살아남은 자와 사라진 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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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12/02/21
    "에멜리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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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12/02/21
    독일 대통령 크리스티안 불프의 퇴임과 독일 전통보수진영의 행보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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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P - 날 니들 계산에 넣지마

 

 

6월 10일1

날 니들 계산에 넣지마. 그러기만 해봐라. 니들 속을 보고 난 후 난 내가 올라 탄 통통배가 니들이 말한 것처럼 그리 나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니들 논리하고는 상종하기도 싫다. 니들이 왜 언제 뭘 했는지, 계획하는지, 니들이 가는 길이 왜 주검으로 점철되어야만 하는지 말하는 그런 논리들.  니들이 논리적이라고 말하는 건 내겐 역겨운 것이다. 니들이 가치있다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니들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식은 땀이 난다. 니들이 침묵해도 그렇고.  니들이 도덕이라고 말하는 건 내겐 발작이고 니들이 „정상“이라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니들은 운운하던 이상을 코 풀고 난 휴지처럼 슬쩍 흘려버렸고. 전쟁터를 헤맨 늙은 말처럼 눈가리개해서 안 보이냐? 아니면 무디어졌냐? 아니면 단순하게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작자들이냐? 줄무늬 양복을 입고 책상에 앉아서 만행을 자행하는 니들 어디어 쳐밖혀 있든지 들어라. 지뢰수색견으로 니들이 앞으로 몰고가는 꼭두각시는 종멸되고 있다. 니들 장기판의 말들이 생각하는 걸 배우고 주저하지 않고 판에서 껑충 뛰어 내린다. 주검이 될 때까지 [니들이 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맞서 싸우지 않아.  흙진탕이 무슨 맛인지 가서 스스로 음미해 보렴. 그리 되려면 아직 좀 멀었지, 그러나 날마다 불어나고 있다. 끊임없이.   우릴 니들 계산에 넣지마. 그러기만 해봐라. 니들 속을 보고 난 후 우리가 올라 탄 통통배가 니들이 말하는 것처럼 나쁘지 않다는 걸 우린 알게 되었다. 우리는 니들 거짓말과 상종하기도 싫다. 이미 한 거짓말, 앞으로 하려는 거짓말, 그리고 지금 하는 거짓말, 어떤 거짓말을 막론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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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82.6.10 나토정상회담차 레건이 본에 토착한 날. 본 호프가르텐에서 약 40만명이 반전반핵평화대행진을 함. 텍스트로 돌아가기

독일 윤리위원회 간성(Intersexuality)을 법적으로 인정하라고 권유

2012.2.13 독일윤리위원회 (Deutscher Ethikrat)가 간성(Intersexualität)에 관한 입장을 발표했다.

그중 간성자의 법적 지위에 관한 권장사항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본다.

0 간성(Intersexualität)’ 개념 적용 범위

- 간성적인 변화가 있을 때, 즉 생물-의학적으로 성을 확실하게 규정할 수 없고 이에 따르는 윤리적, 사회적, 법적 문제를 다루는 경우에 적용

0 법적 차원의 권장사항

- 신체구조적으로 여성에도 남성에도 편입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법적으로 호적에 둘중 하나의 범주로 귀속되게 하는 것은 정당화 될 수 없는 인격권과 평등처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명하고

 

- 다음과 같은 제도개선을 권장함.

1) 성이 분명하게 규정되지 않는 경우 여성, 남성 외 다른 성을 기입할 수 있게 하고 (당사자가 결정할 때까지 기입유보)

 

2) 현행 인격법 47조 2항을 보충하여 당사자가 기록된 성의 오류가 확인될 경우 변경을 요구할 수 있게 하고

 

3) 호적에 여성, 남성 외 다른 성을 기입할 수 있게 하면 필연적으로 국가가 인정하고 법규정의 지배를 받는 관계를 가능하게 해야  하는 바, 현행법상 오로지 남성과 여성간의 혼인과 남성 혹은 여성으로 편입되는 동성간의 등록된 생활동반자관계만 성립시키는 법규정을 개정하여 „다른 성“을 기입한 사람들에게도 등록된 생활동반자관계를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함 (다수 의견). 일부는 더 나아가 혼인 가능성까지 열어줘야 한다는 입장 견지. 

 

4) 이와 관련 근본적으로 호적에 성을 기입하는 것이 꼭 필요한가 검토하는 것도 권유함 .

 

전문은 여기

 

독일윤리위원회는 정부가 임명하고 정부정책을 자문하는 기구임.

 

관련 기사: FAZ 201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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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탈나흐트

 

 

크리스탈나흐트

뭔가 덜컹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뭔지 알 수 없는 소리가 내 안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을
크지 않는 작은 소리가
간혹 들어 본 적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게 깨지는 소리지만
바로 꿰뚫어 볼 수 있게 들려오는 법이 없는 소리
깨어나 눈을 비비고 보면  
부르겔 그림인지 보쉬 그림인지 알아볼 수 없는 그림
여신 사이렌을 깨우는 사람이 없는 그림
위기/경보해제의 비용이 반 밖에 들지 않기 때문에.
코는 크리스탈나흐트 냄새를 맡는다.

폭풍 전야의 고요함인가, 뭐야?
누가 아무도 모르게 슬쩍 도시를 빠져나가지?
자신의 모습을 감춘 명망가들이 바삐 지나가네
그들은 공식적으로 그런 곳에 있기를 싫어하지  
인민의 혼 – 인민의 혼? – 이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비등점을 향하여 끌어오르고 성난 목소리로
"하일 [히틀러]? 할랄리 [사냥개시를 알리는 소리]", 모든 방향을 상실한 보복심으로, 시샘으로 달아오른 모습으로
크리스탈나흐트 밤에

다른 것이라면 다 눈에 거슬리는 그들에겐   
흐르는 물에 헤엄치는 것을 정상으로 생각하는 그들에겐  
동성애자는 범죄자이고  
외국인은 찌꺼기인 그들에겐  
그러나 유혹자가 반드시 있다.
유혹되면 어떤 기마부대도 구제하지 못하고
어떤 쪼로(Zoro)도 사태수습에 나서지 않고  
잘해봤자 쌓인 눈에 „Z“나 오줌으로 갈기지   
풀어진 혀바닥으로 꼬부라진 말하다가 자빠져
"그래서 어쩌란 말이야? 크리스탈나흐트인데!"

예배당엔 프란쯔 카프가 시계가
시간 선만 있지 침은 없는 시계가 걸려 있고
거기 맹인이 비둘기 한마리에게 스트루벨페터를 읽어주고
세번이나 잠근 문 뒤에서
그리고 열쇠고리를 찬 파수꾼이  
천재영웅 행세를 하는 곳  
출구를 가루내어 팔아먹는
크리스탈나흐트의 폐소 공포증 해소약으로  


그런 사이 시청 앞에서는 어쩌면 오늘도
가면을 벗어 버린 드러난 얼굴로,
돌을 모으고, 칼을 벼르면서
이미 고발된 자들을 상대로  
린치 몹이 최후의 심판을 연습하고 있다.
그리고 선적하려고 부두막에 느슨히 묶인
갤리선들이 이미 증기를 올리면서
노예들을 기다리고 있다
비열한 싸움에서 쓰레기장으로 떨어진 노예들을  
크리스탈나흐트 밤의 비열한 싸움에서   

다윈이 모든 것의 증인이 되는 곳에  
사람을 추방하나 못살게 구나 
권력 뒤에 돈이 있는 곳에  
강자가 되는것이 다인 세상에  
엎드려, 차려 호령으로 길들여진 왜곡된 모습으로  
빗으로조차 찬송가를 부르는 곳에
이윤을 향한 짐승같은 욕심이 있는 곳에  
"호산나" 와 "십자가에!"를 번갈아 외치는 곳에  
그렇게 어떤 이익이라도 보려고 하는 곳에  
크리스탈나흐트가 우리의 일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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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4

어지러운 생각

 


보수진영이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심판대를 만들고 있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서구의 복지가 러시아 노동자 혁명을 수습하려는 대안이었다면

보수진영이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를 심판대에 올리는 척 하면서

„무조건 기본소득“이라는 당근을 던져주게 되는 것은 아닐까?

독일 경우 오른쪽에서 왼쪽까지 어는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어 가고 있는데?

마음이 착잡하다.

 

왕의 목을 싹둑 잘랐던 부르주아지의 기요틴 보다 더 강력한 심판대를 노동자 계급이 만들어야 하지 않는가?

 

서구에서 그 심판대가 만들어질까? 아닌 것 같다.

 

사회복지를 사수하려고  더욱더 봉쇄되는 EU. 남유럽에서 살기 어려워 독일로 들어오는 EU 시민에게 기본생활비(Grundsicherung) 지급을 제한하는 독일.

 

무슨 징조지?

 

세계화로 변장한 제국주의가 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일까?

 

생각이 어지럽다.

 

노동자 계급의 방향성과 함께 사유의 방향이 흐트러져 버렸다.

 

 

 

노동자 계급이 가시화 된 것이 당이라면,

그런 당이 있는가?

노동자계급을 판돈으로, 불모로 삼아 자행되는 사유의 유희에 대항하여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숟가락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아래로 흐르는 눈물을 감추어야 하는 사람들의 생존의 최전선에서, 아래로 전가되는 불행의 크기를 가늠하고 그로부터 정치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배제된 자들의 서사 전략“으로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억압당하고 묵살되는 것은 물론이고 대기업 노조 중심의 노동조직으로부터도 소외되거나 외면당해온 ‘배제된 노동’을 비례후보의 전면에 내세우고 이들이 만들어온 삶과 사랑과 투쟁의 서사를 무기로 이 시대의 자본권력과 지배이데올로기와 싸우는 것“에

 

희망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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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경제위기 - 명명하기 (2)

요한복음 5장 24절을 보면 이렇게 적혀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혹자는 왠 느닷없는 성경구절이냐고 의아해 하겠지만 지금 서구 자본주의가 마주하는 위기를 설명하기에 유용한 구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인용해 본다.

여기서 „심판“은 „Krisis“를 번역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Krisis“는 ‚주관적인 비판’과 ‚객관적인 위기’를 포괄하는 낱말이며 군사적으로 사용될 때는 ‚생사의 갈림길’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

현재 진행중인 위기를 사유하는 독일 정통보수진영을 보면 자신들이 자본주의와 함께 심판대(Krisis)에 올라와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빼도박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몸부림하고 있다.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넘겨주고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탄하고 있다. (관련 FAZ 발행인 프랑크 쉬르마허 글 참조)

이런 성서적인 접근이 결코 뜽금없는 것이 아닌가 보다.
 
맑스-레닌 연구소가 아닌 쾰른 주재 독일 정통사회연구소인 막스-플랑크 사회연구소 양대소장  옌스 베커르트(Jens Beckert)와 볼프강 스트렉(Wolfgang Streeck)도 성경을 인용하여 몸 가누기도 힘들게 비대해진 (신)자본주의 작자들을 내리깐다. 그들이 벽에 쓰인 „메네데겔“을 안 읽으려고 한다고.

다니엘서 5장을 보면 다니엘이 벨사살 왕에게 잔치상에 뜽금없이 나타난 손이 석회벽에 쓴 글을 해석해 주는 이야기가 있다. 지 애비가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완악하여 교만을 행하므로 왕위가 폐한 바 되며 그의 영광을 빼앗기고 사람 중에서 쫓겨나서“ 짐승같이 돼진 것을 보았음에도 불구라고 „마음을 낮추지 아니한“ 벨사살에게 하는 말이라고 다니엘은 해석한다. 다니엘서 5장 25절 이라 이렇게 적혀있다.

„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매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나이다“

암튼 독일 정통보수는 사람 중에서 쫓겨날까봐 겁에 질려 있다.

뭔 말 하려고 이런 말을 시작했지?

EU가 마주하는 위기는 자본가와 그에 기생하는 작자들과 자본주의가 심판대(Krisis)에 올라와 있는 위기라고 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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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경제위기 - 명명하기 (1)

EU 경제위기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구글 고급검색에서 „다음 단어 또는 문구 정확하게 포함“을 선택하고 „유럽금융위기“, „유럽재정위기(유럽국채위기)“, „유로화 위기“, „(남)유럽경상수지위기“, (남)유럽유동성위기, (남)유럽지불능력위기 등을 차례로 검색해 봤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1위: 유럽재정위기(유럽국채위기) 24,700,000 (58,400)
2위: 유럽금융위기 1,140,000
3위: 유로화위기 17,200
4위: (남)유럽유동성위기 (7,610)
5위: (남)유럽경상수지위기: 0 ; (남)유럽지불능력위기(유럽지불불능위기) 0 (0)

다 같은 말인가. 아무렇게 불러도 되나?

내 성이 „아무개“인 이유가 „아무개“ 터전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면 저 이름들도 EU 경제가 마주하는 위기가 이런 저런 터전에서 나왔다가 말하고 있겠다.  

EU 경제가 마주하는 위기의 원인을 크게 둘로 보는 것 같다. 하나는 정부가 돈을 너무 많이 썼다는 이야기고 (재정위기) 다른 하나는 금융산업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시각인 것 같다 (금융위기). (남)유럽경상수지악화가 원인이라고 보는 시각은 유로존을 만들때 이미 따라붙은 구조적 문제, 즉 상대적으로 ‚강한’ 유로도입으로 인한 남유럽 국가들의 국제경쟁력 상실과 이와 대조적으로 상대적으로 ‚약한’ 유로도입으로 덕을 본 독일 등 북유럽 국가들의 국제경쟁력 향상에 주목하는데, 이는 재정위기를 촉발하는 이유로서 재정위기의 연장선에 놔도 무관하겠다.

유동성위기 혹은 지불능력위기는 금융계를 의식하고 쓰는 말인 것 같다. 금융계는 예컨대 그리스가 절대 지불불능이라고 말하지 않고 유동성위기라고 말할 것이다. 왜? 돈을 받아야 하니까? 집이라도 팔아서 (유동화해서) 빗을 갚으라고 해야 하니까.

포풀리즘 냄새가 물신나는 „유로화 위기“는 인플레이션, 특히 독일 인민이 지난 세기에 겪었던 경험에 호소하는 것 같다.

 

참조: 위키 http://de.wikipedia.org/wiki/Staatsschuldenkrise_im_Euror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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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 반 가우크

ou_topia님의 [가우크? - 살아남은 자와 사라진 자] 에 관련된 글.

 

페북, 트윗 등에서 반가우크 운동이 조직되고 있다.

 

 

가우크, 사양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http://www.facebook.com/pages/Gauck-Nein-danke/276228749113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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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크? - 살아남은 자와 사라진 자

베르벨 볼라이(Bärbel Bohley)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베르벨 누구?

구동독에서 반전반핵평화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조직하고 일선에 섰던 사람들의 이름이 기억에서 사라졌다. 내 자신, 베르벨 외 다른 사람들의 이름이 얼른 기억나지 않는다.

그나마 단 하나 분명하게 기억되는 것은 그 사람들이 반공주의자들이 아니었다는 것이다.그 사람들은 엄연한 사회주의자로서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일되는 것을 반대하고 1국가 - 2체제를 대안으로 내놓았다. 동독이 서독에 팔려가는, 동독 것은 다 잘못되었다는 식의 ‚전환’(Wende)과 이런 ‚전환’의 시기에 줄타기 바쁜 기회주의자들과 대조적으로 사회주의의 개혁을 외쳤던 크리스타 볼프 등의 서명문 „우리 나라를 위해서“가 분명히 기억된다.

가우크는 어떤 사람인가?

동독에서 민주화 운동을 지도했던 사람이란다. 로스톡에서? 동독 민주화 운동의  본거지는 라이프찌히-베를린으로 알고 있는데? 반전반핵평화운동을 조직한 사람들로 알고 있는데? 로스톡에서 동독 민주화를 지도하는 선생노릇을 했다?

어? 동독 민주화 운동의 일선에 가우크가 있었나? 본적이 없는데?

타쯔(taz)지 컬럼니스트 데니츠 위첼(Deniz Yücel)은 동독에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던 목사 가우크가 동독 민주화 운동에 대한 제재가 사라지자 비로서 목소리를 높였고, 전환 후에는 뒤질세랴 더 열심을 내서 동독체제를 고발했다고 한다. ‚나 동독 싫어’.  

가우크를 반공주의에 눈이 어두어 나찌만행을 상대화하는 사람이라고 혹평하는 사람도 있다.

가우크가 기자의 도움을 받아서 쓴 책  „여름에 맞이라는 겨울 – 가을에 스며있는 봄. 회고“ 을 서평하는 자리에서 크리스토프 플라이쉬만(Christoph Fleischmann)은 이렇게 말한다.

„까놓고 이야기하자면 가우크는 종종 적색테러와 나찌테러를 동일시하기에 적합한, 말도 안되는 비교를 즐겨 한다. […] (가우크: „국가에 대한 충성의 일부로서의 배반을 문제시하지 않은 사회가 아직까지 [동독 이전에] 없었던 것 같다. […] 나찌시대에서조차 비밀경찰 게스타포와 은밀히 협력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공산주의 불법(Unrecht)를 나찌 불법과 같은 선상에 놓거나 아니면 그 위에 놓으려는 경향은 그의 생을 보면 이해가 된다. 가우크의 아버지는 1951년 „끌려갔다”. (…) 서독에서는 나찌시대 때 한 일에 놓고 부모와 자식간 격렬한 말싸움이 벌어졌지만 가우크가 처한 상황에서는 나찌에 대한 그런 말싸움이 일어나기 힘든 것이었다.   불법은 우선 틀림없이 사라진 아버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점령된 폴란드에서 해군장교로 주둔해 있을 당시 스스로 불법을 저지르진 않았나 독자들이 알 길이 없다.”

나찌에 대한 입장관련 더 심각한 비판도 있다.

이런 일이 있었다.

2003.6.1 나찌 만행에 참여한 이유로 1950-1953간 Forst-Zinna수용소에 사형되거나 생을 마친 사람들의  유해가 동독공산주의의 희생자가 되어 „전쟁과 폭력 희생자를 기념하는 (würdig/존귀에 합당한) 묘지“로 이장되고 이듬해 5월 9일 이들을 기념하고 전시하는 해프닝(?)이 작센 토그가우(Torgau)에서 벌어졌다. 이렇게 기념된 117명  대다수가 나찌만행에 참여한 사라들이었다. 부분적으로는 러시아 „명예회복위원회“가 번복하거나 형을 감소한 사례는 있지만 59명에 대해서는 전쟁 및 대학살 범죄자로 모든 명예회복신청을 거절하고 있는 상황이다.

근데 가우크가 거기 그런 나찌를 기념하고 전시하고 기리는 자리에 있었다.  

     
예를 들어 이런 나찌가 기념되었다. 나찌 집단수용소 감금자와 강제징역노동자  1017명을 외딴 창고로 몰고가 불을 지르고 나오는 사람은 다 총살한 만행에 가담한 발터 비어만(Walter Biermann)과 아르노 브라케(Arno Brake)

.
나찌 희생자 단체들이 가만 있었겠는가? 가우크가 나찌 희생자를 기념하는 행사에 초대되거나 심지어 주연설자로 초빙되는 것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다시 한번 타쯔 컬럼니스트의 말을 들어보자.


근 10년동안 슈타지 문서관리청 수장이었던 가우크가 – 수장 권한으로  기지(Gysi) 등 좌익당 소속 옛 동독 인사들의 행보에 초점을 맞췄다는 비판도 있음 -    동독을 비난하는 동기는 국가조직, 특히 정보조직를 경계시하는데 있지 않고 오로지 독일정통을 자랑하는 세력의 천하디 천한 반공산주의에 있다는 것.  


헌보청이 좌파당을 감시하는 것을 놓고 가우크가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자.


가우크: „헌보청이 좌파당내  특정인과 그룹을 감시하면, 그럴만한 근거가 있을 것이다. 헌보청은 우리 법치국가 밖에 존재하면서 좌파를 핍박하는 그런 조직이 아니다.“


타쯔 컬럼리스트 : „<권력의 부처 행세를 하는> 요아힘 가우크가 내놓는 지성, 자유사랑, 그리고 비판정신은 이미 이 두 문장에 다 포함되어 있다.“ [슈타지 문석관리청을 „Gauck-Behörde/가우크청“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Joachim "Behörde" Gauck“이란 표현은„Gauck-Behörde“의 순서를 도치하여 공권력에 자신을 환영하는 가우크의 심리를 까는 표현]


Occupy 운동을 „멍청한 짓“이라고 하고, 독일 내 아랍계 사람들이 교육수준이 낮은 것을 유전적으로 뒷받침하려고 책을 쓰고 떠들고 돌아다니던 사민당소속(!) 자라찐 (Sarazzin)을 용감하다고 평하고 [독일 정통보수가 말은 하지 못하고 근질근질했던 모양이다. 그가 가는 곳마다 기립박수로 환영했다.] 이민자가 너무 많고 정통독일인(Altdeutsche)은 소수뿐인 지역이 없어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유태인 학살을 사상 예가 없었던 것으로 만들지 말자고 내놓고 사회보장제도가 사람을 느슨하게 만든데 기여한다는 발언하는 등 언제 가우크에 대한 환상이 깨질까?


보수진영의 정치적 계산 속에서 후보로 추대된 그가 그런 계산을 꿰뚫어 보지 못한단 말인가. 정말 참신한 사람이라면 기분잡쳐서라도 두번째 추대에는 엿 먹으라고 „No“ 했을 것이다. 멍청한 사람인가? 아니면 명예욕에 사로잡힌 사람인가? 암튼 줄타기 잘하는 사람이다. 언제 무슨 말을 해야 줄에서 떨어지지 않는지를 잘 아는 사람이다. 그 줄이 신자유주의때문에 갈팡질팡하는 정통보수가 내려준 줄이라는 건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참조:

인디메디아 ( http://de.indymedia.org/2012/02/325146.shtml)

http://www.zeit-geschichten.de/th_03d_c5.htm
http://www.christoph-fleischmann.de/pages/de/archiv_zum_lesen/rezensionen/813.htm
http://www.nrw.vvn-bda.de/texte/0130_gauck_do.htm

http://taz.de/Kolumne-Besser/!88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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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멜리 건"

„에멜리“ 건 (Fall „Emmely)

사건개요

동독 출신 에멜리는 1977년 이후 소매점 직원으로 일함. 구동독 HO 체인점에서 일하다가 통독 후 수퍼마트 체인 카이저가 인수하여 거기서 15년 일하다가  2008년 2월 즉각 해고됨.  해고 당시 사실  31년째 일자리를 유지해온 에멜리를 즉각해고한 사유는 체인매니저가 고객이 흘리고 간 환불쿠폰(Leergutbon) 두장을 (총 값어치 1.3유로) 그녀에게 고객이 찾으로 올때까지 보관하라고 맡겼는데 스스로 환불하여 썼다는 것.
에멜리와 변호사, 그리고 그 공공노조 베르디(ver.di)는 즉각해고의 배경이 에멜리가 2007년 말 소매고용자 파업에 가담한 데 있다고 추정. 파업가담 후 오후근무에만  배정되고 2008년 1월 직장파티에는 초대되지 않음.
처음엔 베르디 공공노조가 에멜리의 법률지원을 맡았으나 에멜리 해고를 여론화하는 것을 반대하자 다른 법률지원으로 대체함.

판결

1심: 베를린 노동법원

베를린 노동법원은 에멜리의 행위로 고용주와 고용자간 신뢰가 [회복될 수 없게] 망가졌기(zerrütter) 때문에 혐의해고(Verdachtskündigung)가 합법적이라고 판결.

2심: 베를린-브란덴부르크 주 노동법원

베를린-브란덴부르크 노동법원은 1984년 연방노동법원의 일명 „비넨스티히 건“(비넨스티히는 단빵 종류. 이런 단빵 한조각을 훔쳐 먹었다는 사유로 즉각해고. 연방노동법원은 보잘것 없는 것이 즉각해고의 사유가 될 수 있다고 판결. 신뢰문제 거론) 판결사례를 적용하여 사건개요에 이야기된 사실보다 에멜리가 환불구폰을 환불한 사실을 부인하고 또 다른 직원이 그랬을 것이라면서 다른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했다면서 이런 태도는 민법 626조 즉각해고 사유를 충족시키는 것이라는 판결.  피고인이 31년간 유지해온 일자리를 지키는 것을 우선시하는 소위  ‚존속보호’는 캐쉬어라는 업무상 고용주와 고용자간 절대적 신뢰가 필요한바 뒤로 물러서야  한다는 것.

3심: 연방노동법원

2009.7.28 연방법원은 우선 항소를 허용함. 연방노동법원이 항소를 허용한 이유는 피고인이 해고장을 받은후  보여준 태도가 해고사유성립에 감안될 수 있는가라는 원칙성에 있음.

2010.6.10 심사에서 연방노동법원은 에멜리의 행위가 „보잘것 없는 의무불이행“(erhebliche Pflichtwidrigkeit)이라고 평하고 해고를 접수.  31년의 경력을 감안해 해고장을 보내기 전에 경고장을 보내야 했다는 것. 그리고 심사과정에서의 에멜리 행동이 탓할 것이 없다고 판결.  

 

참고: 위키 http://de.wikipedia.org/wiki/Fall_Emm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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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대통령 크리스티안 불프의 퇴임과 독일 전통보수진영의 행보 4

 „나는 좌파가 옳았다고 믿기 시작한다.“

글쓴이: 프랑크 쉬르마허(Frank Schirrmacher), FAZ 발행인
출처: FAZ, 15.08.2011 원문은 여기



일러두기: „Bürgertum“을 독일 부르주아의 특성상 그냥 ‚부르주아’로 번역하기도 ‚시민계급’이라고 번역하기도 어렵다. 그 특성 한가지를 이야기하자면 독일 부르주아계급의 봉건 지배계급과의 결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왕의 목을 자른 경험이 있는 프랑스의 ‚부르주아’와 비교가 안되는 것 같고 ‚시민계급’은 너무 ‚시민사회’를 함의하는 것 같다. 그래서 „정통보수“라고 번역했다. 여기서 ‚정통보수’는 독일 보수의 특성, 죽 경제적인 범주보다 경건주의, 카톨릭 사회윤리에 기반한 사회이념, 가치보존 등 비경제적인 범주로 자기정체성을 규정하려는 독일  보수의 특성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한다. 녹색당이 기민당과 자유민주당이 자기들만 „Bürger“를 대표한다고 하자, 우리도 ‚시민’(Bürger)을 대표한다는 항의에서 볼 수 있듯이 „Bürger“가 사전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논쟁에서 제각기의 의미가 부여되는 용어다.  암튼 „Bürgertum“은 ‚정통보수’로, „bürgerliches Lager“는 ‚정통보수진영’으로 번역하였다.
 

(번역)

지난 10년 동안 제멋대로 날 뛴 금융시장경제가 결국 사회저변으로 쫒겨난 좌파 사회비판을 다시 불러들이는데 가장 성공적인 프로그램이 되었다. 밑바닥으로 떨어진 것처럼 보였던 좌파 비판이 다시 출현한 것 뿐만 아니라 필요하기까지 되었다. 정통보수를 대표한다고 자칭하는 정치가 마주하는 위기는, 예전에 프로레타리아를 남용했던 공산주의가 그랬던 것처럼,  정통보수란 말을 남용한 현 정치의 위기는, 정치적 보수주의의 자기의식.자기정체성위기(Selbstbewusstseinskrise)로 발전하고 있다.

현실정치와 실용주의라는 이름으로 뻥뚤린 공백을 감추면서 실수는 다 한다는 식의 면책시도는 이런 공백이 주는 불안을 감추려는 시도일 뿐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오늘날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정치적 행위의 옳고 그름만이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정통보수진영의 정치적 실천이 현재 리얼타임실험처럼 진행중인 „정통보수의“ 정치가 그릇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을 넘어서 정통보수 최대의 적이 전제하는 것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철저히 보수적인 찰스 무어는 데일리 텔레그라프에 이렇게 쓴다. „좌파 분석의 강점은 권력자들이 어떻게 자유주의-보수주의의 언어를  수단으로 사용하여 자기이익을 확보하려는 의도를 은폐했는지 파헤쳤다는데 있다. 예를 들어 ‚세계화’는 처음엔 순전히 세계적인 자유무역,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는 은행이 국제무대에서의 성공으로 얻은 이익은 갈취하고 손해는 각국 납세자의 몫으로 돌린다는 의미다. 은행들은 돈이 떨어지면 각기 자기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해당 정부가 그들에게 새돈을 준다.“

말이 있되 그릇되거나 옳아야 한다. 근데 그릇된 말이 갑자기 옳은 말이 되면 곤란해진다.  전체의 합리성에 대한 의심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러면 바른쪽에 서 있었는지, 한평생 그랬는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런 시간은 역사적으로 경험 많은 옛사람들이 막판에 구제할 수 있는 것을 어떻게든 구제해 보려고 다시 한번 등장해 말을 꺼내는 시간이다. 리버럴한 카톨릭 에르빈 토이펠(Erwin Teufel)이 극적인, 붕괴되는 신념체계에서 흘러나오기 일수인 수사학적 표현을 빌려 그런 유의 말을 했다. 더이상 침묵할 수 없어서 말을 꺼낸다고. 에르빈 토이펠: “나는 더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이렇게 극의 제 1막이 시작되었다.  

정통보수 사유가 자기환상에서 깨어나는 극 전반은 지금 영국에서 무대에 올라와 있다. 지난 몇주간 가장 많이 토론된 콤멘트에서 찰스 무어는 이렇게 썼다. „저널리스트로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내 자신에게 던지기까지는 30년 이상이 걸렸다. 그런데 이번 주에는 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고 느낀다. 좌파가 궁극적으로 옳지 않았는가?“ 무어는 폭동이 일어나기 전에 , 그리고 그런 폭동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렇게 썼다. 솔직히 말해서 누가 그에게 반박할 수 있겠는가?

정치제도는 단지 부자들만 위한 것이다? 이건 좌파의 말로서 항상 그릇된 말로 여겨졌다. 루드비히 에르하트의 독일보다 영국에서는 좀 덜 그릇된 말이었겠지만 말이다. 무어에 따르자면 지금와서 갑자기 옳은 말이 된 그릇된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 돈을 신중하게 관리해야 하는 은행이 우리 돈을 빼앗아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보증으로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으면 좀 곤란한 일이 발생한다. 그러면 좌파가 항상 주장했던 것처럼 다수의 진전을 위해서 출범한 체제가 소수를 부유하게 하는 체제로 변태한 것이 드러난다.“ 무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있는 사례를 다 일일이 들먹이면서. 머독 – 그에 관련하여 우파가 아직  포퓰리즘을 민주주의로 간주하고 있을때 좌파는 그를 이미 꽤뚫어 보고 있었다고 무어는 말한다. 신용 및 금융위기, 유럽 정부수뇌들의 범법행위, 경제담론의  우선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로존 위기. 좌파 선동주의자에게  돈이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는지 풍자해보라고 했다면 지금 현실보다 더 적합한 구상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무어는 말한다.  

이 자리에서 찰스 무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지 않고 지나갈 수 없다. 탁월한 보수 언론인일 뿐만 아니라 마가렛 대체의 공식 전기작가다. 덧붙이자면 대체가 세상을 떠나야만 발간이 허용된 전기다. „내가 쓴 글에 대한 반응은 엄청나다.“라고 인터뷰에서 말한다. „그러나 오해가 몇개 있다. 혹자는 내가 영국 노동당이 옳다고 말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말을 한적이 없다. 나는 좌파의 이념과 정통보수의 이념을 이야기한다.“

영국의 상황은 독일의 그것과 다를 수 있고 또 그렇다면 바로 반박할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을  간과할 수 없다. 에르빈 토이펠 논쟁은 단지 징후에 불과하다. 신자유주의가 마치 무슨 세뇌공작이나 되듯 사회를 뒤덮은 것은 정말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정통보수 사유의 상상력 창고에서 맘대로 갖다썼다: 자유, 자율, 동시에 개인의 가치를 존중하는 자결, 되고 싶은 것이 되는 기회, 정부와 정부의 전능에 고삐를 채우는 것과 함께. 이런 일이 일어남과 동시에 기민당(CDU)은 신자유주의에게 기민당의 가장 큰 가치를 넘겨주었다. 즉 루드비히 에르하트의 후손들이 세계화는 사회시장경제 진화의 산물이 될 거라고 약속하면서 신자유주의를 정당화하였다. 루드비히 에르하트 플러스 AIG 플러스 리먼 브라더스 플러스 정통보수의 가치 – 이건 정말 킬러어플리케이션이 되었다.

여기서 하나하나 다 들먹일 필요는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누가 Hypo Real Estate [독일 부동산 대출은행]의 감독위원회에 앉아 있었는지, 그리고 어쩔수 없어서 국유화해 달라고 사정하는 은행가의 요청으로 끝나지 않았던 일 등등을. 결정적인 것은 좀 다른데 있다. 기민당은 금융시장에 빌려준 이상적인 가치를, 개인과 개별인의 행복에 대한 이상(Vorstellung)을 한번도 돌려 달라고 하지 않았다. 기민당은 자빠지는 은행에게 그 어떤 책임도 추궁하지 않았다. 추궁은 고사하고 기민당 이상을 망치고 산산조각내는데 아무런 한탄도 터뜨리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경제적인 문제가 기필코 윤리적인 문제가 되는 이중잣대의 세상이 도래했다. 여기에 현재 상황의 폭발성이 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지금 위기를 베를린 공화국 이전의 위기와 구별내는 것이다. 오도로 유인한 잘못으로 처벌된 자유민주당의 핵화(Atomisierung)는 그저 기능상의 문제다. 아무도 현존하는 자유민주당이 특별한 윤리적 역량이 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자유민주당은 사실 한번도 그런 능력을 자랑한 적이 없다. 기민당이 지불해야 하는 값은 한번의 선거결과보다 더 많은 것이다. 문제는 기민당이 정통보수의 아젠다세터인지 아니면 정통보수를 숙주로 삼아 기생하고, 빨아먹고, 연약하게 하는 기생충인가에 있다.

(…)

앙겔라 메르켈은 지금까지 유로존 위기의 윤리적 결론을 주제화하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열악하다. 이런 위기가 에르하트 시대에 일어났다면 자기정체성성찰프로세스(Selbstverständigungsprozess)가 반드시 일어났을 것이다. 안 그랬을리 없다. 상상할 수 없다. 보기에 이런 프로세스를 시작할 만한 인물이 기민당에 없다. [은행을 때려잡을 만한] 권력이 부족한 것이 절대 아니다. [금융시장 관련] 보수주의자들의 정치적 입장표명은 „몬스터“란 말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

정통보수진영에서 출마한 연방대통령의 [크리스티안 불프를 두고 하는 말임] 행태를 보면 그가 왜 무조건 연방대통령이 되려고 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 연방대통령은 유럽의 최대 위기 앞에서, 마치  자기가 해야 할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믿지 않는다는 양,  침묵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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